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16화 (216/221)

216화.  < 강철의 지배자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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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적과의 싸움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그건, 적에 대한 정보다.’

적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다면 적의 전략까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며, 그것들을 모두 열거한 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선택하여 대응하는 것— 그게 바로 승리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적도 아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적이 예측할 수 없는, 즉 기가 막히는 한 방을 날려야만 한다.’

가령…….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저 멀리 떠오른 검은 포탈을 향해서 치솟던 마왕성, 그것의 한가운데에 달린 큰 눈알이 하늘을 향했다.

그 외에도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 이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저, 저것 봐!”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태양을 가린 직사각형의 거대한 물체들…… 전부 수십 층에 달하는 빌딩이었다.

쿠—구—구—구——!

이처럼 빌딩들이 하늘로 떠올라서 내리꽂히는 말도 안 되는 일이야말로, 적이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히는 한 방이 된다.

이현욱은 그 빌딩들을 들어 올리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거다.’

그 크기가 원체 크고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 보니까,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꽤 큰 면적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 면이 마치 모래성처럼 으스러져 버릴 수도 있었다.

한편, 이현욱은 전생에 들었던 어떤 말을 떠올렸다.

'—현욱, 당신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우리가 밟고 선 이 빌딩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마치 거대한 운석처럼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하하하…… 당신으로선 꽤 아쉽겠는걸?’

이는 고든 프라이스가, 전생에 이현욱을 죽이면서 비꼬듯이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리라고는, 놈 역시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각 십여만 톤…… 그것에 짓눌린다는 것은, 웬만한 폭탄보다 훨씬 끔찍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워낙 부피가 크기에 피할 도리도 없었다.

이현욱의 손이 하늘에서 마왕성으로 그어졌다.

“자, 이건 네가 예언한 일이다.”

「.......」

그 순간, 마왕성의 촉수가 하늘로 겨누어지면서, 촉수 끝에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건 마왕성 특유의 광선 공격의 전조였다.

"—늦었어.”

그러나 이미 빌딩들이 중력을 타고 떨어졌으니, 놈이 광선을 내뿜기 직전, 마왕성 위로 내리박혔다.

콰—앙——!

「크아아아——」

그대로, 마왕성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놈의 도주를 틀어막기에는 최고의 한 방이다.’

그 어떤 공세를 퍼붓더라도, 저 거대한 마왕성은 깡그리 무시하고 수직으로 치솟아서 검은 포탈 너머로 사라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마왕성일지라도, 수십만 톤에 이르는 무게를 견딜 수는 없었고, 그것은 결국 그대로 지상으로 내리꽂히더니 지면에 내리박히고 말았다.

콰—아—아—앙——!

그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 폭풍이 서울을 뒤덮었다.

"큭!"

"윽!"

이현욱은 그 즉시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지금 바로 워 박스, 모글레이 투하하세요!”

현재 서울의 저궤도 상에 ‘워 박스’가 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열린바, 워 박스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내 두 줄기의 섬광이 하늘에서 그어졌고, 이현욱은 그것들을 감지하고 방향을 유도했다.

직후, 피어오르던 희뿌연 먼지 폭풍이 양쪽으로 훙— 하고 갈라지더니, 모글레이가 마왕성 추락지 위에 내리박혔다.

그 충격에 지면이 액체처럼 변하면서 일대의 아스팔트가 파도칠 정도였으니…… 한층 더 짙은 먼지 폭풍이 뿜어져 오르며 서울의 북쪽 면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어…… 끝난 거예요?”

등 뒤에서 에밀리아 뮐러가 물었다. 그녀로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상황을 파악할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후긴과 무닌을 통한 <외 눈 왕의 혜안> 효과를 통하여, 먼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다.’

그의 눈에는 빌딩 잔해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촉수가 보였으니, 마왕성이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서 잔해를 걷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싹 다 가라—’

이현욱의 손짓을 따라서, 그의 주변에 떠 있던 모글레이들이 쏘아졌다.

그것들은 마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처럼 날아가서 콘크리트 더미 위에 이리자리 내리꽂히더니, 쇼크웨이브와 플레어 웹을 연달아 터뜨렸다.

콰—과—과—과—과——!

단 몇 초 만에 수십 발의 충격파와 붉은 열선이 마왕성 추락지 위에 마구잡이로 피어났고, 마왕성의 혈관이 끊어졌는지 녹색 피 분수가 치솟더니 결국 마왕성의 촉구 몇 가닥이 끊어졌다.

그러자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께—에—에—에——!

이는 마왕성의 비명이었다.

'그걸로 감탄하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이다.’

이어서 AD-2들이 바쁘게 날아들면서, 수도 없이 많은 금속 무기를 마왕성 추락지를 향해 쏟아부었다.

퍼—버—버—버——!

그리고 이현욱은 그것들을 ‘파쇄’하여 거듭해서 마왕성에 데미지를 주었다.

그의 공격은 끊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빌딩 안에 심겨 있는 H빔까지 파쇄하면서,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마왕성을 갉아먹었다.

퍽— 퍽— 소리와 함께 녹색 액체가 거듭해서 뿜어져 올랐다.

‘좋아,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에서 확실하게 끝낸다.’

지금껏 마왕을 몇 번이나 놓쳤던가?

‘저놈은 자유자재로 광역 포탈을 열며 신출귀몰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조금의 틈도 줘선 안 된다.’

그리고 방금도 자칫 늦었으면 놈이 포탈을 통과할 뻔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도시가 놈의 먹잇감이 되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을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이 반파되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어떻게든 묶어 놔야 했다.

쩌저저저——

그렇기에 이현욱은 무너진 빌딩 몇 채를 더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왕성 위로 다시금 떨어뜨렸다.

그 무렵, 근처로 라퓨타가 도착했다.

우우우우——

그 주변으로, 수십 대의 비공정이 함께였다.

- 칙—전 함대, 전투 준비한다.

이는 우성문 실장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비공정들은 간격을 넓히며 기동하더니, 마왕성 추락지를 에둘러서 포위했다.

그것들은 기체로 하늘을 틀어막아서 마왕성의 비상을 저지할 계획이었다.

이내 비공정으로부터 로프 다발이 우후죽순 떨어지더니, 그걸 타고 플레이어들이 빌딩, 도로 위 등에 착륙했다.

- 화력 11조, 광역 화염 마법 준비 중!

- 화력 14조, 광역 전류 마법 준비 중!

그러한 교신들이 수도 없이 이어졌으니, 무려 수천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 군대가, 전투에 돌입한 것이었다.

- 칙—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모조리 퍼붓는다!

곧 서울 하늘이 형형색색의 광역 마법으로 물들었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점으로 쏟아져 내렸다.

흔히 말하는 무차별 폭격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쾅—쾅—쾅—쾅——!

그렇지 않아도 빌딩, 마왕성, 모글레이 등의 추락으로 약해져 있던 지반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결국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퍼부어요!”

그렇게 몇 분 동안 집중 공세가 이어졌고…….

"정지—”

이현욱의 명령에 전 병력이 멈춰 섰다.

이어서 김세희와 코도 코시로가 상승기류를 일으켜서, 자욱하게 피어난 모래 구름을 걷어냈다.

그러자 마왕성 추락지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후우우우…….

무려 7채의 빌딩이 내리꽂혔으나, 전부 잘게 으스러져서 건물의 형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채굴 현장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처럼 보였다.

또, 그것들은 전부 녹색의 찐득한 액체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니…… 그건 마왕성의 살점과 피일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살펴보니까, 잔해 중심부에 원형의 마왕성이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끄, 끝난 건가요?”

그렇게 중얼거린 건 박준모였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아, 방금 그 말은 좀……."

"이 타이밍에 그런 말은 부정 타는데……."

그 불길한 물음에 대답한 건 이현욱이었다.

"아니, 아직이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마왕성 안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 주의! 해당 지역에 ‘악의 영역’이 시작됩니다!

* 모든 몬스터가 대폭 강화됩니다. (+100%)

* 모든 플레이어의 저주 면역이 감소합니다. (-30%)

‘이건…… 마왕의 권역인 건가?’

이 시스템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놈이, 사생결단을 마음먹었다.’

즉, 이곳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제 슬슬 그걸 꺼내야겠군.’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켜고 말했다.

“아— 라퓨타, 프로젝트 <프로젝트 GS> 실전 배치해주세요."

그의 말에 라퓨타로부터 한 대의 비공정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웬 사각형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웅—— 텅—

그건 아다만트로 만들어진 큼직한 케이스였는데, 그 표면에 라고 적혀있었다.

이현욱은 그걸 오른손에 각인하는 한편,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 일대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이현욱은 그중에서 단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인페르노,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갈라서고 묘한 열기가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에서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여자, 인페르노, 한주화가 나타났다.

이현욱은 그녀가 쥐고 있는 거검, 레바테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제가 드렸던 힘이 모자라셨습니까?”

“아……."

그 물음에, 한주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이현욱이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충분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전 세계가 목격하고 있었다.

- 여러분은, 어쩌면 최후의 순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킬 더 몬스터> 채널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 이 세상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영웅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우리는 끝까지 그들을 응원하겠습니다.

그 싸움에 이 세상의 존립을, 그러니까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현재 상황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아! 드디어 마왕성이 추락했습니다!

지금껏 스틸레인에게 연전연패하며 도주와 역습을 거듭하던 마왕이, 그가 타고 있을 게 분명한 마왕성이 서울 한가운데 추락한 채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 저게 추락한 지도 벌써 십 분 정도가 흘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죠?

- 예! 리타이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꼭 그랬으면 하고요!

- 제가 알기로는 마왕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가 마왕성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애초에 월드 퀘스트의 목표 중 하나도 마왕성의 파괴였고요. 지금 상황이…… 아주 긍정적이군요?

- 예! 방심은 금물이지만 스틸레인과 우리 인류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데, 고작 네까짓 놈들이 날 막아서다니…….」

웬 목소리가, 증오와 분노가 가득 담긴 절규가 울려 퍼지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플레이어들이 급히 은.엄폐했다.

그리고 신 나게 떠들던 방송 중계진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마왕의 음성이었다.

그와 동시에 빌딩 잔해 안쪽에서 쿵— 소리와 함께 광선이 뿜어져 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뚫린 구멍으로부터.......

크에에에——!

온갖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티탄,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 아이스 트롤 등의 고위 등급 몬스터들이었다.

이미 수차례 몬스터 군단을 격파했음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숫자가 남아 있었다.

“―쏴!"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플레이어가 준비된 마법을 발사했고, 몬스터 군단의 머리 위로 빗발치듯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 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몬스터의 숫자는 거의 줄지 않은 채, 폭발로 일어난 연기를 뚫고 돌진해오는 게 아닌가?

그러자 가장 선봉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황급히 포탈과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끄에에에——

그것들이 도심을 휘저으며 달려드는 장면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니, 모든 방송의 진행자들이 탄식을 내뱉었고,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것들이 자신의 집 앞까지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빠졌다.

- 저, 저것들은 마왕에 의해서 강화된 겁니다. 그래서 웬만한 플레이어들의 광역 마법으로도 리타이어되지 않는 듯합니다!

- 한 마리 한 마리가 레이드 해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이군요?

그나마 A등급과 S등급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의 공격만 먹혀들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잦아들었다.

- 어? 왜 공격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 공세가 사라지자, 몬스터 군단이 더욱 빠르게 밀고 들어왔다.

- 아! 저기 보십시오!

그때, 방송 화면이 한 빌딩 위를 비추었다.

그곳에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 스틸레인 그리고 인페르노입니다!

현 시점상, 플레이어 화력 1순위와 2순위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 그런데 저게 다 뭐죠?

- 헉! 설마…….

그리고 그들의 주변으로 무언가 잔뜩 떠 올라 있었으니, 그것들은…….

화르르르——!

싹 다, 레바테인이었다.

마치 마그마로 빗은 듯이 검붉게 꿈틀거리는 검신이 열기를 내뿜으며 하늘에 두꺼운 아지랑이를 층층이 쌓고 있었다.

그 열기 때문에 서울 전역의 평균 기온이 순식간에 치솟기 시작했다.

"윽— 숨 막혀!”

"너, 너무 더워서 어지럽습니다!”

이처럼 아군 플레이어들조차 그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이현욱과 한주화가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허공에 뜬 레바테인과, 한주화의 손아귀에서 뻗어 나온 십여 줄기의 화염 밧줄에 묶인 레바테인들이 일제히 쏘아졌다.

콰—과—과—과——!

그것들이 몬스터 군단 위로 내리박히자, 마치 미사일이 터진 것처럼 강력한 화염이 일어났다.

이어서 한주화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 화염들이 요동치고 회오리치면서 몬스터들을 휩쓸어버렸다.

“어때요, 이제는 충분하죠?”

이현욱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기 전, 두 자루의 레바테인을 얻고는 충분한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 더 강해질 수는 없었으니…….

그런데도 한계를 마주했고, 다시 절망을 느꼈다.

그런데 이현욱은 그 한계를 너무나 손쉽게 돌파했다.

“자, 이제 마음껏 쓸어버리세요.”

총 75자루의 레바테인이 내뿜는 화염은, 서울 도심을 녹이기에 충분한 열기를 머금고 있었으니— 한주화는 그것들을 조종하여 거대한 불의 파도를 일으켰다.

이에 이현욱은 한껏 흩뿌려 놓았던 금속들을 움직여서 그 불의 파도에 담금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내가 굳이 일일이 금속 융해를 쓰지 않아도 잘 녹게 된다.’

그렇게 불의 파도, 쇳물 파도가 이리저리 뒤엉킨 채 정말로 마그마가 되어서 몬스터 군단을 덮쳤다.

촤르르르——

그리고 일부 쇳물들이 다시 융합되어 쇠사슬처럼 변하더니, 파도를 벗어나려고 하는 몬스터들의 목과 팔다리를 휘감았다.

크아아아——!

그렇게 아우성치는 놈들의 몸뚱이로 모글레이가 한 발씩 날아들어 꽂히면서, 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으니…… 마지막 몬스터 군단이 허무하게 전멸하는 순간이었다.

이현욱은 마왕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 끝났다.”

이 목소리를 마왕, 고든 프라이스가 듣고 있을 것이었다.

"넌 나한테 졌다.”

이현욱은 반파된 채 축 늘어져 있는 마왕성을 향해서, 천천히 날아갔다.

그러자 비공정들이 호위하듯이 양옆으로 따라붙었으나 그는 손을 내밀어서 접근을 막았다.

- 칙— 혼자 접근하는 건 위험합니다.

이는 우성문 실장의 목소리였다.

“……어차피, 마왕을 죽일 수 있는 건 용사 특전을 가진 저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왕성의 머리 부분이 쩍— 갈라지더니 핏줄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러자 이현욱의 등 뒤로 웅성거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저 남자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 저 사람……."

그의 이름은 고든 프라이스, 마왕의 본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시점 상에서는, 실종된 대부호이자 플레이어들의 정신적 지주쯤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그가 마왕이라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내 가까이 다가온 그가 이현욱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내가 졌다.”

이현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양손을 천천히 들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놈은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였다.

즉, 언제든지 ‘스틱스강의 축복’을 발동하여 무적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놈의 머리 위로 쭉 깔았다.

이내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다시 한번 이야기 좀 해보자고, 마지막으로 말이야. 네가 여기서 날 이긴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너는 결국 이 세계를 멸망시켜야만 할 거다. 그게 이 게임의 메인 스토리고 주목적이야.”

이에 이현욱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지금…… 실패한 실험체 주제에, 실험의 방향성을 논하는 건가? 그거 실험용 쥐가 생명공학을 논하는 것과 다름없잖아?”

“……나는, 네가 알고 있다시피 준 초월체, 그들과 동등한 수준에 오른 존재다. 그들의 선택을 받고 그들의 일원이 되기 직전이란 뜻이야.”

이현욱은 냉소를 머금은 채 그를 내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폐기될 운명이다.”

이내 수십 발의 모글레이가 놈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가 백색 빛을 발하더니 놈의 몸이 금빛으로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놈의 눈빛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 주의! 당신은 ‘마인트 컨트롤(감각 제한)’에 빠졌습니다!

* 일시적으로 모든 감각이 대폭 하락합니다! (-50%)

“—큭!”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이현욱은 후긴과 무닌과 연결이 끊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 등, 모든 감각이 확연하게 옅어졌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마인드 컨트롤 필드(대혼란)’가 열립니다!

* 일정 수준 이하의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잃거나 '마리오네트’ 상태가 됩니다.

이는 이현욱도 경험한 적 없는 스킬이었다.

애초에 고든 프라이스는 지금껏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거나 빌런의 지도자로서 움직였고, 모든 전투는 네크로맨서나 여타의 빌런들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즉, 고든 프라이스의 능력에 관해서는 놈이 텔레파시 능력자이며 마인드 컨트롤에 능하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게 절정에 이르러서 이 정도에 이른 건가?’

무려 광역 정신 지배 스킬……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그 순간—

쾅——!

이현욱은 등 뒤에서 날아드는 마법을 맞고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 칙— 아군들이, 조종당하고 있어요!

이 목소리는 에밀리아 뮐러였다.

그리고 한주화 역시 아군 플레이어들의 공세를 피해서 자신의 몸을 화염으로 에둘렀다.

그리고 아군 진영 곳곳에서 고함과 폭음이 울리고 있었으니, 에밀리아 뮐러나 한주화처럼, S등급을 제외한 아군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 듯했다.

이현욱 사방에서 날아드는 온갖 공격을 피해서 움직였다.

‘젠장,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인다.’

그건 아마도 ‘마인드 컨트롤(감각 제한)에 걸렸기 때문이었는데, 확연하게 무거워진 기분이었고 날아드는 공격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지면을 뚫고 웬 촉수 다발이 치솟아서 그의 다리를 휘어 감았다.

"큭!"

으저저저——

그는 모글레이를 움직여서 그걸 끊으려고 했으나 감각 제한 때문인지, 모글레이가 술에 취한 것처럼 허공에서 비틀거렸고, 땅에서 치솟은 두꺼운 촉수들이 치솟아서 날아드는 모글레이를 쳐내기 시작했다.

그에게 고든 프라이스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하— 내가 지금껏 수많은 싸움을 해본 결과,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밀렸을지언정 전부 이겨온 결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돼. 단 한 번의 판단만으로도 승패가 갈린다.”

"현욱, 너는 너무 오만했고 승기에 취해 있었지, 그게 네 패인이다.”

놈이 그렇게 말하며, 바닥의 촉수 한 자루가 내미는 웬 백색의 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고—오—오—오——

이현욱은 그것을 바라보았고, 인사이트 렌즈를 통해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미스틸테인 창(신화)

- 효과 : 이 공격은 신살(神殺)의 힘을 품고 있으므로 모든 방어를 무시합니다. 단 5번의 피를 취하면 소멸하게 됩니다. (현재 남은 횟수 : 1)

단 5번을 찌를 수 있으나, 단 한 방에 그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무기…… 전생, 저 무기에 강력한 영웅들이 사라졌었다.

“자, 스틸레인…… 정말로 끝을 볼 시간이다.”

놈은 한 손에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쥐고 미스틸테인 창을 든 채, 마치 처형인처럼 이현욱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나 이현욱은 촉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현욱은 몸을 비틀며, 입을 윰직였다.

"그래, 미스틸테인…… 그걸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전생, 미스틸테인을 얻은 건 고든 프라이스였으니, 놈은 그 외에도 롱기누스의 창 같은,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수집하여 영웅들을 손 쉽게 암살했었다.

말 그대로 신화 등급의 무기…… 그것들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빌런들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그걸 전부 너희가 가지고 있었으니 우리가 질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말이지……."

이현욱은 고갯짓으로 미스틸테인 창을 가리켰다.

"그 신화 등급의 아이템의 씨앗을 얻고 키워낸 건 대단한데, 정작 무기화할 때는, 상상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뭐?"

“다 하나 같이, 원시적인 창 형태잖아. 내 생각에 그건 아주 큰 낭비야.”

저 신화 등급의 아이템은 먼저 ‘씨앗’을 얻은 뒤, 복잡한 방법으로 그걸 키워낸 다음에 아이템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4차 웨이브 보상으로 미스틸테인의 씨앗을 얻은 뒤, 그것을 위그드라실에 기생시켜서 키워내기까지 인고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걸 대장장이들에게 맡겨서 아이템화 했다.

그러나 전생에서 경험했던 창의 형태는 아니었다. 그건 가장 간편하지만 그리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훨씬 더, 괜찮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그보다 훨씬 괜찮은 무기가 많지 않던가?

시이이이——

그때, 이현욱의 왼쪽 손목의 각인에서 회색 연기가 치솟더니 한 자루의 모글레이가 튀어나오며 그의 상반신을 구속하고 있던 촉수를 끊어냈다.

그 순간, 고든 프라이스가 바닥을 박찼다.

“—소용없다! 넌 끝이다!”

그 순간, 수백 개의 촉수가 바닥에서 치솟으며 이현욱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고든 프라이스도 촉수처럼 변하며 그 사이로 숨어들었고, 그가 쥐고 있던 미스틸테인이 이현욱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이 단 한 방에, 넌 게임 오버다!”

이어서, 이현욱의 오른쪽 손목에서 회색 연기가 치솟았으니— 그곳에서 나온 건 라고 적힌 아다만트 케이스였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철컥—

그리고 그게 열렸고—

"내가 미스틸테인, 그걸로 만든 건……."

그 모습은 바로…….

철컥—

“—샷건이다.”

단 5발밖에 발사할 수 없는—

그러나 한 발만으로도 모든 걸 죽일 수 있는—

콰—앙——!

무려 신을 죽일 수 있는 샷건이,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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