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14화 (214/221)

214화.  < 강철의 지배자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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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제가 맡죠.

그 순간,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저건……."

오후 3시, 아직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 무수히 많은 무언가가 하늘에 뜬 채 햇볕을 막아섰고, 그로 인해 지면에 수많은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웅— 웅—

그것들은 검, 창, 화살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날카로운 날붙이들, 그러니까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그리고 그 기묘한 현상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스틸레인이다. 그가 왔다.”

그가 왔고, 그의 권능이 이곳을 뒤덮기 시작했다.

“으하하— 이제 우리는 살았다!”

“크— 용사가 마왕을 잡으러 왔다!”

이에 인근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며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던 인페르노, 한주화 역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현욱, 그가 그녀에게 악몽을 씻어낼 힘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방금, 그가 준 힘조차 한계에 부딪히면서 다시금 악몽이 재현되려는 찰나....... 이번에는 그가 직접 등장한 것이었다.

'......저 사람이라면, 모두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등장과 함께 몇 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아주 짙은 여유가, 차갑게 담겨 있었으니…….

‘마치, 이 상황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태도야.’

한주화는 왠지 모르게도 그 목소리를 듣자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그건, 그녀로서는 아주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안정감이었다.

"후......."

그녀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이현욱이 아니라 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해야 할 건…… 장렬한 싸움이 아니라 현명한 싸움이야.”

그녀는 무기력함을 억누르고, 승리를 위한 전투를 준비했다.

또한, 지하철 출입구의 계단 아래로 피신해 있었던 안민태의 팀도 마나 드론을 띄워서 밖의 상황을 확인한 뒤, 급히 밖으로 달려 나왔다.

"아, 안 팀장님! 그분이…… 이번에도 왔습니다!”

이에 안민태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하, 예나 지금이나 등장 타이밍이 영……."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금속 무기가 하늘에 걸렸다.

그것들은 마치 돌격을 앞둔 기마대의 말들이 투레질하듯이, 아주 미세하게 들썩거리고 천천히 회전했다.

곧 기수의 손짓이 떨어지는 순간, 박차고 달려나가서 닿는 모든 것들을 박살 내고 꿰뚫어버릴 것이었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그런데, 그것들을 천천히 살펴보던 안민태는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 강철비의 전조가, 어딘가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포착했다.

“……뭐야! 저거, 왜 이렇게 큰 거야?”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검들을 잘 봐, 엄청나게 크잖아!”

즉, 하늘을 수놓고 공격을 준비 중인 것들이 기마 부대가 아니라…… 전차 부대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아, 알겠다. 하, 저것들 싹 다 모글레이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거검, 백여 자루의 거검이었다.

“……맙소사, 그게 말이 됩니까? 어? 진짜잖아!”

"미친, 역대 최악의 강철비가 쏟아질 거다.”

일명 스틸레인, 우리 말로 강철비…… 그 별명은 이현욱의 강력한 스킬 활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렇게 수백, 수천 개의 강철 무기를 하늘에 띄운 뒤, 비처럼 쏟아내어 방대한 영역에 징벌을 내리는 기술…… 그리고 그사이에 섞여 있던 단 4자루의 모글레이는 단연 압도적인 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질량 병기’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진바 그것은 총 4자루가 전부였다.

그게 무려 4자루나 된다는 점이 적들로서는 공포인 한편,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게 다행이기도 할 터였다.

그런데 저 장면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와 씨一 저게 쏟아지면 큰일인데……."

즉, 아군일지라도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고, 안민태는 즉시 팀원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전 병력, 충격에 대비한다!”

"예?”

"지금 당장, 마법 방어막 쳐서 후폭풍에 대비해!”

곧, 세상이 뒤집힐 것이었다.

그때, 기수의 손—이현욱의 손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시작됐다!”

그러자 수직으로 서 있던 모글레이들의 검 끝이 천천히 기울어지더니 유황불 누더기 골렘을 조준했고—

직후, 거검들이 광풍을 일으키며 쏘아지기 시작했다.

훙— 훙— 훙— 훙—

그것들의 궤적을 따라서 광풍이 일어나며, 지상에서 끌어 오르던 열기와 검은 연기를 밀어내어버렸다.

마치 폭격기 전대의 융단폭격처럼, 길고 두꺼운 금속 덩어리들이 중력에 이끌리며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융단폭격과 다른 점이라면, 마구잡이로 내리꽂혀서 넓은 면적을 초토화하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점에 정밀하게 싹 다 꽂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쾅——쾅——쾅——쾅——!

적중— 유황불 누더기 골렘, 그 물컹물컹한 살 위에 처박히는 것임에도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피와 고름이 퍽— 퍽—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그 육중한 녀석이 버티지 못하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것이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6개의 팔을 좌우로 펼쳐서 건물들을 움켜쥐었고, 외벽이 으스러져 내렸다.

그어어어——!

‘역시, 10%라고 해도 모글레이는 모글레이다.’

이현욱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는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새로 얻은 스킬 <로드 오브 스킬> 중에서 ‘복제’ 기능을 활용하여 50t짜리 영웅 등급의 모글레이를 거듭 해서 복제해냈다.

그 결과 5t짜리 ‘모글레이(양산형)’를 154개 얻었다.

물론, 그것들은 양산형이라는 수식어답게 ‘강골’ 같은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패시브 스킬은 삭제된 상태였고, 액티브 스킬도 고작 10% 효력에 그쳤다.

그런데.......

쿵— 쿵—

"뭐, 뭐야…… 놈이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와, 저걸 저렇게 맞고도 걸어오는 겁니까?”

50m 크기의 저 거구는 신체의 상당 부분이 손상되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기워져 있는 살덩이들이 액체처럼 꿀렁꿀렁 움직이더니…… 온몸에 깊숙이 박힌 모글레이들을 몸 밖으로 울컥울컥 밀어내는 게 아닌가?

이에 지켜보던 안민태의 팀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와 썅, 진짜 제대로 된 좀비잖아!”

"불도 안 통하고 저렇게 처맞아도 안 죽으면……."

그때, 안민태가 손을 뻗어서 그들을 침묵시켰다.

“야, 호들갑 떨지 마. 저게 다가 아니야.”

이내, 이현욱의 놈을 향해 겨누어졌던 이현욱의 왼손이, 천천히 주먹으로 쥐어졌으니, 그게 의미하는 바는—

“……쇼크웨이브—”

그 한 마디를 기폭제로 놈의 몸에 처박힌 총 89개의 모글레이가 일제히 쇼크웨이브를 터트렸다.

퍼—버—버—버—버——!

총 89개의 충격파가 단 한 지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터져버렸다.

그것의 살점들이 수백 미터 밖으로, 아니 어떤 것은 수 킬로미터 밖까지 날아가 우박처럼 떨어졌다.

푸—두—두—두.......

또한, 바닥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좌우의 건물들은 돌풍에 휩쓸리는 모래성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

"큭!"

그 순간, 안민태 팀은 다시금 지하철 출입구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간 뒤에 급히 마법 방어막을 가동했다.

지상, 보도블록이 뒤집어 까지며 계단 아래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고, 마법 방어막을 두들겨댔다.

텅—텅—텅—텅—

한 발자국만 늦었어도, 돌 벼락을 맞을뻔한 것이다.

"와 씨, 저걸 진짜로 한 방이 날려버린 겁니까?”

“……인페르노도 대단했는데, 역시 스틸레인입니다!”

“저 돼지 좀비만 죽이면, 이제 끝장난 거 아닙니까?”

이에 안민태도 쾌재를 부르면서 끝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이현욱은 아직 안심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조각들을 훑었다.

꾸르르르…….

그것들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더니, 어느새 서로 다시 뒤엉키며 큰 뭉텅이를 만들고 있었다.

즉, 곧 재조합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그는 후긴과 무닌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누더기 골렘의 살 더미를 빠르게 훑었다.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

그리고…….

'—찾았다.’

이어서 왼손의 검지를 까딱— 움직였고, 그에 따라서 그의 오른쪽 부근에 떠 있던 한 발의 모글레이가 곡선으로 그리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퍽—!

그리고는 웬 큼직한 살 더미에 내리꽂혔는데…… 그 순간, 사방에 흩어져 있던 살 조각들이 고통을 호소하듯이 바들바들 떠는 게 아닌 가? 이는 좋은 신호였다.

“좋아, 정답이다.”

그리고 자세히 살피니 그 살덩이의 모습이 사뭇 달랐는데, 웬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는 것이었다.

‘저게 바로 놈의 코어다.’

그것은 웬만한 공격으로 파괴되지 않도록, 아주 강력한 흑마법 주문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모글레이에는 ‘성검’ 효과가 부여되어 있었으니…….

파스스스——

단 일격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꿈틀거리던 살 더미들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손을 뻗어서 모글레이들을 거두어들였다.

‘이게 바로, 누더기 골렘을 공략하는 법이다.’

으레 일반적인 언데드 몬스터는 신성력이 닿는 순간, 해당 부위에 담긴 죽음의 힘이 소멸하며 특유의 재생력까지 상실한다.

그렇기에, 언데드를 상대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신성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상위 등급의 강령 마법으로 탄생하는 누더기 골렘은, 저 두꺼운 살덩이는 그저 외피일 뿐이며, 죽음의 힘을 코어 응축하여 보호한다. 그렇기에 신성력으로 쉽게 소멸시킬 수 없었고, 저놈에게 수많은 성기사가 희생당했다.

'즉, 이렇게 산산조각 낸 뒤, 코어를 찾아서, 다시 조합하기 전에 제대로된 한 방을 먹어야만 한다.’

이 방법을 모른다면, 누더기 골렘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으며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했겠지만…….

'나는, 전생에 네크로맨서를 오랜 시간 연구했다.’

그래서 놈의 스킬을 웬만해서는 샅샅이 알고 있었다.

물론, 결국 절대적인 힘이 부족해서 패배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여러 차례 승리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놈보다 모든 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

이현욱은 후긴과 무닌의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이내 한 건물 옥상에 앉아 있는 ‘좀비 히포그리포’를, 그리고 그 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한 인영을 발견했으니…… 그 존재는 다름 아닌 네크로맨서였다.

그놈 특유의 해골 가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터였다.

'넌, 꼭두각시일 뿐이지…….'

이현욱이 알고 있던 전생의 네크로맨서, 그 냉혹한 죽음의 군단장의 모습은 전부 가짜였으며 결국 고든 프라이스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놈에게 느꼈던 경외심은 사라지고 한 마리의 어수룩한 사냥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널 사냥한다.’

이현욱은 놈을 쫓을 준비를 했다.

***

“……시, 실패했어요.”

한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존재, 네크로맨서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밀린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마왕이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어쩔 수 없다. 지금 ‘명계의 문’을 연다.」

그 말에 네크로맨서는 다소 놀랐다.

"어, 그건…… 더 숨기지 않아도 되나요? 그걸 갑자기 써서, 놈을 묶은 뒤에 미스틸테인으로 일격에 죽이려고 했잖아요.”

「더 숨길 여유가 없는 게 맞다.」

“아……."

한 플레이어가 절정에 이르면 얻게 되는 ‘최종 잠재 돌파’ 스킬, 당연하게도 네크로맨서도 그러한 걸 가지고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딱 한 번 사용했는데, 또 사용할 순간이 왔네요.”

「그래, 그리고 그걸 사용했을 때가 바로, 최후의 걸림돌인 강철대제를 죽였던 순간이었지…… 지금의 강철대제…… 아니, 스틸레인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통할 거다.」

이에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놈은 그 스킬을 막을 수 없어요.”

「물론, 성녀가 근처에 있지만, 그 여자가 최종 잠재 스킬을 얻지 않는 한, 명계의 문을 닫지는 못할 거다. 이 차원에 막 도착했을 때, 성녀가 백귀야행을 막아냈지만…… 명계의 문은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네, 성녀가 열 명이 와도 제 유령들을 다 잡지는 못할 거예요.”

이내 네크로맨서는 숨을 고르며 흑색의 낫—스퀴테를 천천히 들어 올렸고, 그의 눈이 녹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으니…… 어떤 강력한 스킬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명심해라, 곧 라퓨타와 함께 신목이 도착할 거다.」

마왕의 눈은 저 멀리,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라퓨타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하늘은 ‘하늘 거세’로 인해서 붉은 사슬로 봉인되어 있었으니, 라퓨타 같은 거대한 비행체는 그것을 전기 공격으로 끊으며 전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아직 전쟁 도착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생명을 취하는 게 목표다. 놈을 죽이려고 무리하면 안 된다.」

“……알겠어요.”

그 순간, 네크로맨서가 쥐고 있는 스퀴테 위에 웬 녹색의 열쇠 모양이 떠올랐다.

그는 그것을 눕혀서 허공을 찔렀고,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철컥——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더니.......

쿵——!

그 지점에서 거대한 녹색의 직사각형 포탈이 열렸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명계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고—오—오—오—오——

그 안에서부터 곡성(哭聲)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여자, 남자, 아이, 노인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군중의 울음소리가 뒤죽박죽 섞인 채 서울을 잠식해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문 안에서 엄청난 숫자의 보랏빛 유령들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 거리에서 얼핏 본다면, 보라색의 안개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핀다면, 그것들이 이리저리 뒤엉킨 인영(人影)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마치 지옥의 한 면이, 지상으로 범람한 듯한 광경…… 그것들이 네크로맨서의 통제를 따라서, 파도처럼 도심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넌, 이걸 못 막아!”

그가 저 멀리에 있는 스틸레인을 노려보며 외쳤다.

그것들은 전부 ‘고스트 계열’ 몬스터로서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데미지를 입힐 수 없고, 신성력 중에서도 오로지 ‘빛’ 계열의 마법으로만 제거 가능한 존재였다.

즉, 스틸레인에게는 완벽한 상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는 물리적인 힘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틸레인이 취한 대응은 그저 왼손을 뻗어서 모글레이를 쏘기 시작했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 그것이었다.

“하하— 그걸로 안 된다!”

이내 모글레이와 유령들이 충돌했으나—

훙——

역시나, 거검들은 허무하게 허공을 긋고 지나갔다.

「저것들로 스틸레인의 발을 묶고, 그 사이에 언데드 군단을 돌려서 쉘터를 파괴하여 생명력을 최대한 취한다.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그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덜그럭— 덜그럭—

그는 마왕의 지시대로, 고스트 군단을 전진시키는 동시에 언데드 군단을 돌려서 다른 방향의 쉘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 몇 개의 쉘터를 뜯을 수 있을 듯했다.

「좋아, 더 몰아친다.」

그러자 스틸레인은 급하게 계획을 수정하여, 모글레이를 꽤 먼 거리에 은신 중이던 네크로맨서 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네크로맨서를 상대한 모든 적들이 그러하듯, 그의 군단을 상대할 재간이 없자 본체를 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즉, 네크로맨서에게는 아주 익숙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티 나게 공격하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아!”

그러나 네크로맨서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언데드 몇백 마리가 산화하더니, 그것들이 네크로맨서에게 흡수되었고, 이내 그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했다.

고—오—오—오——

이는 황혼화(黃昏化)라는, 이동 기술로, 네크로맨서의 몸이 일시적으로 무형이 된다.

즉,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하— 놈이 당황했나 봐요, 뻔한 짓을 하네요.”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예전에도 황혼화 상태로 후퇴를 시도하다가 놈에게 잡혔던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래, 이곳에 처음 도착하여 스틸레인과 맞붙었을 때도 네크로맨서는 ‘황혼화’를 사용하여 탈출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성검 효과가 부여된 묠니르의 ‘뇌신의 분노’가 터지고, 그것들이 그물 형태로 변하더니 허공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음…… 하지만 지금은 하늘이 막혀 있어서 그 번개를 쓰는 스킬을 쓸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 전기를 쓰는 녀석이 없으니까 그물처럼 만들어서 저를 쫓지도 못할 거고요. 또, 근처에서 강력한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확실히, 황혼화가 막힐만한 게 전혀 없었다.

훙——

그는 황혼화 상태로 빌딩 사이를 움직이면서, 고스트와 언데드들을 움직였다.

온 서울이, 죽음의 힘으로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

이현욱은 옛 생각을 떠올렸다.

전생, 네크로맨서의 죽음의 군단이 부산을 정복하고, 서울로 북상하고 있을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서울에서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며칠 전, 부산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지원을 유보하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고 그간 모아둔 모든 아이템과 살아남은 모든 플레이어가 서울을 요새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강 이남에서 죽음의 군단을 마주했고……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최후의 강철비를 내렸다. 그 안에는 온갖 상위 등급의 아이템이 섞여 있었으니,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때, 저 명계의 문이 열렸다.’

온 세상을 뒤덮은 고스트 계열의 몬스터들…….

이현욱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그었다.

그리고 고스트들이 아군들을 뒤덮었으니…….

'……대패했다.'

그것이, 이현욱의 죽음 직전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 장면이 지금 재현되고 있었다.

온 세상을 뒤덮은 보랏빛의 고스트들…….

그것들이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감지하고 벌떼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쏴! 뭐든 쏴!”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웬만해서는 그것들을 타격할 수 없었다.

"—도, 도망쳐!”

"젠장, 신성력이 필요합니다!”

저것들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홀리 라이트’였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네크로맨서의 거대한 죽음의 힘 앞에서 신성력은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큭! 저, 정신이…… 나갈 것 같……."

그리고 고스트가 근처에 오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상태 이상에 빠지면서 전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라퓨타가 도착하기 전에 패퇴하고 말 기세였고, 그렇다면 쉘터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충분한 생명력을 취한 마왕은, 다시 포탈을 열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 나는 네가 그걸 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욱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네크로맨서가 명계의 문을 쓴 뒤, 황혼화로 자신의 공격을 피하리라는 것은 완벽히 예상했다.

지금 이 순간, 황혼화를 막을 방법이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놈들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현욱의 의도적으로 숨겼다.

훙— 훙— 훙— 훙—

그는 모든 금속 무기를 쏘아서 황혼화 상태가 된 네크로맨서를 쫓았다. 물론, 그의 무기들은 무형의 상태가 된 놈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단 한 자루, 성검을 닿게 만들면 황혼화에 타격을 입힐 수 있었으나, 잠시 일그러질 뿐, 황혼화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서 도망가 버렸다.

그런데도 이현욱은 집요하게 금속 무기를 분산시켜서 놈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리고 그 금속 무기 속에는, 무기가 아닌 금속 아이템도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아이템 정보]

- 이름 : 고독의 방(특수)

- 효과 : 알 수 없음

‘포켓 스페이스다.’

이현욱은 모글레이 사이에 그걸 섞어서, 네크로맨서의 황혼화에 접근시켰다.

웅—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놈에게 충분히 가까워진 순간— 이현욱은 그것에 마나를 부여했다.

그러자—

쩌—어—어—어——

그 안에서, 백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수십 개의 백색 사슬이 뿜어져 나왔으니…….

촤르르르——

그것들이 뱀처럼 날아가서, 황혼화 상태의 네크로맨서를 옭아매어 버렸다.

그리고 그건 물리적인 사슬이 아니라, 신성한 빛을 조형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끅—!"

그것에 뒤엉킨 황혼화가 불안하게 일렁이더니, 이내 그 안에서 백색 사슬에 뒤엉킨 네크로맨서가 뽑혀 나왔다.

그리고, 백색 빛 안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썅— 내가 포켓몬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렇게 거친 푸념을 내뱉으며 등장하는 찬란한 백색 빛을 두른 여인…… 그녀는 성녀, 에밀리아 뮐러였다.

그리고 그 뒤로, 피터 클라크를 비롯한 와이트 트리 가드가 함께 나오며 근처 빌딩의 옥상에 착지— 홀리 라이트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고스트들을 밀어냈다.

“전원, 주변을 경계하고 성녀의 안전을 확보한다!”

이어서 에밀리아 뮐러가 자신의 사슬에 묶인 존재, 네크로맨서를 옥상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아가서 놈의 목덜미를 내리 밟았다.

“이—씹새끼…… 드디어 잡았다.”

뻑——!

그녀의 발이 네크로맨서의 얼굴을 강타했고, 해골 가면이 으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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