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 결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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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왕성 철거를 시작합시다.”
이현욱이 말에, 방열복 아이템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앞서서 아가이디카가 설명해주기를, 저 구멍 안, 4km 아래에 있는 ‘땅의 심장’은 엄청난 고온 지대라고 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침투에 앞서서 열기를 보호해줄 마나 실드를 가동하거나, 마법사들에게 마법 방어막을 지원받았으며, 방열 기능을 가진 아이템들을 껴입기도 했다.
그리고 대장장이들이 ‘보행형 마법 드론’을 투입할 준비를 했다.
저 검은 구멍 안으로 직접 몸을 던지기에 앞서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 뒤, 착지 지점에 마법 방어막을 설치해주는 용도였다.
적진, 그것도 마왕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렇기에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김세희가 모두를 주목시킨 뒤, 목소리를 높였다.
“자, 지금은 저 구멍에서 바람이 역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지만, 제가 그걸 통제해서 역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을 만들 겁니다! 마치 엘리베이터처럼요!”
물론, 엘리베이터만큼 안정적이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탱커들이 먼저 투입할 테니까, 앞으로 나오세요.”
"씁— 황천길은 원래 우리가 먼저긴 하지……."
그런데 그때였다.
"—윽!"
"—큭!”
별안간, 거의 모든 플레이어가 동시에 묘한 두통을 호소했다.
"......."
그 기묘한 경험에,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바, 방금 그 느낌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어? 뭐야, 너도 느꼈어?”
“뭐지, 갑자기 뭔가 싸하다고 해야 하나?”
등을 타고 오르는 소름과 머리가 쭈뼛 서는 그 느낌……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생물의 생존본능일 것이었다.
즉, 거대한 위협이 다가옴을 느끼는 직감이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도 그걸 느꼈다.
‘이건…… 압도적인 격이다.’
마치 드래곤 피어처럼, 격이 높은 무언가가 이 근처에 있다. 그리고 직접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존재감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 정도의 격을 가진 건 당연하게도 마왕뿐인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놈의 능력이 한 번에 대폭 상승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왜 갑자기 이렇게 상승했냐는 거다.’
그놈은 현재 마왕성 건립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그래서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현욱은 추측했다.
그렇기에 이현욱의 연이은 공습에도 제 휘하 군단이 속수무책으로 당해도 직접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런데…….
- (!) 당신의 숙적 ‘마왕’의 힘의 정수인 <마왕성>이 완공되었습니다!
* 곧 ‘악의 난립’이 시작되며, 마왕성은 인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점점 강화됩니다.
그의 눈앞에, 이러한 경고성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젠장, 왜 벌써……."
이는 이현욱이 예상했던 시간과 완전히 딴 판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월드 퀘스트 : 마왕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서 ‘용사 특전’이 ‘2단계’로 강화됩니다.
* 마왕성은 생명을 취할 때마다 점점 진화합니다.
정말 다행히도, 이번에는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으레, 판타지 속에서는 마왕이라는 위기에 대응하여 용사가 나타난다. 그러한 클리셰를 바탕으로, 마왕이 강해질 때마다 용사 특전도 함께 강화되는 것일까?
이현욱은 요동치는 지면을 경계하면서도 그 상세 내용을 빠르게 살폈다.
1)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400%)
2)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200%)
3) 마왕의 특수 배리어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4) 아군 플레이어의 능력을 ‘전이’ 받을 수 있습니다.
‘딱 2배씩 올랐다.’
또 한 번, 모든 능력이 대폭 향상됐다.
그리고 새로운 기능이 하나 더 생기기도 했다.
'음, 아군 플레이어의 능력을 전이 받는다니.......'
그러나 그걸 실험해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피해야 한다!”
그렇게 외친 건 아가이디카였다. 그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제 부하들을 향해 괴성을 소리쳤고, 모든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서 움직여! 곧 이곳의 지면이 무너질 것이다!”
「저 말이 맞아! 지금 발아래가 통째로 요동치기 시작했어! 곧 푹 꺼질 거야!」
이현욱은 마루의 추가 설명을 통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직감했다.
"설마…… 마왕성이, 위로 솟아나는 건가?”
저 아래에서 건축됐으니, 계속 그곳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상으로 솟아나려는 듯했다.
「—너무 빨라, 늦었어!」
이내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현욱이 뚫어놓은 시추구를 축으로 거대한 크레바스가 열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
그 틈에서부터 가스 폭발과 같은 열기둥이 터져 나왔다.
펑——! 펑——!
“큭!”
그것들이 대포처럼 하늘로 치솟았고, 수백 미터 상공에 떠 있던 비공정들까지 그 열기둥에 휩쓸리면서 균형을 잃고 회전하다니, 결국 이리저리 박히기 시작했다.
쿵—— 쿵——
“—머리 위도 조심해!”
“악! 젠장, 텔레포트로 탈출해야 해!”
그들은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갈라지는 지면과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공정 조각들을 피해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콰—과—과—광——!
그래도 하나 같이 실력이 있는 고 레벨 플레이어들인지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각 파티 별로 미리 준비해둔 긴급 탈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최대한 멀어진 이들은 고개를 돌려서 크레바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 넓고 긴 틈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연무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것들은 하늘까지 치솟아서 마치 거대한 암막 커튼이 세상의 절반을 가려버린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고—오—오—오——
그리고 그 검은 연기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천천히 비상했고, 그것의 그림자가 검은 연기 위로 얼핏 내비쳤는데…….
"헉! 저게 뭐야? 어, 엄청 크잖아?”
“……뭔지는 몰라도 불길합니다.”
그저 그림자뿐이었지만, 길고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잔뜩 매달고 있는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마왕성’이 등장했습니다!
* 마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존재의 모든 능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100%)
* 그 외에 모든 존재의 능력이 하락 합니다. (-30%) 단, 용사는 제외됩니다.
이내, 그것이 검은 장막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세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마왕성이라는 거지, 지금?”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박준모도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런데…… 어딜 봐서 성이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건축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양새였다.
꾸륵— 꾸륵—
그것은…… 생명체였다.
그래, 분명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그중에서도, 머리통에 해당하는 부분 같았다.
꾸륵— 꾸륵—
큰 머리통, 분명 그렇게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지름이 족히 2km에 이르는 검붉고 반들반들한 살 더미…… 그 중심에 거대한 눈알이 하나가 박혀 있었다.
꾸륵— 꾸륵—
그 거대한 눈알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동공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즉, 일대의 모든 것을 훑고 있는 것이었다.
“오, 이런 미친……."
그 시선을 느낀 플레이어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또, 그 큰 눈 주변으로 작은 눈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들이 제각각 눈을 감았다 둘 때마다 붉은 안광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해서 마치 불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그 아래에는 입이…… 이가 없는 큰 입이 뚫려 있었고, 썩은 고등어처럼 푸르딩딩한 입술을 반쯤 벌어지며 끈적하고 두꺼운 혀가 꿈틀거리며 삐져나왔다.
그것이 공기를 흡입— 즉 호흡할 때마다 가래가 낀 듯한 거친 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하단부에는 수십 개의 촉수가 달린 채 꿈틀거렸다.
언뜻 보면 연체동물 같지만, 이목구비라고 할 수 있는 게 또렷하게 박혀 있으므로…… 긴 수염을 달고 있는 외눈 괴물의 머리통 같기도 했다.
‘저게, 마왕성…… 어이가 없군.’
이현욱으로서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상식 밖이었다.
저게 어디를 봐서 성(城)이란 말인가?
그리고 저토록 기괴한 건, 온갖 끔찍한 경험을 겪어오며 상장해온 플레이어들로서도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
그들은 묘한 위압감에 질린 것인지, 멍한 표정으로 그 끔찍한 존재를 살필 뿐, 마왕성 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모두, 정신 차리고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외친 이는 중력 마법사 이성윤이었다.
"저게 어떤 공격을 해올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으니까, 최대한의 방비를 해야만 합니다!”
그의 말처럼, 마왕성이 어떤 형태일지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마왕성이 어떤 공격을 해올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에 이현욱도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선 수비로 갑니다!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어 수단을 준비하세요! 그리고…… 탈출 수단까지도요.”
이현욱이 생각한 최고의 계획은 마왕성 건립을 막는 것이었다.
즉, 마왕성이 완성되어서 이렇게 눈앞에 나타난 이상, 전투 강행보다는 계획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왕성이 솟아난 구멍 안에서 무언가 작은 것들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는데.......
크아아아——!
그것들은, 전부 몬스터였다.
티탄, 블랙 오크, 언데드 등의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 힘이 이끌려서 허공을 부유하며 마왕성을 향해서 날아올랐고…… 곧 쩍 벌어진 거대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저게, 뭐 하는 거죠?"
"그러게, 설마 자기편을 먹는 거야?”
언뜻 보면 집어삼키는 듯했지만, 이현욱이 후긴과 무닌으로 자세히 살핀 결과, 아마도 몬스터들…… 그러니까 군단을, 마왕성 안으로 싣고 있는 것 같았다.
이현욱은 그 장면에 의구심을 품었다.
‘……왜 싣는 거지?’
만약, 전투를 위해서라면, 마왕성 안이 아니라 밖으로 꺼내서 도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전투를 할 생각이 없다는 거다.’
그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마왕성이 점점 더 고도를 높였고, 마왕성의 가장 큰 눈이 위쪽을 바라보더니, 웬 광선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우—우—우—우——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어? 포탈을 열었잖아?”
초대형 포탈이 생성된 것이었다. 와이트 홀과 비슷한 크기지만, 그 색깔이 붉은색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현욱은 더는 방어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이 팀장님, 지금 당장 프리드웬과 가우스함 이쪽으로 가져오세요!”
- 예?
"지금 당장, 저걸 격추해야 합니다!”
지금, 마왕성은 명백하게 ‘공간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이현욱과의 전투를 미루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현욱은 앞선 시스템 메시지 중, 마왕성 완공과 관련된 것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그 내용의 하단부에 쓰여 있는 ‘* 마왕성은 생명을 취할 때마다 점점 진화합니다.’라는 걸 발견했다.
‘……대도시로 가서, 민간인들의 생명을 노리려는 거다.’
즉, 학살을 통해서 생명력을 최대한 취한 뒤 더욱 강해져서 이현욱과 맞서려는, 합리적이고 사악한 계획이었다.
곧 후방에서 프리드웬과 가우스함과 날아왔다.
하지만 그때—
징——!
한 줄기의 광선이 날아들어서, 프리드웬을 강타했다.
쾅——!
그래도 프리드웬은, 가장 강력한 마법 방어막 생성기가 부착되어 있었기에 일격에 관통되지 않았으나, 볼링공이 맞은 볼링핀처럼 멀찍이 튕겨 나가며 땅에 처박혔다.
마왕성의 촉수 한 가닥이, 광선 공격을 쏜 것이었다.
‘젠장.’
이어서, 웬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스틸레인, 눈치가 빠르지만 늦었다.」
마왕의 음성이었다.
"......."
「너는, 그리고 너희 모두…… 내가 거듭해서 보냈던 제안을 거절하고 잘못 선택을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너희가 사랑하고 너희가 아는 모든 존재가 나의 양분이 될 것이고, 만약 다시 나에게 맞서려고 한다면…… 언데드가 된 가족, 연인, 친구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저주 섞인 겁박을 끝으로, 마왕성은 빠르게 고도를 높였고.......
훙—
결국, 검은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막지 못했다.
"어, 뭐, 뭐야……."
“……어디로 간 거죠?”
"도망간 거예요?”
플레이어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상황인지, 짐작도 안 갈 것이었다.
이현욱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이 팀장님, 지금 당장, 서울 쪽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그의 추측은........
- 칙— 마, 마왕성이,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맞아 떨어졌다.
마왕이, 첫 번째 희생양으로 서울을 선택했다. 그건 다분히 이현욱의 기반부터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었다.
- 지금, 서울을 방어 중이던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영혼 수확을 주의하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영혼 수확. 마왕성이 생명력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그것도 서울 인구 전체를…….
이에 이현욱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지금 당장 ‘월드 브릿지’를 써서 서울로 가는 와이트 홀을 열어서 놈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 그, 그런데…… 서울 하늘이…… 아까 전의 이곳처럼, 어떤 광역 마법으로 봉인된 상태라고 하는데, 젠장! 이러면 포탈을 열지 못하지 않습니까?
스퀴테.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지나지 않았어야 마땅했다.
'……역시, 하나가 더 있었군.’
이곳에서 쓰인 스퀴테는, 네크로맨서가 들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네임드 티탄인 ‘크로노스’가 마왕에게 복종한바…… 놈에게는 스퀴테가 한 자루 더 있었다.
비보는 계속 이어졌다.
- 그리고 그렇게 봉인된 지역의 면역이 무려 30km 정도라서, 와이트 홀을 이용해서 한반도로 돌아간다면, 수원쯤을 도착지로 선택해야 합니다.
수원에 도착해서, 박준모의 전류를 이용해서 구멍을 뚫고, 30km를 횡단해서 서울에 도착한다면…….
- ……늦고 말 겁니다.
이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은 잠깐 숨을 고르다가,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이 팀장님……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지금 당장 수원으로 귀환 준비하고 서울 쪽에 <파이어 돔>이 필요하다고 연락해주세요.”
- 예, 이미 그쪽에서 움직였습니다. 곧 파이어 돔 작전이 시작될 겁니다.
이현욱은 이러한 상황도 어느 정도 예측했다.
‘마왕은 광역 공간 이동 스킬이 있다.’
첫 등장 했을 때도 그걸 이용해서 도주했었고, 또 그걸 이용해서 세계 각지를 누비며 몬스터들을 복속해왔다.
그렇기에 이현욱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놈이 한반도를 기습할 경우를 예상하고 어느 정도 대비해두었다.
‘적진을 흔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후방을 교란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놈이 노릴 만한 곳은 총 두 곳.
핵심 시설이 위치한 태백 병기창.
혹은 이현욱의 기반이 되는 한반도의 심장인 서울.
그중 태백 병기창은, 온갖 마법공학 포탑들로 도배해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서울이 문제였다.
그렇게 넓은 지역을 어떻게 방비하는 게 좋을까?
물론, 많은 AMT 병력과 플레이어들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불안했다.
그래서 준비한 건…….
- 현재 ‘파이어 돔’ 작전 개시됐습니다. 서울 쪽 영상, 보내드립니다.
곧 마법 드론 한 대가 이현욱 쪽으로 날아왔다.
웅——
그 마법 드론에는 크리스털 영사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것이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고, 그 영상에는…….
“……서울이다.”
아주 익숙한 도심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의 하늘을 잠식한 마왕성의 모습까지도.
그리고 마왕성의 입에서부터, 마치 구토처럼,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쿠—구—구—구—
언데드 군단이었다.
그것들이 공수부대처럼 낙하해서, 도심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바이러스처럼, 도로와 골목을 따라서 움직이며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젠장, 이대로면 서울이……”
서울이, 죽음에 잠식되고 말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콰—아—아—아——!
굉음과 함께, 홀로그램 화면이 붉은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등장했다.
“……어? 저건 또 뭐죠?”
"요, 용이잖아?”
서양의 드래곤이 아닌 동양의 용. 그것도 붉은 용.
그렇게 보이는 존재들이, 무려 7마리가 나타나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것들은 몸을 꽂꽂이 세운 채, 마왕성을 바라보며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몸을 눕히고는 도로변을 훑고 지나갔다.
그 위를 행군하고 있던 언데드들이, 깡그리 쓸려나갔다.
콰과과과——!
"맙소사……."
하지만 자세히 살피니, 그것들은 진짜 용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용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불기둥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언데드들을 집어삼키고 있으니, 언뜻 보면 용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저건, 도대체 누가 벌이는 기행입니까?”
이현욱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서 은밀하게 준비한 것은…….
"……인페르노.”
스틸레인 등장 이전에 최고의 화력으로 평가받던 플레이어.
부산의 구원자, 인페르노.
그렇게 불리는 이가 중요한 순간에 오랜 칩거를 깨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