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03화 (203/221)

203화.  < 마왕성 공략전 - 2 >

전생, 이현욱이 이제 막 능력 성장을 깨닫고 번듯한 플레이어로 성장 중일 무렵 <킬 더 몬스터> 채널에서 ‘역대 최악의 몬스터 TOP10’을 선정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최악의 몬스터들을 언젠가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풋풋한 꿈을 가졌고 실제로 몇몇은 내가 공략했다. 하지만…… 1위에 등극한 존재는 마지막까지 마주하지 못했다.’

그런데 놈이, 지금,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놈을 바라보았다.

쿵— 쿵—

긴 붉은 머리칼이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무려 5m가 넘는 거인 사내가 다른 3명의 거인과 함께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 붉은 화산의 수호자 아가이디카 (LV:214)

* 마왕의 식민, 잠재 주문 ‘폭발’ 적용

일명 ‘랭커 살해자’라고 불리는 최악의 몬스터…….

그놈을 잡고 이곳 캘리포니아를 수복하기 위하여 투입되었던 세계 최고 수준의 공략 팀들이 하나 같이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기에 붙은 별명이었다.

‘……그리고 끝내 공략되지도 못했다.’

미국 정부 주도하에 무려 4차례나 이 땅과 놈을 공략하려고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고로 이현욱조차도 놈의 약점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 칙— 저격수 팀이 대기 중입니다.

이현욱의 마나 메신저에서 이교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214레벨짜리를 저격으로 저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저 형식적인 방비뿐인 셈이었다.

쿵— 쿵—

어느새, 그것들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쿵— 쿵—

그것들은 분명히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체구는 단순히 덩치가 ‘크다’ 정도로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약 5~6m 정도고, 뼈대는 상상 이상으로 굵어서 압도적인 무게감…… 즉, 위압감이 풀풀 풍겼다.

"썅— 저걸 폴리모프라고 한 건가?”

이현욱의 등 뒤에 서 있던, 캐나다의 대표 플레이어 에일리 홈이 중얼거렸다.

그녀 또한 에드워드 우즈처럼 4년 전의 캘리포니아 수복 전투에 참여했으니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에게 악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듯했다.

"아니, 기왕 할 거면 좀, 눈높이를 맞춰주던가, 하여간, 파충류 새끼들 센스가 없어서, 원......."

한편, 이현욱과 함께 놈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나온 플레이어들은 하나 같이 불안함을 억누르려고 노력 중이었다.

"저…… 스틸레인, 혹시나 하는 말인데, 저것들은 그동안 상대해온 다른 웨이브 탄생 종족…… 그러니까 블랙 오크나 다크 엘프와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첫 번째 웨이브에서 탄생한 만큼, 더 많은 시간을 누렸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이는 세계 최고의 분석가인 브라이언 틸이었다.

"그리고 제 눈에는, 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측정됩니다. 약…… 이백 초반대 같습니다. 4년보다 훨씬 강해진 듯하군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그보다 정확한 정보가 보였다.

‘……정확히는 214레벨, 웬만한 드래곤 수준의 존재지만, 이곳에서는 훨씬 더 까다로울 수도 있다.’

이곳은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의 영토인 ‘붉은 화산’이었다.

그리고 ‘구원자’ 혹은 ‘수호자’라는 수식어가 붙은 존재는 특정 지역에 있을 때 능력이 대폭 향상된다. 이현욱이 ‘서울의 구원자’ 업적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2배의 능력 상승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쿠—구—구—구——

“……이거 느껴져요?”

이들 모두가 묘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곳으로 다가오는 4마리의 적, 정확히는 붉은 화산의 수호자 아가이디카의 발걸음을 따라서 진폭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온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그에 관하여 이현욱의 허리춤 작은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마루가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뭐, 뭐야…… 갑자기 땅 아래에서 마그마가 흐르잖아? 이거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해!」

"그래, 나도 감지했다.”

이현욱 역시 후긴과 무닌으로 대략적인 흐름을 보고 있었다.

‘이 땅 전체가, 놈에게 유리하게 맞춰진다. 즉 놈의 권역인 셈이다.’

저놈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몬스터였다. 이 땅을 되찾기 위해서는 넘어야만 하는 자연재해 같은 존재……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바닥을 뚫고 마그마가 치솟을 것이었다.

"자, 여기에서 멈추죠.”

이현욱의 말에 모두가 멈춰섰다. 그들은 불안함과 적의가 모두 담긴 눈으로 다가오고 있는 4마리의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때, 에드워드 우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허락 없이 드래곤 하트 쉴드를 개방할 테니 내 주변으로 오시죠.”

그는 가장 강력한 마나 쉴드라고 알려진 ‘드래곤 하트 쉴드’를 지니고 있었다.

"후……."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지 다하카를 공략할 때보다 훨씬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는 그 누구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거늘, 여러모로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건가?’

조금 전 그가 말하기를, 4년 전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에게 포로로 잡힌 적이 있다고 했었다.

제아무리 강인한 플레이어일지라도, 트라우마를 조절하기는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 역시 네크로맨서가 차원을 넘어서 등장했을 당시,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적이 있었으니 그 기분을 십분 이해했다.

쿵— 쿵—

이내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이 약 10m 앞까지 접근하여 이현욱과 플레이어들을 내려다보았다.

"......."

두 집단 사이에서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현욱이 앞으로 나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너희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그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따로 견지를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현욱은 지금, 무작정 전투를 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마왕에게 붙잡혀 있는, 그래서 머리에 ‘폭발’ 잠재 마법이 심겨 있는 노예 병사들을 설득하여 아군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클클— 싸우다니, 애초에 네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안 되지 않았나? 그렇게 몰려와서 싹 다 죽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야."

그렇게 말한 건, 가장 오른쪽에 서 있던 노인 모습의 드레이크였다.

- 붉은 화산의 동부 지배자 차할리스 (LV:193)

* 마왕의 권속

그놈이 이번 협상의 주도자인지, 앞으로 나서면서 입을 열었는데…… 협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발을 하고 나서는 게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네놈들 몇몇은 나와 일면식이 있는 놈이군그래?”

그놈은 기억력이 퍽 좋은지, 4년 전에 벌어졌던 전투를, 심지어 그때 참여했던 플레이어들의 얼굴까지 기억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킬킬 웃으며 길고 쭈글쭈글한 손을 들어 올려서 맨 뒤에 서 있던 에드워드 우즈를 가리켰다.

"오오— 네 녀석, 그 녀석이로구나? 저기 저 서쪽 큰 바위 아래에 있는 내 굴로 잡혀 와서 눈물 콧물을 다 뺐던 애송이 녀석 말이야.”

"......."

“클클— 내가 기억 못 할 줄 알았나? 네놈들의 머리통보다 우리의 머리통이 몇 배나 큰데 말이야.”

에드워드 우즈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천천히 창백해져 갔다.

그는 4년 전, 놈들에게 인질로 잡혔었다고 말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저 늙은 드레이크, 차할리스와 연관이 있는 치욕적인 사건인 듯했다.

그리고 차할리스는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그때 네놈을 구하러 왔다가 오히려 함정에 걸렸던 네놈의 누이와 형은, 내가 잘 요리해서 먹었다. 클클— 인간의 살코기는 향수나 샴푸 따위의 온갖 인위적인 향으로 뒤덮여 있지만, 가끔 몸보신에 좋아서 말이야.”

으득—

그 끔찍한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에드워드 우즈는 관자놀이에 핏줄이 일어나는 걸 보아하니,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반영한 도발인 듯했다.

이현욱은 에드워드 우즈에게 진정하라고 손을 내민 뒤, 앞으로 나갔다.

저벅— 저벅—

"오…… 네가 그 유명한 인간이로구나?”

그러나 이현욱은 차할리스가 아닌, 조금 더 뒤쪽에 서 있는 ‘붉은 화산의 수호자 ’아가이디카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은 젊은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의 눈썹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그리고 경계심이 농익은 모양인지, 지면에서의 묘한 진동— 마그마의 요동침이 더 짙어졌다.

쿠—구—구—구——

이현욱은 놈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까지 놈도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년간 벌어졌던 인류와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 간의 갈등 진행 과정은 꿰뚫고 있었고, 주요 보스 몬스터들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가령, 지금 앞장서서 협상인지 도발인지를 주도하고 있는 차할리스는 종족 내 이인자로서 ‘대족장’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탐욕적인 캐릭터였다.

그 때문에 전생에는 오히려 인류와 밀회하기도 했는데, 인류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기존의 권력을 끌어내려 볼 생각을 할 만큼 이기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가 됐군.’

그 탐욕 때문에 차할리스는 제 종족을 배신하여 마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의 새로운 지도자로 군림했을 것이었다.

그에 반해서, 오로지 종족을 수호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품은 존재인 아가이디카는 전생에는 인류에게 최악의 적수였지만,

'......이제는 어쩌면, 공통의 적을 두고 힘을 합칠 수 있을 거다. 아니, 반드시 그래 줄 거다.’

몇 주 전, 이곳을 마왕이 습격했다. 그때 아가이디카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종족을 수호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마왕에게 복종하기로 했을 터…….

그 대가로 머릿속에 ‘폭발’ 잠재 마법이 심어진 상태로써 이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즉, 자존심과 사명감이 모든 꺾인 상태였다.

‘그래도 강렬한 분노는 남아 있을 거다.’

그러나 감히 꺼낼 수 없어서, 무기력으로 억눌러진…… 그래서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폭발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현욱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그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땅의 수호자가 종족을 팔아먹은 놈의 앞잡이가 되어 있다니, 오랜 적으로써 보기에도 영 안타깝군.”

그 말에 아가이디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고, 오히려 반응한 건 차할리스였다. 그놈은 눈을 부라리며 이현욱에게 이를 드러냈다.

"뭐? 그게 지금 무슨 소리더냐? 네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제멋대로 지껄이는 거냐?”

이현욱은 놈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아가이디카를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있다. 너는 이 땅을 지켜야만 하는 존재잖아? 이 땅의 모든 주민이 그렇게 믿었을 테고 말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뭘 하는 건가? 응? 이 땅을 유린하고 네 종족을 학살한 존재의 개가 되었잖아?”

이현욱이 계속해서 도발했음에도 아가이디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혈색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차할리스가 앞으로 나와서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위대한 수호자여, 저런 뻔한 도발에 넘어가지 마시고 침착하게 구소서—”

그 대목에서 이현욱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역시나 네놈들의 목적은 고작해야 시간 끄는 건가 봐? 이렇게 접근해서 같잖은 말싸움을 유도하려는 이유도 그거고……."

그런데 이현욱의 도발에 아가이디카가 흥분하여 금방 전투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자, 차할리스가 급히 중재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쪽에서는 발끈하고 나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단 일 초라도 말을 이어가서 마왕의 명령대로 시간을 더 끌어보려는 수작이었다.

퍽 우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 그 잘난 붉은 화산의 수호자가 겨우 말장난으로 시간이나 끄는 카드로 버려지는 일개 잡졸이 되었다니…… 얼마 전에 죽어서 스켈레톤이 되었을 수많은 레드 드레이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쯧쯧—”

이현욱은 그렇게 도발을 쏟아내면서도 아가이디카의 눈을 살폈고, 녀석의 눈동자가 떨리는 걸 감지했다.

이제, 임계점에 이른 것이었고…….

"너…… 그 입, 다물어라—!”

그 순간, 일대의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는 게 느껴지더니 지면이 갈라지며 마그마가 용솟음쳤다.

퍼—허—허—허——!

“큭!”

“—모두 피해요!”

맨 뒤에 서 있던 에드워드 우즈가 그렇게 외치며, 목걸이에 마나를 부여했다. 그러자 거대한 붉은 방어막이 형성되면서 일행의 몸을 뒤덮었다.

퍼버버버버——!

단 몇 초 만에 지면이 요동치며 마그마가 붉은 커튼처럼 올라와서 쓰나미처럼 달려들었다.

"썅,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

"저 자식을 잡으려면 우리만으로는 안 돼요! 이, 일단 후퇴하는 게……."

그들로서는 이현욱의 객기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따름이었다.

물론, 스틸레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아라비아해에서 ‘레비아탄’이라는 엄청난 괴물을 끄집어 올려서 단숨에 죽였던 장면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철저한 계산하에 여럿이 힘을 합쳐서 이룬 작전, 말 그대로 ‘레이드’였다. 즉, 이렇게 돌발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완벽한 각본이었다.

애초에 보스 몬스터란, 다수의 플레이어가 인고의 노력 끝에 잡을 수 있게 설계된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들 모두가 이현욱이 작정하고 나서면 아가이디카 레이드를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적어도 지금 싸우는 건 아니었다. 그건 누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저 괴물 자식은 완벽하게 묶어 놓지 않는 한, 제아무리 모글레이라고 해도…… 맞출 수 없다.’

에드워드 우즈는 붉은 화산의 수호자 아가이디카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몸소 겪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은 온몸에서 불을 내뿜을 수 있었는데, 그게 마치 제트 엔진 같은 효과를 냈다.

그래서 본체 상황일 때도 작은 날짐승처럼 빨라서 화살은 물론이거니와 총알로도 맞추기 힘들었다.

그런데 비교적 작고 가벼운 거인 형태라면 속도 측면에서 훨씬 유리할 터…… 모글레이 낙하 공격으로 맞추는 게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텅——

그놈이 바닥을 박차는 순간, 바닥이 우그러졌고 놈의 몸은 단숨에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곳에는 이현욱이 달려오는 트럭 앞에 선 작은 들짐승처럼 서 있었다. 그의 머리를 향해 놈의 주먹이 철퇴처럼 떨어졌다.

훙——!

이현욱의 왼쪽 손목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이더니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 거검 모글레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그걸 눕혀서 마치 방패처럼 몸을 가렸고 그 위로 아가이디카의 주먹이 내리꽂혔고—

콰—앙——!

두 묵직한 물체가 정면으로 맞부딪히자, 쇼크웨이브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 주변에 있던 모두가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또한, 그렇지 않아도 마그마가 흐른 탓에 물렁물렁해져 있던 지면이 갈라지면서 공중으로 치솟으며, 충돌 지점을 기점으로 거대한 구멍이 파였다.

“큭—”

이현욱 역시 튕겨 나갈 뻔했으나, 강체화를 건 몸을 아래로 끌어당겨서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는 동시에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페일노트 2개를 쏘아 보내서 녀석의 눈을 노렸다.

툭— 툭—

하지만 녀석은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그 두꺼운 눈꺼풀이 페일노트를 튕겨내는 게 아닌가?

그와 동에 바닥에서 마그마 기둥이 치솟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던 AD-2를 강타했다. 이현욱은 AD-2가 완전히 박살 나기 전에 아공간에서 무기를 쏟아냈고, 그중에서도 샷건 ‘블랙라이노’를 오른손에 쥐었다.

콰—앙——!

그리고 놈의 머리통을 조준하고 쏘았고, 제대로 명중했으나, 놈이 뒤로 2m 정도 밀려나는 게 다였다. 그래도 한때는 최고의 화력을 자랑했던 블랙라이노였으나, 이제는 고작해야 적을 밀어내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저 정도 되는 괴물들을 상대할 때는 넉백(Knock-Back)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이 아닐 수 없었다.

이현욱은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콰—앙——! 콰—앙——!

하지만 놈이 내지른 주먹에서 강력한 열풍이 터져 나오며 탄환을 역으로 날려 보냈고, 이현욱은 모글레이의 면으로 그것들을 막아냈다.

터—더—더—더—더——

그러는 사이, 놈은 양팔을 바닥에 내리박더니, 마그마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이현욱은 대처하기보다는, 모글레이로 몸을 가린 채, 아가이디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봐, 수호자—”

이현욱이 녀석을 불렀으나 당연하게도 대답이 없었다.

이현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내가 만약…… 네 머릿속에 든 걸, 마왕이 부여한 족쇄를 제거해주면 어쩔 거냐?”

"......뭐?"

그 말에는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넌 지금, 다시금 마왕에게 맞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잖아? 내가 해결해줄 수 있다.”

“……너야말로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군.”

콰드드드——

그 녀석이 지면에 박아넣었던 두 손을 끌어당기자, 마그마로 만들어진 두 개의 큰 검이 딸려 올라왔다.

이현욱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못 믿겠다면, 믿게 해주면 그만이긴 해.”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허공으로 띄워서 입 근처로 가져다 앴다.

"—자 이제 ‘화이트 레인’을 쏴주세요.”

그 순간— 후방의 상공에 날고 있던 비공정들의 상단부에 설치되어 있던 포구들이 이쪽으로 향했다.

펑— 펑— 펑— 펑—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사했는데,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을 직접 노린 사격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먼 허공에서 폭발하더니…… 차가운 물을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두—두——

그것들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비를 맞은 몇몇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의 표정이 사뭇 변했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그 이유는 ‘물 폭탄’이 성녀의 ‘정화’ 스킬이 적용된 성수로써, 머릿속의 잠재 마법을 지워버린 것이었다.

그건 언데드 군단과의 전투 때, 아군에게 걸린 디버프를 한 번에 제거하기 위해서 생산해둔 것이었다.

이렇게 쓰일 줄은 이현욱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됐다.’

이현욱의 눈에 비친 아가이디카의 정보가 수정되었다.

- 붉은 화산의 수호자 아가이디카 (LV:214)

* 마왕의 식민

본디 마왕의 식민 옆에 적혀 있던 <잠재 주문 ‘폭발’ 적용>이라는 내용이 삭제된 것이었다.

"자, 너를 묶었던 마왕의 목줄을 내가 끊었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던지듯이 땅에 박고는, 아가이디카에게 다가갔다.

"이제 어쩔 건가?”

저벅— 저벅—

그 녀석은 방금까지 치고받던 이현욱이 지척으로 접근했음에도 공격을 가하지 않고,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보시오, 수호자, 지금 뭐 하는 거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차할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아가이디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이현욱은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나는 너희를 집어삼킨 죽음의 힘을 봉쇄할 수 있고, 너희를 지배하고 있는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자다. 그러니까......."

그는 말꼬리를 늘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땅의 수호자 아가이다카, 네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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