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201화 (201/221)

201화.  < 초격차, 전초전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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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 세상의 이목이 마왕과 용사의 대결, 즉 ‘월드 퀘스트’에 쏠려 있었다.

즉, 종말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움에 따라서 강렬한 불안감에 절어질 수밖에 없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사회안전망이 붕괴하고 격렬한 혼란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제 발로 종말로 다가가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로, 연일 폭동이나 약탈이 벌어지며 인류라는 공동체가 천천히 마비되어갔다.

- 지구촌 ‘마왕 쇼크’ 앞에서 자멸의 길을 택하나…… 연일 이어지는 폭동에 피해 속출 중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으니…… 군인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늦은 밤, 대한민국의 북부 국경선인 휴전선 인근.......

타—다—다—다——!

웬 총성이 산등성이를 따라서 연이어 울렸다.

타—다—다—다——!

그곳에서 총성이 울린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온갖 폭음과 총격 소리가 뒤엉키며 울리는 가운데, 한 무리의 AMT 병사들이 철제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이, 이대로는 잡힐 겁니다!”

저 멀리, 이들의 목적지인 초소의 불빛이 보였다.

"헉— 헉—”

그러나 그들보다 불과 십여 미터 뒤로는…….

끄에에— 끄에에—

웬 거적때기를 입은 퀭한 눈빛의 괴인들…… 무려 수백 마리의 ‘죽음의 주민’들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끄에에— 끄에에—

그것들은 관절 인형인 양 팔다리를 기괴하게 꺾으며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는데, 어찌나 빠른지 당장이라도 AMT 병사들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헉— 헉— 포기하지 마, 곧 초소다!”

그렇게 외친 건, 가장 앞에서 내달리고 있는 중위 계급의 소초장이었다.

"이, 이제 약 백여 미터 남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악!”

맨 뒤의 병사가 결국 죽음의 주민의 손에 붙잡히더니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사, 살려—”

그는 머리끄덩이를 붙잡힌 채 죽음의 주민의 떼거리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으아아아—”

그 죽음의 파도는 한 사람을 집어삼킨 뒤에도 허기를 채우지 못했는지 머뭇거림조차 없이 달려들었고, 이어서 한 명이 더 끌려 들어가 버렸다.

이대로는, 차례차례 잡아 먹힐 뿐이었다.

"이런 썅!”

결국, 후열의 몇 명은 무작정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는 무기를 들어 올렸다.

“—2조, 대응 사격 준비한다!”

그렇게 말한 건 중사 계급의 부소초장이었다.

그러자 서두의 소초장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부소초장은 방아쇠를 당기며 그에게 소리쳤다.

"—소초장님, 어서 가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그의 총구에서 신성력이 인첸트된 탄환들이 뿜어져 나가며 죽음의 주민들을 어느 정도 밀어냈다.

“헉— 부소초장, 안 됩니다!”

하지만 극히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제 말 들으셔야 합니다! 저 끔찍한 것들이 남하하면 수많은 민간인이 죽을 겁니다! 어서 가서 지원 요청을 하십시오, 한 시라도 더 빨리—”

지금껏 1년이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한 초소원들이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시작했다. 그들의 지휘관으로서, 소초장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부소초장의 말이 백번 맞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언데드 몬스터들…… 그것들은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등장했다.

고작 5분 전, 인근의 지면에서 정체불명의 진동이 울리더니 큰 구덩이가 생성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초소장은 그 즉시 직접 순찰을 나섰다.

그곳에서 언데드들이 개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습격이었다.

제아무리 많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더라도, 땅속까지 투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의 국방망 자체가 지금 이 사태에 대비를 못 하고 있을 테니, 이곳에서 최대한 대응해서 시간을 만들어야만 했다.

더 나아가서…….

‘지금 저것들이 나오는 굴 입구에 폭격을 가한 뒤에 신성 부대를 투입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곳의 위치를 아는 자신이 상급부대에 정확한 보고를 해야만 했다. 그것이 가장 완벽한 초동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 잊지 않겠다!”

그는 결국 등 뒤에서 울리는 부하들의 비명을 가까스로 외면하며 초소로 달려갔고, 경계병이 초소 문을 열어젖혔다.

"소, 소초장님, 부소초장님과 초소원들은……."

"지금 당장 문을 닫고, 마법 방어막을 가동해!”

그의 말에 경계병들이 머뭇거리다가 철문을 닫았다.

텅—

고는 통신병을 불러서 상급부대에 교신을 지시했다.

그리고 연결됨과 동시에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곳은 A44 AMT초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언데드 몬스터가 추진 철책을 넘어오고 있다! 칙— 즈, 즉시 지원 요청한다! 또한, 신성탄도 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것들은 일반적인 언데드 몬스터가 아닌지 ‘신성탄’으로도 쉽게 죽지 않았고, 다시 살아나는 경우까지 확인했다.

‘그 뜻은 이곳에 죽음의 사제 계열이 있는 거고, 미약한 신성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거다.’

그는 주특기가 ‘레이드분석’인 만큼, 이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이건 웬만한 빅 이벤트 수준이다.’

그때, 인근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 부근으로 초소의 랜턴이 돌아갔다.

"허……."

이곳으로부터 약 오백여 미터 앞, 산등성이를 따라서 설치된 감시탑에 수없이 많은 언데드가 마치 개미 떼처럼 들러붙어 있었는데…....

까—가—가—강——!

그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철근이 꺾이며 감시탑이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마치 밤바다의 파도처럼 검은 일렁임이 보였다. 그 일렁임에는 수백 수천 개의 붉은 눈동자가 달려 있었다.

즉—

“저, 저게 전부……."

이 근방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족히 수만…… 아니,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몇십만에 이를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쿵— 쿵—

"미친, 저건 오, 오우거잖아?”

무려 오우거 스켈레톤까지 섞여 있었다.

그때, 마침내 상급부대로부터 답신이 왔다.

- 칙— 그곳에서 최대한 대기하라, 곧 지원 병력이 도착할 거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이었다.

이에 소초장이 곧장 반문했다.

“……당직사령님,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지금 즉시 이곳의 상황을,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정밀하게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건 국가적인 위기입니다!”

그러나.......

- 칙— 곧 조치할 예정이니 대기해!

"이런 썅……."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상부에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 옛날, 6.25전쟁이 터졌을 때도 미려하기 짝이 없는 초동조치가 더 큰 화마를 자아내지 않았던가?

‘내가 여기에서 죽는 건 상관없지만, 그 포탈이 있는 제대로 위치를 알려야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는 다시 마나 메신저를 입에 대었다.

"지금 당장 폭격과 신성 특화 부대 파견을 요청합니다! 제가 이 사태를 조기에 종료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등장했다.

- 칙— 소초장, 나는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의 이교준 팀장이다.

꽤 고위직 인사가 그것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었다.

그는 스틸레인과 관려된 프로젝트를 총괄 지원하고 있다는 걸, 소초장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 칙—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안정되어 있었다.

- 칙— 우리도 보통이 아닌 걸 보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금방 해결될 거다. 그러니까 부대원들을 잘 통솔해서, 최대한 버티고 있도록—

이에 소초장은 무어라고 말할까 하다가, 더는 입씨름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마나 메신저를 바닥에 내던졌다.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금방해결한다는 거야?”

그로써는 단 한 줌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는 냉소 머금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초소의 마법 방어막이 공격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텅— 텅— 텅— 텅—

곧 이 초소마저도 언데드 파도에 잠식될 것이었다.

그 어떤 대단한 게 지원을 오더라도, 설령 지원 병력이 언데드 파도를 막아내더라도, 이들을 구해낼 수는 없을 터…… 초소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는 남아 있는 초소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미안하다. 내가 무능했다.”

그런데 그때—

훙——!

웬 돌풍이 불어 닥치며 초소를 강타했다.

"큭!”

"악."

아니, 이 산등성이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이어서 머리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훙— 훙—

"어?”

"저, 저건……."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저, 저거…… 드래곤 아닙니까?”

이 세상을 몇 번이고 뒤흔들었던 최강의 몬스터가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었으니 그 누가 모를 수 있겠는가? 다만, 착각이라고 생각될 만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설마, 드래곤이 등장하는 빅 이벤트인 겁니까?”

그렇게 오해 할만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애초에, 그 누가 드래곤이 아군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러나 그 오해는 금방 해소되었다.

기—이—이—잉——

그 거대하고 웅장한 존재의 온몸에서 광선과 불꽃이 터져 나오더니 지면으로 이어졌고, 새하얀 폭발이 줄지어 일어나며 산 곳곳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냈다.

콰—과—과—광——!

이어서 산을 뿌리째 뽑아 올릴 듯한 충격파가 초소를 덮치며 건물이 반파되었다.

단 몇 방만으로도, 초소를 뒤덮었던 수만 마리의 언데드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성스러운 백색의 아지랑이만이 남아 있었다.

“아—"

그제야 소초장은 저게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이 짧게 탄식했다.

"……그다, 그가 나섰다.”

"예?”

"그가, 이번에도 모두를 구원하려는 거야.”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구원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적합한 이는 단연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훙—

그리고 기계 드래곤 홰를 치는 동시에 제트 엔진을 분사하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십여 대의 비공정과 수십 대의 군용 헬리콥터들이 줄지어 따라갔다.

***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온 세상에 속보가 날아들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었다.」

그건 또 한 번의 마왕의 메시지였다. 이번에도 인류의 방송을 빌려서 인류를 겁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진실을 모르는 너희를 길들여주고, 인도해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너희는 길들일 수 없는 짐승처럼 나에게 이빨을 드러냈으니…… 나는 미개한 너희에게 벌을 내리고자 한다.」

그 순간, TV 화면이 맨해튼 상공에 떠 있는 ‘죽음의 꽃’을 비추었다.

「첫 번째 벌은, 하나의 도시에 내리겠으니…… 이 도시는 오늘부로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자 “오, 신이시여—”라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며칠 전, 맨해튼을 통째로 인질 삼은 마왕은, 탈출 행렬이 눈에 보이면 도시 전체에 독가스와 맹독의 비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맨해튼에 여전히 엄청난 숫자의 민간인이 고립된 상태였으며, 미국 정부는 마왕과 접촉하고 있다고 수차례 발표했으나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방금, 마왕이 처형식을 선포했다.

미국의 LIVE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한 분위기로 이 소식을 보도 중이었다.

- ……현재 뉴욕시 맨하튼에 고립된 시민의 숫자는 추정치로 64만 명에 이릅니다. 미 중앙 정부가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히려 불에 기름 붓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가운데, 이 끔찍한 재앙을 막아낼 방법은 무엇인지 여전히 해답이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 아! 약 30초 전 주, 죽음의 꽃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분사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 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CNN의 두 앵커가 차례차례 탄식을 내뱉었다.

이내 화면상의 ‘죽음의 꽃’의 하단부가 열리더니, 그곳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마치 커튼처럼 흐느적거리며 내려와서 맨해튼을 향해서 드리우기 시작했다.

저것이 지상에 닿고 퍼져나가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터, 사실상 인간 살충제나 다름없었다.

이내 그것이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에 닿았고, 마천루 표면이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꾸드드드——

이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 아—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런데 그 순간—

웅——

그 검은 연기가 허공에 정지하더니…… 오히려 반대로 하늘을 향해서 흐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마치 누군가 커튼을 위로 말아 올리는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 아? 어…….

- 지금…….

두 앵커 역시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는데, 아직 그 어떤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제가 볼 때는 중력이 역전된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 어…… 중력 역전이라면…….

- 저기, 저기 보시면, 건물 파편도 같이 허공으로 치솟고 있는데, 마치 자유낙하 하는 듯한 움직임입니다.

얼마 안 가서 그의 추론이 사실로 밝혀졌다.

- 아! 지금 현장에 중력 마법사 이성윤과 세계수의 관리자 도널드 해리스가 와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이 맨해튼을 향해 마왕의 공격을 막아낸 것입니다!

이내 화면이 전환되며, 한 빌딩의 옥상에 서 있는 십여 개의 인영이 보였다.

그들은 죽음의 꽃을 바라보며 온갖 스킬을 시동 중이었고, 그렇게 검은 연기가 통제되고 있는 것이었다.

- 그렇다면, 성녀도 맨해튼에 왔을까요? 저 검은 연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저 하늘로 띄우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아주 강력한 신성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일명 와이트 홀, 위그드라실의 힘을 빌리는 초광역 텔레포트가 열린 것이었다.

- 아, 말씀드리기 무섭게 성녀가 도착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성녀의 등장은 없었다.

그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나타났으니…….

- 어, 저건…….

- 오, 맙소사…….

두 앵커는 동시에 탄식을 터뜨렸다.

그것은, 무려 마법공학도시 ‘라퓨타’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던 모습과는 어딘가 사뭇 달랐다.

- 그런데 어딘가 달라진 듯한데…….

- 아! 나, 나무입니다! 잘 보시면 나무 한 그루가 라퓨타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나무가 아니라...... 무려 강화도의 신목 신단수입니다!

- 아, 아니, 초월급 오브젝트와 초월급 오브젝트의 크로스오버라니 …… 그게 가능한 겁니까?

- ……저도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지금까지 스틸레인이 우리의 상식 안에서 활약했습니까? 그는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을 들고 나왔었죠!

- 그런데 신목이라면, 죽음의 힘을 상쇄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흔히 어둠 계열의 힘을 불로, 신성력을 물로 비유하곤 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신성력이 우위이되 정도에 따라서, 아주 강한 불이 물을 증발시키듯이 어둠 계열이 신성력을 제압하기도 했다.

그런 비유에 따른다면, 성녀의 권능은 가장 강력한 소방호스거나 때에 따라서 장대비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목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뿜는 강력한 신성력, 생명력, 마나는 일대를 가득 메우며 ‘생태계’를 조성할 정도였으니, 불과 물에 비유에 따르자면, 신목은 호수 혹은 바다 정도였다.

그리고 제아무리 강력한 불길일지라도, 호수나 바다를 마주할 때는 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

이내 신목을 장착한 라퓨타가 강력한 백색 아우라를 한껏 방출하며, 죽음의 꽃을 향해서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함이 전함에게 접근하듯이 느리면서도 무거운 움직임이었다.

츠츠츠츠——

그러자 중력 역전으로 허공으로 치솟아 있던 검은 연기가, 백색의 아우라에 잡아먹히듯이 빠르게 분해되며 사라졌다.

또한, 라퓨타의 난간에는 탈로스를 비롯한 다수의 거신병들이 수십 미터짜리 창을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자, 준비하시고—」

가장 큰 거신병인 탈로스의 구령에 맞춰서 17기의 거신병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왔다. 그리고 투창 자세를 취했다.

[—쏘세요!]

훙— 훙— 훙— 훙—

각기 20~30m에 이르는 거신병들이 쏘는 투창은, 사실상 투창이 아니라 로켓포에 가까웠다.

총 17개의 창대가 거의 직선으로 쏘아져서, 죽음의 꽃의 반쯤 녹아 없어진 마법 방어막을 돌파—그것의 꽃잎 곳곳에 처박혔다.

푹— 푹— 푹— 푹—

그건 무려 세계수의 가지를 깎아서 만든 창이었다.

즉, 흡혈귀의 심장에 은 말뚝을 박은 것과 다름없는바, 죽음의 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시들어갔다.

쿠드드드——

이어서 다수의 거신과 플레이어들이 죽음의 꽃을 향해 맹공격을 펼쳤고, 일부는 뛰어 넘어가서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죽음의 꽃을 호위하던 언데드 군단의 저항은 생각보다 허술해 보였다.

그럴 것이, 애초에 마왕과 네크로맨서는 뉴욕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이 ‘페이크’에 불과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상이 보기에는 실로 감격스러울 장면일 따름이었다.

- 오—신이시여…… 믿기지 않는 장면입니다.

- 이, 이번에도 결국, 스틸레인이 해냈습니다!

- 예, 그가 왔습니다! 그가 뉴욕을, 더 나아가서 세계를 구하고자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곳에 없었다.

***

그곳은, 게임이 시작된 이후 갖갖이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이름은 캘리포니아였다.

이미 수년 전에 인류가 상실한, 첫 번째 영토…… 이제는 화산 지대와 붉은 황야로 뒤덮인, 침식지였다.

그간 인류가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로부터 이 땅을 되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부었던가?

그러나 남은 것은 패배와 희생뿐이었고, 금세기 안에 그 땅을 되찾는 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었는데…….

지금, 그곳의 하늘에 19대의 비공정 나타났다.

이름하여 ‘강철함대’였다.

그리고 기함 ‘프리드웬’에 이현욱이 타 있었다.

"곧 뉴욕 쪽 정리를 끝나고 합류하겠다고, 이성윤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다크 엘프 군단도 와이트 홀을 열 준비 중이고요."

그렇게 말하는 이는 우성문 실장이었다.

그도 이번 작전에 동행했다.

"또, 각국의 추가 지원군들도 ‘원정 캠프’가 설치되는 대로 속속히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빛의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아주 강력한 죽음의 힘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 한쪽 모니터에 그래프로 표기되고 있었다.

저곳에, 마왕이 있다.

'놈은 나를 어떻게든 흔들려고, 북학과 뉴욕에 전력을 분산 투입했지만…… 두 곳을 모두 막아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현욱은 놈의 심장부에 도달했다.

지금쯤 마왕은 인간다운 조급함을 느끼고 있을까? 그게 정상이었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 방을 더 먹여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왔는데도 주인이 나와보지 않는 걸 보아하니, 문을 좀 크게 두드려야 할 것 같군요.”

이현욱은 후긴과 무닌을 하늘에 띄웠다.

그리고 초월적인 감각으로 하늘을 헤집고, 그보다 더 먼 곳에 떠 있는 3대의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감지했다.

'……워 박스, 느껴진다.’

총 3대의 워 박스가 저궤도에 정 위치했다.

그리고 이현욱의 감각을 따라서 하단부가 개방되었다.

그곳에서 4발의 모글레이가 떨어졌다.

이내 하늘에서부터 지상까지 4개의 선이 죽 그어졌고, 대산맥이 한낱 모래성처럼, 퍽— 하고 튀어올랐다.

한 순간에 지도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I

온 세상이 뒤틀리는 것 같은 폭음 속에서, 이현욱이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이제, 마왕 사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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