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회. < 초격차, 전초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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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 오랜만에 불러내서 시키는 게 결국 땅이나 파는 거야?」
이현욱의 머리 앞에 두둥실 떠 있는 동그란 구체, 마루가 푸념을 내뱉으며 마나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는 후두두一 소리와 함께 흙더미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피면 천장 전체가 마치 물처럼 대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네가 가장 잘 하는 일이잖아?”
「뭐? 고작 땅 파는 게 내 주특기라는 거냐?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아니…… 그건 네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네 능력에 자부심을 좀 느껴야 할 것 같은데, 고작 땅을 파는 게 아니라 무려 산을 옮기고 있는 거야.”
이현욱은 마루의 푸념을 받아치며 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장준걸의 몸에서 ‘여의봉’을 비롯한 몇 가지 아이템을 챙겼다.
'여의봉, 이게 제 발로 굴러들어올 줄이야?’
「……큼,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아공간 안에 그만 좀 처넣어주면 안 될까? 그 안에 있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 나 갇히는 거 너무 싫단 말이야.」
"그건 미안한데, 이럴 때만 좀 부탁한다. 너만큼 이런 작전에 도움이 될만한 게 누가 있겠어?”
저 녀석은 지성을 가진 정령이었지만, 아이템 상태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공간 안에 보관하다가 꺼내서 쓰는 게 안성맞춤이었다.
후두두두—
그때, 머리 위로 약 삼십이어서 미터의 통로가 파였고, 햇빛과 함께 여러 개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현욱이 씩 웃었다.
"이거 봐, 역시 이 분야에서는 네가 최고잖아? 네가 아니었으면 탈출까지 몇 시간은 걸렸을 거야.”
이현욱은 계속해서 마루를 어르고 달랬다. 한때 멋대로 폭주했던 전력이 있고 인간에 대한 강력한 트라우마가 있는 녀석이었기에 멘탈을 잘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이 녀석은 마지막까지 큰 힘이 되어줄 텐데, 나와 계약 관계이지, 내 권속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먹히고 있었다.
「큼, 뭐, 내가 좀 그렇긴 해.」
이현욱은 몸을 띄워서 그 통로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만신창이가 된 산지가 펼쳐졌다.
단 한 발의 모글레이 투하만으로도 산봉우리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며 일대의 지형이 크게 뒤틀려 있었다.
그가 걸어들어왔던 산길은 돌무더기로 덮여 있었고 수백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로 뽑혀서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게 바로 100t짜리 질량 무기의 힘이었다.
'이 정도라면…… 모글레이를 성검 적용한 뒤, 가우스건으로 쏘면 죽음의 꽃도 일격에 날릴지 모른다.’
물론, 놈들도 그걸 대비하려고 노력할 것이었다.
이현욱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서 돌무더기 몇 개를 넘어가자 비교적 너른 지역에 희망 길드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진> 길드원들을 제압해서 포박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비공정 몇 대가 떠 있었는데, 그것들의 상단부에 돌출된 기둥 같은 물체에서 상당량의 마나가 번져 나오며 일대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우우우우——
그건 이 지역을 은폐해줄 광역 신기루 마법이자, 사일런스 마법이었다.
즉,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스러운 사태를 외부에서는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현욱은 마루에게 지하 터널에서 ‘마나역류석’을 골라서 끄집어내어달라고 부탁한 뒤, 녀석의 푸념을 뒤로하고 김세희에게 다가갔다.
"아, 드디어 나오셨네요!”
한편, 그녀의 앞에는 알랭 지담이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손발을 결박당하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고 있었다.
이현욱이 다가오자 김세희가 놈의 입에서 재갈을 뺐고 그 순간, 놈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꽥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젠장! 오, 오해에요! 이, 이봐요, 스틸레인…… 저는 지금 이 상황 정말로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게 제 책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도 속은 거예요! 저것들이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저도 몰랐단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얼마를 투자했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일을 벌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일단 나랑 차근차근 대화해봅시다. 그러면 오해가 다 풀릴 겁니다.”
온 힘을 다해서 하소연하는 놈이었지만, 이현욱은 놈의 눈동자가 자꾸만 슬쩍 움직여서 주변을 살피는 걸 포착해냈다.
그러한 반응은 도망갈 길을 찾거나, 혹은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릴 때 나오기 마련이었다.
"음......."
이현욱은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 주변에, 또 누군가 있군?”
이현욱의 물음에 알랭 지암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 예? 그게 무슨……."
이현욱은 그 즉시 ‘후긴’과 ‘무닌’을 띄웠다.
- <외눈 왕의 혜안〉세트가 (2/2) 발동합니다!
* 후긴과 무닌이 작동하는 동안 모든 감각이 최대 80배까지 상승합니다. 또한, 일정 밀도 및 부피를 ‘투시’하여 볼 수 있으며 강력한 마나를 감지할 경우 해당 존재의 형태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찾았다.”
이현욱은 저 멀리 숲속, 나무 사이, 낙엽 아래에 은신 마법을 쓴 플레이어 한 명을 발견했다.
- 플레이어 (LV:63)
* 빌런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여의봉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여의고금봉(전설)
- 효과
1) 확장 : 마나를 불어넣을 시, 마나 1당 여의봉의 크기가 1cm 변합니다.
2) 투전승불 : 전투 시작 직후 5분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하며 배리어 수치가 5% 상승합니다.
‘이건, 나한테 아주 잘 맞는 무기다.’
애초에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쉽게 조종이 가능한 동시에, 여의봉 특유의 크기 변환이 마나의 양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는데, 이현욱은 압도적인 마나 총량을 가지고 있는바—
‘—여의봉의 크기를 그 누구보다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이현욱이 그것에 마나를 불어넣자, 길이와 부피가 순식간에 증가하며 공간을 주파, 돌풍이 일어났다.
훙——!
“헉!”
바로 옆에 서 있던 김세희 역시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칠 정도였다.
“……와, 씨, KTX가 지나간 줄 알았어요.”
쾅——!
그것은 수백 미터까지 늘어나더니, 골짜기를 횡단하여 건너편 산등성이에 내리꽂혔다. 그 일격에 대여섯 그루의 고목을 짓밟힌 잡초처럼 으스러져 버렸다.
이어서 이현욱이 손을 움직이자—
쿠—구—구—구—구——!
저토록 거대한 산에 긴 상흔이 그어졌다. 마치 큰 붓으로, 녹색 도화지에 줄을 긋는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마, 맙소사……."
그건 모글레이와 또 다른 의미의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모글레이가 단 하나의 점에 폭발적인 힘을 가한다면, 여의봉은 더욱 넓은 면적을 짓이겨버렸다.
"와— 산을 면도시키는 것 같네요.”
김세희의 표현의 꽤 적절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좋아, 잡았다.”
이현욱은 몸을 띄워서 여의봉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여의봉을 살짝 들어 올렸고, 으스러진 나무 사이에 한 인영이 엎어져 있는 게 보였다.
"큭—"
그것은 괴상한 보라색 가면을 쓴 사내였다.
이현욱은 역시나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빅토르 가가린이잖아?’
그는 고든 프라이스와 마찬가지로 '텔레파시’나 ‘마인드 컨트롤’을 쓰는 정신 조작 계열의 플레이어로서, 고든 프라이스의 주요 측근 중 한 명이었다.
‘이곳의 감시역으로 파견되었나 본데, 이 녀석이 직접 현장에 나올 정도면…… 빌런 놈들도 궁해진 모양이군?’
그간 이현욱이 준 피해가 워낙 컸으니 인물이 남아나지 않긴 할 것이었다.
이현욱은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놈도 이현욱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웅——
그 순간, 왠 일렁거림이 눈 앞을 가리더니, 묘한 두통과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눈앞에서 빅토르 가가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젠장, 환각이다.’
이현욱은 자신이 상태 이상에 걸렸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디버프 스킬과 달리 경고성 시스템 메시지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정신 조작 스킬인만큼, 상대가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현욱의 눈을 속일지언정 하늘에 떠 있는 후긴과 무닌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현욱은 재빨리 두 마법공학 까마귀에게 감각을 전이하여 시력 외에 다른 감각을 총동원했고…….
삭— 삭—
이내 아주 작은 인기척을 감지하여, 놈의 위치를 감별했다.
그 순간, 이현욱의 허리춤에서 한 발의 페일노트가 쏘아졌고—
퓩—
그대로 놈의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큭!"
놈은 중심을 잃고는 바닥을 구르더니 결국 엎어지고 말았다.
이현욱의 손아귀에서 금속이 생성되며 철조망처럼 변하더니 허공을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그대로 놈을 들어 올려서 앞으로 끌고 왔다.
“이런, 제, 젠장…… 후긴과 무닌이 이 정도일 줄은……."
이현욱은 놈에게 다가오면서 웬 유리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놈의 머리 위에 그대로 부었다.
치이이이—
이는 성녀가 정화 스킬을 부여한 성수로써, 잠재 주문을 해제하는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 (!) 당신에게 걸려 있던 ‘잠재 마법’이 정화됩니다.
“넌 이제 마음대로 못 죽는다.”
"그러니까 인생의 마지막 기억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고 싶으면, 최대한 협조하는 게 좋을 거다.”
***
구름 위, 프리드웬과 비공정들이 떠 있다.
그리고 프리드웬 안…….
“어! 찾았어요.”
김세희가 두 빌런의 몸수색을 하다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이현욱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저 가면 쓰고 다니는 음침한 놈한테 있었네요.”
그건 마나 메신저였다.
김세희가 옆으로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걸로 마왕성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마나 메신저 같은데요."
"네, 그냥 마나 메신저 맞아요.”
“……아?"
"그런데 그냥 마나 메신저니까 허점이 있고, 그걸 이용할 수 있죠.”
"음…… 마나 메신저는 최고의 보안 통신 채널 아닌가요?”
그녀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이 마나 메신저 역시 마법공학 아이템이라는 거 아시죠?”
“네, 그 정도야 알죠.”
오늘날 전 세계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마나 메신저’는 몬스터로부터 파밍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 인간이 개발한 마법공학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처음 나왔을 때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전까지는, 게이트 발생으로 인한 마나 산란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전자장비가 마비되면서 통신에 큰 차질을 빚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한테는 최고 수준의 마법공학이 있으니까, 마나 메신저를 해킹해서…… 위치추적이 가능할 겁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웬 큼직한 상자를 하나 꺼내왔다.
그 안에는 사각형의 복잡한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고, 기계의 중심에는 배터리 용도로 보이는 마나 스톤 몇 개가 꽂혀 있었다.
이현욱은 그것에 마나 메신저를 연결했다.
철컥—
‘이런 게 언젠가 쓸모가 있을까 봐, 한참 전에 개발해달라고 방향을 제시했는데, 제대로 만들어줬다.’
이현욱은 마법공학의 변천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대장장이들에게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술 발전을 유도하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전화기를 위치 추적하는 원리랑 비슷한 거군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마나 메신저로 누군가에게 마나 교신을 걸었다. 그 상대는 이 아이템을 개발한 강정두 연구소장이 =었다.
그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 뒤, 마나 추적을 요청했다.
- 예, 지금 바로 추적 가능합니다만, 한 30초 정도 걸리니까, 계속 연결을 유지해주세요.
이 마나 메신저와 한 번이라도 연결된 적 있는 또 다른 마나 메신저의 마나 패턴을 추출한 뒤, 그곳으로 자동 연결을 시도한다.
그러면 마치 전파처럼, 마나가 파동을 일으키며 나아가는데, 궤도 위에 띄워놓은 수십 대의 마법 위성들이 그 흐름을 감지해내서, 좌표를 특정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 그 마나 메신저와 송수신을 한 적이 있는 마나 메신저는 총 3곳에 퍼져 있는데, 이집트, 평양, 캘리포니아 북부입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이현욱은 곧바로 이교준 팀장에게 마나 교신을 연결했다.
"이 팀장님, 지금 불러드리는 3곳으로 ‘마나 측정 장치’ 투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의 힘’을 검출해주세요.”
이현욱은 3곳의 위치를 불러주었고, 이교준 팀장은 그 즉시 마나 위성들을 통제하여 그 3곳에 '마나 측정 장치’를 투하했다.
약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 결과가 날아들었다.
- ……마나 측정 장치의 신성력 필터에 죽음의 힘이 검출된 곳은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과 북한 평양, 총 2곳입니다.
왜 두 지역에서 동시에 죽음의 힘이 검출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죽음의 힘이 감도는 곳, 즉, 캘리포니아 북부에 네크로맨서가 즉, 마왕성이 위치하는 곳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현욱이 알기로는 캘리포니아 북부 산악 지형에 에이션트 드레이크 종족의 거대한 지하 굴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곳에 마왕성을 지어서 내 저궤도 모글레이 투하를 방어하려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왜, 하필이면 평양에서도 죽음의 힘이 검출되었단 말인가?
'나와 가까운 곳에서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는 거다.’
이현욱은 이교준 팀장에게 그 두 지역을 최대한 탐색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쨌든, 이로써 마왕성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됐다.
“……그걸로 마왕성의 위치를 알아낸 건가?”
그렇게 말한 이는 빅토르 가가린이었다. 놈은 완전히 결박된 채 이현욱을 바라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쩍!
이현욱은 쇠 구슬을 날려서 놈의 입에 맞췄고, 이빨 서너 개가 후두두 떨어졌다.
“컥!”
“내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웃는 걸 보면, 내가 용사 특전을 가졌다고 해서, 설마 이야기 속 용사처럼 자애롭다고 생각한 건가?”
"큭…… 그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비신사적이군?”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남은 이빨은 지금처럼 부수는 게 아니라 철심을 박아서 조금씩 돌려 빼주마.”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알랭 지담은 눈치를 보다가 입을 다물며 고개를 슬쩍 숙였다.
그러나 빅토르 가가린은 입에서 선지피를 흘리면서도 좀처럼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마왕이라는 자가 어디에서 온 지 들었다.”
“그러니까 궁금해지더라고, 설마 너도 그곳에서 온 건가?”
“으흐흐— 내 느낌상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단 말이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압도적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특히나 이 마법공학…… 이러한 오버테크놀로지를 도대체 어떻게 이룩해낼 수 있을까?”
이현욱은 한 손에서 철사를 생성하며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놈은 오히려 신이 난 듯 더욱 크게 떠들어댔다.
"그런데, 네가 아무리 잘 났어도 그 마왕이라는 작자와 근본적인 출발점이 다른 것 같단 말이지…… 너는 마왕성을 절대로 못 칠 거다. 결국, 마왕성이 완성되고 마왕의 군단이 끝도 없이 불어날 거다! 너는 결국 패배할 거란 말이다!”
이현욱이 손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철사들이 뱀처럼 움직여서 놈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이빨에 파고 들어갔다.
“커—커—커—”
뿌득— 뿌득—
그리고 이빨을 네 개째 뽑아냈을 때, 이현욱의 마나 메신저가 울렸다.
- 칙— 이교준 팀장입니다.
"예, 말씀하세요.”
- 칙— 말씀하신 대로, 죽음의 힘이 많이 검출된 북한 지역을 정밀 검문한 결과…… 평양에서 좋지 않은 현상을 관측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 이게……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으니, 지금 동영상을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곧 이현욱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이 하나 도착했다.
그건 ‘플라이 아이’의 시점으로 찍힌 듯한 동영상이었는데, 북한에 검출기를 떨어뜨리면서 함께 낙하시킨 모양이었다.
그것은 반쯤 폐허가 된 도심을 질주하더니,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꿀럭— 꿀럭—
그곳의 지하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태동하고 있었다.
이내 플라이 아이가 ‘나이트 비전’을 활성화했고…….
으어어어——
그건 이리저리 뒤엉킨 사람들이었는데…… 찢기고, 녹아내린 피부와 내장들이 곤죽이 되어서 한 덩어리고 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부 위에는 기이한 도형의 낙인이 찍혀 있었으며, 벽과 바닥에는 그들의 피로 그린듯한 마법진들이 펼쳐져 있었다.
- 그건 죽음의 힘이 강렬하게 퍼져나오는 평양의 건물 안을 수색한 결과입니다만, 도대체 그게 뭔지, 저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현욱은 그게 뭔지 알았고,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악마 숭배자들의 짓이다. 그놈들이 마왕에게 빌붙었군.’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그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마왕만큼 매력적인 리더도 없을 테니…….
그때, 빅토르 가가린이 뽑힌 이를 뱉어내더니, 기어코 다시 떠들어댔다.
"퉤! 너는 애초에 마왕성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거다. 네가 지켜야 할 게 이 땅에 다 있잖아? 안 그래?”
이현욱은 손을 뻗어서 빅토르 가가린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북한 땅을 ‘데스 하이브’로 만들었군?”
"큭, 너, 정말로 다 알고 있잖아? 으흐흐— 그렇다면 곧 너희 세상으로 죽음의 파도가 몰려오리라는 것도 알겠군?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제물을 받쳤는지 아느냐면서, 악마 숭배자들이 아주 생색을 내더라고……."
북한, 그곳은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이후 사실상 버려진 땅이 되었다.
일부 플레이어들이 군벌이 되어서 사회를 통치했지만, 애초에 행정력이 바닥인 곳인바, 영토 곳곳이 몬스터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제정신이 박힌 플레이어라면 그런 곳에서 버티는 것보다 탈출을 시도했고, 북한은 철저하게 황무지로 변해갔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땅을 찾아온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악마 숭배자들이었다.
그 음습한 음모를 품고 있는 족속을, 전 세계가 나서서 사냥하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현욱 역시 그러한 사실을 견지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마왕의 초대장을 받아서 마왕의 편에 붙은 거다.’
그 지점까지는 이현욱도 예측하지 못했다.
일명 데스 하이브라는 끔찍한 주술은 사람을 엮어서 만드는 게이트로써, 파괴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좀비나 구울을 소환해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마도 평양…… 아니 북한 곳곳에 잔뜩 설치되어 있을 테니…….
'......곧 언데드 군단이 남하할 거다. 그것도 끊임없이 밤낮을 불구하고 말이다.’
그걸 막을 방법은 단 하나, 데스 하이브를 찾아서 파괴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틸레인,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숫자의 데스 하이브가 완성됐다. 그걸 막으려면 적지 않은 병력과 성녀까지 동원해야 할 테고, 직접 힘 좀 써야 할 텐데, 큭큭— 자리를 비울 수 있겠나?"
이현욱은 놈의 입에다가 재갈을 물린 뒤,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나한테 그렇게 당해놓고, 아직도 날 멋대로 판단하는군?”
“뭐?”
***
잠시 후, 라퓨타의 한 격납고의 문이 열렸다.
쿵!
불이 꺼진 그곳으로 한 줌의 불빛이 들어오며 길을 만들었고, 그곳을 따라서 한 여자가 마나 메신저를 귀에 댄 채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예, 물론이죠. 이미 완성된 상태였어요!”
그녀는 강희설이었는데, 한껏 들뜬 표정으로 웬 설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웅— 하는 기계음이 격납고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으흐흐— 제 역작이자, 라퓨타를 대표하는 괴물 녀석이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녀는 자신 있게 말하며 웬 거대한 레버에 손을 턱— 올렸다.
"이 자식의 몸에 장착한 무기가 몇 개인 줄 아세요? 기가 막힙니다, 성수로 담금질한 총알만 2만 발이고요,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세인트 미사일만 44발이고요, 홀리 라이트 광선 발생기가 4개 탑재됐어요. 그리고 목구멍에는…… 아, 알았어요. 다 정리해서 문자로 보내드리면 되죠?”
그녀의 손이 레버를 당겼다.
철컥—
기—이—이—잉——
직후, 촤르르—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쿵一
그리고 그것의 몸 곳곳에서 백색 불빛이 층층이 점등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 백색의 두 안광이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쿵—
그것은, 마개조된 기계 드래곤이었다.
철컥一 철컥一
그 거대한 체구의 곳곳에 정체불명의 기계장치를 달려 있었고, 그것들이 드래곤 하트로부터 마나를 공급받으며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전부 무기라는 건, 언뜻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 파일럿이요?”
그때, 강희설의 뒤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절그럭一 절그럭一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격납고 입구에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지금 막 왔네요!”
그건, 다름 아닌 서은하였다.
그녀는 풀 플레이트를 입은 채, 한 손에 투구를 끼고 격납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 서 있는 기계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드래곤 나이트로서 그것의 ‘드래곤 하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 ‘드래곤 라이딩’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해당 드래곤이 당신의 영향을 받아 ‘신성력’ 속성을 가집니다.)
이현욱이 준비한 신성한 폭격기가, 첫 출격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