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 초격차, 전초전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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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동굴에 들어온 직후, 계속해서 두 가지 사항을 점검하고 있었다.
첫째로 ‘마나 교신’의 정상 유무였다.
‘나를 암살하려면, 이걸 가장 먼저 차단할 거다.’
이현욱이 누구던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는 그를 지키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지원 요청을 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즉시 이곳으로 날아올 것이었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빌런들은 밖과의 연결고리부터 차단하여 이현욱을 완전히 고립시키려고 할 것이었다.
‘이미 다 예측한 범위다.’
둘째, 시간을 초 단위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241초 남았다.’
제아무리 함정인 걸 알고 있다지만, 그래도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일이다.
이현욱은 방심하지 않고 자신이 손 쓸 수 없는 만약을 대비해두었다.
‘내가 5분 동안 교신이 없으면, 그 작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방금 마나 교신이 끊어졌다. 이곳 전체에 차폐막이 둘러쳐져 있었기 때문인데, 그건 무려 ‘마나역류석’을 이용한 마나 교란 장치였다.
즉, 이현욱은 스킬은커녕 아이템 한 자루도 꺼낼 수 없이, 맨손으로 다수의 암살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솔직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함정이다. 이 정도의 함정이면 돈은 물론이거니와 시간도 몇 달은 족히 걸렸을 거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그러나 ‘인사이트 렌즈’의 기능까지 제 기능을 상실했는지,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다가도 깜빡거리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현욱의 강점은 마나가 필요한 ‘스킬’과 ‘아이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리고, 적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자, 229초 남았다."
이현욱의 말에, 장준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는 네놈 특유의 아이템 소환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부터, 오만한 네놈한테 독 안에 든 쥐라는, 그 뻔한 표현을 가르쳐주마!”
그 순간—
타—다—다— 당——!
이현욱을 향해서 화살과 총알 세례가 날아들었다.
"윽!"
어둠 속, 동굴 안쪽에서 두 개의 불꽃이 튀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관총인 듯했다.
타—다—다— 당——!
그 어떤 마법도 담기지 않은 일반 공격이었으나 이쪽도 마찬가지로 그 어떤 방어 마법도 시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공간 안에서는 인첸트가 된 마탄(魔彈) 세례가 최적의 공격수단이 될 수 있었다.
제아무리 방어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방어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겨 죽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몸을 뒤로 던지며, 양팔로 머리를 가렸다.
터—더—더—더——
그러자 마치 방탄복처럼, 총알이 죄다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그 장면에, 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무슨 옷이 저렇게 얇은데도…… 그것도 심지어 인첸트된 오리할콘 탄환을 막아내는 거야?”
이곳에서는 이현욱 특유의 강체화 스킬이 먹통이 된다. 그리고 그의 복장 역시 총알을 막아낼 만큼 두꺼운 갑옷이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는데…….
"……저, 저거,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이다!”
이현욱이 입고 있는 건 무려 블랙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옷이었다. 그 정도 격을 가진 방어구라면 웬만한 무기로는 뚫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현욱이 피식 웃었다.
“이깟 동굴 하나 인테리어 좀 해놓고 나한테, 대국의 돈이니 뭐니 자랑을 했나?”
"뭐?"
“내가 가진 건, 네놈들이 쥐고 있는 알량한 것들과 수준이 다르다. 그러니까…… 그저 머릿수와 돈이 많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야.”
“……도대체,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현욱은 머리를 가린 양팔 사이로 싱긋 웃어 보였다.
"......너희와 나 사이에는 초격차가 있다."
이현욱은 이미 다른 플레이어들과 ‘초격차(起格差)’를 벌려두었다. 그저 이런 한 벌의 방어 아이템부터, 저들이 가진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었다.
그 옛날, 신대륙 개척시대에 화약과 강철 무기로 무장한 유럽인들을,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감히 막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몇 개의 시대를 건너뛴 격차였다.
그 정도 차이가 나면, 웬만해서는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함정에 걸릴지라도 말이다.
"자, 이제 143초 남았다.”
이현욱이 다시금 시간을 셌다. 그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빌런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저기…… 대, 대장, 이러면 저 머리를 가린 팔을 강제로 내려서, 목을 긋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장준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1팀, 전진한다. 그리고 사수들은 놈이 팔을 내리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머리와 목덜미를 노린다.”
결국, 마탄 세례라는 첫 번째 계획을 접고는 다섯 명의 전사들이 검과 방패를 들고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그래, 조금 더 가까이 와라......'
이현욱은 머리를 가린 채, 양팔의 틈으로 다가오는 놈들을 살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바닥을 박찼다.
그 순간을 포착한 기관총 사수들이 불을 뿜었으나—
“이, 이러면 쏠 수가 없습니다!”
이현욱이 전사들과 뒤엉킨 탓에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야만 했다.
"이 자식이—!”
최선두, 대머리의 거구가 이현욱을 향해 큰 검을 찔렀다. 이현욱은 몸을 뒤틀어서 그 일격을 피해낸 뒤 놈의 콧등을 향해 간결한 잽을 날렸다.
쩍—
“억!”
코가 직각으로 꺾이며 놈의 몸이 휘청였고, 이현욱은 직선으로 뻗어온 칼을 쥔 팔을 끌어안듯 잡아챈 뒤, 팔꿈치 부분을 지렛대의 원리로 꺾어버렸다.
일명 스텐딩 암 락(standing arm lock)을 걸고 최대치로 힘을 가하자 마치 수수깡처럼, 그 두꺼운 팔이 꺾이며 뼈가 피부를 뚫고 치솟았다.
쩍—
"끄아아아—”
이현욱은 어느새 놈의 손아귀에서 검을 빼앗아냈고, 그대로 놈의 복부에다가 칼을 꽂았다.
푹!
격한 비명을 토해내던 놈의 두 눈이 천천히 넘어갔다.
"—사방에서 포위해!”
어느새 나머지 넷이 이현욱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 이대로 포위한 채 천천히 접근한다!”
"저놈은 기관총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으니까, 우리가 유리해!”
그러나 이현욱은 대머리 거한의 몸뚱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등에 짊어지듯이 엎어버렸다.
“뭐?”
그렇다, 시체를 방패 삼은 것이었다.
그 상태로 나머지 네 명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냥 쳐!”
네 방향에서 날아드는 칼날, 하나 같이 이현욱의 목덜미를 노렸다. 그러나 이현욱은 한 손만으로도 날아드는 4개의 무기를 받아쳤다.
챙! 챙! 챙! 챙!
마치 무협 영화의 고수처럼 모든 무기의 흐름을 읽듯이, 정확하게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검을 주고받자, 전사들은 놀란 듯이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들은 이현욱이 맨손이었기에 기고만장하게 나섰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현욱은 맨손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한 자루의 검의 무게를 체감하며, 전사들은 마치 총구 앞에 선 것처럼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 보니 놈은, 그 검성도 죽였잖아?”
이현욱이 지금껏 화력을 위주로 선보였기에 이현욱의 적들은 종종 잊곤 한다. 그가 근접 전투에 얼마나 능한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저하는 순간—
“컥!”
한 놈의 목에 검이 박혔다.
이현욱이 집어 던진 것이었다.
"어?”
이현욱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놈에게 달라붙은 뒤, 검 두 자루를 양손에 쥐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서 기관총 세례가 쏟아졌지만, 한 끗 차이로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쉭— 쉭—
두 자루의 검이 이현욱의 손을 떠났고,
푹— 푹—
후방, 기관총 사수 둘이 뒤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화력 지원의 공백이 벌어졌다.
이현욱은 머리를 가린 양팔을 서서히 내리며 제대로 복싱 자세를 취했다.
“—놈이 다시 맨손이다!”
한 놈이 달려들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고, 이현욱은 허리를 뒤로 젖히는 스웨이(sway) 동작으로 검 끝을 흘려낸 뒤, 놈을 턱에다가 강한 훅을 꽂아 넣었다.
쩍—
그 한 방에 턱뼈가 으스러지다 못해 하관이 통째로 절단되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꺽— 꺽—”
놈은 마치 좀비처럼 비틀거리다가 옆으로 엎어졌다.
챙—
이현욱은 놈이 떨어뜨린 검을 집을 새가 없었다. 어느새 양쪽으로 검과 창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욱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모든 공격을 흘려내면서 오히려 더욱 가까이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이제 내 거리다.”
“큭! 젠장—”
긴 무기를 가졌다는 건 장점이 되지만, 그 거리가 깨지는 순간 오히려 골칫덩어리가 된다. 이현욱은 주먹은 닿지만, 검이나 창을 휘두를 수 없는 거리를 장악한 뒤 가볍게 주먹을 내질러 두 명의 코와 이빨을 박살 내버렸다.
"컥—"
"악!"
그의 움직임은 한 마리 짐승과도 같았다. 그리고 웬만한 공격은 양팔로, 블랙 드래곤의 갑옷으로 막아내는바, 놈들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쩍! 퍽! 뻑!
몇 번의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자 이현욱을 포위했던 5명의 전사가 깔끔하게 널브러졌다.
"......."
그러자 잠깐의 고요가 찾아왔다.
이현욱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적진을 살폈다.
‘……아직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빌런들의 숫자는 이현욱이 쉬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가 파악한 숫자만 아직 13명이었다.
철컥—
그리고 이현욱이 던진 칼에 죽은 기관총 사수들을 대신해서, 다른 놈들이 총을 잡았다.
이현욱은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하나 들어 올렸다.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총탄 세례를 몇십 초 정도는 견뎌줄 것이었다.
그때, 장준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하— 이빨을 다 뽑아놔도 호랑이는 호랑이란 건가?”
"......."
"네놈, 근접 전투 능력도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금속 통제 능력 없이는 날 이길 수는 없다.”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황금색의 긴 곤봉…… 여의봉이었다.
그때, 이현욱이 손가락을 튕겼다.
“빙고—”
"응?"
"내가 바로 그걸 찾으러 온 거라서.”
그러자 장준걸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를 갈며 낮은 음색으로 으르렁거렸다.
“……어디 한 번,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
장준걸, 중국에서 손꼽히는 브루져…… 이현욱은 전생에 놈과 두어 차례 맞붙었기에, 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 능력이 봉인된 채로, 저놈을 상대하면서 나머지 열 한 명까지 상대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이현욱은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시간 다 됐다.”
"뭐? 이 자식, 아까부터 무슨 시간 타령을 계속……."
콰—앙——!
그 순간, 굉음과 함께 터널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큭! 가, 갑자기 무슨……."
"—무너진다!”
그 누구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이 유구한 산의 한쪽 면이, 통째로 무너지는 중일 테니 말이다.
쿠구구구…….
이내 벽에 금이 가고 천장의 한 부분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뜻은 ‘마나역류석’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크나큰 균열이 생기면서 외부의 마나가 스며들어올 구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제한적이지만 마나가 흐르기 시작한다.’
큰 진공 팩에 구멍이 뚫리며 공기가 스며들어오면, 진공 팩이 서서히 제 기능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현욱은 뒤흔들리는 터널 안에서, 눈을 감고, 감각을 확장했다.
즉, 마나를 발현하여 발산했다.
그러자 수백 미터 거리에 있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하나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 익숙한 그 무게감…….
'이제, 나에게 와라—’
이현욱은 그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마치 수백 마리의 물소가 내달릴 듯, 혹은 기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듯한 격한 진동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감히 그런 묘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콰—과—과—과——!
이건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지진이었다.
이 거대한 땅이 갈라지고, 부딪히고, 뒤틀리는…….
콰—과—과—과——!
그때, 균열이 일어났던 천장이 통째로 무너지며 개폐되더니, 무언가 떨어지며 바닥에 내리박혔다.
쾅——!
그건, 흑색의 날을 지난 거검, 모글레이였다.
이현욱이 그 거검을 허공으로 띄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장준걸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게 어떻게…… 이 땅은, 네놈의 병력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텐데……."
그의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렸다.
"……이건 말도 안 돼.”
그의 말처럼 이곳은 중국의 영토이므로, 중국 정부의 허락 없이 타국의 무기가 함부로 전개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 모글레이가 떨어졌다는 건, 저걸 떨어뜨린 운송수단이, 이현욱의 군대가 하늘에 떠 있다는 뜻이 아니던가?
“어, 어째서…… 이건 영토 무단 침범이고, 사실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여기까지 도달할 수는……."
이 나라의 주체인 공산당, 그중에서도 실세인 공안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빌런이 장악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스틸레인의 병기가 혹여나 이 땅에 진입할까 봐 감시망을 최대치로 가동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마술과 같은 장면이었다.
그에 대해서 이현욱은, 너희 나라의 방공 능력을 기만하여 저궤도에 ‘워박스’를 띄우고 하늘에 비공정들을 띄워 놓을 만큼, 마법공학이 발전했다고 말해줄 수도 있었으나…… 단 한 마디로 설명했다.
“……이게 바로, 내가 만든 초격차다.”
***
그 시각, 동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알랭 지암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기침을 토해냈다. 온 세상이 흙먼지로 뒤덮였기 때문이었다.
“……콜록! 콜록! 썅!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일순간, 천지가 개벽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천천히 희뿌옇게 일어난 흙먼지를 해치고 앞으로 나아갔고,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쿠구구구.......
산 한쪽 측면이, 마치 신이 도끼로 내리친 듯이 으스러져 있었는데, 지금도 산사태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가, 갑자기 왜 산이 무너지고 지랄이야!”
그리고 다른 의미로 그의 계획이 무너질 수 있음을 뜻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흙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는 빌런 한 명을 일으켜 세웠다.
“이봐, 어서 가서 스틸레인을 확실하게 죽여!”
“으…… 입구가 무, 무너져서 이제는……."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쉭—
그 남자의 목을, 무언가가 긋고 지나갔고, 그는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풀썩 쓰러졌다.
"응?"
그것은 한 줌의 바람…… 아주 날카로운 바람이었다.
그리고 희뿌연 흙먼지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돌풍이 불어닥쳤다.
그곳으로 한 여자가, 김세희가 걸어 나왔다.
“……이것 봐라, 사장님이 나한테 당신을 감시하라고 한 이유가 있었나 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미소로 알랭 지암을 노려보았다.
"……뭐?”
“지금 내가 다 들었는데, 유치하게 발뺌할 거야?”
그때, 흙더미 한 면이 폭발하더니 그 뒤에서 빌런들이 한 무리가 몰려나왔다. 그 숫자가 못해도 십여 명이었는데, 그들은 상황 파악을 하더니 김세희를 둘러 쌌다.
그들을 향해, 알랭 지암이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저년을 죽이고 스틸레인을 처리하러 간다!”
그러나 김세희는 코웃음 쳤다.
“하— 고작 그 정도 숫자로 되겠어?”
그리고 그제야 알랭 지암은,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를 눈치챘다.
웅—웅—
어느새, 김세희의 등 뒤로 십여 대의 비공정이, 클로킹 모드를 해제하며 등장했다.
"아니, 우리가 이 먼 곳까지 그냥 올 줄 알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