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98화 (198/221)

198화.  < 용사, 축적된 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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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장면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현욱이 제시한 청사진에 전 세계가 반응했다.

- 스틸레인, 깜짝 레이드 생방송을 통해서 자신이 종말을 막아낼 ‘용사’임을 또 한 번 증명하다.

- 우리가 스틸레인을 믿어야 하는 이유, 새 지평을 열어줄 기술 스킬 ‘마법공학’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그 기류 역시 금방 변하고 말았으니.......

그가 ‘레비아탄’의 사체를 가지고 라퓨타로 돌아온 지 11시간이 지났을 때, 이번에도 마왕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기 때문이었다.

즉, 마왕 역시 기류를 움직이고자 노력 중이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다름 아닌…….

- [속보] 마왕, 뉴욕 상공에 등장 (1보)

***

"오, 맙소사……."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타임스 스퀘어를 오고 가던 수많은 이들이 마치 일시 정지한 듯 멈춰선 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그들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웅—웅—

여전히 세계 최고의 도시로 불리는 뉴욕의 맨해튼, 그곳의 하늘에 ‘죽음의 꽃’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은 숱한 외계의 침공을 다룬 영화에서 등장했던 뻔한 한 장면처럼, 마천루 위에 고고히 뜬 채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을 굽어보고 있었다.

웅—웅—

마치 언제든지 짓밟을 수 있는 개미 떼를 관찰하듯이 오만하고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또한, 그 주변으로 숱한 비행 언데드가 떼 지어 날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그중에서는 언뜻 봐도 남다른 위압감의 ‘본 드래곤’도 한 마리가 보였다.

이름하여 죽음의 꽃…… 이미 전 세계 그것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 시각,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 시사 방송이자 뉴욕에 연고를 둔 <킬 더 몬스터>는 초상집 같았다.

- ……하— 저게 하필 뉴욕으로, 우리의 머리 위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 저 비행체는 며칠 전에 켈리포니아, 1차 웨이브 침식 지역의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를 공격했던, 그 대량살상 병기 같은데요.

- 예, 맞습니다. 일명 죽음의 꽃이라고 불리는 존재로서 굉장히 넓은 지역을 죽음의 가스로 도포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목격했죠.

- 정말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단 하루 만에 그동안 인류는 공략조차 실패했던 그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를 깡그리 다 죽였으니까요.

- 예, 그때 그 장면을 보고, 각국에서도 저게 침공해 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을 테지만…….

- 그게,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죠.

그렇게 전 세계의 이목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끌어당긴 뒤 마왕이 취한 행동은…….

- 아, 지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바, 방금 마왕 측에서 전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이내 화면이 전환되며 뉴욕 상공의 죽음의 꽃을 비추었고, 그 아래에 ‘마왕의 메시지’라고 표시되었다.

- 지금, 함께 들어보시죠.

이어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뉴욕을 벗어나려는 자가 있다면 뉴욕 전역에 독가스와 맹독의 비를 내릴 것이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가 마음을 먹는 순간 수백만 명의 민간인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저항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오래 살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내 시야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게 끝이었다.

그저 아주 짧고 굵은 협박…… 심지어 요구사항도 없었다.

- .......

이에 <킬 더 몬스터>의 MC들조차 당황을 금치 못했고, 한동안 오디오가 텅 비며 끔찍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 어…… 그러니까…… 마, 마왕 측에서 무슨 이유로 뉴욕 시민들을 인질로 잡은 건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미국 정부 측에서 거듭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못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순간에 떠오르는 이름은 단 하나였다.

- 이게 무슨 일인지, 스틸레인은 알고 있을까요?

- 이제는 솔직히…… 정부 측이나 국내 길드 연합의 대응보다 스틸레인, 그의 대응이 필요할 때 같습니다.

- 예, 그가 나서줘야만 합니다. 이 방송을 스틸레인이 보고 있다면 부디…… 해답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

온 세상이, 마왕의 의도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딱 한 명 ‘용사 특전’을 얻은 이현욱만은 달랐다.

그는 직접적인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 (!) 마왕이 ‘마왕성’ 건립을 시작했습니다.

* 마왕성이 완성될 경우, ‘악의 난립’이 시작되며 해당 지역에 24시간마다 무작위로 1개의 ‘게이트’가 열리며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는 마왕’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뭐?’

그 내용은 꽤 충격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군단을 무한 공급받는다는 거잖아?’

그 무작위 게이트에서 고블린이 나온다면 별거 아니겠지만, 만에 하나 드래곤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가 된다.

“……일이 복잡해졌군.”

이현욱은 전 세계의 아이템을 긁어모아서 마법공학으로 가공하여 최대한 많은 무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마왕과 격차를 벌릴 수 있을 테니…….'

그가 생각하기에, 네크로맨서와 마왕이 들고 있는 아이템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그 누구보다 귀한 아이템을 깡그리 긁어모았을 놈들이지만, 차원 이동 시에 그 모든 걸 들고 올 수는 없었을 거다.’

이현욱이 지켜본바, 모든 차원 이동자는 혼자서 넘어왔다.

즉, 몸에 걸친 게 그들이 가져온 아이템의 전부일 것이었다.

‘물론, 네크로맨서는 아공간 관련 스킬을 따로 보유하기는 했지만, 나처럼 공중투하장치를 잔뜩 들고 다니는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무기의 질적.양적 측면에서 앞서 나갈 수 있고, 그 덕분에 시간은 아군이라는 게 이현욱이 계산이었다.

하지만 마왕성이 완성되고 ‘악의 난립’이라는 게 시작된다면, 그리하여 24시간마다 1개 게이트 규모의 몬스터 병력이 마왕 측에 합류한다면…….

‘……결국, 시간도 온전히 내 편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까?

‘지금처럼 마왕이 본격적으로 나서기를 기다리기보다, 오히려 마왕을 찾아서 선제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목표물’은 어느 정도 명확해 보였다.

이현욱은 TV에 나오는 뉴욕을 바라보았다. 저곳이 ‘마왕성’ 건립지라고 보는 것이 현재 상황상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뉴욕 시민들을 인질로 잡은 건가?’

이렇듯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현욱은 어딘가 찝찝함을 느꼈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드러내다니…… 영 수상하다. 마왕성 건립이 시작되면, 내가 그걸 노릴 거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데 왜, 어떤 목적으로, 하필이면 가장 시선 끌기 좋은 뉴욕을 마왕성 건립지로 선정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눈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걸렸다.

“—음? 저건…… 죽음의 꽃 본체가 아니잖아?”

그는 죽음의 꽃의 생김새를 질리게 보았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이질감은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죽음의 꽃을 비추고 있는 TV 화면을 일시 정지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가 아는 ‘죽음의 꽃’은 저것보다 더 컸다. 그리고 꽃잎 역시 저런 핏빛이 아니라 보라색에다가 붉은 점박이들이 난 모양새였으며, 꽃 중심부에서 기둥처럼 피어나는 술의 형태도 판이해 보였다.

그는 그게 ‘수술’과 ‘암술’의 차이라는 것을, 탈로스에게 질문했고, 탈로스가 재빨리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서 말해주었다.

즉, 완전히 다른 죽음의 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두 번째 죽음의 꽃을 뉴욕 상공에 배치했는지, 그걸 파악해야 한다.’

이현욱은 그 답을 어렵지 않게 도출해냈다.

‘저건 미끼일 가능성이 크다.’

이현욱은 더욱 확실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 이교준 팀장에게 부탁하여 뉴욕 상공—죽음의 꽃을 찍은 위성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결과…….

'......역시, 놈은 저곳에 없다.’

이현욱은 전생에 네크로맨서라는 최악의 적을 공략하기 위하여 놈의 전력을 샅샅이 조사했었다.

그리고 죽음의 꽃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죽음의 꽃의 ‘술’ 부분이 일종의 안테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네크로맨서의 마나를 수신한 뒤, 뿌리 부근에서 마나를 방출— 일대에 있는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공유기’ 역할이었다.

'그를 통해서 훨씬 많은 언데드를 조종하는 거다.’

그런데 5분 간격으로 촬영된 뉴욕 상공의 위성 사진—죽음의 꽃의 사진을 볼 때, 술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원래, 근처에 네크로맨서가 있기만 해도 그쪽으로 꿈틀거린다.”

그래서 언데드 군단 사이에 섞여 있는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알아내는 가장 기본 방법으로, 술의 움직임을 파악하곤 했었다.

즉, 저곳에는 네크로맨서가 없었다.

그 뜻은 마왕도 없다는 것이었다.

즉, 저곳이 마왕성 건립지가 아니었다.

‘그래, 놈은 내가 저곳이 마왕성 건립지라고 여기길 원하는 거다.’

즉,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었다.

진짜 마왕성이 건립될 때까지…….

하지만 이미 죽음의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아는 이현욱은 속지 않았다.

그는 묘한 웃음을 띠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을, 놈들은 전혀 모른다.’

이처럼 이현욱이 미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네크로맨서와 마왕으로서는, 나름대로 기가 막히는 미끼를 뿌리고 있다지만 좀처럼 손맛을 볼 수 없었다.

‘이 사실이, 마지막 순간까지 큰 무기가 될 거다.’

하지만 진짜 마왕성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것이 완공되는 걸 막을 수 없을지라도, 결국 마왕을 이기기 위해서는 마왕성을 공격해야만 했는데, 그 위치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를 싹 다 뒤질 수는 없고…….'

어쩌면 마왕성 건립지가 심해 깊은 곳일지도 모르는바, 그건 결코 효율적이지 않았다.

‘내가 후긴과 무닌을 다룬다면,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지역을 특정하는 게 먼저다.’

이현욱이 한동안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그에게 마나 교신 한 통이 들어왔다.

그 내용은, 알랭 지담이 급히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또 어떤 아이템을 구해왔다면서…….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있었군?’

지금까지 잘 길들여 놓은 들짐승이 한 마리 있다.

‘그놈을 풀어서, 무리가 있는 굴을 찾아낸다.’

***

"......제가 이 아이템을 얻어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시면, 조금은 눈물이 나실지도 모릅니다.”

알랭 지암, 그가 오더 타워의 소파에 앉은 채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후…… 호사네요, 여기는 정말, 전망이 끝내주는군요. 하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일 테니까요.”

이곳 오더 타워는 사방이 유리창이었다. 그 덕에 라퓨타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풍경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바다처럼 펼쳐진 파노라마의 파란 하늘, 구름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도심…… 외부인으로서 그 장면을 본 건 알랭 지암이 최초인 바, 그는 감탄한 듯 화사하게 웃었다.

‘하— 드디어 내가 여기까지 왔다.’

이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간 얼마나 비참하게 머리를 조아렸던가?

온 세상이 알아주는 자리에 앉아 있고, 그에 따라서 자존심이 꽤 강한 알랭 지암으로서는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지 걸 수 있는 갬블러이기도 했다.

‘라퓨타, 스틸레인의 심장부…… 여기까지 왔다는 건 이미 놈이 나에게 마음을 다 열었다는 거다. 그리고 뉴욕에서 벌어진 일로 마음도 다급해진 상황일 테고,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엄청난 이익을 물어다 준다면…….'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서 자신과 마주 앉아 있는, 자신이 내민 태블릿 PC를 살피는 이현욱을 곁눈질했다.

'......절대로 거절할 수 없고, 올가미에 걸릴 거다.’

이현욱은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전설 등급의 아이템인 ‘여의봉’이 중국의 한 게이트 안에 있는데, 획득 귀속이란 말이죠.”

그렇다, 무려 ‘여의봉’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의 무기가 아니던가?

"예, 정말 다행히도 그걸 확보한 <진> 길드 측에서도, 내부에서 누구에게 이 아이템을 줄지 논쟁을 벌이고, 유혈사태도 벌이고 하다가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 퍽 촌극이었겠지만, 우리한테는 운이 좋았죠.”

이현욱은 잠깐 침묵했고, 알랭 지암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이현욱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주겠다면, 제가 안 갈 수가 없죠.”

"하하— 역시 그렇죠?”

"예, 안 그래도 곧 뉴욕으로 가서 마왕과 부딪혀야 할 때가 와서 조금이라도 전력을 보강해야 하니 말입니다. 이런 귀한 물건을 또 구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제가 가서 냅다 잡아버리고 싶었지만…… 지구를 위해서—”

그는 검지를 들어 올려서 이현욱을 가리켰다.

"—제 모든 걸 당신에게 투자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정.재계와 오랫동안 뒤엉키면서 처세술을 익혔고, 이런 노골적인 워딩이 의외로 아주 잘 먹힌다는 걸 알았다.

제아무리 많은 걸 손에 쥔 사람일지라도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매사에 느끼고 싶어 한다.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거듭해서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입에 발린 말은, 그것도 촌지를 쥐여주면서 하면 웬만해서는 먹힌다.’

그건 스틸레인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현욱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므슈, 정말로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현욱이 손을 내밀었고 알랭 지암이 맞잡았다.

"그러면 지금 바로 가실까요?”

***

이현욱은 김세희를 비롯한 희망 길드원 몇 명과 함게, 알랭 지암을 따라서 여의봉이 잠들어 있다는 곳, 중국 땅 어딘가에 열려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웅—

이현욱은 알랭 지암이 마련한 양방향 포탈을 4개나 거쳐서 중국 땅에 도착했다.

그곳은 형산(衡山)이라는 중국의 5대 험한 산지 중 한 곳이었는데,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키가 작지만 다부진 체구의 남자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귀와 코에 온갖 피어싱을 했다는 점이었다.

- 플레이어 (LV:72)

* 빌런, 악마 승배자

이현욱은 그를 알아보았다.

'……대륙의 5악 중 한 명인 장준걸이다.’

그는 암성(暗星)소속으로, 중국 빌런 수뇌부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동안 ‘여의봉’을 사용했던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즉, 여의봉은 이곳에 확실히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이현욱에게 다가오며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야, 실제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진>길드의 부마스터 장준걸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에는 마스터가 직접 나오셔야 하지만, 하필이면 지금 큰일이 있어서요.”

그가 손을 내밀었고 이현욱이 맞잡았다.

그리고 그의 인도를 따라서 산길을 올랐다.

한 십여 분쯤 더 갔을까…….

“자, 이곳입니다.”

그러나 그저 온통 나무와 돌무더기만 보였다.

“……광역 신기루 결계군요?”

"오, 역시나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그건 ‘북악산 대성소’에도 쳐져 있는 위장 마법이었다.

이내 조금 더 올라가서 한 지점을 통과하자—

- <광역 신기루 결계>를 통과하였습니다.

꽤 넓은 구릉지가펼쳐졌다.

그곳에는 몇 대의 헬리콥터가 세워져 있었고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완전무장한 채 경비 중이었다.

그리고 웬 동굴이 하나 보였다. 큰 철문으로 막혀 있는 걸 볼 때, 그곳이 문제의 게이트가 열린 공간인 듯했다.

"큼, 그런데 이 장소는 애로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예?”

이현욱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장준걸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기 저 동굴 안에 잠들어 있는 제천대성의 무구를 두고 우리 길드 내에서 3개의 분파 간의 크고 작은 싸움들이 있었거든요.”

"예,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결정한 게, 여의봉의 주인을 가리기 전에 좀도둑이 들지 않게 저 안에 들어갈 때는 3개 분파가 함께, 단 1명씩만 들어간다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굴 자체가 무너지도록, 마법 회로를 세겨뒀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동굴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분명 온갖 마법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저걸 해제하려면, 한 사나흘 걸린다는데, 우리 모두에게 그럴 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애를 썼군.’

이번 함정은, 상당한 공을 들인 듯했다.

이현욱은 고개를 돌려서 김세희를 바라보았다.

"김 팀장님, 저 혼자 갔다 올 테니 잠시 대기해주세요."

"아……."

그녀는 자초지종을 모르고 있었기에, 이현욱이 홀로 이상한 곳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아닌 이현욱이 아니던가? 그 누가 그의 안전을 운운하겠는가?

“예, 그러면 저희는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김세희보다 앞서, 함께 온 알랭 지암이 말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준걸이 내미는 팔찌를 받아들었다.

"자, 이걸 착용하셔야지만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삼협의 의리

- 효과 : 특정 결계를 출입할 수 있다.

이현욱은 팔찌를 착용하고 장준걸과 또 한 명의 빌런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알랭 지암, 그리고 중국 측 플레이어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

그리고 역시나, 함정이었다.

“……이걸 어쩌나, 그 대단한 스틸레인께서 뇌물을 몇 번 먹더니 눈이 돌아가셨는지 제대로 걸리셨잖아?”

“으흐흐— 이번에는 정말 틈이 없을 거다.”

그 동굴 안에는 당연하게도 게이트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함정의 수준은 의외로 뻔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이현욱은 손목 각인에서 AD-2를 소환했으나, 이상하게도 각인이 반응하지 않았다.

이에 장준걸이 웃으며 말해다.

“큭큭— 이 동굴은 ‘마나역류석’으로 도배되어 있다. 즉, 이 안에서는 너도 물론이고 우리의 마나도 제구실을 못 해. 즉, 스킬을 못 쓴다."

"......."

"널 잡으려고 우리가 이 시설에 얼마를 쓴 줄 아나? 네놈이 공들여서 만든 그 이상한 병기창만큼의 돈이 들어갔을 거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어 올려서 천장과 벽을 살폈다.

일명 ‘마나역류석’이라고 불리는 희귀한 재료 아이템으로 꼼꼼하게 발려 있었다.

그토록 구하기 어려운 역류석으로 이 넓은 공간을 도배하다니…… 본디 역류석은 기껏해야 결계를 해제하기 위한 도구로 쓰일 뿐이었다.

그것은 오리할콘과 가격이 엇비슷해서, 이 거대한 공간을 빽빽하게 채울 정도라면 정말로 큰돈을 써야만 했다.

이는 중국이라는 폐쇄적인 빅 마켓을 잠식한 빌런이었기에 가능한, 말도 안 되는 함정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빈틈없이 준비했군?”

"그래, 너는 너희 소국의 지원을 받아서 그 병기창을 세웠다고 했나? 그렇다면 이 대국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우리가 작정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나?”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 정도로 준비한 함정이라면, 그 어떤 플레이어일지라도 당할 수밖에 없겠지……."

"으흐흐— 잘 아는군? 그래서 살려달라고 빌기라고 할 건가? 이 안에는 CCTV 같은 건 없으니까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이현욱은 말없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294초 남았다.”

"뭐?”

"그 안에 나를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그렇지 않으면......."

단 하나의 틈도 없다면, 강제로 만들면 그만이다.

“……이 산이, 통째로 무너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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