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 종말 대비, 총력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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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 시간 뒤, 긴급 회담이 끝났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월드 퀘스트> 공략을 위하여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의결했다.
물론, 이 자리에서는 수긍하는 듯했지만 돌아서면 귀신같이 딴소리할 인물도 여럿 있을 테였다.
그래도 이현욱으로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유력 플레이어가 대폭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었다.
‘이제, 용사 선출 투표는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이제 용사 선출 투표까지 남은 시간은 단 26시간으로, 딱 하루 뒤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다.
"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만……."
"큼, 저도 그 자리에 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이렇듯, 이현욱에게 접견을 요청한 플레이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이현욱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그가 앞서서 말했던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내가 그 군수 물자 확보와 관련된 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아둔 재료 아이템들이 꽤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따가 자세히……."
이들은 이현욱의 힘을 인정하고, 그에게 빌붙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현욱으로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원격으로 나누자고 정중하게 거절한 뒤, 프리드웬으로 돌아와 ‘긴급 복귀’를 사용一라퓨타로 이동했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지금도 나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적들의 제1 목표인바, 이렇게 위치를 노출한 채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제2 목표가 될 에밀리아 뮐러와 도널드 해리스에게도 자신이 호출할 때까지 웬만해서는 위그드라실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해 두었다.
'이제는 마지막 전투를 위해서 모든 걸 보존하고,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온 세상의 모든 자원으로 무기를 만든다.
그리고 모든 이들을 병력으로 삼아야 한다.
일명 ‘총력전(總;b戰)’을 준비해야 한다.
‘훗날 되돌아보면 과했다고 생각될 수준으로,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물자를 찍어내야 한다.’
그는 라퓨타로 긴급 복귀한 직후, 수천 미터 상공에서 램프도어에 선 채, 지상을 굽어보았다.
그러자 이 나라, 대한민국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서 건설한 역사상 최고의 마법공학병기창, 일명 <태백 병기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一 못 보던 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했네요.”
"그러게, 무슨 몇십 년 어디 갔다가 온 기분이잖아, 완전……."
등 뒤에서 박준모와 김세희가 차례차례 감탄사를 내뱉었다.
산 중턱에 지어진 수십 동의 거대한 공장들…… 그곳으로 수많은 헬리콥터와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으며, 그 엄청난 물자를 검문검색을 하는 인원도 수백 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라퓨타를 가져와서 축복 부여한 뒤 생산력이 몇 배로 증가했다.’
그렇게 수많은 생산설비가 극한의 효율로써 바쁘게 돌아가면서 병기들을 양산하는 장면은 실로 감탄스러웠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군수 물자를 미친 듯이 찍어냈던 상황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 역시 초창기부터 마법공학에 투자하는 게 정답이었다. 지금껏 씨를 열심히 뿌리고 이제야 제대로 수확하는 기분이다.’
이른바 마법공학(魔法I學), 그 이름은 훗날 게임으로 변한 세계에서는 ‘산업 혁명’과 같은 느낌으로 불리게 된다.
그 이전 시대에는 마치 수렵채집시대처럼,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는 게이트 안 던전을 전전해야 했다.
하지만 마법공학이 발달한 이후부터는 플레이어들의 무장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기 시작했었다.
‘8년 뒤의 세계에서 넘어온 네크로맨서가 밸런스 붕괴라면, 이 정도 마법공학 기술은 8년 후와 비등하다. 그러니까…… 아군에게 8년 뒤 수준의 무장은 맞춰줄 수 있을 거다.’
이현욱은 후긴을 이용해서 <태백 병기창> 시찰을 마친 뒤, 라퓨타 안으로 들어가서 강정두와 강희설을 만났고, 그들에게 무기 제작 현황을 짧게 보고 받았다.
“……지금까지 180t급 소형 비공정 43대, 350t급 중형 비공정 33대, 거신병 수송선으로 쓸 수 있는 2,450t급 대형 비공정이 11대 건조되었고, 전부 비행 테스트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44대가량이, 완성되긴 했지만 비행석과 마나 엔진 수급 부족으로, 실전 배치가 안 되는 실정입니다.”
첫 만남 때는 금방이라도 거꾸러질 듯 무력해 보였던 노인이 이제는 회춘한 듯이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느릿느릿했던 말투도 사무적으로 교정된 듯했다.
이는 그가 대장장이 플레이어로서 활약하며 레벨이 지속해서 상승하면서 신체 능력이 조금씩 좋아졌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수백 킬로그램짜리 부품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닐 정도라고 했다.
"그 부족한 물품들도 곧 공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우리를 도와줄 테니까요.”
“오, 역시 그렇군요.”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더니, 이내 다시 보고를 이어나갔다.
"아, 그리고 거신병은 총 21기가 완성됐는데, 이게 인공지능이 아직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좀…… 영구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알아보니까, 중앙 지휘 코어 같은 걸 제작하면, 일괄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게 가능하더랍니다. 이게 아직 개발 중이긴 하지만, 곧 시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강희설이 자기 차례라는 듯 앞으로 나와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자자一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 마계조 드래곤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거죠! 뭐, 아직은 몇 가지 오류가 있지만, 곧 정식으로 선보일 수 있을 거예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 좋습니다.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질 테니 그때까지만 고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현욱은 두 사람 외에도,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면서 격려했다.
그 이후, 이현욱은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의 리더인 소일러 와이드비어를 찾아갔다.
그는 작업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이현욱이 오자 맥주잔을 황급히 숨겼다.
“큼一"
이현욱은 못 본 척, 그에게 한 가지 아이템을 내밀었다.
"오一 이건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아닌가?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그는 얼굴에 손에 묻은 검댕을 바지에 쓱쓱 닦더니, 이현욱이 내민 ‘수다르사나’를 천천히 살폈다.
"그걸 이용해서 거포(巨砲)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포를요.”
“오오一”
이현욱의 말에, 그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지금껏 수다르사나는 이현욱의 개인 병기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전생, 그것은 라퓨타에 장착된 초대형 병기인 ‘수다르사나캐논’으로 기능했었다.
‘단 한 방으로, 연합군의 수상 함대를 수장시켰었지…….'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는 이현욱도 몰랐다.
그러나 그걸 제작한 게 다름 아닌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 부족인바, 이들에게 맡기기만 하면 어떻게든 비슷한 물건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으하하一 이 정도로 화력을 머금은 아이템이라면, 실로 멋진 물건이 탄생할 것 같군! 그래, 믿고 맡겨주게나, 내가 최고의 물건을 탄생시킬 말이야!”
"그리고 그게 완성되면, 앞으로 전설 등급 무기를 몇 개 더 드릴 테니까, 그걸로도 초대형 병기를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오…… 좋아 좋아, 거함 거포의 군단을 만들 생각이라면,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해서 실력 발휘를 할 테니까 맡겨만 줘!”
***
그렇게 밀어두었던 몇 가지 업무를 마친 이현욱은 오더 타워로 돌아가는 길에 탈로스를 호출했다.
"아, 탈로스, 서은하 대위는 지금 어딨어?”
「예,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어…… 현재 ‘제1 초현실 훈련장’에서 훈련 중인 걸로 파악됩니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라퓨타 안에서만 있었다. 왜냐하면, 언제 부화할지 모르는 드래곤 알 옆에 항시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간 이현욱이 종종 연락해서 안부를 묻긴 했지만, 그녀처럼 사명감 있는 플레이어를 이런 곳에서 가만히 둔 게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아는 한 서은하는 전장의 선두에 서야지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고,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TV 너머로 전투를 지켜보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다.
‘그러니까 지금 날 따라서 라퓨타에 온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현욱은 서은하를 스카우트할 때, 자신이 기획한 공략 팀에서 일하라고, 거창하게 말했었기 때문에 부채감이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1 초현실 훈련장’으로 향했다.
띵一 하며 엘리베이터가 열림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一 쿵一
큰 진동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아마도 서은하가 훈련 중인 듯했다.
그 소리를 따라서 한 코너를 돌자, 거대한 유리창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웬 숲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 초현실 훈련장은 ‘월드 스톤’을 조작하여 실제와 똑같은 가상 공간을 형성, 사실상 실제 전투를 치르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경험치가 주어지는바, 아주 안전하게 능력치 상승을 꾀할 수 있는 사기적인 시설이었다.
쾅!
그때, 서은하가 한 나무 뒤에서 튀어나와서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아다만트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채, 검과 방패를 쥐고 있었다.
- 플레이어 (LV:79)
* 특수 직업(드래곤 나이트)
‘뭐야, 레벨이 확 올랐잖아? 그동안 얼마나 훈련을 했길래…….'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녀의 레벨은 72였다. 그런데 초현실 훈련만으로 79가 되었다니…… 훈련량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콰직一
그때, 두꺼운 나무가 직각으로 꺾이며 그곳에서부터 총 4마리의 오우거가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서은하를 향해 십여 미터짜리 쇠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어어어一
- 오우거 전사 (LV:98)
- 트윈 헤드 오우거 (LV:101)
- 오우거 전사 (LV:98)
- 트윈 헤드 오우거 투사 (LV : 111)
쾅一!
그녀가 바닥을 구르며 쇠몽둥이를 피했고, 바닥이 싱크홀이 발생한 듯 움푹 팼다.
단 일격만 허용하더라도 웬만한 플레이어는 즉시 훈련 실패 판정이 뜰 것이었다.
‘이런, 꽤 무리해서 스테이지를 골랐군.’
이현욱은 서은하가 저 스테이지 공략에 실패할 거라고 봤다.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 무리라면 그녀가 탱커로서 버텨내는 건 가능할지라도, 직접 부딪혀서 리타이어 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녀의 실력과 별개로, 방어 중심인 기사 계열의 한계인 것이었다.
그런데…….
우우우우一
"응?"
그녀의 몸 주변으로, 성기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의 마법진들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철퇴와 장창이 쏘아지며, 3마리의 오우거들을 휩쓸었고, 그 뒤에 펼쳐져 있던 나무들까지 으스러뜨려버렸다.
콰一과一과一과——!
이현욱은 멍한 얼굴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저건…… 드래곤들이 쓰던 스킬이잖아?”
그래, 드래곤의 마법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용언(龍言)을 바탕으로 쓸 수 있는, 일종의 권능이었다.
‘저걸 왜, 서은하가 쓰고 있는 거야?’
전생, 드래곤이 공략된 이후,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드래곤의 육신을 이용하여 아이템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래곤의 육신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드래곤의 육신은 드래곤의 권능一즉 용언을 이용해야지만 특유의 격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저것도 드래곤 나이트의 능력인 건가?’
잘 생각해보니 전생의 드래곤 나이트도 드래곤의 마법을 사용하긴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늘 드래곤의 등 뒤에 올라탄 채 전투를 치렀으니, 그게 드래곤 나이트의 힘이 아니라 드래곤의 힘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방금 서은하가 쓴 걸 보면, 드래곤 나이트 능력의 폭이 예상보다 훨씬 넓은 듯한데…….'
그렇다면 이현욱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은하는 앞으로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 듯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다들 알아서 모든 걸 준비해주고 있군.’
이현욱은 자신이 라퓨타에 온 뒤 묘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는 전생에 동료들에게 느꼈던 든든한 신뢰감이었다. 그러나 회귀 이후에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그럴 것이, 전생의 실패를 바꾸기 위해서 홀로 독식하고 홀로 처리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저절로 동료들이 알아서 제 몫을 해주기 시작했으니…… 괜스레 묘한 충만감이 들었다.
그때, 훈련이 종료되면서 숲의 지형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텅 빈 원형 공간만이 남았다.
"후…… 어?”
그 안에 홀로 선 서은하가 고개를 돌리다가, 창문 밖에 서 있는 이현욱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마를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다만트 풀 플레이트 아머의 파츠를 하나둘씩 풀었다. 그 무직한 쇳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다.
텅一 텅一
“……언제부터 훔쳐보고 있던 거야?”
그녀는 훈련장 문을 열고 나오며, 생수병을 들이켰다.
“그나저나 이제는…… 서울의 구원자도 아니고 무려 지구 용사라고 불러야 하나?”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고 이현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용사’라는 표현은 아무리 들어도 그 특유의 싸구려 같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건…… 아직은 용사 투표가 끝나지도 않았죠. 그런데 서 대위님, 못 보던 사이에 완전히 달라지셨군요?”
"응? 나?”
그녀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말했지만, 눈빛이 빛나는 게, 알아봐 준 게 기쁜 모양이었다.
"예, 방금 오우거 4마리를 일격에 보내는 걸 봤습니다. 그 정도면…… 웬만한 A등급 마법사 플레이어보다 강력한 화력 아니겠습니까?"
이에 그녀의 입꼬리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는 얼마 전에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에게 실망했었다.’
이현욱이 그녀를 데리고 팔달산 드래곤 미궁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희망 길드원들의 실력을 보고는 다소 기가 죽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열심히 수련한 모양인데, 성과가 분명히 있으니 기쁠 터였다.
"아, 뭐, 그냥 드래곤 나이트의 스킬이 하나씩 생기더라고, 확실히 공격력이 향상한 느낌이긴 해.”
이현욱은 피식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드래곤의 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는 한쪽 벽면을 가리켰고, 그곳에 마법 방어막이 씌워진 유모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이현욱이 다가가서 그 검은 알을 확인했다.
그런데…….
- (!) 해당 알은 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87%)
‘응?’
이제는 그의 ‘인사이트 렌즈’로 이런 세부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러면 며칠 내에 부화할 수도 있다. 무려 신성력을 품은 드래곤이…….'
이처럼 일이 하나씩, 생각 이상으로 잘 풀려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귓속으로 탈로스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마, 마스터一 지금 즉시 확인하셔야 할 긴급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금, 마왕이…… 미국 땅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
이현욱은 그 즉시 서은하와 함께 오더 타워로 복귀했고, 도착하자마자 김세희가 말했다.
"그 자식이 또 나타났어요.”
그녀는 검지로 한 모니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TV 뉴스 화면이었는데, 꽤 높은 고도에서 한 지역을 내려다보는 걸 볼 때 위성 관측 사진인 듯했다.
- [LIVE] 캘리포니아 침식 지역 ‘마왕’ 등장
"뭐야, 미국이라더니 캘리포니아 침식 지역이야?”
이현욱은 설마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나 싶어서 급히 달려온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저건 이현욱도 예상하던 장면이었다.
지금껏 마왕이라는 놈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강력한 몬스터 무리를 복속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현 시점상 지구상 최강의 몬스터 집단은 단연 1차 웨이브로부터 탄생한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 종족이었으니,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경악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저, 저거…… 그 죽음의 꽃인가 그거 맞죠?”
김세희가 화면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황무지 위에 떠 있는 비행 언데드들이 화면에 잡혔는데…… 그 사이에, 거대한 물체가, 거대한 꽃 한송이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죽음의 꽃이다.’
며칠 전, 네크로맨서와 두 번째 격돌 당시 현 차원의 네크로맨서도 저걸 소환했었다.
그러나 그 크기가 차원이 달랐다.
그때 마주한 죽음의 꽃은 기껏해야 지름 30m 정도의 물체였는데…… 저건 족히 2km는 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그 보라색 꽃잎은 괴물의 혓바닥처럼 축 늘어져 있었으며, 하단부의 식물 뿌리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길게 늘어져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최종 형태다. 결국, 저걸 피워냈군?’
저게 바로 죽음의 라퓨타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던, 네크로맨서의 이동 기지였다.
첫 등장 때 저걸 소환하지 못한 건, 꽤 많은 생명력을 제물로 바쳐서 피워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피워냈군…….'
그간 복속시킨 몬스터들을 희생양 삼은 걸까? 어쨌든, 네크로맨서가 다룰 수 있는 최악의 병기가 이 세계의 하늘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의 뿌리 부근에서 뿜어져 살포되는 검은 연기가, 캘리포니아 일대를 안개처럼 뒤덮었고, 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잠식하고, 죽음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다시 일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 ……저 검은 연기가 장악한 지역만 하더라도 18헥타르에 이르며, 그 안에 갇힌 에이션트 레드 드레이크들은 수십 분 내에 죽게 되고, 결국 언데드로 되살아난다는 게, 현지에 관측소의 설명입니다.
TV 뉴스 진행자가 그렇게 말하더니, 탄식 섞인 목소리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예, 저건…… 감히 죽음의 모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이현욱은 에밀리아 뮐러, 도널드 해리스, 우성문 등의 최측근들과 긴급 화상 회의를 가졌다.
그들 역시 죽음의 꽃의 등장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고, 가장 먼저, 에밀리아 뮐러가 말했다.
- 저 정도 죽음의 힘이면…… 솔직히 나도 감당 못 해요. 하 썅, 진짜 짜증 나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게 계속 굴러 나오는 거예요?
그녀는 이제는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 그리고 저렇게 농도 짙은 죽음의 힘 안에서는 성검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 위그드라실을 통째로 뽑아서 날리지 않는 이상…….
그녀의 한탄에, 우성문이 고개를 내저었다.
- ......말 그대로 죽음의 모선이군요.
그런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현욱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도 만들어 버리죠.”
- 예?
- 응?
"저게 죽음의 모선이라면, 우리는 성스러운 모선…… 뭐 그런 걸 만듭시다. 사실, 안 그래도 이걸 제안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현욱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말했고, 모두의 표정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 어…… 어떻게 만든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잘 좀 설명해봐요.
"자,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비행 물체인 라퓨타가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에밀라아 뮐러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 그러니까 거기에다가, 성물을 달아서 움직이는 성소로 만들자, 그거예요?
"예, 맞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 ……아니, 근데 한계가 너무 명확한 게,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성물이라면 세인트 돔인데, 세인트 돔을 통째로 옮긴다고 한들 저 역겨운 꽃이 방출하는 죽음의 힘을 희석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에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말고, 우리에게는 더 큰 오브젝트가 있죠.”
이에 에밀리아 뮐러와 도널드 해리스가 동시에 말했다.
- 설마, 위그드라一
- 一지금 위그드라실을 말하는 건가?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다다시 내저었다.
“어…… 그건 너무 크고…… 강화도에 하나 더 있죠.”
그렇다. 아직 작은 신목인 신단수…….
그게 이현욱의 소유로 존재했다.
"......신단수, 그걸 통째로 라퓨타로 이식하는 겁니다."
- .......
"그리고 때마침 제가 아는 친구 중에서, 그런 일을 잘 해줄 원예 전문가들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