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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92화 (192/221)

192화.  < 마지막 분기점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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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전장, 오트리스 산에서 가장 깊은 곳에 생성된 거인의 성채에 도착한 플레이어들은 황망한 심경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요.”

그곳은 단 한 마리의 티탄도 없이 텅텅 비었다.

본디 이곳까지 진격해서 최후의 전투를 치른 뒤, 티타노마키라는 빅 이벤트를 승리로 장식하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그리고 솔직히, 아무리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 모였다고 해도, 빅 이벤트를 공략하여 얻게 될 막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 (!) 히든 변수가 발동하여 <전쟁 퀘스트 : 티타노마키아>가 <월드 퀘스트 : 마왕의 침공>으로 연장됩니다.

이는 그들이 텅 빈 성채로 들어와서 마지막 ‘빅토리 플래그’를 점령했을 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였다.

"아……."

이는 티타노마키아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마왕의 침공까지 공략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즉, 얻을 수 있는 건 제로였다.

"젠장, 이렇게 되는 게 말이 돼?”

"하……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지금껏 고생한 일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푸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실의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 훨씬 큰 재앙인 <마왕의 침공>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죠.”

"그래요. 곧 더 큰 전쟁이 다가오니까요.”

그들은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곧 더 큰 전투가 있을 테니 사사로운 감정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됐다.

물론, 모두가 투쟁심을 불태우며 남기로 한 건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 아니 꽤 상당수가 이미 한참 전에 항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긴, 네크로맨서의 등장 이후, 아무리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일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전투가 거듭되었으니, 기가 꺾일 수밖에…….'

그렇게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자신이 겁쟁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을 터…… 세상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등진 채 작은 배 안에 엎드려서, 마지막 순간을 외면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인간군상의 표준이라는 걸, 이미 멸망에 가까운 상황을 지켜본 이현욱은 아주 잘 알았다.

‘이런 말이 있었지, 게임이 시작된 이후로 모든 전사는 플레이어지만, 모든 플레이어는 전사가 아니다.’

뻔한 말이지만, 모두가 영웅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영웅들만이 남았다.

***

온 세상이 월드 이벤트를 대비하기 위해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곧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데, 두 손 놓고 있는 국가나 길드는 없었으니, 계엄령이 떨어지고 플레이어 총동원령까지 발령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인류는 생존본능이라는 본능 아래에 뭉쳐서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 세계 플레이어 협회 주도 긴급 회담 개최 예정, 전 세계 주요 플레이어들이 초당적 대응 나선다.

- 세계 플레이어 협회장 “이 사태의 구심이 될 플레이어는 단연 스틸레인, 그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G20 길드 연맹 세계 최대 규모의 아이템 무기고 개방 "'월드 이벤트’에 물자 지원 아끼지 않을 것”

물론, 그러한 소식 안에서도 노이즈가 뒤섞여 있었다.

- 反 스틸레인 세력 응집 ‘용사 선정’에 자체적인 후보를 추천하여 힘을 실을 것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 이 순간에도 장난질…… “우리 오빠 찍어주세요!” 세상의 운명을 건 용사 선정, 인기투표로 변질 우려

이내 스위스 취리히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유럽 지사에서 긴급 회담 장소로 결정됐고, 전 세계의 유력 플레이어들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현욱 역시 그곳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동 중의 프리드웬 안, 별도로 마련된 격실에서 이성윤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말씀을 믿어주셔야만 합니다.”

이현욱은 이성윤을 바라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그는 이전에 이성윤에게 약속했던 대로, 니콜라스 스틸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를 말해주었다.

즉 고든 프라이스의 정체를 밝혔다.

"......."

그 폭로를 들은 이성윤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역시,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저는 정보에 특화된 능력을 지고 있습니다.”

이현욱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눈에는 누가 빌런이고 가디언인지 보입니다.”

"음…… 눈이라면, 그것도 스킬인 겁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명 ‘호로스의 눈 조각’이라는 걸 흡수할 결과입니다. 그리고 ‘라퓨타’의 기능상 이 게임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요. 아, 니콜라스 스틸을 살해한 진범이 고든 프라이스의 소행이라는 건 에밀리아 뮐러와 함께 빌런들을 고문한 결과 알아낸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그럴듯하게 말했다.

"아, 에밀리아 뮐러…… 그녀는 니콜라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죠.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진실을 좇고 있었군요.”

"예, 하지만 암살 위협에 시달려서 그 이야기를 공표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성윤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고든 프라이스에 대한 농도 짙은 신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든 프라이스가 그저 니콜라스 스틸을 죽인 게 아니라…… 빌런의 리더라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고든 프라이스는 <블루트리>라는 세계 최고 기업의 오너이자 가디언의 후원자로서, 이성윤의 절친한 친우이기도 했다. 단 몇 시간전 까지만 해도 그는 고든 프라이스와 연락하며 아이템을 보급받고 정보를 전해 들었을 터…….

그런데 갑자기 그가 최악의 숙적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제아무리 이성윤일지라도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좀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이 가디언이라는 조직에는 시스템에 의한 강력한 구속력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이현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전생에 고민했었던 문제였다.

'그래, 가디언 소속인데도 어떻게 제약에서 벗어나서 빌런의 리더로 암약할 수 있던 건지는…… 나도 모른다.’

그에 관해서는 아직도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어떤 특별한 경우겠거니 하고 유추할 따름이었다.

"저는 충분한 근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외에 변수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빌런의 리더가 아닌 이상 제가 한 말은 전부 진실입니다.”

이현욱은 이성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단은 믿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이성윤은 정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가디언’이라는 대의를 함께해 온 이가 빌런의 중추라는 말을 믿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 일을 그르칠 만큼 미련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두 가지 정보를 모두 의심하면서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모든 게 밝혀질 거다.’

이제는 복잡하게 갈 필요도 없었다.

'곧 놈이 살해될 수도 있으니까…….'

만약, 네크로맨서의 몸에 기생 중인 마왕이 고든 프라이스라면, 지금껏 모든 차원 이동자가 그러했듯이 이 차원의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현욱으로서는 더 증명할 것도, 더 경계할 것도 없게 된다.

그때, 프리드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 곧 착륙합니다!

이현욱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우우우——

저 아래로 펼쳐지는 드넓은 헬기 포트 위로, 세계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수송기들이 이착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온갖 대공 병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수백 명의 플레이어 병력이 사방을 경계 중이었다.

온 세상의 힘이 이곳에 모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장대한 광경……

곧 이곳에서 마왕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결의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즉, 전 세계의 전력의 지휘권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서서 <티타노마키아>때 모인 전력도 상당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오늘, 전 세계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내야 한다.’

현재, 당연하게도 여론과 언론은 ‘용사’라는 특전에 적합한 자가 이현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사로 선출된다면, 전 세계의 전력을 좌우할 권한을 갖게 될 터一 이현욱은 전쟁 물자를 깡그리 모아서 강원도 병기창에서 무기를 최대한 많이 제조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궤도에 워 박스를 잔뜩 띄워서, 무한대로 쏟아부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전 지구가 총력전에 돌입하고, 그 자원이 이현욱의 손끝에 모이게 된다.

이현욱은 그 외에도 수많은 무기 체계를 만들어내서 운용할 계획을 정리하면서 회담장으로 나갔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정면으로 다가왔다.

그는 다름 아닌 알랭 지암이었다.

“……스틸레인, 이번 일은 티타노마키아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화두를 던졌다.

"......."

이현욱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껏 알랭 지암이 얼마나 끈질기고 추하게 이현욱을 물고 늘어졌던가? 둘 사이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눌만하지 않는다는 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었다.

"큼—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초당적인 협력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씀 부끄럽지만, 제가 티타노마키아 때 모질게 군 건…… 정치적인 이유가 조금 있었습니다.”

그는 이상하게도 한 수 무르고 들어왔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려도 선뜻 마음을 주시긴 어렵겠지요. 그래서 제가 사과를 하고 성의를 표시하고자 선물을 몇 가지 준비했는데, 회의 시작 전에 잠깐…… 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현욱은 고민하는 듯 알랭 지암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제가 조용한 방 하나를 미리 대관해놨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

한 회의실 안, 이현욱과 알랭 지암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알랭 지암은 철제 케이스를 하나 꺼내어 연 뒤, 이현욱에게 내밀었다.

"자, 제가 정말로 스틸레인을 믿고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극한의 레플리카 (특수)

- 효과 : 전설 등급 이하의 아이템을 모방하여 50% 효과로 재현합니다. (수정 불가)

이현욱은 그 황금색 나뭇가지를 쥐어보았고, 알랭 지암은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이걸로 말할 것 같으면…… 아, 이미 아시겠군요.”

“예, 저도 몇 번 쓴 적 있죠.”

“하하— 하지만 이건 한 수 위의 물건이라는 걸 눈치채셨을 겁니다. 무려 전설 등급까지 적용이 가능한 레플리카죠. 이걸로 가지고 계신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를 복사하신다면, 화력이 훨씬 강해지실 겁니다.”

그는 마치 방문 판매상처럼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이현욱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알랭 지암은 인상을 찌푸릴 뻔하다가 가까스로 미소를 유지했다.

‘뭐야 설마, 이 정도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겠다는 거야? 역시, 입맛이 까다로운 놈이군?’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두 번째 아이템을 준비하지 않았던가?

'이걸 보는 순간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그는 이번에는 더 큰 철제 케이스를 꺼내왔다.

그 안에 든 것은 은색의 원형 방패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이기스(전설)

- 효과

1) 절대 방어 : 180초간 10m 주변에 절대적인 방어막을 형성한다. (재사용 대기 : 12시간)

2) 메두사의 머리 : 50m 거리 내의 적을 ‘석화’ 상태로 만든다. (재사용 대기 : 12시간)

"아이기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패인 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저희 길드에서 확보한 뒤 비밀리에 사용하고 외부에는 일절 공개 하지 않았던 물건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던전일지라도 공략해낼 수 있었죠.”

"......."

"큼, 자, 이것도 스틸레인께 지원해드리지요. 제 성의입니다."

하지만…….

"......."

이렇게까지 나갔는데도 이현욱이 대답이 없자, 알랭 지암은 내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서도 이 정도의 아이템을 지원받기는 힘들 겁니다. 그, 그리고 이것 외에도 저희 길드가 총력을 기울여서 모든 면에서 지원—"

"음…… 므슈 지암, 사실 저는……."

이현욱이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오더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말꼬리를 흘렸는데…….

“……언제나, 므슈 지암을 존경해왔습니다.”

이내 입꼬리를 씩 올리며, 경의를 표하는 게 아닌가?

그 미소에는 꽤 짙은 탐욕이 묻어있었다.

‘하,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아무리 고결한 척을 하더라도 이 정도 물건 앞에서 침이 안 흐를 리가 없잖아?'

그는 이 지고지순한 영웅 나리의 얼굴이, 재물 앞에서 군침을 흘리는 탐관오리처럼 변할 수 있다는 걸 목격한 게 내심 짜릿했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재력과 권력이 여전히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음에 뿌듯했다.

그간 스틸레인이라는 규격 외 존재가 나타나서 자신의 꾸려가고 있던 세상의 질서를 망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마음에 거슬렸던가?

그러나 결국, 이 남자도 통제할 수 있는 부류였다.

“제가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는 게, 이렇게 아이템을 지원해드리고 물자를 구해드리는 것 정도라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저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너무 든든할 따름입니다. 제가 F등급 플레이어로 한낱 AMT 병사일 때부터, 므슈 지암을 얼마나 존경해왔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저 플레이어 개인으로 강하신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동경해왔습니다.”

"하하一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알랭 지암은 자신의 계략이 먹혀들었음을 느끼며, 정말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그래서…… 이번 전쟁을 준비하면서, 알랭 지암의 그 넓은 정보망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구해주셨으면 하는 아이템이 더 있습니다.”

그 말에, 알랭 지암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녀석, 나한테 뭘 더 요청할 정도라면 미끼를 제대로 물었군!’

그는 말만 하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구해드리지요. 뭐, 강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아다만트 원석 같은 걸 몇십 킬로그램 단위로 마련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 그것들은 제가 조달할 수 있고요. 므슈 지암께 부탁하고 싶은 건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는 잠시 말문을 멈췄다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제 첩보망에 노르웨이의 한 길드가 ‘발할라의 깃발’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그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음, 발할라의 깃발이라…… 그 정보, 확실한 겁니까? 저도 처음 듣는 아이템입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검은 철퇴> 길드 쪽에서 확보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아아, 그 길드라면, 중책들이 저와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제가 잘 알아서 한 번 확인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그게 있으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검은 철퇴> 길드라면 그가 쥐락펴락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까지 구해와 준다면, 아주 홀딱 넘어오게 될 게 분명하기에, 알랭 지암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또 하나 있습니다.”

"아! 예, 예, 말씀하시죠.”

"제가 이번에 어떤 아이템을 만들려고 해서, 꽤 희귀한 재료 아이템이 필요한데, 그걸 조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 재료 목록이 어떻게 될까요?”

"그게 조금 많은데, 좀 적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거듭되는 부탁이, 유럽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알랭 지암으로서도 서서히 버거워졌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건 완전히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아이템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조달해준다면 그의 신뢰는 그 이상이 될 터…….

‘내가 네놈 목덜미에 밧줄을 묶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군?’

그는 속으로 킬킬 웃으면서, 이현욱이 부르는 아이템 목록을 하나둘씩 메모장에 적어나갔다.

그 숫자가 꽤 많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그럼, 조금 이따가 회담장에서 뵙겠습니다.”

이현욱은 알랭 지암과 악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플레이어 (LV:74)

* 블루 게이트 공략, 빌런 후보

'그런데 저 인간이 왜…….'

그가 기억하기에, 알랭 지암은 전생에는 빌런이 되지 않았던 자였다. 그런데 지금 빌런 후보가 되어 있다는 건, 아마도 이현욱 본인이 어떤 영향을 끼친 걸로 볼 수 있었다.

'……뭐, 어쨌든 덕분에 수고를 덜 수 있겠군.’

저놈을 잘 이용한다면, 앞으로 필요할 여러 아이템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듯했다.

그래도 유럽 내에서는, 그리고 어두운 경로에서는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검은 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회담장으로 이동하던 중, 광역 마나 메신저가 울렸다.

그 마나 패턴을 보건데, 라퓨타에서 온 연락이었다.

- = 아!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이 목소리는 강희설이었다.

그녀는 종말을 앞둔 세계의 사람 같지 않게, 어딘가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이제 곧 긴급 회담 시작하는데, 급한 거야?”

- = 이거 들으시면 더 기분 좋게 회의하실 수 있을걸요? 그래도 이따 들으실 거예요?

지금 뭘 들어도 기분이 좋아질 리가 만무했다.

이현욱은 시큰둥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짧게 좀 요약해줄래?”

- 넵! 그, 거신병 연구소 활용이 요즘 확 늘었거든요. 거기 설비를 좀 만지니까, 막 스킬도 생기고 이것저것 실험도 해보다 보니까 말이죠…….

그러고 보니 라퓨타의 에드 온인 ‘거신병 연구소’를 얻은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간 강정두와 강희설이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을 터였다.

- ……막 인공지능 개발 스킬도 생기고 그랬는데, 탈로스 같은 애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녀가 발견해낸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 그걸로, 아직 건드리지 않은 드래곤 시체 한 개를 되살려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온몸에 대포랑 미사일을 왕창 단 마개조 버전으로요!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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