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89화 (189/221)

189화.  < 마지막 분기점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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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고개를 치켜들고는, 약 이십여 미터 상공의 블랙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끓어오르는 끈적한 타르처럼 스멀스멀 면적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제 곧 3번째 차원 이동자를 맞이한다.

그것도 그가 아는 한 최악의 상대를…….

- 칙— 전 부대, 핵심 표적을 핵심 표적을 UDD(Unknown dimensional distortion, 미확인 차원 왜곡 현상)로 변경한다.

- 전 저격수 사격 대기, 전 힐러 스틸레인을 집중적으로 엄호한다.

그의 마나 메신저에서 ROK AMT의 교신이 연달아 들렸다.

저 현상의 정확한 진위를 알지 못하는 여타의 플레이어들지만, 역시나 잔뜩 긴장한 채 전투를 준비 중이었다.

또한, 전 세계가 이 장면을 보고 있을 터…….

그들 중 단 한 명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현욱의 싸움이 자신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직감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현욱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 이현욱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이 주변으로 오지 마시고 모두 물러서세요. 그리고 이 말을 모든 플레이어에게 전해주세요.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서면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게 한 번에 망가진다. 그만큼 전생의 네크로맨서는 막강한 존재였으니…….'

그렇기에 단 하나의 변수도 허용할 수 없었는데, 아군의 섣부른 공격조차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탈을 벗고, 빌런이라는 이름으로 이 전투에 뛰어들 수도 있었으니, 괜한 움직임을 원천 차단한 것이었다.

‘이 순간이 놈을 제거할 최고의 기회가 될 거다.’

이현욱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차원 이동자들이 가장 무력화되는 순간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였다.

‘나도 방금 죽음 도래지에서 빠져나올 때 속수무책으로 한 방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 그의 방어력이 적들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일격에 빈사 상태가 되고 웨어울프 떼에게 갈기갈기 찢겼을 터였다.

어쨌든, 이현욱은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서, 네크로맨서를 일격에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네크로맨서는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한 타격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숱한 경험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단 한번도…….'

애초에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군단을 돌파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네크로맨서의 자체적인 방호 수단이 가히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항시 개인 마법 방어막을 다중으로 두르고 있었으며 MAX 등급의 뼈 갑주 스킬도 상당히 단단했다.

'하지만…… 성검이라면 다를 거다. 그것도 모글레이 성검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때—

웅——

마침내, 블랙 게이트가 완성되었다.

그것의 중심 부근이 일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조금 더 거세게 꿈틀거렸고, 이내 당장이라도 터질 듯 격하게 요동쳤다.

츄우우——

그곳에서, 한 인형이 튀어나왔다.

고—오—오—오——

온몸에 암녹색의 아우라를 두른 존재.......

- 준 초월자 (알 수 없음)

"하—"

이현욱은 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오래된 트라우마가 재발한 기분이었다.

‘저 흑색의 로브, 해골 가면, 등 뒤에 떠 있는 거대한 낫…….'

저놈이 바로 전 세계를 정복했던 빌런의 최강 병기이자 사실상 최강의 플레이어인 네크로맨서였다.

이현욱은 놈을 향해서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응?"

그놈이 양손에 각기 쥐고 있는 아이템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현욱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저건......."

그놈이 들고 있는 창과 방패는 다름 아닌…….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다!’

그건 두 가지를 한 번에 착용할 경우 30초간 무적이 되는 ‘스틱스강의 축복’을 얻을 수 있었다.

즉, 그 무엇보다 확실한 대비를 하고 나왔다.

지금부터 30초 간,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

"—모두, 놈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요!”

이현욱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놈의 등 뒤로 검은 연기가 번져 나오더니, 마치 바다 안개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지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그나마 다행인 건, 이현욱이 사방에 깔아둔 ‘신목의 영역’ 덕분에 일대에 신성력이 가득하여 그 검은 안개가 일부분 희석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건 유리한 환경일 뿐, 놈의 행동을 완전히 봉인할 수는 없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시작됩니다.

그것은 언데드 군단을 고유의 포켓 스페이스에 두었다가 꺼내는 기술이었다.

이내 그 검은 연기 안에서 어떤 형상의 잔영(殘影)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들의 녹색 안광이 하나둘 점등하며 은하수를 연상케 했다.

츠츠츠츠——

저 현상은 ‘공간 중첩’이 일어났다는 뜻이었으며…… 다른 공간에 잠들어 있던 군단의 출정식을 의미했다.

직후, 중첩된 공간에 걸쳐 있던 언데드들이, 마치 산사태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진 뒤 바닥을 박차고 일어섰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일정 지점에서 서로 뒤엉키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먼 하늘에서 본다면 개미 떼가 바글바글 들끓고 있는 장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건, 네크로맨서식의 방어대형이다.’

일명 시체의 벽.......

덜그럭— 덜그럭—

‘22초, 21초…….'

이현욱은 그렇게 속으로 스틱스강의 축복 시간이 끝나는 시간을 세면서, 저 장벽을 허물 방법은 고안했다.

그가 꺼내든 건 '수다사나르’였다.

이 원반형 투척병기는 차크라 파동을 분출하여 상당히 넓은 면적을 톱날처럼 헤집는 게 특징이었다.

즉,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단연 최고의 효율을 보여준다.

이현욱은 그것으로 ‘성검’ 효과를 옮겼고, 그와 동시에 그것이 쏘아지며 뼈 장벽을 긋고 지나갔다.

콰드드드——!

단 몇 초 만에, 단 한 번 긁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족히 백여 마리의 언데드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가능했군.’

그 장면은 이현욱으로서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전생, 놈과 부딪혔을 때마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언데드 군단은 진절머리나다 못해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보다 쉽게 느껴졌다.

‘역시 성검이 있으면, 놈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대로 몰아붙이면 저 뼈 벽을 허물고, 스틱스의 강의 축복이 끝나는 순간에 놈을 타격할 수 있을 듯했다.

“11초—"

그런데 그때—

퍼—어—어—어——!

온 세상이 별안간 시뻘겋게 물들었다.

공기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폭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그와 동시에 후끈한 열풍이 피부를 때렸다.

“—큭!”

이현욱은 자세를 낮추고, 주변에 있던 아다만트를 끌어모아서 금속 벽을 조형하여 몸을 가리는 동시에 후긴을 통해서 이곳을 굽어보았다.

퍼—어—어—어——!

이곳, 거인의 성채 안을 붉은 화염이 채우며 넘실넘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체 폭발이다.’

그것도 그냥 시체 폭발이 아니었다. 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티탄의 시체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성수에 절어져서 언데드로 되살릴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시체’인 바, 터뜨릴 수는 있었다.

앞서서 현재의 네크로맨서 역시 티탄 시체 폭발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단 몇 개에 그쳤다. 저렇게 거대한 시체를 폭탄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마나 양이 절대로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8년 후의 네크로맨서에게는 그 정도 마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군의 피해를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이제 단 4초다!’

4초 후, 단 한 방만 제대로 넣으면 된다.

그러 면 모든 게 끝난다.

이현욱은 눈을 부릅뜬 채,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들끓고 있는 언데드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여왕개미—네크로맨서를 쫓았고, 놈이 웬 구슬을 꺼내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 구슬에는 웬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 놈이 그걸 잡아 뜯는 순간—

- 주의! 해당 지역에 ‘백귀야행’이 시작됩니다.

이는 이현욱 역시 모르는 스킬이었다.

그 구슬 안에서부터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귀신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

"윽!"

"큭!"

비명, 고막을 넘어서 뇌와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음색이 사방천지를 뒤덮었고, 그 영역에 있는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들의 눈에는 온갖 '디버프’에 걸렸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디버프를 걸 수 있다니, 이거 사기 아니야?”

"어어— 조심해! 그것들이 이쪽으로 온다!”

그 귀신들은 생명체를 감지하는지, 플레이어들을 찾아가서 들러붙기 시작했고 그것에 닿기만 해도 훨씬 더 큰 저주에 빠졌다.

"—으아아! 이것 좀 떼어줘!”

"프, 프리스트들 뭐 해! 어떻게든 해 봐!”

후방, 이현욱을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던 플레이어 부대 중 상당수가 단숨에 무력화되었다.

‘말도 안 되는 광역 저주다.’

이처럼 네크로맨서는 전장 전체를 제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전쟁의 신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안 먹힌다.’

그래도 이현욱은 멀쩡했다.

께에에에——

그에게 가장 많은 귀신이 들러붙었지만,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신성력에 화들짝 놀라며 사방으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그는 지금 ‘빛의 대전사’였기에 웬만한 어둠 계열의 저주에 완벽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네크로맨서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젠장, 좋지 않다. 이러면 놈이 또 무슨 수작을 하는지 알 수 없잖아.’

역시,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그런데 그때—

- 칙— 저것들은 나한테 맡겨요.

이 목소리는 에밀리아 뮐러였다.

웅—!

이어서 웬 빛줄기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치솟았고, 한점에 응축된 뒤, 여러 갈래로 나뉘며 지상을 백색의 빛으로 뒤덮었다.

그것은 신성 계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스킬인 ‘홀리 라이트’였지만, 성녀가 온 힘을 다해서 짜낸 만큼 그 규모가 남달랐다.

흡사 태양이 가까이 다가온 듯, 눈을 똑바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광채였고—

치——!

그것에 닿는 모든 귀신이 단숨에 소멸했다.

마치 일광건조 시, 세균이 햇볕에 의해서 소독되는 장면을 표현한다면 딱 이런 광경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한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내 다시 시야가 확보되며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고, 이현욱은 네크로맨서의 하관—입이 비틀리는 걸 포착했다.

‘저 표정…… 재밌군.’

저런 사소한 감정마저도 이현욱에게는 묘한 희열로 다가왔다.

“……그래, 역시나 성녀가 살아있다는 걸 예상하지는 못했나 봐?”

지금까지 다른 차원 이동자들과는 다르게, 블랙 게이트를 넘어오는 순간에도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라는 방비를 보여준 놈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녀의 존재까지 염두에 둘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 전생에는 놈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이미 성녀는 암살을 당했었다.

즉, 놈의 기억에는 성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이 세계는, 놈에게 유리한 무대가 아니다.’

이현욱은 숨을 천천히 내쉬며, 다시 모글레이에 성검을 부여한 뒤 영점 조준을 시작했다.

'……등장과 동시에 치는 건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급해선 안 된다. 단 한 방을, 최후의 한 방을 노린다.'

그는 조급함을 억누르고, 저격수가 된 심정으로 모든 감각을 네크로맨서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이현욱은 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놈이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걸 확인했다.

‘뭐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는 조금 더 집중해서 놈의 입 모양을 읽었다.

- ……망했어요. 이, 이제 어쩌죠?

조금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질문하듯 말하는 게 아닌가?

- 그냥 전부 싹 다 풀어서 정면으로 싸울까요?

그건 착각이 아닌 듯했다. 그놈은 정말로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는데, 공손하게 애원하는 꼴을 볼 때 제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지, 제 권속에게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또 누군가 있는 건가?’

하지만 이현욱의 감각 안에는 다른 존재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차원 이동자는 그 ‘당사자’만 넘어오도록 설정된 이벤트가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예상 못 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로지 네크로맨서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랐다.

이현욱은 그저 약간의 신경을 주변으로 분산해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뒤, 다시 모글레이를 꽂아 넣을 구석을 집어내기 시작했다.

‘아직 부족해. 조금 더 공간이 필요하다.’

이현욱은 금속 무기를 퍼붓고, 용아병들을 전진시켜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순간, 놈이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그러자 족히 수백에 이르는 언데드들이 잿더미로 변하더니 놈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고, 놈의 몸이 승화되듯, 검은 연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일명 ‘황혼화(黃昏化)’수백 마리의 언데드를 희생하여 자신의 몸을 무형의 형태로 만들어서, 방해하기 어려운 강력한 이동기술이었다.

후우우우——

직후, 놈의 몸이 검은 연기의 회오리가 되어서, 그대로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현욱은 여전히 조급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할 줄 알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은 ‘묠니르’였다.

이현욱은 그것에 성검 효과를 부여했다.

이어서 웬 작은 보석을 꺼내어 그것에 가져다 대었는데…….

- <토트의 축복>으로 해당 아이템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이는 아이템의 쿨 타임을 강제로 초기화해주는 아주 귀한 소비 아이템으로, 전투에 앞서서 몇 개를 구비해 두었다.

이로써 12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뇌신의 분노’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르르르——

곧,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안에서부터 성스러운 힘이 담긴 번개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준모! 저걸 싹 그물처럼 퍼뜨린다!”

"예, 알겠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어디에선가 박준모가 대답했다.

이내 뇌신의 분노가 지면으로 쏟아졌고, 그것들은 박준모의 지휘에 따라서 가늘게 나누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현욱이 원했던 대로, 마치 그물처럼 펼쳐지며 하늘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파—자—자—자——!

그 무엇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저 멀리 하늘로 치솟고 있는 검은 연기 한 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네크로맨서가 푸른색의 전류에 휘감기더니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큭......."

결국, 놈은 버티지 못하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방금 그 감전이 네크로맨서가 처음으로 입은 데미지일 지도 몰랐다.

"그래, 영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지?”

이렇듯, 이현욱은 네크로맨서의 모든 전투 패턴을 파악한 상태로, 놈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원천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대강령’을 열어서 적골화 된 본 와이번, 좀비 그리핀 등 온갖 비행 언데드들을 깡그리 소환하여 몸 주변을 에둘러버렸다.

‘그래도 본 드래곤은 꺼내지 않는군?’

이현욱이 아는 한,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언데드 중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 성검의 위력을 경계해서, 고위 언데드를 아끼는 거다.’

그렇다는 건, 이곳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치를 마음이 없고 탈출을 주목적으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수다. 고작 그것들만으로는 내 공격을 막을 수 없을 테니…….'

이현욱의 왼손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저 멀리, 저궤도 상에 떠 있는 ‘워 박스’를 감지했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한 줄기 섬광이 내리꽂혔다.

퍼—버—버—버——!

그것은 2t짜리 모글레이 레플리카였고, 그것이 세상을 양단하며 네크로맨서의 주변을 감쌌던 비행 언데드들을 깡그리 부숴버린 뒤, 기어코 놈의 몸뚱이를 가격했다.

까—앙——!

그 찰나의 순간, 이현욱은 후긴을 통해서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정밀하게 관측했다.

'……역시, 2t짜리 모글레이 투하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성검을 부여했다고 한들, 그 충격에 튕겨 나가서 오트리스산 어딘가에 내리박혔을 뿐, 아직 실질적인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저 방어막은 어둠의 힘이 아니라 ‘드래곤 하트’의 힘이기 때문이었다. 그 힘은 놈이 차고 있는 목걸이의 붉은 보석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건 에드워드 우즈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역시, 내가 죽은 뒤 영국도 결국은 정복당한 모양이군.’

이현욱이 최후를 맞이하는 시점까지 영국은 빌런의 침공을 막아내고 있었으나, 태풍 앞에 등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고로 저 마법 방어막은 성검의 힘으로 깨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때리다 보면 결국 깨질 거다.’

이현욱에게는 그러고도 남을 화력이 있었다.

그는 또 한 번 ‘워 박스’에 명령을 입력했다.

"이곳은, 네가 날뛸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내가 똑똑히 알려주마—”

직후—

훙—!

또 한 발, 모글레이가 놈이 있는 지점으로 추락하는 동시에 ‘쇼크 웨이브’와 ‘플레어 윕’이 연달아 터지며 일대의 숲을 깔끔하게 밀어 버렸다.

콰—과—과—과——!

그 폭풍 속에 휘말린 네크로맨서는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이리저리 나뒹굴었고 온갖 파편에 부딪히며 무기력한 신음을 흘렸다.

"흑......."

지금껏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는 수모일 터였다.

‘역시, 내 공격을 하나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럴 것이, 전생, 놈이 활개 치던 무대에는 성녀가 없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기를 떨어뜨리는 ‘워 박스’라는 존재도 없었으며, 더 나아가 모글레이 역시 단 1개뿐이었다.

'즉, 이 모든 게 낯설 거다.’

물론, 첫 번째 차원 이동자인 윌리엄 버나드가 당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2개까지는 예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3개, 4개째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터,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놈을 몰아붙이는 화력은 그게 다가 아니었으니…… 별안간,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암석 파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치솟더니, 네크로맨서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언데드 군단 위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흡사 운석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그 공세에 언데드들은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응? 저건 뭐야?’

그 장면은 이현욱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 칙— 저걸 잡으면 되는 거죠?

이 목소리는 강서윤이었다.

그녀가 마나 교신해온 것이었다.

"어, 강 대표님?”

- 네, 저희도 왔어요. 이렇게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겠어요? 저 자식이 뭔지는 다 끝나면 말해줄 수 있겠죠? 그쪽, 항상 신비주의라서 좀 마음에 안 들어요.

즉, 그녀의 동료들은 <즈믄나래> 길드와 가디언들…… 그중에서도 중력 마법사 이성윤이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이내 서쪽 하늘에서 몇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이성윤과 강서윤을 비롯한 가디언 멤버들, 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에 뜬 채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합류했는지 모를 권왕, 한태산도 함께 있었다.

또한, 처음부터 근처에 있었던 도널드 해리스와 정령왕도 나서서, 꿈틀거리며 제 주인에게 기어가는 언데드 군단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이현욱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몰아붙이고 있던 차에 압도적인 전력들이 힘을 더해주었다.

‘이러면…… 절대로 질 수 없지.’

이현욱 역시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워 올려서 뭉개진 숲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네크로맨서를 굽어보았다.

'……마치, 궁지에 몰린 토끼 꼴이군?’

그리고 이현욱을 비롯한 이 세계의 영웅들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놈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이곳에는, 네놈들이 암살했던 영웅들이 전부 다 살아있다. 그러니까……."

이현욱은 혀를 쯧— 찼다.

“……넌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왼손을 지상으로 드리웠고,

100t의 성검이 놈을 향해 수직 낙하했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처형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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