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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87화 (187/221)

187화.  < 두 번째 격돌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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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죽음 도래지 안으로 몸을 던졌다.

우우우우——

검은 손아귀들이 그의 몸은 깊은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처음 몇 초간 숨이 턱 막히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 들이더니 이내 저 멀리에서 빛이 보였고, 그 빛이 확장되면서 이현욱의 몸을 집어 삼켰다.

웅—

그 순간 중력이 작용하며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에 힘을 주며, 지면에 가뿐하게 착지했다.

턱—

“어? 뭐, 뭐야!”

가장 먼저 웬 여자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어서 정면을 보았다.

긴 창문이 보였고 그 너머로 흰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

"—저, 저기 봐! 그놈이 왔다!”

"젠장, 진짜로 넘어왔잖아!”

그들은 이현욱을 발견하더니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 너머로 온갖 장비들이 있는 거대한 방이 얼핏 보였는데, 이곳은 죽음의 사원이라기보다는 연구 시설 같았다.

하지만 이현욱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님을 증명했다.

- 주의! <플레이어 권역 : 죽음의 사원>에 입장하셨습니다.

"더 넘어오기 전에 어서 죽음 도래지를 닫으라고 해!”

"그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파 마인드’가 아직 이전 명령을 수행 중입니다!”

"왜 이렇게 딜레이가 있는 거야?”

"과, 과부하가 된 것 같—”

그러한 대화는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부터 번져 나오다가, 곧 OFF 되며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이현욱이 서 있는 곳은 웬 거대한 격실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실험체를 가두고 비밀 실험을 하는, 그런 장소 같았다.

‘저기 저 긴 창문 뒤에서 연구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거고…….'

그리고 이 안에는 온갖 뼈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살아서 움직이는…….

쩍—

웬 거대한 악어의 뼈가 이현욱을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 그레이트 앨리게이터 스켈레톤 (LV:81)

그는 오른손에는 상급 리치의 두개골을 쥔 채, 왼손으로 모글레이를 휘둘러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스켈레톤들을 깡그리 휩쓸어버렸다.

하나 같이 꽤 고위 언데드였지만, 성검 효과가 부여된 모글레이에 닿는 순간 모래성처럼 쉽게 으스러졌다.

‘아마도 여기에다가 언데드를 소환하고, 필요할 때마다 밖으로 내보냈던 모양이군’

그 출입구가 되는 죽음 도래지가 천장, 벽, 바닥에 골고루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검은 손들이 잔뜩 돋아나서 말미잘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내 그곳에서부터 리빙 아머들이 마치 공수부대원처럼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절그럭— 절그럭—

‘이 격실에서 나가야 한다.’

이런 공간에는 실험체를 통제하기 위한 무기가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이현욱은 즉시 정면의 긴 창문을 향해 모글레이를 날렸다.

쩡— 소리와 함께 창문과 벽이 날아가며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나도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싹 다 박살 내 버린다.”

절그럭— 절그럭—

그의 명령에 강철 병단이 진격하여 벽의 구멍을 비집고 들어갔다.

저것들을 막아!”

"꺅! 겨, 경비대는 언제 오는 거야!”

그놈들이 대응에 나서는 듯했지만, 리빙 아머와 용아병 아이언 골렘은 쉽사리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쾅— 쾅—

몇 번의 폭음과 총성이 울린 뒤에는 비명만 이어졌다.

이현욱이 그 실험실로 올라갔을 때는 이미 사방에 십여 명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이 문 저 문을 열고 도주했다.

그 뒤를 용아병들이 사냥개처럼 날렵하게 쫓아갔고, 다시금 비명이 울렸다.

"끄아아—!”

"제발 살려줘! 컥—”

- 플레이어 (LV:31)

- 플레이어 (LV:45)

이현욱은 그 모습을 쭉 지켜보면서도 좀처럼 의아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언데드 군단이 그를 맞이할 줄 알고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 하나 같이 나약한 플레이어뿐이지 않은가?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웅— 웅—

기계 소음이 울리는 꽤 넓은 공간…… 언뜻 봐도 수준 높은 연구 시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큼직한 실험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녹색 액체로 채워진 수조가 보였다. 그 안에는 온갖 스켈레톤들이 들어있었고, 그것들의 상태를 표시하는 스크린들이 바쁘게 깜빡이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언데드를 연구하는 곳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관제 센터’라고 부를 만한 시설이 있었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수십 개의 모니터…… 그 화면 대다수는 이현욱이 방금까지 있었던 오트리스산의 거인 산채를 비추고 있었다.

‘아, 여기에서 지켜보면서 명령을 내리고 있던 거군?’

딱 봐도 어떤 개념의 장소인지 알만했다.

그렇다면 네크로맨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인데…….

"—아?”

그 수많은 모니터 중, 유독 하나가 눈에 띄었다.

[CAM 001]

가장 좌측에 있는 1번 카메라, 그것은 웬 수조 안의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한 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왜소한 체구에다가 민 머리인 백인 소년이었다.

그 녀석은 정체 모를 용액 속에서 두둥실 뜬 채, 온몸에 전극 같은 걸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와 척추에도 전선이 삽입된 게…… 결코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현욱은 그 녀석에게 묘한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죽음의 권능이다.’

그것은, 이현욱이 에밀리아 뮐러로부터 ‘빛의 대전사’로 지정받으며 일종의 성기사와 같은 감각을 가지게 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 화면, 어디지?’

이현욱은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또 다른 ‘격실’을 발견했다. 그곳에 커다란 구 형태의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건 아다만트 소재다.’

안이 보이지 않았다만, 표면에 ‘Alpha Mind’라고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 밑에 작게 CAM001이라고 명기되어 있었다.

또한, 아주 질은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이에 이현욱은 확신했다.

'역시, 이 안에 있는 꼬마가…… 네크로맨서다.’

……충격적인 정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이현욱은 사실 네크로맨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시간대로부터 약 5년 후에나 놈을 처음 마주했었는데, 그때의 놈은 언제나 해골 모양의 가면을 쓴 채 하관만을 드러냈었다.

'그래서 나이나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표정조차 잘 읽을 수 없었다.’

그런 놈이 제대로 감정을 드러냈던 순간은 단 한 번, 최정철이 세미 아마겟돈으로 죽음의 군단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때, 언짢은 듯 이를 드러내는 걸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는커녕 실제로 인간인지조차 의심했던, 미스터리한 존재였다만…….

정황상, 이 십 대 꼬마 녀석이 바로 그 잔학무도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네크로맨서인 듯했다.

‘하, 어이가 없군…….'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지금은 캡슐 안에서 두둥실 표류하고 있을 뿐, 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보니 조금 전, 연구원들이 대화하는 걸 얼핏 들었을 때, 알파 마인드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뜻일까?

이현욱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상급 리치의 두개골을 1번 카메라 쪽으로 들어 올렸다.

"이 안에 있는 게 네 주인이냐?”

그러자 놈이 턱을 딱딱 부딪치더니 입을 열었다.

“딱— 그분께서는 늘 잠을 주무시는 편이다. 네놈, 내 주인을 해하려고 한다면……."

"뭐 어쩔 거냐? 넌 골통밖에 안 남았잖아.”

“딱딱! 내가 반드시, 너를 갈기갈기……."

더는 생산적인 대화가 없을 듯했다.

콰득—

이현욱은 놈의 아래턱을 뽑아 버렸다.

저렇게 무력하게, 그것도 실험실의 쥐 같은 꼴을 보고도 제 주인이라고 예찬을 늘어놓는 걸 보면, 네크로맨서의 권능으로 살아나면 본능적으로 제 주인을 찬양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하......."

이현욱은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 이 상황,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이러면…… 네크로맨서는 사실상 스스로 결정해서 빌런이 된 게 아닌 건가……."

그렇다면 왜 저렇게 됐을까?

이 사상 최악의 병기를 만든 주범은 당연하게도 고든 프라이스일 것이었다.

‘그놈이라면, 어린 S등급 플레이어를 꼬드기고, 속이고, 세뇌하고, 강제할 수 있다.’

그놈은 자신을 ‘분석가 계열’ 플레이어라고 속이고 있었다. 그게 영 거짓은 아닌 게, 사물에 담긴 정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었다.’

훗날, 놈이 빌런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가디언 측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여 추정한 놈의 진짜 능력이 ‘텔레파시’ 능력자라는 걸 알아냈었다.

그중에서도 ‘정신 조작’ 즉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것도…….

‘그래서 꽤 많은 플레이어를 세뇌해서, 자신을 따르게 했다.’

물론, 놈의 정신 조작은 상위 등급의 플레이어에게는 쉬이 먹히지 않았기에, 가디언은 순전히 기만으로 속였을 것이었다.

‘어쨌든, 결국…… 네크로맨서도 어린 나이부터 그놈에게 부려지면서 생체병기로 키워진 건가…….'

훗날 네크로맨서 직접 전장에 나서는 장면도 여러 번 보았기에 놈이 완전히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었다만, 현재로서는 맥락상 저 꼬마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듯했다.

‘그래도…… 빌런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반드시 처리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건, 변함이 없다.’

텅—

이현욱은 네크로맨서가 들어있는 구체 캡슐을 손짓 한 번으로 뽑아 버렸다.

그리고 등 뒤로 날린 뒤, 쇠사슬로 칭칭 동여맸다.

‘우선, 여기에서 탈출해야 한다.’

왱— 왱—

그때, 천장이 붉게 물들며 사이렌이 울렸다.

- 비상 소각 30초 전— 비상 소각 30초 전— 전 직원은 지금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비상 소각, 언뜻 들어도 건물 자폭 같은 게 일어날 것만 같은 단어가 아닌가?

아마도 네크로맨서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이곳을 통째로 날려버리려는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게 조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크로맨서는 놈들의 최후의 무기일 텐데…….

'……아니, 그냥 포기할 리는 없고 무슨 속셈이 있을 거다. 어쨌든, 지금은 빨리 탈출해야 해.’

이현욱은 굉장히 좁아져서 곧 닫힐 것만 같은 죽음 도래지에다가 네크로맨서가 든 캡슐을 던져 넣고는, 자신도 그곳으로 재진입했다.

우우우우——

그렇게, 거인 성채로 다시 돌아온 순간—

퍼—엉——!

그의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큭!"

이현욱은 짙은 화염에 휩쓸리며 수십 미터를 날아간 뒤 진창에 처박혔다.

삐---

온몸에 강체화를 걸고 있었음에도 꽤 수준 높은 마법이었는지, 머리가 핑 돌고 이명이 들렸다.

- ……사장— 어서— 피— 젠장—

이현욱의 마나 메신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뚝뚝 끊기며 들려왔다.

그게 마나 메신저가 고장 난 건지, 이현욱의 청각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숨을 내쉰 뒤, 자신을 향해서 달려드는 존재들이 있다는 걸 직감하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금속 생성을 해서 날카롭게 조형한 뒤, 자신을 덮치려는 존재를 향해 날려버렸다.

캥!

놈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젠장, 사방에 쫙 깔렸다.’

아직 정신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방이 살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르르르—

먼저 후각이 돌아왔고, 온 사방이 누린내 나는 짐승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금속 통제력을 발휘, 어딘가 떨어져 있을 모글레이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듯, 금속 통제력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젠장, 정신 차려야 해.’

그때, 이현욱의 몸이 바람에 둘러싸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내려섰다.

"이것들은 또 뭐야? 하— 괜찮아요? 지금은 진짜 위험했던 거 맞죠?”

그건, 김세희였다.

그녀가 칼날 같은 바람을 주변에 에두르자, 정체불명의 짐승들도 다가오지 못했다.

"후......."

이현욱은 시야가 어느 정도 되돌아옴을 느꼈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네크로맨서가 든 캡슐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것부터 가져갈 거다.’

아니나 다를까, 털 달린 이족보행의 짐승들이 그걸 끌고 가고 있었다.

- 블러드로드의 웨어울프 (LV:81)

‘역시, 리카르도 올리베이라, 그놈이 왔다.’

이현욱은 손을 뻗어서 캡슐에 둘러 두었던 쇠사슬을 날카롭게 변형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의 목을 휘감은 뒤 하늘로 들어 올려버렸다.

캥— 캥—

저런 끔찍한 짐승들이 어디에서 떨어진 건지 사방 천지에 가득했는데, 족히 수백 마리에 달할 듯했다.

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을 이현욱 측근들의 눈을 피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면, 아마도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게 네크로맨서를 순순히 가져가게 한 속셈이었군?’

이현욱이 돌아오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려서, 이렇게 강력한 마법 공세를 날린 다음에 웨어울프를 잔뜩 풀어서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래, 방금 기습은 좀 위험했지만…… 그래 봤자다.’

그러나 이제는, 빌런들은 이현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나는, 전생에 세계를 정복했던 빌런들조차 넘어섰다.’

회귀, 두 번째 삶은 이 게임에서 치트키와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가 독식해온 수많은 여정이, 그를 압도적인 강자로 만들었다.

‘즉, 절대로 질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이제 빌런들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정면 대결에서는 절대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현욱은 성검 효과를 ‘페일노트’로 옮겼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정상화된 감각으로 일대를 훑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단 한 개의 선을 그었다. 이 주변을 에두르는, 긴 선…… 그것을 레일 삼아서 페일노트가 발진했고—

퓨—퓨—퓨—퓨——

단 몇 초 만에 주변에서 으르렁거리던 웨어울프들의 관자놀이를 한 줄로 꿰어버렸다.

그것들도 일종의 언데드였기에 단 일격만으로도 육신이 파스스—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너, 너, 이 씨발 새끼, 이게 지금 말이 돼? 대체 무슨 사기를 치는 거냐?”

이현욱은 눈을 뜨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덩치 큰 히스패닉계 남자가 긴 손톱을 늘어뜨린 채, 이현욱을 노려보고 있었다.

- 플레이어 (LV:104)

놈은, 과거에도 수도 없이 맞부딪혔던 빌런, 블러드 로드—리카르도 올리베이라였다.

그런데 그 순간—

- (!) 메인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2번 : 차원 이동자 살해>의 두 번째 분기점에 도달했습니다.

- 주의! 전생의 악연—두 번째 차원 이동자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를 처치하십시오!

지금껏 다소 정체되고 있던 정체불명의 메인 퀘스트가 진척된 것이었다.

[메인 퀘스트]

- 두 번째 삶의 기회, 의무, 운명…….

1) 이 세상 어딘가에 열려 있는 ‘블랙 게이트’를 추적하시오.

2) 전생—첫 번째 세계에서 찾아올 ‘차원 이동자’를 처치하시오. (1/3)

3)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는 ‘■■■’와 조우하시오.

‘그래, 블러드 로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놈이다. 그리고 내가 죽던 자리에 있던 놈이기도 하니까 차원 이동자로 등장할 줄 알았다.’

이에 리카르도 올리베이라가 어딘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

그리고는 바들바들 떨더니 배를 부여잡고 움찔거렸다.

"욱— 욱—”

이현욱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알았다.

'이제 놈이 뭔가를 토해내고, 그 안에서 차원 이동자가 등장한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끌어당긴 뒤 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러자 놈이 분노를 감추고 당황한 기색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자, 잠깐만…… 소, 속이……."

흔히, 변신할 때 공격하는 건 반칙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차원 이동자를 토해낼 때 공격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현욱이 바닥을 박차며 모글레이를 들어 올렸고, 놈은 구역질하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어떻게든 그 이상 현상을 억누르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영 쉽지 않은 듯했다.

"씨발, 자, 잠깐만 기다— 컥—"

그 순간, 놈의 입이 절로 벌어지며 무언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웩——"

촥——

이현욱은 그때를 노리고 모글레이를 휘둘렀고, 검 끝이 놈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놈의 머리가 분리되며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시에, 입에서부터 검은 구슬이 튀어왔고, 그것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쩌—엉——!

그 지점에서, 검은색의 일렁임이 피어났다.

이현욱은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블랙 케이트......."

그 기묘한 현상을 붉은 피부에 노란 눈을 가진 남자가 비집고 나오더니, 지상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는 휘파람을 불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 내가 두 번째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 어디 보자…… 여기가 어디야?”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로 앞, 바닥에 엎어져 있는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씨발, 나잖아?”

그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 시체를 발로 툭 쳐서 넘겼다.

"그런데 머리는 어디 간 거야? 아니 썅, 내가 죽였어야 했는데 좆 됐네…… 그런데 이 시기에 대체 누가 날 죽일 수 있는 거야? 그래도 재생력 하나는 고점에 이르렀을 때 아닌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한 남자, 이현욱과 눈이 마주쳤다.

"응? 너는…… 강철대제,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이현욱은 전생의 별명을 들으면서 그를 위아래로 쓱 훑었다.

그런데…….

- 준 초월자 (LV:143)

‘응?’

그놈의 분류가 ‘플레이어’가 아니고 ‘준 초월자’인 게 아닌가?

이는, 첫 번째 차원 이동자인 윌리엄 버나드를 만났을 때는 아직 플레이어의 정보를 볼 수 없을 때였기에 알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역시, 초월이 중요한 키워드다.’

이현욱은 차원 이동자들이 ‘초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게 도대체 뭘 뜻하는지, 아직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놈이 다가왔다.

"야, 네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냐? 설마 내가 다른 차원으로 불시착한 건가…… 에이, 아닌데……."

첫 번째 차원 이동자인 윌리엄 버나드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저 자신이 8년 후의 미래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원에서는 자신의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네가 날 죽인 거냐?”

그는 이현욱이 쥐고 있는 거검, 모글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그것에서 풍겨오는 압도적인 신성력을 느꼈다.

“—서, 성검?”

그는 저도 모르게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 가득, 온갖 금속 무기들이 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에두르는 거대한 성벽들, 그 위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서는 성녀와 세계수의 관리자까지 있었다.

"아, 잘못 온 게 맞는 것 같은데…… 지금 이 시간대가 이럴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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