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두 번째 격돌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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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만 봉인되면, 스틸레인은 네크로맨서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죽음의 꽃 중심에 선 스텔레톤—네크로맨서의 권속 중 하나인 죽음의 대리자 ‘상급 리치’였다.
"이로써 내 삶이, 이 세상에 또 한 번 의미를 되찾을 수 있겠군. 저 간사한 영웅 놈의 최후를 선사한 자로 기록될 거야."
그는 기분 좋게 웃었고 뼈밖에 남지 않은 그의 턱이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그의 본명은 후안 알바레스로, 한때 멕시코 플레이어 랭킹 9위였으며 꽤 희귀한 특성인 ‘소환 마법’의 대가였다.
그러나 4년 전, 아마존에 열린 한 게이트 공략 중 함께 들어간 플레이어들에게 기습당했고, 그렇게 영문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그게 그의 삶의 끝이었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잊혔다.
아니, 그래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약 1년 전이었다.
어둠,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은 공간에 갇혀 있던 그는, 자신을 누군가가 끄집어 올리는 듯한 오묘한 기분이 느껴졌고, 이내 한 지하실에서 눈을 떴다.
이렇게, 뼈의 몸을 가진 채로…….
그의 현 주인인 네크로맨서가 죽음의 권능을 발휘하여 그를 ‘리치’로 되살린 것이었다.
- (!) 당신은 특정 플레이어의 권속입니다. 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시 소멸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네크로맨서의 죽음의 군단 작전 참모 역할을 해왔다.
그가 생전에 던전 공략률 100%를 자랑했던 공략 팀장 출신이며, 다수의 소환수를 부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네크로맨서가 그를 핵심적인 역할에 앉힌 것이었다.
그렇게 죽음의 군단의 이인자로 활약하며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왔고, 그 공을 인정받아서 바로 지금, 스틸레인 공략 작전을 맡았다.
'……아무리 놈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한들, 우리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놈을 패퇴시키기 위해서 모든 힘을 집중해왔으니 말이다.’
지금껏, 빌런은 여러 차례 스틸레인 암살을 시도했고 전부 실패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전부 다 일종의 테스트이자 정찰 활동에 불과했다.
‘그 모든 건, 저놈이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를 파악해서 최후의 순간에 완벽한 공략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많은 희생이, 결국 우리의 승리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는 큭큭 웃으면서 유리하게 변해가는 전장을 살폈다.
현 상황, 아주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큰 골칫거리인 성녀는 그리고리 아자젤의 저주에 걸렸고, 그에 따라서 신성한 대홍수 속에서 네크로맨서의 군단들이 탈출하고 있었다.
또한, 좀비 검사—오키타 카이토는 힘을 잃은 성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거인의 성채를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그는 생전에도 최고의 검사였지만, 좀비가 되면서 4개의 팔로 4개의 검을 휘두르는 죽지 않는 괴물이 되었다.
‘곧, 저 녀석의 검에 성녀의 목이 달아날 거다.’
후안 알바레스는 그 장면을 고대하며, 느긋하게 그쪽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데 그 순간, 스틸레인이 거인의 성채에 내려앉으며 오키타 카이토와 마주 서는 게 아닌가?
“허?”
그 장면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아— 그래그래, 멀리서 무기를 날리는 헛짓거리로는 막을 수 없으니, 이번에는 몸을 던져서라도 막으려는 건가?”
이미 오키타 카이토를 패퇴시킨 적 있는 스틸레인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랑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 아무리 부숴봐라, 으흐흐— 결국 다시 살아나서 네놈을 벤 뒤에 성녀의 목을 벨 것이다.”
저 괴물 검사는 이제, 단칼에 쓰러지지 않는다.
쩍—!
그때 스틸레인이 휘두른 거검, 그 단 일격에 오키타 카이토가 반 토막 나며 쓰러졌다.
“오—”
하지만 어차피 단 몇 초 만에 원상복구 될 것이었고, 그렇게 몇 번 전투를 치른다면, 오키타 카이토의 육신에 담겨 있는 검객의 특성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낸다.
즉, 제아무리 스틸레인이라도 거듭되는 싸움 속에서 결국 일격을 허용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치이이이——
이상하게도, 박살 나서 흩어진 오키타 카이토의 몸뚱이들이 재결합되기는커녕, 시퍼런 불꽃과 함께 자글자글 타들어 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응?"
그건 죽음의 힘이 신성력에 의해서 소멸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 당신이 대리 통제하던 ‘죽음의 축복을 받은 좀비 무사’가 영원한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응? 뭐, 뭐야! 뭔 일이야?」
그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었고, 그의 당황한 음성이 확성 마법을 통해서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허무하게 나동그라진 오키타 카이토의 머리—두개골을 이현욱이 퍽— 밟아 으스러뜨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려서 이쪽, 죽음의 꽃 쪽을 바라보는 순간, 후안 알바레스는 있지도 않은 등골에 닭살이 돋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 어째서— 스틸레인 네놈이 그 정도의 신성력을…….」
이건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아니, 절대로 떠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저 하늘에서 구멍이 뚫리고 성수가 쏟아지는 것도 예상할 수 없는 기현상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그건 성녀만 무력화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건…… 분명 성녀라는 최강의 신성력 주체를 마비시켰는데, 어째서 그보다 더 진한 신성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말 그대로 미증유의 현상이었다.
“……젠장, 스틸레인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리는 거냐?”
하지만 그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한 이유를 고민할 틈이 없었다.
그 진한 신성력을 품은 거검이 스틸레인의 손을 떠나서, 이쪽으로, 마치 탄도 미사일처럼 날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어—”
그 첫 목표물은, 하늘에 떠 있는 16마리의 적골화 본 와이번…… 그리고 그것들의 몸에 붙어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언데드 군단이었다.
그 요격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
이현욱은 왼손을 뻗어서, 100t짜리 성검을 움직이며 생각했다.
'......운이 좋았다.’
지금 이 상황,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가 빌런 측과 엎치락뒤치락 서로의 말을 옮기며 묘수를 주고받던 중,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의외의 결과가 하나 도출되었다.
‘성검…….'
이는 이현욱이 준비한 수는 아니었으나, 우연히 발동되어서 체크메이트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었다.
흔히 말하기를, 승리의 여신이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 뭐야, 그거 뭐예요? 내가 준 힘이 아닌데…….
에밀리아 뮐러 역시 성검의 힘을 느끼고는,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축복이군요.”
축복,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마냥 안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게임이 끝난 게 아니었으니.......
'이 운이 좋은 변수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알아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
이현욱은 그 즉시 성검—모글레이에 금속 통제력을 집중하여, 적진을 향해 전진시켰다.
훙—!
그것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고, 그 궤도에 있던 본 와이번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온몸에 다른 언데드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거대한 비행 괴물은, 아음속으로 날아드는 거검을 피할 정도로 빠르지 못했다.
퍼—억——!
거검이 본 와이번 한 마리를 관통하고 지나갔고, 놈의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치 총에 맞은 새의 깃털이 흩날리듯, 시원하고도 파괴적인 장면이었다.
본 와이번들은 격하게 날갯짓을 하며 그 검 끝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현욱의 손짓 한 번에 거검이 자유자재로 선회하며 그것들을 줄줄이 꿰어버렸다.
퍼—버—버—버——!
흰 뼛조각과 검붉은 살점들이 우수수— 다시금 성수의 호수 속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중 일부는 호수 표면에 닿기도 전에 시퍼런 불꽃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이제는, 다시 조합되지 않을 거다.’
적의 처지에서는 결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를 마주한, 무력한 기분일 것이었다.
이렇듯, 단 하나의 무기지만 그것에 담긴 신성력은 최고 수준이었으며, 단 하나의 무기임에도 그것이 전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최강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건, 네크로맨서를 사냥할 수 있는 무기다.”
사냥, 그렇게 과감하게 말할 만큼, 네크로맨에게는 최악의 상성이 될만한 성능이었다.
이현욱은 회귀 이후 그 어느 순간보다 강렬한 충만감을 느끼며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동안 전생의 실패를 바꾸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언제나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해답을 찾은 듯, 속 한쪽이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지금의 네크로맨서를 넘어서, 전생의 네크로맨서가 차원을 넘어오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만큼 100t짜리 모글레이에 붙은 성검 옵션은, 네크로맨서를 상대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어느새 전장의 하늘에는 흩날리는 뼛조각으로 가득 찼고, 이제 제힘으로 떠 있는 건 ‘죽음의 꽃’ 뿐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청소를 마쳤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확성 마법으로 떠들어대던 상급 리치는 말을 잃었다.
놈은 아마도 제 주인인 네크로맨서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고 있을 테였고, 또 다른 카드를 준비해두지 않았다면.......
'……내빼려고 할 거다.’
이현욱은 그렇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1차 전은 겨우 내쫓았지만, 지금은 내가 역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놓쳐서 3차전까지 간다면, 그때는 또 전혀 다른 형국이 펼쳐질 터,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그는 AD-2 한 대를 가까이 가져와서 그 안에서 검은 투구 ‘퀴네에’를 꺼냈다.
그것을 쓰자—
웅—
이현욱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만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상급 리치—후안 알바레스는 황망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응? 뭐야! 또 어디로 간 거야?”
"형님, 우선은 저 검만 주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상한 신성력은 저 검 하나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입니다.”
옆에 서 있던 한 데스나이트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넷의 데스나이트 중 현재 유일하게 자아가 있는 자로서, 나머지 셋을 조종하고 있었다.
후우우우——
그 말에 후안 알바레스는 하늘을 활공해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모글레이를 노려보았다.
“……사무엘, 내가 이곳을 벗어날 포탈을 열 테니, 저걸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저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거검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건 맨손으로 기관차를 멈추려는 것과 같다.
몇 중의 마법 방어막을 치더라도 기어코 뚫어버릴 테니…….
하지만 언데드라면, 저것에 제 몸이 뭉개져 버리더라도 재생되기에 이렇게 과감하게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것이 스치고 지나가면 말 그대로 즉사, 그리고 전멸이다.
“그래도 우리 넷이 총력을 기울인다면 어떻게든 한 방 정도는 쳐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 넷 다 소멸하겠지만, 해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버티는 동안 내가 저 물속에 열려 있는 죽음 도래지로 가는 단거리 워프를 열어서, 최대한 많은 뼈를 확보해서 돌아간다.”
"예, 적골화된 뼈들은 주인님의 귀한 재산이니까요.”
아직 의식이 옅은 데스나이트들은 멍한 눈동자로 하늘을 날고 있는 모글레이를 쫓으면서 방패를 들어 올렸고, 검은 마법진의 피어올랐다.
그래도 성능 하나만큼은 확실한 녀석들이기에 후안 알바레스는 놈들을 믿기로 하고, 자신의 양손을 합장한 채 어떤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
후안 알바레스의 양손에서 검은 연기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마법이 완성된다면, 일대에 죽음의 힘이 묻은 뼈들을 모조리 끌고 네크로맨서의 권역인 죽음의 사원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콰직—
‘응?’
웬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그는 주문을 일시중지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헉!”
스틸레인, 그가 죽음의 꽃에 선 채, 데스나이트 한 기의 머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까지 오키타 카이토가 썼던 ‘발리사르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후안 알바레스가 느끼기에 그 검에서 그 무엇보다 역한 기운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 성검 효과가 모글레이에서 발리사르도로 옮겨 왔음을 뜻했다.
'그게, 말이 돼?’
이현욱이 검을 휘두르자 그 궤적을 따라서 신성한 은빛이 흩뿌려졌고, 그것에 닿는 모든 죽음의 존재는 푸른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그건 데스나이트도 다르지 않았다.
최소 155레벨, 현존하는 그 어떤 기사 플레이어에게도 꿀리지 않은 방어력을 지닌 존재들이었건만, 단 일격에 육체가 훼손되었다.
"크어—”
저 검이 성검이 아니었다면, 데스나이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우직하고 밀고 붙이면서 너무나 쉽게 우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검인 이상, 단 한 번의 일격만으로도 그 데스나이트가 빈사 상태에 빠졌다.
단 일격만 허용하더라도 그들의 갑옷은 싸구려 플라스틱처럼 구겨지고, 육신은 두부처럼 욱푹 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틸레인의 검술 실력이 상당했다.
챙! 챙! 챙! 쩍—
그는 검성이라고 불린 오키타 카이토를 몇 차례 꺾은 게 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압도적인 움직임으로 데스나이트들의 사이를 파고들어서 순식간에 둘을 쓰러뜨렸다.
콰득—
이제, 단 두 명 남았다.
"젠장, 어떻게든 놈을 막아!”
후안 알바레스의 외침에 두 데스나이트가 이현욱을 가로막았고, 놈은 재빨리 다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러자 죽음의 꽃에서 검은 에너지가 흘러나와서 그의 손아귀에 모여들었다.
"단 20초면 된다! 이 한 방이면, 저놈도 못 버틸 거다.”
그래도, 아무리 성검을 들고 있을지라도, 데스나이트는 한때 최고의 기사 계열 플레이어였을 터, 둘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둘이 순식간에 당한 건, 어디까지나 은신 상태로 접근해서 기습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아는지, 이현욱 역시 죽음의 꽃의 가장자리에 선 채, 타이밍을 재려는지 검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이 아르게틀람의 성검 부여 효과가 좋은 이유는……."
시이이이—
그때, 그의 오른쪽 손목 각인에서 한 아이템이 현현했다.
“꼭, 검이 아니더라도 성검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는 거다.”
한 가지의 무기라면, 얼마든지 성검 효과를 바꾸며 사용할 수 있었다.
이현욱이 꺼낸 건 샷건—블랙라이노였다.
이에 근접 전투를 준비하던 두 데스나이트는 순간적으로 얼이 나간 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콰—앙——! 콰—앙——!
두 번의 폭음에 두 데스나이트의 방패가 깨지고 녹아내렸고, 이어진 두 번의 폭음에 놈들이 빈 깡통처럼 날아갔다.
치치치— 불꽃 소리와 함께 놈들의 몸 곳곳에서 시퍼런 연기가 치솟았다.
콰—앙——! 콰—앙——!
이현욱이 재빨리 다가가서 놈들의 투구에다가 샷 건을 한 번씩 더 먹여서 리타이어 시켰다.
아직 회심의 일격을 완성하지 못한 후안 알바레스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슬프게도,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싹 다 사라졌군?”
이현욱이 냉소를 머금으며 총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어디에선가 날아온 두 자루의 페일노트가 놈의 양쪽 손목을 동시에 끊어버렸다.
쩍! 쩍!
“……큭, 나를 어떻게 해봤자 죽음의 행진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더 큰 죽음이 끝내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음, 죽음의 행진이라니, 해골 역할극에 너무 심취한 거 아닌가? 생전에 그런 말을 쓰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넌 지금 안 죽는다.”
"뭐?”
"네가 날 안내해줘야겠다.”
이현욱은 양손으로 놈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다 댄 채, 금속 통제력을 발휘, 주머니 속에서 마나 메신저를 꺼냈다.
칙—
“—정령왕님, 이제 길 좀 터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지면을 뒤덮었던 성수의 호수가 마치 홍해처럼 갈라졌다.
쏴아아아— —
그곳의 바닥은 여전히 끈적끈적한 검은 진창인 ‘죽음 도래지’였다.
이현욱이 그곳을 내려다보자, 후안 알바레스는 그의 의중을 눈치챘다는 듯이 비릿하게 웃었다.
“으흐흐— 죽음 도래지에서 우리가 나온다고 해서 네놈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나? 저 통로는 산 존재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필요하다는 거야.”
“……뭐?”
죽음 도래지,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군단을 소환하는 초거대 양방향 포털이었다.
이현욱은 저 드넓은 죽음 도래지의 양방향 포탈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저 검은 진창 중에서도 유독 붉은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포탈’의 입구였는데, 밖에서는 네크로맨서의 승인이 없이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상급 리치처럼, 네크로맨서에게 관리자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라면 달랐다.
‘이 방법으로 네크로맨서를 몇 차례 노렸었다.’
이현욱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를 암살하는 것인 것처럼, 네크로맨서를 막기 위해서는 정면충돌이 아니라 암살을 해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 전생의 가디언은 네크로맨서의 죽음 도래지를 뚫는 방법을 연구했었다.
비록 죽음 도래지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서 그 연구 결과를 제대로 써먹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이현욱은 놈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뻑—
이현욱은 성검이 아닌 일반 모글레이로 놈의 목을 친 뒤, 허공으로 치솟는 놈의 두개골에다가 금속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 나머지 몸통 부분을 성검으로 찍자, 파스스— 하고 사라져버렸다.
"으아아— 내, 내 머리만 남겨서 뭘 하려는 것이냐?”
"이제 그건 머리가 아니라, 열쇠다.”
"지금 그게 무슨……."
훙—
이현욱은 죽음의 꽃에서 뛰어내렸고, 그와 동시에 성검이 부여된 모글레이가 내리꽂히며 그 기괴한 비행물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턱—
이현욱은 지상에 착륙한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퍼서서서— —
훗날 죽음의 라퓨타라고 불리며 최악의 골칫거리가 되었을 ‘죽음의 꽃’이 재가 되어서 사라지고 있었다.
칙—
“아아, 이현욱입니다. 이제 제 병사들을 가져와 주세요.”
그의 말이 떨어진 뒤 몇십 초 후, 하늘이 굉음으로 물들었다.
두두두두— —
4대의 ROK AMT 대형 수송 헬기가 거인 성채를 넘어서 등장,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면서 무언가를 줄줄이 떨어뜨렸다.
그것들은 낙하산에 매달린 채 천천히 지상으로 착지했다.
텅— 텅— 텅— 텅—
그건 다름 아닌 리빙 아머였다.
총 55기였다.
이현욱이 그것들에게 마나를 부여하자, 마스터 권한이 확보하며 갑옷 표면 위의 마나 회로가 점등했다.
이어서 저 먼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각형의 물체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궤도투하장치 ‘워박스’로,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분리되어서 떨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우——
총 10개, 5m 정도 크기의 금속 상자였는데, 지면에 내리박히기 직전 역추진을 해서 속도를 줄였다.
텅! 텅! 텅! 텅!
그것들은 땅에 내리박힘과 동시에 네 방향으로 분리되었고, 그 안에는 무기가 담겨 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리빙 아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무기를 꺼내 들고는 완전 무장 했다.
그리고 이현욱 역시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웅—
웬 검은 원형 물체 하나가 날아왔다.
철컥—
그게 열리자, 그 안에는 ‘아이언 골렘의 코어’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조금 달랐는데, 중심부에 웬 이빨이 같은 게 박혀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용아병 아이언 골렘의 코어(장인)
- 효과 : 마나를 불어 넣을 시, 주변 금속을 끌어당겨 ‘골렘’이 된다.
그렇다.
이건 강희설이 만들어보겠다고 했던, 용아병(龍牙兵)이었다.
말 그대로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어진 병사였는데,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서 아이언 골렘의 코어와 결합한 것이었다.
‘총 12개다.’
이현욱이 그것에 마나를 불어 넣자, 워박스에서 떨어진 무기 상자—아다만트를 흡수하며 형체를 만들어갔다.
쩌저저저——
약 2.8m, 파충류 머리를 가진 날렵한 체구의 아이언 골렘이 조형되었다.
그르르르—
“이, 이것들은 전부……."
그 장면을 함께 본 후안 알바레스의 머리가 놀란 듯 이빨을 딱— 부딪혔다.
"네 주인만 군대를 부릴 줄 아는 게 아니다.”
어느새 죽음 도래지 위로 이현욱의 권속들이 도열했다.
그 숫자는 언데드 군단에 비교하면 적었지만, 질적으로는 상당히 우수한 상태였다.
어느새 죽음 도래지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자 이제, 네가 길을 열어줄 차례다.”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나? 그냥 날 소멸시켜라— 그게 빠를 거다!”
"아니,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돼.”
이현욱은 후안 알바레스의 머리를, 죽음 도래지 중 붉은색이 감도는 부근에 찔러 넣었다.
푹—
“컥— 무슨 짓이냐! 서, 설마……."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는지, 놈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후우우우——
그러나 이미 늦었다.
검은 진창이 꿈틀거리더니, 그 속에서 검은 손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언뜻 보기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저 안으로 뛰어들면,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나도 군대를 준비해뒀다.”
이현욱이 왼손을 들어 올리자 신성함으로 무장한 강철의 병단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역 침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