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 반란, 반격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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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의 왼손에서 거검이 현현하는 순간 일대의 공기가 밀려나며 토굴에 돌풍이 일어났다.
"어?”
“……뭐야?”
그러나 다크 엘프 간수들을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마치 달려드는 덤프트럭 앞에 선 것처럼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반응은 1~2초 남짓에 불과했으며, 그 사이에 몇몇은 이미 허리춤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현욱이 더 빨랐다.
촤—악——!
그의 왼손이 오른쪽으로 그어졌다.
그 순간, 거검이 쏘아졌다.
퍼—버—버—버——!
그 직후, 철퍼덕 소리와 함께 간수장을 포함한 간수 16마리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단 일격에 16마리를 양단한 것이었다.
"......."
그게 끝이었다.
이들 모두를 벌벌 떨게 했던 간수장과 간수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피 웅덩이를 그리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후, 이곳저곳에서 경악 어린 웅성거림이 울렸다.
“헉— 마, 말도 안 돼……."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이현욱은 고개를 돌려서 요하임 볼코프를 바라보았다. 그때, 모글레이가 천천히 다가와서 그의 등 뒤에 멈춰 섰고. 모두의 시선이 그것에 쏠렸다.
'저 검.......'
요하임 볼코프는 한때 독일 플레이어 랭킹 11위까지 랭크되었던 69레벨의 플레이어로서, 저 검에서 풍겨 나오는 ‘격’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저 정도의 힘이면 전설 등급이다…….'
이 남자, S등급이라고 했지만 6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갓 떠오른 루키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설 등급의 무기를 소유할 정도라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말로, 대장군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요하임 볼코프를 바라보며, 그 생각을 엿들은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렇게 대장군을 암살할 겁니다.”
즉, 지금 이 장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벌인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단 한 장면만으로도, 요하임 볼코프를 비롯한 포로 지도자들은, 이현욱의 ‘반란’ 작전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
잠시 후, 이현욱은 노예 거주지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에서 프리드웬을 소환, 그 안에 보관하던 AD-2 안에서 온갖 무기를 꺼냈다.
그 주변에 모여 있던 포로 플레이어들은 놀란 토끼 눈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저거 비, 비공정 맞지? 그런데 저 금속 상자는 또 뭐야?”
"헉— 저기에서 아이템이 끝도 없이 나오잖아? 설마, 전부 아공간인 거야?”
"와, 이 정도 무기량이면 웬만한 길드가 보유한 물량보다 많겠는데……."
그들로서는 ‘마법공학’이라는 기술 자체가 생소했기에, 이현욱이 꺼내 놓는 물건들이 하나 같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어서, 요하임 볼코프가 포로 중 플레이어인 이들을 선별하여 무기를 보급했다.
"자, 한 명 한 명 와서 받아가세요.”
"저는 저기 저거, 창 주실 수 있어요?”
"아, 올리버 씨는 원래 창 쓰셨어요?”
"네, 전사 계열 창술 특화 능력이었어요.”
총 삼백여 명이었는데, 6년 전에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주로 선별한 것이었다.
"우와— 이거 내가 쓰던 검보다 훨씬 좋잖아? 그런데 이게 제조 아이템이라니……."
"이제는 이 정도의 제조 아이템이 양산되는 건가? 6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이네……."
그 아이템들은 전부 강정두 연구소에서 제작한 최소 '숙련’ 등급의 아이템으로써, 6년 전 기준으로 본다면 C등급 1티어 플레이어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후, 이 느낌……."
그들은 6년 만에 잡아보는 아이템의 감촉에, 어딘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 모두 한때, 몬스터를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이었으니 과거의 용기가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검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
“윽! 그러게,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아!”
이들 모두가 아주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도 못하고 충분하지도 않은 식사를 해온 만큼, 몸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전투는커녕, 무기를 들고 뛰는 것조차 버거울 수도 있었다.
턱—
"자, 이걸 골고루 나눠주시겠어요?”
그때, 김세희가 프리드웬에서 웬 박스를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건 다름 아닌 회복 물약 상자였다.
"총 75개, 많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복용하면 훨씬 컨디션이 좋아질 거예요. 하나로 다섯 명씩 나눠 드세요.”
그래도 이현욱이 가지고 다니는 회복 물약은 최상급인지라서, 한 모금씩만 마셔도 어느 정도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가 무장을 마쳤을 무렵이었다.
“—모두 서두르세요! 간수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달려오며 소리치자 무장을 하던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 뭐야! 간수들이 벌써 눈치챈 거야?”
"아, 아마도 간수장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추가 순찰대가 파견된 것 같습니다! 그 숫자가 꽤 많습니다! 곧 여기까지 올 겁니다!”
그 말에, 요하임 볼코프가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왔다.
“……이제는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다수의 플레이어가 무장한 채 집결했다.
한때 독일 최고의 길드였던 <뢰베>의 공략팀원들이었다.
“……드디어, 오랜만에 실전을 치르겠군요.”
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폭력성을 끄집어낼 때가 왔다.
***
"전부 저리 비켜—!”
한 무리의 다크 엘프 간수들이 노예 거주지역을 가로지르며 고함을 쳤다. 그러자 토굴을 오고 가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벽에 바짝 붙었다.
자칫 간수들의 눈에 띄었다가는 구타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이쪽으로 간수장님 지나가셨냐?"
선두의 간수가 한 남자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어, 어 예! 조금 전에 지나가셨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이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누구한테 질문해? 저리 꺼져!”
뻑!
이런 폭력은, 포로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젠장, 간수장님은 어디서 뭘 하시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노예들한테 무슨 일 당하실 일은 없고……."
"그건 당연하고, 아마도 어디 그린 웨이브가 썩어서 점검 중이실 거다. 아니, 어련히 알아서 하실 텐데 부간수장, 그 새끼는 왜 굳이 가보라고 지랄이야?”
그들은 휴식을 방해받은 게 영 못마땅한지 씩씩거리면서 노예 거주지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때, 토굴 안쪽에서부터 한 무리의 노예들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간수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저거 뭐냐?”
"와, 저것들이 미쳤나……."
간수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야! 거기 왜 모여 있어? 너희 노예들의 단체 행동은 곧 단체 사살이라는 거 몰라?”
그러나 그 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르르 몰려서 다가왔는데, 간수는 그들의 맨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냉소를 머금었다.
“어이, 요하임…… 너였나? 너 이 새끼, 저번에 채찍을 덜 맞았나 봐? 아직도 노예들 대장 놀이를 하는 거…… 어?”
그제야 간수는 요하임 볼코프의 손에 들려 있는 게, 검과 방패라는 걸 발견했다.
"—너, 너 이 새끼, 그거 어디서 났어!”
그 순간, 요하임 볼코프가 바닥을 박찼고, 그의 발에 붉은 기운이 치솟으며 그의 몸을 강하게 앞으로 밀어냈다.
훙!
그건 기사 계열의 돌진 스킬 중 하나였다.
뻐—억——!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미터가 좁혀지며 마치 황소처럼, 맨 앞 두 다크 엘프를 방패로 들이받아서 날려버렸고, 그 뒤에 서 있던 다크 엘프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촥! 촥!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마리가 쓰러졌다. 지금껏 무시했던 노예들의 위력에 퍽 놀랐는지 간수들이 어리바리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개자식들— 죽어—!”
그사이에 십여 명의 무장한 플레이어들이 달려들어서 나머지 간수들을 순식간에 도륙해버렸다.
"젠장, 당장 지, 지원 요— 컥—"
맨 뒤에 서 있던 다크 엘프가 ‘숲의 정령’ 한 마리를 소환하며 양손을 천장을 향해 뻗었다.
"깨어나라, 그린 웨이브—!”
그놈의 손짓에 꿈틀거리기 시작했는데,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려와서 온몸을 옭아맬 듯했다.
이곳에서라면, 단 한 명의 숲의 정령술사가 수십 명의 플레이어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퍼버버버——
"—컥!"
무려 6발의 화살이 놈의 몸 곳곳에 처박히면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정령술은 완성되지 못했다.
후방, 궁수 계열 플레이어 둘이 환호를 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하! 이게 얼마만의 손맛이야?”
"그래도 내가 먼저 맞췄다!”
꽤 오랜만에 놓아본 시위겠지만, 그들은 3차 웨이브라는 대재앙에 대응했던 당대 최고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옛 감각이 빠르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저 개 같은 귀쟁이 새끼들을 싹 다 쳐 죽이러 갑시다!”
그들은 무려 6년 동안 억눌렸던 분노를 동력으로 전진하여, 소란을 듣고 달려온 간수 십여 마리를 더 죽였다.
한편,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맨 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건 김세희였다.
"자 여기 네 분부터 시작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네 명이 손아귀에서 화염 마법을 피워냈다.
“큭, 너무 오랜만에 마법을 썼더니, 예전 같지가 않네요.”
“그 정도면 됐어요. 자, 하늬—”
그녀의 말에 하늬가 바람을 일으켜서 그 화염들을 천장으로 끌고 올랐다.
화아아아——
불이 천장의 넝쿨 ‘그린 웨이브’를 타고 번져나갔고, 그것들이 꿈틀거리며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소방 식물들이 물을 분사해야 했지만, 2왕자를 비롯한 숲의 정령술사들의 힘으로 억제되었다.
“좋아, 모든 게 계획대로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쿵— 쿵—
이현욱이 미리 만들어 놓은 아이언 골렘들이 앞으로 나와서 입구를 틀어막았는데, 그 녀석들은 강철로 만들어진 철판을 들고 있었다.
텅— 텅— 텅—
그걸 바닥에 내리박아서 철벽을 쌓았는데, 일종의 바리케이드인 셈이었다.
"자, 이제 그걸 가져오세요!”
김세희가 외쳤다.
그러자 후방에서 몇 명이 웬 거대한 원통형 물체를 들고 달려왔다.
철컥—
그건 다름 아닌, 마법공학 기관총 ‘그레이버팔로’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그레이버팔로V2 (고급)
- 효과
1) 아공간 탄창 : 10개의 ‘탄띠’를 아공간에 ‘삽탄’할 수 있습니다.
2) 아공간 탄창 : 10개의 ‘탄띠’를 아공간에 '삽탄’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바리케이드 위에 설치했다.
“저기— 놈들이 와요!”
이내 남아 있는 간수들이 깡그리 몰려오기 시작했다.
"좋아, 쓸어버립시다!”
아무리 힘이 약해진 플레이어들일지라도, 마법공학 아이템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약간의 마나를 불어 넣는 것만으로도 제 성능을 발휘했다.
투—두—두—두—두——!
총 14정의 그레이버팔로가 불을 뿜으며, 달려오던 다크 엘프 한 무리를 갈기갈기 찢었다.
"컥!"
"악!"
운 좋게 그 총알 세례를 피해간 놈들은 압도적인 화력이 화들짝 놀라며, 줄행랑을 쳤다.
"이거 성능 제대로잖아?”
"와, 이런 게 가능하다니……."
하지만 방금 도망간 놈들이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올 테고, 그때는 이 정도 화력으로는 막을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자, 이제부터 여기에서 최대한 버텨야 합니다!”
요하임 볼코프가 그렇게 외치며 포로들, 아니, 플레이어들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전진은 여기에서 끝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가 방패를 쥐고, 앞으로 돌아섰다.
“……그 남자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멀리서 엄청난 숫자의 벌레 떼가 몰려들고 있었다.
왜—애—애—애—!
그린 헬 맹독 벌레, 다크 엘프 드루이드들이 식인 벌레 떼를 방출한 것이었다.
"전원, 전투 준비—!”
***
그 시각, 이현욱은 2왕자의 수호기사인 아르젠티 아르쿰과 함께 노예 거주지를 빠져나와서 ‘시타델’이라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다크 엘프 왕국의 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경비가 첨예했다.
- 다크 엘프 정예 기사 (LV:76)
- 다크 엘프 정예 숲의 사냥꾼 (LV:71)
그런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완전무장한 채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었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오고 가는 다크 엘프들을 노려보았다.
앞서 들었듯, 아직 왕실 충성파가 다 정리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저곳이 왕성이다.”
아르젠티 아르쿰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쪽을 눈짓했다. 이현욱은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그쪽을 곁눈질했다.
그곳에 거대한 백색 문이 보였다.
저 안에, 권좌의 방이 있다.
"일단, 저기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기다린다.”
뿌우우우——
이내 어디에선가 나팔 소리 같은 게 울리더니, 먼저 왕도 주변의 경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란이다!”
"뭐? 왕실 잔당이야?”
"아니, 노예들이 들고일어났다!”
"그게 말이 돼?”
지금은 경비들만 움직이지만, 그 반란의 규모가 생각보다 클 테니, 권좌의 방에 있는 병력까지 동원되어야 할 것이었다.
약 이십여 분 뒤…….
쿠구구구——
마침내, 왕성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병력이 나왔다.
그들은 대열을 이룬 채 노예 거주지 방향으로 행진했다.
그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이현욱은 두꺼운 나무뿌리 사이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제대로 빈 집이 됐군.”
그가 ‘퀴네에’를 썼고, 그의 몸이 사라졌다.
***
권좌의 방, 검푸른 빛이 감도는 그 드넓은 공간에 수백 명의 다크 엘프들이 도열해 있었다.
조금 전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나며 절반 이상이 긴급 출동했음에도 여전히 엄청난 숫자였다.
그리고 천장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양의 녹색 넝쿨이 꿈틀거렸는데, 마치 말미잘 군락을 심어둔 듯한 풍경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 공간의 가장 안쪽, 회색 조각상들이 줄지어서 늘어선 곳, 4중으로 펼쳐져 있는 마법 방어막 안에 놓여 있는 ‘권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거구의 다크 엘프는, 현재 다크 엘프 종족의 최고 권력자인 ‘대장군’이었다.
우우우우——
그는 지금 눈을 감고 있었고, 권좌와 그의 몸에서 시퍼런 연기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는데, 그 현상은 ‘바인가드’를 조종하고 있음을 뜻했다.
즉, 대장군은 현재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과의 전쟁을 지휘 중이었다.
"......."
한 나이 든 다크 엘프가 뒷짐을 진 채 근심어린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대장군님께서는 이곳에 신경 쓰실 여력이 없다. 감시관, 반란 진압은 어떻게 되어가나?”
등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예! 군단장님, 그린 헬 맹독충을 뿌렸는데…… 웬 전류와 바람 때문에 전부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젠장, 뭣들 하는 거야? 고작 노예 따위도 진압을 못 해?”
"그래도, 숲의 정령사 3부대가 진격했으니 곧 진압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던 건지, 무기는 어디서 난 건지 알아냈나?”
그런데 즉각 즉각 돌아오던 대답이 갑자기 끊어졌고, 군단장이라고 불린 다크 엘프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돌아섰다.
"내가 묻지 않았……."
그의 턱에 은색 화살이 닿았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 한쪽에 허물어진 ‘감시관’의 몸이 보였다.
저벅— 저벅—
그리고 구석진 곳의 어둠 속에서, 다크 엘프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큭, 네놈은 누구냐?”
“……저게 권좌군?”
그 정체불명의 다크 엘프는 4중 방어막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래…… 네놈은 인간이구나? 그런데 그 폴리모프는 우리의 마법과 패턴이 똑같은데……."
"그렇다는 건, 저 권좌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알고 왔다는 뜻이겠군?”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군단장은 목덜미에 화살촉이 닿아 있음에도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난 노예의 반란, 네놈이 일으킨 것이겠군? 으흐흐— 용케도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기어 들어왔지만, 그래, 어떤 벽에 부딪혔군?
그 정체불명의 다크 엘프는 마법 방어막에 손을 얹었다.
"큭큭— 참고로 그 마법 방어막은 4중에다가 당연하게도 밖에는 절대로 못 연다. 저기, 권좌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고위 마법사들을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해.”
그렇게 떠들던 군단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웅——
그 순간, 그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약 십여 미터 뒤에서 나타났다.
웅——
이어서 그가 손가락을 재차 튕기자, 시퍼런 기운이 흘러나오며 마법 방어막을 형성, 온몸을 뒤덮였다.
"그래서 나를 인질로 잡고 어떻게든 저 방어막을 열 방법을 찾고 싶었겠지만, 이걸 어쩌나? 완전히 실패해버렸잖아? 으하하—”
“……잘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군.”
“뭐?”
"이미 다 알고 다 준비해 왔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한 명의 인간이 다크 엘프 군단 앞에 섰다.
“네놈…… 스틸레인? 네가 왜 여기에 있는…… 젠장, 다들 뭣들 하고 있나? 어서 저놈을 잡아!”
그가 소리치자, 소란을 듣고 이미 무기를 빼 들고 있던 다크 엘프 병력들이 포위망을 빠르게 좁혀왔다.
꾸드드드——
어느새 천장에서도 그린 웨이브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라……."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펼쳤다.
그때, 이현욱의 양쪽 손목—각인에서부터 AD-2가 소환되었고, 그것들이 각각 한 자루의 거검을 뱉어냈다.
‘좌로 모글레이, 우로 레바테인…….'
이현욱은 먼저 레바테인 아니 ‘열기를 되찾은 검’ 움직였다.
‘이 안에 무려 헬파이어가 담겨 있다.’
얼마 전, 드레스덴에서 헬파이어 마법 스크롤의 일격을 당했을 때, 이 거검으로 그 지옥의 불길을 전부 빨아들였다.
그 이후로 한 번 열기를 방출했으나, 아직 많은 양의 헬파이어가 축적되어 있었으니…….
'마그마 소드—’
그 두꺼운 검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먼저 열을 방출했고 이어서 불길이 터져 나왔다.
푸—우—우—우——!
마치 거대한 불사조가 날개를 펼치듯이 불길이 십자 모양으로 솟구치며, 이현욱을 향해 달려들던 다크 엘프 병력은 물론이거니와 천장에서 뻗어나오던 그린 웨이브까지 모조리 집어삼켜 버렸다.
“끄아아아—”
“어, 어서 물을 끌어와!”
이내 숲의 정령술사들이 천장에서부터 물을 머금고 있는 식물들을 끄집어내렸지만, 무려 헬파이어를 평범한 물로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이다.’
이현욱의 왼손이 모글레이의 힐트를 쥐었다.
우우우우——
그 순간, 일대의 마나가 놈의 모글레이 검 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나 폭검— 스페이스 커터—’
첫 번째로 강력한 마나 폭압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앞서 분출됐던 헬파이어를 한 번 더 밀어내면서, 훨씬 강력한 화염 폭풍이 되어서 다크 엘프 군단을 쓸어버렸다.
그렇게 놈들이 몸을 웅크리고, 마법 방어막을 생성하며 오로지 불길을 막아내는데 집중하는 순간— 그 화염 폭풍 속에 몸을 숨겨 왔던 스페이스 커터’가 공간을 양단하며 달려나갔다.
촤—자—자—자—자——!
단 일격에, 족히 백여 마리의 다크 엘프가 반으로 잘리며 무너져내리는 말도 안 되는 화력이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군단장마저도 혀를 내둘렀다.
단 한 명의 인간이, 다크 엘프 왕국의 가장 깊은 곳에서 최고의 정예부대들을 쓸어버리다니…… 실로 충격적이고 황망한 장면이었다.
“……네, 네놈, 설마 이걸 노리고 내 병사들이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렸던 거냐?”
"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우리의 심장부다. 그 불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진화되고 네놈은 저 4중 마법 방어막을 깨려고 애쓰다가 그린 웨이브에 휩쓸— 컥! 이, 이게 뭐, 뭐야……."
그는 멍한 표정으로 제 목덜미를 짚었다.
그곳에 은색 화살, 페일노트가 있었다.
"어, 어떻게 내 마법 방어막을……."
그것은 마법 방어막을 무시하고는, 놈의 목덜미에 처박혀버렸다.
"내가 말했잖아.”
"커……."
"내가 다 알고, 다 준비했다고.”
그 단 한 발의 화살이 ‘영웅’ 등급인 이유는, 이처럼 모든 마법 저항력, 그리고 마법 방어막까지도 무시하고 반드시 목표물에 적중하기 때문이었다.
이현욱은 놈을 바라보며 손짓하자, 페일노트가 그의 목을 완전히 잘라내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어서 그의 손가락은 권좌 쪽으로 향했고—
쉬—익——
두 발의 페일노트가, 4중의 마법 방어막을 물길 헤집듯이 뚫고 쏘아졌다.
‘그러나 이 페일노트로는 대장군을 즉살할 수 없다.’
하지만 4중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는 고위 마법사들이라면 달랐다.
푸—부—부—부——!
두 발의 화살이 그놈들의 목덜미를 일렬로 꿰어버렸고, 그 순간 4중의 마법 방어막이 깜빡이며 사라지는 순간—
훙——
100t짜리 거검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