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 베를린, 다크 엘프 왕국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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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다.
그 끝없는 재앙 속에서, 인류는 엔딩을 바랬었다.
그러나 그건 옛이야기일 뿐…….
이제는 온 세상이 게임에 적응하여 새로운 질서로 여기고 있는바, 끝을 이야기하는 건 늙은이의 고루한 가치관이거나 젊은이의 멋모르는 객기쯤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게임의 끝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변한 세상에서 이처럼 ‘끝’이 언급된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누군가는 발언했겠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은 없었다.
"그래! 이 게임, 사실 비정상적인 일이잖아?”
“……잊고 있었지만, 언젠가 끝을 내야만 하긴 해.”
"그리고 스틸레인이라면 어쩌면 진짜로……."
이미 몇 번이나 세계를 구해낸 압도적인 영웅이 이야기하는 ‘끝’이란, 무게감이 달랐다.
"ㅡ그래, 끝장을 봅시다!”
이내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고, 직후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맞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진짜라면 나도 힘을 보태겠소!”
"내 아이들은 이런 세계에서 살게 할 수 없죠!”
물론, 모두가 이현욱의 의견에 동조할 리는 없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시기할 것이었다.
‘그러나 기세를 가져왔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내가 좌우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졌다.’
이제부터는 이현욱을 견제하는 이보다 이현욱과 함께하려는 이가 많을 것이었다.
물론, 그사이에 숨어서 들어오는 빌런을 잘 걸러내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이제 이 세계의 판도는 이현욱의 통제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놈들을 끝낸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번 세계의 빌런을 정리하는 게 진짜 ‘끝’이 아니었다.
'……전생에 나를 죽이는 놈들이, 더욱 강해져서 올 거다.’
일명 ‘차원 이동자’들…….
그것들의 방문을 지금부터 대비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생이 재현될 것이었다.
***
- 스틸레인, 자신을 향한 암살 시도 저지 후 깜짝 발언…… ‘악의 조직’의 실체는?
- 스틸레인을 중심으로 ‘몬스터연합군’에 대응하는 ‘인류통합군’ 창설되나?
- 압도적인 무력 과시에 이은 영웅적인 선언 ‘스틸레인’의 행보에 세상은 환호했다!
이렇듯, 세상은 이현욱의 ‘선언’ 이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반응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 스틸레인 연설 이후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의 <티타노마키아> 참전 선언 이어져
- 러시아 <미르07> 길드 소속 플레이어 121명 파견 선언 "인류 통합을 지지한다.”
- 에드워드 우즈의 <슬레이어즈> 길드 측 내일 오전 프랑스 노르망디부터 진격 시작 알려
전 세계 각지에서 몸을 사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이현욱 선언 이후 줄지어 참전했다.
그들은 아직 남아 있는 티탄 호플리테스 사냥을 시작했는데, 그 성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 [인터뷰] 평균 레벨 49의 플레이어들, 어떻게 티탄 호플리테스를 사냥했나?
무려 110레벨의 초대형 몬스터인 티탄 호플리테스는 웬만큼 강력한 플레이어 그룹이 아니라면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하더니…….
- 티탄 호플리테스, 고레벨이 아니더라도 ‘레이드’가 가능하다? 공략법 공유 시작.......
그렇게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까지 티타노마키아에 참전하여 유럽 수복에 속도를 높였다.
- 英 <리버풀레이드리서치> 통계 “티타노마키아 참전 플레이어 평균 레벨 11 증가”
- 거인 학살자? 티타노마키아에서 얻을 수 있는 성장형 업적에 관심 급증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숫자의 플레이어가 희생되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 빅 이벤트를 통해서 인류의 전력이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게 긍정적이었다.
이현욱 역시 강철 함대를 이끌고 독일 일대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사냥하면 희망 길드원들의 레벨을 끌어올렸다. 곧 티타노마키아 제3막이 열릴 테니 그전에 전력 상승을 꾀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대한민국 정부 역시 플레이어 병력 파병을 공식 발표했다.
- 韓 대규모 병력 유럽 파견, AMT 병력 1,801명, 민간 길드 병력 688명 태운 함대 출발
그들 중에서는 이현욱이 남몰래 기다리고 있던 <즈믄나래>길드도 섞여 있었다.
'……좋아, 그들이 늦지 않게 등장했다.’
이성윤과 강서윤의 <즈믄나래>, 그들은 히든 퀘스트를 수행하여 <티타노마키아>를 종식할 핵심 열쇠를 구해왔을 것이었다. 일명 ‘헤카톤케이레스’라고 불리는 대(對)티탄 병기였다.
‘그게 있으면, 티타노마키아의 마지막 전투를 한층 더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약 이틀 뒤, 마침내 <티타노마키아>의 최종 장을 알리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고一오一오一오一오——
이현욱은 프리드웬의 램프 도어에서 선 채, 지평선 부근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남쪽 지역에서 붉은색의 빛기둥이 치솟고 있었는데, 이는 ‘대회전’의 시작을 알렸던 현상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빛기둥이 4개의 지점에서 동시에 치솟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즉, 이번에는 점령할 지역一깃발이 총 4곳이라는 뜻이다.’
이현욱은 티타노마키아의 마지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시점에 폭로와 함께 인류의 통합을 주창한 이유도 사실 이것 때문이었다.
‘총 4곳을 동시에 공격해야 한다. 즉, 전선 분리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현욱과 발을 맞춰줄 4개의 군대가 있어야지만 완벽한 승리가 가능했다.
"사장님, 저곳은 발칸 반도, 그리스의 중부 쪽이라고 합니다!”
등 뒤, 이정준 팀장이 어딘가와 교신한 뒤 그렇게 보고했다.
‘더 정확히는 오트리스산이다.’
오트리스산(Mount Othrys ), 그리스 신화에서 티탄 신족의 주둔지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티타노마키아>의 최종 장의 무대가 된다.
그때ㅡ
- (!) 퀘스트 내용이 업데이트됐습니다.
[전쟁 퀘스트]
- 티타노마키아 종막 ‘오트리스산 공성전’
지난 수차례의 전투로 당신의 세력이 티탄의 침공을 저지했고
결국, 그 지고한 티탄들조차 공격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택했다.
그들은 ‘오트리스산’으로 집결하여 군세를 확충할 것이다.
그걸 막아야지만 확실한 승리가 가능할지니, 그곳으로 전진하라!
1) ‘빅토리 플래그’ 총 4개를 168시간 이내에 1시간 이상 확보 (진행 중)
2) 보스 몬스터 '크로노스’와 ‘아틀라스’를 처치 (진행 중)
* 보상 : 전쟁 ‘공적’에 따라서 차등 지급
- 주의! ‘1번’목표 실패 시 ‘티탄’들의 사기가 크게 치솟으며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번에는 앞선 제2막 ‘대회전’과 비교할 수 없는 대전쟁一공성전이었다.
여기에서 문제는, 인류 공성 측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4곳을 동시에…….'
그리고 거의 모든 공선전이 그러하듯, 공성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이 내용대로라면, 그 덩어리 자식들이 뭉치는데 우리가 들이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물은 건 에밀리아 뮐러였다. 그녀는 며칠 전에 도널드 해리스와 함께 티타노마키아 합류한 뒤,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一 이제야 끝이 보이는구나…… 에프터 파티를 준비해야겠네요.”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밀리터리 시트에서 일어났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면…… 이제 슬슬 우리도 모여야겠군요.”
한편, 프리드웬에는 웬 낯선 남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자, 스탠바이一스틸레인, 지금 바로 방송 가능합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프랑스 한 언론사의 종군기자들이었다.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인류를 대표하여 유럽 전역에서 투쟁 중인 여러분, 이제 때가 됐습니다.”
***
"으아아아——!”
한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고함을 질렀고, 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며 울렸다.
"아오,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 해? 어렸을 때 키운 앵무새가 된 기분이야!”
그렇게 연달아 푸념을 내뱉는 히스패닉 남자는 빌런의 간부 리카르도 올리베이라였다. 그는 몬명보다 ‘블러드로드’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세계 제일의 레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권태로운 표정으로 선베드에 누워서 온종일 시가를 피웠고, 바닥에 재가 수북히 쌓였다.
"그런데 담배 좀 그만 피우면 안 됩니까? 안 그래도 밀폐된 공간이지 않습니까?”
한 여자가 옆으로 다가오다가 콜록거리면서 짜증을 냈다.
"후一 담배가 아니라 시가라고, 그리고 벌써 2주째 대기 중이라서 이게 마지막이야. 그리고 씨발, 이렇게 넓은데 담배 연기 좀 내뿜는다고 뭐 달라지겠어? 앤, 호들갑 좀 떨지 마.”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지막 시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치켜들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에 걸리는 오로지 회색 천장, 회색 벽면, 회색 바닥뿐인 공간이었다.
"하一 이 새장 안에서는 이거라도 안 피우면, 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그렇다. 이 사각형의 큐브 공간은 현실 세계가 아니었다.
일명 ‘포켓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고차원의 아공간 안이었다.
즉, 지금 누군가의 주머니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이러다가 쟤들, 써먹기도 전에 폐 질환 같은 디버프 걸릴까 봐 그러는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성질을 내며 주변으로 사방으로 손짓했다. 그곳에는 웬 철창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털 달린 존재들이 붉은 눈동자를 끔뻑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르르르.......
그것들은 전부 블러드 로드의 피를 바탕으로 변이한 ‘웨어 울프’와 ‘뱀파이어’였다. 그런데 블러드 로드의 자식임에도 저렇게 철창에 가두어둔 이유는, 정신 능력은 거의 배제하고 육체 능력을 중심으로 변이시켰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서 제 부모도 못 알아보는 상태였다.
"안 그래도 머리 안 좋은 애들이, 담배 연기 다 마셔서 더 말 안 들으면 어쩌려고요.”
"후一걱정하지 마. 그래도 ‘물어’ 하나만큼은 내가 기가 막히게 가르쳐놨다니까?”
곧 벌어질 전투에서 저것들이 스틸레인의 목덜미를 집요하게 노릴 것이었다.
“그리고 앤, 만약 네가 물려 죽으면, 내 피 좀 넣어서 살려줄 테니까 좀 호들갑 떨지 마.”
웅ㅡ
그때, 꽉 막혀 있던 회색 천장 중심부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드디어 뭔가 왔군?”
저건, 외부 세계에서 포켓 스페이스 안으로 무언가를 ‘반입’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내 그 빛줄기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고, 앤이라고 불린 여자가 그를 맞이했다.
"로드, 체어맨이 보낸 전령이에요. 이제 티타노마키아가 최종 단계에 도달했다고 하네요.”
그 말에 리카르도 올리베이라는 흥미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후…… 그거 말고,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거 아니야? 거기, 이름 모를 놈, 이리와 봐.”
그러자 전령으로 들어온 남자는 잔뜩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럴 것이, 사방이 누린내와 피비린내를 풍기는 괴물들로 가득했으니…….
"예, 블러드 로드, 어떤 게…… 궁금해하신 거죠?”
“후一 그, 우리가 독일에서 또 털렸다는 건 들었다.”
"예, 헬파이어 스킬을 먹혔지만, 완전히 실패였죠.”
"그놈이 멋있게 연설을 해서 플레이어 군대를 모았다지?”
이곳에서 대기한지도 언 일주일이 넘었지만,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였다.
"예…… 그래서 상황이 한층 복잡해진 상태입니다.”
“야, 그러면…… 우리 또 박살 나는 거 아니겠냐?”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선베드에서 일어났고, 전령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내가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지…… 서울에 미스터 기라는 남자가 있었어. 아주 씨발 지가 다 처리할 것처럼 깝죽거리더니만, 결국 스틸레인한테 뒤졌다니까? 그런데 내가 스틸레인 앞에서 이 좆같은 구슬 안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안 불안하겠어? 응?”
"......."
"너 씨발, 체어맨하고 최근에 만났냐? 그 자식이 나까지 버리는 카드 삼는 거 아니야?”
그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그러나 전령은 과감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제가 두 눈으로 봤습니다.”
"응? 보긴 뭘 봐? 제대로 말해 봐.”
비록 리카르도 올리베이라라는 조직 내 간부 앞에서 움츠러들었지만, 그도 빌런 내에서 상당히 높은 입지에 있는 이였다. 그리고 68레벨의 암살자 계열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그린 헬, 그곳에 집결한 다크 엘프 군단의 위세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그것들이 이번 티타노마키에 합류한다면, 아무리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일지라도 절대로 못 이깁니다.”
그는 장담한다는 듯 제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58레벨, 평균 레벨이 그 정도 되는 다크 엘프가 못 해도 2만 마리 정도 됩니다. 그리고 블랙 오크 국왕 스토녹스가 데려온 블랙 오크 정예 부대가 3천 마리 정도 있습니다.”
리카르도 올리베이라는 그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울렸다.
"그러니까, 스틸레인 그 자식이 티탄, 다크 엘프, 블랙 오크, 그 모래성 만드는 애끼 때려잡느냐고 정신없을 때…… 그때 내가 슬쩍 나와서 놈의 목덜미를 물면 된다는 거지?”
이렇듯 빌런들은, 이번 빅 이벤트에 막대한 투자를 해두었다.
이번에야말로, 스틸레인을 비롯한 골칫거리들을 한 번에 제거할 생각으로…….
***
“一아! 자, 이곳은 티타노마키의 마지막 무대인 그리스 중부의 오트리스산입니다!”
해발고도 1,728m 오트리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 남자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는 마치 하이킹이라도 온 듯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그가 조금 움직이자, 오트리산 곳곳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저는, 이 빅 이벤트를 중계할, 조쉬 폴이라고 합니다!”
그는 67레벨의 꽤 수준 높은 플레이어이자 아일랜드의 유명 TV쇼 진행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킬 더 몬스터>의 특별 특파원으로서, 곧 벌어질 전투를 현장 중계를 맡은 것이었다.
"지금 여기 분위기는 아주 묘합니다! 록 콘서트장이자, 올림픽 경기장이자, 재난현장 같네요!”
이렇듯 숙명적인 순간을 너무나 저렴하게 포장하는 조쉬 폴이었는데 그렇기에 인기가 있었다. 그럴 것이 이런 재난이 십수 년 동안 반복되며 일상이 되자, 일반적인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비극으로 전하는 것보다 오락처럼 가볍게 전해주는 걸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 저기 그 유명한 DS께서 오시는군요? 사실…… DS 입장에서는 고민 좀 많이 했을 겁니다? 으흐흐, 아무래도 자신을 깨부순 스틸레인이 주도하는 전쟁에 오는 게 말이죠.”
이어서 세계 각지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이들이 하나둘씩 헬리콥터를 등장했다.
두두두두——
그럴 때마다 조쉬 폴은 능숙하게, 그게 누가 탄 헬리콥터인지를 설명했다.
"이 상황, 마치 시상식장에 슈퍼스타들이 리무진 타고 나타나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그는 껄껄 웃으면서 포토존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답잖은 농담을 이어갔다.
어쨌든, 그 외에도 그곳으로 사기가 바짝 오른 인류의 플레이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 티탄을 잡고 자신감도, 레벨도 잔뜩 오른 이들이 최후의 전투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온 AMT들이 오트리스산을 빙 두르는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런데 그때.......
"오! 저기 보십시오! 사실상 이 ‘인류통합군’을 탄생시킨 대영웅 스틸레인이 왔습니다!”
북쪽 하늘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십여 대의 비공정 무리…… 그곳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이야一 그 어떤 영웅의 등장보다 휘황찬란한, 그야말로 왕의 행차 같은 규모입니다!”
그리고 도널드 해리스의 비공정인 ‘테스우스 배’에다가, 와이트 트리 가드가 탄 수십 대의 대형 헬리콥터까지 섞여 있으니, 그 규모가 함대라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그가 나타나자 현장에 먼저 와 있던 ROK AMT 병력이 바쁘게 움직이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 병력의 지휘관은 최정철 장군이었는데, 그는 지난 ‘대청소’ 이후 보직 이동된 정상식 사령관을 대신하여 서울작전사령관대행 임무를 수행 중이었고, 곧 정식 임명될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티타노마키아 파병이 결정되며, 우성문의 최측근이 그가 나서게 된 것이었다.
우우우우——
강철 함대의 기함 프리드웬이 지상에 착륙하는 순간, ROK AMT 병력이 다가오며 마법 방어막을 에둘렀다. 이미 몇 차례나 그를 노린 암살 시도가 있었던 만큼,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그 AMT 병력을 이끄는 이 역시 아주 익숙한 얼굴, 다름 아닌 김강석 대령이었다.
"이현욱…… 인류의 사령관이라니, 한때 내 병사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에 나타난 코볼트 던전 폐쇄 임무를 맡았던 것 같은데 말인데, 하하一”
두 사람은 악수하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비보가 전해졌다.
"……대 대장님, 서쪽 감시 소식입니다!”
ROK AMT 대위 계급장을 단 여군 한 명이 달려와서 김강석에게 테블릿 PC를 내밀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1km 떨어진 구릉지 지역입니다.”
그곳에는…….
“저게 전부, 다크 엘프 군단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의 다크 엘프 군단이, 초대형 포탈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상된 대로 티탄과 다크 엘프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그 관측 결과는, 모든 플레이어 집단이 공유했고,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젠장, 저게 싹 다 몬스터라는 거야?”
“……진짜 군대 그 자체잖아?”
"허, 저것만 상대하는 것도 벅차겠는데……."
이렇듯, 그 장면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하나 같이 기가 꺾인 말들을 내뱉었다.
그럴 것이, 수백 마리의 티탄 군단을 공략하기조차 쉽지 않은 일로 분석되었다.
“헉!”
이어서 그곳에 또 다른 군단이 합류하는 장면이 펼쳐지며,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브, 블랙 오크들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실종되었던 오크 국왕 스토녹스, 그가 친위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즉, 가까운 거리에 티탄 군단, 다크 엘프 군단, 블랙 오크 군단이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이현욱이 이미 경고했음에도, 그 장면을 직접 보는 건 느낌이 전혀 달랐다.
"......우리, 충분하게 모인 거 맞나?”
"그러게 말이야. 더 필요한 거 아니야?”
지난 며칠 간의 승전보를 통해서 한껏 고취되어 있던 이들이 현실을 직시했다.
이내 곳곳에서 각 그룹의 지휘관들이 모이며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어쩌면 어느 그룹은, 호기롭게 참전한 것을 후회하고 후퇴를 결심할 지도 몰랐다.
그런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나 단 3명, 이현욱 일행만은 조금 다른 감상을 느꼈다.
“……사장님, 이제 때가 온 거죠?”
김세희가 이현욱의 뒤로 다가오며 속삭였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엄청난 숫자의 다크 엘프 병력이 지원을 왔다.’
그렇다는 건, 다크 엘프 왕국이 흔히 말하는 ‘빈집’이 되었다는 뜻이었으니…….
‘이제…… 왕국을 통째로 훔칠 때가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