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 대집결, 대회전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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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이 대회전 참전에 늦은 이유는 ‘금속 통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드레스덴으로 오는 내내 쉬지 않고 금속을 흡수했으며, 그와 동시에 눈에 보이는 모든 티탄 호플리테스를 사냥했다.
그 결과…….
[업적 목록]
8) 거인 학살자 (6단계)
- 조건 : 티탄을 60마리 이상 사냥한다.
- 효과 : 모든 능력(+30%), 마나 총량(+30%), 기절 면역(+40%)
이 업적과 더불어서 <전쟁 영웅>이라는 ‘중첩’ 적용이 되는 업적까지 발동되었기에 금속 통제력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드레스덴에 도착하기 직전, 금속 통제력이 100t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직후, 그는 저궤도에 '워 박스’를 띄우고 그 안에 100t짜리 ‘1번 모글레이’를 탑재했다.
'좋아, 이 정도라면…… 그 악명 높은 데우스 팔랑크스를 깨부수는 것도 가능하다.’
약 백여 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가 네임드 티탄의 지휘 아래에 모여서 이루는 방진인 데우스 팔랑크스는 웬만해서는 뚫을 수 없는 마법 방어막을 패시브 효과로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마다 ‘거인의 약진’ 이름의 광범위한 스킬, 즉 강력한 지진을 일으키는데…… 그건 데우스 팔랑크스가 진입하기 힘든 장애물을 붕괴시켜버리는 용도였다.
‘가령, 도심이라던가…….'
즉, 드레스덴은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현욱이 그 운명을 틀어버렸다.
‘저것들의 위에 100t짜리 거검을 꽂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차례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먹힌다는 판단을 내렸다.
‘단 한 방이면, 충분하다.’
그의 왼손이 출발 신호처럼, 떨어졌다.
저 먼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직선이, 세상을 종단하듯, 지상까지 죽—그어졌다.
100t의 거검이 중력 가속도를 양껏 머금은 채 단 한 점에 내리꽂혔고,
수면 위에 무거운 물체가 떨어진 듯, 그 일대의 지반이 액화되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마치, 산맥이 융기하는 듯한 광경…….
콰—아—아—아—아——!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모든 것—티탄들이 깡그리 퉁겨져 오르는 것이, 후긴의 시점을 통해서 얼핏 보였다.
한 지역이 통째로 날아가는 파괴력 앞에서는, 저 거인들조차 태풍에 휩쓸리는 작은 나뭇잎에 불과했다.
“마, 말도 안 돼……."
웅——
이어서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의 기묘한 소리가 온 세상을 채웠다. 온갖 폭음—충돌음—진동이 뒤섞이면서 청각이 감지해낼 수 있는 영역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드레스덴 도심의 북부 경계면은 충돌 지점에서 약 6~7km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재난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I
“헉— 후폭풍이 다가온다!”
"젠장, 모두 충격에 대비해!”
충격파, 모래 폭풍, 땅의 파도, 온갖 위험천만한 것들이 뒤섞인 기현상이 초원을 갉아먹으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바위들이 치솟고 있었는데…… 일정 높이까지 도달하자, 이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쪽으로.
후—우—우—우——
“—젠장, 모두 마법 방어막을 전개한다!”
결국, 브라이언 틸이 명령을 내렸고, 일찌감치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 부대가 앞으로 나서며 대규모 마법 방어막을 시전했다.
우우우우——
이내 그들의 머리 위에 백색의 돔이 층층이, 다중으로 형성되며 후폭풍을 막아냈다.
텅—텅—텅—텅—텅——!
그나마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점이기에,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막아낼 수 있던 거였다.
"아, 아니 대체 뭘 내리꽂는 거야?”
"저게…… 한 명이 낼 수 있는 위력이긴 해?”
이곳저곳에서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모글레이를, 저궤도에서 떨어뜨린 겁니다.”
그렇게 말한 이는 브라이언 틸이었다.
그는 최상위 등급의 ‘분석가’ 플레이어로서, 한 번 본 아이템의 이미지를 ‘데이터베이스’라는 스킬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내리꽂혔던 그 정체불명의 물체를 눈으로는 확인할 수는 없었어도, 어떤 스킬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었다.
"—뭐? 그 무식하게 큰 대검 말하는 거야?”
그렇게 묻는 이는 모래성의 지배자, 코너 오닐이었다.
그는 다분히 증오에 찬 표정으로 이현욱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흠, 잘못 본 거 아니야?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게 저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해가 안 되기는 브라이언 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내가 알기로도 아무리 모글레이라도, 아무리 높은 고도에서 떨어뜨리더라도 저렇게 강력한 파괴력을 발생시킬 수는 없었다.’
이들 모두 ‘모글레이’라는 이름의 아이템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스틸레인을 라이벌 삼아서 견제해온 만큼, 그의 전력을 최대한 분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글레이가 상하이 오크 집결지에 내리꽂혔던 그 장면은 워낙 유명해서 안 본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도, 저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블랙 오크 주술사들이 만든 검은 돔을 겨우 깬 뒤, 일정 반경에 피해를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몇백 배는 넓은 면적을 말 그대로 지도상에서 삭제해버렸으니…….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무리 강화된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큰 폭으로…… 그게 아니면…….'
문득, 브라이언 틸은 고래를 돌려서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지역을 통째로 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뒤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단신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여유롭기만 한 저 모습…….
그러고 보니 저 남자는 단 한 번도 불안한 표정을 짓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영상을 찾아봤던 만큼, 브라이언 틸은 알 수 있었다.
‘마치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만약을 위한 보험이 있는 것처럼…….'
그제야, 브라이언 틸은 깨달았다.
'아— 애초에 진짜 힘을 숨기고 있던 건가?’
이들, 오메가팀 역시 EPU의 거대 길드장들이 숨기고 있던 비장의 무기를 모아서 만든 팀이었다.
'그런 기만술을 우리 쪽만은 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기만에 당한 거다.’
그는 왠지 모르게 황망한 심경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야? 하, 꼴이 완전 우스워졌잖아…….'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올렸다.
그는 유럽 최고의 분석가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기성 플레이어로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새롭게 떠오르는 스틸레인을 견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즉, 알게 모르게 그에게 시기와 질투를 품었다.
그렇기에 여러 거대 길드장들이 자신에게 연락을 해와서 자신의 분석 능력을 치켜세워주며 <오메가팀>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잠깐 고민한 뒤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리고 <티타노마키아>에서 오메가팀이 맹활약하자, 그 분위기에 취해서 스틸레인을 도발하는 건 서슴지 않았었다.
물론, 알렉산더 체호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방송에 출연해서 스틸레인의 이름은 몇 차례 언급했던 것이었다.
그럴 것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나름의 철저한 분석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저 정도 힘을 숨겨두었을 줄이야…… 애초에 전략이고 뭐고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잖아?’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
그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률을 기록 중인 미국의 방송 프로그램 <킬 더 몬스터> 역시 지금 이 장면을 생중계 중이었다.
- 아…… 타이론 씨, 지금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겁니까?
지금 <킬 더 몬스터>의 방송 화면은 ‘가이아의 발’에 의해서 짓눌린 초원을 향해 걸어가는 이현욱의 모습을 잡고 있었다.
- 어, 그러니까…….
그런데 그때—
- 어! 잠시만요! 지금, 스틸레인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 상대는 바로, 방금 알렉산더 체호프를 짓밟았던 티탄 측 대전사, 티탄 마법사였다.
그놈은 자신들의 동료들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걸 보면서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내 자신에게 접근하는 이현욱을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타르타로스 죄수의 울분’이라는 속박 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촤르르르——
지면에서 보라색 사슬이 치솟아서 이현욱의 다리를 옭아맨 것이었다.
- 헉— 저거에 당하면, 역대 최강의 괴력을 품었다는, 알렉산더 체호프조차 못 빠져나가지 않았습니까?
- 예! 사실상 절대 구속 기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가이아의 발’라는 이름의 광역 스킬을 사용해서 피할 수 없는 일격을 먹이는, 그야말로 악랄한 메커니즘의 공격입니다!
지금 그 공격의 흔적이 초원 위에 새겨져 있었는데, 이현욱이 밟고 선 곳이 바로 그 거인의 발자국 중 엄지발가락 부근이었다.
그걸 정통으로 맞은 알렉산더 체호프는 땅속 깊숙이 처박혀버린 듯했다.
어쩌면 숨을 붙어 있겠지만,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듯했다.
- 이, 이대로면, 스틸레인도 밟히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이현욱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그저 왼손을 살짝 들어 올릴 뿐이었다.
- 어.......
그리고 다음 순간, 돌풍이 한차례 불더니.......
턱—
어느새, 이현욱의 손에 거검, 모글레이가 쥐어져 있는 게 아닌가?
- 응?
- 어.......
그건 저 멀리, 추락 지점에서부터 날아온 듯했는데…… 그 모글레이의 이동 궤도에 서 있던 티탄 마법사는…….
쩍——
그런 소리와 함께, 두 덩이로 나누어지며 무너졌다.
그 장면에, 세상은 다시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직전에 스틸레인이 경악할만한 파괴력을 보여줬다고 한들, 알렉산더 체호프가 아무것도 못 하고 당했던 상대를 일격에 보내다니.......
그건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그의 위력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만천하에 거듭해서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이에 <킬 더 몬스터>의 고정 패널인, 미국 플레이어 랭킹 5위, 타이론 톰슨이 입을 열었다.
- ……이제 알겠습니다.
- 예?
- 아까 제게 물으셨잖아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말입니다.
- 아, 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스틸레인은 지금, 압도적인 힘…… 그걸 과시하는 겁니다.
- 아, 압도적인 힘…… 하긴 저 정도면 이제는 그 누구보다 압도적이긴 한 것 같습니다.
- 예, 이제는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솔직히 말하건대, 세계 최강입니다.
- .......
- 그리고 이제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저렇게 완벽한 한 방을 세상에 선보인 게 아닐까 합니다.
그때, 킬 더 몬스터의 방송용 마법 드론이 스틸레인을 클로즈업 했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서 드레스덴 쪽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무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틸, 이 기회를 놓치실 겁니까?”
그 말에, 브라이언 틸은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려서, 제 팀원들에게 무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오메가팀을 비롯한 수백 명의 플레이어 병력이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당연히 스틸레인이 서 있었다.
- 아무래도 오메가팀 입장해서는 지금 이 상황, 영 찝찝할 수밖에 없겠죠?
- 그렇죠. 지금까지 스틸레인과 경쟁 구도로 날을 세워온 오메가팀이었던 만큼, 지금처럼 그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그림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을 겁니다.
- 지금 실시간 채팅창을 살펴보니까, 어……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네요.
- 음, 저는 오메가팀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스틸레인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이렇게, 세상이 스틸레인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확인했다.
***
대회전(大會戰), 그 웅장한 제목에서 기대되는 두 진영 간의 혈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단 한 방의 공격으로 한쪽 진영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떨어뜨린 직후 ‘발뭉’까지 떨어뜨렸다.
'그렇게 하면, 모글레이의 일격에서 살아남았다고 할지라도 저주에 빠져서 싸울 힘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현욱이 자아낸 거대한 크레이터를 향해 진격한 플레이어들이 마주한 건, 만신창이가 된 티탄들이었는데, 이미 절반은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반쯤 죽은 상태였다.
그래도 171레벨의 보스 몬스터인 ‘크리오스’라는 네임드 티탄은 살아남아서 꽤 오래 항전했지만, 결국 이현욱의 모글레이에 심장이 꿰뚫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빅토리 플래그’는 이현욱이 획득했고, 전쟁 이벤트에 참여한 플레이어 전원이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 상승(+10%)이라는 막대한 버프를 받았다.
그러나 <전쟁 퀘스트>는 ‘1차 완료’라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보상 지급이 유예되었다.
이는 아직, 티타노마키아가 끝나지 않았음을 뜻했다.
- 알렉산더 체호프 의식 회복…… A등급 프리스트들의 회복 마법 덕에 전선 복귀 가능
- 연일 스틸레인 도발하던 오메가팀, 드레스덴 전투 이후 단 한 차례의 공식 발표 없어
- 결국은 스틸레인! 드레스덴에 크레이터를 남기며 자신의 입지를 만천하에 확고히 새기다!
그날 밤, 이현욱 일행은 드레스덴에 마련된 플레이어 연합 캠프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치졸한 게, 아무리 경쟁 상대라고 해도 우리도 아군인데…… 이렇게 크게 승리했는데도…… 와, 저딴식으로 초상집 분위기인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김세희가 창밖을 슬쩍 내다보며 말했다.
이곳에 대기 중인 병력 대부분이 오메가팀 소속인 만큼, 이번 승리를 크게 기뻐하지 않는 분위기인 걸 넘어서 침통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었다.
"뭐, 아직 <티타노마키아>가 끝이 난 게 아니라서 축제 분위기 내기는 이르죠.”
이현욱의 대답에 김세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참나, 올려쳐 주지 말아요. 쟤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카메라 앞에 서서 사장님 먼지 나게 까면서 싱글벙글한 거 기억 안 나요?”
“아, 뭐……."
어쨌든, <티타노마키아>는 끝난 게 아니었으며, 이제부터는 대회전이 아니라, 대전쟁이라는 제3막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이제는 크로노스나 아틀라스 같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네임드 티탄들이 모두 모여서 굴기한다.’
오늘 상대했던 크리오스 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이성윤을 비롯한 가디언 멤버들이 나타나 줘야 일이 잘 풀릴 텐데…….'
그 누구보다 <티타노마키아>를 막기 위해서 노력했던 중력 마법사 이성윤과 그 일행은, 정작 지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이 재앙을 막기 위해서 어떤 ‘히든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타르타로스 미궁을 공략하고 있을 거다.’
그리하여 그리스 신화에서 티탄들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신족을 모티브로 하는 <헤카톤케이레스의 권능>이라는 티타노마키아 한정 특전 무기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때는 다크 엘프 군단과 블랙 오크 국왕까지 합세할 테니…… 이번에는 헤카톤케이레스의 권능만으로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을 거다.’
이현욱은 그 타이밍에 맞춰서 로마로 돌아가서 다크 엘프 왕국의 빈집을 노릴 생각이었고, 제2 왕자는 지금 로마에 대기 중이었다.
'......그렇게 안팎으로 뒤흔든다면, 마지막 전쟁을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거다.’
***
어느새 드레스덴 플레이어 캠프에 밤이 왔다.
아직 유럽 곳곳에서 티탄 호플리테스가 심심찮게 발견되는 상황이기에, 적지 않은 숫자의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수 킬로미터 반경에 EPU 측 병력이 쫙 깔렸으며 온갖 정찰기가 하늘을 수놓고 있는 만큼, 인류 최후의 희망이 오밤중에 기습을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욱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눈을 붙일 생각이 없었다.
저 아군처럼 보이는 수많은 플레이어 사이에 숙적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긴’을 창가에 두고 ‘플라이아이’를 몇 마리 띄운 뒤, 클로킹 모드를 활성화하여 주변을 정찰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도 이질적인 존재를 발견했다.
- 다크 엘프 그림자 사냥꾼 (LV:89)
'……역시나, 다크 엘프가 여기에도 침투해 있군.’
아무리 위장을 잘 했다고 한들, 신분 조회가 완벽할, 이런 정예 부대 사이에 침투해 있는 게 말이 안 됐다.
이는 인류 측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보나 마나 빌런 놈들이겠지…….'
이현욱은 후긴을 움직여서 놈들이 들어간 건물 옥상에 내려앉게 했다.
그렇게 놈들의 대화를 들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소리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하다 못 해 발걸음이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아하니 저 건물에 사일런스 마법을 쳐둔 거다.’
이러면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은 ‘퀴네에’를 꺼냈다.
무려 15분의 투명 상태 유지라는 이 사기적인 옵션은, 그 어떤 암살 계열 플레이어보다 은밀한 첩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었다.
그는 투구를 쓰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문제의 건물 안에 조심스레 침투했다.
‘아무리 퀴에네를 썼다고 해도 기척은 숨길 수 없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이현욱은 허공에 뜬 채 움직일 수 있는바, 그 어디에도 접촉하지 않은 채 이동하여 기척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사일런스 마법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현욱은 숨을 죽이고 후긴의 감각 확장을 빌려서, 청력을 최대로 확대했다.
그러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30분 뒤, 스틸레인의 숙소가 통째로 폭발할 겁니다. 무려 ‘헬파이어’가 내리꽂히고 업화가 타오를 테니, 아무리 그자라고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