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 대집결, 대회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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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드레스덴, 바로크 양식 건축물로 만들어진 그 우아한 도심은 지금 텅 비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티타노마키아>의 제2막 ‘대회전’의 무대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적막감만이 감도는 도시를 채우는 건, 저 멀리 평야에서부터 번져오는 웬 땅 울림이었다.
쿵一 쿵一 쿵一 쿵一
고 진동 속,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선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네! 저는 지금 <티타노마키아>의 제2막 대회장 현장인 독일 드레스덴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 옥상에서는 드레스덴 도심을 넘어서 저 멀리 푸른 초원 지대까지 훤히 내다보였다.
"이곳으로부터 4km 정도 떨어진 평야에 무려 수십 마리의 티탄이 모여 있으며 지금도 계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최대 155마리에 도달한 것이라는 게, EPU의 설명입니다!”
그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지, 지금껏…… 3~4마리가 한 조로 움직였던 티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진정한 군대를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레이드 전문가들은……."
그때—
"一어!”
카메라맨이 별안간 비명을 지르면서 본능적으로 카메라 포커스를 들어 올렸다. 그 이유는一
훙一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게 뭐야!”
그러자 기자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것을 목격한 뒤, 나지막이 읊조렸다.
"어一 미, 미사일이잖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막대 형태의 물체…… 그것이, 바로 옆 건물에 내리박혔다.
콰一앙——!
"一콜록! 가, 갑자기 무언가 날아들었습니다!”
그가 재킷으로 호흡기를 가린 채, 희뿌옇게 피어난 먼지 사이로 옆 건물을 살폈고, 그 중심에 웬 거대한 쇠기둥이 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건…… 기둥이 아니라 창이었다.
약 20m에 달하는…….
그걸 확인하는 순간, 기자와 카메라맨은 뉴스 생중계 따위는 새카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티, 티탄의 창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공격하는 거야一!”
이어서 그 거대한 창들이 빗발치듯 날아들며, 일대의 건물들을 죄다 박살 내기 시작했다.
광——! 광——! 쾅——!
단 일격에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그 어떤 폭발 없이, 오직 질량과 가속도만으로 콘크리트 건물을 모래성 부수듯 해체한다.
그건 투창이 아니라 폭격이나 다름없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이는지는 몰라도, 무언가가 티탄 부대의 심기를 거스른 듯했다.
"젠장, 빌一 이쪽으로 와!”
그래도 기자는 마법사 플레이어였고 그 즉시 마이크를 집어 던진 뒤,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가 시전한 건 단거리 순간 이동 마법이었다.
웅一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약 백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워프하며 일순간 방송 연결이 끊어졌다.
“一빌, 저기, 저기야! 어서 저기를 찍어!”
"잠깐만, 연결이…… 어 됐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무사합니다! 그리고 저쪽을 보십시오!”
그의 손짓에 카메라가 과격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북쪽, 4차선 도로 부근으로 초점을 맞췄다.
그 도로는 드넓은 평야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 평야의 끄트머리에는 언덕이 있었는데…….
쿵一 쿵一 쿵一 쿵一
그곳에서 투구를 쓴 거대한 머리들이 하나둘씩 솟아오르고 있었고 곧 수십 개로 불어났다.
쿵一 쿵一 쿵一 쿵一
하나 같이 창과 방패, 그리고 갑옷으로 무장한 티탄 호플리테스, 그것들은 서로 어깨를 맞댄 채 방패벽을 이룬 채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서, 긴 그림자가 졌기 때문인지, 마치 중세 시대의 성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착시를 느꼈다.
"......보, 보이십니까? 저, 저게 전부 다 티탄 호플리테스인데, 지금, 무슨 이유에서인지 드레스덴으로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무엇을 향해 투창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두一두一두一두——
남쪽 하늘에서부터 NH90라는 이름의 대형 수송 헬기가 줄지어 나타난 것이었다.
훙一 훙一
그것들을 향해서 20m짜리 창이 날아들었고, 선두의 두 세대가 미처 피하지 못했다.
텅——!
그 거창에 대형 수송 헬기가 꼬치처럼 꿰어지며, 저 멀리 드레스덴 도심의 남부까지 날아가서 지상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때一
콰一아一아一아——!!
이번에는 하늘에서 다수의 텔레포트가 떨어졌고 그 안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집단이었으니 말이다.
"헉 ! 저 사람은……."
그 선두에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거구의 남자가 흑색의 몽둥이를 어깨에 들쳐멘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기자가 소리쳤다.
"……여러분 ‘오메가팀’입니다! 그들이 이곳, 드레스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티탄과 인류, 양측 최대 병력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겁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서 카메라를 직시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부터 대전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티탄 무리가 보이는 즉시, 과감한 선제공격을 해왔던 ‘오메가팀’이지만, 지금만큼은 먼발치 떨어진 채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려 88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가 서로 어깨를 다닥다닥 붙인 채, 성벽과도 같은 방패벽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데우스 팔랑크스(Deus Phalanx)’로, 신의 방패 방진쯤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시시때때로 포탈을 열고 서너 마리씩 추가 합류하며, 그 세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시각, 오메가팀의 작전 천막…….
“……저기에 들이 받는 건 야만인 같은 짓이죠.”
이렇게 말하는 이는, 오메가팀의 명목상 리더인 영국 출신의 브라이언 틸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분석가’ 계열 플레이어로서,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작전과 공략 방식을 고안해낸 인물이었다.
"음…… 애초에 ‘팔랑크스’를 깨려면 꽤 노련한 전략이 필요한데, 그걸 깬 로마 ‘레기온’의 활약상을 참고하자면…… 방패를 무력화하거나, 측면을 노리거나, 가장 쉬운 방법은 지형이 고르지 못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거죠.”
그의 설명에도 오메가팀 4인은 영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들 모두, 각기 다른 나라에서 최강의 플레이어로 불리던 이들이었기에 하나 같이 두툼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어서, 서로 융화되지 못 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베테랑들답게, 아무런 소통 없이도 손발이 척척 맞는 게 다행이었다.
"어이, 그런 위키 백과에나 나올 법한 말은 중얼거리지 말고 알아서 작전이나 짜서 가져오라고, 좀一”
그렇게 트집을 잡는 이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채 간이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남자一알렉산더 체호프였다.
으적一
그는 초코바 하나를 입에 욱여넣어서 통째로 씹어 먹었다.
213cm의 거구인 만큼, 전투 전후에 엄청난 열량의 식사를 하는 그였기에, 작전 회의 중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음, 이번에는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려 전쟁 이벤트니까요.”
"글쎄다, 어떻게 먹을지 너무 오래 고민하다가는 스틸레인 그 자식이 갑자기 날아와서 뺏어 먹을 수도 있다. 그 자식 그거 전문이야. 걔 누구냐, DS도 넋 놓다가 블랙 드래곤 뺏겼잖아?”
이렇듯, 이들의 목표는 <티타노마키아> 공략인 동시에 스틸레인 견제였다.
"하하一 어차피 그 남자가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저 ‘데우스 팔랑크스’에는 자체적으로 엄청나게 두꺼운 방어막이 있어서, 그 남자가 아무리 뭘 퍼붓는다고 해도 뚫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측면을 공략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아, 이건 분석 계열 플레이어인 제 눈에만 보이는 거죠.”
“……아니,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할 게 없다는 뜻이잖아?”
이번에는 모래성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젊은 백인 남자 코너 오닐이 끼어들었다.
그는 손 위에서 웬 모래 구조물을 만들었다가 허물었다가를 반복하는 게, 역시나 권태로워 보였다.
“하一 어제부터 좀 지루하네, 참……."
이제 갓 스무 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중 한 명이 된, 혈기왕성하고 반항심 넘치는 이 청년에게는, 이런 작전 회의 따위는 무료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안일한 태도들을 지켜보며 브라이언 틸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억눌렀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신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애초에 이 정도 규모의 빅 이벤트가, 그것도 전쟁 이벤트인데 그냥 들이 받는다고 공략될 리가 없겠죠? 그걸 가장 잘 아시는 건, 바로 여러분이지 않습니까?”
"어一 잠깐만요. 그러면 우리가 굳이 쟤들이 진을 치고 있는 평원으로 가서 싸워줄 필요 없고, 이런 도시로 유인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던 흑인 여성一니아 윌슨이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손아귀에서 권총 한 자루를 획一 휙一 돌려댔다.
"그러니까, 아무리 거인들이라고 해도 도시 안에서는 워낙 장애물이 많으니까 저런 방진 못 만들 거 아니에요. 저한테는 올라갈 곳이나 엄폐할 곳이 많아서 총 쏘기도 쉽고요."
그녀의 말에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인도의 S등급 버퍼, 니샤 카이프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브라이언 틸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모두, 이곳에 오기 전에 전쟁 퀘스트, 그 시스템 메시지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전쟁 퀘스트]
- 티타노마키아 제2막 ‘대회전’
지금 이 순간, 티탄들이 한 장소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방패가 한 곳에 쌓인다면,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진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들이 완전히 집결하기 전에 그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으십시오!
1) ‘빅토리 플래그’를 72시간 이내에 1시간 이상 확보 (진행 중)
2) 보스 몬스터 ‘크리오스’ 처치 (진행 중)
* 보상 : 전쟁 ‘공적’에 따라서 차등 지급
- 주의! ‘1번’목표 실패 시 ‘티탄’들의 사기가 크게 치솟으며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그 내용을 토대로 현 상황을 보자면……."
그가 작전 천막을 살짝 걷었다.
그러자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웬 붉은 빛줄기가 치솟아서 하늘에서 닿고 있는 게 있는 게 보였다.
어제 ‘티타노마키아 : 대회전’가 열리면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현상이었다.
"저 빛이 바로 1번 목표, 빅토르 플래그의 위치를 알려주는 겁니다.”
실제로 항공 관측 결과, 이곳에서 약 7km 떨어진 ‘드레스덴 공항’의 활주로에 웬 깃발이 하나 꽂혀 있었다.
"그걸 72시간 안에 우리가 1시간 이상 확보하면 우리에게 이 이벤트 한정으로 막대한 버프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아, 이제는 64시간 남았네요.”
"그 반대라면…… 쟤들한테 버프가 들어가고요?”
"예, 맞습니다. 그건 어떻게든 막아야겠죠. 이 이벤트의 설계도 그런 방식으로 된 것 같고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알렉산더 체호프가 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一 썅, 상황 겁나게 복잡하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응? 좀 간단하게一”
그때였다.
뿌一우一우一우一一!
웬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런데 평범한 나팔은 절대 아닌 것이, 콘서트장의 웬만한 스피커보다 훨씬 큰 울림통으로, 드레스덴 도심 전체를 요란하게 뒤흔들어댔다.
"아, 깜짝이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불길한데, 한 번 나가보죠.”
그들이 작전 천막 밖으로 나오자, EPU 관계자가 달려오며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一오메가팀 여러분, 이것 좀 확인하시죠!”
그 태블릿 PC는 역시나 마법 드론과 연동된 것으로, 몇 킬로미터 밖에 서 있는 티탄 부대를 관측하는 화면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리에서 티탄 두 마리가 떨어져 나오더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중 한 마리는 다른 놈들과 썩 다른 복장이었는데, 특히나 코린트식 투구에 달린 붉은 깃이 더욱 크고 화려했다.
즉.......
"저놈이 아마도 보스 몬스터 크리오스인 것 같은데…… 회전답게 지휘관끼리 만나자는 뜻 같습니다.
회전(會戰)이란, 두 진영이 한 지역에서 총력으로 부딪히는 구시대적인 전투 방식을 뜻했다.
그리고 그런 전투에 앞서서는 양측 지휘관들의 회담이 이루어지곤 했었다.
“……왜 만나자고 하는 걸까요?”
"아마도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
잠시 후, 드레스덴의 북쪽 평야로 양측 진영의 지휘관들이 마주했다.
1.8m의 인류 측 대표와 19m 정도 되는 티탄 측 대표와 마주 서 있는 장면은 어딘가 불안하기만 했는데, 대화가 잘 안 되기라도 하면 달려들어서 짓밟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장면에 온 세상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인류 측의 상공에 떠 있는 마법 드론만 하더라도 수십 대였는데, 그중 절반은 각종 방송 매체들의 것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의 시선을 받은 채, 인류의 대표가 된 브라이언 틸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전투 계열 플레이어가 아닌 만큼, 자신보다 10배 나 큰 티탄을 올려다보며 본능적인 두려움에 다리가 덜덜 느껐지만, 숨을 고르면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류 측 대표로 나온 브라이언 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금색 수염이 난 티탄一크리오스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짓밟을 기세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벌레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나?」
역시, 정상적인 대화가 안 되리라는 건 그도 예상하고 나온 바였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그쪽 친구들이, 우리 벌레들에게 꽤 많이 물린 것 같던데요.”
「네놈들 따위가 감히, 티탄 종족을 능멸하더니, 당장이라고 밟아 죽이고 싶구나…….」
크리오스가 그르르一 이빨을 드러내면서 위협했고, 브라이언 틸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결코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장면을, 말 그대로 인류 전체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치, 침략은 그쪽에서 해온 거 아닙니까? ……하, 자기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몬스터들이랑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피곤하네, 이제……."
그는 마지막 말은 작게 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너희 같은 하찮은 종족에게는 영토 따위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땅은 이제 우리의 것일지니, 너희는 우리의 식량으로 전락할 것이다.」
“예一 예一 그러면 이렇게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뭡니까?”
「네놈들이, 우리 티탄을 ‘사냥’한다고 표현했다지……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를, 너희와 우리의 격차를 보여주려고 한다.」
"음, 그게……."
「두 진영이 승부를 보기 전에 각각 한 명씩의 대전사를 내세워서 1대1 결투를 치르는 거다.」
그 순간, 브라이언 틸의 눈앞에 웬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티탄 종족 ‘크리오스 군단’ 측이 1대1 결투를 제안했습니다. (Y/N)
* 주의! 거절 시 티탄 부대의 사기가 향상됩니다.
‘아…… 서브 이벤트인가?’
그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티탄과 1대1 대결은 미친 짓이었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오메가팀 정도인데…… 저쪽에서도 일반적인 티탄이 아니라, 훨씬 센 놈이 대전사로 나올 테니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물론, 이건 거절할 수도 있다.’
서브 퀘스트인 만큼,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전황에 영향을 미치겠지…….'
그렇지 않아도 상대하기 어려운 저 ‘데우스 팔랑크스’가 한 층 더 강화되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건, 치명적인 전략 실패일 테니…….
‘그래도 알렉산더 체호프 정도면…… 보스 몬스터, 크리오스가 직접 나오지 않는 이상 1대1 로 상대할 수 있을 거다.'
무려 <헤라클레스의 무구 세트>를 몸에 두르고 있는 자가 아니던가?
1대1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성깔 더러운 전사를, 한 번 믿어봐야겠군……
***
“一뭐, 재밌겠군.”
역시나 알렉산더 체호프는 흔쾌히 응하며 초코바를 하나 더 집어삼켰다.
"그러 면…… 약 18분 뒤에 결투 시작입니다.”
"응? 뭐야,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이미 결투에 응했던 거야?”
"이렇게 바로 응하실지 알았습니다. 또 당신의 승리를 믿고 있고 있기도 하고요.”
"지랄하고 있군,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감동할 줄 알았나?”
하지만 콧수염이 씹룩거리는 게,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결투’라는 이벤트가 발생했다는 소문에, 기자들이 몰려와서 질문을 시작했는데, 알렉산더 체호프는 브라이언 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봐, 스틸레인一!”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오메가팀과 스틸레인의 대결 구도를 심화시켰다.
"어제 내가 그렇게 요청했는데, 역시나……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더군?”
그는 킬킬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쯧쯧一 역시 인기를 끌려는 그저 그런 놈이라는 걸, 나는 알아봤다! 내가 단언컨대, 너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그는 그러더니 제 가슴을 텅텅 두드렸다.
"나는 지금, 인류를 대표해서 티탄 측 대전사와 1대1 결투를 벌이러 간다!”
그러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인기는 요근래, 아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대재앙 속에서 대중은 무릇, 강력한 카리스마의 선봉장을 원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니…… 너무 실망스럽다. 그렇게 계속, 가짜 영웅 행세나 하길 바란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무기인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나무 클럽’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결투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
잠시 후…… 온 세상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드레스덴의 북쪽 평야에서 두 존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류 측에는 무려 213cm의 거구, 알렉산더 체호프가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할지라도, 티탄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쿵一 쿵一
그때, 티탄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16.9m의 압도적인 체구…… 그리고 놈은 여타의 티탄 호플리테스들과 달리 흑색의 하드 레더 아머를 입고 있었는데, 비늘이 돋아나 있는 걸 보아하니 블랙 드레이크의 가죽인 듯했다.
그리고 한 개의 메이스를 쥐고 있었는데, 고작 5m 정도의 길이였다.
"오……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하고 좀 달라 보이는군? 그래도 뭐, 꼴통 한 대 제대로 갈기면 어차피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거다.”
알렉산더 체호프는 아주 기고만장했다.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가 휘두른 방망이를 버틴 티탄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봐! 너 같은 덩어리들의 수박을 깨는 쾌감이 꽤 쏠쏠한데, 혹시 알고 있나?”
심지어 그렇게, 티탄 쪽 대전사를 도발하기까지 했다.
「.......」
"오…… 꽤 과묵한 스타일인가 본데, 그러면 네놈, 유언도 못 남기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고一오一오一오——
그러자 온몸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흘러나더니, 그 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콰一앙——!
이내 마치 폭발하듯, 바닥을 박차고 쏘아졌다.
그런데一
쩌一엉——!
"큭!”
흡사 총알처럼 쏘아지던 그의 몸이, 허공에서 무언가에 턱一 걸리며 멈춰 버렸고,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 웬 보라색 사슬이 채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주의! 당신은 ‘타르타로스 죄수의 울분’에 걸렸습니다!
* 일정 시간(5분) 동안 행동반경이 제한됩니다.
“어一 뭐야…… 마법을 써?”
이는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서 바닥을 박찼지만, 역시나 그 사슬에 매여서 일정 반경 이상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티탄은, 그 반경 밖에 선 채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젠장一 이러면, 때릴 수가 없잖아!”
그러는 사이에 티탄이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 하늘로 뻗었고, 그의 손아귀에서 시퍼런 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불길한 기운이었는데…….
- 주의! 해당 지역에 ‘가이아의 발’이 현현합니다!
그러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머리 위, 하늘에서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친……."
그건……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발이었다.
일순간, 일대가 그림자로 뒤덮였고, 그건 그 파괴 범위를 미리 알려주는 지표인 셈이었다.
고一오一오一오——
그 말도 안 되는 걸 올려다보며, 알렉산더 체호프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저 멀리 뒤에 서 있는 브라이언 틸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 녀석이 작전이랍시고 줄줄이 읊어대던 말이 영 성가셨지만, 이런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그의 지혜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 역시 당혹감에 일그러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어쩌면 아주 사소한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티탄은 ‘전사’ 계열일 것이라는…….
지금까지 봐온 모든 티탄이 그랬기에…….
그가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一
거대한 발이 내리꽂히며, 그를 짓밟아버렸다.
콰一아一아一앙——!
"......."
후一우一우一우…….
"......."
그 직후, 현장에서는 끔찍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곳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고, 여기저기에서 침음만이 흘렀다.
그리고…… 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을 전 세계의 인류 역시 이루말 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는, 다시금 깊은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즉, 인류의 희망이 짓밟힌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一 스틸레인一!”
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모든 카메라가 함께 돌아갔다.
"一뭐?”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백색의 비공정 한 대가 다가와 있음을 깨달았다.
"제, 젠장一 왜 이제야 기어 나오는 거야!”
그때, 오메가팀 측에 속해 있는 한 플레이어가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까지 뭘 하다가, 이제 온 거냐! 우리가 당하는 꼴을 지켜보고 싶어서 그런 거냐!”
아마도 알렉산드 체호프가 당했다는 것에 울분을 느끼며,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에서 질타하는 외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오메가팀은 티탄과 정면으로 싸웠으나, 스틸레인은 은근슬쩍 회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왜 항상 그렇게 제멋대로냐고一!”
그런데 그때, 그렇게 소리친 이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어?”
그곳에, 스틸레인이 서 있었다.
"제가 뭘 좀, 쌓고 오느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에, 모두가 양옆으로 갈라섰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한번 묘하게 들뜨기 시작했다.
스틸레인, 그라면…… 어쩌면…….
그의 발걸음이 멈춰 선 곳은, 브라이언 틸의 앞이었다.
"브라이언 틸,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라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요구를 하겠습니다.”
"예?”
"지금 즉시 전 병력을 진격시킬 준비를 하고, 제 명령을 기다려주세요.”
너무나 뜬금없는 말에 브라이언 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서 있던 오메가팀 멤버들 역시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럴 것이, 방금 스틸레인의 발언은 다분히,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이 전쟁,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설명하는 겁니다.”
“……당신이 알렉산더 체호프를 대신해서, 저 티탄과의 결투할 생각인 겁니까?”
그러나 스틸레인은 고개를 것고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갔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
“1대1 전투라는 명예로운 싸움을 동경해서 그걸 선택하신 건 아니겠죠. 그것도 저 식인 몬스터들을 상대로요.”
"아, 아니一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저 서브 퀘스트를 승인하지 않으면 티탄 부대 전체가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티탄 부대를 제가 제대로 흔들어서 약화하게 할 테니, 제 말대로 전투를 준비하세요.”
“아니, 그게 무슨……."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유명한 제스처에, 모두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인류의 대표라는 명찰을 달고 나가서, 저것들과 협상해서 규칙을 정하는, 그런 촌극을 벌이지 않을 겁니다.”
“아, 아니 그건……."
"그 대신 보다 폭력적일지라도…… 룰을 깨고 박멸해버리는 걸 선택하겠습니다.”
그 순간, 브라이언 틸은 보았다.
이현욱의 왼손이 향한 곳, 저 드높은 하늘, 저고도 부근에 떠 있는 하나의 불빛.......
그리고 그곳에서 한 줌의 직선이 수직으로 그어졌고, 그 선이 지면에 닿는 순간一
웅——
一티탄들이 서 있던 평원이, 지도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