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72화 (172/221)

172화.  < 대집결, 대회전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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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의 이목이 유럽으로, 그곳에서 발생한 <티타노마키아>에 쏠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전해지는 중이었다.

전 세계에서 지원 병력이 준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럽 도착 후 전선 투입까지 아직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고.......

그리하여 거인들이 점거한 도심의 쉘터에 갇혀 있는 민간인들의 안위는 바람 앞의 등불 같기만 했다.

그런데…….

- [속보] 스틸레인, 로마에 등장…… 예고 없는 티타노마키아 참전? "아무도 몰랐다.”

스틸레인, 그가 로마에 등장해서 티탄 호플리테스를 사냥하고 있으며 고립되어 있던 민간인들을 구해주고 있다는, 사실상 첫 번째 승전보가 전해졌다.

- 이번에도 그가 왔다? 스틸레인, 로마 활약상 사실 여부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

그렇지 않아도 그가 갑자기 위그드라실 시티에 나타나서 또 다른 블랙 드래곤을 잡은 일 때문에 세계가 한바탕 들끓고 있지 않았던가?

그 직후 <티타노마키아>가 터졌고, 그의 활약을 바라는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가 한참 커지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그가 그 목소리에 응하듯 정말로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루머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야야一 아무리 스틸레인이라도 이렇게 갑자기 뛰어드는 게 말이 되냐? 그거 그냥 낭설이니까, 신경 쓰지 마.”

미국, 한 언론사의 편집장인 티모시 잭슨 역시 그 보고를 들은 뒤 콧방귀를 뀌었다.

솔직히,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활동하는 스틸레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 직접 뛰어들어가서 민간인들을 구조하고 있다는 건…… 영 납득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이지 않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스틸레인이 어디에 출현해서 무엇을 했다더라는 등, 그런 가짜 제보들이 원체 많이 들어왔기에 일단 의심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달랐다.

"저…… 티미,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그의 부하 직원이 어떤 동영상을 가져왔고, 그걸 재생한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어? 지, 진짜잖아! 아니, 저 인간은 왜 갑자기 로마에 가서 거인들을 때려잡고 있는 건데?”

그는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속 거인의 돌격에 혀를 내둘렀다.

“허一 아무리 그래도 110레벨짜리 초대형 몬스터를 저렇게 때려잡을 수 있나?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거 빨리 포털 메인에 걸어!”

- [속보] 스틸레인의 로마행, 활약 동영상 존재 확인으로 사실로 밝혀져

- EPA의 거대 길드들도 꺼리는 구출 작전, 홀로 감행한 스틸레인에 세계 시민들의 응원이 쏟아져

"그는 대체……."

그러자 온 세상이 다시 한번 스틸레인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비리나 그 어떤 요구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세상을 구해나가고 있으니 세상이 원하는 ‘영웅’이라는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활약이 보도된 지 몇 시간 만에 EPU에 소속된 몇몇 길드 측에서, 언론사들에게 보도 자료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자신들 역시 티탄 호플리테스를 잡고 있으며, 심지어 스틸레인보다 훨씬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응? 얘들 갑자기 급하게 뭔가를 하려는 것 같냐, 왜?”

이 업계에서 잔뼈 굵은 티모시 잭슨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부하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좀 속 보이네요. 그쪽 애들, DS와 스틸레인의 경쟁 구도 때부터 본격적으로 질투하는 것 같더니만……."

“쯧쯧一 세계를 짊어지고 있는 영웅들이라면서 SNS 좋아요 숫자나 신경 쓰는 틴에이지 스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그쪽에서 첨부해서 보낸 공략 동영상을 확인하는 순간, 도넛을 한 입 베어 물었던 티모시 잭슨의 입이 쩍 벌어지며 도넛이 책상에 떨어졌다.

"와…… 뭐야? 이거, 진짜야?”

"이거 진짜면, 진짜 대박 아닙니까?”

"조, 조작된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 동영상 속에는 5명의 플레이어가 4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사냥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는데, 실로 놀라울 정도의 사냥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딱 티탄 잡기 위해서 꾸려진 완벽한 테스크 포스 같잖아! 와…… 도대체 이 정도의 화력을 어디에 숨기고 있던 거야?”

가장 먼저, 갈색의 무언가가 도로 위를 강물처럼 흐르며 나아가더니 4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의 다리를 아나콘다처럼 칭칭 묶어버렸다.

쿠드드드——!

「큭一 이게 무슨 짓이냐!」

「꼭 진창에 빠진 것 같다!」

그것들은 당황하면서 힘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갈색의 구속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그리고 결국, 양다리를 완전히 구속해서 못 움직이게 했다.

"뭐야, 저게 뭔데 못 푸는 거야?”

"어…… 고체가 아닌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자세히 살핀 뒤에야 그게 ‘모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 모래가 한 남자의 등 뒤에 매달린 웬 붉은색 항아리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와, 저 작은 항아리에서 저렇게 많은 모래가 나올 수 있는 건가?”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아이템입니다. 어쩌면 전설 등급 아니겠습니까?”

그 직후, 어디에선가 웬 검은 빛줄기가 뿜어져 올랐는데, 그것들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휘어서, 티탄 호플리테스 4마리의 8개의 눈알에 정확히 명중했다.

「크아아아——」

즉, 발을 봉쇄한 뒤, 시야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어, 방금 그거 총알…… 인가?”

“그냥 총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마탄인데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지?”

“……저것도 아이템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웬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거구가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헤, 헤라클레스야, 뭐야?”

그 모습은 확실히 ‘헤라클레스’의 복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온갖 버프 스킬이 날아와서 적용되었는데, 그건 그 유명한 S등급의 버퍼(Buffer) 니샤 카이프의 스킬이었다.

이번 ‘오메가팀’에서도 그녀를 고용하여 멤버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우극一 우극一

이내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나며, 근육이 팽창하기 시작했고, 그는 바닥을 박차고 도약하여一 웬 검은색 목각 둔기를, 아주 큰 궤적으로 휘둘렀다.

그런데…….

뻐一억——!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단 일격만으로 티탄 호플리테스의 머리를 투구째로 부숴버렸다.

뻐一억——!

뻐一억——!

차례차례, 한 마리씩, 단 한 방에…….

이어서 그 ‘헤라클레스’는 여유롭게 기지개 켜는 장면으로 동영상은 마무리되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 과정이 너무나 빨라서 정확한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돌려보아야만 했다.

어쨌든, 4마리의 숨통을 끊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39초라는 점이 주요했다.

그 영상을 4번째쯤 돌려보았을 때, 팀 잭슨은 미소를 지으며 도넛을 베어 물었다.

"하…… 이거 그림 좀 나오겠다.”

"예? 어떤 그림 말씀이세요?”

“인마, 딱 보면 모르겠냐?”

"어...... 음......."

“이 대재앙을 구원할 두 개의 빛, 쌍두마차 기타 등등 뭐, 이런 식으로 경쟁 구도를 만들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 조는 동시에 또 흥분하겠냐?”

전쟁, 재난, 범죄 등 아무리 잔혹한 사건일지라도 언론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대미였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두 영웅 집단 간의 선의 경쟁이라면…… 조회 수 뽑아먹기에는 최적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EPU 쪽 애들도 그런 구도로 기사 뽑아달라는 뜻으로, 우리한테 이런 보도 자료를 보내준 거 아니겠냐?”

“……아, 그런 건가요?”

“야, 이것 봐라, 그게 아니면 이렇게 딱, 스틸레인의 공략 시간과 자기들 공략 시간을 비교하는 문구를 볼드로 강조해서 줄 리가 없잖아."

"오, 그러고 보니……."

그는 큭큭 웃고는 도넛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그쪽에서 이렇게 판 키울 정도면 스틸레인보다 압도적으로 잘 할 수 있다는 건데…… 이거, 전에 에드워드 우즈도 그러다가 된통 깨졌잖아?”

"아, 그랬죠.”

"이번에는 아주 이를 갈고 나온 것 같으니까, 더 재밌어질 거야. 참 아이러니해. 이런 대재앙이 그 어떤 쇼보다 재밌다는 게……."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스틸레인’과 '오메가팀’의 활약상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메가팀의 사냥 영상이 공개된 이후로는, 세간의 평가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 스틸레인의 활약은 예고편에 불과? 진짜 영웅들이 거인 사냥에 나섰다! 일명 ‘오메가팀’의 활약상 공개에 세상에 희망의 불꽃이…….

- [속보] 오메가팀,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유럽 수복에 나선다.

- EPU 의장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하여 오메가팀 지원할 것, 그들은 유럽을 넘어서 인류의 희망이다.”

- 스틸레인 이상의 활약을 선보인 오메가팀, 티타노마키아의 선봉장을 자처하다!

이렇듯 ‘오메가팀’이 이번 사태의 희망이자 해결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현욱 역시, 로마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오메가팀이 등장하는 고작 39초짜리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그들의 무기를 분석했다.

"와…… 솔직히 엄청난 수준 아닙니까?”

"그러게요. 쟤들, 우리보다 훨씬 빠른데요?"

이현욱의 양옆에서 박준모와 김세희가 감탄 어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저쪽은 5명이니까, 사장님보단 아니고, 우리가 모자라서 그런 거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19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잡아봤기에, 4마리를 39초 안에 잡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현욱으로서도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금 이 타이밍에 등장하지 않았던 온갖 ‘전설’ 등급 아이템들이 버젓이 동영상 속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영상에 보이는 것만 해도 헤라클레스 무구 세트, 식양, 악-켈테까지…….'

그의 기억상 그것들은 적어도 2~3년 뒤에나 등장할 예정이었다.

‘즉, 거대 길드들이 저 아이템들을 꽤 오랫동안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러한 전설 무기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은 유럽 각국의 거대 길드 소속, 최강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비록, 저들이 속해 있을 길드들은 <푸투레>라는 극단주의 집단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의 목적의식이 무엇이든, 세계를 위협하는 재앙이 맞서는 중요한 무기 중 하나인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저 오메가팀의 멤버 중 한 명이 빌런이라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코너 오닐, 아일랜드 국적의 S등급 플레이어인 일명 ‘모래성의 지배자’로, 그 별명대로 모래를 통제하는 능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런데 벌써 전설 등급의 아이템인 식양(息壞)을 얻었으니……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울 거다.’

여기에서 식양(息壞)이란, 중국 신화 속에 등 끝없이 불어나는 살아 있는 마법 모래를 뜻했다.

그런 게 든 항아리를 등에 짊어진 코너 오닐은 ‘사막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었다.

그가 작정하고 모래를 뿜어내기 시작한다면, 도시 하나를 모래폭풍 속에 잠기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역시…… 빌런 쪽에서도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할 생각이다. 아마도 전쟁의 중대한 순간에, 저놈을 비롯한 빌런들이 배신을 해서 인류 연합의 뒤를 노릴 테지…….'

즉, 티타노마키아와 다크 엘프 군단…… 그 두 빅 이벤트를 이용하기 위해서, 빌런 측도 마지막 사력을 짜내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만 제대로 해결하면, 이제 놈들의 무기고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현욱이 지금까지 꺾은 빌런의 숫자가 상당한 만큼, 놈들의 전력도 적잖이 깎였을 터였다.

물론, 최종병기인 네크로맨서가 아직 남아 있는 만큼, 절대로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이번 전쟁에는 그놈도 반드시 등장할 테고, 지난번 싸움을 바탕으로 성녀를 무력화할 방법도 마련해두었을 테니…… 절대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다.’

이현욱은 아다만트 하나를 집어삼킨 뒤,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약 2m 옆, 허공에 떠 있던 거검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웅——

그게 천천히, 이현욱을 향해서 다가왔다.

이제, 이 모글레이의 무게는 무려 50t이다.

자칫 잘못 움직여서 가속도를 부여했다가는, 건물 몇 채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수도 있는 만큼, 심도 있는 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정도조차도 아직 절반의 힘밖에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누가 믿어줄까?

- (!)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모글레이(전설)’의 힘이 일부 제한됩니다!

‘하, 정말 오랜만에 금속 통제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군…….'

어제, 모글레이가 질량 해방(4단계)에 도달하여 50t이라는 무게를 지니게 됐다.

그런데 그에 앞서서 모글레이 한 자루가 ‘드래곤 슬레이어(3단계)’를 달성하며 ‘전설’ 등급으로 격상했고, 질량 해방 역시 ‘강화’되었다.

‘그로써 영웅 등급 때보다 2배 정도 올랐다.’

그렇기에, 질량 해방-강화(4단계)는…….

'……원래는 무려 100t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금속 통제력이 없기에, 2배 강화가 적용되지 않은 채 50t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1번, 전생에서 온 모글레이(전설)는 100t

2번, 현생의 원본 모글레이(영웅)는 50t

3~4번, 레플리카 모글레이는 두 자루가 25t

총합 200t이지만…….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58,051t

'……아직 금속 통제력이 부족해서 4자루 전부를 최대 무게로 다룰 수도 없다.’

그렇기에 하는 수 없이 ‘모글레이(전설)’을 제외한 나머지 3자루는 ‘질량 해방’을 ‘3단계’로 유지해야만 했다.

물론 금속 통제력이 오르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 단계를 올릴 수 있었다.

‘이러면 한동안은 금속 통제력 상승에 집중 좀 해야겠는데…….'

그런데 때마침, 금속 통제력을 가파르게 올릴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건, 거인 학살자 ‘업적’의 단계를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업적 목록]

8) 거인 학살자 (1단계)

- 조건 : 티탄을 10마리 이상 사냥한다.

- 효과 : 모든 능력(+20%), 마나 총량(+20%), 기절 면역(+30%)

'이 업적은 10마리를 더 잡을 때마다 단계가 올라가는데, 효과는 2%씩 추가 상승한다.’

이는 이번 이벤트 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 중 하나였다.

물론 그만큼 티탄을 많이 잡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테지만…….

‘나는, 가능하다.’

이현욱은 지금 한 빈 호텔 안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이 로마의 하늘로 옮겨 갔다. 그건 역시나 ‘후긴’의 시점이었다.

후우우우——

이내 약 2km 정도 떨어진 도심지에서 한 무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건물 한 채를 뜯어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안에 생존자가 있는 듯했다.

“……좋아, 한 무리 또 찾았어요.”

그의 말에 김세희와 박준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이번에는 기다려요.”

“네?”

“이번에는 그냥 제가 혼자서 처리해볼게요.”

“어…… 밖으로 안 나가고, 이 상태로요?”

이현욱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왼손을 뻗었다.

쾅——!

그러자 모글레이가 그대로 창문을 박살 내고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니, 굳이 창문을……."

그리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상승한다.

후우우우——

그렇게 구름보다 더 높이, 후긴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도달한 무렵, 천천히 멈춰선 거검.......

윙——

이내 기울어지더니 검 끝이 바닥을 향했다.

그리고 중력 방향으로 추락한다.

후우우우——!

흡사 탄도 미사일처럼 목표를 향해 맹렬하게 쏘아졌고,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한 건물을 뜯어내고 있던 4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뻐一억——!

그렇게 한 놈의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갔다.

「어?」

「뭐, 뭐야!」

나머지 세 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자신을 공격한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다.

그저, 웬 육중한 거검 한 자루가 한 종탑을 선회하여 다시 날아오는 게 보였는데…… 그걸 포착하는 순간, 놈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헉! 저, 저것에 맞으면 안 된다!」

「버, 방, 방패를 들어 올려서 막는다!」

'그딴 걸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쩡——!

직격一방패째로 놈의 몸을 관통한 뒤, 그 뒤에 서 있던 놈의 목덜미에 꽂혔다.

「꺼으으…….」

이현욱은 그 상태로 왼손을 살짝 휘젓자, 모글레이가 종으로 크게 휘둘러지며, 그 옆에 서 있던 마지막 한 놈의 머리를 일격에 절단해 버렸다.

퍼一석——!

“……끝났어요.”

이현욱이 슬며시 눈을 뜨며 말했다.

"네? 지, 진짜요?”

약 2km 떨어진 곳, 호텔의 소파에 앉아서 왼손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4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처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현욱은 모글레이의 스킬인 ‘쇼크웨이브’나 ‘마나 폭검’ 같은 스킬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들도 질량 해방과 비례하여 ‘강화’된 바, 자칫 잘못했다가는 로마 도심 곳곳에 거대한 구덩이를 남기는 걸 넘어서 인근 쉘터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39초라…….'

오메가팀이 티탄 호플리테스 한 조를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이 그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현욱이 전력을 다한다면 그 정도는 쉽게 넘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한데, 구태여 자신의 모든 힘을 세상에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저쪽에서 숨기고 있는 비장의 무기를 공개했다면…… 이현욱은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났다.

[업적 목록]

8) 거인 학살자 (3단계)

- 조건 : 티탄을 30마리 이상 사냥한다.

- 효과 : 모든 능력(+24%), 마나 총량(+24%), 기절 면역(+34%)

'내가 잡은 게 지금까지 34마리…….'

김세희와 박준모, 두 사람에게도 거인 학살자 1단계를 달아줬기에 총 54마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로마 전역에 있는 티탄 호플리테스를 깡그리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중년 남자는 쉘터안전관리국장이라는 직함의 로마시의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제가 로마시를 대표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저희는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그는 거의 울상이 된 채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완전무장한 채 모여 있었는데, 전부 로마에 고립되어 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도 110레벨짜리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재량은 안 됐다.

그러나 이현욱이 이 일대를 싹 정리해준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곳에 프리드웬이 대기 중이었고 그 뒤로 탈로스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장면을 누군가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수많은 기사가 양산되었다.

- 스틸레인, 3일 만에 로마를 탈환하다!

그러나 그 소식은 더 큰 이슈에 금방 묻혀버렸다.

- 오메가팀, 오스트리아 수도 빈 탈환 후 서쪽으로 이동 "다음 목표는 독일 도심” 전차처럼 전진하다!

- 오메가팀, 뮌헨에 입성…… 진정한 영웅들의 등장에 뮌헨 시민들의 환호 이어져

- 오메가팀, 뮌헨서 티탄 호플리테스 3개 조 15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며 저력을 과시하다!

그들은 확실히 이현욱보다 더 빨랐다.

그럴 것이, 오메가팀 자체의 화력도 엄청났지만, 다수의 거대 길드가 총력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오메가팀 5인의 압도적인 화력, 지금까지 총 91마리의 거인을 처치한 것으로 추정…….

이렇게 오메가팀 5명만 활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뒤에는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작전 보조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사장님, 잠깐만 이것 좀 보세요.”

프리드웬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김세희가 갑작스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건 웬 뉴스의 생중계 화면이었는데, 언뜻 봐도 오메가팀의 활약 현장인 듯했다.

그런데 상단에 [오메가팀, 스틸레인 언급]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웬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티탄 호플리테스의 시체를 배경으로 하고,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 ……큼, 어, 내가 이 방송을 빌어서 그 스틸레인, 그 친구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나?

- 예, 하셔도 됩니다.

- 스틸레인, 내 이름은 알렉산더 체호프다. 뭐,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는 레벨 91의 광전사 플레이어로, 한태산 다음 가는 브루저로 유명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근력과 체력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헤라클래스의 무구 세트>라는 최고의 탱커 아이템 세트를 두른 데다가, 니샤 카이프의 버프까지 항시 두르고 있으니, 지금은 그가 세계 최고의 브루저일 터였다.

그가 오메가팀을 대표로, 생방송 중에 이현욱을 언급한 것이었다.

- ……내가 따로 연락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말이야. 어쨌든, 로마 탈환 잘 봤다. 역시 이름값은 하는군?

그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런데 굳이 그렇게 혼자서 외로운 늑대처럼 움직일 이유가 있나 싶은데 말이야. 그게 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으흐흐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거 알지 않나?

"......."

그 대목에서 옆에서 함께 보고 있던 박준모와 김세희가 이현욱의 눈치를 봤다.

- 그, 자네가 게이 같은 K팝 스타처럼, TV 앞에 앉아 있는 계집애들한테 멋있어 보이려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 땅을 구하고 싶다면…….

그가 자못 근엄한 표정을 자아낸 뒤,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 부디 우리 밑으로 들어와서 함께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진정으로 이 세상을 위하는 일이니 말이다.

"一하, 꼭 저렇게 재수 없게 말해야 하나?”

김세희가 푸념을 내뱉었고, 그녀의 어깨에 앉아 있던 하늬가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뭐…… 속이 뻔히 보인다.’

저들은 지금, 철저한 계산 하에 이현욱을 도발하며 자신들의 밑으로 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이현욱의 합류를 바라는 건 아니었고,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성을 계단 삼아서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며칠 만에 세상은 스틸레인보다 오메가팀이 더욱 강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一

고一오一오一오——

화면 속, 알렉산더 체호프의 등 뒤, 꽤 먼 곳에서 웬 붉은 빛이 치솟는 게 보였다.

이현욱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서 프리드웬의 창밖을 바라보았고 북쪽 하늘에서 그와 똑같은 붉은 빛줄기가 치솟는 게 보였다.

- 응? 저건 또 뭐야?

화면 속과 화면 밖의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가운데, 오직 이현욱만이 그 현상의 저의를 눈치챘다.

'……티타노마키아의 제2막이 열린 거다.’

꽤 많은 숫자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잡았기에, 이 이벤트의 2페이즈가 시작된 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곧 <대회전>이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유럽 곳곳에 등장한 티탄 호플리테스를 상대로 소규모 국지전을 벌였다면, 이제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진정한 군대 형성한다.

'……그 거인들이 수백 마리가 한 자리에서 모여서 일명 <데우스 팔랑크스>라는 방진을 이룬 채 진격해오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즉, <티타노마키아>라는 티탄과의 ‘전쟁’은 이제야 진정한 시작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눈에 웬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당신은 전쟁 이벤트 ‘티타노마키아 : 대회전’에 자동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어, 지금 이거 보이세요?”

그리고…….

- ‘전쟁 영웅’ 업적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업적 목록]

6) 전쟁 영웅

- 조건 : 전쟁 이벤트에서 최대 공적을 세운다.

- 효과 : 전쟁 이벤트 참여 시 모든 능력 상승 (+50%)

'이거 잘 하면…… 100t을 찍을 수도 있다.’

그 대목에서 이현욱은 상상했다.

수백 마리의 티탄들이 형성한 팔랑크스 방진…… 그 산맥처럼 단단한 진격…….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위에 100t짜리 신의 지팡이를 내리꽂은 뒤, 그에 비례하는 쇼크웨이브를 터뜨린다면…… 과연, 팔랑크스는 유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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