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로마, 거인 학살자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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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심가의 <제3 쉘터>, 그곳에는 정확히 13,211명의 민간인이 피난해 있었다.
쿵一 쿵一
그들은 이처럼 머리 위에서 울리는 거대한 발소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소음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들의 허기짐이 담긴 서성임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불안감을 떨쳐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이.......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그런 뻔하디뻔한 푸념이 타당하다고 느끼는 건 한 두 명이 아니었는지, 이내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곳에 고립된 지도 벌써 44시간째…… 구조대의 도착 소식은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비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 바로 옆에 있는 <제6 쉘터>도 당했다네요.”
한 남자가 허공을 보며 홀로 중얼거린 듯한 말에, 주변 피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헉! 그, 그게 진짜예요?”
제6 쉘터, 그곳은 이곳 제3 쉘터에서 고작 4~5km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 말을 들은 피난민들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지는 게 당연했다.
"예, 아까 위층 화장실에서 경비대원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전부 다…… 죽었다네요.”
그 끔찍한 말은 그나마 조금 순화되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잡아 먹혔다’는 것을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 쉘터도 안전하지 않다는 건데, 이러면 우, 우리는 이제 어떡하죠?”
"젠장,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뿔뿔이 흩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러다가는 그 자식들한테 밥상을 차려주는 꼴이잖아요.”
"이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입 밖으로도 꺼내지 마세요. 그 말듣고 괜히 혹한 누군가가 그런 짓 했다가는 다 같이 죽는 거예요.”
“……알아요, 그냥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해본 말입니다. 젠장, 언제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절망이 깊어져만 가는 가운데, 쉘터 관리실은 그 어느 곳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씨발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 중심에서 이렇게 목청껏 소리치고 있는 덩치 큰 남자는 이곳 <제3 쉘터>의 책임자인 ‘쉘터장’이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민간인이 몇 명인 줄 알고 그딴 말을 합니까? 뭐, 잠자코 기다리라고요? 지금 당신이 여기에 와 있으면 그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예?”
그는 역정을 냈지만, 마나 메신저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비정하기만 했다.
- 칙一 그렇게 화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선은 소음을 최소화하고 대기하세요. 그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답입니다.
이렇듯 상급 기관에서 내려온 답은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는데, 어제부터 일관된 대답이었다.
아직 구조대를 파견할 수 없다.
심지어 날짜를 기약할 수조차 없다.
"젠장, 정부라는 놈들이 국민을 다 죽일 셈이군......."
- 칙一 쉘터장, 진정 좀 해요. 그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없어요.
"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 여기에……."
- 예, 우리 국토에만 수백만 명이 고립되어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
- 칙一 그런데 무려 110레벨의 티탄들이 도사리는 곳에 섣불리 병력을 파견했다가는 귀중한 병력을 개죽음으로 내모는 것뿐이죠. 그 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위기에 처한 건 그쪽 쉘터만이 아니에요. 칙一 유럽 전역이, 똑같은 상황이라고요.
이 설명이 전부 사실이라는 점에서, 쉘터장은 더욱이 큰 절망감을 느끼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하긴, 저 끔찍한 거인들을 밀어내는 것도 모자라서, 무려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안전지역으로 인도하는 일을, 그 누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전 세계의 영웅을 전부 불러 모아야만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마시에만 이러한 쉘터가 수십 개였으니…… 구조 작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는 걸, 쉘터장 역시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 쉘터장,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등장한 티탄 호플리테스는 무려 110레벨이에요. 한 마리를 잡는 데만 해도 우리 국방력의 10%를 동원해야 할 정도란 뜻입니다!
"하……."
-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꽤 오래 버티셔야 할 겁니다. 칙一 비축 물자를 최대한 아껴 쓰셔야一
그런데 그때一
“一쉐, 쉘터장님!”
그를 급히 부르는 이 목소리는 제3 쉘터의 경비 책임자인 경비대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는 웬만해서는 좋지 않은 사건이 터졌음을 뜻했다.
“……경비대장, 무슨 일입니까?”
"지금 당장 관제실로 와보셔야겠습니다!”
관제실, 그곳은 각종 보안 설비가 설치된 곳이었고, 두 사람은 서둘러서 그곳으로 향했다.
"저기, 8번 CCTV를 보시죠.”
그가 손짓하자 경비대원 한 명이 컴퓨터를 조작했고 이내 화면 한쪽에 8번 CCTV 화면이 가득 찼다.
“어?”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쉘터장은 일순간 다리가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아, 아니 저게……."
8번 CCTV, 그것은 제3 쉘터의 입구 근처 도심을 찍는 야외 CCTV였다.
즉, 쉘터 밖을 감시하는 용도였는데…… 그곳에 지금, 티탄 호플리테스 4마리가 찍히고 있었다.
"경비대장, 저 자식들이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잘 모르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그래, 쉘터 바로 위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손짓으로 바닥을 가리키는 게, 영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설마, 우리의 위치를 감지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사일런스 마법 생성기가 가동 중일 텐데......'
그런데 불현듯, 제6 쉘터도 이렇다 할 소음을 내지 않았음에도 저놈들에게 발각되어서 파괴되었다는 보고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주의해야 할 건 소음이 아니라는 뜻인데…… 혹시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는 건가?’
무려 110레벨이라면, 그 정도의 예민한 마나 감지력이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젠장, 너무 안일하게 마나 교신을 사용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화면 속, 바닥에 앉아 있던 티탄 호플리테스들이 대화를 끝마쳤는지 어기적어기적 일어서더니, 무려 20m에 이르는 창대를 촉이 바닥을 향해 쥐고는一
쾅—— 쾅—— 쾅——
온 힘을 다해서 내리찍기 시작했다.
"헉—"
"젠장!”
쾅—— 쾅—— 쾅——
마치 중장비에 달린 드릴처럼, 파괴적인 위력의 일격이 쉘터의 천장을 향해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그렇게 발생한 충격이 쉘터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왔고, 피난민들의 동요 어린 웅성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쉘터장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피어오르는 소름一공포감을 느꼈다.
그가 두려워하던, 최악의 상황이 닥쳤다.
"一전원, 전투 준비 한다!”
그때, 경비대장이 소리치며 검과 방패를 뽑아 들더니 최상층부 ‘1 차 방어막 진지’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그러자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경비대원, 총 29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사실상 죽음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저항일지라도 모른다고, 쉘터장은 생각했다.
"이제…… 끄, 끝장이다.”
110레벨의 초대형 몬스터가 무려 4마리다.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절대로 막아낼 수 없다.
그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라서, 이 쉘터에 피난해 있는 아이들조차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쉘터장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모두 죽더라도 최대한 버티긴 해야 한다.’
이곳 제3 쉘터에는 로마 지하철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가 있었고, 쉘터가 공격받는 즉시 지하 통로를 개방하여 탈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민간인이 탈출할 때까지, 우리가 버텨내야만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다.’
그는 부관에게 탈출 지휘를 명령한 뒤, 완드를 뽑아 들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 우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지상과 가장 가까운 구획인 일명 1차 방어막 진지, 그곳에 경비대원들이 운집하여 균열이 번져 나가는 천장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레벨은 고작해야 28정도, 굴러오는 바위 앞에 선 달걀 한 판 같은 꼴이나 다름없었다.
콰드드드——
이내 천장이 완전히 뜯겨나가며 이른 아침의 햇볕이 쉘터 안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윽!"
눈이 부신 것도 잠깐…… 거대한 투구를 쓴 머리 4개가 그 햇빛을 등진 채, 경비대원들을 내려다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 치열 사이에 인간의 것이 분명한 살점이 껴 있었기에, 경비대원들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으흐흐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이렇게 모여 있다니…… 이게 웬 횡재야?」
「이것들 좀 봐라, 이쑤시개만 한 무기를 들고 우리를 노려보는 게 너무 깜찍하지 않냐?」
「친구들, 저기 저 덩치 큰 놈은 내가 먹을 거니까, 아무도 건들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놈들이 그런 끔찍한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경쟁하듯 우악스러운 손을 뻗어 온다.
「으흐흐一 이리 온一」
그 거대한 손아귀들이 목전까지 다가왔음에도 그 누구도 선뜻 반격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저 닭장 구석에 몰린 병아리들처럼 바짝 얼어붙어 있을 뿐…….
"아……."
"흑一"
왜냐하면, 자신들이 아무리 온 힘을 다하더라도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하여 처절한 무력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큰 맹수를 마주한 작은 짐승이 초저주파에 몸이 굳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몰랐다.
이대로, 모두가 한낱 먹잇감으로서의 최후를 맞이하고 말 그 순간…….
퍼一억——!
저 먼 하늘에서부터 웬 검은색 물체가 수직 낙하하더니, 티탄 호플리테스 한 놈의 목에 처박혔다.
「크아아아——」
그놈이 비명을 토하며 붉은 피를 흩뿌렸고, 손을 뻗어서 목덜미에 박힌 그것을 뽑으려고 했다.
쩌一어一어一영——
그 검은 물체로부터 충격파가 발생하여 놈의 몸이 한껏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시뻘건 선지피가 용암처럼 꿀렁 꿀렁 흘러내렸다.
즉, 즉사했다.
"뭐, 뭐야!”
「큭, 뭐야!」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쉘터의 경비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군가가 티탄 호플리테스를 습격한 것이었다.
즉, 자신들을 구해준 것이었다!
'그게 말이 돼? 대체 누가 그럴 수 있지?’
그 장면, 쉘터장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부 기관에서조차 구조대를 파견해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저것들을 공격하는 걸 넘어서…… 단 일격만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미친, 저게 가당키나 한 거야? 우리나라의 국력의 10%를 동원해야지 단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한 방에 죽이다니.......'
그렇게 쉘터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어디에선가 무지막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一 쾅一 쾅一 쾅一
마치 땅이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격한 굉음…… 지난 48시간 내내 거인의 발걸음 소리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그 굉음의 패턴이 왠지 모르게 ‘발걸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뭐가 다가오고 있는 거지?’
「헉一 저기 봐! 저, 저건 도대체 뭐야!」
「젠장, 웬 거인이 우리한테 달려온다!」
「모, 모두 방패를 들어서 막는다!」
심지어 저 거인 놈들이 기겁하며 “거인”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실로 엄청난 것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一 쾅一 쾅一 쾅一
그 걸음걸음마다 그렇지 않아도 반쯤 무너진 천장이 쩍一 쩍一 갈라지며 온갖 돌 조각이 쏟아지는 바람에 경비대원들은 방패로 머리를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으一 모두 낙석을 주의한다!”
"젠장, 마법 방어막 좀 둘러 봐!”
그 순간, 쉘터장은 무너진 천장 너머로 어떤 거대한 존재의 발바닥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펄쩍 뛰어오르자 마치 일식이 일어난 듯 태양을 전부 가리었으며, 그 직후 3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를 덮치며 오른손 주먹을 내지르는 게 보였다.
뻐—억——!
흡사 충차(衝車) 같은 주먹이 뻗어 나가 티탄 호플리테스의 턱주가리를 부숴버렸고, 그놈이 수직으로 붕 떠올라서 한 건물 위에 처박히는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억——」
꽈르르르…….
족히 수백 년,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로마의 건축물 한 동이 종이상자처럼 폭삭 주저앉았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죠?”
"호, 혹시 티탄끼리 내전이 난 걸까요?”
그래,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일 지경이었다.
쿵一쿵一쾅一쾅一
어느새 시야 밖으로 사라진 그 거인들이 온갖 소음을 내며, 주변 건물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멀찍이 물러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어— 쉘터장님, 위험합니다!”
하지만 쉘터장은 저도 모르게 무너진 천장을 너머로 기어 올라가서, 엉망이 된 포장도로 위에 섰다.
지금 이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겠다는 생각이 왠지 모르게 치솟았다.
'……저 검은 거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우리 편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서자 그제야 그것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쿵! 쿵!
이른 아침의 햇빛을 받으며 영험한 검푸른 빛깔로 번뜩이는 금속 거인…… 그것이 웬 거대한 짐승의 머리뼈로 만들어진 둔기를 들어 올려서 티탄 호플리테스를 향해 내리찍었다.
콰一앙——!
그놈이 방패를 들어 올려서 막았으나, 방패를 타고 들어오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굽혔다.
그 충돌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주변의 건물의 창문이 죄다 깨져 내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상층부의 벽돌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그리고 약 백여 미터 거리에 서 있던 쉘터장의 몸도 허공으로 훌쩍 들릴 정도였다.
“큭—”
콰一앙——!
이어진 타격에 놈의 방패가 우그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바, 세 번째 망치질이 놈의 골통을 수박처럼 부숴버렸다.
퍽一소리와 함께 건물 한쪽 면이 붉은 뇌수로 물들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一!」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 티탄 호플리테스가 방패를 내 버린 뒤 20m짜리 장창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금속 거인의 옆구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내질렀다.
터一엉——!
하지만 그저 그 반들반들한 금속 몸에 약간의 스크레치를 새기는 게 끝이었다.
「으으으一 마, 말도 안 돼!」
결국, 혼자 남은 티탄 호플리테스는 창을 떨어뜨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겁에 질린 표정을 바라보며 쉘터장은 괜스레 희열감을 느꼈다. 마치, 나를 괴롭히던 덩치 큰 불리(bully)를, 더 큰 사촌 형이 때려줄 때의 쾌감이었다.
‘허一 저것들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금속 거인을 바라보는 순간…… 쉘터장은 이번에는 황당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 올망졸망한 녀석, 형이랑 격하게 놀고 싶구나? 그래, 이리 와!」
그것의 얼굴에 웬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내 손에 쥐고 있던 머리뼈 망치를 내던지고는, 마지막 한 마리의 티탄 호플리테스에게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으아아— 저, 저리 가 이 괴물아!」
그리고는 레슬링 하듯, 녀석을 번쩍 들어 안아서 바닥에 내리꽂아 버리더니, 곧장 헤드록을 걸었다.
우저저저一
두 거인의 엉겨 붙은 채 온몸에 힘을 주자, 그들이 딛고 선 지면이 우그러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힘 싸움은 몇 초 가지 못했다.
15m와 26.5m, 너무나 큰 체급 차이다.
우득一
이내 살벌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는데, 아무래도 경추가 부러진 듯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났고, 일대를 자욱하게 매운 희뿌연 흙먼지 속에서 검푸른 빛깔의 금속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한편, 그것의 양옆으로 4개의 거검이 허공에 떠 있었다.
쉘터장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금속 거인이 전투를 치르는 동안에도 저 4개의 거검이 말벌처럼 비행하며 다른 티탄 호플리테스 =들을 공격했던 것이었다.
고一오一오一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쉘터장은 마침내 저 금속 거인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떠올렸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빅 이벤트, 블랙 드래곤 ‘아지 다하카’ 공략전…….
그때, 아지 다하카의 숨통을 끊은 최후의 일격一모글레이 투창을 날렸던 바로 그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여기에 있다는 건…….'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서 무려 26.5m에 달하는 검푸른 금속 거인의 등 뒤,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동쪽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해一 그 여명 속을 날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 역시一”
그것은, 거대한 크기의 정육면체의 비행체 ‘워 박스’와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크기의 ‘AD-2’ 무리였는데,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태양빛을 반사하며 마치 대낮에 피어난 은하수처럼 보였다.
그 웅장한 장면을 올려다보며, 쉘터장은 저도 모르고 읊조렸다.
“……그가 왔다.”
이내, 강철비가, 저 멀리 다른 티탄 호플리테스 무리를 향해 빗발쳐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