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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69화 (169/221)

169화.  < 로마, 거인 학살자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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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박준모가 창밖을 힐끔힐끔 내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 저것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를 무슨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실실 웃으면서 다 박살 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공황 활주로 한쪽에 딸린 큼직한 차고로, 공황에서 쓰이는 온갖 자동차들이 보관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현욱 일행이 타고 온 여객기의 승객들로, 약 10분 전, 여객기가 티탄들이 점령하지 않은 활주로에 긴급 착륙한 뒤, 재빨리 내려서 이곳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하…… 여전히 통신이 불능입니다.”

"저것들이 멀리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그런데 그 전에 들키면 어떡하죠?”

"젠장, 그냥 다른 공항으로 갔어야 했어요.”

“……기체 이상으로 그럴 수 없었다잖아요.”

곳곳에서 불안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 얇은 철판 벽 하나 너머의 활주로에 티탄들이 걸어 다니며 쿵一 쿵一 거리는 굉음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걸음걸음마다 이들의 심장 박동이 강제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까가가강!

그놈들은 20m에 이르는 장창을 활주로에 박아 넣은 채, 궁둥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서, 이들이 타고 온 여객기를 무슨 레고 장난감처럼 해체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 안에 있는 호송관과 레드 플레이어들은 시체를 꺼내서 씹어먹는 장면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발, 그리스를 멸망시킨 우리 로마 땅에 그리스 복장의 거인이라니……."

"그리스를 멸망시킨 건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니에요?”

"그것도 고대 그리스 왕국 중 하나입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제는 어떡하죠? 저것들, 듣기로는 한 마리당 레벨이 백 단위라고 하던데요.”

이미 세간에 알려진 사실처럼, 티탄 호플리테스는 한 개체당 레벨이 무려 110에 이른다.

일반 몬스터인 주제에 이곳에 있는 보스 몬스터인, 다크 엘프의 2왕자, 클라이페우스 그리세오보다 단순 계산식으로는 더 강한 몬스터인 셈이었다.

지금 그런 게 3마리가 이 근처에 있었다.

또한, 착륙 전에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이 근방 수 킬로미터 이내에 십여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선봉장 같은 엘리트 몬스터도 등장했을 텐데…….'

그놈은 염화의 거인 페에톤과 맞먹는 125레벨 이상인 데다가 다양한 마법까지 사용하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더군다나, 상황이 불리해지는 일대의 티탄 호플리테스들을 불러모아서 ‘팔랑크스’ 방진 따위를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현욱은 이 순간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꽤 큰 능력 상승을 얻을 기회다.’

한 개체가 사실상 보스 몬스터 수준인 티탄을 여러 마리 사냥하면, 상당히 좋은 ‘업적’을 하나 달성할 수 있었다.

'......일명 <거인 학살자>다.’

총 10마리의 티탄을 사냥하면 모든 능력을 20%, 마나 총량을 20%, 기절 면역을 30% 올려주는 업적을 얻게 된다.

‘그리고 10마리 단위로 그 수치가 소폭 상승한다.’

이처럼 이런 말도 안 되는 위기 속에는 언제나 막대한 보상이 숨어 있는 법이었다.

물론, 온 세상이 뒤집히는 재난 속에서 그런 이득을 챙겨 모을만한 여유가 있겠느냐마는…… 지금의 이현욱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이현욱의 모글레이 한 자루에는 지금 ‘배리어 브레이커’라는,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알맞은 효과까지 붙어 있었다.

‘역시, 위기는 기회다.’

이현욱은 향후 행보를 결정했고, 고개를 돌려서 모두에게 말했다.

“……여러분, 제게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미 한차례 자신들을 구해준 남자이기에, 그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느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의 작전 설명을 들은 뒤, 단 한 명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오히려 이렇게 반발하고 나서는 이도 있었다.

"저…… 그건 솔직히 객기라고 생각되네요. 그쪽이 아무리 강해도…… 그런 방식으로는……."

"저는 싫어요. 그렇게 무모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이렇게 회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저 티탄 호플리테스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3~4개의 공략 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들 모두 플레이어로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3마리가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족히 20개의 공략 팀이 있어야지 안전하게 잡을 수 있을 텐데…… 이현욱은 지금 저놈들을 피해서 ‘탈출’하는 게 아니라, 저놈들을 사냥하자고 ‘공략’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반응에 이현욱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녕 제 계획이 싫으시다면, 여기에 계속 남아 계셔도 됩니다. 제 작전에 여러분 모두가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

"자 그럼, 자원을 받겠습니다.”

"큼......."

그들로서는 지금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게 이현욱밖에 없었기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결국은 하나둘씩 그의 계획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부터 저를 믿고, 한 번…… 열심히 달려주시면 됩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내뻗었다.

드르르르——

그 순간, 차고의 셔터가 저절로 올라가며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졌다.

“……저거, 자동문이었나?”

***

“야一 이一 돼지一새끼一들아一!"

그렇게 목청껏 소리치는 건, 김세희였다.

그녀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여객기를 뜯고 있던 티탄 호플리테스 셋을 향해 재차 고함쳤다.

"야一야一여기다一!”

그제야 누군가의 시체를 질겅질겅 씹어 먹고 있던 놈들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하, 저것들이 손만 뻗어도 20m가 좁혀지겠는데……."

솔직히, 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도주할 준비를 했다.

「……뭐야 저건?」

그놈들은 자리에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면서, 비행기에 기대둔 방패를 들어 올리고 그 옆에 박아두었던 20m짜리 창을 뽑아 들었다.

「저기 저 인간 봐, 먹어달라고 소리친다.」

「저거 한 마리 잡아서 어떻게 나눠 먹어?」

「아무리 그래도 살아 있는 게 맛있잖아?」

「맞아, 입안에서 펄떡펄떡 뛰어서 좋아.」

그 말에 셋이 킬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먼저 잡는 쪽이 먹는 거야 어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셋은 경쟁이라도 하듯 바닥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쿵一쿵一쿵一쿵一

그 육중한 걸음마다 두껍디두꺼운 활주로의 아스팔트에 균열이 쩍一 쩍一 생겼다.

그런데 그때一

"이 키만 큰 멍청이들아, 여기도 있다!”

또 다른 방향, 오른쪽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이번에는 박준모의 목소리였고 그 부근에서 웬 트럭이 한 대가 튀어나오더니, 클랙슨을 울리기 시작했다.

빠一앙——!

"一여기에는 다섯 명이나 타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쪽, 역시나 트럭 한 대가 나타났고, 그 안에 타 있는 플레이어들이 아무렇게나 소리 지르며 놈들을 성가시게 만들었다.

「오一 이러면 딱 세 개다.」

「내가 오른쪽으로 간다!」

그렇게 세 마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뉘어서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됐다.’

이현욱은 그 장면을, 드높은 하늘에서 투명 상태가 된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런 거구가 셋이 뭉쳐 있으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대겠지만, 저렇게 방심해서 흩어진다면 각개 격파가 가능하다.’

즉, 훨씬 쉬운 싸움이 된다.

그는 박준모가 탄 트럭을 쫓는 티탄 호플리테스를 먼저 노리기로 했다.

한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대의 트럭 안에는 구태여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만약 너무 적은 숫자로 유인하려고 한다면, 저놈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탐욕이 클수록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되는데, 그 미련한 심리는 티탄도 마찬가지다.’

쉬一이一이一이——!

「......응?」

놈은, 하늘에서 울리는 굉음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으나, 미연의 위협을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응속도가 늦었다.

퍼一억——!

「끄어어어——!」

괴성과 함께 뒷걸음질 치는 놈의 목덜미에, 웬 단검이 하나 박혀 있었다.

아니, 그건…… 거검 모글레이였으나, 거인의 목덜미에 박혀 있으니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하지만 짧은 단검이라고 할지라도 정확히 박혔다면 치명적인 일격인 건 변함 없어야 정상이었는데…….

‘역시, 이렇게 제대로 찔러도 멀쩡하다.’

110레벨, 그것도 초대형에다가 전사 계열 몬스터인 만큼 아무리 치명적인 일격을 당하더라도 즉사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모글레이의 진짜 화력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큭, 이딴 것쯤이야…….」

놈이 모글레이를 뽑으려는 그 순간一

'쇼크웨이브一’

쩌一어一어一엉一

엄청난 폭압이 놈의 목덜미 안에서 발상했고, 놈은 양손의 창과 방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역시나 상당한 방어력 덕분에 머리가 시원스럽게 터지지는 않았지만, 눈알이 튀어나오고 혀가 뽑히며 그 구멍으로 온갖 붉은 액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마도 그건 뇌수일 것이었다.

쿵一

놈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좋아, 쉽게 처리했다.’

「……응?」

이에 다른 두 방향으로 달려가던 티탄 호플리테스 둘이 멈춰 서며 이현욱 쪽을 돌아보았다.

그놈들의 눈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제 동료의 시체를 향했다가, 천천히 올려오며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더니, 창과 방패를 꼬나 들고는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발걸음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굉음…… 지축이 뒤흔들리며, 두 거인의 압도적인 속도로, 점점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그 두 놈 중, 비교적 가까운 놈을 향해 날아갔다.

“一박준모, 저놈한테 짜릿한 맛을 보여줘!”

그 순간, 세상에 커튼이 드리우듯, 층층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든 것이었다.

우르르르——

이내 그곳에서부터 수십 발의 벼락이 떨어지며, 이현욱이 표적으로 한 티탄 호플리테스를 짓이겼다.

콰一과一과一과一광——!

「크어어어어——」

그 충격에 놈의 무릎이 절로 접혔고, 놈은 창대와 방패로 바닥을 밀어내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다.

‘좋아, 틈이다.’

이현욱이 놈을 향해 모글레이의 ‘스페이스 커터’를 쏘아 보냈다.

찰나의 순간에 공간을 양단하는 마나의 칼날, 그것이 놈의 상반신을 그어버렸다.

촤一악一一!

「크아아아一」

가장 먼저 놈의 오른쪽 손가락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창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서 웬만한 건물만 한 크기의 철제 방패 반 토막이 나며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긴 상혼이 일어나며 피가 퍽一 터져 나왔다.

「크으으…….」

그러나 역시, 그 한 방만으로 리타이어는 불가능했다.

쿵一 쿵一 쿵一 쿵一

「기다려라一 내가 가고 있다!」

그 순간에도 나머지 한 놈이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이 합류하면 배로 어려워진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볼 이현욱이 아니었다.

「그래, 딱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나서면 되는 거지?」

이 목소리 마루였다.

「안 그래도 갇혀 있는 게 답답해서 기분이 진짜 더러워졌는데, 저 자식한테 화풀이 좀 해야겠다!」

마루는 비행을 위해서 아이템 상태로 아공간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는 것에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정령 감옥에 갇혀 있던 트라우마가 있는 듯했는데, 누군가에게 화풀이해서 풀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줄 수밖에…....

우드드드一

바닥, 활주로의 아스팔트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일어나며, 놈의 무게중심을 뒤흔들어버렸다.

「끄으으으一」

마치 역방향으로 흐르는 무빙워크에 서 있는 것처럼, 놈의 발걸음이 한층 느려졌고 이어서 김세희와 하늬가 나섰다.

후우우우——

그녀는 먹구름이 일어나며 발생한 저기압을 바탕으로 하여,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자아내서 놈의 등을 내리쳤다.

쾅! 쾅!

이어서 놈의 양쪽 무릎에서 웬 화염이 치솟았는데, 그건 2왕자가 쏜 화살이었다.

‘좋아, 나머지 한 마리를 잘 막고 있군.’

그러는 사이, 이현욱은 다른 놈의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무릎 뒤나 목 뒤 등, 중장갑 틈 사이를 모글레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퍼一억——!

「큭一 내가 난쟁이들 따위한테…….」

그렇게 활주로 위가 시뻘건 울혈로 가득 찰 무렵, 버티다 못한 놈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반쪽자리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좋아, 이번에도 틈이다!’

그 순간一 주변을 맴돌고 있던 두 자루의 페일노트가 놈의 양쪽 눈에 박혔다.

푹一 푹一

물론, 그 작은 눈구멍을 쉽사리 노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정신 사납게 굴었기에 확실한 빈틈이 나온 것이었고, 이현욱은 바로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끄아아아…….」

그리고 눈은, 아무리 티탄일지라도 가장 연약한 부위에 해당했다.

놈은 그 어떤 상처보다 고통스러운지, 고개를 내저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건, 더 큰 틈이었다.

쉭一

그 순간, 이현욱은 ‘수다르사나’를 움직여서 놈의 입안에 홀인원 시켰다

카가가가가——!

「어거거거——」

마치 회전 톱날 같은 붉은 궤적이 놈의 입안을 가득 채우며 넘쳐 흐르더니, 이내 쩍一 소리와 함께 하관이 통째로 절단되며, 그 거구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아, 안 돼…….」

그렇게 2마리를 각개격파하니, 남은 건 단 한 마리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앞선 두 마리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쉬운 승부가 되었다.

쿵——

잠시 후, 마지막 한 마리까지 활주로 위에 쓰러졌다.

이현욱은 그놈의 머리통에 4자루의 모글레이를 박아 넣은 채, 놈의 이마를 밟고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모든 승객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 다, 당신…… 그 무기들은……."

이렇게 거대한 네 자루의 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으니 의심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스틸레인……."

지난번 위그드라실의 빈민가에도 그렇고…… 어떻게든 신분을 숨기고 은밀하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렇게 사태가 커지면 결국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그게 진짜야? 얼굴이 완전 다른데…… 그 남자는 동양인 아니었나?”

“……아, 그러고 보니 금속을 조종하는 걸 몇 번 본 것 같기도 해. 아마도 변장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거지?”

그제야 승객들은, 연달아 터지는 불운 속에서 자신들이 엄청난 행운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 소문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을,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다.

스틸레인, 그가 유럽을 구하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

이현욱 일행은, 승객들을 안전한 쉘터로 대피시킨 뒤 로마 시내로 진입했다.

어느새 밤이 왔고, 그들은 로마 시내의 한 호텔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무도 없네요.”

"이 지경인데 누군가 있을 리가 없죠. 다 쉘터로 피신했을 겁니다.”

"뭐, 상황이 이런 데 침대 좀 하루 빌린다고 고소당하지는 않겠죠.”

한편, 마나 통신 중에서도 비상 주파수가 복구되면서 이현욱 일행은 외부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게 됐다.

- ……이 방송은 EU 플레이어 협회에서 주관하는 비상대피방송입니다. 현재, 유럽 전역에 초대형 몬스터의 공습이 진행되고 있으니......

유럽 전역, 총 21개 지역에 이와 같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점차 그 반경이 넓어지고 출현하는 티탄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었다.

‘이러면 우리의 계획도 바꿔야 한다.’

본디 계획은 로마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다크 엘프의 ‘터미널’을 장악한 뒤, 그곳을 통해서 다크 엘프 왕국으로 잠입, 2왕자가 숨겨둔 내부자’와 접촉을 하여 ‘다크 엘프 국왕’을 구출하는 게 목표였다.

그게 작전이 성공한다면,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해 있는 다크 엘프 왕국을 뒤흔들어서 분열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티타노마키아>가 일찍 시작되었다는 건, 티탄들과 세를 합친 다크 엘프 군단 역시 생각보다 이르게 진격해오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다크 엘프 왕국의 방비가 확연하게 감소하는 시점이 이른 시일 내에 발생한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이현욱이 그런 생각을 설명하자, 2왕자 역시 수긍했다.

"음…… 그 말,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렇게 되면 대장군과 그 휘하 장수들이 왕궁을 떠날 테니…… 아바마마를 모셔오기가 훨씬 쉬울 거다.”

그렇게, 다크 엘프 왕국 침투 계획은 조금 미뤄졌다.

"저, 그런데 그러면 그때까지는 뭘 하죠?”

김세희의 물음에, 이현욱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쿵一 쿵一

이 유서 깊은 도심 곳곳을 거인들이 헤집고 있었다.

어둠 속, 검은 그림자들이 건물 위로 솟아나서 서성이고 있었으며, 시시때때로 그것들의 손아귀쯤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비명은…… 놈들의 입 부근에서 사라졌다.

그 기괴한 장면을 바라보며, 이현욱은 짧게 대답했다.

"음…… 사냥하죠.”

그래, 최대한 빠르게 <거인 학살자>업적을 달성한다. 그게 이현욱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행의 표정이 완연하게 굳어 있었다.

"사, 사냥이요?”

앞서서 3마리를 잡긴 잡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압도적인 초대형 몬스터들과 계속 맞부딪히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 방금 우리가 잘 싸우긴 했지만, 이 주변에 있는 티탄은 3마리 이상일 텐데요?”

김세희의 말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은 작전이 좋았을 뿐이었고, 그 작전이 계속 먹힐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그런데, 우리 쪽에 더 큰 거인이 있다면 어떨까요?”

“……네?”

이현욱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황금색의 나뭇잎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월드 브리지(특수)

- 효과 : 마나를 불어 넣을 시 ‘등록된 장소’로 가는 초광역 텔레포트를 엽니다.

이건 도널드 해리스가 지원해준 아이템으로, 위그드라실이 한 달에 단 하나만 생산하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아이템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초광역 포탈인 ‘와이트 홀’을 열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지금은 로마의 하늘에 와이트 홀을 열어도 상관없다.’

이제는 사실상 은밀하게 활동하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간 셈이었고, 상황이 너무 급변하여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이걸로 서울과 이어지는 와이트 홀을 열어서, 라퓨타에 있는 탈로스의 본체를 데려온다.’

170레벨, 26.5m의 오리할콘 거인 탈로스…….

그 녀석 앞에서는 웬만한 티탄조차도 난쟁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라퓨타로 돌려보냈던 여상민에게 연락했을 때, 또 한가지 희소식이 들려왔다.

- ……그, 연구소장님께서 드래곤 장비 세트가 완성되었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그것도 같이 준비해서 보낼까요?

큰 전쟁을 앞두고 완성된 드래곤 장비 세트라니…… 실로 시의적절한 보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면…… 날이 밝는 대로 로마의 거인들에게 서열 정리 좀 해줘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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