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이탈리아, 마피아, 하이제 킹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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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포인트에 접근했다. 이제 슬슬 고도를 낮춰서 ‘갈매기’들을 마중한다.”
호송반장, 마빈 케이터가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발아래로 바다가 가까워지고 머리 위로 구름이 멀어지는 게, 비행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 새끼들은 왜 안 올라와?”
그가 문득 시계를 확인한 뒤 말하자, 다른 호송관 한 명이 주섬주섬 마나 메신저를 꺼내 들었다.
현재 이곳一이코노미 클래스에 남아 있는 호송관은 이 둘뿐으로 나머지는 화물칸, 비즈니스 클래스, 조종실에 흩어져 있었다.
"......제가 한 번 연락해보겠습니다.”
마빈 케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 레이비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내어준 아다만트 소재의 너클을 착용한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제 아이템을 가져다주는 게 늦어져서 열 받은 건 아니겠지?’
그녀와 다소 과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마빈 케이터였지만,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보면 침착해 보이지만, 저년의 행적은 진짜 기가 막힌다. 그리고 우리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으니까, 조심해야 해.’
솔직히 그녀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고, 처음 이 작전을 맡았을 때부터 긴장감에 잠도 안 왔었다.
그만큼 레이비즈의 악명이 드높았고 그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무려 81레벨…… 세계에서도 100위 안에 들어가는 최정상급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만약, 그녀가 앞서 말했던 그 괴이한 ‘취미’를 하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이 비행기는 피바다가 될 게 뻔했으며 어쩌면 자신과 부하들도 그곳에 뒤섞이게 될지도 몰랐다.
"저…… 반장님, 화물칸 애들 마나 교신 안 받는데요? 혹시 이 일대에 마나 교란이 발생한 게 아닐까요?”
"뭐우 야, 네 알량한 지식 자랑하는 거냐? 쯧一 마나 메신저가 그렇게 쉽게 교란되는 줄 알아?”
"아……."
"이 새끼들 분명히 승객들 아이템을 그 작은 주머니에 쑤셔 넣느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거다. 야, 빅터! 지금 당장 화물칸으로 내려가서, 빨리 올라오라고 해!”
그는 비즈니스 클래스 쪽으로 소리쳤다.
그런데, 그곳의 입구에 자동소총을 든 채 서 있는 빅터라는 남자는 그 말을 못 들었는지 꿈쩍도 안 했다.
"야!”
"......."
무려 두 번이나 이렇게 소리쳤는데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마빈 케이터가 부하를 바라보았고, 그가 자동소총을 고쳐잡고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이어지는 통로 들어갔다.
저벅一 저벅一
"이봐, 무슨 일이야?”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멀쩡하게 우뚝 서 있는 빅터의 발아래에 큼직한 검은 얼룩이 보였다.
그건 피 웅덩이였다.
즉, 선 채로 죽은 것이었다.
“……젠장!”
그가 총구를 들어 올리고 뒷걸음질 치려는 그 순간, 바닥과 벽을 따라서 시퍼런 꿈틀거림이 번져오더니 그의 몸을 뱀처럼 타고 올랐다.
파지지지——!
"으갸갸갸——!”
그건 전류였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며 뒤로 고꾸라졌다.
"—뭐야!”
마빈 게이터는 자세를 낮추며 자신의 무기인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서 레이비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헤프닝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마빈, 입만 산 놈이었냐?”
"젠장, 지랄은 이따가 하고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우리 쪽 애들이 다 화물칸으로 가서 나밖에 안 남았다고……."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또 다른 레드 플레이어인 두 명의 남자를 바라보았고, 두 남자는 그녀의 부하였기에 푸념하면서도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귀찮게……."
그들은 각각 한 손 검과 완드를 쥐고 있었다.
그때, 마빈 케이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씨발, 전부 잘 들어! 지금 괜한 희망을 품고 객기 부렸다가는 진짜로 다 죽는 거다!”
현재 이코노미 클래스에 타 있는 플레이어 승객은 총 22명, 그들의 마음속에서 항전의 의지가 피어났을 게 분명했기에 마빈 케이터는 그렇게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슬슬 눈치챘겠지? 한때 악명 좀 떨쳤던 광견, 레이비즈다! 혹여나 괜한 호승심으로 덤볐다가는—”
"야— 내 이름 멋대로 팔지 마. 너부터 죽여버리고 싶어지려고 한다.”
“……아, 알았으니까, 네가 직접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응? 내가 부탁한다.”
그녀는 한숨을 쭉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별안간 근처에 앉아 있던 한 중년 플레이어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어어— 왜 이러세……."
으적—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는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었고, 피가 줄줄 흐르며 하얀 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쯉쯉—
"뭐, 뭐 하는 거야!”
"으아아——!”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마빈 케이터가 완드에서 불꽃을 피워내어 혼들어대자 다시 잠잠해졌다.
“씁—”
레이비즈는 그렇게 피를 양껏 마시고는, 입가를 닦아내더니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눈빛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거 바로 악마의 힘.......'
그녀가 광견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저것으로, 그녀는 ‘악마 숭배자’였다.
이렇게 산 제물을 취하면 이름 모를 악마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으적—
그녀의 몸에서 어떤 기가 피어났고, 내딛는 바닥이 움푹 패는 게 아닌가?
그 장면을 바라보며 마빈 케이터는 마른 침을 꿀떡 삼켰다.
“하— 이러다가 추락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81레벨……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완전무장한 채 덤비더라도, 그녀는 저 작은 너클 하나만 끼고도 전부 다 때려죽일 것이었다.
즉, 그녀의 이번 탈출 작전은 호송관들이 개입해서 마법 구속구를 풀어준 순간부터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었다.
“……제발,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게 조심 좀 해주기를 부탁한다.”
"글쎄, 나는 ‘호신강기’가 있어서 여기에서 떨어져도 안 죽어서 말이야.”
"......."
그녀는 그런 살벌한 말을 하고는, 비즈니스 클래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모두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마치 움직이는 폭탄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걸 달리 말하자면, 저 여자의 움직임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야, 저쪽에 있는 것들은 다 죽여도 되겠지?”
“……그래그래, 혀 뽑고 눈 뽑아도 괜찮아.”
"아니, 머리는 꽤 여러 번 열어봤으니까 이번에는 흉부 쪽 좀 관찰해 봐야겠—”
그 순간—
후—웅——!
비즈니스 클래스 쪽에서 웬 돌풍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텅—
그녀는 오른팔을 뒤로 뻗어서 벽을 잡으며 멈춰섰는데, 그녀가 짚은 부분이 마치 송곳으로 찌른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렸다.
"아…… 이거 좀 열 받네……."
그녀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피식 웃었다.
"아, 그냥 먼저 치고 나오시겠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고, 이내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부터 한 여자가 막대한 양의 전류를 몸에 휘감은 채,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왔다.
"어……."
그 기괴한 형태의 돌진에, 레이비즈의 부하 두 명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서다가 이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패착이었다.
그 여자는 벽과 천장을 타고, 마치 공기처럼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두 남자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일순간, 두 남자의 목덜미에서 피 분수가 치솟으며 천장에 페인트 스프레이처럼 흩뿌려졌다.
"이런— 씨발— 무기는 어디서 난 거야!”
그 장면을 보다 못한 마빈 케이터가 앞으로 완드를 휘저었고, 그의 완드 끝에 시뻘건 불꽃이 맺히는 순간—
뻑—
그보다 한발 앞서서 그녀의 몸이 벼락처럼 치솟으며 그의 머리에 플라잉 니킥을 꽂아 넣었다.
“—컥!”
그의 몸이 허공에서 두세 바퀴 돈 다음, 빈 시트 위로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졌다. 헉— 하고 숨을 내쉬자 이빨이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B등급 마법사 플레이어답게 몸에 마법 방어막을 둘러놓았기에 기절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로, 좁디좁은 휘저으며 단 몇 초 만에 세 사람을 쓰러뜨린 여자—김세희가 짧은 단검을 역수로 쥔 채, 이코노미 클래스 한가운데 멈춰 섰다.
"후......."
쾅——!
그때, 웬 폭음과 함께 기체가 뒤흔들리며, 김세희의 몸이 오륙 미터나 밀려났다.
그녀는 몸 곳곳으로 파고드는 충격을 느끼며, 순간 구토감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 충격이 어찌나 센지, 시트 대여섯 개가 통째로 뽑혀 올랐고 나동그라지며 그 근처에 앉아 있던 승객들까지 통째로 뽑혀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으아아—!”
정말 다행히도, 몇 개의 창문에 균열 쩍— 가긴 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도가 꽤 낮아진 상황이었기에 실내외의 기압 차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영화 속에서 보는 것처럼 깨진 창문으로 전부 다 빨려 나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 엄청난 파동은, 레이비즈가 그저 주먹을 뻗은 것뿐이었다.
"야, 마빈, 너는 정말 일을 못 하는 것 같다.”
"뭐?”
"저 여자, 레벨이 적어도 칠십은 넘는다. 네놈이 구해온 승객 명단 같은, 자잘한 정보까지 다 틀려먹었다는 뜻이야.”
"큭…… 치, 칠십이라니, 마, 말도 안 돼.”
이곳에 무려 A등급에 이르는 플레이어가 존재한단 말인가?
“……어쨌든 나한테는 상대가 안 되긴 해.”
그녀가 비릿하게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고, 김세희는 단검을 고쳐잡고, 몸 주변에 바람을 에둘렀다.
“……아, 정령술사구나, 너?”
그녀가 양손 주먹을 쥐자,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며 기체가 심하게 뒤흔들렸고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피어났다.
"제발…… 비, 비행기만은 추락시키—”
“—마빈, 한 마디만 더 떠들면, 벽에 구멍을 낸다.”
파지지지——
그때, 비즈니스 클래스 안에서부터 흘러나온 전류가 김세희의 몸을 지나쳐서 레이비즈를 향해, 마치 거대한 상어의 아가리처럼 달려 들었다.
하지만 레이비즈는 그걸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막아냈다.
파지지지——
쉬이 방전되지 않는 전류가 그녀의 몸에 피라냐 떼처럼 달라붙어서 호신강기를 마구잡이로 짓이겼지만, 안타깝게도 호신강기의 재생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음, 이건 전류 통제 능력 같은데……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무서워서 전력을 다할 수 없는 모양인가 본데…… 딱 봐도 쫄보군?”
그녀는 그 전류를 그저 조금 센 물줄기를 헤치듯이 밀고 들어가며, 단 한 스텝에 수 미터를 좁혀 김세희의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큭!"
김세희가 몸을 허공에 띄우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레이비즈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에 꽂히고 말았다.
“헉!”
그녀의 몸이 붕 떠올라서 비즈니스 클래스까지 날아가, 천장에 꽂힌 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으으으…… 컥—”
그리고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헉— 김 팀장님!”
최대한 막아냈는데도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파열된 것이었다.
그녀는 꿈틀거리면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척추까지 충격이 전해졌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머리를 바닥에 내리박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삑! 삑! 삑! 삑!
그리고 그 한 방의 충격으로 기체에 불안정 요소가 생겼는지,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턱—
그때, 레이비즈가 두 번째 스텝을 밟으며 바닥을 박차자, 그녀의 몸이 단숨에 비즈니스 클래스 중앙에 도착했다.
"헉!"
그 바로 앞에 박준모가 있었고,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몸에 전류를 에두르며 주먹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그건 실수였다.
역시나 레이비즈는 그 전류를 무시했고, 그녀의 레프트 훅이 그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훙——!
그걸 맞으면, 전사 계열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질 테고, 그렇게 되면 성녀가 와도 살릴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 씨앗이 날아들며 발아하더니, 넝쿨이 피어나며 그녀의 몸을 칭칭 옭아맸다.
“하— 이건 또 뭐야?”
그녀는 성가시다는 듯이 넝쿨을 잡아 뜯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흑인 남성 두 명이 서 있었다.
"......플레이어 맞아?”
그녀는 그 둘에게서 피어오르는 이질적인 힘을 느꼈다.
물론,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건 플레이어보다는 몬스터에게 느껴지는 묘한 반감이었다.
“……아무리 왕자님이라도, 활 없이는 무리이십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가 올 때까지 버티면 될 거다.”
두 남자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육탄전에는 능숙하지 않은지 어딘가 어설픈 자세였다.
그들을 향해 레이비즈가 달려들었고, 단 몇 초 만에 대여섯 개의 시트가 으스러지고 천장이 깨지며 설비가 쏟아졌다.
쾅! 쾅! 쾅! 쾅!
그 한바탕의 뒤엉킴 뒤에 날아간 건…… 역시나 두 남자였다.
"너, 풍기는 기운을 보면 레벨이 꽤 높은 것 같은데…… 안타깝네, 무기가 없어서 말이야.”
그녀의 추측대로, 그 흑인 남성—다크 엘프 2왕자 클라이페우스 그리세오는 사수 계열이었다.
그렇기에 109레벨의 보스 몬스터임에도 근접전에서는 이렇다 할 위력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럼…… 내 취미 생활 좀 시작해볼까?”
그녀는 피로 얼룩진 이빨을 드러내며 비릿하게 웃었다.
"우선, 너…… 귀여운 꼬마 녀석부터 한 입 먹어야겠다.”
그녀가 선택한 건, 박준모였다.
그녀는 천장에서 쏟아진 철제 프레임 중 하나를 잡아 뜯어서 박준모를 향해 내던졌다.
쉭——!
족히 아음속으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쇠붙이…… 박준모는 그걸 피해낼 순발력이 없었다.
그런데—
웅—
"응?"
그것이, 허공에 멈춰 서더니—
쉭—
오히려 역행하여, 레이비즈를 향해 날아들었다.
챙!
"뭐야, 이건 또—!”
그녀는 뒤로 펄쩍 뛰어오르며 너클 낀 양손 주먹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마치 섀도복싱을 하는 듯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 모양새였지만, 그럴 때마다 쩡— 쩡— 하는 충돌음이 들리며 무언가 튕겨 나갔다.
그건 쇠 구슬이었다.
어디에선가 쇠 구슬이 쏘아져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걸 튕겨내더라도 허공에서 곡선을 그리며 다시 날아들었다.
마치 말벌 떼를 상대하듯, 성가시면서도 위험천만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는 가드를 더욱 바짝 올리며, 양팔에 호신강기를 집중했다.
"씨발— 뭐야, 어디에 있는 거야?”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한 곳에 멈춰섰다.
약 7m 정도 떨어진 곳, 그 텅 빈 곳에서 옅은 인기척을 감지해냈다.
"아, 은신이냐?”
그렇다면, 곧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일지라도, 은신을 분 단위로 유지하는 건 힘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가드를 바짝 올린 채, 날아드는 쇠 구슬을 쳐내며 기다려도…… 놈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긴 은신은 ‘퀴네에’가 아닌 이상 안 되는데…… 설마……."
그녀의 머릿속에 서서히 불안감이 차올랐다.
‘괜찮아, 진짜로 퀴네에일지라도 인기척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작은 인기척도 놓치지 않을 만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단 한 방만 넣으면, 죽일 수 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육중한 무언가가 움직이며, 공기가 밀려나는 걸 느꼈다.
‘좋아, 걸렸다!’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어떤 물체를 향해 패링(Parrying)을 시도했다.
그것이 설령 날카로운 무기일지라도, 그녀의 몸에는 강력한 호신강기가 둘려 있었기에 가볍게 튕겨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뒤, 카운터 펀치를 날릴 준비를 했는데—
촤— 악——!
그녀의 팔이, 일격에 잘려나갔다.
“아?"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든 투명한 물체가, 무려 수 톤에 이르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였다는 것을…….
‘씨발— 그게, 말이 돼?’
하지만, 직감적으로 깨닫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걸 저렇게 빠르게 휘둘렀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누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마, 마, 말도 안 돼—”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가운데, 그녀는 뒤뚱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게 전부였다.
그 순간—
뻑!
철퇴가, 그렇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에 꽂혔다. 정확히 턱을 치며, 뇌가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뻑!
이어서 또 한 방이, 인중에 꽂혔다.
코가 쩍— 직각으로 무너지고 이빨이 후두두— 쏟아져 내렸다.
뻑! 뻑! 뻑! 뻑!
그 철퇴 같은 주먹이 그녀의 온몸을 마구잡이로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그 정체불명의 습격자는 여전히 투명 상태였기에, 그녀는 홀로 팝핀을 추는 것처럼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관절 인형처럼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컥……."
그렇게, 곤죽이 되어 시트 위에 나동그라졌다.
"......."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빈 케이터는 멍한 표정으로 완드를 툭— 떨어뜨렸다.
잠시 후 그의 앞, 허공에서 무언가 일렁이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어……."
그는 검은색 투구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 그건……."
그건 바로 전설 등급의 투구 ‘퀘네에’였다.
그 남자, 이현욱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마빈 케이터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 끝났으니까, 조종실에 있는 네 부하도 순순히 나오라고 해.”
"아, 아니, 아니야.”
그러나 마빈 케이터는 킬킬 웃으면서 고개를 내껏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날고 있는 고도…… 이상하게 아주 낮지 않나? 왜 이렇게 내려온 줄 알아?”
그때, 마빈 케이터의 허리춤의 마나 메신저에서 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칙— 여기는 갈매기, 대왕고래를 발견했다. 지금 즉시 접근하겠다.
"너, 이탈리아 놈인 것 같은데 ‘노우보 오르디네(Nuovo Ordine)’라고 알겠지?”
그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 조직의 이름이었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의 기업형 마피아인 은드랑게타(La 'Ndrangheta)가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이후 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하여 세운 플레이어 범죄 조직…….
두두두두——
이내, 창밖으로 요란한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퀴네에를 빼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십 명의 ‘NO’ 조직원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
"그리고 이 망망대해의 공해상에서는 도망칠 수도, 도와줄 사람도 없어! 넌 끝장이야!”
두두두두——
점점 더 선명해지는 로터 소리, 어느새 양쪽으로 대여섯 대의 헬리콥터들이 따라붙은 게 보였다.
그러자 마빈 케이터의 표정이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그런데…… 노우부 오르디네는 너 같은 실력자들을 원하고 있어서, 내가 조직의 꽤 윗사람에게 소개해줄 수 있는데, 어때? 자자, 무슨 말이냐면, 오직 내가 널 살려줄 수 있다는 거야. 네 대단한 실력을 내가 열심히 어필해줄 테니까 허튼짓만 안 하면…… 넌 살 수 있어.”
그는 혹시나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까 봐 열심히 나불거리는 것이었다.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헬리콥터 안에, 그런 사람이 타고 있나?"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왼손을 들어 올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그래, 남부 지부의 책임자가 저기에 타 있다.”
그 순간—
캉!
"응?”
웬 굉음에, 마빈 케이터는 고개를 돌렸다.
캉! 캉! 캉! 캉!
양쪽, 항공기를 포위했던 헬리콥터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일제히 종이처럼 구겨지며 바다로 처박혔다.
……단 한 대도 남지 않았다.
"이거야 원, 솔깃했는데 아쉽게 됐군.”
그리고—
텅—
조종실 문이 잡아 뜯겨나가더니, 누군가 바닥을 질질 끌려서 나왔는데, 그는 기장과 부기장을 협박하고 있던 마지막 호송관이었다.
“컥— 컥—”
그의 목에 웬 개목걸이 같은 게 걸려 있었다.
"이제 이 여객기는 정상적으로, 로마로 간다.”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로마에 도착했을 때…….
"하......."
이현욱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로마의 국제공항,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이 불에 타고 있었다.
쿵— 쿵—
그리고 곳곳에 중장갑을 입은 거인들이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으로 플레이어들을 밟아 죽이고, 창을 휘둘러서 항공기와 건물을 짓이기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티타노마키아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티탄들의 이름은…….
- 티탄 호플리테스 (LV:110)
지금까지 등장한 티탄은 ‘척후병’이었다.
즉, 일종의 정찰에 불과한, 티타노마키의 전조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저 대여섯 마리의 티탄들은 ‘호플리테스’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그리스의 중무장한 보병을 뜻하는 용어로, 주력군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즉, 네임드 티탄이 등장했다.'
왠지, 그리스 영공에 막 진입했을 때, 기장이 다급하게 말하기를 전파•마나 등 모든 통신이 먹통이 되었다고 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로마에 다수의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하며 일대에 강력한 마나 산란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로마 전체가…… 아니 어쩌면 유럽 전체가 저런 거인들의 습격을 받는 중일 것이었다.
"음…… 이러면, 은밀한 침투는 물 건너간 것 같으니……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네요.”
이현욱의 말에 김세희와 박준모, 그리고 두 다크 엘프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다 밀어버리면서, 목적지까지 갑시다.”
사실 이현욱으로서는, 너무나 안정되어 오히려 신경 쓸 게 많은 도시보다, 멋대로 휘어잡을 수 있는 전장을 헤치고 나가는 게 훨씬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