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 이탈리아, 마피아, 하이제킹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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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창밖으로 지중해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이탈리아 로마까지 절반 정도 왔다.’
후우우우——
그런데 그때까지도 레드 플레이어와 호송관들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래전부터 기내는 아무런 소음도 없이 고요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난기류를 마주하지 않은 채, 맑디맑은 하늘을 부드럽게 유영 중이었다.
종종 부드럽게 덜그럭거리는 여객기는 마치 흔들의자 같아서, 그 나긋나긋한 평화 속에서 플레이어 대다수가 눈을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폭풍전야였으니.......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됐다.’
이현욱은 눈을 감은 채, 마나 메신저 해킹을 통해서 놈들의 행동을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두 개의 벽 뒤, 이코노미 클래스, 그곳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들…… 11명의 테러리스트가 타 있었다.
심지어 그중 8명은 호송관이라는 명찰을 단 이탈리아 공무원들이었기에 그 누구도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놈들, 아마도 공해상에 접어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행동을 개시할 테지…….'
바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주변국으로서도 대응하기 어려울 테니, 은밀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기에는 가장 적합한 순간이었다.
- ……지금 어디쯤 온 거지?
그의 귓속으로 한 호송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 어디 보자, 아, 슬슬 A포인트다.
- 그러면 B포인트까지 15분 정도 남았으니까 슬슬 준비해야겠군?
'15분이라…….'
철컥一
이 소리…… 권총 탄창을 열었다가 닫은 듯했다.
이처럼 은근슬쩍 무기를 정비하면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슬슬 시작해볼까?’
이현욱은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낯선 얼굴로 위장한 일행들이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잠이 든 건 아니었다. 이현욱이 그들에게 이 사태를 미리 경고해두었기에, 긴장 상태로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다.
이현욱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세희가 눈을 떴다.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려고요.”
“……슬슬 큰 신호가 온 건가요?”
언뜻 들으면 딱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 같았지만, 그 안에는 은밀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인 뒤, 화장실로 향했다.
철컥一
그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마나 감지기’를 해킹하여 재빨리 OFF 상태로 만들었다.
본디 기내에서는 일정량 이상의 마나를 사용하는 즉시 곳곳에 배치된 ‘마나 감지기’가 경보를 울린다.
그리고 항공기 내에서의 액티브 스킬 사용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중범죄에 해당했다.
‘그래도 마나 연결 정도의 소량 마나 사용은 감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내에 있는 필수 마법 장비들이 소량의 마나를 배출했기에, 그걸 걸러내기 위해서 마나 감지량의 최소 기준이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현욱의 마나 연결은 그 기준을 넘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거 갑자기 왜 이래?”
아무래도 마나 감자기가 먹통이 되자마자 승무원에게 경고 메시지가 전송된 듯했다.
즉, 금방 복구가 될 터…… 이현욱은 빠르게 손목의 각인에서 아이템을 하나 소환했다.
시이이이——
그건 웬 철제 상자였는데, 그 안에 든 건 소형 '아공간 생성장치’였다.
그가 평소에 아이템 보관용으로 사용하던 AD-2는 워낙 부피가 컸기에, 그 안에서 아공간 생성장치만 따로 분리해서 휴대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현욱은 그곳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그중에는 ‘귀게스의 반지’가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귀게스의 반지(영웅)
- 효과 : 마나를 불어 넣을 시 30초간 투명 상태가 됩니다. (재사용 대기 : 30분)
겨우 30초간 투명 상태가 되는데도 영웅 등급이다.
그만큼 은신과 관련된 스킬은 아주 귀한 편으로, 암살 계열 플레이어들조차 쉽게 얻을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비행기 안에 15분간 투명 상태가 되는 퀴네에가 있다.’
물론, 귀게스의 반지는 고작 30초간 투명 상태가 되는 대신에 ‘기척’까지 완전히 숨겨준다.
하지만 어차피 기척 정도야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자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억누를 수 있는바 ‘퀴네에’의 성능이 압도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현욱은 ‘귀네스 반지’를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고, 아공간 생성장치를 왼쪽 손목에 다시 각인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치이이이…….
그러자 바닥 면이 융해되며 큰 구멍이 뚫렸는데, 그 안으로 ‘플라이 아이’를 하나 집어넣은 뒤 그 위에 얇은 철판을 덧대어 막았다.
‘이렇게 화물칸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둔다.’
그렇게 계획대로 몇 가지 준비를 마친 뒤,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후一 됐다.”
"이거 얼마 전에 교체한 거 아니었나?”
"그러게 왜 벌써……."
마침, 승무원 두 명이 천장에 달린 마나 감지기를 고치는 데 성공한 듯했다.
'......아슬아슬했다.’
그 둘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현욱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이현욱 역시 눈짓을 보낸 뒤, 고개를 슬쩍 돌려서 이코노미 클래스 쪽을 바라보았다.
맨 끝자리, 덩치 큰 호송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옆자리의 대머리 남자에게 중얼거린다.
- ……저 자식이 들어가서 앉으면 움직인다.
- 오케이, 그런데 지금 기내에 있는 플레이어 중 레벨이 제일 높은 놈이 몇이라고 했죠?
- 41이었나 그랬을 거야. 그것도 프리스트 계열이니까, 걸림돌이 될만한 놈은 없다고 보면 된다.
- 그러니까, 전부 좆밥들만 탔다, 이거군요?
물론, 이현욱 일행은 위장 신분으로 탑승하면서 레벨까지 속인 상태였다.
- 뭐, 어차피 아무리 레벨이 높더라도 무기가 없는 상태라면 다 쉽게 제압할 수 있겠죠.
이현욱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김세희에게 웬 볼펜을 하나 건넸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볼펜(고급)
- 효과 : 알 수 없음
이렇게 상세 정보를 봐도 그 기능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아이템, 그 정체는 볼펜으로 위장된 무기였다.
‘여기에 마나를 부여하면 단검으로 변한다.’
이런 비상시를 위해서 강정두가 꽤 오래전에 개발했던 건데 지금까지는 쓸 일이 딱히 없었다.
그러는 사이, 호송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무장 승무원들에게 다가가 호송 작전에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뒤쪽 통로로 불러내더니, 총구를 들이밀고 무장해제 시켰다.
- ……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 이런 경우는 처음인가 봐?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좋게좋게 끝날 거야.
- 읍! 읍!
이어서 다른 호송관 두 명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지나치더니 조종석 쪽으로 향했다.
이현욱은 그들의 품속에는 인첸트된 자동화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감지했고,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총의 내부 ‘노리쇠뭉치’와 ‘공이’를 융해시키고 뒤틀어버렸다.
'좋아, 이러면 발사가 안 될 거다.’
쩍—
그런 소리가 났지만,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스태프룸에 있는 승무원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어서 제압한 뒤 조종실 문을 열라고 협박했다.
그렇게 일사불란하고 은밀하게 기내의 모든 승무원을 제압해버렸다.
- 레이비즈, 네 구속구를 풀어줄 테니까 부디 미쳐 날뛰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이어서, 기어코 레드 플레이어 셋의 속박을 풀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젠장,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 장면을 본 한 승객이 그렇게 소리치는 소리가, 벽을 넘어서 비즈니스 클래스까지 들려왔다.
- 예?
- 내가 사수 계열인데, 누구 눈을 속이려고 지금一
- 이봐, 그냥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 뭐, 뭐요? 이것들이 진짜, 너희 뭐야!
- 입一 닥치라고 개새끼야!”
뻑!
일순간 가지각색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 대신 천장에서 웬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삑! 삑! 삑! 삑!
이는 마나 감지기의 경보음이었다. 아마도 호송관 중 한 명이 공격 스킬을 써서, 이코노미 클래스의 사람들에게 겨눈 듯 듯했다.
- 아오, 저 시끄러운 거 싹 다 끄라고 해!
이내 경보음이 꺼졌고, 호송관 둘이 비즈니스 클래스로 들어오며 총구를 사방으로 겨누었다.
이곳에는 이현욱의 일행 외 4명이 더 타고 있었고, 그들은 놀란 눈으로 주춤거렸다.
"전부 손들어一!”
"씨발, 손들라고, 뒤지고 싶어?”
이현욱은 손을 들려 고개를 돌려서 두 명의 흑인 사내들一다크 엘프들을 바라보며 침착하라고 눈짓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이 상황은 견지해주지 않은 상태였다.
"야! 눈깔 돌리지 마! 이게 장난 같아?”
"아, 아닙니다……."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으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홀든, 이 사람들 전부 저쪽으로 옮길까요? 한쪽에 모으는 게 감시하는 게 더 편할 텐데요.”
"아니, 그래도 플레이어들이니까 움직이게 하면 위험해. 일단, 절대로 못 움직이게 해.”
그때, 이코노미 클래스 쪽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자一 모두 조용히 하고 제 목소리에 귀 좀 기울여주시죠.”
이 목소리는, 앞서서 이현욱이 도청으로 파악한바 마빈 케이터라는 남자로, 호송반장이었다.
"자, 보시다시피 기내에 문제가 조금 일어났습니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
"그 문제가 뭐냐면, 이 비행기가…… 어…… 탈출한 레드 플레이어들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겁니다. 저기 보십시오. 이제는 자유 몸이 된 미친놈들을요. 아주 흉악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는 뭐가 좋은지 킬킬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대화해본 결과, 의외로 신사답더라고요.”
"젠장, 시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너 지금一 무슨一”
펑!
그 순간, 폭발음과 비명이 울렸다.
아무래도 푸념을 내뱉었던 승객一종전에 자신이 사수 계열이라고 했던 남자가 마법 공격에 맞은 듯했다.
이내, 섬유가 타는 냄새와 고기 익는 냄새가 풍겨왔고, 소화기 뿌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음…… 잠깐 사고 있었는데…… 여러분 모두 잘난 플레이어들이지만, 맨몸으로 저렇게 완전무장한 레드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건 불 가능하실 테고,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 비행기가 추락해서 지중해에 처박힐 겁니다.”
"......."
"그러니까, 다들 지혜롭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자, 보시던 넷플릭스나 마저 보시지요. 제가 약속드리는데, 예정된 목적지는 아니더라도 외딴곳에 안전하게 내려드릴 겁니다.”
그 말은 당연히 거짓말일 것이었다. 이런 중범죄 현장에 미쳤다고 목격자를 남기겠는가?
이어서 승무원 전원이 줄줄이 한쪽으로 끌려갔다.
"자, 우리 자랑스러운 승무원 여러분, 딱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그…… 화물칸의 금고, 우리 승객 여러분의 귀중품이 잔뜩 들어 있는 그 금고 아이템에 접근 권한이 있는 분이 누구죠?”
모든 승객의 모든 아이템은 탑승 수속 때 수거되어 화물칸의 ‘금고 아이템 ’에 보관된다.
그리고 그걸 열 수 있는 사람은 기내에 세 두 사람, 기장, 부기장, 선임 승무원뿐이었다.
“……저, 저예요.”
한 중년 여성이 손을 들었고, 그들은 그녀를 데리고 한 층 아래 화물칸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레이비즈, 곧 네 장난감을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 ……누가 들으면 내가 진짜로 미쳐 날뛰는 년인 줄 알겠다.
- 음, 아니었어? 그러면 왜 그 정치인 노인네들의 목을 다 따는 것도 모자라서 구태여 눈알과 혀까지 뽑은 거야? 그것 때문에 아주 발칵 뒤집혔던 거 몰라?
- 그건 그냥 소소한 취향이니까 그런 걸 내 성격이랑 엮어서 생각하지 마. 그러면 뭐, 격투기 취향을 가진 놈은 전부 폭력적이겠어? 나는 해부학에 좀 관심이 있단 말이야.
- 으흐흐一 그 말이 더 또라이 같은 거 알아? 미친년…….
그 대화를 끝으로, 3명이 한 층 아래一화물칸으로 내려가는 게 감지되었다.
‘이제 슬슬 따라가야겠군.’
저놈들이 금고를 개방하고 퀴에네를 꺼내는 순간을 노려야만 했다.
이현욱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아다만트 소재의 쇠 구슬 하나를 금속 통제력으로 꺼내어, 바닥 위에 떨어뜨렸다.
탁—
그와 동시에 허리를 살짝 숙이며 움찔했는데—
"야, 씨발一 움직이지 마!”
한 호송관이 소리치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떨어져서요.”
이현욱을 일부러 잔뜩 움츠러든 태도로 말했다.
"뭐? 이 새끼 너, 뭘 떨어뜨린 거야?”
"그게…… 그냥 티스푼입니다."
"하一 너 레벨 몇이야?”
"저, 저, 저는 21레벨입니다.”
이현욱이 위장 신분의 레벨을 떠올려서 말하자, 호송관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21이나 되는 새끼가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 티스푼을 주울 생각을 하지, 병신인가?”
하지만 놈의 질책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푹一 푹一
이현욱은 떨어뜨렸던 쇠 구슬에 변형을 가해서 얇은 침처럼 벼렸고, 그걸 매우 빠르게 쏘아 올려서 두 놈의 목덜미를 연달아 관통했다.
바로 그 순간, 박준모가 기다렸다는 듯 발아래로 전류를 흘려서 두 놈을 감전시켰다.
파지지지——
그러자 근육이 굳으며 두 놈이 쓰러지지 않았고, 이현욱은 그사이에 금속 생성을 통해서 긴 막대를 만들어서, 두 놈의 관절 부위에 부목을 댔다.
‘됐다, 이렇게 하면 마네킹처럼 세워둘 수 있으니까 이코노미 클래스 쪽에서 볼 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일 거다.’
그 일련의 과정 동안, 정말 다행히도 다른 놈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여기에서 허를 찌른다면 저놈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위험 부담이 컸다.
‘아무리 그래도 레이비즈만은 쉽게 당해주지 않을 거다.’
저 여자는 81레벨인 데다가, 아주 튼튼한 전사 계열 플레이어였다.
‘그 정도라면, 나도 좁은 곳에서는 승산이 없는데…… 여기는 심지어 비행기 안이다.’
즉, 까딱 실수했다가는 이 비행기가 정말로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퀴네에를 먼저 얻고, 그걸로 저 여자를 암살한다.’
이현욱은 품속에서 귀네스의 반지를 꺼내며, 김세희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럼, 잠깐 갔다 올 테니까 조심하고 계세요.”
그 순간, 이현욱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서 비즈니스 클래스의 화장실 문이 아주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
그 시각 화물칸, 가장 안쪽에 검은색의 거대한 금고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 물건은 아주 강력한 마법 방어막이 붙어 있어서, 아무리 플레이어일지라도 맨손으로는 절대로 뜯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봐, 뭐 해?”
"아, 으, 네! 네!”
자신을 겨누고 있는 2개의 총구 앞에, 선임 승무원은 금고에 손을 얹을 수밖에 없었다.
웅——
그렇게,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금고 아이템이 아주 쉽게 열리고 말았다.
"여, 열었습一”
쉭一
그 순간, 선임 승무원의 목에서 핏물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을 붙잡고 쓰러졌고, 칼을 거둔 장발의 남자가 제 부하들에게 고갯짓했다.
"좋아, 폴, 저 안에서 회색 상자 좀 찾아서 끌고 나와. 어떻게 생겨 먹는 놈인지 알고 있지?”
"예! 그런데 저…… 승객들 물건 좀 챙겨도 됩니까?”
"하一 이 새끼, 이 탐욕스러운 눈 좀 봐.”
"하하一 이런 기회가 또 어딨겠습니까? 저희 박봉으로 아이템 세팅하고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 알겠으니까 일단은 상자부터 꺼내와.”
그러자 폴이라고 불린 호송관이 신이 난 표정으로 금고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이내 회색의 철제 상자를 발견했다.
"저 팀장님, 이거 맞습니까?"
"그래, 빨리 좀 꺼내와!”
그들이 챙겨온 레이비즈의 아이템들이 바로 이 안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컥一 와, 이거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그는 상자를 들어 올리려다가 실패했다.
"그거야, 무려 전설 등급이 들어 있는 상자니까 몇 중으로 꽁꽁 싸매지 않았겠냐? 그래 봤자 삼사십 킬로그램일 텐데 약한 소리 하지 마.”
"으一 이게一 흡! 그 정도가一 아닌一 헉! 이상하게도 꿈쩍도 안 하는데 좀 도와주시면一 감사하겠습니다!”
"하一 저 병신, 하는 것 좀 봐라…… 올리닉, 네가 도와줘라. 좀.”
결국, 한 명이 더 들어가서 폴과 함께 상자를 들어 올렸다.
“큭!”
"헉!”
둘이 같이 힘을 주었지만, 상자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너희 지금, 대체 뭐 하는 거냐?”
두 사람의 모습에 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로 몇 톤은 되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니면 바닥에 붙었나? 진짜 안 됩니다!”
그때였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웬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팀장은 총구를 뒤로 돌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어느새 등 뒤, 화물 사이에 라틴계 남자가 서 있었다.
“……너, 뭐야?"
"저, 그냥 승객인데요. 좀 버거워 보이시길래요.”
그는 총구를 바라보며, 양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너, 어디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스킬이라도 쓰려는 순간 벌집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때一
"어……."
"뭐, 뭐야!”
금고 안의 두 호송관이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럴 것이, 그토록 움직이지 않던 철제 상자가, 허공으로 붕一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一
"티, 팀장님一!”
뻑—
그대로 쏘아지듯 날아가, 팀장의 뒤통수를 들이받고는, 정체불명의 남자 앞에 턱一 떨어졌다.
"어……."
이어서 그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상자가 쩍一 하고 갈라지며, 웬 검은색의 투구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웅——
그 어떤 문양도 없이 밋밋하지만, 플레이어로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격, 그런 게 묻어나오는 물건이었다.
그것이, 그 남자의 머리에 저절로 씌워졌고,
"이제부터, 내가 술래 역할을 한다.”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