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위그드라실, 그린 웨이브, 죽음의 드래곤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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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비공정, 프리드웬이 지면이 난 거대한 구멍으로 돌입하는 순간, 마루가 주변의 널브러져 있던 건물 잔해를 끌어모아서 그 구멍을 단단하게 메워버렸다.
꽈드드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강도로 막았는데, 음…… 한 1~2초 벌었을까?」
마루 녀석답지 않은 회의적인 판단이었다.
그럴 것이, 니드호그는 애초에 맨몸으로 지면과 빌딩을 꿰뚫고 올라오지 않았던가?
이 구멍을 아무리 단단하게 막는다고 할지라도, 놈은 종잇장 찢는 뚫고 들어올 것이었다.
"그래도 1초 차이로 잡힐 수도, 성공할 수도 있으니까......."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 놈이 발작하듯 하늘로 치솟는 걸 목격했으니, 곧 저 뒤로 니드호그가 쫓아 들어온다.
‘이 좁은 통로에서 따라 잡힌다면, 답이 없다.’
종전, 니드호그와의 충돌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던 건 전장이 탁 트인 하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좁은 곳에서 맞부딪히면, 10초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
'……반드시, 모든 수를 써서 떨쳐내야 한다.’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아, 해리스 씨 들리세요?”
- 젠장, 제발 좀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적어도 나한테는 말해줄 수 없겠나? 대체 왜 그 구멍으로 들어간 건가?
"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서요. 그리고 지금 당장 도와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 그래,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챘다. 니드호그, 그 자식이 헐레벌떡 날아가는 걸 보니까 그 구멍 안에 뭔가 대단한 걸 숨겨 놓은 모양인데, 내가 뿌리를 조여서 놈이 못 들어가게 하면 되겠나?
"예, 정확합니다.”
지금, 프리드웬은 뒤죽박죽 꼬인 어두운 통로를 에밀리아 뮐러의 ‘홀리 라이트’의 인도를 따라서 헤쳐나가고 있었다.
꽈드드드——
이내 프리드웬이 지나온 뒤쪽 통로가 좁아지기 시작했는데,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조여지며 이제는 쥐 한 마리도 통과할 수 없게 됐다.
도널드 해리스, 그가 세계수 관리자의 권한을 발휘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것도 잠깐의 시간 벌이일 뿐이다.’
도널드 해리스의 말에 따르면, 니드호그라는 괴물을 뿌리 감옥에 가둘 수 있었던 건, 놈이 쇠약 상태였으며 그 위에 ‘세인트 돔’이라는 최강의 성물을 얹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 풀려나서 완전한 힘을 되찾은 이상 세계수의 뿌리는 놈에게는 조금 성가신 거미줄이고, 세인트 돔의 신성력은 불쾌한 열기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콰직— 콰직—
등 뒤에서 살벌한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땅을 헤집고, 뿌리를 잡아 뜯는 소리…….
콰직一 콰직一
마치, 등 뒤에 금속 분쇄기가 따라붙은 것 같았다.
또한, 그 소리 안에 분노에 찬 숨소리가 곁들여져 있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짐을 능멸하다니一!」
"아……."
그 목소리를 인지하는 순간, 모두가 본능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가, 갑자기 속이……."
이현욱은 드래곤 슬레이어로 얻은 ‘정신 방벽’이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들은 몸에 힘이 풀리는 기분일 것이었다.
"자, 모두 이쪽으로 와서 이 빛을 쫴요!”
그나마 에밀리마 뮐러가 ‘상태 이상’이 해제되는 백색의 불꽃을 피워냈다. 그 근처에 있으면 드래곤 피어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콰직一 콰직一
등 뒤의 굉음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모두가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저 끔찍한 소리가 머리 위까지 당도하기까지, 몇 초 남지 않았음을…….
"시발, 미안한데 더 빨리는 못 가요?”
사색이 된 김세희가 프리드웬을 조종 중인 여상민을 향해 소리쳤다.
"젠장, 이렇게 꼬불꼬불 한 길을 어떻게 빨리 주파합니까? 으으으……."
그도 한참 예민해진 상태였기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속도를 높였다.
이러면 비공정의 통제가 어려워지고 벽에 부딪힐 위험이 대폭 상승할 테지만, 니드호그에게 씹히는 것보단 났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콰직一 콰직一
그에 반해 니드호그는 그런 복잡한 통로를 엄청난 속도로 주파하고 있는 듯했는데, 놈은 인간 이상의 감각으로, 구불구불한 통로를 물 흐르듯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도널드 해리스에 의해서 뿌리가 닫히지 않았더라면 이미 놈에게 잡혀서 갈기갈기 찢겼을 터였다.
그때…….
콰드드드——!
등 뒤, 가장 최근에 조여졌던 뿌리가 마치 장막이 열리듯 죽一 찢어지며 그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피어났다.
「이一벌레들一찾았다——!」
찢긴 뿌리를 헤집으며,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검은 먹구름처럼 다가온다.
"안 돼一 놈이 바로 뒤까지 쫓아 왔어요!”
그때, 박준모가 기겁하며 양손에서 전류를 뿜어냈고, 세상이 일순간 시퍼렇게 변했다.
파지지지——!
이 통로가 마치 고압 전선이 된 듯, 어마어마한 양의 전류가 통로 전체를 뒤덮으며 흘렀으며,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검게 그을리며 불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파—자一자一자——!
그에 휩쓸린 니드호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머리를 들이밀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금방 잡힐 겁니다! 전부 퍼부어요!”
이현욱이 ‘파이어 트랩’을 깡그리 다 쏟아부으며 폭파했고, 김세희가 바람의 칼날을 난사했으며, 에밀리아 뮐러가 빛을 화살을 뿜어냈다.
이들 모두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콰一과一과一과一광——!
그러나 니드호그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직선 구간이 계속되었다면 브레스를 뿜어서 프리드웬을 통째로 녹여버렸을 텐데…… 정말 다행히도 곡선 구간이 제때제때 등장하고 있었다.
「다 소용없으니,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 순간, 프리드웬이 최대가속을 했다.
"—다 왔어요! 꽉 잡아요!”
우우우우——!
여상민이 조종간을 잡아당기자 노움제 엔진이 최대 출력을 발휘하며 주변의 공기가 비닐처럼 일그러졌다.
직후, 수백 미터에 이르는 직선 구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꿰뚫듯 통과했다.
훙一!
“一됐다!”
마침내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서 드넓은 공동이 펼쳐졌다는 것을, 성녀의 홀리 라이트조차도 밝힐 수 없는 깊고 넓은 어둠이 증명했다.
직후, 여상민이 조종간을 급격하게 틀었고, 프리드웬은 고도를 높이며 천장 부근으로 올라갔다.
이현욱은 그와 동시에 램프 도어 밖으로 뛰어내리며, 등 뒤를 향해 소리쳤다.
"—에밀리아, 어서 라이프 베슬을 찾아요!”
그걸 파괴하면 페이즈2로 상대할 필요도 없이, 니드호가 즉사하며 공략이 끝나게 된다.
‘전생에는 그걸 눈치채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고, 니드호그가 수십 개의 도시를 파괴했다.’
전 세계의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연합하여 놈을 마주했고, 치명적인 일격을 수차례 가했음에도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놈이 고도의 죽음 마법을 통하여 제 ‘생명의 근원’을 육신에서 분리, 어딘가에 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곳, 자신이 갇혀 있던 뿌리 감옥 안에…….
그걸 몰랐다면 니드호그는 최악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걸 안다면…… 오히려 가장 공략하기 쉬운 먹잇감일 수도 있다.
「네 이놈,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길래, 감히 이곳을 찾은 것이더냐——!」
이내 뿌리 감옥 입구의 가장 굵은 뿌리가 뜯겨 나가며 니드호그가 뛰쳐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젠장, 드래곤 브레스를 쏘려는 거다!’
그걸 맞으면 무조건 즉사다.
아무리 넓은 공동일지라도, 피할 수 있는 면적은 한정적이기에 극히 위험했다.
‘하지만 반대로, 놈도 무방비가 된다.’
드래곤 브레스는 어떻게 보면 거대한 화포와 같았다.
그 무지막지한 화력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등가의 반작용—주퇴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고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서…….
‘큰 공격에는 반드시 큰 틈이 발생한다!’
이현욱은 왼쪽 손목에 각인된 AD-2를 소환, 그 안에서 발뭉을 꺼내어 다른 무기들에 뒤섞은 뒤, 놈의 머리 근처로 흩날려 보냈다.
‘어쩌면…… 한 방 먹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놈의 목구멍 안쪽에서 검은 일렁임이 끓어오르며 검은 불기둥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과——!
그것이 천장 부근에서 적중一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놈은 고개를 휘저어서 산성 브레스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 공동 전체가 산성의 메케함과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큭, 전부 흩어져요!”
일행은 프리드웬에서 뛰어내리며 흩어졌고, 이현욱은 프리드웬에 마나를 부여하여 방패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一
푹!
놈의 왼쪽 눈에, 발뭉이 내리박혔다.
「크아아아——!」
앞서 말했듯 고정된 자세에서 벌어진 틈, 그 틈을 노린 이현욱의 일격이 정확하게 명중했다.
'좋아, 제대로 한 방 먹였다.’
물론, 금방 회복 마법을 쓰겠지만, 한쪽 눈을 일순간 못 쓰게 만든 것만으로 시간을 벌었다.
"지금이에요, 에밀리아! 어서 그걸 찾아요!”
"젠장, 찾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넓잖아요!”
니드호그가 왼쪽 눈에 박힌 발뭉을 뽑는 사이에 이현욱은 ‘후긴’을 소환하여 하늘에 띄웠고, 그 초월적인 감각으로 어둠 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 안에 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공동의 크기는 웬만한 축구 경기장보다 넓었다.
또한, 이곳이 감옥이었던 만큼, 간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니드호그는 ‘라이프 베슬’을 숨기는 데 꽤 공을 들였을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눈을 피할 수는 없다.’
무려 전설 등급의 정보 획득 계열 아이템인 ‘후긴’과 ‘호루스의 눈’ 조합은 웬만한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수십 톤짜리 앞발一 이현욱은 그걸 감지하고 바닥을 굴렀다.
콰一앙——!
마치 덤프트럭 한 대가 중력 방향으로 떨어진 것처럼 육중한 충격이 지면을 울린다.
이현욱은 바닥을 구르고 또 구르며 그 공격을 피해낸 다음, 모글레이를 소환하여 몸을 가렸다.
‘젠장, 이렇게 되면 다른 곳을 시선과 감각을 돌릴 틈이 없다!’
훙——
또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중장비와 같은 앞발이 사각에서 날아들었다.
이현욱은 몸을 가리고 있던 모글레이를 틀어서, 그 공격을 쳐냈다.
쩌一엉——!
충돌, 모글레이가 수백 미터 뒤로 날아가 쾅一소리와 함께 어딘가에 박혔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다시 가져올 틈도 없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서 니드호그의 앞발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이리 오거라, 네놈을 내 친히, 산성 주스 안에 담가서 마셔주마——!」
웅—웅—웅—웅—
니드호그의 눈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사방에서 마법진이 떠오르며, 어둠 속을 훤히 밝혔다.
쾅! 쾅! 쾅! 쾅!
불, 물, 얼음, 땅, 전기 등一 온갖 속성의 마법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온다.
흡사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살충제를 방 전체에 살포하듯이, 공동 전체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이었다.
"큭!”
아무리 이현욱일지라도, 이 좁은 공간 안에서의 융단 포격을 피해낼 수는 없었고, 결국 한 발의 화염 마법에 휩쓸리며 나동그라졌다.
‘젠장!’
그 위로 내리치는 벼락이一차마 피할 수 없는 자세와 각도였다. 저걸 맞으면 최소 빈사 상태가 될 듯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벼락이 방향을 틀며 애먼 곳에 떨어졌다.
"어, 어서 피하십시오!”
이 목소리는 박준모였다.
그가 벼락을 통제, 방향을 돌린 것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웬 백색 선이 피어올랐다.
"흐아압一!”
이번에는 <와이트 트리 가드>의 단장 피터 클라크, 그가 모든 마나를 쥐어 짜내서 성기사의 최강 공격 스킬로 불리는 ‘천상의 검’을 발현했다.
약 10m의 반투명한 백색 검이 허공이 현현했고, 피터 클라크가 자신의 검을 휘두르자, 그것이 원격 조종되듯 같이 움직이며 니드호그의 등을 내리찍었다.
쩌一엉——!
하지만…….
「하一 가소롭도다…….」
퍼一엉——!
피트 클라크는 거대한 불꽃에 휩쓸리며 튕겨 나갔고, 수십 미터 뒤로, 어둠 안으로 사라졌다.
파지지지지——!
이어서 박준모가 옆구리를 향해서 전류로 만들어진 창을 연달아 발사했고, 그 반대쪽 옆구리를 김세희가 바람의 칼로 긁어댔다.
하지만 전부 다 소용없었다.
저들에게는 '드래곤 슬레이어’조차 없으니 배리어를 뚫을 수 없었고, 의미 있는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 분 동안 내리 때려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마법진들이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一안 돼, 피해요!”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방어 스킬이 없기에, 제대로 한 방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이현욱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그들의 몸에 금속 몇 개를 채워두었고, 그걸 잡아당겨서 공격 반경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 순간, 이현욱의 등 뒤에서 밝은 빛줄기가 치솟으며 니드호그의 얼굴에 닿았다.
쩡——
「—큭!」
놈은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어둠 속으로 돌렸다.
"생각해보니까 당신 눈이 더 정확하잖아요! 내가 막을 테니까, 그 망할 물건의 위치 빨리 찾아봐요!”
에밀리아 뮐러가 이현욱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현욱이 찾는 게 훨씬 빨랐다.
"젠장, 하지만……."
이현욱이 전장에서 이탈해서 라이프 베슬 수색에 나선다면…… 아니, 아주 잠깐 한눈만 팔아도 넷 모두가 죽을 가능성이 컸다.
이현욱의 그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에밀리아 뮐러는 이현욱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이 바로 위에 뭐가 있는지 알죠? 내 집, 세인트 돔이에요! 나는 그 힘을 가져다 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빨리요!"
에밀리아 뮐러가 양손을 벌렸고, 그 순간 천장에서 백색의 일렁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세인트 돔, 그 최강의 성물에 담긴 신성력을 죄다 끌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강의 신성력을 품은 성녀가, 배 이상의 신성력을 다루게 된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백색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후一 이 씨발, 너 같은 고린내 나는 도마뱀 새끼가 내 발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단 말이지?”
그녀의 몸에 빛으로 만들어진 갑주가 입혀지고, 그녀의 몸이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
"왠지 맨날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그건 아마도 과음 때문이겠지만, 그녀는 니드호그 탓을 하며 신성력을 최대치로 방출했다.
우一우一우一우——
어둠의 힘과 대칭되는 압도적인 신성한 힘에 니드호그조차 움찔거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촤르르르——
이내, 천장에서 흘러내리던 신성한 기운이 어떤 형체를 갖추었는데, 그건 쇠사슬이었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밴시’를 구속했던 그 쇠사슬보다 몇 배는 더 두꺼웠고, 몇 배는 더 많은 양이었다.
그것들이 백색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며 니드호그의 온몸을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그렇게 두 상반되는 힘이 맞부딪치며 마치 합선이라도 된듯 스파크와 연기가 피어났다.
「이 더러운 계집년, 짐은 네년의 힘을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네년을 도륙 낼 날을 고대하고 있었으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닥쳐, 널 잘게 잘게 쪼개서 동양식 뱀술을 담가서 마실 예정이니까!”
「부, 불경하도다!」
이어서, 천장 부근에서 백색 빛이 응집하기 시작하더니, 마치 백색 왜성이 나타난 것처럼,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발하는 구체가 만들어졌다.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그게 거대한 철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대천사의 징벌——!”
앞서서 피터 클라크가 발휘했던 ‘천상의 검’ 이상의 신성 계열 공격 스킬이었다.
저것에 직격당하면 그 네크로맨서라도 즉살할 정도의, 막대한 신성력이 담은 일격이었다.
‘물론, 놈을 직격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놈이 부리는 막대한 언데드 군단을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드호그는 지금, 혈혈단신에다가 이미 신성한 쇠사슬에 결박당한 상태였다.
쩌一엉——!
대천사의 징벌이 니드호그의 큼직한 머리통을 내리찍자, 놈의 머리통에서 검은빛이 피처럼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놈이 가진 어둠의 힘이, 증발하듯 소멸하는 것이었다.
「끄으으으…….」
이현욱은 그러는 동안, 후긴을 통해서 공동 곳곳을 세밀하게 훑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 (!) 히든 스테이지 ‘정체 불명의 틈’ 입구
그의 '인사이트 렌즈’에 이질적인 정보가 잡혔다.
'이거, 인사이트 렌즈가 없었다면 온종일 찾았겠는데…….'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복귀시킨 뒤,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다시 에밀리아 뮐러와 바통 터치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一
쾅——!
폭음과 함께 에밀리아 뮐러가 저 멀리 등 뒤로 날아가는 게, 후긴의 시선으로 보였다. 그녀의 팔 한쪽이 사라진 상태였다.
「아무리 강한 어둠이라도 한 줌 빛에 세를 빼앗기지만, 반대로 아무리 밝은 빛이라도 광활한 어둠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짐은, 우주 같은 어둠일지니…….」
이현욱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동시에 금속 무기 몇 개를 녹여서, 그녀의 허리와 목에 감은 뒤 금속 통제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가까이 끌어당겨서,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날아드는 온갖 마법들을 피해냈다.
"젠장, 에밀리아一 정신 차려요!”
“쿨럭一 아 씨발, 쪽팔리네......."
그녀가 이현욱의 가슴팍에 퍽一 하고 선지피를 쏟아냈다.
"뭐야…… 나 와인 안 마셨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힐이나 하세요.”
이현욱은 그대로 ‘정체불명의 틈’ 쪽으로 날아갔다. 성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직진해야만 했다.
그런데一
콰一과一과一과一과——!
놈이 그 지점을 향해서 산성 브레스를 뿜었고, 이현욱은 황급히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하, 이러면 좀 곤란한데……."
라이프 베슬을 노리기 위해서는 저 미쳐 날뛰는 놈을 누군가가 막아 주어여야만 했다.
하지만 박준모, 김세희, 피터 클라크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런 벌레 새끼들, 너희가 빠져나갈 곳은 없으니, 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생명력을 바쳐야 할 것이다!」
이현욱은 놈의 머리 위에서 발뭉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경이 쓰이게 만들면서, 놈에게 다시 ‘틈’을 만들 방법을 고심했다.
‘틈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해답은 전혀 다른 곳에서 쏟아졌다.
쩌저저저——
천장, 위그드라실의 뿌리가 벌어지더니, 그 틈으로 두 인영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틸레인, 저 자식은 우리가 맡기고 자네는 자네의 그 음습한 계략을 마무리 짓게나!”
두 인영은 도널드 해리스와 정령왕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
콰—아—아—아——!
아마도 차드호에서부터 유입되었을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이내 7개의 물기둥이 되어서 니드호그의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정령왕과 S등급 정령술사의 합심은 실로 대단했고, 니드호그를 벽 끝으로 내모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一 한낱 잡것들이一」
"스틸레인, 바로 지금이오!”
정령왕이 소리치기도 전에 이현욱은 ‘히든 스테이지 - 정체불명의 틈’ 앞으로 달려갔다.
그 지점을 훑자 역시나 맨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블랙 드래곤의 미궁에서 찾았던 ‘홈’ 같은 열쇠 구멍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는 벽을 향해, 무작정 모글레이를 휘둘렀다.
쾅——!
벽면, 뿌리가 한 움켜 터져나가며, 안에서부터 차고 역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그 틈에 집어넣고 지렛대의 원리 삼아서 그 틈을 더욱 크게 벌렸다.
콰직一!
마침내, 웬 비늘 조각으로 뒤덮인, 서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아마도 니드호그가 자신의 비늘을 떼어내어 만든 공간으로써, 도널드 해리스가 감지할 것을 방지한 듯했다.
그걸 눈치챈 에밀리아 뮐러가 혀를 내둘렀다.
“큭一 엄청 두꺼운 바, 방어막이 있어요. 드래곤의 배리어와 같은 수준이에요. 썅, 이거 애 좀 먹겠는데요......."
역시나 드래곤의 권능으로 방어되고 있었지만…….
"아니, 금방 깰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요.”
모글레이, 드래곤 슬레이어 2단계의 거검이 닿자 그 방어막은 두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심부에 웬 거대한 검은 보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고—오—오—오——
검은 일렁임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게,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저게 바로 라이프 베슬……."
이현욱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에밀리아 뮐러가 하나 남은 팔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안 돼, 가까이 다가가지 마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예, 더 다가가면 안 되겠죠.”
리치의 생명력이 담긴 그릇인 ‘라이프 베슬’은 최상위 등급의 죽음 마법으로써, 산 자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석처럼 생명력을 빨아들여 버린다.
그렇기에 신성력을 통한 ‘정화’가 필요했다.
에밀리아 뮐러가 그 앞으로 다가섰다.
"후……."
그녀가 눈을 감자, 그녀의 잘린 외팔에서 황금색 빛이 발하더니, 이내 팔이 재생되었다.
이어서 그녀가 합장하자, 그녀의 온몸에서 농도 짙은 신성력이 흘러나오며 어떤 결계를 형성했고, 그녀는 그 상태로 검은 보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우우우우——
그녀가 양팔을 앞으로 천천히 뻗자 정화의 빛이 라이프 베슬 위로 쏟아졌다.
치이이이——!
마치 숯 더미 위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크아아아——!」
그와 동시에 니드호그의 비명이 터지는 게, 제대로 먹히고 있는 듯했다.
"자, 이제 됐으니까, 빨리 박살 내버려요!”
이현욱이 모글레이를 양손으로 쥐고는, 온 힘을 다해서 검은 보석을 내리쳤다.
쩡——!
그 순간, 검은 보석 안에서부터 엄청난 압력이 쏟아져 나오며 2t짜리 모글레이를 밀어냈지만, 이현욱은 온몸에 강체화를 걸고 있는 힘껏 검 끝을 밀어 넣었다.
콰드드드——!
이내, 검은 보석 위로 선명한 균열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등 뒤, 온갖 폭음 울렸으며 정령왕과 도널드 해리스의 신음도 함께 들려왔다.
아무리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니드호그와 맞부딪히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터였다.
쩡——!
하지만, 이현욱이 조금 더 빨랐다.
퍼—억---——
검은 보석이 으스러지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죽음의 조정자 니드호그’를 처치하였습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모글레이’에 신비한 힘이 깃듭니다.
이내, 온갖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모글레이가 ‘전설’ 등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