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위그드라실, 그린 웨이브, 죽음의 드래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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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며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린 웨이브’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마치 뱀들을 태워 죽이는 것처럼, 수천 가닥의 녹색 넝쿨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온디 아무리 태우더라도, 그보다 빠른 속도로 생장하고 재생하는 귀찮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뭉’의 저주로 인해서 그 모든 효과가 원천 차단당한 상태였다.
‘즉, 그린 웨이브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을 멈추게 만든 셈이다.’
그로써 판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졌고, 이현욱은 체크 메이트一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손짓에, 모글레이 4자루가 내리꽂히며 그중 2자루가 '쇼크웨이브’를 터뜨렸다.
콰一과一과一과一광——!
엄청난 충격파에 지면이 재차 함몰되며, 막대한 양의 잔해가 구멍一지하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 무게를 떠받칠 방법이 없었기에 지하의 다크 엘프들을 그대로 매장당했다.
「혹시 모르니까, 저 땅굴에 있는 놈들은 내가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준다!」
그리고 마루가 나서서 그 잔해들을 꾹꾹 눌러 담아서, 산소 구멍을 완전히 차단해버렸다.
쿠구구구…….
그렇게 지면이 짓이겨지자 탑처럼 솟은 ‘꽃망울’들이 꺾이기 시작했다. 이에 아직 살아 있는 그린 웨이브 몇 가닥이 달려들어서 꽃망울의 줄기를 지탱했지만, 위태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그 위에 서 있는 플로스 루베르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네놈,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간악한 술수를 떠올 수 있던 것이냐?”
앞서서 빌런 측에게 스틸레인에 관한 정보를 듣고, 그를 잡아먹을 방법을 구상했다.
그의 금속 무기를 그린 웨이브 안에 잡아두면, 그는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고심한 작전을 역으로 이용해서 내 부하들을 전부 죽이다니……."
그때, 잔해 속에서 금속 무기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종전, 그린 웨이브가 삼켰던 수백 개의 검과 창들이 풀려난 것이다.
한껏 분노한 이리 떼가 이빨을 드러내듯, 뾰족한 칼날이 번뜩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을 막아낼 방법이, 플로스 루베르에게는 없었다.
쉬一쉬一쉬一쉬一쉬——!
이내 수백 발의 금속 무기들이 허공에 무방비로 떠 있는 과녁一꽃망울들을 향해 쏘아졌다.
“으아아一 오, 온다!”
"어떻게든 막아 봐!”
"젠장, 어떻게 막아!”
본디 그 꽃망울에 강력한 마법 방어막이 있어야 하지만, 뿌리가 괴사하여 효과가 사라졌다.
"으아아——”
‘‘컥—"
"사, 살려줘……."
결국, 반쯤 꺾인 꽃망울 위에 서 있던 다크 엘프 드루이들이 단숨에 휩쓸려 나갔다.
그러나 플로스 루베르만은 씨앗을 허공에 흩뿌리며 급속 생장을 부여했고,
허공에서 파리지옥처럼 생긴 넓적한 식인 식물이 피어나며 금속 무기 세례를 막아냈다.
퍼—버—버—버——!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회피일 뿐…….
사방이 탁 트여 있는 허공,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수백 개의 무기,
그걸 다 피할 순 없었다.
"큭!”
결국, 그녀의 복부에 페일노트가 처박혔다. 그녀의 등에서 돋아난 넝쿨이 그걸 뽑아버렸으나, 옆구리에 또 다른 페일노트가 명중하고 이어서 허벅지에 창 한 자루가 내리꽂혔다.
“끄으으——!"
무려 119레벨의 보스 몬스터였지만, 정령술사 계열인 만큼 방어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비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는 뜻은 아니었다.
‘전생, 놈은 위기에 처했을 때 단단한 씨앗 안에 탑승한 뒤 장거리 공간 이동을 했다.’
즉, 지금도 이현욱의 공세를 피하면서 그 탈출 스킬을 쓸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순간 펑—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 주변에서 흰색 연기가 가득 찼다.
이어서 약 백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번쩍임이 보이더니, 그곳에서 그녀가 현현했다.
“쿡一 스틸레인, 대단했지만 다음에는 그런 잡 기술 따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탈출 성공을 확신했는지, 그런 작별 인사 같은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닌가?
그녀가 웬 열매를 하나 꺼내어 급속 생장을 부여하자, 그 열매가 거대해지더니 그녀의 몸을 감쌌다. 마치 호두껍데기처럼 단단한 모양새였고, 그 위로 온갖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래, 저게 바로 그 문제의 탈출 스킬이다.’
이현욱은 그녀를 모글레이 한 자루를 움켜쥐고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一 이미 늦었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수십 미터 거리, 사정거리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현욱이 무엇을 하든 자신의 탈출 스킬을 저지할 수 없으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완전히 틀렸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양손으로 쥐고,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발동하며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 순간, 모글레이로부터 마나가 터져 나오며 일대의 공기를 깡그리 밀어내 버렸다. 그렇게 밀려난 공기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서 솟아나 있는 식물들의 이파리를 죄다 흩날려버렸다.
콰一과一과一과一광——!
그리고 플로스 루베르가 탄 열매를 강타하여 수백 미터로 뒤로 날려버렸다.
"큭, 이딴 바람 따위로 내 마법을 깰 수 있을 것 같더냐一!”
이 처음 스킬을 맞이할 때, 다들 그렇게만 여긴다. 그저 강력한 바람일 뿐이라고…….
‘하지만, 진짜 공격은 그 폭풍의 뒤를 따른다.’
열매, 그 탈출 포트의 표면에 마법진이 완성되기 직전, 플로스 루베르가 안도를 머금을 때一
촤一악——!
"응?"
어떤 섬광이 번쩍였고, 그녀는 그 섬광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뭐, 뭐…… 컥一”
그제야 플로스 루베르는, 자신의 하반신이 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카, 칼날……."
요동치는 폭풍 속에 예리한 바람의 칼날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쉬이 예측하지 못한다.
‘역시, 스페이스 커터는 허를 찌르기에 좋다.’
전생에서 온 모글레이, 실프의 오브가 적용되며 생성된 두 가지의 스킬…….
이현욱은 오랜만에 사용한 전생의 스킬의 손맛을 느끼며, 거검을 거두었다.
- 축하합니다! 보스 몬스터 숲의 관리자 플로스 루베르를 처치하셨습니다!
이내 두 쪽이 난 플로스 루베르의 몸뚱이가 낙엽처럼,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끝난, 거죠?”
등 뒤, 김세희가 물었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현장은 끝났지만, 아직 놈들이 위그드라실 곳곳에 있을 겁니다.”
이어서 금속 무기를 날려서 플로스 루베르의 몸을 수색, 몇 가지 아이템을 획득했다.
첫 번째로 손에 들어온 건 아주 작은 호리병이었는데, 겉면에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급성장의 영약(영웅)
- 효과 : 이 열매를 복용한 존재의 성장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건, 드루이드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스펙 상승 기회로 여겨지는 물건이다.’
앞서서 숲의 정령술사들이 식물에 ‘급속 성장’을 거는 장면이 여러 번 펼쳐졌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조금 더 특별한 축에 속했는데,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현욱에게는 무용했는데, 성장을 촉진할만한 동물 형 권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혹시 드래곤한테도 적용이 되려나?’
그러고 보니 곧 서은하의 드래곤 알이 부화할 것이었다. 그런데 드래곤의 성장은 상당히 오래 걸리는 편이기에 전력화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는데, 이걸 사용한다면…….
'……단숨에 성체가 되진 않겠지만,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확연하게 줄일 수 있을 거다.’
이어서 두 번째로 영웅 등급의 목걸이를 얻었는데, 정령 친화력을 늘려주는 옵션이었다.
이는 정령술사인 김세희에게 알맞은 아이템이기에 이현욱은 그녀에게 그걸 내밀었다.
"자, 이건 김 팀장 가지세요.”
"와…… 영웅 등급이라니……."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웬 검은 천 주머니 안에 담긴, 주먹만 한 수정 구슬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고독의 방(특수)
- 효과 : 알 수 없음
‘이건…… 포켓 스페이스잖아?’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건 함부로 열면 위험하다는 건 자명했다.
앞서서 다크 엘프 드루이드들이 포켓 스페이스를 열어서 몬스터를 꺼내지 않았던가?
‘물론 그런 건 아닐 테고 보상의 일종일 텐데, 일단은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 무렵, 서쪽 하늘에서 맞붙을 듯한 두 회오리 역시 점차 멎고 있었다.
아마도 정령왕의 딸이 제때 도착해서, 제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듯했다.
‘그럼 이제 생색 좀 내러 가볼까?’
아무리 그래도 제 딸을 구해준 사람을 문전박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정령왕 퀘스트의 전개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협상하면 더 많은 히든 아이템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
그 시각, 위그드라실 도심의 지하 깊은 곳 어딘가…….
복잡하게 뒤엉킨 축축한 통로를 따라서 몇 개의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빌런, 마리오 리마와 그 부하들, 그리고 몇 명의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런데 곧 막다른 길을 마주하게 되었고, 마리오 리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리우쉬, 이것 좀 봐. 꽤 큰 놈인데, 이러면 거의 다 왔다는 뜻 맞지?”
그의 물음에 다리우쉬라고 불린 남자가 앞으로 나와서 막다른 길을 살폈다.
"예, 이건 중심부 뿌리가 확실합니다. 예, 다 왔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벽이 아니라 거대한 뿌리였다. 그리고 이들이 밟고 있는 것도 뿌리, 벽과 천장도 뿌리…… 그래, 이 공간 전체가 거대한 뿌리로 만들어진 미로였다.
"이제 이 뿌리만 움직이면…… 드래곤의 감옥이 나타날 겁니다.”
어디선가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무려 드래곤…… 그런 존재를 마주하러 간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마리오 리마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가 준비한 메인 이벤트, 니드호그를 꺼내 놓으면, 놈들이 꽤 감동할 거야. 으흐흐一”
니드호그, 그런 이름의 드래곤이 위그드라실의 지하부 ‘뿌리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한 정보를 입수한 뒤, 빌런들은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해방할 계획을 짜왔다.
"좋아, 내가 3개월 동안 공을 들인 ‘해킹’ 작전은 이걸로 완전 대성공이다.”
수십 명의 나무의 정령술사를 동원, 위그드라실의 잔뿌리부터 ‘교감’을 시도하여 길들인다.
본디, 도널드 해리스의 통제하에 감시되는 위그드라실이지만, 가장자리에는 그의 권능이 잘 미치지 않기에 신중하게만 작업한다면 ‘해킹’하듯이 뿌리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뿌리를 조금씩 움직여서 길을 만든 결과, 숨겨져 있는 ‘뿌리 감옥’에 도달했다.
마치 숟가락으로 땅을 파서 감옥을 탈출하듯 아주아주 긴 시간이 걸린 침투 작전이었다.
"자, 빨리 시작해! 이 순간을 위해서 정령왕을 자극한 것이니까, 다음 기회는 없어!”
정령왕의 딸을 납치하여 정령왕을 자극한 것도 사실은 세계수 관리자一도널드 해리스의 눈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언제나 위그드라실에 은거하는 그가 밖으로 나가서 거대한 도전을 마주하게 하여, 잔뿌리 안으로 파고드는 은밀한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혹시나 그 노인네가 정령왕이랑 오해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를 눈치챌 거야.”
그렇게, 나무의 정령술사들이 마지막 뿌리에 손을 얹고 ‘감응’과 ‘통제’를 시작했다.
이내 뿌리가 꿈틀거리더니, 마치 자동문처럼 천천히 열리며 거대한 동공이 드러났다.
"후…… 좋아, 간다.”
마리오 리마가 숨을 들이쉰 뒤, 그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 주의! 당신은 금기의 공간 ‘뿌리 감옥’에 입장하셨습니다.
그 순간, 마리오 리마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고, 모두가 우뚝 멈춰섰다.
“……쉿一 모두 불을 끈다.”
모든 불빛이 사라졌고, 그들의 억눌러진 숨소리만이 거대한 어둠 속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갔다. 그에 답신하듯, 저 어둠 깊은 곳에서 부터 웬 무거운 숨소리가 흘러 나왔는데 …….
그一르一르一르——
마치 거대한 기계가 시동하는 듯한 육중한 울림…… 온 세상이 나지막이 뒤흔들렸다.
「……인간, 이 나약하고 간악한 기생충들이 어찌하여 짐의 눈앞에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모두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저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압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를 예상하고 ‘정신 방벽’을 둘렀음에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윽!"
“컥!”
드래곤 피어, 그 원초적인 공포감이 머릿속을 파고들자 모든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미친, 진짜 엄청난 괴물이다.’
심지어 81레벨의 마리오 리마마저도 숨이 턱 막히고 무릎이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쿵一
그것이 몸을 일으켜서 한 걸음 다가오자 지축이 흔들렸고, 이어서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어둠 속, 그보다 더 어두운 색감을 지닌 존재가 시야 전반을 채운다. 한 줌의 빛조차 없기에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기묘한 무게감…… 그것이 드래곤이었다.
마리오 리마는 앞으로 걸어 나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어둠 속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아, 위대한 존재이시여一 저희는 진정한 왕의 재림을 염원하는 이들이옵니다.”
그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성격이 콧대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초장부터 오늘날의 감성에는 맞지 많은 과한 경어체를 사용하여, 니드호그의 비위를 맞췄다.
"그리하여 이 간악한 세계수의 관리자, 놈의 눈을 멀게 한 뒤 이렇게 직접 찾아뵙나이다!”
「썩 듣기 좋은 말이고, 썩 맡기 좋은 냄새로다. 그 뜻은…… 문이 열렸다는 것이니一」
구멍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느끼며, 니드호그는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지옥 같은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는 순간이 당도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달리 말해서 아주 기분이 좋아진 상태이므로, 마리오 리마는 대범하게 요구사항을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저희가 왕의 재림에 감히 공헌하고자 오랜 시간 걸쳐 만든 문이옵니다. 그리하여 감히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 세계수의 관리자를 처단하여주시옵소서!”
이에 니드호그가 작게 웃었다. 하지만 원체 큰 몸이기에 그 웃음만으로도 지축이 흔들렸다.
「한심하도다, 인간이여…….」
"예?”
「내 오랜 숙명이 바로 그것인데, 어찌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가?」
"아一"
「곧 지상이 불에 탈 것이니, 재의 산이 쌓였을 때, 너는 내게 더 큰 소원을 말하라一」
"아, 망극합니다!”
「다만, 너희가 나에게 받쳐야 할 것이 있으니…… 너는 거절하지 말아라一」
"에, 왕이시여, 말씀하십시오!”
「나는 죽음 마법을 다루는 존재, 나의 힘은 죽음에서 나온다.」
니드호그(Nidhogg), 북유럽 신화 속 죽은 자의 나라 니플헤임의 드래곤으로,
평소에 시체를 먹고 살며 '라그나로크’ 때 죽은 자들을 태우고 날아다닌다고 한다.
그 설정을 기반으로 하여, 눈앞의 니드호그는 ‘죽음’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이 몸이 오랜 기간 역겨운 힘 아래에서 긴 잠을 청했더니, 기력이 쇠하였도다.」
이 ‘뿌리 감옥’ 바로 위에 지어져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물인 ‘세인트 돔’ 그것이 위그드라실에 지어진 진짜 이유는 사실, 니드호그라는 죽음의 드래곤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도널드 해리스가 위그드라실의 힘을 빌려도 억누르기 힘든 이 괴물을 오랜 기간 붙잡아 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강력한 성물이 니드호그의 힘을 약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풀려나기만 한다면, 세인트 돔도 통째로 날려버릴 만한 존재다.’
이 거대한 괴물을 구속하는 잠금장치가 단 하나라도 흐트러지는 순간, 괴물은 날뛰게 된다.
「내 굳은 날개를 펴기 위해서는 ‘죽음’을 취해야 한다.」
"어…… 그렇다면…… 여기 이 신선한 생명을 취하셔도 좋습니다!”
그 말에, 마리오 리마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져나갔다.
"예? 부협회장님, 그게 무슨……."
하지만 그들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니드호그의 눈이 번뜩였다. 마법이었다.
"끄아아아—”
"으아아아—”
11명의 플레이어, 12명의 다크 엘프의 몸이 허공으로 뜨더니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으적一 으적一
그렇게 잠깐의 식사가 이루어졌고, 니드호그가 만족스러운 숨소리를 내며 날개를 펼쳤다.
훙一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돌풍이 일며, 마리오 리마는 바닥을 더 바짝 엎드려야만 했다.
「……이제 너는 왕의 비행을 목도 하여라一」
"와, 왕이시여, 그 전에 한 가지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말에, 니드호그의 눈빛이 언뜻 언짢음이 담겼다. 이제 막 날아오르던 참이었다.
「……감히, 장고한 시간 끝에 시작되려는 짐의 비행을 지연시킬 만큼 중대한 일이겠지?」
그런데, 마리오 리마는 아직 할 말이 있는지 벌떡 일어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게…… 밖에,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습니다. 좀, 성가신 놈이지 않겠습니까?”
드래곤 슬레이어, 그 말에 니드호그가 날개를 접고는 고개를 낮추며 물었다.
「위대한 드래곤의 숨을 끊은 인간이라니一 그 말이 진실인가?」
스틸레인, 그가 얼마 전에 아지 다하카를 살해하고 ‘드래곤 슬레이어’ 업적을 쌓았다.
"예, 정확히는 아지 다하카라는 블랙 드래곤으로, 얼마 전에 그놈에게 시해당했습니다!”
「흠一 그렇다면 그 인간은 지금까지 몇의 드래곤을 해하였는지, 그대는 아는가?」
"어, 그게…… 단 하나입니다. 예, 단 하나뿐입니다!”
「그렇다면…… 드래곤을 쓰러뜨린 일은 요행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크도다.」
“……예?”
「걱정할 필요 없도다, 나약한 인간이여一 드래곤 슬레이어, 그 잡스러운 힘에도 단계가 있으니, 고작 한 번의 드래곤 살해 경험자는 감히 짐의 날개를 접게 할 수는 없으니라一!」
니드호그는 기고만장함을 숨기지 않고는, 그 육중한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와 동시에 마리오 리마 역시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 강제로 붕 떠올랐다.
“어一어一”
직후, 눈 깜짝할 사이에 열린 뿌리 통로를 통과하더니, 어느 지면에서 지면을 들이받았다.
콰一드一드一드——!
그 위에 서 있던 십여 층짜리 빌딩을 몸으로 허물고 치솟아, 날개를 펼치는 니드호그…….
“헉!”
단 몇 초 만에 엄청난 거리를 주파했기에, 마리오 리마는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눈 앞에 펼쳐진 위그드라실 도심의 야경…….
그 장대한 광경을 내려다보며 81m의 블랙 드래곤, 니드호그가 콧바람을 뿜었다.
그런데…….
「……네놈, 짐을 능멸한 것이냐? 어찌 내게 거짓을 고했는가?」
이상하게도, 니드호그가 어딘가 언짢은 기색을 풀풀 풍겼다.
그리고 그 존재의 보석 같은 눈동자가 약간 흔들린 듯했다.
그건 진한 분노이자, 그 존재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당혹감이었다.
"예? 와, 왕이시여一 제가 어떤 거짓을 고했다는 건지……."
「짐이 느끼기에 이곳에는 드래곤의 피를 머금은 무기가…… 셋이나 있다.」
"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출현한 드래곤이 그렇지 않은데……."
마리오 리마는 니드호그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 세계수의 가지 근처에 떠 있는 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수백 개의 무기를 에두른 채 니드호그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