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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58화 (158/221)

158화.  < 슬럼가, 정령왕의 딸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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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드라실의 거리를 걷던 이현욱은 다소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 ……정령왕의 딸, 확보 완료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 다크 엘프들과 함께 있던 웬 플레이어들이었다.

아마도 빌런 측의 끄나풀들로 다크 엘프들의 침투를 돕고 있는 놈들일 것이었다.

‘그런데 정령왕의 딸을 확보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쉽게 생각하면 정령왕의 딸을 납치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저쪽에서도 정령왕의 존재를 알고, 이용하려는 듯했는데…….

'……설마, 정령왕을 폭주하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인간들이 자신의 딸을 납치하고 협박한다면, 가만히 있을 정령왕이 아니었다.

그걸 이용해서 위그드라실을 안팎으로 뒤흔들려는 작전이 진행 중인 것이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진격해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이런 작당을 벌일 줄이야.......'

다크 엘프 군단, 티타노마키아, 정령왕의 폭주…….

그 삼중고가 겹친다면, 이현욱이라고 할지라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 음모를 미연에 눈치챈 건 정말 다행이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우선은 정령왕의 딸이 어디에 잡혀 있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인데…….'

상대의 손에 인질이 있는 한,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인질이, 정령왕의 딸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이현욱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크 엘프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 여기는 올빼미,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 목격자가 있다고 합니다.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정령왕의 딸을 확보할 때, 룸메이트로 보이는 여자를 작전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 젠장…… 그래서 어떻게 됐어?

- 놓쳐서, 현재 제2팀이 긴급 추적 중입니다. 금방 찾아내서 제거하겠습니다.

이 검은 음모에, 파고 들어가 틈을 찾아냈다.

***

차드 공화국의 최대 도시 ‘위그드라실’은 현시점 상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다.

“하—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할까?”

그곳에 거주하는 16레벨의 마법사 플레이어, 잭 해밀턴은 맥주를 마시며 푸념했다.

으레 발전한 도심에는 늘 ‘슬럼가’가 있듯이, 이곳 위그드라실에도 빈민촌이 존재했다.

이 찬란한 도시의 위상이 커질 무렵, 세계 각지에서 하급 플레이어 노동자들이 속속히 몰려왔다. 그들은 일명 ‘축복 권외 지역’이라는 불리는, 세계수와 거리가 멀어서 마나 농도가 옅은, 큰 메리트 없는 지역에 모여 살기 시작하여 ‘룻렛 타운’이라는 빈민촌을 형성했다. 이제 갓 20살이 된 잭 역시 룻렛 타운의 주민으로서, 마나 물약 공장 노동자 신분이었다.

"처음에는 꿈과 희망에 차 있었는데…… 형, 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푸념했고,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던 남자, 맥스 로버트가 쯧쯧 혀를 찼다.

"야, 징징거리지 말고 일단 일이나 열심히 해. 그리고 이번에도 잘리면 그땐 나도 모른다.”

"형, 그건 걱정하지 마. 형이 소개해준 일자리인데 진짜 죽을 각오로 할 거야.”

"그래, 제발 좀…… 그리고 돈 좀 벌어서 장비 맞추면, 우리 길드에 찔러 줄 테니까—”

"—오! 진짜지? 나중에 두말하기 없기다! 나이스, 나도 이제는 진짜 열심히 살 거야!”

고모 집에 얹혀살며 핍박받다가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뛰쳐나온 지 3년째, 그는 별다른 재능은 없지만, 언젠가 어엿한 길드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사냥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쾅! 쾅!

“……응? 이거 무슨 소리야?”

이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잭, 이 시간에 누구 찾아올 손님이 있냐?”

"어…… 형 말고는 전혀 없는데?”

"이 야심한 시간에 누구야? 여자 생긴 건 아니지?”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니야.”

쾅! 쾅!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거칠다. 그리고 이 시간에 찾아올 방문자도 없었다.

"잭? 어떤 여자인지는 몰라도…… 화가 많이 났나 본데?”

그는 바닥에 벗어 놓았던 겉옷을 걸치고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는 한편,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마나를 담았다.

여느 슬럼가가 그렇듯이 이곳의 치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그런데.......

"—잭! 잭 ! 나야!”

익숙한 목소리였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철컥— 잭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문밖에 울상이 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한나, 무슨 일이야?”

한나 테이트, 그녀는 잭이 이 룻렛 타운에서 사귄, 친하게 지내는 또래 친구였다.

"재, 잭……."

그런데 그녀가 무슨 일인지 서럽게 훌쩍이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자, 일단 들어와.”

잭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고, 그녀를 방안으로 들여보낸 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싸구려 콘크리트로 지어진 저층 아파트촌…… 저 멀리 위그드라실의 불빛으로 어렴풋이 거두어진 옅은 어둠…… 룻렛 타운의 밤거리는 삭막하고 으스스했다.

'누가, 있나?’

저 개미굴 같은 골목 안에서 온갖 범죄가 일어난다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한나가 무슨 일은 당한 듯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어, 한나잖아? 야야, 이 밤중에 뭐야? 너희 혹시……."

둘 사이를 의심 어린 눈으로 보던 매스는 한나의 얼굴을 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 얼굴이 왜 그래? 무, 무슨 일이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음 섞인 헐떡임을 토해냈다. 급히 달려온 듯했다.

"잭…… 제, 제인이……."

제인이라면, 얼마전에 물약공장에서 만나서 한나와 함께 살게 된 여자의 이름이었다.

어디에서 온 지는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게 영 수상쩍었으나, 녹색 빛을 띠는 머리칼에다가 보석처럼 빛나는 눈망울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움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응? 걔한테 무슨 일 난 거야?”

"제인이…… 나, 납치당했어……."

"—뭐? 지금 뭐라고 했어?”

그녀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던 잭의 얼굴에 쩍— 하고 균열이 일어났다.

"하, 한나, 진정하고 다시 한번 말해 봐. 제인이 어떻게 됐다고?”

맥스가 미지근한 물을 내밀었고, 그걸 마신 한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잠깐 식료품점에 간 사이에…… 남자들이 몰려와서……."

"뭐? 누, 누가 제인한테 그런 짓을 해? 그동안 찾아왔던 사람 있었어?”

"그건 모르겠어. 그런데…… 그 남자들이 나를 보고 쫓아 왔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잭, 이거…… 니콜이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그 사태, 아니야?"

또 새로운 이름이 나왔다.

니콜…… 그녀는, 역시나 물약 공장에 다니는 또래였다.

하지만 겨우 3일 나온 뒤, 무단결근하여 잘리고 말았다.

잭은, 어딘가 이상하고 기묘했던 녀석으로 기억했다.

어쨌든, 그 며칠 사이에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예언, 말하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미래를 본다고 했었다.

"응, 걔가 제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낯선 사람이 구해준다고—”

그때, 맥스가 한나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 막았다.

“—쉿, 조용히 해 봐.”

그는 사수 계열 플레이어였기에,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저벅— 저벅—

정말로, 문밖에서 묵직한 울림이 다가오고 있었다. 싸구려 콘크리트만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방음 기능이 전혀 없었기에 그 무법적인 발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와 신경을 건드렸다.

저벅— 저벅—

또한, 맥스는 밖의 대화 소리를 얼핏 들을 수 있었는데…….

“……젠장, 저놈들이 문을 뜯고 들어올 거야.”

맥스가 속삭였고, 잭과 한나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혀, 형, 내가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어!”

기껏해야 30m 밖으로 이동할 수 있겠지만, 이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잭의 레벨은 고작 16이기에, 텔레포트 마법 시전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맥스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고 판단했고,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해!”

“—입 다물고, 빨리 그거 시전이나 해!”

맥스는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한 뒤 벽에 세워둔 자신의 무기—석궁을 집어 들었다.

철컥—

그가 석궁을 들어 올리는 그 순간—

쾅—!

폭음과 함께, 얇은 철문이 으스러지고 검은 양복을 입은 거구가 치고 들어 왔다.

"누, 누구냐!”

픽!

맥스가 반사적으로 볼트를 쏘았으나, 거구는 팔뚝을 들어 올려서 손쉽게 쳐내버렸다.

"젠장— 이것도 한 번 막아 봐!”

맥스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석궁에다가 마법을 걸었고, 무형의 마법 화살이 뿜어졌다.

쉭! 쉭! 쉭! 쉭!

하지만…….

저벅— 저벅—

그 거구의 몸에 둘러진 반투명한 마나 실드에, 마법 화살이 닿는 순간 죄다 증발했다.

"그게, 다냐?”

그가 손을 뻗어서 맥스의 석궁을 쳐낸 뒤, 반대 손으로 맥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혀, 형! 안 돼!”

"빠, 빨리, 도망—.”

우득—

그의 목이, 직각으로 돌아갔다.

"안 돼!”

그 순간, 잭이 시전한 텔레포트 마법이 완성되면서 바닥의 마법진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웅——

그와 동시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더니, 이내 두 사람은 아파트 뒤쪽 도로에 서 있었다.

"젠장, 형……."

그를 유독 잘 챙겨줬던 동네 형, 맥스 로버트…….

그러나 분노나 슬퍼 따위를 느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 어서 가자!”

고작 20m의 거리를 이동했을 뿐이니, 저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금방 추적해올 것이었다.

"그 자식들이 단거리 텔레포트 썼다!”

"젠장, 빨리 흩어져서 찾아!”

이곳은 치안이 완비되지 않은 곳이었기에 일부 중소 길드가 자경단을 자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놈들도 믿을 수 없다는 건, 룻렛 타운 생활을 몇 달만 해봐도 알 수 있었다.

괜히 자경단을 찾아갔다가는, 오히려 저 괴한들에게 그대로 넘겨져 버릴 가능성이 컸다.

"허— 헉— 우, 우리 이제 어떡해?”

"우선은, 한스 아저씨의 가게로 가자!”

이 지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남자라면, 단연 한스 커투어였다.

그는 한때 유능한 전투 계열 플레이어였는데, 나이가 들어서 길드 생활을 그만둔 뒤 이 룻렛 타운에 정착했다. 그 이유는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라는 게, 행간의 소문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그의 인품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맥스 형이 그렇게 당했지만, 한스 아저씨는 무려 46레벨의 전사 계열 플레이어니까……."

즉, 아무리 갱단이나 자경단이라고 해도 그는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한스의 잡화 상점을 향해서 달려갔다.

이내 회색 골목 저 끝에 홀로 빛을 바라고 있는 상점 하나가 나타났다.

"헉— 헉— 거의 다 왔어, 힘내!”

룻렛 타운에서 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할 수 있는 배짱은 한스 뿐이었다.

짤랑—

그들은 거의 몸통박치기를 하듯,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아, 아저씨—!”

카운터, 입에 시가를 문 채 현금을 세고 있던 거구의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잭, 누구 짓이냐?”

그는 대번에 이 젊은 두 남녀가 누군가에게 위협받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모, 모르겠어요. 우리 집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맥스 형을…… 죽였어요.”

그 말에 한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이곳 룻렛 타운이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라지만,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사람을 죽인다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잭, 한나를 데리고 저기, 뒤에 창고에 숨거라.”

“……만약, 그 자식들이 오면 저도 도울게요.”

"잭, 이 애송이야. 너는 아직 도움이 안 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웬 골프 가방을 카운터 위에 올렸다.

그 안에서 끄집어낸 건 다름 아닌 양손 검이었다.

승—

그는 그 검을 살짝 뽑았다가 다시 넣고, 발아래에다가 세워두었다.

"어서 창고로 가라, 너희가 그놈들을 따돌렸다고 생각하냐?”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한스 아저씨, 죄송해요.”

살기 위해서 여기로 달려왔으나, 그건 한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친 셈이었다.

"죄송하면, 빨리 공략 길드에 취업해서 주말 봉사 활동에나 나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어 보였고, 잭도 저도 모르게 웃었다.

역시나 한스는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그래, 아저씨라면, 우리를 지켜줄 거야.’

잭과 한나는 창고로 들어갔고, 창고의 문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나 있었다.

그곳을 통해 상점 안쪽을 제한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짤랑—

잠시 후, 차임벨이 울리며 무법적인 발소리들이 치고 들어왔다.

저벅— 저벅—

한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누가 들어온 거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물건 가판대 때문에 입구와 카운트 쪽이 보이지 않았다.

"잘 안 보여……."

그래도 문에 귀를 대면, 대화 소리만큼은 어느 정도 들렸다.

"미안하지만, 오늘 장사는 끝나서 막 문을 닫으려던 참—”

"아니, 뭘 사러 온 건 아니고, 우리는 지역 자경단입니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 아닌데, 정말 자경단원이오?”

한스가 공격적으로 물었고, 저쪽에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이쪽으로 젊은 남녀 둘이 지나갔을 텐데, 못 봤습니까?”

그건 정중한 물음이 아니었고, 노골적인 적의가 담겨 있었다.

“글쎄, 나는 못 봤소.”

한스의 대답에 , 피식하는 냉소가 들렸다.

"하, 지랄하고 있군……."

"......."

"여기로 들어오는 걸, 다 봤다.”

쾅!

그 순간,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큭—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스가 고성을 내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

이어지는 충돌음, 몸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아니, 결투였다.

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벌이는 목숨을 건 승부…….

그 승부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노인네, 왕년에 힘 좀 썼나 본데?”

그 뒤로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한스마저 당하고 만 것이었다.

저벅— 저벅—

그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창고에는, 뒷문이 없었다.

‘젠장, 텔레포트 마법은 쿨타임인데, 이제 어떡하지?’

그는 벌렁 이는 심장과 터져 나오는 숨소리를 억누르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화염구, 모든 마법사가 쓸 수 있는 너무나 기초적인 공격 마법…….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문이 열리는 순간, 그것을 날리는 것뿐이었다.

‘아니, 절대 성공할 리가 없어…… 미친 짓이야.’

무려 46레벨인 한스까지 순식간에 당해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작 16레벨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의 이웃 중 그 누구도, 이 사태를 막아주지 못할 것이었다.

짤랑—

그때. 또 한 번의 차임벨에 다가오던 발소리가 멈춰섰다.

“……응? 당신 뭐야?”

그렇게 물은 건 괴한 중 한 명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들어온 듯했다.

"음, 잡화점에 올 사람이 누구겠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뒤이어서 ‘손님’이라고 말하고는 태연하게 상점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봐, 지금 이 상황이 안 보이나?”

"뭐, 이 동네에서 그런 일이야 흔하잖아?”

"하…… 꽤 재밌는 놈일세, 이거?”

그런 대화가 오고간 뒤, 손님은 창고 가까이에 있는 마나 공구 판매대 앞에 서서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잭은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작은 창문 너머로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 검은 배낭, 검은 워커…… 언뜻 봐서는 여행객 차림새였다.

"이봐, 미안하지만 장사가 끝나버려서 말이야.”

그의 뒤로, 괴한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쪽이 주인인가? 아니면 저기 쓰러진 사람이 주인인가?”

손님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뭐…… 이제는 내가 주인이니까 나가지, 좀?”

"잘됐네, 이것만 사 갈 테니까 계산 좀 해주겠나?”

그가 내민 건 웬 작은 드라이버였다.

그 말에, 대머리의 괴한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손을 휘둘렀다.

탁!

손님이 들고 있던 작은 드라이버를 쳐내버린 것이었다.

"응? 뭘 계산해 달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잖아?”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등 뒤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런 양아치 같은 태도…… 누군지 몰라도 질 나쁜 범죄 조직이 분명했다.

"아니면, 네 목숨값까지 계산 받을 수도 있는—”

그 순간—

쉭— 푹—

괴한의 목덜미에, 드라이버가 날아와 박혔다.

"컥—”

그의 입에서 쉰 소리가 새어 나왔고, 손님은 태연하게 그 드라이버를 뽑았다.

"음, 여기 그대로 있잖아?”

퓩— 소리와 함께 경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고, 그의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거기 너, 종업원인 것 같은데 대신 계산 좀 해주겠나?”

그 순간, 상점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고, 잭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 새끼, 당장 죽여—!”

콰—앙——!

폭음과 함께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가 매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일격에 가판대가 죄다 넘어지고 온갖 물건들이 나동그라졌다.

직후, 양복을 입은 거구가 남자를 향해 코뿔소처럼 달려들었다.

“이—개자식이—감히—!”

그가 바로 맥스를 죽이고, 한스를 쓰러뜨린 장본인이었다.

‘크, 큰일이다!’

한스를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라면, 못해서 60레벨 이상일 것이었다,

‘괜히 또 한 명의 사람을 휘말리게 했잖아…….'

그런데—

뻐—억——!

두 주먹, 거구와 손님의 주먹이 정확히 맞부딪히는 순간—

“칵—!”

비명이 터진 건, 거구 쪽이었다.

쾅!

심지어 거구의 오른쪽 손목 아래가 완전히 잘려서, 날아가 벽에 부딪혔는데…….

쾅—!

마치 볼링공이 날아와 부딪힌 듯, 벽에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어느새 손님의 오른손에는 ‘조갑’이라고 불릴 법한 발톱 무기가 돋아나 있었다.

"끄아아아— 내, 내 손—!”

그 순간, 손님의 오른손이 거구의 턱을 후려쳤고, 그의 입에서 피가 죽— 쏟아졌다.

"이거야 원, 서비스가 영 엉망이군.”

그때, 잭은 보았다.

"내가 좀, 거칠 게 컴플레인하는 편인데……."

그 손님의 허리춤에서 솟아나는 2개의 화살을.......

‘어…… 저거,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어디선가 목격하여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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