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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57화 (157/221)

157화.  < 예상 밖의 전조들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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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거대한 방 안에 혼자 어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금속 통제력을 사방으로 최대한 멀리 뻗었다.

그 대상은 무작위— 인근에 있는 모든 금속을 감지했으나.......

‘……정말로 하나도 없군?’

이 방을 넘어서 이 근처에는 금속이라고는 아주 작은 것조차 없었다.

오로지 신목의 줄기로 이루어진, 위그드라실 안의 독립된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도시 청소기>를 개방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현욱이 금속 이외에 흙이나 돌 같은 건 감지할 수는 없었다만, S등급의 정령술사인 도널드 해리스가 '땅의 정령’을 소환해서 인근의 돌과 흙이 있는지 싹 검토해주었다.

그때, 바람의 정령이 날아와서 먼 거리에 있는 도널드 해리스의 말을 파동으로 자아냈다.

- 흠, 정령 군체라면, 사실 내가 통제해줄 수도 있지만…….

무려 S등급의 정령술사라면 폭주하는 정령 군체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었다.

-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칫 내 권속이 되어버릴 수도 있어서 말이야.

앞서 말했듯, 도널드 해리스는 차드호의 정령계에서 ‘밴’ 처리된 상태였기에,

그와 마나를 공유하는 그의 권속—정령들 역시 정령계에 입장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정말로…… 자네가 그걸 통제할 수 있겠나?

"예, 가능합니다.”

도널드 해리스는 플레이어계 최고의 정령 전문가로서, 우려를 쉽사리 거두지 못했다. 아무리 주변에 땅의 속성을 가진 물질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들 길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 그런데 만에 하나, 자네의 금속 조종 스킬…… 어떤 상황이든 절대로 사용하지 마.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닌 게 ‘강체화’ 같은 스킬을 섣불리 사용했다가는, 그대로 온몸이 갈려 나갈 수도 있었다. 그만큼, 자멸을 각오하고 폭주하는 정령의 ‘속성 지배력’은 최강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정령 친화력’이나 ‘정령 지배력’이 있어야지만 통제할 수 있을 텐데…….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가능한 아이템이 하나 있어서요.”

- 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개입할 테니까, 그건 알아 둬.

"예, 감사합니다.”

이현욱은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웬 나무 상자로 다가갔다.

끼이이—

그 나무 상자를 열자, 웬 큼직한 유리관이 들어 있었다.

'이게 바로 도시 청소기다.’

얼핏 보면 진공관 앰프처럼 생겼는데, 유리관 안에 꽤 복잡한 장치들과 마법 회로들이 뒤엉켜 있었다. 바로 이 안에 수십 마리의 땅의 정령이 ‘군체’ 형태로 갇혀 있는 것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정령 감옥(숙련)

- 효과 : 상태의 정령을 가둘 수 있습니다. (43/50)

‘그 무엇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정령을, 그것도 43마리나 이 작은 통 안에 가둬두다니…….'

저 좁은 곳에 강제로 갇힌 지 몇 년째일 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고, 대부분 이미 미쳐 있을 것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저 43마리는 하나의 존재로 ‘구속’되어서 분리될 수 없었다.

다수로 일반 정령으로 ‘정령왕’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의 실패작인 것이었다.

‘이걸 여는 순간, 분노한 정령들이 나와서 날뛰기 시작할 거다.’

이현욱은 조심스럽게 정령 감옥의 상단부에 있는 뚜껑 형태의 잠금장치를 돌려서 풀었다.

그 순간—

퍼—엉——!

마치 세열 수류탄이 터지듯, 정령 감옥이 통째로 폭발해버렸다.

“큭—!”

이현욱은 수 미터를 날아갔고, 추락의 순간 바닥을 구르며 일어났다.

이현욱으로서도 이걸 열어보는 건 처음이기에, 이런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젠장…… 이렇게 바로 터질 줄은 몰랐는데……."

오른쪽 손아귀가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상기한 이유로 강체화를 발동할 수 없었지만 ‘강골’이나 ‘용력’ 등으로 신체가 대폭 강화되었기에 손이 완전히 날아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고—오—오—오——

정면, 밑바닥만 남은 정령 감옥 안에서부터 검은 기운들이 피어오르며 소용돌이친다.

'그것들이, 나온다.’

「으아아아——!」

「끄아아아——!」

「꺄아아아——!」

아이, 남자, 여자 노인 등 무려 43가지의 목소리들이 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목소리 중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건, 이현욱을 향한 증오의 외침들이었다.

「인간, 인간, 죽여—」

「돌로 찍어서, 흙에 파묻자—」

「으, 여기는 어디야?」

"잠깐만, 일면식도 없는 나를 죽이고 싶다는 거야, 지금?”

이현욱은 양손을 들어 올려서 싸울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래, 인간은, 싹 다 죽인다!」

「간악한 인간들에게 복수한다!」

「아오, 잘 자고 있었는데, 뭐야?」

살기가 담긴 마나의 요동침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이현욱을 에워쌌다.

그러나 이현욱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피식 웃었다.

"그래서…… 무엇으로 어떻게 죽일 건데?”

그 순간, 악다구니를 랩 하듯이 쏟아내던 정령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

그 영혼들이 허공에 뜬 채 천천히 회전하는 게 꼭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었다.

「……어, 없다, 없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돌, 흙, 철이 하나도 없어!」

자신들이 다를 수 있는 특정 ‘속성’의 물질이 조금도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하늘이나 바닷속이 아닌 이상 이런 공간은 존재할 수 없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진한 분노도, 무기력함 앞에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금속 같은 걸 찾고 있다면 이건 어때?”

그때 이현욱의 오른쪽 손목의 각인에서 한 아이템이 현현했다.

시시시시——

「—있다, 저기 있다!」

그건 ‘아이언 골렘의 코어’였다. 그것도 금속인바, 녀석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금속 생성—’

이현욱은 이어서, 그것을 쥔 손아귀에서 금속을 생성했다.

「오오— 인간이 금속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산되는 족족, 정령들이 낚아채 갈 틈도 없이, 곧바로 ‘아이언 골렘’의 코어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105cm에 25.5kg의 아주 작은 아이언 골렘이 탄생했다.

「오, 금속 인형이다!」

「저건 내가 가진다!」

그게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금속이었기에 43마리의 땅의 정령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마치 사막을 횡단한 뒤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갈증에 허덕이는 모습이었다.

- 주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아이언 골렘’의 마스터 권한을 상실합니다!

그렇다. 총 43마리의 땅의 정령이 동시에 ‘아이언 골렘’에게 빙의한 것이었다.

‘좋아, 걸려들었다.’

바로 그때, 이현욱은 왼쪽 각인에서 또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테나의 황금 고삐(영웅)

- 효과

1) 전장의 통제자 : 15분간 최대 권속 수가 대폭 상승합니다. (+50)

2) 영물 사육 : 이 고삐를 몬스터에게 채운다면 ‘권속’으로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인 ‘벨레로폰’이 ‘페가수스’를 길들였을 때 사용했다는 물건이었다.

이현욱은 아직 적응이 덜 된 듯 뒤뚱거리고 있는 작은 아이언 골렘에게 그것을 걸었다.

- 아테나의 황금 고삐로 해당 몬스터의 ‘포획 작업’을 진행합니다. (1단계)

* 해당 몬스터의 모든 능력이 일시적으로 대폭 감소시킵니다. (-30%)

「끄아아— 이거 놓아라—」

녀석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고작 25.5kg짜리 작은 금속 인형일 뿐이었다.

이현욱은 힘으로 찍은 누른 뒤, 고삐를 손에 두 번 감아서 좀 더 단단하게 쥐었다.

- 아테나의 황금 고삐로 해당 몬스터의 ‘포획 작업’을 진행합니다. (1단계)

* 해당 몬스터의 모든 능력이 일시적으로 대폭 감소시킵니다. (-30%)

그리고 이 황금 고삐를 걸고 있는 시간이 길수록, 해당 몬스터의 능력 감소 폭이 커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완전히 제압해서 내 권속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현욱은 강제로 굴복시켜서 권속화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면 정령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거니와, 언제든지 배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 외려 위험했다.

"자, 모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는 게 어때?”

「이이이— 이거 놓아라—!」

「이번에도 또 붙잡혀버렸어…….」

「안 돼, 또 갇히기 싫어!」

"나랑 계약하면, 너희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뭐? 네까짓 게 우리와 계약을 해?」

「너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런데, 좀 들어볼 필요는 있지 않냐?」

"그래 좀 들어봐, 너희의 소원…… 복수잖아?”

「닥쳐—!」

"아무 인간이나 죽이는 게 아니라, 너희를 가둔 그 인간을 죽이는 걸, 내가 도와준다니까?”

그 대목에서 저항이 다소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어, 지금 뭐, 뭐라고?」

이거 아무래도 놈들의 욕망을 제대로 자극한 듯했다.

「지금 뭘 도와줄 수 있다고 한 거냐?」

「아, 답답하네…… 그냥 좀 들어봐!」

이런저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직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현욱은 황금 고삐에 가하는 압력을 조금 푼 뒤, 한껏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기억하고 있지? 정령술사 협회라는 곳, 그리고 블랙 엘리멘탈리스트들……."

여기에서 블랙 엘리멘탈리스트란, 정령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노예처럼 다루는 이들을 뜻했다. 바로 그런 성향을 지닌 놈들이, 이 43마리의 정령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한 것이었다.

‘현직 정령술사 협회의 부협회장, 그리고 훗날 <블랙 도어>의 수장이 되는 여자…….'

이현욱으로서도 언젠가 처리해야만 하는, 핵심 빌런 중 한 명이었다.

「기억, 난다, 그 나쁜 여자—!」

「그 자식들을 죽여야만 해…….」

강제로 포획을 당했든 아니면 회유를 당했든 이들은 자신들의 원수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현욱은 바로 그 지점, 분노—복수라는 가장 강렬한 욕구를 자극하여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래, 내가 그놈들을 죽일 기회를 마련해준다고,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한다.”

「그게 …… 저, 정말인가?」

「안 돼, 함부로 믿지 마!」

「하지만 너무 복수하고 싶어!」

"그리고 그 자식들이 가진 정령석을 전부 빼앗아서, 너희가 정령왕이 되는데 일조하겠다.”

인간에게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듯이, 모든 정령에게는 정령왕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네가 얼마나 잘났길래 그렇게 장담하는 거냐!」

「그래, 정령술사도 아닌 놈을 우리 더라 믿으라는 거야?」

"하하— 그래, 그렇지......."

그때 이현욱은 몸에서 금속 생성하여 2kg의 쇠 구슬을 만들었다.

- 아테나의 황금 고삐로 해당 몬스터의 ‘포획 작업’을 진행합니다. (1단계)

* 해당 몬스터의 모든 능력이 일시적으로 대폭 감소시킵니다. (-30%)

「오, 조종할 수 있는 금속이다!」

"너희가 조종할 수 있어?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땅의 정령 군체가 그 금속을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이현욱도 왼손을 뻗었다.

웅——

사방에 힘이 가해지며 허공에서 이리저리 진동하는 쇠 구슬…….

훅— 턱—

하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이현욱의 손바닥 안이었다.

「어, 뭐야!」

이제는 이 녀석들의 힘이 절반이나 감소하고, 분노도 사그라든바,

이현욱의 금속 통제력이 이 녀석들의 속성 통제력을 앞지를 수 있었다.

「헉— 상당한 수준의 금속 통제력이다!」

「뭐야, 우리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그리고 정령이라는 존재들은 자신이 다루는 ‘영역’에 대해 자부심이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땅 속성의 힘겨루기에서 녀석들을 이긴다면,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 나 정도의 힘이라면, 우리 함께 그놈들을 죽일 수 있지 않겠어?”

「솔직히 이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선의를 베푸는 거지?」

「으아아! 의심, 된다, 일단, 죽이자!」

"물론, 그런 걸 공짜로 해줄 수는 없고 너희도 내 일을 도와줘야 해.”

「역시 우리를,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으아아!」

「그놈들도 이렇게 우리를 속였었어, 속으면 안 돼!」

「아오— 시끄러워 ! 그냥 좀 끝까지 좀 들어봐!」

"침착하고, 잘 생각해 봐. 애초에 저 정령 감옥에서 너희를 풀어준 것도 나야.”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내가 그 블랙 엘리멘 탈리스트들을 공격해서 빼앗았겠지?”

「아…… 그런가?」

"물론 너희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두 번도 어렵지 않아.”

이현욱의 말에, 정령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회의(?) 같은 걸 하는 듯했다.

그리고 애당초 이현욱에게 제압까지 당한바, 고민이 길어질 이유는 없는 듯했다.

잠시 후—

「좋아, 결정했어!」

방금까지 폭주하던 녀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108cm짜리 작은 금속 인형이 양팔을 흔들며 말하니까 정말로 꼬마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종전의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 목소리였다.

「우리, 임시 계약을 맺자! 넌 정령술사가 아니라서, 종속 계약은 제약이 많아!」

"후— 아직 말이 통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이제는 내가 대표자로 나와서 얘기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둬!」

그 순간, 이현욱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땅의 정령 군체와 ‘계약’을 맺으시겠습니까? (Y/N)

* 땅의 정령 군체가 당신의 마나를 ‘공유’할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 당신은 정령술사가 아니기에,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령과의 계약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령술사 특성이 아닌 한, 사실상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럴 것이, 플레이어로서도 구태여 잘 맞지도 않은 정령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땅의 정령이라면, 내 능력과 최고의 시너지를 이룰 거다.’

쩌저저저——

이현욱은 아이언 골렘에게서 금속 벗긴 뒤, 코어만을 회수했다.

그런데 그 표면에 기이한 기호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이템 정보가 변경된 거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엘리멘탈 배슬(특수)

- 효과 : 알 수 없음

이현욱은 정령술사가 아니기에, 정령들이 머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이 아이언 골렘의 코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땅의 정령들이 변형을 가한 거다.

"좋아, 이제부터 너희의 이름은…… 마루다.”

마루, 순우리말로 ‘세상’을 뜻하는 말이었다.

「흠…… 너무 별론데? 무슨 의미야, 그거? 다들 구리다고 난리야.」

“……큰 의미는 없다.”

「그리고 네가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계약 조건이야?」

“아니, 그냥 마루로 해.”

직후, 방 한쪽 벽면—줄기들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널드 해리스가 걸어 들어왔다.

"……자네, 혹시 예언자 특성인가?”

그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고, 이현욱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매번 이런 기이한 일을 벌이는 거지?”

"하하— 그렇습니까? 항상 운이 좀 좋네요.’’

"솔직히 자네가 정령 군체를 길들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다소 언짢은 듯 말했다.

하지만 그 표정 너머에 담긴 것은 묘한 경이였다.

“흠—에밀리아가 그토록 칭찬하던 게, 남자한테 빠졌던 것만은 아닌가 보군......."

***

「그러니까, 계약 선금으로 1등급 정령의 돌을 주겠다, 이거지?」

이현욱의 등 뒤, 배낭 안에서 마루가 그렇게 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조금 조용히 좀 있어 봐. 내가 허공에 떠드는 것 같잖아.”

이현욱은 지금 위그드라실의 ‘상업 지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위장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이 온통 눈과 귀인 바, 최대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참나, 계약서에다가 상호 간의 소통 중시라고 적었어야 했나?」

“……너는 정령 감옥에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 멀쩡해?”

「으히히— 이게 바로 미친 모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1등급 정령의 돌은 너희한테 무조건 좋은 거잖아?”

「그렇긴 한데…… 계약 선금치고는 좀 비싼 감이 있잖아?」

'0| 자식, 눈치가 좀 빠른데?’

값비싼 최상 등급의 정령의 돌을 구태여 구해주려는 이유는 어떤 부탁을 위해서였다.

바로 내일, 차드호의 정령계로 진입할 예정이었고, 이 녀석들에게 길잡이를 맡겨야 했다.

‘그때는, 이 녀석의 인도에 모든 걸 맡겨야 하는 만큼 통제 불능이 될 수도 있다.’

혹시나 저 미친 정령들이 딴마음을 품을 수도 있으니, 마음을 붙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은 역시나 돈이었다. 이 사람에게 붙어 있으면 좋은 게 떨어지는구나, 하는…….

"흠, 어쨌든 조금만 조용히 있어 봐.”

이현욱은 차드 공화국의 마법 도시 ‘위그드라실’을 후긴의 시점으로 굽어보고 있었다.

전생에도 이 찬란한 도시를 수차례 방문했지만, 지금만큼 멀쩡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얀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조화되어 청량감을 품은 건물들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이 지역에 처음 왔을 때는, 몇 차례 큰 테러가 발생한 뒤였다.’

그리고 그때는, 위그드라실의 한 축인 성녀도 암살당한 뒤였기에 분위기가 흉흉했다.

‘이때는 사우스 타워가 멀쩡할 때였구나?’

사우스 타워, 그건 서쪽에 있는 마탑의 이름으로써, 꽤 멀리서도 보일 만큼 높았다.

훗날, 저 안에서 세계 마법사 플레이어 포럼이 개최될 때, 빌런이 테러를 감행한다.

「오— 저기 저 정령술사 녀석 잠재력이 꽤 튼실한데?」

마루의 말에, 이현욱은 한쪽 골목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슥한 골목에 웬 노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의 주인은 플레이어였다.

- 플레이어 (LV:34)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세 사람 역시 전부 플레이어였다.

- 플레이어 (LV:29)

- 플레이어 (LV:41)

역시 위그드라실의 거리에 일반인만큼이나 플레이어가 많았다.

아무래도 세계 각지의 플레이어들이 유학이나 여행을 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침공이 시작되면, 전부 도망가겠지…….'

자신과 무관한 재앙에 뛰어들 만큼, 정의로운 플레이어는 몇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이현욱의 시야에 의외의 변수가 하나 포착되었다.

"응?"

이번에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레이어로 ‘폴리모프’한 몬스터였다.

심지어 그것도…….

- 다크 엘프 정령술사 (LV:61)

“……이건 또 뭐야?”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걷고 있고, 차에 타 있고, 음식점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고.......

- 다크 엘프 숲의 전사 (LV:59)

- 다크 엘프 숲의 사냥꾼 (LV:41)

- 다크 엘프 숲의 사냥꾼 (LV:48)

아무래도, 다크 엘프들이 침략에 앞서서 사전답사를 온 듯했다.

‘이러면…… 본의 아니게 꼬리를 밟았군?’

이현욱은 그들의 뒤를 은밀하게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긴을 통하여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결과, 충격적인 한 마디를 포착했다.

- ……정령 왕의 딸, 확보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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