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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56화 (156/221)

156화.  < 예상 밖의 전조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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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지, 흠— 혹시 다크 엘프라고…… 자네는 모르겠지?”

다크 엘프 군단의 유럽 정복…… 그건 훗날 벌어질 빅 이벤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다크 엘프는 유약했다. 그렇기에 독일의 권력자들과 은밀한 우호 관계를 이어가면서 베를린 침식 지역에서 조용히 은거하고 있을 시기였다.

이때의 독일의 권력자들은 다크 엘프에게 귀한 마법 재료 아이템들을 공급받는 대가로써 그들의 존재를 숨겨주었는데, 피를 보지 않고 거대한 몬스터 집단을 통제할 요령이었다. 앞서서 레드 드레이크 무리나 블랙 오크 왕국이 한 나라를 뒤흔드는 사례를 지켜보면서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훗날, 그러한 생각은 오만에 불과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수년간 아무런 피해 없이 발전한 다크 엘프의 군대가 유럽을 한입에 집어삼켰으니…….

하지만 그 모든 건 앞으로 몇 년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벌써, 다크 엘프 군단이 움직인단 말인가?’

앞서서 도널드 해리스가 전해주기를, 자신의 유럽 첩보망에 다크 엘프 군단의 준동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더 자세히 조사하니, 그 목표가 차드 공화국이고, 대륙 간 대규모 포탈 마법이 준비 중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장대한 음모를 누가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역시나 빌런들이 공작을 벌여서, 다크 엘프를 조종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직 다크 엘프 군단이 전쟁 채비를 마치지 않을 때인데, 구태여 지금 전쟁을 일으키려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전 세계에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오히려 공략당하고 말 터— 지금의 다크 엘프 왕국은 블랙 오크 왕국 보다 약하니 말이다.

도널드 해리스의 전령—베드르폴니르가 돌아간 뒤, 이현욱은 고민에 빠졌다.

‘분명, 어떤 확실한 이유가 있기에 과감하게 움직인 걸 거다. 그게 뭐지?’

그런데 그 해답은 의외로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 ……아, 이곳은 오스트리아 빈의 게이트 발생 현장입니다!

오더 타워,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세상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레이드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현욱은 고민에 잠긴 채 그 소리만 듣고 있었다.

- 저, 저기 보이십니까? 1차 분출부터 초대형 몬스터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소식은 세계 각지에서 항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뉴스를 보는 한국인으로서는 별 감흥 없이 지나갈 법했다.

그저 먼 타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쿵— 쿵—

하지만 화면 안을 가득 메운 거인의 모습을 보며 이현욱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설마…….'

그건 건물 5층 정도—약 12m의 크기의 거인이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그 복장이 그리스 병사 복장 같다는 것이었다. 붉은 깃이 달린 코린트식의 청동 투구를 쓰고 있었으며 붉은 망토를 메고 창과 방패를 쥐고 있었다.

그때, 거인이 어딘가를 향해서 철창을 내던졌고—

쾅——! 쾅——! 쾅——!

고딕 양식의 건물 3동을 연달아 꿰뚫리며 무너져내렸다.

보스 몬스터도 아닌, 일개 일반 몬스터 주제에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저러한 형태의 몬스터는, 이현욱이 알기로는 하나뿐이었다.

‘저건…… 티탄 척후병이잖아?’

티탄 척후병, 그건 아무 때나 등장하는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고,

향후 벌어지게 될 <티타노마키아>라는 대재앙의 전조로 볼 수 있었다.

저것들이 세계 곳곳에 등장하다가 유럽에 네임드 티탄들이 출현한다.

즉, 저놈도 지금 이 시기에는 등장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티타노마키아>까지 앞당겨진 거다.’

앞서서 이현욱의 활약 때문인지, 앙그라 마이뉴 군단—아지 다하카도 몇 년이나 일찍 등장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깨끗하게 해결했으니…….

'……그다음 시나리오가 시작되려는 거다.’

그리고 빌런들은 그걸 눈치채고, 그걸 이용하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티타노마키아가 시작되면 온 세상의 전력이 죄다 그 사건에 집중될 테니, 그 시점에 맞춰서 다크 엘프 군단을 차드 공화국으로 진출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차드 공화국을 함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거군?’

빌런의 입장으로 생각해볼 때, 가장 큰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단연 그들의 계획을 수차례 물거품으로 만든 이현욱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통적으로 빌런의 최우선 제거 대상이었던 차드 공화국 소속의 두 거물 ‘세계수의 관리자’ 도널드 해리스와 ‘성녀’ 에밀리아 뮐러이다.

이현욱을 제거하는 일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이현욱 성장의 양분 공급만 해줬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드 공화국 쪽을 노리는 거다.

둘 중에 하나라도 처리해야지만, 놈들의 미래 계획이 완성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이현욱은 놈들의 계획을 빠르게 눈치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생각이었다.

‘으레 과감한 전략은 도박 수다. 그 도박, 내가 쪽박으로 만들어주지…….'

***

이현욱은 도널드 해리스에게 전쟁을 돕겠다고 했고, 그는 흔쾌히 반겼다.

바로 다음 날, 이현욱은 차드 공화국 행을 결정짓고 곧장 출발 준비를 했다.

그곳에서 도널스 해리스, 에밀리아 뮐러와 향후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사실…… 논의보다는 설득이 될 거다.’

이현욱의 머릿속에는 이 사태를 처리할 계획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걸 진행하기 위해서는 도널드 해리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쩌면 그 고집 센 은자를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래도 내가 보여준 게 있으니까, 믿어줄 거다.’

「마스터, 프리드웬의 발진 준비 끝났습니다!」

그때, 탈로스의 보고에 이현욱은 오더 타워에서 비공정 포트로 나갔다.

"사장님, 저희도 준비 다 끝났어요.”

이번 여행에도 역시나, 박준모와 김세희가 함께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왜 가져가는 거예요?”

김세희가 프리드웬의 램프 도어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위험>스티커가 붙은 상자가 하나 실려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정령 폭탄 '도시 청소기’였다.

"그런데 저게 터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장님도 통제할 수 없다면서요.”

저게 열리는 순간 일대의 모든 돌, 흙, 금속을 끌어당겨서 분해해버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유례없는 대형 사고를 일으킬, 위험물 중의 위험물이었다.

"그렇긴 한데, 위그드라실에 도착하면 긴히 쓸 일이 있어서요.”

지난밤, 향후 계획을 짜던 중 저 무시무시한 걸 이용할 방법이 떠올렸다.

잠시 후—

「마스터, 인근 하늘에서 포탈 생성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 도널드 해리스가 직접 우리를 데리러 온 거야.”

오더 타워 옥상에서부터 약 20여 미터 상공, 거대한 양방향 포탈이 열렸다.

이내 그곳에서 도널드 해리스의 권속인 백색 매 ‘베드르폴니르’가 나타났다.

삐이이---!

그 녀석이 하늘에서 한 바퀴 돌더니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현욱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신호하고 있는 듯했다.

"자, 빨리 출발합시다.”

이현욱이 가장 먼저 프리드웬에 올라탔고, 그 뒤로 박준모와 김세희가 따라 들어 왔다. 그리고 조종석에는 언제나 그렇듯 여상민의 분신이 앉아 있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우우우우——

프리드웬이 수식 이륙하여 천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머리 위, 하늘에 열린 포탈 너머로 백색의 신목 ‘위그드라실’의 모습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마치 망원경 구멍으로 먼 거리의 나무를 관찰하는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와— 이렇게 포탈 너머로만 봐도 저 나무, 엄청나게 크네요!”

박준모가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가 직접 ‘위그드라실’로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위그드라실은 오늘날에 가장 안전한 도시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였다.

“헉— 맞다!”

그때, 박준모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사색이 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그러고 보니 저 여권이 없는데, 이러면 불법 입국 아닌가요?”

그 말에 김세희가 혀를 쯧쯧 찼다.

"야, 무려 도널드 해리스가 우리를 직접 데리러 왔는데, 무슨 상관이야?”

"아…… 그런가? 그래도 혹시 제가 길 잃어버리거나, 그러면 어떡하죠?”

그 말은 진심인 듯했고, 이현욱과 김세희가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자, 10초 뒤 포탈 통과합니다!”

어느새 프리드웬의 선수(船首)가 와이트 홀에 근접했고, 그 순간 앞서 날아가던 베드르폴니르가 뒤를 돌더니 프리드웬을 향해 웬 파란 구슬 같은 걸 쏘아 보냈다. 그게 선수에 닿자, 반투명한 막이 선체 전체를 포장하듯 감싸버렸다.

웅—!

"어 …… 방금 그거 뭘 한 거예요?”

"아마도 ‘클로킹’ 마법일 겁니다.”

김세희의 물음에 이현욱이 대답했다.

"아, 우리의 모습을 감춘 거예요?”

"그렇죠. 굳이 노출할 필요는 없잖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스틸레인이 위그드라실 방문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건 절대 좋지 않았다. 세상의 이목이 쏠리게 되면 불필요한 노이즈가 일어나서 피곤을 야기할 테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전략 정보가 될 테니 말이다.

"—포탈 통과합니다!”

그렇게 와이트 홀을 통과하는 순간, 지상의 풍경이 단숨에 뒤바뀌었다.

“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단연 수백 미터 크기의 신목 위그드라실이었다.

"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웬만한 초고층 빌딩보다 두꺼운 백색 줄기가 끝없이 뻗어 나가서 구름마저 돌파하고, 새파란 하늘 위에 그 장대하고 푸르른 가지를 드 =리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먼 곳에서 보면 구름 위에 숲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허— 꼭 도시 하나를 돔으로 덮어둔 것 같아요.”

족히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가지들이 하늘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기에 햇빛이 단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만 말하면 답답한 느낌이겠지만, 세계수의 이파리가 옅은 빛을 내어서 그 ‘그늘’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의 줄기 바로 아랫부분—겉으로 드러난 뿌리 부근은 접근 금지 구역으로 백색 장벽이 쳐져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 바로 성녀, 에밀리아 뮐러가 머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소 ‘세인트 돔’이었다.

이어서 그 주변부로는 계획 도심의 마천루가 정갈하게 늘어서 있었고, 종종 ‘마탑’이라고 불리는 마법 연구소들이 건축물 높이 제한 이상으로 솟아서 마치 등대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멀리 내다보면 교외 지역에 설치된 각종 공장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아니라 신묘한 빛줄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늦게 태어난 도시이자, 가장 마법적인 도시…….

“……<위그드라실>이다.”

실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에, 모두가 넋을 놓고 감상에 빠졌다.

그때, 백색의 매 ‘베드르폴니르’가 프리드웬의 조종실 창문 위로 날아왔다.

탕! 탕!

그리고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쪼더니, 부리를 열었다.

"—뭣들 하고 있나? 이 노인네를 계속 날고 있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더니, 훽 몸을 돌려서 세계수의 그늘 쪽으로 다시 날아가 버렸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그다지 친절한 것 같지 않으니, 빨리 따라가겠습니다.”

여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프리드웬을 발진했고, 이내 그늘로 접어들었다.

"우와…… 마치 한 마리 작은 새가 된 기분이네요.”

위그드라실로 다가가자, 이 거대한 비공정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박준모의 표현대로, 한 마리 새가 되어서 나무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자— 곧 착륙할 것 같으니까 모두 꽉 잡으세요.”

약 3분여를 더 날아간 끝에 한 넓적한 가지 위로 베드르폴니르가 내려앉았다.

그 가지는 활주로처럼 넓어서, 일종의 비공정 포트로 사용되고 있는 듯했다.

우우우우——

프리드웬이 가지 위에 착륙하자, 그 가지의 끝 ‘줄기’에 난 큰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노인, 도널드 해리스가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세인트 돔의 총수, 성녀 에밀리아 뮐러가 서 있었다.

이렇게, 빌런이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

"......선제 타격을 해야 합니다."

이현욱의 말에 차를 따르고 있던 도널드 해리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뭐, 방금 선제 타격이라고 했어요?”

소파에 파묻힌 에밀리아 뮐러가 부스스한 금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어김없이 술에 취한 상태로 딸꾹질하고 있었다.

그래도 중요한 사건 때만큼은 맨정신으로 나와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딸꾹— 내가 술이 덜 깼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탁— 도널드 해리스가 나무 탁자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를 내려놓았다.

- 알 수 없는 힘을 흡수하여 마나 회복 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10%)

그저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마나 회복 속도가 오르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자네가 말하는 선제 타격이라면, 베를린의 녹색 지옥을 치자는 것이겠지?”

"예, 그곳이 다크 엘프의 본거지지 않습니까? 허를 찌르는 겁니다.”

"글쎄, 자네에게 그럴 힘이 있나? 거기는 깊은 지하라서, 자네가 상하이를 폭격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선제 타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겠지?”

"저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해리스 씨와 제가 힘을 합치면 가능할 겁니다.”

그 말에, 도널드 해리스의 얼굴에 옅은 언짢음이 노골적으로 번져나갔다.

‘도널드 해리스는 역시나 위그드라실을 떠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이현욱이 겪은 것처럼, 도널드 해리스 역시 위그드라실을 노리는 음모와 위협을 수도 없이 경험했을 터, 그렇기에 외부로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된 것이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위그드라실의 방비가 대폭 허술해질 테니 말이다.

즉, 이 위그드라실이라는 보물을 누군가 훔쳐갈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는 대답 없이 한참을 차를 음미하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오히려 그 틈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지 않나? 이 세상에 악당이 얼마나 많은데, 외려 기회를 주는 셈이야.”

"예, 저는 그것도 고려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점에서 말입니다……."

이현욱은 잠깐 뜸을 들였고, 두 사람이 이현욱을 빤히 쳐다보았다.

“……차드호에 있는 ‘물의 정령왕’을 회유하죠.”

그 말에 도널드 해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면, 에밀리아 뮐러는 못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지금 뭐— 물의 정령왕이요? 그게 뭐예요?”

이곳에 위그드라실이 탄생하고 일대가 ‘마나 생태계’가 조성되면서 정령들이 차원을 넘어서 이주해왔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의 바로 옆, 차드호에는 강력한 물의 정령들이 자리를 잡는데, 그중에서는 무려 ‘정령왕’이라는 존재도 있었다.

"……그 껄끄러운 놈을,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정령왕의 존재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거야, 해리스 씨가 세계수를 통해서, 앞으로 닥칠 재앙 같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보는 것처럼, 저도 라퓨타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

도널드 해리스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건 좀 곤란할 것 같군, 내가 그놈과 척을 져버려서 말이야.”

이현욱이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언뜻 듣기로는 S등급 정령술사인 도널드 해리스와 정령왕…… 그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로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상호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정령들이 차드호로 이주해온 목적은 위그드라실이라는 엄청난 마나 공급원의 혜택을 받기 위함이었기에 틈만 나면 위그드라실의 뿌리에 들러붙어서 마나를 흡수하곤 했는데, 도널드 해리스의 성격상 그걸 용납할 리가 없었다.

이에 도널드 해리스가 생색을 내다 못해 결국 차드호의 정령들과 유혈사태까지 났다고 했다. 즉, 집 안방을 맡길만한 관계는커녕, 차라리 적에 가까웠다.

"해리스 씨, 통제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를 적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

"차드호의 정령왕은 중립 몬스터, 일명 NPC라서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 껄끄러우시면…… 제가 설득에 나서게 해주시죠.”

그 말에, 도널드 해리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허— 자네가 그 자식을 설득하겠다고? 그 도적 우두머리 같은 놈을 만나는 보고 하는 말인가? 그거, 외골수에다가 제멋대로인 놈이라서 말이 안 통할걸?”

그래, 외골수 둘이 마주 보고 으르렁거렸으니 반목할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외골수는 니즈가 분명한 만큼, 설득하기가 더 쉽다.’

우선 ‘정령왕’이라는 존재는 레이드할 수 있는 보스 몬스터인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NPC였고, 이현욱은 그 ‘협력 루트’ 몇 가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령왕 시나리오에는 정령왕의 딸이라는 핵심 NPC가 존재한다.’

호기심 때문에 인간으로 둔갑하여 인간 세상으로 나온 뒤, 인간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정령과 인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 뻔하디뻔한 캐릭터였다.

그런 그녀를 찾아서 호감도를 쌓는다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 어디에 있는지 모를뿐더러, 관계를 쌓아가는 데 오래 걸린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다소 어려운 차선책으로 갈 수밖에 없을 듯했다.

"해리스 씨, 차드호의 정령왕이라면 이곳을 공격하는 군대를 꽤 오랫동안 막아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쪽에서 원하는 게 조금 과하더라도, 화해하게 장기적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게 위그드라실의 존립에 긍정적일 겁니다.”

이현욱은 그 외에도 몇 가지 근거를 들어서 도널드 해리스를 설득했다.

결국, 도널드 해리스, 이 외골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위그드라실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전쟁 수행에서 ‘선제 타격’의 중요성을 어필하자, 결국은 넘어왔다.

“하— 그래, 자네 말이 옳을 것 같긴 해. 아직 놈들이 전쟁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기습 타격을 하면…… 전쟁 수행 능력을 확실히 낮출 수 있겠군……."

그렇게 인정을 하던 도널드 해리스가 별안간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 정령들과 접촉할 방법이…… 이제는 없어.”

"예?”

"그게 저번에 만났을 때, 세계수 뿌리에서 마나 도둑질을 하길래 내가 좀 거칠게 내쫓았더니…… 큼, 그 이후로 물질계로 통 나오지 않고 있지 뭐야?”

이현욱은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그쪽으로 직접 방문해야겠군요.”

하지만 이번에도 도널드 해리스가 부정적인 말을 내놓았다.

"아니, 그건 안 돼. 그쪽, 정령계는 인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그는 조금은 민망한지 턱을 긁적거리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정령계, 그곳은 일반적인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물질계와 분리된 공간이라서, 일반적인 감각으로는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기묘한 공간이야. 그래서 적 A등급 이상의 정령이 길잡이를 해줘야지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해리스 씨가 안 되는 이유가 있군요?”

"그래, 내가 그 자식들을 내쫓은 만큼 그 자식들도 내 접근을 완전히 차단해 놓은 상태라서, 내 마나 패턴으로는 걔들 정령계로 입장할 수가 없게 됐어.”

흔히 말하는 ‘밴(Ban)’을 당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 들어갈 수 없으니, A등급 정도 되는 길잡이 정령이 필요한데……."

‘김세희도 정령술사지만, 하늬는 아직 A등급에 이르지 못했다.’

A등급이 되려면 플레이어가 85레벨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믿을 수 있는 정령술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이현욱이 준비해둔 게 있었으니

'……도시 청소기를 이용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땅의 정령 군체, 그것들이 정상화다면 A등급일 것이었다.

‘그 녀석들을 길들여서 길잡이로 삼는다.’

하지만 그걸 뜯는 건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 최악의 미친 짓이었다.

강제로 정령 감옥 안에서 가둬둔 것이기 때문에, 여는 순간 미쳐 날뛰며 일대의 모든 돌, 흙, 금속을 분해하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서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돌, 흙, 금속이 없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딱 한 곳 있다.’

그건 바로…… 이곳, 세계수 안이었다.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진 거대한 빌딩…….

‘이 안이라면, 그놈들을 꺼내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곳이라면, 놈들의 행패가 통하지 않으니 진득하게 대화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힘으로 길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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