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대청소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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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스테이지 안, 희망 길드원들은 그 거대한 공동의 끝자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궁지에 몰린 고양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모양새였다.
그 이유는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한 마리의 블랙 드래곤이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움직임 없이 그저 분위기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존재…….
"허…… 드, 드래곤…… 저게 깨어난다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길드원 중 한 명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앞서서 이현욱이 블랙 드래곤을 공략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만, 이런 좁은 곳에서 갑자기 드래곤을 맞닥뜨리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저놈이 드래곤 브레스를 뿜는다면…… 피할 공간이 전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거, 언뜻 봐서는 이미 죽은 것 같습니다?”
옆에서 박준모가 속삭였다. 그의 말처럼 드래곤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현욱의 눈—인사이트 렌즈에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고 있기도 했다.
또 결정적으로는 놈의 등에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는 게 영락없이 죽은 모양새였다.
‘저런 검이 드래곤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신구가 아니라면, 이미 죽은 거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이현욱은 인사이트 렌즈로 그 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뭐야……."
[아이템 정보]
- 이름 : 발뭉 (전설)
- 효과
1) 고통의 굴레 : 수많은 원혼을 품은 검으로, 존재 자체만으로 일대에 ‘저주’를 부여합니다.
* 이 저주를 감내하고 원혼들을 억누를 수 있다면, 검의 진짜 능력이 해금됩니다.
3) 드래곤 슬레이어 : 드래곤을 살해하는 힘으로써, 드래곤의 권능을 ‘일부’ 무시합니다.
발뭉, 게르만족 서사시인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인공, 지크프리트의 애검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속의 ‘그람’과 <니벨룽겐의 반지> 속의 ‘노퉁’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 속 악룡 파프니르를 죽이는, 가장 유명한 드래곤 슬레이어다.’
그렇다면 저 블랙 드래곤이 그 유명한 ‘파프니르’라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만,
이현욱의 기억상, 파프니르는 4년 뒤 호주 멜버른에 출현하여 호주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때, 에드워드 우즈가 이 발뭉을 동원해서 <고유 상성>을 받아서 놈을 공략한다.’
과거에 들어갔던 <노움의 유적지 A3>처럼 ‘히든 스테이지’의 입구는 1개가 아니었다.
비슷한 테마를 가진 다수의 던전이 하나의 히든 스테이지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즉, 전생의 에드워드 우즈가 또 다른 드래곤 미궁에서 이곳의 입구를 찾아낸 듯했다.
그런 면에서 저 이름 모를 드래곤은 발뭉을 위한 데코레이션이자 추가 보상이었다.
‘그나저나 언제 죽은 건지는 몰라도, 진짜 그냥 자는 것처럼 말끔한 모습인데?’
애당초 드래곤 정도 되는 존재의 시체가 쉽사리 부패 될 리가 없었다.
즉, 아주 멀쩡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바, 재료로서의 가치가 상당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드래곤을 2마리 잡은 셈이잖아?’
지금, 아지 다하카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레이 드워프와 대장장이들이 연구 중이었다.
무려 성체 드래곤인 만큼 수백 개의 ‘드래곤 장비’를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대해서 어떤 전문가는 이현욱이 ‘항공모함을 통째로 노획한 셈’이라고 비유했는데,
성체 드래곤 한 마리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치가 그만큼 천문학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블랙 드래곤의 시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한 길드원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윽!”
그는 고통으로 호소하며 뒷걸음질 치더니, 급하게 프리스트 쪽으로 달려갔다.
마치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이 물을 향해 뛰어가듯 다급한 움직임에, 모두가 멈춰섰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웬 저주가 걸렸어! 이것 좀 풀어줘!”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
난데없이 저주에 걸렸다니…… 이렇다 할 전조도 없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현욱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가는 순간, 그에게도 저주가 부여됐다.
- 주의! 발뭉의 저주 ‘고통의 굴레(1단계)’에 빠졌습니다.
* 일시적으로 모든 치유 효과가 감소합니다. (-10%)
* 일시적으로 신체 곳곳에서 출혈이 발생합니다.
*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감소하여 환각·환청이 발생합니다.
그 외에도, 같은 선상에 서 있었던 다수의 플레이어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현욱, 저 검 보여? 저기에서 저주가 흘러나오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한 건 서은하였다. 그녀는 성기사로서 검에서 풍기는 검은 기운을 감지했다.
"정지—”
이현욱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고 길드원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지?”
눈앞에 드래곤이 있는 만큼, 미지의 현상에 대한 공포심이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은 온몸을 잠식해나가는 반투명한 일렁임을 내려다보다가, 서은하를 돌아보았다.
"서 대위님, 저한테 치유 효과 좀 걸어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저 검을 뽑아보겠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서은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데도 이 정도 저주라면, 저 검을 직접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그 저주를 감내하는 것, 그게 바로 발뭉의 ‘오버 핸디캡’일 것이었다.
"저 검의 소유권을 얻기만 하면, 저는 직접 휘두르지 않아도 다룰 수 있습니다.”
발뭉 역시 금속이므로 이현욱은 저주의 영역에서 떨어진 상태로 검은 ‘통제’할 수 있었다.
앞선 발뭉의 아이템 정보에 따르면 저주를 이겨내면 새로운 스킬이 개방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현욱은 저 저주를 이겨낼 수는 없으니, 그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는 없을 거다.
‘그래도 이런 광역 저주 효과라면, 일종의 생화학 병기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다롭고 기이한 오버 핸디캡이 달린 게, 이현욱으로서는 오히려 호재인 셈이었다.
‘앞으로, 저걸 적진의 한복판에 꽂아 놓고 전투에 돌입하면 꽤 유리할 테니…….'
이현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블랙 드래곤 시체의 꼬리를 밟고 등으로 올라갔는데.......
"큭!"
- 주의! 발뭉의 저주 ‘고통의 굴레(2단계)’에 빠졌습니다.
* 일시적으로 모든 치유 효과가 감소합니다. (-30%)
* 일시적으로 신체 곳곳에서 출혈이 발생합니다.
*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감소하여 환각·환청이 발생합니다.
* 일시적으로 신체의 강도가 감소합니다. (-30%)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저주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진다.
‘이러면 직접 닿거나, 혹은 찔리면…… 엄청나겠군?’
이현욱은 온몸에 강체화를 두른 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뭉의 자루를 움켜쥐는 순간—
- 주의! 발뭉의 저주 ‘고통의 굴레(3단계)’에 빠졌습니다.
* 일시적으로 모든 치유 효과가 감소합니다. (-40%)
* 일시적으로 신체 곳곳에서 '막심한’ 출혈이 발생합니다.
*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대폭’ 감소하여 환각·환청이 발생합니다.
* 일시적으로 신체의 강도가 '대폭’ 감소합니다. (-50%)
* ‘악령의 구속’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20%)
고—오—오—오——
마치 귀신이 걸린 듯, 검은 유령들이 검에서 피어올라서 이현욱의 주변을 에워쌌다.
으흐흐——낄낄낄——캬캬캬——
그것들은 이현욱의 냄새를 맡듯, 가까이 다가와서는 온몸을 칭칭 휘감아댔다.
그럴 때마다 강체화된 피부가 칙— 소리를 나며 산화하고 뼈마디가 마디가 아려왔다.
마치 거대한 아나콘다에게 온몸을 휘감긴 것 같은, 갑갑함과 압박감이 들었다.
‘큭…… 서사시 속에서 수차례 주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저주의 검이라더니…….'
아마도 온갖 원혼들이 깃들어서 이렇게 짙은 저주를 품게 되었다는 설정인 듯했다.
주인조차 잡아먹을 정도로 짙은 저주…… 이걸 이겨내야지만, 발뭉의 힘을 쓸 수 있었다.
- (!) 주의! 당신은 이 저주를 감내할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걸 이겨낼 조건이 없는 듯했는데, 어차피 이겨낼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든 그냥 가지고 가면 된다!’
그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심지어 내출혈이 발생하여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젠장, 이현욱! 저주가 너무 강해! 당장 그만둬!”
서은하는 물론이거니와, 희망 길드의 프리스트들이 달려들어서 힐을 계속 걸어주었다.
이현욱의 몸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으나, 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다.
"크으으——"
그는 이를 악물고, 점차 빠져나가는 힘을 왼손에 집중한 뒤, 그것을 뽑아 들었다.
쩍—!
이내, 드래곤의 가죽에 박혀 있던 검신이 뽑혀 나왔다. 그러자 더욱 짙은 저주가 흘러나오며 이현욱의 팔을 뱀처럼 타고 오르더니, 녹색 손으로 변하여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우득!
"안 돼! 빨리 놔버려, 그러다가 죽어—!”
서은하가 다가오며 고함쳤다. 그녀는 이현욱의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무려 3단계의 저주에 이어서 다수의 악령이 들러붙어서 지속적인 데미지를 넣는 것이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그때, 이현욱의 등 뒤로 AD-2 한 대가 날아왔다.
“큭—!”
그는 발뭉을 힘겹게 들어 올려서, AD-2의 하단부—아공간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웅——
그 순간, 일대를 짓누르고 있던 발뭉의 저주가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치이이이…….
발뭉을 움켜쥐었던 이현욱의 왼쪽 손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현욱, 괜찮아?”
서은하가 가까이 다가와서 마나를 쥐어 짜내어 힘을 걸어주었다.
"예…… 여러분 덕분에 잘 버텨냈습니다.”
여전히 온몸 구석구석이 쑤셨지만, 이현욱은 이 정도는 견뎌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자, 위협은 제거되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수색에 들어갑시다.”
잠깐 멍한 표정이 되었던 희망 길드원들이었지만, 이내 익숙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위기와 갑작스러운 해결…… 희망 길드원들로서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시 후, 넓은 동공의 한쪽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발견했고, 그 안에 무언가 들어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블랙 드래곤의 사리(전설)
- 효과 : 아이템에 '블랙 드래곤의 권능’을 부여합니다.
'이건 산성 속성을 넣을 수 있는 오브다 그것도 무려 전설 등급까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방금 얻은 발뭉에 이걸 부여하면 적합할 듯했다.
‘잠깐만, 그런데 대장장이들이 발뭉을 다룰 수 있을까?’
그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부여되니, 작업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건 알아서 하겠지, 뭐…….'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공돌이들이 잘 해내리라고 믿었다.
"사장님, 그런데 저 녀석, 아무리 봐도 수천 톤은 될 텐데 저걸 어떻게 들고 나가죠?”
이정준이 블랙 드래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현욱도 마침 그걸 고민 중이었다.
무려 67m, 저 육중한 존재를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게 솔직히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역시나 프리드웬을 이용한 라퓨타로의 ‘긴급 복귀’였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 세계와 다른 차원인 ‘던전’이기에 공간 이동 스킬이 제약되었다.
“……우선, 밖으로 끌고 나가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욱은 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금속을 이용하여 와이어를 짜서 블랙 드래곤의 몸을 묶고, 이어서 드래곤을 통째로 올릴 만한 널찍한 철판을 만들어서 튼튼한 바퀴를 여럿 달았다. 이 대형 ‘끌차’가 버텨만 준다면, 리빙 아머들이 어떻게든 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이현욱이 그 작업을 하는 사이에 희망 길드원들은 계단을 철판으로 덮는 작업을 했다.
"후…… 미궁이 전반적으로 층고가 높고 폭도 넓으니까, 충분히 통과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리빙 아머 45기가 ‘끌차’에 와이어 줄을 잡고 끌자…….
쿠구구구——
67m짜리 드래곤을 실은 초대형 강철 끌차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 된다, 돼!”
"와, 이게 되네?”
이어서 이현욱이 끌차 자체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하여 힘을 주자 생각보다 잘 굴러갔다.
‘이게 끝이다. 여기에서 더 얻어갈 건 없다.’
이렇게 미궁 공략은 완벽하게 끝났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테러 대응을 해야 할시간이다.’
***
그 시각, 수원의 한 호텔 VIP 라운지에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하, 우리 이 대표님, 아직도 오락가락하시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응?”
그렇게 말하는 양복 입은 남자는 길드지원협력청 합동작전처장 황연수였고, 그가 마주하고 있는 안경 쓴 중년 남자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최대 길드 <백호>의 마스터 이택수였다.
그리고 백호 길드는 태산 길드가 무너지자 국내 길드 서열 3위에 등극한 꽤 큰 세력이었다.
“하하…… 황 처장, 내가 나이가 들고 혈기가 떨어져서 그런가, 고민이 좀 길어지지 뭐야?”
"아니, 우 실장, 그 인간이 태산 길드 냅다 날리는 꼴 보고도 아직도 긴가민가하세요? 우리 청장님이 대선 승리하시면, 앞으로 길드 하나가 그렇게 공중분해 되는 만행은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이택수는 마른 입술을 핥고는 황연수의 시선을 피했다.
"뭐, 꼭 우리 뜻대로 가시자는 건 아니고, 그냥 우리 청장님께 종종 안부 인사 좀 해주시고 그러지, 청장님이 슬슬 서운해하시고 계십니다. 설마 우 실장님이랑 친하게 지내십니까?"
그 질문에 이택수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에이— 나도 우 실장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 내 뜻 알잖아?”
"아…… 우리 이 대표님, 아직도 우 실장이 무서우시구나? 그래서 그렇구나?”
그 물음에 이택수는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 남자, 황연수가 차기 권력의 핵심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게 플레이어계 중론이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길드지원청장 오태문을 뒤에 엎고 우성문의 자리를 꿰차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정치권의 플레이어가 그 자리를 노렸던가? 결국은…… 초대 실장인 우성문이 십수 년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성문이란, 그런 굳건한 이미지였다.
"큼, 솔직히 우 실장 그 늙은 범의 이빨이 슬슬 흔들린다고 한 게 몇 년 전부터 아닌가? 그런데 이현욱이라는 새끼 범을 어디서 주워오더니 다시 칼춤 추기 시작한 거 아니야? 나, 황 차장을 믿지만, 솔직히…… 내가 달린 식구가 몇이야? 걱정 안 되는 건 거짓말이지......."
그러자 황연수는 낄낄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잘됐네! 그 확신, 오늘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왜?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거야?”
"글쎄요, 대표님, 잠깐 TV 좀 켜 보시죠, 그거 리모컨 있네요.”
그러자 이택수가 신문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 뉴스를 틀었다.
- ……곧 미궁 공략을 마친 이현욱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아, 거기요. 곧 새로운 소식이 나올 겁니다.”
그 말에, 이택수의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됐다.
"황 처장…… 이현욱이 보내려고 판 짠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 모르는 일입니다.”
"아, 그렇지! 그렇고말고, 내가 헛소리가 나왔네?”
황연수의 너스레에 이택수는 제 입을 툭툭 치더니 손사래를 쳤다.
"이 대표님, 세상일이란 게 어떻게 돌아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그리고 아무리 천재라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면 애송이일 뿐이죠.”
이 나라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한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이제 우성문이 아니었다.
바로 저 새파랗게 어린 플레이어가 이 나라를, 어쩌면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그 자식을 끝장내고 그 자식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빼앗을 생각이었다.
***
스틸레인, 그가 마침내 미궁 밖으로 나왔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이현욱 씨, 미궁 공략에 성공하셨습니까?”
"저기요, 딱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현욱을 쫓는 엄청난 숫자의 기자진 사이에서 중절모를 쓴 외신 기자가 빠져나왔다.
“하— 무슨 셔터 누르기가 방아쇠 누르기보다 어렵지? 제니, 청소부들 준비 끝났나?”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의 귀속에 달린 이어폰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300m 밖에 있습니다. 약 3분 후 도착합니다.
이현욱을 카운터 칠 비장의 무기인 '도시 청소기’를 싣고 있는 트럭은 다른 지역에서 대기 하다가 이곳을 돌아오고 있었다. 혹시 모를 감시를 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좋아, 우선은 쓰레기가 날아가지 않게 잘 묶어두는 게 우선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멀찍이 보이는 이현욱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지금, 링크, 시작한다.”
그 순간, 한 여자 기자 한 명이 카메라를 내던지고는 품속에서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이현욱을 향해 완드를 드리우는 순간, 그녀의 왼쪽 손이 통째로 날아갔다.
타— 앙——!
어딘가에 은신한 채 이현욱을 경호 중이던 저격수가 재빠르게 대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 한 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어 명의 기자가 더 움직였고, 이내…….
쩡——!
어디에선가 쏘아진 링크 마법이 이현욱의 머리 위에서 터지며, 냉기가 쏟아져 내렸다.
쩌저저저——!
일순간, 팔달산 일면이 빙하기처럼 얼어붙었다. 그 목표는 단연 이현욱이었다. 그의 모습이 빙벽에 뒤덮이며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을 리가 없었다. 그건 시간 끌기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마나 역장을 친다!”
그 외침에 곳곳에서 위장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앞으로 나서며 완드를 꺼내 들었다.
쩡—쩡—쩡—쩡——!
그들이 쏘아 올린 보라색 빛줄기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더니 서로 뒤엉켰다.
- 해당 지역에 ‘다차원 그물’이 형성됩니다. (남은 시간 : 00:09:59)
다차원 그물, 저 안에서는 공간의 변형—즉 공간 이동 마법이 제한된다.
이현욱은 워낙 신출귀몰하기 때문에, 놈의 탈출을 차단한 것이었다.
"—됐다! 이제 놈은 빠져나갈 수 없다!”
그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는 카메라를 내던졌다.
"청소부들, 이 나라의 가장 큰 곰팡이를 깨끗하게 제거한다!”
그는 그렇게 호기롭게 외치며 품속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내가 놈의 목에 구멍을 낸다.’
그런데…….
"......청소부들, 빨리 시작해!”
"청소부들, 응답해!”
- .......
"이, 이봐! 제니, 왜 말이 없어!”
지금쯤 나서줘야 할 도시 청소기 쪽 팀원들이었건만.......
그때—
웅——
그의 머리 위로 웬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가 애타게 찾던 게, 그곳에 떠올라 있었다.
트럭, 도시 청소기가 들어 있는 트럭이었다.
"응?"
그게 마치 비공정처럼 그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운전석 부분이 알루미늄 포일처럼 구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걸 찾나?”
이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스틸레인의 음성이었다. 그는 허공에 뜬 트럭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꽈직——!
그가 왼손 살짝 움직이자, 운전석 부근이 한층 더 험악하게 우그러졌다.
"음…… 나한테 보내온 택배 같은데, 내가 가져도 되겠지?”
그 순간—
콰—앙——! 콰—앙——!
"—큭!”
웬 SUV 2대, 그것도 완전히 구겨진 SUV 2대가 그의 양옆으로 떨어졌다.
그것들은 도시 청소기가 들어 있는 저 트럭을 호위하고 있던 차들이었다.
그리고 무력화된 이현욱을 끝장내기 위한 암살조가 탑승한 차이기도 했다.
이현욱이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며 중절모를 쓴 남자의 앞에 섰다.
"나도 대청소를 좀 해야겠는데……."
그가 작게 속삭이며 왼손을 움직였고 SUV 2대가 녹아내렸다.
그것이 바닥을 기어 와서, 중절모 남자의 다리에 영겨 붙었다.
“……네가, 어디가 더러운지 좀 알려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