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팔달산, 드래곤 미궁의 비밀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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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갑옷을 입은 6m의 거인,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가 4m짜리 거검을 치켜들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서은하는 너무나 작아 보여서 흡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연상됐다.
놈이 거검을 양손으로 쥐고 휘젓자 그 궤도의 공기가 마치 액체처럼 펑— 하고 터진다.
직후 거검 끝이 지면에 내리꽂혔고,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일어났다.
콰—앙——!
그 목표는 당연하게도 서은하였다. 그녀는 몸을 던져서 단 한 뼘 차이로 죽음을 면했다.
"어어—"
뒤이어서 놈이 거검을 대각선으로 올려치기 했고 그녀는 허리를 뒤로 빼며 피해냈다.
킹!
거검 끄트머리가 그녀의 투구를 긁고 지나갔다. 조금만 각도가 낮았어도 목이 날아갔다.
"허……."
지켜보는 이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슬아슬한 회피가 벌써 몇 번째던가?
“……이, 이거,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김세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어깨 위, 하늬 역시 불안한 듯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이 당장 달려 들어가서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쾅——!
"저 공격…… 허용하면, 언니가 버틸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제대로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현욱은 아주 담담하게 그런 끔찍한 말을 했다.
"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그거야, 당연히 잘 피해야죠.”
이현욱은 그런 뻔하고도 무책임한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었고, 김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보스 레이드의 기본은 ‘주력 무기’에 맞지 않는 거니까요.”
저 거검은 블랙 드래곤 아지 다하카의 ‘드래곤 브레스’와 대칭되는 공격이다. 쉽게 말해서 방어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인 셈으로, 저 공격은 무조건 ‘회피’해내야만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안 되는 거죠?”
"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관여하면 안 됩니다.”
1대1 대결이 무산되면 자격 증명에 실패하고 저 상자 안에 있는 ‘드래곤의 알’을 가져갈 수 없게 된다. 즉, 서은하가 이겨내기를 기도하는 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쾅——!
거검 공세가 계속되었고 어느새 대리석 바닥이 죄다 으스러져서 울퉁불퉁한 돌산처럼 변했다.
쾅—!
10분이 지나도록 그녀는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할 뿐, 단 한 번의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하— 반전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이러다가는 언젠가 공격을 허용하고 말 텐데……."
여기저기에서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들은 이현욱을 슬쩍 바라보았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그의 결정 재고를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총공세가 필요할 듯했다.
하지만 이현욱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직은 밀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네?”
"그저, 충분하게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이현욱은 서은하를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의 서은하를 잘 알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탱커 플레이어였다.
‘서은하는 나를 노리는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침투를 걷어내는 최고의 수호자였다.’
그녀는 마치 축구의 센터백(center back) 포지션처럼, 아주 든든한 핵심 수비수였는데,
단지 적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주는 게 아니라, 적의 공격 전략 자체를 차단해내곤 했었다.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방어력 외에도 수많은 요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적들의 공격 패턴을 분석하고, 그 안의 변수를 감지하고, 전반적인 흐름을 통제한다.’
정보가 없는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방어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방어를 바탕으로 버텨내면서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을 익혀간다.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서 철저히 분석해야지만, 일격을 먹일 ‘틈’을 발견할 수 있다.
"곧 패턴 분석이 끝나고 그때부터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이현욱이 장담하듯 말했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글쎄, 저 여자는 당신이 아니잖아…….'
이 자리의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현욱이 자신감을 표출한 시점은 언제나 승리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현욱이라는 존재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서은하는…… 그들이 보기에는 뛰어나긴 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은 범인(凡人)이었다.
정말로 잘난 사람이라면, 이때까지 AMT 공략 팀장을 하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이현욱 본인이 워낙 잘 났기 때문에 다른 이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이현욱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시점, 서은하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
거듭된 전투로 인해 이리저리 뒤집어 까진 지면, 그 어딘가에 발이 걸리고 만 것이었다.
그 순간, 놈의 오른손 손바닥에서 검은 구멍이 열리더니 무언가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쉬—쉬—쉬—쉬——!
작은 강철 독침들이 머리 위로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서은하는 왼손—아킬레우스의 방패로 들어 올려서 그걸 막아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검의 찌르기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한쪽 눈이 방패 위로 올라와서 빛나고 있었다. 이미 타이밍을 읽은 듯했다.
‘그래, 이미 수차례 거검 공격을 당하면서 저기까지는 이미 분석을 끝낸 거다.’
그녀는 뒷발을 빼며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고, 거검이 방패를 아슬아슬하게 긁고 지나갔다.
카가가가——!
그녀는 그대로 전진, 놈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이제는 근접 상황을 분석할 차례였다.
「이런,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 순간, 놈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는 걸 모두가 눈치챘고, 곳곳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훙——
놈의 오른쪽 발이 충차(衝車)처럼 내뻗어졌다. 서은하는 그 반대쪽으로 굴러서 걷어차이지 않았다. 이어서 몇 차례 더 가까이 접근했고, 그럴 때마다 놈은 밀어내려는 듯 발차기 공격을 했다. 아마도 놈의 안쪽으로 깊게 파고 들어갔을 때의 반응을 끌어내서 확인한 것이다.
「소용—없다—」
한편 그 시점, 이현욱은 서은하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확인했다.
살짝 떠오른 미소, 그리고 조금 더 찌푸려진 눈썹, 그러고 날카로워진 눈동자…….
‘그래, 드디어 스캔이 끝난 건가?’
그때, 그녀가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지듯 달려가며, 오른손의 묠니르를 놈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놈은 거검을 양손으로 쥔 채 크게 휘둘러서, 묠니르를 손쉽게 쳐내버렸다.
텅—!
그 사이에, 서은하는 아무런 견제 없이 놈의 하반신 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저렇게 큰 검을 휘두르는 거인의 빈틈이 하반신이라는 건, 사실 아주 기본적인 이론이다.’
그렇다면 그 하반신을 방어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공략의 핵심이 된다.
그녀는 놈의 몸 안쪽으로 수차례 파고들어 가며 그 방법이 발차기뿐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저 무거운 거검을 휘두르는 순간만큼은 그 발차기가 봉인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무게 중심이 검 끝으로 이동하기에 발을 드는 순간 균형을 잃을 테니…….'
서은하는 바로 그 점을 파악한 뒤, 검격을 유도한 다음 빠르게 치고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제약을 파악하고 이용할 만큼, 그녀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텅——!
그녀가 놈의 뒤쪽 발을 방패로 들이받았고, 놈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런데 그때, 놈이 전혀 다른 패턴의 공격을 시도했다.
「벌레, 같은, 것—」
거검을 과감하게 놓아 버리고는, 서은하를 향해 맨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안 돼—!”
그건 의외의 일격이었다. 그리고 육중한 거검을 포기하자 놈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철퇴와 같은 주먹이, 바닥을 구르며 피하려는 서은하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텅——
“……어?”
그런데, 치명적인 일격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맹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그건.......
'……스틱스강의 축복, 무적이다.’
서은하는 어느새 등에 메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창’을 꺼내 들고 있었고,
그녀의 몸 주변으로 묘한 백색의 기류가 띠처럼 에둘러진 상태였다.
‘단 30초간 무적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은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 30초의 무적 시간을 모두 사용하여 숨을 고를 것인가?
혹은, 이 찰나의 틈을 이용해서 반격을 날릴 것인가?
‘여기에서 무적이라는 안도감에 빠져서 전자를 고르면, 상황은 결국 원점일 뿐이다.’
그녀의 선택은 후자였다. 그 즉시 거리를 좁힌 것이었다.
쩍——
그리고 놈의 턱에 아킬레우스의 창을 박아넣는 데 성공했다.
「큭— 겨우, 이딴 공격으로 자격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물론, 115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죽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데미지였다.
"그 생각, 금방 달라질 거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촤르르 르--
그러자 바닥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백색의 쇠사슬이 생성되어서 놈의 양팔을 묶었다.
일전에 성녀가 밴시를 구속했었던 것과 같은 스킬이었지만, 그 격은 한참 낮았다.
「고작, 이런—」
쩡!
놈은 손쉽게 사슬을 끊었지만, 그 찰나 동안 서은하는 다음 스킬을 시전할 수 있었다.
"홀리 라이트—!”
그녀의 오른손에서 강렬한 백색 빛이 터져 나오며 놈의 얼굴을 끼얹어졌다.
놈은 근본은 드라우그, 즉 언데드였기에 신성 공격에 꽤 취약한 편이었다.
「큭—」
놈은 왼손으로 눈을 가린 채 뒷걸음질 쳤다. 바로 그 틈을 서은하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묠니르의 ‘리터닝’ 기능을 활성화하자, 어디선가 그것이 날아와 손에 안착했다.
턱—
그리고 성스러운 빛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시야를 잃었던 놈은, 그녀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그녀는 묠니르를, 놈의 턱에 박힌 아킬레우스의 창을 향해, 마치 어퍼컷처럼 휘둘렀다.
까—앙——!
그러자 망치로 못을 박듯, 창을 수십 센티는 더 깊숙이 처박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
그건 꽤 치명적인 일격이었고, 놈은 비틀거리더니 기어코 뒤로 넘어가 버렸다.
‘좋아, 지금부터는 서은하의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당겨서 허공에 약 3m짜리 백색의 검을 자아냈다.
"……천상의 검이다.”
성기사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스킬 중 하나로, 여러 명이 함께 시전하면 훨씬 더 크게 만들 수 있었는데, 강화도, 네크로맨서와의 전투 당시 와이트 트리 가드가 선보인 바 있었다.
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무력화된 상대를 해체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크기의 회칼이었다.
뒤로 나자빠진 드레곤 레어 수호자를 향해, 서은하는 무자비하게 ‘천상의 검’을 휘둘렀다.
그 3m의 신성한 칼날이 내리꽂히자, 제아무리 거인일지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퍽——! 퍽——! 퍽——! 퍽——!
살벌할 소리와 함께, 놈의 몸뚱이가 듬성듬성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이내 그녀가 마나를 모두 사용하여, 천상의 검이 증발하는 순간…….
「자격이, 충분하도다…….」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 놈은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파스스— 산화하기 시작했다.
"허……."
한편 희망 길드원들은 이현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와— 진짜로 분석이 끝나니까 한 번에 제압해버렸네……."
"그것도 대단한데, 그걸 예상한 사장님도 참……."
그들은 새삼스럽게 경외감을 느끼며 이현욱과 서은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앞으로 희망 길드—이현욱의 전력이 한층 더 굳건해지리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때, 바닥에 내리꽂아 두었던 ‘알 수 없는 권능의 검’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
서은하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 검을 향해 걸어가서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 축하합니다! 자격을 증명하여 ‘알 수 없는 권능이 담긴 검’의 힘이 개방됩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드래곤 나이트의 검 (전설)
- 효과
1) 용력 : 모든 능력이 향상되며(+30%) 상급 ‘정신 방벽’이 형성됩니다.
2) 동화 : 당신과 연결된 ‘드래곤’이 성장할수록 당신의 능력도 상승합니다.
* 아직 연결된 ‘드래곤’이 없기에 해당 스킬은 비활성화됩니다.
그녀는 검을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하…… 이제, 된 거, 맞지?”
"예, 정말로 완벽했습니다.”
사실 이현욱으로서도 걱정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가 아닌 서은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재목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서은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재능이 출중한 편이었잖아…….'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전생에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저 상자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서은하가 그렇게 말하며 정면의 계단 위, 거대한 상자를 가리켰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현욱도 그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그건, 심장박동이었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이현욱을 바라보다가, 상자를 열었다.
우우우우——
상자 안에는 붉은 천이 깔려있었고 그 위에 웬 파란색의 거대한 알이 놓여 있었다.
"......."
그녀는 다소 부담스러운 얼굴로 그 알을 내려다보았다. 앞서 이현욱이 말한 대로 이 안에서 새끼 드래곤이 태어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을, 서은하가 책임지고 키워내야만 했다.
"하…… 내 인생, 갑자기 꼬이는 기분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서포트 하겠습니다.”
"그래, 이 일에는 네 책임도 있다는 거 명심해.”
이현욱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 이러면 미궁 공략, 성공한 게 맞습니까?”
이정준이 안도감이 어린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벽으로 향했다.
"왜요? 거기에 뭐가 있어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벽일 뿐이었다.
"음, 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이현욱 그 넓은 벽면에서 맨눈으로는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인사이트 렌즈의 스킬 중 하나인 '천리안’을 발휘했다.
- 천리안이 발동하여 시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400%)
그러자 시야가 아주 맑게 개는 게 느껴졌고, 이내 벽에 아주 작은 흠을 발견했다.
‘음, 열쇠 구멍 같은 건가?’
하지만 저 구멍에 알맞은 열쇠 같은 걸 발견한 기억이 없었다.
‘이 벽을 무너뜨려도 될 것 같은데…….'
그러나 벽에는 아무런 ‘방어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
즉, 입장을 위한 까다로운 조건은 따로 없는 듯했다.
하긴, 그저 숨겨져 있는 장소를 발견한 것조차 어려울 테니…….
‘그렇다면…….'
이현욱은 검지 부분을 강체화를 건 다음, 길쭉하게 조형하여 그 홈에 넣었다.
그리고 그 끝부분을 ‘융화’한 뒤 구멍 안쪽의 모양에 따라서 다시 굳혔다.
철컥—
이내, 벽 안쪽 무언가가 딱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상태로 손가락을 돌렸고.......
쿠구구구——
벽이 반으로 갈라지며,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어…… 설마 히든 스테이지에요?”
히든 스테이지, 던전 안에서도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아무래도, 예상 밖의 보물을 얻게 될 것 같군요.”
***
히든 스테이즈의 지하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자,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
- 히든 스테이지 ‘제왕의 비밀 공간 : 드래곤의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
화르르——
계단을 내려가서 바닥을 내리밟자 저 멀리에서 파란 불꽃이 저절로 피어났다.
"어, 무슨 자동 센서라도 달려 있나?”
하지만 그 순간, 모두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드, 드래곤이다!”
블랙 드래곤 아지 다하카, 그것과 닮은 드래곤이 푸른 불빛 속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리안이 활성화된 이현욱의 눈에는, 그것의 등에 박힌 한 자루의 검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