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 팔달산, 드래곤 미궁의 비밀 - 4 >
====================================
"—야! 김강식이, 너 지금 이 높으신 분들 데려다 놓고 뭐하자는 거야!”
정상식 사령관이 꽥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당장이라도 멱살잡이를 할 것처럼 김강석 대령을 노려보았다.
그 옆에, 에드워드 우즈와 황연수 처장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게 대체 뭐냐고, 인마!”
그가 가리킨 건 TV였다. 지금,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여기는 팔달산 미궁 현장입니다. 이현욱, 스틸레인이 현장에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요, 지금 막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이현욱의 공략 팀이 미궁으로 입장했다고 합니다!
저건 어제부터 예견된 상황이었기에,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다.
다만, 앞서 김강석이 말했던 대로 ‘자격자’ 후보인 서은하 대위가 TV에 등장했는데…….
"지, 지금…… 서 대위가 누, 누구를 따라서…… 어디를 들어갔다는 거야!”
그녀가 이현욱과 함께 있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이현욱이 선수를 친 상황이었다.
그녀를 ‘자격자’라고 추정하고 찾아온 이들로서는 황망하기 그지없을 수밖에…….
“……사령관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떤 실수를 한 겁니까?"
"뭐, 인마?”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서 대위는 아주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게 답니다.”
김강석은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이들을 골려주고 싶었고 성공이었다.
에드워드 우즈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으나, 평소와 달리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장면을 쭉 지켜보던 황연수 처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 정 장군님, 생각보다 영 병력 관리를 못 하십니다?”
"아, 아니…… 황 차장님, 그게 아니고……."
미래 권력의 한 마디에 무려 삼성 장군 장군이 벌벌 긴다.
김강석은 그 장면이 꼴사납게 느껴지다 못해 역겨웠다.
“황 차장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장 명령해서 서 대위 데려오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에, 황연수는 콧방귀를 뀌었다.
"시발, 그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그림 개떡이 되잖아요. 하…… 여기 계시는 영국 신사분이 직접 점잖게 찾아왔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예?”
일 순간, 대대장실 안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 뭐, 상관없습니다. 정 장군이 일을 잘 못 하셔도 내가 잘 하니까요.”
"......."
"그리고 대령 나부랭이가 영웅 취급 좀 해줬다고, 너무 건방지네, 이거……."
황연수는 김강석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너, 며칠 못 가서 네 사회생활 태도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그는 의미심장한 귓속말을 하고는 에드워드 우즈를 데리고 대대장실 밖으로 나갔다.
***
그 시각, 이현욱은 미궁 입구의 갈림길에서 좌측 문 앞에 서 있었다.
- 지금 ‘드래곤 레어 폐허(미궁)’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Y/N)
* ‘드래곤 레어 폐허 - 출입 증표’가 1개 소모됩니다. (3장 보유 중)
이처럼 이 미궁 문을 열 수 있는 횟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그 입장권은 아지 다하카를 잡았을 때 보상으로 주어졌었다.
‘그리고 이 미궁, 원래는 여러 번 공략을 시도하게 설계된 걸 거다.’
애당초 마지막 관문에서 힌트를 주니까, 최소한 2개의 출입 증표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단 1장이며 충분하다.’
쿠—구—구—구——!
이내 그 거대한 문이 열리고, 아득한 어둠이 펼쳐지며 스산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와…… 미궁보다는 꼭 왕궁 같습니다?”
박준모의 말처럼, 유럽풍의 저택 복도처럼 화려한 느낌이었다. 다만, 거인국에 온 것처럼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크고 멀었는데 짙은 어둠까지 깔려 있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어어어—
그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숨소리와 함께, 저 멀리 파란 안광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라면 벽, 천장, 바닥에서도 그 안광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야, 저것들…… 벽에서 기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이정준의 말처럼, 모든 면면에서 구더기처럼 흘러나와서 퍽—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저건, 드라우그일 겁니다.”
이현욱이 말했다.
드라우그(Draugr), 바이킹 신화 속에서 무덤을 지키는 망령으로써, 언뜻 봐선 미라 같이 생긴 언데드 병사였다. 이런 무덤이나 폐허 형태의 던전에 흔하게 등장하는 편이었다.
“외양만 보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소환 주체의 격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힘을 가지니까요.”
“그럼 여기가 무려 드래곤 레어 폐허니까, 쟤들도 평균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겠네요?”
- 드래곤 레어 폐허의 드라우그 (LV:81)
‘그래도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다.’
문제는 앞서 보았듯 천장, 벽, 바닥에서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며 저것들이 쏟아진다.
저 미궁 안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쉴 틈 없이, 끊임없이 전투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즉, 한적하게 모험을 하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보물을 챙겨서 나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와, 계속해서 사방에서 기어 나오는데, 좀 주의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현욱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낄 수 없는 최고의 탱커 군단이 있었다.
"전진—"
절그럭— 절그럭—
리빙 아머와 아이언 골렘이 어깨를 맞대고 대형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45기의 리빙 아머와 15기의 아이언 골렘을 방패 삼아서 전진할 생각이었다.
여기에다가 ‘청동 파수꾼’ 탈로스까지 합세한다면, 마치 전차 군단처럼 밀고 나갈 수 있다.
「전방은 저희에게 맡기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연구를 거듭한 마법공학의 결정체들이 하나둘 빛을 발했다.
첫 번째는, 한 단계 더 계량된 마법 기관총 ‘그레이버팔로’였다.
투—두—두—두—두——!
무려 25정의 그레이버팔로가 동시에 불을 뿜으며, 다가오는 드라우그를 말 그대로 분쇄했다. 몇 마리가 그 화망을 뚫고 접근했지만. 최전방, 아이언 골렘들이 바위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음산한 힘이 담긴 드라우그의 대검과 도끼, 그것들이 아이어 골렘의 몸뚱이를 내리쳤다.
까—앙——!
단 한 방에 단단한 금속 몸뚱이가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하지만 코어를 노릴 지능은 없다면, 그 일격은 무용지물이었다.
꾸륵— 꾸륵—
바닥에 너부러졌던 금속 조각들이 아이언 골렘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더니 이내, 잘려나갔던 부위가 완벽하게 회복되는 게 아닌가?
“와— 이 전투 체계 단순하지만, 장난 아닌데요?”
"그러게요. 엄청난 화력, 절대 방어라니……."
그 뒤를 따르는 희망 길드의 플레이어들마저도 새삼스럽게 감탄을 마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지금만 한 기회가 없었다.
“자, 다들 뭐 하고 있어요! 공짜 경험치들이 몰려오잖아요!”
김세희 외침에 희망 길드원들이 일제히 스킬을 사용— 몰려오는 드라우그를 쓸어버렸다.
"사장님이랑 같이 공략할 때 아니면 이런 기회 없다!”
"그래! 나는 오늘 여기서 35레벨 찍고 가야겠다!”
희망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광역 마법을 사용했다.
쾅—쾅—쾅—쾅——!
"오, 진짜 경험치 쭉쭉 차는데요?”
“크— 저는 벌써 1업 했습니다!”
그렇게 신이 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현욱이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드라우그가 꽤 많이 리스폰 되네요. 조금만 더 사냥하고 갑시다.”
이에 모두가 환호했다.
하지만 서은하로서는 그 광경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잠깐만, 사냥이라니……."
그러나 정말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냥, 아니 학살에 가까웠다.
투—두—두—두—두——!
4개의 방향으로 나뉘는 복도, 그 중심에서 진을 치고는 사방. 아니 천장—벽—바닥까지 모든 면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벌레 떼 같은 드라우그를 정말 벌레 잡듯이 쓸어버렸다.
"아, 아니, 이게 지금…… 레이드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녀로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레이드는 꽤 험난한 것이었다. 아무리 손쉬운 몬스터라도 직접 부딪혀야 하는바, 죽거나 다칠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건만, 지금 이건…… 안정적이다 못해 평온했다.
‘허— 레이드도 자동화가 가능한 거야? 이러면…… 미래에는 플레이어도 실직하나?’
오죽하면 그런 허무맹랑한 걱정이 들 정도일까? 그녀는 적잖이 충격받은 상태였다.
“……이현욱, 저것들 전부 다 네가 조종하는 거야?”
서은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현욱에게 물었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서 얻은 ‘아테나의 황금 고삐’까지 적용한 결과, 최대 권속 수가 대폭 증가했다.
‘지금은 93기까지 조종할 수 있다.’
즉, 지금보다 2배는 더 많은 숫자를 운용할 수 있지만, 굳이 과도하게 힘을 쓰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전방의 버프를 거시면, 서 대위님한테도 경험치가 들어올 겁니다.”
지금도 이현욱 휘하 <희망>길드원들은 그런 식으로 신나게 경험치를 먹고 있었다.
“그게, 우리 사장님이랑 다니면 흔히 말하는 쩔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세희가 그렇게 한 마디 덧붙였는데, 서은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쩔?”
"아, 언니는 어렸을 때 혹시 컴퓨터 게임 같은 거 안 했어요?”
“응....”
김세희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더니 이어서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경험치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물론, 고 레벨 플레이어가 저 레벨 플레이어의 성장을 돕는 경우는 왕왕 있었으나, 그런 오만을 부리다가는 자칫 공략 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지양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분명 안정적으로 경험치를 받아먹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현욱 외에도, 김세희나 박준모, 원래 병사였던 둘의 성장세도 엄청났다.
"하늬—지금이야!”
김세희가 돌풍을 일으켜서 좌측 복도를 헤집어버리자, 드라우그 십여 마리가 잘게 조각났다.
콰—가—가—가——!
그 돌풍을 이룬 수십 점의 바람이 죄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었던 것이다.
"—오른쪽 복도로, 제가 한 번 쓸어버리겠습니다!”
박준모의 외침, 그의 손바닥에서 스파크가 요란하게 튀기 시작했다.
우르르——
이어서 천장 부근에서 먹구름이 생성되는 장면은 서은하로서도 신비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쩌—쩌—쩌—정——!
그 안에서, 벼락이 쏟아져 내리며 수십 마리의 드라우그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는 말 그대로 병사 수준으로, 아무리 에이스여도 그녀보다 한참 아래였건만.......
‘……이제는 솔직히, 나랑 엇비슷한 수준이잖아?’
그 엄청난 성장세를 보면 조금 있으면 따라잡힐 터…… 괜스레 박탈감을 느꼈다.
‘이현욱, 대체 주변 사람들까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키우고 있는 거야?’
오래전부터 이현욱에게 느꼈던 이 이질감과 경외감……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언니, 그냥 보고 계시기에는 좀 아까운 기회 같아요.”
“아, 그래…… 나도 좀 도와야겠지……."
서은하도 결국 그 사냥 대열에 합류하여, 꽤 짭짤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약 8시간을 쉬지도 않고 전진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문’ 앞에 도착했다.
고—오—오—오——
무려 10m 높이의 철문이 길목을 떡하니 막고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마지막 관문이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붉은색의 자물쇠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 (!) 해당 지역은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지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현욱이 다가가 손을 얹자, 문 위에 웬 글자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 이 문은 오직 ‘자격’을 가진 자만이 열 수 있다.
"저 자격을 가진 자가, 이제는 나란 말이지?”
서은하가 ‘알 수 없는 권능이 담긴 검’을 들어 올리며 물었고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서 문짝에 오른손을 얹었다. 그러자…….
쿵——!
굉음과 함께 벽 안쪽에서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렇게 이 미궁의 마지막 방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홀이 펼쳐졌다.
고개를 드니 보이는 상들리에, 그 크기만 해도 웬만한 헬리콥터만 할 것 같았다.
"우와— 실제로 드래곤이 살던 곳인가? 진짜 뭐든지 다 크네요.”
그리고 정면에 웬 계단이 있었고 그 끝에 큼직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저기 있다.'
바로 저 상자 안에 ‘드래곤 알’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바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절그럭—
그 상자를, 한 거구의 드라우그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 (LV:115)
놈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두 눈에서 파란색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여기가, 어디라고...... 한낱 인간들이…….」
놈이 바닥에 박혀 있던 거검을 움켜쥐고 뽑아 드는 순간, 땅이 웅—하고 울렸다.
그 검의 크기만 해도 약 4m 정도, 그리고 놈의 신장은 6m에 이를 듯했다.
웅——
그때, 홀 정중앙에 작은 마법진이 하나 피어올랐다.
"—뭔가 온다!”
플레이어들은 마법 공격을 예측하고 방어 준비를 했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웅——
입구 쪽 바닥의 타일들이 빛을 발하더니, 웬 화살표 모양을 자아냈다.
“……뭐야? 저 마법진을 밟으라는 건가?”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그건 정답이었다.
이현욱은 고개를 돌려서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서 대위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 같은 거 안 떴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두 눈을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에게서 떼지 못했다.
- (!)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와 단독 대결하십시오.
* 해당 대결에서 승리할 경우 ‘숨겨진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 다른 이의 도움을 얻어서 승리할 경우 ‘정해진 보상’만을 획득하게 됩니다.
"음, 설마, 저걸 혼자서 잡으라는 내용입니까?”
이현욱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
그녀는 지금 ‘드래곤 레어의 수호자’를 바라보며 놈의 ‘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플레이어는 ‘직감’을 깨우친다. 그리하여 마나를 더욱 짙게 느끼고, 격을 체감할 수 있게 되고, 맞서 싸워야 할 상대와 감히 싸우지 말아야 할 상대를 구분하게 된다.
‘그 감각은 레이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개죽음을 피할 수 있는 리더의 감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그녀가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약한 소리는 웬만해서는 하기 싫은데…… 이건 좀, 무리일 것 같아……."
그녀의 직감— 즉, 본능이 저놈에게 1대1로 덤비면 개죽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저건 웬만한 보스 몬스터보다 강한 존재 같은데, 그렇지?”
하긴, 115레벨의 보스 몬스터라면, 아주 큰 이벤트에서나 등장할만한 존재였다.
즉, 저걸 1대1로 잡을 수 있다면 세계 최상위 플레이어임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그래, 서은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뛰어난 탱커이자 공략 팀장이지, 혼자서 적을 때려 부술 수 있는 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이 중요한 순간에서 무조건 회피할만한 스타일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른 방법은 없겠지?”
"예, 제 생각에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그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니, 이길 수 없었다.
"혹시나 내가 죽으면…… 다음 타자는 신성기사단 쪽에서 구해 봐.”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죽는다는 확신 또한 없었다.
적어도 이현욱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제가 죽지 말라고 아이템을 좀 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서은하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서 대위님께서 저한테, 팔찌를 줬던 것처럼요.”
"너…… 그거참 여러 번 우려먹는다?”
"네, 꽤 감동이었거든요. 제가 지금 그 은혜를 갚죠.”
텅—
그가 AD-2를 한 대를 가져와서,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건 웬 투구, 상체, 하체, 각반 등 웬 흑색의 갑옷 세트였다.
"이건, 아다만트 85%의 풀 플레이트 아머 세트입니다.”
탱커 포지션 플레이어에게 풀 아다만트로 만들어진 방어구는 평생의 숙원으로 여겨진다.
그건 서은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그게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다만트 갑주 상의 (숙련)
- 효과: 웬만한 충격으로는 이 갑옷에 흠집조차 낼 수 없습니다.
무려 숙련 등급의 제조 아이템이다. 즉, 영웅 등급과 동급이었다.
그 갑옷을 모두 착용하자…….
- <아다만트 갑주 세트(5/5)〉효과가 발동합니다!
* 모든 물리 데미지를 일정량 무시합니다. (-30%)
* 상대와 접촉 상태에서 추가 데미지를 입힙니다. (+20%)
“……아니, 이런 게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었어?”
물론, 이 시점에서는 이런 물건이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차원 이동자 윌리엄 버나드가 입고 온 거다.’
지금 서은하가 입고 있는 풀 플레이트 아머보다 7~8배의 성능일 것이었다.
"그건 서 대위님이 그냥 가지세요.”
서은하는 다시금 놀란 표정이 되었는데, 오늘 너무 자주 놀라서 쪽팔릴 지경이었다.
"자, 그리고 이건 드릴 순 없고, 빌려드리는 겁니다.”
그건 웬 허리띠였는데…… 무려 ‘메긴기요르드’였다.
"저, 전설 등급이네……."
이현욱은 그걸 배낭에서 캠핑 도구 꺼내듯 AD-2에서 꺼내서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AD-2의 아공간을 뒤적거리는 게 또 뭔가를 꺼낼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혹시 감전 면역 있으세요?”
"그거야 뭐 당연하지. 나 성기사잖아?”
성기사 계열의 최고 장점이라면, 모든 속성에 약간의 면역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다행입니다. 그 허리띠랑 세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쿵—
그가 내려놓은 건 손잡이가 짧은 망치였다.
“헉!”
그게 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묘, 묠니르잖아?”
이현욱이 선보인 이후,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템이었다.
"그걸 저 메긴기요르드와 함께 쓰면 세트 효과로, 전류 옵션이 붙습니다. 아,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텅——
이번에 꺼낸 건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아킬레우스의 창’이었다.
"자, 한 손에 방패를 쥐고 등 뒤 창을 둘러맨 뒤, 위험한 순간에 창을 꺼내세요. 그러면 잠깐 무적 상태가 돼서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잘 이용하면 카운터 먹이기에도 좋고요.”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현욱이 시키는 대로 했다.
"자, 이제 좀 할만하겠어요?”
이현욱이 그렇게 물으며 싱긋 웃었다.
마치 재벌 3세가 돈을 펑펑 쓴 다음에 쿨하게 던지는 한 마디 같았다.
"그래, 이 정도라면…… 달라도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그제야 서은하는 깨달았다. 왜 그토록 수많은 인재가 AMT가 아니라, 민간 길드의 품에 안기는 것인지…… 이게 흔히 말하는 돈지랄을 통한 스펙 상승의 짜릿함 같은 걸까?
한편,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마구잡이로 내놓는 걸 보고 있자 하니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이 사람한테 붙어 있으면 자신도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네?”
“—아, 아니야!”
그녀는 이현욱이 지원해준 아이템을 두르고, 짜릿한 충만감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후— 어쨌든, 네가 날 믿고 이렇게 지원해줬으니까……."
그녀는 오른손에 묠니르를 들고, 왼손에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든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그걸 증명할 차례인 거지?”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압도적인 아이템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녀의 실력은 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전투 센스만큼은 자신 있기에, 스스로에게 기대감이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게 신경 쓰이는군…….'
이현욱의 눈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잡히고 있었다.
홀 한쪽 구석,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벽면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왜냐하면…….
- 히든 스테이지 ‘제왕의 비밀 공간’ 입구
그곳에 그런 글씨가 이현욱의 시야에 떡하니 걸려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전생에는 그 누구도 저런 통로를 발견 못 했는데?’
아마도 오늘 아침에 업그레이드된 ‘인사이트 렌즈’에 의해 감지된 것인 듯했다.
‘음, 이 정도 수준의 미궁에 숨겨져 있는 히든 스테이지는…… 대체 뭐지?’
뭐가 됐든, 이현욱이 모르는, 그리고 상상 이상의 보상이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