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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49화 (149/221)

149화.  < 팔달산, 드래곤 미궁의 비밀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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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력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무엇일까?

“……속물처럼 들리겠지만, 단연 이미지야. 그리고 어쩌면, 가장 신경 써야 할 문제고.”

거대 길드 <슬레이어즈>의 마스터 에드워드 우즈는 그렇게 정의했다.

한 국가의 통치권을 가진 정치인일지라도, 세상의 돈을 긁어모으는 기업 총수일지라도,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최강의 플레이어일지라도, 이미지가 망가지면 결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이미지는 곧 상품이야. 그게 좋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고, 점차 도태될 수도 있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던 <슬레이어즈>의 이인자 스티페 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우리의 입지가 줄어들고 게이트 공략 입찰 때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겠죠.”

턱—

에드워드 우즈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태블릿 PC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화면에는 한 뉴스 기사가 떠올라 있었는데, 그 헤드라인이…….

- 플레이어즈紙, 슬레이어즈 길드의 종합 평가를 14점 내린 64점을 책정, 스틸레인 참사?

‘플레이어즈’는 미국의 미디어 기업으로, 플레이어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매체였다.

그곳에서 슬레이어즈 길드의 가치를 하향 평가했다. 그 이유는 드래곤 공략 전에 세간의 이목을 과하게 끌었으나, 스틸레인에게 패배하며 유일무이한 드래곤 슬레이어 이미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걸 일명 ‘스틸레인 참사’ 이름으로 낙인까지 찍어버렸다.

이처럼, 향후 슬레이어즈 길드의 비전이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미궁을 잘 공략한다면, 지난 패착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겠지……."

그런 의도로써 에드워드 우즈는 스틸레인을 도발한 것이었다.

다소 억지일지라도 그의 이름을 끄집어내서 다시 한번 경쟁 체제로 돌입한다.

여기에서 이긴다면, 승부 결과가 1대1이라고 잘 포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스틸레인이 팔달산 미궁 공략에 나선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 [속보] 슬레이어즈와 경쟁을 의식하나? 스틸레인, 내일 팔달산으로 들어간다.

"음, 스틸레인이 급하게 미궁 공략을 시작하려는 모양인데요?”

아만다 앤더슨이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뭐, 결국은 마지막 방 앞에서, 우리처럼 막히고 말 테지만요.”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3가지 힌트를 얻고 허무하게 밖으로 퇴장할 것이었다.

"그래서 ‘자격자’에 관한 정보는 잘 모이고 있습니까?”

에드워드 우즈가 묻자 스위트 룸 한쪽, 전략 테이블에서 부관이 일어났다.

"예! 수십 개의 길드에서 정보를 보내주고 있어서, 곧 표적을 추려낼 수 있을 겁니다!”

어제, 에드워드 우즈가 기자회견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를 함께 찾아 달라고, 한국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동시에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자 이 나라에서만 21개의 민간 길드가 또한 몇몇 정부 기관까지 협력을 제안해 왔고, 지금 온갖 정보를 넘겨받는 중이었다.

이 현상의 방증하는 건, 한국 내에서도 스틸레인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좋아, 이대로라며 곧 그 마지막 문을 돌파할 열쇠를 찾아낼 거다.’

에드워드 우즈는 여전히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승리를 예상했다.

그리고 약 1시간 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보스, 71레벨의 성기사 플레이어, 찾았답니다!”

부관의 외침에, 창가에 서 있던 에드워드 우즈가 홱 돌아섰다.

"그래요? 어디에서 온 연락입니까?”

"미스터 황, 그 사람입니다!”

미스터 황, 그 사람은 한국 정부 기관인 <길드지원협력청>의 간부급 인사였다.

그는 에드워드 우즈에게 드래곤 공략을 요청해왔던 한국 정부 측의 대표자였다.

"그가 지금 당장 직접 이곳으로 오겠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양복 무리가 슬레이어즈의 스위트 룸에 방문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호쾌하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중년 남자, ‘미스터 황’ 황연수 처장이었다.

그가 재킷의 단추를 풀며 에드워드 우즈의 앞, 소파에 풀썩 앉았다.

"그, 찾아보니까 서은하라고 AMT 소속의 71레벨의 성기사가 있더군요. 딱 맞죠? DS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이렇게 정확히 맞는 사람이 한반도에 두 명이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이 땅에 있는 71레벨의 성기사 플레이어, 그자가 바로 미궁 마지막 문의 열쇠였다.

에드워드 우즈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AMT 소속이라면, 미스터 황께서 어떻게, 핸들링이 가능한 사람인 겁니까?”

"그…… 문제가 하나 있는 게, 하필이면 또 그 여자가 이현욱이랑 인연 있어요.”

그 대목에서 에드워드 우즈의 침착함에 쩍—금이 가며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하—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둘이 무슨 관계든 간에 어차피 군인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그쪽 직통 장군 하나가 저희 라인입니다.”

에드워드 우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서 저렇게 나올 정도라면 믿을 만했다.

“그렇군요. 그래도 제가 그분께 직접 찾아가서 직접 설득하고 싶습니다.”

“네? 굳이 드래곤 슬레이어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리 핸들링할 수 있더라도, 우리를 돕는 분께 성의를 보여야죠.”

“으하하— 역시, 신사의 나라에서 오셔서 그런지 매너가 차고 넘치시네요!”

이건 슬레이어즈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으로, 결코 어영부영 처리할 수 없었다. 그 ‘자격자’로 추정되는 여자를 힘을 통해서 무조건 확보하는 것보다는 잘 회유하는 게 옳았다.

‘괜히 기분 상하게 만들었다가, 일이 복잡해지면 안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스틸레인과 관계가 있다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DS께서 그러시겠다면 제가 그 장군한테 말해서, 다리를 놓게 하겠습니다.”

그의 부름에 서울작전사령관 정상식 중장이 5분 대기조처럼 군용 헬기를 타고 날아왔다.

"아니, 사령관님, 장군 체면이 있는데 이렇게 직접 날아와도 되는 겁니까?”

"아이고— 우리 황 처장님께서 부르시는데 어떻게 안 달려오겠습니까?”

에드워드 우즈는 그들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그 즉시 서은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두두두두——

그렇게 도착한 남산의 제3항마여단 1대대…… 대대장, 김강석이 헬기 포트 앞에 나와 있었다.

"충성— 사령관님, 이게 무슨……."

그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관사에서 달려 나온 터라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어, 김강석이, 이분들 누군지 알겠지?”

조금 떨어진 곳, 에드워드 우즈 일행이 이쪽을 슬쩍 바라보고 있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김강석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가 이현욱과 밀접한 관계라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정상식은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어딘가를 고갯짓했다.

"야, 김강석이, 표정 관리 잘 해! 너한테도 이거 기회야. 저기 저 양복 입은 양반 보이나?”

헬리콥터에서 느지막이 내리는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가 이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예, 길드지원협력청의 황연수 처장이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차기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장이야.”

즉, 우성문 실장을 끌어내리겠다는 뜻이었다.

"아……."

"왜? 안될 것 같아?”

"......."

곧 대선이었고, 길드지원협력청장 오태문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고 있었다.

수많은 민간 길드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차기 권력자들은 우성문의 막강한 권한을 경계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권력을 취하고 나면, 그의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닫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우성문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었다.

‘특히나 오태문은, 오래전부터 민간 길드와 유착 관계를 쌓아 왔다. 그들이 오태문을 미는 이유 중 하나는 눈엣가시 같은 우성문을 제거해서 세를 더욱 확장하려는 거겠지…….'

그간 거대 민간 길드를 견제하고 조련해온 우성문의 목줄에 서서히 금이 갔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앞서서 <태산> 길드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 때문에 길드들의 반발 거세졌다. 정확한 자초지종을 세간에 공개할 수 없던바, 그들이 보기에는 우성문의 길드 길들이기로 보였다.

‘하— 그토록 많은 위협을 막아왔는데, 속에서도 곯고 있었구나……."

김강석은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짙은 한숨을 겨우 억눌렀다.

그러나 그 불쾌한 감정이 얼굴에는 드러 났는지, 정상식이 혀를 찼다.

"너, 어디 줄을 잡을지 잘 정해, 인마! 설마, 이현욱 같은 놈이 잘 나간다고 해서 앞으로 뭘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거 아니지? 잘 좀 생각해 봐. 그 자식…… 오래 못 살 운명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오래 못 살 운명이라니, 이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예? 사령관님, 방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뭐? 내가 무슨 의도를 갖고 말했겠어? 그냥 악담이지.”

그는 김강석의 두꺼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이어서 훈계하듯 말했다.

"그 자식, 적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내가 좋게 봐서 이뻐 해주려고 했더니, 결국 뭐야? 냅다 전역해버렸잖아? 그렇게 뒤통수나 때리는 약아 빠진 놈, 당장 누구한테 죽는다고 해도 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야. 그렇게 난리를 치고 다니는데…… 누구 눈 밖에 안 났겠어?”

“그리고 아직 한참 어린놈 새끼의 손에 너무 큰 힘을 쥐여주는 것도 위험해. 지금까지는 재주를 잘 부려왔지만, 그건 다 <라퓨타>를 독점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김강식이, 속지 마.”

김강석은 그 지점에서 좋지 않은 직감이 들었다.

'……국내 일부 세력이 라퓨타를 국유화해야 한다는 뜻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정,재계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걸, 앞서서 우성문 실장에게 들은 적 있었다.

“큼— 자, 아무튼 오늘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줘야겠지?”

정상식은 다시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강석을 에드워드 우즈 앞으로 데려갔다.

"그…… 서 장군 둘째 딸, 서 대위 지금 영내에 있겠지?”

그 대목에서, 김강석은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역시나…… 이현욱이 말한 대로 미궁 공략에 서은하가 필요한 거군?'

그걸 깨닫자 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던 게 우스워졌다.

이 비열한 움직임을, 이현욱이 이미 어제 예측하고는 언질을 주었다.

‘하— 이것들, 입만 살아서 결국 이현욱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잖아?’

김강석은 씩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참…… 죄송합니다만, 서 대위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 그래? 흠…… 휴가는 아닐 테고, 공략 작전 투입된 건가?”

"예, 아주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어서,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합니다.”

이에 에드워드 우즈와 정상식, 두 사람이 실망한 표정으로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혹시, 어떤 작전에 투입되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 서 대위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종용에 김강석은 하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이것도 꽤 중요한 작전이라서, 곧 TV에 나올 겁니다.”

***

미궁 공략 시작 2시간 전, 이현욱은 이교준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 최근 외국에서 입국한 플레이어들을 지속 추적 중이고 팔달산 인근에도 다수의 저격수 팀을 배치해두었습니다. 혹여나 습격이 이루어진다면 저희 팀들이 재빠르게 대응할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현욱의 경호는 국가게이트대응전략실 및 흑조 내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런 공식적인 행보가 있는 날이 암살 시도를 하기 가장 좋은 날이 아니던가?

이현욱을 노리는 암수가 한 둘이 아닌 만큼, 흑조는 그의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습격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건 솔직히 아니다.’

아무리 총력을 기울여도 어떤 기이한 스킬과 아이템을 써서 은밀하게 접근해올지 몰랐다.

그런 걸 예방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이현욱 자신이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긴급 상황에서도 무리 없이 맞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는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인사이트 렌즈’ 스킬이 대폭 강화됩니다.

‘후, 드디어 흡수가 끝났군?’

얼마 전에 얻은 ‘호루스의 눈 2번 조각’을 흡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스킬 정보]

- 이름 : 인사이트 렌즈

- 등급 : C

- 효과

1) 시스템 분석(2):숨겨져 있는 ‘시스템 정보’를 보다 깊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천리안(千里眼):시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400%)

* 숨겨진 조건을 만족할 시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1번, 시스템 분석 스킬이 2단계로 향상되어 ‘보다 깊게’라는 설명 문구가 추가됐다.

'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써 봐야 알 것 같은데?’

그리고 2번 천리안 역시 300%에서 400%로 향상됐다.

‘그러고 보니 이건 딱히 쓴 기억이 없는데?’

아무래도 ‘후긴’을 이용한 관찰이 훨씬 더 효과가 좋기 때문이었다.

그때, 오더 타워의 문이 열리고 김세희가 들어왔다.

"사장님, 길드원들 공략 준비 마치고 대기 중이에요. 준비 끝났으면 슬슬 나오시죠."

이현욱은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김세희의 머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응? 왜요? 내 머리에 뭐 묻었어요?”

그녀의 머리 위에…… 웬 글자가 떠올라 있는 게 아닌가?

- 플레이어 (LV:68)

‘아, 이제는 플레이어의 레벨까지 볼 수 있게 된 건가?’

1단계에서는 아이템의 숨겨진 정보나, 몬스터의 레벨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바람의 정령 ‘하늬’의 정보도 표시됐다.

- 중급 바람의 정령 (LV. 68)

"김 팀장, 조금 있으면 70레벨 되시겠네요?”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말했었나요?”

"그냥, 요즘 훈련량 보고 대략 짐작했죠.”

"오, 그런 게 가능해요? 전 수학 포기자라서……."

고작 레벨 정도의 단적인 정보지만,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

팔달산 입구의 광장, 그곳에 AMT 병력이 주둔한 채 일대를 경계 중이었다.

한편, 국내외의 취재진이 잔뜩 몰려와서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도 했다.

이현욱이 등장하자 여기저기에서 스포트라이트와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저, 이현욱 씨! 아주 잠깐만 시간 내서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DS의 어제 기자회견이 공략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쪽으로 단 한 번의 시선을 준 뒤 그대로 산 쪽으로 사라졌다.

"와…… 진짜 쳐다도 안 보네? 쿨한 거냐 싸가지가 없는 거냐?”

"좋아, DS의 인터뷰 때문에 언짢은 기색을 기사 쓰면 되겠는데?"

하지만 이현욱의 시선은 구름 위를 날고 있는 ‘후긴’을 통해서 취재진을 살피고 있었다.

‘……저 자식, 뭐지?’

정확히는 그 취재진 사이에 숨어 있는 아주 의심스러운 한 남자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 플레이어 (LV. 81)

무려 81레벨의 플레이어라니, 기자치고는 너무나 높은 레벨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업그레이드된 인사이트 렌즈의 쓸모가 생각보다 일찍 발견된 것이었다.

‘저 정도면 현시점 상 최상위권의 실력자이다. 즉, 위장 신분일 거다.’

이현욱은 후긴을 띄워서, 그 남자의 살피는 동시에 마나 메신저를 해킹했다.

그리고 약 10분 정도 후, 그의 귓속으로 낯선 이들이 대화가 들려왔다.

- 제니, 특종이 지금 막 도착했는데 기사 정리는 잘 됐나?

- 예, 지금 바로 게시해도 됩니다.

- 좋아, 일단 컨펌 기다리고, 그, 이번에 준비된 ‘도시 청소기’ 제약 없이 써도 되는 거지?

- 뭐, 데스크에서도 마음껏 쓰라고 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평범한 언론사 선후배 간의 대화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현욱은 그 대화에서 이질적인 한 단어를 포착해냈다.

‘잠깐만…… 방금, 도시 청소기라고 한 거야?’

그의 기억상 ‘도시 청소기’라는 기괴한 이름의 물건은 하나뿐이었다.

‘그건…… 빌런들이 사용했던 정령 군체 폭탄의 암호명이잖아?’

그걸 듣고 나니 그들이 타고 있는 꽤 큰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페인트가 깔끔하게 칠해진 5t짜리 탑차…… 아무리 봐도 언론사 직원들이 타고 다니지는 않을 법한 사이즈였다.

'저 안에 도시 청소기가 들어있는 건가?'

도시 청소기란, 정확히는 최상위 정령 군체를 가뒤두는 일종의 마법 감옥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그걸 열거나 깨뜨려서 분노한 정령들 이 날뛰게 만들면, 폭탄과 같은 효과가 난다.

무엇보다, 도시 청소기 안에 갇혀 있는 건 ‘땅의 정령’이었다. 즉, 화가 나면 일대의 모든 돌, 흙, 금속을 분쇄하고 빨아들이는데, 도시의 구성 요소가 전부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아주 잠깐만 날뛰어도, 빌딩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참변이 일어나고 만다.’

그 끔찍한 아이템은 <국제연금술협회>에서 정령을 연구하던 도중에 탄생한 괴작이었다.

그런데 이 시점상 연금술은 그다지 유망하지 않은 분야였고, 얼마 전 강동구 연금술 연구단지가 무너지며 밥줄까지 끊겼으니…… 아마도 돈을 받고 그걸 빌런 측에 넘겼을 터였다.

원래는, 한 2년 뒤쯤에 맨해튼 한복판에서 개봉돼서 세계 최고의 도심을 초토하게 된다.

즉, 그런 무시무시한 게 지금 여기에 와 있을 이유는…… 이현욱의 기억상에는 없었다.

- 이걸 이용하면 아무리 ‘그’라고 해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파티가 벌어지겠네요.

- 그래, 업무가 끝나서 나와서 기진맥진할 때, 샴페인을 터뜨려주는 거다.

- 그리고 조금 엉망진창이 되도 되겠죠? 듣기로는 집주인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까요.

‘하, 이것들 봐라…….'

여기서 ‘그’가 누굴 뜻하는지는 굳이 깊게 고민할 것 없었다. 바로 이현욱 자신이었다.

아무래도 이현욱에 의해서 미래가 바뀌며 저 물건의 사용처 역시 바뀐 듯했다.

‘하긴, 도시 청소기라면 내가 사용하는 웬만한 금속 무기도 죄다 빨아들일 테니…….'

즉, 이현욱의 하드 카운터 아이템인 셈이었다.

‘일단, 내가 나오면 쓴다고 했지? 내가 그 사용처를 한 번 더 바꿔줘야겠는데?’

우선 미궁 공략을 마친 뒤, 그 대단한 물건까지 안전하게 넘겨 받을 궁리를 했다.

‘그걸 터뜨리지 않고 안의 정령들을 잘 달래면, 이용할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미궁 진입 직전까지 그놈들한테 후긴을 붙여두니 추가 정보가 잡혔다.

- 청소가 시작되면, 집주인 쪽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줄 거야.

- 우리보다 집주인 쪽이 더 안달 난 것 같은데요?

- 그러게 말이다. 결국은 제집이 무너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더군?

‘음…… 계속해서 집주인이 언급되고 있다.’

전생의 이현욱은 가디언 정보부에 몸담아 빌런 조직을 추적하는 일을 했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지속 언급되는 몇 가지 암호들을 대강 해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집주인 즉 호스트는 흔히 내부 협력자를 뜻한다.’

즉, 이 나라 안에 저들에게 협력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어느 정도 두각이 잡혀 있었다.

다만, 처리할 기회가 없었을 뿐…….

‘이러면 이거…… 본의 아니게 물청소 좀 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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