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수원, 드래곤 사냥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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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게임에서는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생명력’이 높은 게 당연한 이치였다.
일명 HP(Health Point)라는 수치가 정해져 있고, 그걸 깎는 게 바로 사냥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는 건,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게임으로 변한 이 ‘현실 세계’에서는 생명력이라는 게 어떤 개념으로 존재할까?
‘일반적으로 배리어 두께, 코어를 보호하는 외갑의 수준, 회복력 정도로 분석할 수 있다.’
즉, 그것들을 모두 상쇄하고 치명상을 입혀야지만 몬스터를 죽일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한다면 ‘일격’에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설령 그게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현재, 아지 다하카의 목 부분 배리어가 많이 손상된 상태였다.
어쩌면 일격에 보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여기에다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다면, 가능성은 수십 배가 된다.’
그건 대(對) 드래곤 권능으로써, 드래곤의 배리어를 일정량 상쇄한다.
그 힘을 40m짜리 거창에 담에 26.5m의 오리할콘 거인이 온 힘을 다해 던진다면.......
‘……일격 필살이 가능하다.’
콰—아—앙——!
흡사 로켓처럼 대기를 짓이기고 꼬리에 폭음을 단 채 쏘아지는 40m의 거창—
‘이 한 방이면 된다.’
이현욱은 그 거창이 탈로스의 손을 떠나는 순간, 왼손을 들어 올렸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엄청난 운동 에너지가 담긴 그 금속 발사체를 감지하고, 최대한 섬세하게 힘을 부여한다.
후—우—우——!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그 방향과 속도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때, 아지 다하카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창을 발견했다.
「설마, 그건…….」
놈의 눈동자가 일순간 당황으로 물드는 것은, 예삿일 아니었다.
「네놈, 어떻게——!」
직후, 날아오는 방향에 마법 방어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무려 4중의 반구형 방어막이 거창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웅—웅—웅—웅——
하지만 거창은 마치 종잇장을 찢듯, 그것들을 관통해버렸다.
쾅—! 쾅—! 쾅—! 쾅—!
'역시나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이다.’
드래곤의 권능을 일정 부분 무효로 하는 특별한 힘,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오리할콘 거인의 힘, 두 힘이 한 자루의 창에 뒤엉킨 채 아지 다하카의 목덜미로 쏘아진다.
‘이걸로, 끝이다.’
그 일격을, 놈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쩌—억——!
적중—
푹——거창의 촉, 모글레이가 놈의 목덜미를 뚫고 튀어나왔다.
비늘이 툭— 툭— 떨어지고, 놈의 눈동자가 있는 대로 커졌다.
이어서 피가 후두두— 떨어지고, 놈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진다.
「카—악——!」
여느 짐승과 다르지 않은 처절한 단말마가 그 위대한 생명체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 매달린 놈의 머리와 꼬리가 중력을 따라서 축 늘어졌다.
- 축하합니다! 앙그라 마이뉴의 화신 ‘아지 다하카’를 처치하였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시스템 메시지가 공략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거…… 내 생각보다도 훨씬 쉬웠다.’
이는 솔직히 차원 이동자—윌리엄 버나드가 들고 온 모글레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비록 잡을 수 있었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주변에 네크로맨서가 와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현욱은 후긴의 감각을 통해서 일대를 쭉 훑었다.
그놈에게 드래곤의 사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 것이었다.
무려 ‘본 드래곤’을 만들어낼 기회일 테니,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아직은 네크로맨서와 다시 마주할 준비가 안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
한편 슬레이어즈 연합 측은 미어캣 무리처럼 고개를 든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지 다하카의 시체와 이현욱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서 황망함이 한껏 묻어났다.
그 외에도 이 장면을 송출 중이던 모든 매체의 진행자들이 하나 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킬 더 몬스터>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 아.......
- 어.......
두 MC는 꽤 오랫동안 오디오를 괴상한 웅얼거림만으로 채우고 있었다.
- 어, 음.......
단 일격만으로 드래곤이라는 최고위 생명체를 리타이어 시킨 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 누구도 이 대목에 어떤 해설을 입혀야 할지 몰랐기에 마냥 침묵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타이론 톰슨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사냥꾼, 사냥꾼 같았습니다.
그는 생각 정리를 하듯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 눈앞에 목표물이 있었지만, 성급하게 나서지 않고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죠. 그 어떤 사냥꾼도, 곰을 앞에 두고 성급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 아.......
- 사냥꾼처럼 놈이 함정에 걸려드는 그 순간…… 단 한방을, 확실하게 꽂아 넣은 겁니다.
앞서서 그는 스틸레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한다고 평가했었다.
그때와 상반되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기에 부끄러웠다.
- 하…… 제 식견이 짧다는 걸, 오늘 몇 번이나 느꼈습니다. 여러모로 부끄러운 하루네요.
- 타이론 톰슨,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지 않습니까?
그때, 라퓨타의 하단부, 그 빛 속으로 아지 다하카의 시체가 흡입되듯 사라져버렸다.
- 이번 빅 이벤트 보상도 결국 스틸레인이 가져가 버리네요. 이거 참, 하하…….
스틸레인이 블랙 드래곤의 몸을 통째로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 흔히 드래곤 재료라고 하죠, 타이론, 저 블랙 드래곤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 글쎄요. 솔직히 저건 ‘책정 불가’라는 말 만큼 적당한 대답은 없을 것 같네요.
저 블랙 드래곤의 가죽, 뼈, 하트 등으로 만들어질 아이템의 가치는 상상 초월이었다.
- 심지어, 스틸레인은 라퓨타를 바탕으로 마법공학의 최선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
- 그렇죠. 세계 최고의 재료를 세계 최고의 기술로 가공해서 만들어질 아이템이라니….
그 누구도, 그 결과물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었다.
***
아지 다하카가 죽는 순간, 공략에 기여한 이들의 눈앞에 보상이 나타났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앙그라 마이뉴의 침공을 저지했습니다!
* 해당 <서든 이벤트>의 보상은 기여도에 따라서 ‘차등 지급’됩니다.
- 축하합니다! 행운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2등)
1) 드래곤의 보물창고 열쇠 (7개)
2) 드래곤의 레어 폐허 출입 증표(1장)
그 시스템 메시지는 에드워드 우즈의 눈앞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는, 드래곤 슬레이어인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드래곤의 보물창고라니, 이게 뭐지?’
런던에서 레드 드래곤 아성체를 잡았을 때도 이러한 열쇠를 주긴 했는데, 그땐 바로 그 자리에 상자 7개가 떨어졌었다. 아마도 그와 같은 개념일 텐데, 훨씬 더 큰 규모인 듯했다.
그때—
쿠—구—구—구
어디에선가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꽤 규모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
"부관, 이게 무슨 상황이죠?”
이내 상황을 파악한 부관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확인 결과, 4개의 게이트가 닫히고 있다고 합니다.”
"음, 그것만으로 이런 굉음이 울리진 않을 텐데요?”
"아, 그리고…… 근처에 있는 산이 무너지고 있답니다.”
이 주변에 있는 산이라면 해발 고도 145m의 팔달산으로, 그곳은 전투 영향권이 아니었던 만큼 갑자기 무너질 일은 없었다. 즉, 이번 이벤트와 관련된 현상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 (!) 인근 지역에 ‘블랙 드래곤의 미궁’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미, 미궁이 뭐야?”
이에 모두가 황당한 표정으로 에드워드 우즈를 바라보았다.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줄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해답을 내렸다.
"음…… 아마도 저곳에서 보상을 수령 할 수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앞서서 ‘열쇠’나 ‘입장 증표’같은 게 차등 지급된 걸 보아하니,
그 숫자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수준이나 숫자가 달라질 듯했다.
‘나한테 주어진 열쇠는 7개…… 하지만, 나는 겨우 한 방 먹였을 뿐이다.
즉, 스틸레인은 훨씬 더 많은 열쇠와 입장권을 얻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현욱의 눈앞에는 훨씬 높은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 축하합니다! 행운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1등)
1) 드래곤의 보물창고 열쇠 (36개)
2) 드래곤의 레어 폐허 출입 증표(3장)
‘내가 전생에 얻은 열쇠는 겨우 4개였던가, 그랬었지?’
그가 직접 숨통을 끊었지만, 데미지 총합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상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 축하합니다!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목록]
7) 드래곤 슬레이어
- 조건 : 직접적인 방법으로 드래곤의 숨통을 끊는다.
- 효과 : 드래곤의 모든 권능을 감쇄합니다. (-50%)
이번 생에도 전생과 똑같이 아지 다하카를 잡고 드래곤 슬레이어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지 다하카의 숨통을 끊은 모글레이에는 드래곤 슬레이어 옵션이 붙지 않았다.
그럴 것이, 그 모글레이에는 이미 드래곤 슬레이어 옵션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글레이에도 드래곤 슬레이어 옵션을 붙일 기회였는데…….'
그점이 상당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 후회할 필요는 없다.’
이는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려 드래곤을 앞에 두고 생명력을 일정 부분 남겨두고, 다른 무기로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그런 도박 수를 둘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놈이 어떤 방식으로 탈출해버릴지도 모르는데, 이득을 좇는 건 오만이다.’
그런데…….
- 축하합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모글레이에 신비한 힘이 깃듭니다.
'......응?'
이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특별한 조건을 만족했다니, 그게 뭐지?
[아이템 정보]
- 이름 : 모글레이(영웅)
- 효과
1) 질량 해방(1~5):봉인된 ‘질량’를 해방하며, 사용자에게 ‘강골(强骨)’을 부여합니다.
2) 쇼크웨이브 :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킵니다. 이 파괴력은 1번 질량 해방과 비례합니다.
3) 마나 폭검 : 칼날에 ‘태풍의 힘’이 부여되어서 다음 일격에 ‘돌풍’을 일으킵니다.
4) 스페이스 커터 : 아주 예리한 바람의 칼날이 쏘아지며 넓은 면적을 절단합니다.
5) 드래곤 슬레이어(2) : 드래곤을 살해하는 힘으로써, 드래곤의 권능을 ‘크게’ 무시합니다. 또한 ‘용력(龍刀)’이 부여되어 모든 능력이 향상되며(+30%) 상급 ‘정신 방벽’이 형성됩니다.
마지막 5번, 드래곤 슬레이어가 ‘2단계’로 강화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드래곤 슬레이어도 중첩이 되는 거였어?’
어쨌든, 내용을 살펴보니, 드래곤의 권능을 '일부’ 무시함에서 ‘크게’ 무시한다고 바뀌었다.
이어서 ‘용력’과 ‘정신 방벽’이라는 엄청난 추가 효과까지 부여되었다. 이건, 대박이었다.
'……이렇게 되면, 니드호그를 잡을 때 훨씬 쉽겠는데?’
세계수의 관리자, 도널드 해리스와 약속한 대로 얼마 뒤 ‘니드호그’ 사냥을 도와줘야만 했다.
그놈 역시 성체 드래곤인 만큼 쉽지 않은 공략을 예상했는데, 이러면 한결 편해질 듯했다.
‘그리고 3중첩의 드래곤 슬레이어 모글레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잖아?’
앞으로 또 어떤 옵션이 붙을지…… 그건 솔직히 기대가 안 될 수 없었다.
쿠—구—구—구——!
그러는 동안에도 저 멀리 팔달산에서 거대한 진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현욱의 기억대로, 저곳에 ‘블랙 드래곤의 미궁—레어 폐허’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4차 웨이브 막은 뒤 ‘라퓨타’라는 축복이 나타났다. 블랙 오크 군단의 침략을 저지하자 ‘신단수’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앙그라 마이뉴 군단의 침공을 막은 뒤에는 무엇이 주어질까?
우선, 현실 세계에 형성되는 대규모 던전 형태인 <미궁>이 팔달산에 형성된다.
‘그리고 진짜 보상이 저 미궁의 마지막 방에 잠들어 있다.’
일종의 연계 이벤트로써, 진짜배기 보상은 저 미궁 안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렸다.
“아— 박준모, 너도 드래곤의 보물창고 열쇠, 그런 걸 얻었지?”
- 예, 맞습니다! 2개 얻었습니다!
"너도 보상받으러 가야 하니까, 지금 지상으로 내려와.”
이현욱은 박준모와 김세희를 데리고 팔달산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들보다 먼저, 슬레이어즈 연합 측이 도착해 있었다.
"어라, 왜 길을 다 막고 있는 거죠?”
박준모의 말대로, 그들은 팔달산 일대를 재빠르게 점거하고 봉쇄한 상태였다.
"아마도 저기에 보상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선점하려는 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현욱의 출입만은 막을 수는 없었다.
이현욱은 그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여기저기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노골적으로 날아들었다.
그때, 그의 앞에 에드워드 우즈가 나타났다.
우우우우——
하늘을 뒤덮은 방송용 드론 행렬 아래에서 두 사람이 마주했다.
"......."
잠깐의 침묵, 오묘한 고요함 속에서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울렸다.
저벅— 저벅—
에드워드 우즈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멋졌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이현욱이 그 손을 맞잡았다.
꽤 감정적인 대결이었지만, 마무리는 신사답게 하려는 듯했다.
"이제, 보상을 확인하러 가시죠.”
***
십여 분간 지진이 이어진 끝에 팔달산에 거대한 용암 동굴이 생성되었다고 했다.
이 기적과도 같은 현상은, 오늘날의 인류로서는 꽤 익숙한 장면이었다.
“—저기 산꼭대기 부분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솟아났다고 합니다!”
산 전체를 탐색한 슬레이어즈 길드 측 정찰대가 보고했고, 모두가 그쪽으로 이동했다.
정말로 산정상에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솟아났고, 그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었다.
"자,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서 탱커를 필두로 차례차례 내려갑시다.”
- 주의! 블랙 드래곤 미궁 입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제주도의 만장굴 같은 용암 동굴처럼, 길고 넓고 높은 통로가 이어졌다.
약 5분을 걸어 들어갔으나, 그리 특별한 점을 발견되지 않았는데 …….
"—정지, 앞에 무언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T자 형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음, 영 불길한 거대한 문이군요. 그것도 두 개라니……."
에드워드 우즈의 말대로 좌•우측 모두 거대한 석문이 길을 막고 있었다.
"제가 가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에드워드 우즈의 부관이 그렇게 말하며 문에 다가가서 차례대로 손을 얹었다.
"—좌측이 미궁 입구, 우측이 보물창고 입구라고 합니다!”
그가 소리치자, 에드워드 우즈가 이현욱을 돌아보았다.
"스틸레인, 미궁은 일종의 히든 스테이지겠죠?”
"예,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 미궁 공략…… 같이 하시겠습니까?”
앞서서 드래곤 공략을 앞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우즈는 연대를 제의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핵심이 달랐다. 그때는, 이현욱에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면.......
“……그리고 공략 팀장은, 스틸레인께 맡기겠습니다.”
이번에는 자존심을 굽히고 자신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일종의 화해를 청한 것이었다.
이현욱이 드래곤을 제대로 잡아내는 걸 지켜보며, 그도 꽤 놀랐을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점이 프라이드인 만큼, 그 분야에서 제대로 해낸 이현욱에게 리스펙을 보내는 걸까?
‘이게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됐든 귀찮아질 거다.’
저 안에는 이 이벤트의 ‘진정한 보상’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얻을 방법은 이현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구태여 불필요한 일행을 만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음, 죄송합니다만…… 저는, 따로 공략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현욱이 정중하게 거절하자, 에드워드 우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정말, 끝까지 혼자서 가시겠다는 거군요.”
"음, 혼자는 아닙니다. 저도 제 팀이 있죠.”
"하— 이제는 어느 정도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싫은 내색을 내비치더니, 먼저 걸어 나갔다. 이현욱이 그의 뒤를 따랐다.
"혹시 저 미궁을 누가 먼저 공략할지, 또 경쟁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제가 보기보다 낯을 가려서요.”
그는 하— 하고 냉소를 짓더니, 이현욱을 돌아보았다.
"스틸레인, 우리 병력이 여기에 있죠. 지금 당장 공략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다분히 엄포와 같은 말이었으나, 이현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공략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지, 이현욱은 뻔히 알았다.
‘마지막 문에 도달한 순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거다.’
최종 관문을 돌파하려면, 한 F등급의 플레이어가 필요했다.
그가 누구인지는 최종 관문에 도달해서야 힌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그가 어디에 있는지, 일찌감치 조사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그럼 우선 보물창고부터 확인하죠.”
에드워드 우즈가 언짢은 기색을 삭히며 말했다.
직후, 슬레이어즈 길드원 몇 명이 우측 석문을 열어젖혔다.
쿵——
- 축하합니다! 블랙 드래곤 아지 다하카의 보물창고를 발견하셨습니다!
"우와……."
전설 속 드래곤은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걸 모티브로 한 듯, 사방천지에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와— 이거 깨물어 보니까, 진짜 금인데?”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기만 했다.
"뭐, 금 쪼가리 얻어서 어디에다가 쓰겠어?”
이들이 원하는 진짜 보상은 당연하게도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영 이질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저기, 웬 상자가 가득 있습니다!”
어두침침한 공간에 큼직한 목제 상자, 철제 상자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다.
그곳은 보물창고라기보다는, 흡사 거대한 물류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분,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이게 진짜 보상일 겁니다.”
에드워드 우즈가 선언하듯이 소리친 뒤, 이어서 설명했다.
"앞서서 열쇠를 얻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 열쇠는 여기에 있는 모든 상자를 제한 없이 열 수 있지만, 열쇠는 사용 직후 소멸됩니다. 즉 열쇠 1개당 1개의 상자만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거, 보상이 무작위로 주어지려는 듯합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죠.”
이에 곳곳에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와, 그러면 우리도 1등 보상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거야?”
"후…… 솔직히, 이거 완전히 랜덤이잖아? 나는 내 운을 믿어 본다.”
아주 약간의 기여도를 달성하여 단 1개의 열쇠를 얻은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로서는 어쩌면 팔자에도 없는 전설 등급 아이템을 손에 넣을 기회였다.
"자, 그렇다면 누가 먼저 열지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드워드 우즈가 말했고, 이에 이현욱 옆에 서 있던 김세희가 앞으로 나서며 반문했다.
"잠깐만요, 당연히 최고 기여도 달성자가 최우선 결정자 아닌가요?”
아무리 무작위일지라도, 먼저 뽑는 쪽이 유리한 만큼 순서는 꽤 민감한 문제였다.
그리고 보통은, 공략 이후 기여도에 따라서 보상 우선 선택권—일명 ‘시드권’이 주어진다. 즉, 김세희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관례에 따라서 이현욱이 먼저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에드워드 우즈의 부관이 반문하고 나섰다.
"......음, 우리는 그런 계약서를 쓴 기억이 없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네?”
"그건 상호 합의로 계약서를 쓰고 시작한 '합동 공략’ 시에나 해당하는 거죠.”
이번에는 그런 절차 없이 ‘무제한 경쟁’을 펼쳤으니 해당 사항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게 무슨……."
"김 팀장, 괜찮아요.”
"……하, 알겠어요.”
퍽 억울하지만, 따져보면 저쪽 말이 타당했다.
"이런 걸 정할 때 뭐 거창한 게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제비뽑기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건 아만다 앤더슨이였고, 에드워드 우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나쁘지 않다고 스틸레인, 동의하십니까?”
이현욱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비뽑기가 준비되었다.
그런데 그때, 이현욱의 귓속으로 어떤 대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이봐 릭, 제비뽑기 마법으로 바꿔치기, 가능하지?
그는 근처의 마나 메신저를 모조리 해킹하여, 혹시 모를 상태에 대비 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이렇게 수상한 내용의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잡힌 것이었다.
‘이 녀석들, 제비뽑기를 조작하려는 거군?’
제비뽑기 통 안에 남몰래 마법을 건 뒤에, 그 내용물을 통째로 바꿔치기할 생각인 듯했다.
‘내가 뽑을 때는, 특정 번호밖에 없는 제비로 바꿀 생각인 거다.’
이 조작을 에드워드 우즈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이현욱은 별다른 항의 없이, 순순히 제비뽑기했다.
그 결과, 그가 뽑은 숫자는 무려 17등이었다.
열쇠를 가진 총 18명 중 17등, 마지막에서 두 번째 차례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우즈는…….
"음, 2등이군요.”
2등이라, 아마도 저들 딴에는 오해를 입지 않게 적당히 조절한 듯싶었다.
"……스틸레인, 괜찮습니까?”
그가 확인차 물었다. 솔직히 이건 꽤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빨리 진행하죠.”
그는 정말로, 하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곧 1등을 뽑은 이름 모를 마법사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후......."
꿀꺽—
그의 시선은 오른쪽 구석 가장 큰 상자에 닿았지만, 감히 그걸 넘보진 않았다.
두 번째 순서인 에드워드 우즈에게 그걸 넘겨야 한다는 걸, 눈치껏 안 것이었다.
철컥—
그가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골라서 열었다.
“오......."
그 안에서는 최상급 상태 이상 회복 물약 세트가 나왔다.
시중에 판매한다면, 수억 원을 호가할 물건이었다.
"자, 이제 제가 뽑겠습니다.”
이제 두 번째, 에드워드 우즈의 차례였다.
그는 고민하는 척하더니 역시나 가장 큰 상자를 골랐다.
철컥——
묵직한 울림과 함께 자물쇠가 돌아가고, 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찬란한 빛이 새어 나왔다.
우—우—우—우——
"오, 뭐지?”
심상찮은 반응에 슬레이어즈 길드원들이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온 건, 영 기대에 못 미치는 물건이었다.
"어…… 무슨 보석 같습니다.”
그건 아다만트, 약 11kg 정도였다.
“음......."
값비싼 상당한 양인 건 분명했으나, 1등 보상과는 거리가 먼 물건임이 분명했다.
그는 그 뒤로 꽤 신중하게 상자를 골라서, 나머지 6개의 열쇠를 연이어 사용했다.
철컥—
"......."
하지만 죄다 ‘잡템’이라고 불릴 법한 재료 아이템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철컥—
결국, 죄다 '꽝’을 뽑은 에드워드 우즈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
이에 다른 이들은 그의 눈치를 봤지만, 내심 기대감이 어린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1등이 안 나왔다면, 자신이 뽑을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차라고 부를 수 있는 무작위 상자 뽑기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아이템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에이, 전부 다 그냥 그런 것들이잖아?”
"이거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인데……."
그리고 마침내 17번, 이현욱의 순서가 되었다.
그런데.......
“……어라, 상자가 모자랍니다? 딱 5개 남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상자는 5개, 이현욱이 가진 열쇠가 36개인 걸 생각하면 한참 모자랐다.
"그럴 리가 있나? 시스템이 보상을 초과해서 줬단 뜻이잖아?”
"에이, 어디 구석에 박혀 있겠죠. 자, 모두 잘 찾아봅시다!”
그런데 그때…….
어! 여기 바닥에 웬 문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는 순간,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어? 문이라니……."
"무, 무슨 문이야?”
그의 말대로 방의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있었다.
하지만 종전까지는 상자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 , 이현욱이 그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무래도, 보물창고가 이중이었던 모양입니다.”
진짜배기 보물은, 지금부터 공개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