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수원, 블랙 드래곤 사냥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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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아지 다하카의 목소리가 이현욱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인간 따위가 짐의 위엄 앞에 용게도 꼿꼿하게 섰구나!」
놈은 포효를 내질러서 ‘피어’를 발산한 뒤,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참이었는데, 이내 자신의 눈앞에 멀쩡하게 떠 있는 이현욱을 발견하고 언짢아진 듯했다.
그 붉은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이현욱을 노려보고 있다. 곧장 홰를 쳐 날아들 기세였다.
고—오—오—오——
이현욱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70m가 넘는 거구지만, 제트기처럼 빠른 놈이었다.
놈이 정말 날아들기로 작정한다면 조금만 멈칫해도 저 앞발에 붙잡히고 말 것이었다.
「그래, 그 조잡한 술수를 써서 잠깐이나마 운명을 뒤틀었지만, 그뿐이리라…….」
아지 다하카가 말하는 그 ‘조잡한 술수’는 이현욱의 머리 위에 얹힌 한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성자의 면류관 (특수)
- 효과 : 일시적으로 정신 계열 공격을 무시합니다. (60분)
이현욱은 ‘드래곤 슬레이어’ 업적이 없기에 피어를 피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세계수와 성녀의 도움을 받은 결과물이다.’
세계수의 ‘우듬지’를 재료로 정신 방벽 아이템인 ‘드림캐처’를 제작한 뒤, 그걸 다시 한번 면류관 형태로 개조한 다음, 그 위에다가 성녀의 ‘신성 축복’을 뿌려서 마감한 것이었다.
이 아이템을 착용하면 단 1시간이지만 웬만한 정신 공격에 완전 면역을 가질 수 있었다.
‘정말, 그쪽과 연을 튼 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던 것 같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세계수와 성녀가 아니었더라면, 빙 돌아가야 했을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항시 차선책도 준비했었지만, 이처럼 간편하고도 강력하지는 못한 방법들이었다.
「어떻게든 짐에게 대적해보겠다는 자세는 높게 쳐주겠다만은, 거기까지다.」
그 순간 아지 다하카의 눈이 빛을 내더니, 놈의 머리 양옆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웅—웅—웅—
‘저건, 놈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인 3단 마법 공격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이현욱은 괜스레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 공격을 전생에 몇 차례나 피해 보았던가? 정말 질리도록 피했었다.
‘그리고 맞기도 많이 맞았고, 2차 공략 실패 직후 북악산 대성소로 후송 갔었지…….'
수원에 등장한 앙그라 마이뉴 군단을 잡기 위해서 무려 3차 공략을 시도했었다.
그 전투 시간을 전부 합치면 적어도 8시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그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놈의 공격 패턴을 완전히 외워버린 것이었다.
‘첫 번째는 검은 화살들이 마치 기관총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역시나—
쉬—쉬—쉬—쉬—쉬——!
3개의 마법진이 회전하며 검은빛의 화살을 수백 발 뿜어냈다.
1.5km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힐 정도로 빠른 속도, 그러나 예상한바—
「오호라— 쥐새끼처럼 감도 좋구나!」
아지 다하카의 반응대로, 이현욱은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다음, 머리 위에서 마법진이 생성되고, 불기둥이 내리꽂힌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허공에서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주변에 떠 있던 금속들을 끌어와 한 대 뭉쳐서 철판을 잔뜩 생성했다. 이는 다음, 3번째 패턴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콰—아—아—아—아——!
시야의 사각에서 기습적으로 떨어뜨리는 불기둥이었지만, 이현욱을 맞추지는 못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아지 다하카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역중력을 가해서 몸을 묶은 뒤, 허공에서 창들이 날아든다!’
여기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
웅——
그의 일순간 오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중력 축이 우측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에 몸에 부여된 금속 통제력을 왼쪽으로 당기는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중력이 작용해버렸다.
"큭!"
그렇게 2초 단위로 중력 방향이 뒤바뀌자, 몸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리저리 뒤집히는 게 마치 케이지 속의 작은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 찰나에 방향을 인지하고 자세를 고쳐잡은 뒤 이어지는 공격을 피해내야 한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후긴’의 감각으로 괴이하게 요동치는 역중력의 흐름을 감지해냈다.
그와 동시에, 미리 조형해둔 철판들을 몸 주변으로 둘러서 날아드는 검은 창을 막아냈다.
텅——! 텅——! 텅——! 텅——!
정말 다행히도 그 금속판에 아다만트가 일부 섞여 있어서 관통되지 않았다. 이현욱이 순간적으로 순발력을 발휘해서, 가지고 있던 아다만트 스타를 몇 개 융해해서 합친 것이었다.
「이제 네놈의 재주를 지켜보는 것도 슬슬 질리는구나!」
아지 다하카 콧바람을 내뿜으며 몸 주변으로 검은 창들을 잔뜩 생성했다.
‘이번에는 <추적의 마창>이군?’
한 번 목표로 한 대상을 끝까지 추적하는 마법의 창, 그 패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채꼴로 넓게 펼쳐졌다가 한 번에 모여들면서 사방에서 친다.’
이현욱은 그에 대응한 강철의 방패를 수십 개 만들어서, 몸 주변을 에둘렀다.
"어디, 얼마든지 던져 봐.”
서울이 아니기에 2배의 능력 상승을 얻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 한 달간, 이날을 위해서 많은 금속을 섭취했다.
이내 검은 마창과 검은 강철 방패가 허공에서 부딪히며 불똥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
한편,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킬 더 몬스터> 방송은 난리가 났다.
슬레이어즈 공식 방송 채널이 종료되자, 시청자가 대폭 증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때마침 스틸레인과 블랙 드래곤이 공방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인 순간 시청자가 무려 1억 9천만 명에 이르렀다.
- 이게 무슨 상황이죠? 스틸레인이 지금…… 드래곤과 1대1 승부를 펼치는 겁니까?
- 허— 당장은 일방적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 같지만 실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에게는 화력만 있는 게 아니라, 천부적인 감각과 엄청난 반응속도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그의 화력에 취해서, 그가 오키타 카이토와 1대1 대결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때의 저력이 운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스틸레인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강철비, 즉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에 묻혀 있을 뿐이지, 그의 육체적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에 더불어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 미래 지식까지 더해지며 드래곤의 공세를 제대로 피해내는 명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 어…… 하지만, 사실은 몇 번 잘 피해냈을 뿐이라서 아직 방심하면 안 될 겁니다.
그렇다. 이현욱이 잘 피해냈지만, 아지 다하카는 아직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몇 가지 마법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저렇게 벅차 보이는데, 놈이 직접 움직인다면…….
- 그리고 무엇보다, 스틸레인이 저 괴물한테 과연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 영 의문입니다.
타이론 톰슨이 다시금 회의론을 꺼내 들었다. 그만큼 드래곤은 어려운 상대였다.
- 아직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제 생각에는 모글레이로도 불가능할 거고, 그나마 게 볼그 정도가 되어야지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게 보그는 일회용인 데다가, 한 번 사용하면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고 알려져 있죠.
- 아, 앞서서 DS, 에드워드 우즈가 말한 대로 정말로 ‘드래곤 슬레이어’가 필요한 걸까요?
바로 그때였다.
- 아! 말씀드리는 순간 슬레이어즈 길드가 현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MC의 설명과 동시에 방송 화면에 수원 도심의 한쪽, 넝마가 된 사거리가 비추어졌다.
그곳으로 기갑 차량 몇 대가 들어오더니 갈라진 아스팔트 위로 요란하게 멈춰 섰다.
그리고 에드워드 우즈와 그 휘하 팀원들이 내리며, 각자의 무기로 무장을 시작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은 하나같이 붉은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워낙 유명한 탓에 모든 시청자가 알아차리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 아! 톰슨, 저 붉은 유니폼들이 그 유명한 ‘레드 프로텍터’군요?
- 예 맞습니다! 아직 실전 공개가 한 번도 안 된 드래곤 장비들입니다!
언제나 침착한 목소리로 해설하던 타이론 톰슨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것이 드래곤 장비라면,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이상향 같은 존재였다.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것이었다.
- 그리고 저게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 무기, 롱고미니아드(Rhongomyniad)아닙니까?
그때, 카메라가 에드워드 우즈가 들고 있는 긴 붉은 창을 줌인했다.
- 크…… 진정한 드래곤 슬레이어, 바로 저것이죠.
드래곤을 죽이는 순간,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칭호는 총 두 곳에 붙는다.
플레이어에게 ‘업적’이, 숨통을 끊은 무기에 ‘옵션’ 붙는다.
그 두 가지가 한 명이 지니면, 드래곤을 상대할 때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된다.
- 정말이지, 이 공략의 결과가 다른 의미로 기대되게 하는 장면이지 않습니까?
- 저도 그 생각 중이었습니다. 무려 성체 블랙 드래곤으로 만들어질 장비라니…….
- 누가 그걸 가지게 되든,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여럿 장만하게 되겠죠?
- 그렇죠. 한두 개 아닐 텐데, 씁—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씁—
한편, 그들 뒤로 니샤 케이프, 코도 코시로 등, S등급의 유명 인사도 함께였다.
역사상 몇 번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략 팀이 중요한 순간이 등장한 셈이었다.
- 앞서서 스틸레인의 활약이 두드러졌지만, 지금부터는 DS의 무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아주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이현욱 역시 슬레이어즈 연합 측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 어서 와서 나랑 바통 터치 좀 해주면 좋겠다.’
그는 사실, 지금 드래곤과 맞설 생각이 없었고, 척을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페이즈2가 시작되는 순간, 그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야 한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나는 시점은 ‘페이즈 2’ 시작 직전이었다.
그때까지는 슬레이어즈 측의 공세를 구태여 견제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저쪽에서 작정하고 나섰으니, 그걸 역이용하는 게 좋았다.
'에드워드 우즈라면 페이즈 1을 성공적으로 처리해줄 만한 자다.’
그는 S등급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업적 하나로 최고가 되었다.
이현욱이 죽기 전까지, 그는 총 4마리의 드래곤을 사냥한 진짜배기 드래곤 슬레이어였다.
‘하지만 아지 다하카 공략 때는 영국에서 일어난 모종의 사태 때문에 불참했었다.’
그 때문에 수원의 아지 다하카 공략이 실패에 가깝게 길어졌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현시점은 어쩌다 보니 이현욱에 의해서 우스워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텅——! 텅——!
이현욱은 검은 창을 막아내면서도 슬쩍 고개를 돌려서 슬레이어즈 연합 쪽을 바라보았다.
"......."
약 3.4km 떨어진 지점, 에드워드 우즈 역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어서 그가 명령을 시작했는데, 후긴을 통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전원, 텔레포트 게이트 거점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그러자 슬레이어즈 길드원들이 도심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 이때 벌써 점프 공략 전술을 연구하고 있었군?’
이현욱은 꽤 놀랐다.
한때 논쟁이었던 주제, 드래곤을 상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건 무엇일까?
이에 DS가 단언하기를, 단연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라고 했다.
그건 드래곤이 토해내는 마법의 숨결로써, 절정에 이른 속성 공격이었다.
레드 드래곤의 파이어 브레스, 블랙 드래곤의 어시드 브레스 등…….
그것에 직격당하면 웬만한 수준의 탱커가 아니고서야 즉사하고 만다.
'또한, 그걸 막겠다고 마법 방어막을 쳤다가는 발이 묶이게 되고, 후속 공격에 노출된다.’
마법의 대가인 드래곤은 브레스를 발사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즉, 회피하는 게 정답에 가깝다는 게, DS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웬만큼 빨라도 제트 기류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브레스를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DS는 몇 달을 매진해서 연구했다고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게 바로 저 점프 공략 전술이다.’
드래곤 레이드 지역 주변에 ‘단 거리 워프 스톤’이라는 엄청나게 비싼 아이템을 배치한다.
그 워프 스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나를 주입하면 다른 쪽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했다.
즉, 그걸 사방에 깔아서 브레스를 회피할 수 있는 ‘터널’을 뚫어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공략만으로도 그걸 연구했단 말인가?’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언제 등장할지도 모르는 드래곤에 대응하기 위해서 연구를 거듭한 모양이었다. 그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나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느새 이 일대 곳곳에 ‘단거리 워프 스톤’이 설치되었다.
그 순간, 이현욱에게 유독 두꺼운 ‘추적의 마창’이 날아들었다.
텅——!
"큭!”
강철 방패를 3중으로 해서 막아냈지만, 그의 몸이 튕겨 나가 한 건물 옥상에 처박혔다.
- 아! 스틸레인이 일격을 허용하고 큰 충격을 입은 것 같습니다! 괘, 괜찮을까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슬레이어즈 측도 움직입니다! 제대로 된 공략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이현욱이 이렇다 할 반격을 가하지 못하자 세상의 시선은 슬레이어즈 측으로 집중됐다.
- 스틸레인이 정말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이 무대의 주인공은 DS가 될 듯하죠?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제대로 된 공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 저기 저 플레이어 보이십니까? 허리케인, 코도 코시로입니다.
바람 통제 능력의 S등급 플레이어,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일대의 대류가 급격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기괴한 울음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일대의 공기가 서로 부딪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듯했다. 바람의 움직임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의 먹구름이 휘핑크림처럼 뒤엉키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잡것이 기이한 술수를 쓰는 것이더냐——」
그 현상에 아지 다하카조차도 불편함을 느끼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놈의 붉은 눈동자가 코도 코시로를 찾아냈고…….
"젠장, 브레스다——!”
누군가 고함치며 경고를 날리는 순간, 아지 다하카는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수백 미터를 좁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폭풍—브레스가 소용돌이치며 쏘아졌다.
푸—화—아—아——!
그렇게, 수 킬로미터의 거리가 좁혀지며, 코도 코시로의 머리 위로 브레스가 떨어졌다.
웅——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퍼—어—어—어—어——!
직후, 브레스가 직격한 바닥이 치즈처럼 녹아내리며 긴 구덩이가 파였다.
그곳에 서 있었더라면, 저 산성 브레스에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었다.
약 800m 떨어진 곳, 한 주차장 위에서 그들의 모습이 현현했다.
‘역시나 점프 공략 방식, 잘 준비해왔군?’
저런 식이라면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브레스에 당할 일이 없었다.
이현욱도 새삼스럽게 경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게 바로 ‘레이드’였다. 경험을 통해서 연구를 거듭하고,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최악의 적수에 맞서는 것이다.
후—우—우—우——!
이내 하늘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아지 다하카를 향해 날아들었다.
「감히 나를 떨어뜨리겠다는 것인가!」
아지 다하카는 그 바람을 향해서 날갯짓해서, 바람대 바람으로 맞섰다.
‘하지만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코도 코시로의 바람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개념이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에 신경을 쓰면, 다른 곳에서 허점이 발생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드래곤의 사방으로 몇몇 플레이어 팀들이 분주하게 접근 중이었다.
쩡! 쩡! 쩡! 쩡!
그들의 완드와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간 빛줄기가 하늘에서 터지며 공간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지점에서, 거대한 화염 구체—헬 파이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총 3개였다.
'……저들은 일명 링커들이다.’
보통 십여 명이 함께 시전해야 하는 '링크 마법’을 혼자서 쓸 수 있는 이들이었다.
퍼—엉——! 퍼—엉——!
그것들이 쏘아져, 아지 다하카의 몸에 적중— 그 거구가 수십 미터 뒤로 튕겨 나갔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절대로 데미지 입힐 수 없겠지만, 저 정도라면 기별은 갔을 것이었다.
「감히…….」
그런데 그 타이밍에 <킬 더 몬스터>의 방송 화면이 전혀 다른 곳으로 전환되었다.
- 시청자 여러분, 저희가 충격적인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카메라가 전혀 다른 곳을 비추자, 채팅창은 원성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장면의 실체가 무엇인지 인지하자, 이내 환호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이 , 이거 보이십 니까? 맙소사.......
그곳은 다름 아닌 수원 월드컵 경기장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수백 명…… 아니, 정확히는 1,055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마나 물약을 들이켜며 대규모 광역 마법을 시전 중이었다.
- 여기에서 수십, 수백 명이 한 팀으로 하나의 마법을 계속해서 찍어내는 겁니까?
- 예 맞습니다! 그걸, 링크 마법으로 전장으로 전송해서 블랙 드래곤에게 맞추는 겁니다!
때마침 탄생한 어떤 빙결 마법이 ‘링크’ 마법을 통하여 허공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 허…… 정말이지 경탄이 나올만한 장면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방식의 레이드, 가설로는 많이 들었지만…… 시청자 여러분, 오늘, 레이드의 정점에 이른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직후, 방송 화면은 다시 전장으로 옮겨졌다.
쩌—저—저—저—저——!
어느새 무려 65명이 함께 시전한 ‘프로즌 필드’가 적중, 아지 다하카의 날개가 얼어붙었다.
그렇게 움직임이 무뎌지자, 코도 코시로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나한테 스킬 강화를 걸어줘—!"
그러자 니샤 케이프, S등급의 버퍼가 코도 코시로의 스킬을 두 단계나 강화했다.
"크, 좋아—!”
그의 권능이 대폭 상승했고, 하늘의 구름 하나가 통째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 때 산 하나를 통째로 갈아버렸던 그 허리케인이었다.
그것이 하늘에서 용오름 치며 내려오자, 아지 다하카가 작아 보일 지경이었다.
"좋아, 놈이 떨어진다! 준비 해!”
쿵——!
그리고 기어코, 아지 다하카를 바닥으로 짓눌러버리는 데 성공했다.
- 맙소사— 블랙 드래곤이 추락했습니다!
그 순간, 에드워드 우즈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이다!”
슬레이어즈 길드의 1군인 ‘레드 스팅어’들이 그의 뒤로 도열했다.
"돌격!”
붉은 비늘 갑주를 입은 8명의 플레이어가 텅 빈 4차선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목표는 직선상에 추락한 블랙 드래곤 아지 다하카…….
「……인간들 따위가 짐에게 정면으로 달려들다니, 그 용기가 가상하도다!」
쩍—
놈의 입을 벌어지며, 그 목구멍 끝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 헉! 안 돼! 브레스입니다! 저건 피해야 해요! 지금 당장이요!
그 장면을 바라보는 모두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피하지 않으면, 산성 브레스에 녹아서 형체도 없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칫하지도 않았다.
"—아만다, 이대로 뚫고 들어간다!”
최선두의 에드워드 우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오더를 내리며 땅을 더욱 세게 박찼다.
하지만 아만다 엔더슨, 그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에드워드 우즈의 옆에 나란히 섰고, 둘은 거대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방패는 드래곤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웅—웅—웅—웅—
이어서 뒤따라오는 이들이 온갖 방어 마법을 두 개의 방패에 덕지덕지 발랐다.
그리고…….
기잉——
웬 붉은 보석이 에드워드 우즈의 허리춤에서 떠오르며 빛을 발했다.
‘역시, 이 시기에도 드래곤 하트로 만든 저 실드 장치를 가지고 있었군?’
저건 최강의 마력 응집체인 ‘드래곤 하트’로 만든 마법 방어막 생성 장치였다.
'아마도 현존하는 마법 방어막 중에서는, 가히 최고 수준일 거다.’
웅—!
그들은 붉은색의 방어막을 두른 채, 두 개의 방패를 선두로 하여 맹렬하게 진격했다.
콰—아—아—아—아——!
이내 검은 브레스가 회오리치며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큭!”
"윽!”
두 사람은 강력한 압력을 뚫고 나아가며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마법 방어막 덕분에 브레스의 산성에 직접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압력만큼은 온전히 견더야 했다.
“——계속 가!”
하지만, 전진 속도는 늦춰졌을지언정 전진 방향을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
이내 아지 다하카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울렸고—
퍼—억——!
기어코 놈의 긴 목덜미에 에드워드 우즈의 붉은 창—드래곤 슬레이어이 처박혔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결코 뚫지 못할 드래곤의 배리어, 드래곤 비늘을, 단숨에 꿰뚫었다.
「크아아아——!」
‘그래, 결국은 내가 승리한다.’
그 위대한 순간, 에드워드 우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하늘—스틸레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스틸레인은 여전히 상공에 뜬 채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불현듯, 에드워드 우즈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저 평온하기만 한 표정…… 지금까지, 자신이 가장 잘 짓던 표정이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그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아직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거냐?’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주의! 해당 지역에 아지 다하카의 ‘고유 권역’이 개방됩니다.
마침내, 페이즈 2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