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수원, 블랙 드래곤 사냥 - 1 >
==================================
이현욱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은 당연하게도 엄청난 파동을 야기했다.
- [속보] 스틸레인, 드래곤 공략의 핵심 방법을 알고 있다? 그 진실은……
우선, 그가 가진 ‘확실한 공략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해 초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건 빈말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활약상이 그 근거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우즈의 <슬레이어즈>측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다.
- 슬레이어 대변인 “스틸레인의 주장, 신뢰성 전혀 없어” 협력 거부 의사 밝혀
- 드래곤 슬레이어보다 더 확실한 공략 방법? 과연 근거 있는 말인가?
온갖 매체에서는 온종일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점점 더 큰 이슈가 되어 갔다.
- 드래곤 공략 작전의 지휘권 두고 첨예한 경쟁, 스틸레인 VS 드래곤 슬레이어, 승자는?
이에 양측의 경쟁 구도가 심화되며 드래곤 등장 전부터 불똥이 사방팔방 튀기기 시작했다.
이 흥미로운 싸움에 보다 진득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들이 있었으니…….
‘역시나 슬슬 도박사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전 세계 각종 베팅 플랫폼들이 이 사안을 메인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명 플레이어 간 경쟁 구도라는 판은, 그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소재였다.
그것도 무려 ‘스틸레인’과 ‘드래곤 슬레이어’가 드래곤을 두고 언론전을 펼치다니…….
전 세계의 돈이 몰릴만한, 엄청나게 큰 판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분명했다.
‘이거…… 어쩌면 돈 좀 벌겠는데?’
이현욱 역시 박철수를 시켜서 적지 않은 금액을 베팅으로 굴릴 예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이렇게 소란스러워진 상황이 의외의 이득을 가져다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게 이현욱만이 아닌 듯, 판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
“……저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에드워드 우즈가 호텔 스위트룸의 서재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딘가 우수에 찬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고, 그의 주변으로 4대의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었다.
"3년 전, 런던에 나타난…… 불을 뿜는 거대한 괴물……."
“—드래곤, 사상 초유의 존재의 첫 출연이었죠.”
"예, 그건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습니다.”
그는 앞에 마주 앉은 남자, PD로 보이는 이와 합을 마친 듯 대사를 주고받았다.
"이번에, 두 번째로 드래곤을 마주하게 되셨습니다. 참 악연입니다.”
"아니, 악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갈 길이죠.”
이는 드래곤 공략에 앞서서 홍보용 방송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촬영이 끝나자 PD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길드원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그럼, 내일부터 슬레이즈 길드의 준비 과정을 촬영하러 오겠습니다!”
그 말에서 단순한 홍보용 방송 촬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빅 이벤트를 통째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슬레이어즈, 응원하겠습니다!”
"스틸레인 따위, 박살 내세요!”
이내 카메라맨들이 호텔 방을 빠져나가자, 아만다 앤더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보스, 이거 괜찮은 거예요? 생중계라니…… 우리 팀의 전력이 노출되지 않을까요?”
이에 에드워드 우즈가 싱긋 웃었다. 그의 웃음 속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거야 핵심적인 순간에는 적절히 끊을 수 있도록, 플랫폼 대표와 잘 이야기해뒀어.”
"아, 그래도…… 전투 장면을 생중계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서 솔직히 걱정이에요.”
으레 몬스터와의 전투 장면은 잔혹하기에, 웬만해서는 국영 방송 전파를 탈 수 없었다. 일부 인터넷 플랫폼이 허가를 받고 서비스했지만, 주요 길드는 방송 타는 것 자체를 꺼렸다.
왜냐하면, 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보다 전력 노출이라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었다.
즉,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에드워드 우즈는 이번 승부에 많은 걸 건 것이었다.
"스틸레인의 이유 모를 도발…… 솔직히 한편으로는 걱정되지만, 차라리 잘 된 셈이야.”
그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커피를 한 머금고는, 창밖의 라퓨타를 바라보았다.
"스틸레인, 그는 지금까지 엄청난 활약상을 선보였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팀원들을 쭉 둘러보았다.
"오늘날의 최강의 플레이어를 뽑자면, 그보다 잘난 사람이 훨씬 더 많겠지만, 오늘날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그리고 가장 이슈가 되는 플레이어는 단연 스틸레인, 그 사람이잖아?”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이번 레이드에서 그를 확실하게 이기면, 우리 길드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거야.”
<슬레이어즈>는 영국에서 내는 손에 꼽히는 길드지만, 세계적인 명성은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드래곤 레이드라는, 오직 이들만이 해낼 방법으로 격상의 기회가 왔다.
마스터로서, 이 기회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성체 드래곤을 잡고, 스틸레인이라는 거물을 꺾는다…….'
슬레이어즈에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진정한 빅 이벤트가 열렸다.
***
라퓨타의 오더 타워, 큰 TV 앞 소파에 이현욱, 김세희, 박준모, 이정준이 앉아 있었다.
- ……<슬레이어즈>길드가 드래곤 공략 과정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할 것이라고 밝혀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또한, 그 과정을 향후 다큐멘터리 제작하여…….
"뭐? 생방송이랑 다큐멘터리? 지금 이 상황을 TV 쇼로 만들겠다는 거야, 뭐야!”
그 소식을 접한 김세희가 목소리를 높이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저것들, 아주 대놓고 이 사장님 망신 주고 전 세계에 자랑하겠다는 심보 아니에요?”
이현욱은 솔직히 저쪽에서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에드워드 우즈가 세운 <슬레이어즈>길드는 런던의 드래곤 아성체 사냥이 그 정신적인 기원이었다. 그때 살아남은 이들이 모여서, 그때 얻은 명성과 재력으로 차린 길드였으니…….
즉, 저들로서는 이번 드래곤 사냥이 길드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터였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용해서 길드의 이름값을 드높이고 싶은 게 당연한 욕구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짓밟히는 상황을 방송으로 이용하겠다니, 조금 아니꼬울 수밖에…….
"저 자식들, 입으로는 연대가 어쩌고 하더니 결국은 제 잇속 챙기겠다는 거잖아요?”
"내 말이요! 기록 차원에서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몰라도 무슨 전투를 생방송 한담?”
이정준과 김세희는 한 마디씩, 슬레이어즈 길드를 향한 악담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재앙이 이미 오락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도시가 통째로 날아갈 테고,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겠지만,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TV 앞에서 팝콘이나 치킨을 먹으며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그 시청자들이 눈물짓건, 희열을 느끼건…… 대부분 본능적으로 즐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의 시대에도 먼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땠던가?
과연 누가 어떻게 이길지, 꽤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절대로 적지 않았다.
꽤 불편한 사실이지만, 체감되지 않는 재앙은 너무나 쉽게 오락으로 치환되는 법이다.
"아니 며칠 전에는 연대가 어쩌고 하더니, 쇼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위선자들이네, 완전!”
아무튼, 저쪽에서 진정 쇼를 만들겠다면, 이현욱은 그 쇼를 제대로 장식해줄 생각이었다.
“……저 쇼는 대성공할 겁니다.”
이현욱의 말에 TV 앞에 앉아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응?"
“네?”
모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는…… 우리가 서 있을 겁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쳤다.
"자, 완벽한 서프라이즈 쇼를 위해서 다시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하죠.”
그러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각자 맡은 임무를 시작했다.
이현욱이 짜 놓은 완벽한 공략을 이뤄내기 위한 준비였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자존심을, 의도치 않게 제대로 뭉개게 생겼군?’
에드워드 우즈, 그는 선한 영웅이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프라이드가 너무 강했다.
애초에 그의 현재 정체성은 레드 드래곤 아성체를 잡는 순간에 정립된 셈이었으니......,
‘내가 그걸 건드린다고 해서, 빌런으로 흑화하지는 않겠지?’
이현욱은, 드래곤 슬레이어의 쇼를 통째로 빼앗을 생각이었다.
***
그로부터 7일이 더 지났다.
그동안 <슬레이어즈>길드는 틈틈이 방송하며 관심을 끌어모았다.
- <슬레이어즈>공략팀 인터뷰 제2화, 웨일스의 방벽, 아만드 앤더슨 출연 예정
- <슬레이어즈>방송을 통해 ‘드래곤 무기’ 소개 예고에 전 세계 이목 집중
어느새 여론은 스틸레인보다는, 슬레이어즈 쪽에 보다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이에 더불어서 베팅 사이트의 흐름도 슬레이어즈 측의 우세를 점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일종의 물타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좋아, 그쪽으로 더 쏠려라…….'
자신에게 베팅할 이현욱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무렵, 이현욱에게도 공략 과정을 방송으로 제작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국내의 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 대표가 찾아와서 좋은 조건의 계약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들이 작정하고 홍보한다면 족히 수백억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왔다.
하지만 이현욱은 단칼에 거절했다.
‘무려 드래곤……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피곤해질 만한 일을 만들면 안 된다.’
그러자, 스틸레인 쪽에서 켕기는 게 있어서 촬영을 원천 봉쇄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아마도 제의를 거절당한 그 인터넷 방송 업체 쪽에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듯했다.
- 슬레이어즈 VS 스틸레인, 세상의 선택은 점점 더 슬레이어즈 쪽으로……
그러한 뉴스 기사를 보며, 이현욱은 더욱 가파르게 기울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이틀 후, 슬레이어즈 연합 쪽이 수원 남부에 전진 기지를 마련하고 주둔을 시작했다.
이현욱과 그 휘하 일행들은 여전히 라퓨타에 머물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 드래곤 게이트가 열린다는 정보는 없다.’
도널드 해리스가 예지해준 내용에 따르면, 그 당시로부터 30일 이내라고 했다.
‘그날로부터 오늘이 21일째이니 이제 곧 게이트가 열린다.’
슬레이어즈 측은 그러한 정보가 없음에도 베테랑 플레이어들답게 시의적절하게 움직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빅 데이터 삼아서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걸 직감한 것이었다.
- [속보] 슬레이어즈 연합, 경기 남부로 전 공략 병력 전개 중 (1보)
그 분위기에 맞춰서 대한민국 전체에 일찌감치 비상 대피령이 발령되었다.
전장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경기 남부 모든 주민은 남부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기 남부 일대를 수만 명의 AMT 병력이 포위한 채 차단선을 설치했다.
슬레이어즈의 방송 역시, 자신들의 홍보보다는 한국에 닥쳐올 비극을 어둡게 조명했다. 에드워드 우즈가 한 빌딩에 올라서, 한국인들의 피난 길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 ……정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재앙을, 하루빨리 끝내야만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큰 축제를 맞이하는 것만 같았던 기대감은 하루아침에 강렬한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그 분위기에 맞춰서 하늘도 우중충하게 물들며 어두운 조명을 자아냈다.
우르르르——
경기 남부 일대의 도심이 차갑게 멈춰섰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방송계만은 뜨겁게 돌아갔다.
그리고 36시간 뒤, 마침내, 수원 일대에서 이변이 시작되었다.
- 주의! 해당 지역 내에 ‘앙그라 마이뉴 군단’의 침공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일대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떠오르는 경고성 시스템 메시지…….
이에 모두의 시선이 수원으로 몰렸고, 모든 플레이어가 수원으로 이동했다.
***
재앙의 전조처럼, 한반도는 여전히 먹구름으로 물들어 있었다.
- 자, 오늘도 역시나 온종일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 그렇죠. 드래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항시 대기 중이죠.
-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이것 때문에 잠도 못 잡니다.
미국의 유명한 플레이어 시사 프로그램 <킬 더 몬스터>도 이 사건을 집중 조명 중이었다.
지금은 미국의 플레이어 랭킹 5위인 타이론 톰슨이 나와서 직접 해설을 하고 있었다.
- 자, 뒤에 보시면, 수원 지역의 슬레이어즈 연합의 병력 움직입니다.
그들의 등 뒤 대형 스크린에는 수원 지도와 함께, 슬레이어즈 연합의 배치도가 떠올랐다.
- 총 1,561명, 저 중에서 80% 이상이 B등급 이상의 플레이어인 엄청난 수준의 전력입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수원 일대를 정찰하면서, 게이트를 먼저 찾아내기 위해서 노력 중이죠.
그 순간, 스크린의 화면이 넘어가며 스틸레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 그런데…… 도대체 스틸레인의 전력은 어디에 있는지, 며칠째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음, 그 이유에 대해서 추측해 보건대, 애초에 초반 탐색을 포기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무래도 슬레이즈 연합 쪽의 병력이 월등히 많다 보니까, 초반 대응은 사실상 내어준 거죠.
유명 방송상에서 그런 추측이 오고 가자, 스틸레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심해졌다.
이 흥미진진한 쇼에서 이렇다 할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으니 밉보일 수밖에 없었다.
흡사 복싱 경기에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야유가 쏟아지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한편, 가장 많은 시청자가 몰린 곳은 단연 슬레이어즈 길드의 공식 방송이었다.
- [LIVE] 슬레이어즈 드래곤 공략 OFFICIAL (VIEW:11,194,551)
드래곤 공략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화면에는 에드워드 우즈가 직접 출현하여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는 한 빌딩의 옥상에 선 채 수원 도심을 굽어보는 중이었다.
“저— DS, 바쁘시지 않으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화면 밖, PD의 질문에 DS—드래곤 슬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등장할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인데, 과연 어떤 속성의 드래곤일까요?”
이는 대본에 쓰인 질문으로써, 드래곤 전문가의 모습을 강조해줄 연출이었다.
"음, 알려진 바에 따르며 드래곤의 종류는 색깔에 따라서 다르죠. 제가 죽였던 런던의 드래곤은 ‘레드’로서 화염의 권능을 가졌었죠.
그리고 블랙 드래곤은 예상하기로는……."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어서 설명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다.
"—열렸다!”
지금으로서 열릴 만한 건…… 당연하게도 게이트밖에 없었다.
이에 카메라가 돌아가서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포커싱했다.
한 남자가 옥상 문을 열어젖히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게, 게이트가 허— 5개가, 한 장소에 동시에 열렸습니다!”
무려 5개의 다중 게이트라니…… 역사상 웨이브 외에 그런 게 존재했었나?
그 소식에 슬레이어즈 길드 전원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명령을 기다렸다.
"보스, 이걸 확인하시죠.”
이어서 에드워드 우즈의 부관이 태블릿PC를 가져왔다.
그 화면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마나 드론의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내 방송 화면 역시 그 드론 카메라의 시점으로 전환되었다.
우우우우——
수원의 남부 도심 어딘가, 약 500m의 간격을 두고 5개의 게이트가 쭉 열려 있었다.
그 이글거리는 5개의 보라색 일렁임…… 그 안에서부터 무언가 잔뜩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두로 등장한 건 무려 트윈 헤드 오우거, 그것도 6마리였다.
이어서 빌딩만 한 코끼리들이 줄지어 나왔고, 그 위에 검은 털의 놀들이 타 있었다.
그 뒤로 철제 갑옷을 입은 붉은 피부의 트롤이 대열을 맞춰서 등장했다.
이건 오프닝에 불과했으나 메인 디쉬인 드래곤을 잊게 할 정도로 화려한 전체였다.
“……앙그라 마이뉴의 군단, 저것들이군요.”
에드워드 우즈가 그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카메라가 다시 그를 찍었다.
매우 급한 상황, 하지만 침착한 표정의 에드워드 우즈, 방송 채팅창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가 등 뒤에 짊어지고 있던 자신의 창…… 드래곤 스피어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슬레이어즈 연합의 간부들을 쭉 돌아보았다.
"여러분, 때가 왔습니다. 지금부터 드래곤 공략 작전을 시작—”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끊고, 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NG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멋진 장면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NG…….
하지만 그 소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 스틸레인, 그가, 그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방송 화면이 멈췄다는 착각이 들만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화면에 홀로 잡힌 에드워드 우즈는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무거운 침묵,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 그런 게 화면 한가득 감돌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치 게이트가 어디에서 등장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압도적으로 빠른 등장이었다.
이로써 처음부터 몰아붙여서 스틸레인의 기세를 꺾는다는, 이들의 첫 번째 작전이 수포가 되었다. 그 사실은 아는 슬레이어즈의 간부들 사이에서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
한동안은 정적 후, 에드워드 우즈는 아무렇지도 않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상황을 전 세계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이길이 남을 장면이었다.
여기에서 당황한 기색을 보여준다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었다.
"예상 밖은 아니었습니다. 여기는 한국, 스틸레인의 홈그라운드죠.”
그는 여유롭게 싱긋 웃어 보였다. NG에 대응할 순발력 정도야 차고 넘쳤다.
"자! 잊지 말아야 할 건, 목표는 드래곤이라는 겁니다.”
"아, 그렇다면 일부러 서두르지 않은 겁니까?”
PD가 물었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싱긋 웃어 보였을 뿐이다.
"어차피 1차 분출 때는 드래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스틸레인이 강철비를 내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빨리 1차 분출을 처리할 수는 없을 테죠. 그리고 오히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수원 도심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너무 성급하게 나섰다가 화를 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저희도 빨리 이동해야겠습니다.”
경쟁 상대인 스틸레인을 오히려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장면이 연출되었다.
"저…… 보스, 마나 메신저로 교신이 한 통 들어왔습니다.”
에드워드 우즈의 부관이 마나 메신저를 든 채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네? 누구한테 말입니까?”
"저, 그, 그게……."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으나, 모두가, 이 방송을 보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스틸레인, 그가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연락을 취해온 것이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몰랐지만, 방송 중이기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방송에 노출하지 않고 혼자서만 조용히 통화하는 것도 그림이 영 이상했다.
- 칙— 이현욱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목소리가 슬레이어즈의 방송 안에서 울러 펴졌다.
- 혹시나 해서 미리 경고해 드립니다.
"......."
- 한동안, 게이트 주변에서 벗어나 계시길 바랍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 제 공격에 여러분이 휘말리면 안 되니까 알려드리는 겁니다.
"음…… 저희도 스틸레인의 화력을 잘 압니다만, 글쎄요. 이번에도 먹힐지 모르겠군요.”
강철비, 그게 대단하긴 하지만 트윈 헤드 오우거나 그레이 트롤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선 강화도 때처럼 지뢰를 잔뜩 매설해서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저고도에서 모글레이를 떨어뜨리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도 솔직히……."
- 저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그렇게 마나 메신저 교신이 종료되었다.
일방적인 통보…… 갑자기 난입해서 멋진 그림을 깡그리 망치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에드워드 우즈의 눈썹이 두 차례 크게 꿈틀거렸다.
바로 그때—
“—아군의 북쪽 마나 감지기에 이상한 게 잡혔습니다!”
또 다른 NG가 시작되었다.
"엄청나게 큰 마나 비행체가, 구름 위쪽을 날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름 위, 그러고 보니 하늘은 먹구름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예? 설마 블랙 드래곤이 벌써 등장한 겁니까?”
간부 중 한 명이 묻자, 에드워드 우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테고, 이현욱의 강철 함대 아닙니까? 하— 이거였나?”
하지만…….
“……아니, 둘 다 아닙니다. 훨씬 더 큰 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고—오—오—오——
암막 커튼 같은 짙은 먹구름을 헤집고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마, 말도 안 돼……."
공중 도시, 라퓨타였다.
고—오—오—오——
그 육중한 물체가, 먹구름을 덕지덕지 묻힌 채 가시권, 도심 위에 현현했다.
그 주변으로 강철 함대가 고고하게 뜬 채,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마치 항공모함과 그 주변을 뒤덮은 호위함들, 항공모함 전대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전 세계 사람들은 깨달았다.
그 유명한 라퓨타는 항시 하늘에 떠 있다.
즉, 그 무엇보다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존재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초월급 오브젝트의 첫 번째 장거리 비행, 그 목적은…….
아지 다하카, 블랙 드래곤 사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