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 네크로맨서, 무한한 충돌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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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팽팽한 줄다리였다.
그 어느 쪽도 밀리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미친, 양쪽 모두 전력이 줄어들지 않는 같아!”
“왜 둘 다 마나가 떨어지지 않는 거지?”
“A등급의 마법사 계열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그들로서는 상식 밖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현욱은 심장 자체가 ‘에테르 엔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마나 운용 능력이 엄청났다.
‘그리고 저놈들은 아마도 <영혼 포션>을 무한대로 마시고 있을 것이었다.’
죽음의 사제들은 영혼을 삼킨다면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기에 영혼을 정제한 물약을 제조하곤 했다. CAR에서 보았던 죽음의 사원 같은 곳에서 그런 걸 제조하는 것이었다.
'이 팽팽한 싸움에 균형을 흔들만한 한 방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각종 광역 스킬들은 서울 전장에서 모두 사용하여 쿨타임 중이었다.
그리고 신성력으로 인첸트된 ‘리빙 아머’ 부대도 라퓨타에 두고 오고 말았다.
여러모로 허를 찔린 셈이었다.
‘그래도 쓸만한 게 하나 있다.’
그때 이현욱이 ‘에이션드 아이언 골렘의 코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주변의 금속들이 한 대 뭉치며, 15m, 741t짜리 강철 거인이 탄생하였다.
쿵——!
이현욱은 주변의 금속을 긁어모아서 거대한 도리깨 같은 무기를 만들어냈다.
후—웅——!
그걸 한 번 휘두르자, 수십 마리의 언데드들이 휩쓸리며 수백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어서 두 번째 휘두른 순간, 전장 일면에 깨끗하게 청소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와, 미친— 저거 뭐냐, 진짜 대박이다!”
“저건 월드 보스 몬스터 수준 아니냐?”
그러나 그때, 바닥의 진창을 헤집으며 거대한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푸—화—아—아——
‘드레이크 스켈레톤…… 맞수를 꺼내든 건가?’
CAR 죽음의 신전에서 보았던 적골화 과정의 레드 드레이크 뼈와 같은 놈이었다.
이현욱이 아이언 골렘을 소환하자, 네크로맨서도 그에 대응하듯 다음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현욱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죽음의 도래지다. 놈은 저 너머의 공간에서 이 전장을 지휘하고 있는 거다.’
네크로맨서의 본체는 이곳에 없지만, 이곳을 바라보며 지휘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으로서는 저 진창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놈을 치는 건…… 당연히 자살행위였다.
'그래도 저 스킬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다.’
그 순간,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적골화(赤骨化)된 드레이크 스켈레톤이 바닥을 박찼다.
쿵—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며 맹렬하게 달려들어서 에이션트 아이언 골렘의 몸뚱이를 발톱으로 그었다.
까가가강——!
단 일격에 강철로 만들어진 몸뚱이가 찰흙처럼 찢겨나갔다.
쿵——!
이어서 놈이 꼬리를 휘둘러서 골렘을 넘어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턱을 쩍 벌려서, 머리통을 물어뜯었다.
쩍——
에이션트 아이언 골렘의 머리가 통째로 뽑혀 나가버렸다.
물론 다시 조립되겠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박살 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코어를 뜯기겠군.’
그래도 저 덩치가 몇 분은 버텨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현욱은 모글레이를 떨어뜨려서, 놈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하지만 이내 녹색 빛이 번뜩이더니,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다.
결국, 모글레이를 한 방 더 떨어뜨려서 놈을 재차 박살 냈다.
‘젠장, 이래서는 끝이 없고 결국 점점 밀릴 거다.’
주변을 살펴보니, 언데드 군단이 조금씩 전선을 좁혀오고 있었다.
한데 뭉쳐서 스킬을 뿜어내던 플레이어들도 슬슬 마나 부족과 쿨타임을 직면했다.
“헉— 헉— 아무리 부셔도 주, 줄어들지를 않잖아!”
"정신 차려, 이러다가는 순식간에 휩쓸린다!”
이게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자아내는 힘이라니…….
'이렇게…… 전생보다 훨씬 성장했는데도 놈을 이길 수 없는 건가?’
이현욱은 지금까지 네크로맨서를 경계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장했다.
그리하여 실로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독보적인 화력을 품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네크로맨서를 꺽지 못 한다니……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야? 고든 프라이스, 그 자식이 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일까?’
세상을 착취하고 있는 흑막, 그놈의 엄청난 지원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한 게 분명했다.
이현욱이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스노볼링을 아무리 굴려 나가도, 놈은 애초에 눈덩이 따위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하게 높은 탑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안 돼— 밀린다!”
결국, 플레이어들의 화망을 뚫고, 수백의 블랙 오크 스켈레톤이 ‘신목의 그늘’을 밟았다.
치이이이——
신단수의 신성한 힘이 그것들을 약화했지만, 그 숫자를 줄여주지는 못했다.
"젠장— 탱커들, 충돌에 대비한다!”
퍼—버—버—버——
죽음의 파도가 몰아쳐서, 플레이어들이 세운 방패 장벽에 정면충돌했다.
"크으으—— 버텨——!”
"젠장, 머리 위를 조심해!”
그런데 그것들은 서로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며 방패 위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푹! 푹! 푹! 푹!
그렇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언데들이 탱커들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내리찍었다.
"컥—"
"악!"
"젠장, 무너지면 끝장이야!”
몇몇 탱커가 광역 스킬을 사용해서 다수의 언데드를 밀어냈지만, 잠깐일 뿐이었다.
그리고…….
훙——
그런 난장판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들었다.
그건…… 블랙 오크의 시체, 언데드가 아닌 말 그대로의 죽어 있는 ‘시체’였다.
펑—펑—펑——!
총 3구의 시체가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끄아아——”
“누, 눈이 안 보여!”
그 직접적인 범위에 서 있던 7명이 리타이어 되며 나동그라졌다.
“미친, 날아드는 시체를 요격해—!”
그러나 사방의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머리 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촤—악——!
거친 절단음, 최전방에 서 있던 탱커 셋이 동시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들은 머리가 잘려나가서 한 참 뒤, 프리스트들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 죽음의 축복을 받은 좀비 무사 (LV. 141)
네크로맨서의 권속이 된 오키타 카이토, 놈이 다시 한번 등장했다.
“저 개자식은 뒤져서도 지랄을 하고 다니냐!”
한태산이 놈을 막아섰는데, 순식간에 그의 몸 곳곳에 단검이 처박혔다.
놈의 등과 옆구리에서 뼈다귀 팔이 4개나 돋아나며 동시에 내지른 것이었다.
"큭!"
앞선 오경표와 다르게 그의 단단한 몸은 놈의 참격을 버텨냈으나.......
퍽! 뻑! 뻑! 뻑!
오키타 카이토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공격에 쏟아지며, 한태산을 두드려댔다. 그의 주먹 한 방에 십여 마리의 언데드가 박살이 났지만, 그 공간을 또 다른 언데드가 메우며 몰아쳤다.
"젠장, 너무 좁아서 뭘 할 수가 없잖아!”
이렇게 아군이 다닥다닥 붙은 전장은 한태산이라는 괴물이 날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아군까지 그의 공격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난장판에서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은 더욱이 미친 짓이었다.
너른 공간이라면, 심연의 호흡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자살행위였다.
즉, 전황 자체가 너무나 불리했다.
“사, 살려— 컥—!”
사방에서 절규와 신음과 단말마다 울려 퍼졌다.
'……후퇴해야 하나?’
이현욱마저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스틸레인, 자기가 요즘 그렇게 대단하던데, 쯧— 막상 보니까 영 별로인 것 같아?”
건너편 하늘에 떠 있는 묘령의 여인…… 밴시였다.
"아! 저기 저 친구 보여? 자기, 눈이 꽤 좋은 것 같던데 보이겠지?”
플레이어 대열의 좌측면, 검은 갑옷의 거구 둘이 거대한 뼈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퍽——!
그들이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플레이어들이 서너 명씩 나가떨어졌다.
- 데스 나이트 (LV. 101)
- 데스 나이트 (LV. 154)
'저건.......'
미래와 과거, 두 윌리엄 버나드를 ‘데스 나이트’로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자기도 저 친구들처럼 꽤 멋들어지는 새 운명을 하사받을 수 있는데, 어때?”
이현욱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저 여자라도 죽일 채비를 했다.
“아니면 내 주인님께서, 자기를 요리해서 먹으면 어떤 효과를 얻을지, 기대......."
그때였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초광역 텔레포트 ‘와이트 홀’이 열립니다.
그 혼란 속에서 모두의 눈앞에 그러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한때 플레이어였을 밴시 역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
어느새 하늘에 거대한 백색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고리 안쪽의 공간이 구겨지듯 일렁이더니—
쩌—엉——!
공간이 찢어지며 막대한 마나가 터져 나왔다.
"포, 포탈? 저렇게 큰 포탈이 있다니……."
그렇게 열린 차원의 문— 그 건너편의 공간이 올려다보였다.
거대한 백색 나무가 짙은 마나를 방출하여, 일대에 아지랑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수십 층짜리 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그 중심에 거대한 백색 돔이 보였다.
“차드 공화국……."
마치 개미가 되어서, 한 그루의 나무를 올려다보는 것만 같은 기이한 감각이었다.
‘이건…… 세계수의 힘으로 여는 초광역 텔레포트다.’
그 안에서부터, 푸른빛의 비공정이 내려오고 있었다.
"저건…… 테세우스의 배다!”
"설마 세계수의 관리자가 온 거야?”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차드 공화국에 있는 아이템형 비공정인 테세우스의 배, 그게 강화도 하늘에 나타났다.
이어서 그곳의 하단부가 열리더니—
파—자—자—자——!
강력한 전류 다발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플레이어들의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류가 아주 깔끔하게 언데드만을 노려서 지져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감전된 언데드들의 몸뚱이가 마치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지며 흩어졌다.
이어서 어디에선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그것들을 죄다 하늘로 띄워버렸다.
후—우—우—우——!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빛줄기가 회오리바람을 내리쬐었다.
치이이이——!
그렇게, 수백의 언데드가 완전히 리타이어 되어 희뿌연 먼지로 산화했다.
이현욱은 테세우스의 배, 그 안에 타고 있는 게 누군지 알아챘다.
“아—”
이현욱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잊고 있었던 힘이 생각났다.
‘그래, 내가 이 세계에서 키워온 건…… 나 자신만이 아니다.’
우우우우——
이내 테세우스의 배가 조금 더 고도를 낮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금발의 여인이 허공을 걸어 나왔다.
성녀, 에밀리아 뮐러였다.
그녀가 이현욱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두 손을 모았고, 그 두 손 사이에서 강렬한 빛이 피어났다.
우우우우——
직후, 와이트 홀 안쪽의 세계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계수 아래에 자리한 세인트 돔, 그 백색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보석— 신성 오브젝트로부터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줄기는 ‘와이트 홀’을 통하여 공간을 초월하여 강화도를 전체를 백색으로 물들였다.
그러자, 일대를 뒤덮고 있던 심연의 호흡이 씻은 듯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일부 언데드들은 그 빛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하— 이게 뭐지? 성녀가 없는 걸 확인하고 친 건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네?”
밴시, 그녀는 여전히 냉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원래도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얼음장처럼 변해서 당장이라도 깨질 듯했다.
그때, 그녀의 몸이 검은 연기로 휩싸이더니, 하늘을 향해, 성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후우우우——
그리고 성녀의 바로 앞에서 연기를 헤치고 나와서, 긴 손톱을 휘둘렀다.
"죽어—!”
그런데, 밴시의 몸이 허공에 턱— 하고 걸렸다.
어느새 허공에서 뻗어 나온 백색 쇠사슬이 밴시의 목덜미를 움켜쥔 것이었다.
그리고 에밀리아 뮐러가 노기 어린 표정으로 밴시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하, 이런 씨발…… 내가 암살 좀 몇 번 당할 뻔했다고, 이렇게 개 무시를 받네?”
그녀가 손을 뻗자 더 많은 빛의 사슬이 생성되며 밴시의 몸 곳곳에 옭아맸다.
촤르르르 =!
"그것도, 썩은 내 풀풀 풍기는 시체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대가리를 들이밀어?"
다른 계열이라면 몰라도, 어둠 계열의 존재 앞에서의 성녀는 상성 상 최강이었다.
이내 마치 능지처참을 하듯 쇠사슬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맑게 갠 하늘에 울려 퍼지는 밴시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그 장면 아래에서 언데드 군단은, 황망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 군세는 막강했다. 언뜻 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심연의 호흡이 사라지고 오히려 성스러운 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전세 역전이다.’
그때, 에밀리아 뮐러가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바뀐 것 같으니까, 내 말을 따라요.”
이현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현욱의 모든 무기에, 한층 더 짙은 신성력이 담겼다.
"스틸레인, 당신이 가장 잘하는 대로, 남김없이 쓸어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