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35화 (135/221)

135화.  < 차원 이동자, 메인 퀘스트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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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이 얻은 두 번째 삶, 그 방향은 오로지 하나였다.

전생보다 강해져서, 전생의 실패를 다시 겪지 않는 것…….

그리하여 그는 새로이 주어진 모든 시간 동안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금속을 집어삼키고, 아이템을 긁어모으고, 기회를 잡아챘다.

그 결과 지금, 전생과 비교하여 몇 배나 더 강해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냈다.

"......어, 어떻게 이 정도에 이를 수 있는 거지?”

그걸 알 리가 없는 윌리엄 버나드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서 넋이 나가버린 상태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와는 조금도 같지 않은, 사실상 지옥에 뛰어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역사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거는 조금이 아니잖아!”

그는 악다구니를 내뱉으며 머리 위로 날아드는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이현욱이 만들어낸 거대한 강철의 손이 마치 벌레를 내리치듯 추락한다.

그 무게만 해도 몇십 톤, 손가락 한 마디의 두께가 사람 몸통만 했다.

훙——

윌리엄 버나드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모글레이를 들어 올렸다.

"그래 봤자, 금속 덩어리일 뿐이다!”

그의 힘이라면 저런 강철 덩어리 따위, 얼마가 날아오든 박살 내 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2t짜리 거검을, 산이라도 쪼갤 듯이 온 힘을 다해 휘두르는 순간—

"어?”

거대한 금속 손이 흐물거리며 다시 ‘융해’되더니…….

쉬—쉬—쉬—쉬—쉬——!

일순간, 수백 개의 가시로 변해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역시나 멍청하군?”

이현욱이, 마치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평가했다.

"젠장!"

그는 바닥을 박차며 뒤로 빠졌고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가시밭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저—정——!

파쇄, 사방을 메우고 있던 금속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날카로운 파편이 날아든다.

"큭!"

이어서 지척으로 날아와 있던 ‘운사암수’가 전류를 내뿜었다.

파지지지——!

그는 살갗을 파고드는 전류의 흐름을 ‘기’를 통해서 차단, 상체에만 묶어둔 뒤 뒤로 빠졌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빠지든 간에 그곳에는 이현욱의 덫이 놓여 있었다.

“젠장—젠장—젠장—!”

사방, 모든 곳이, 이현욱의 통제를 받는 금속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

‘이거…… 예전처럼 완전히 잡아 먹혔다.’

이는 퍽 익숙한 경험으로, 과거의 악몽이 물큰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형의 복수를 위해서 이현욱을 수차례 노렸었으나 번번이 실패했었다.

바로 지금처럼.......

‘아니야,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단 한 번을 노리면 이길 수 있다.’

그는 모글레이와 같은 큰 공격을 경계하며 곧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가 그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쩡——!

지금까지 그의 몸을 두드려대던 금속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에, 그는 앞으로 엎어졌다.

“헉!”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그는 정신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며 이어지는 공세를 피해냈다.

고개를 돌리자, 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는 손잡이가 짧은 망치 한 자루가 보였다.

"저건 묘, 묠니르? 설마 묠니르까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쉭——!

오른쪽 사각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 날아들었고, 그는 간신히 모글레이로 몸을 가렸다.

카가가가——!

그 순간 웬 원반 형태의 칼날이 모글레이의 표면을 긁고 튕겨 나갔다.

그것이 스쳐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붉은 잔상이 긴 물감처럼 이어진다.

"미친, 수다르사나잖아?”

이로써 전설 등급 아이템이 벌써 3개째 등장했다.

경계해야 할 건 3자루의 모글레이만이 아니었다.

‘잠깐만, 이러면 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

아무리 최고의 전사 계열 플레이어일지라도, 전설 등급 무기의 공세를 버티는 건 무리다.

‘젠장, 우선은 공격보다 방어에 집중한다.’

그는 모글레이에 집중되어 ‘기’를 몸으로 호신강기로 변환, 온몸을 에둘렀다.

콰—가—가—가—가——!

그의 몸에서 피어난 단단한 기의 방어막이 날아드는 금속 조각들을 죄다 튕겨냈다.

이렇게 하면 잡다한 금속 무기는 무시하고 오로지 전설 등급 무기만 신경 쓰면 된다.

‘비록 모글레이의 파워는 확연히 약해지지만, 놈의 공세를 무력화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 생각마저도 방심이었다.

쉭——

직후, 웬 금속이 그의 호신강기를 너무나 쉽게 뚫고 들어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팔뚝을 들어 올려 목덜미를 가렸다.

한 발의 화살이 팔뚝에 처박히더니, 벌레처럼 파고 들어왔다.

"큭! 내가 쏘았던 페일노트의 소유권을 벌써 확보한 거냐?”

그것은 마법 저항력 무시 효과가 있기에 호신강기마저 두부처럼 뚫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컥!”

이어서 옆구리에서 또 다른 통증이 올라왔다.

"뭐, 뭐야……."

고개를 돌리니 옆구리에 팔뚝에 박힌 것과 같은 화살…… 페일노트가 박혀 있었다.

그게 하나가 더 있다는 것 역시 예상 밖이었기에 미처 대응할 수 없었다.

“야—이 개새끼야! 도대체 아이템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세를 피하면서도 이현욱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침착해…… 점멸 쇄도, 쿨타임이 끝나면 한 번의 기회가 온다. 이제 13초…….'

이내, 때가 왔다.

번쩍—

그가 땅을 박차는 순간, 허공에서 몸이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50m 앞에서 나타났다.

번쩍— 번쩍—

이어서 2번의 점멸 쇄도, 또 한 번 이현욱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두 남자가, 수십 미터 허공에서 눈을 마주쳤다. 이현욱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됐다, 걸렸다!’

이번에는 적어도 ‘글레이프니르’는 없었다.

‘혹시 뭐가 더 있더라도, 글레이프니르 정도 되는 건 없을 거다!’

단 일격이면 된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면서 모글레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이현욱의 양 손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났다.

"또 뭐야?“

한 쌍의 창과 방패가, 그의 양손에 생성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더 빠르다!’

2t의 거검이 방패를 피해서 이현욱의 머리통을, 정확히 내리쳤다.

'됐다!’

퍽— 소리와 함께 저 재수 없는 놈의 몸뚱이가 통째로 양단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마치 장난감 검으로 내리친 것처럼 텅— 맥없는 소리가 울리는 게 아닌가?

이 정도로 허무한 반응은 방어막에 막힌 게 아니었다.

“......무적?"

그제야 저 두 종류의 아이템의 모양새가 꽤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다름 아닌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로서, 사용자가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된다.

“와— 이 씨발 새끼, 진짜 가지가지 하네……."

그의 입에서는 당황보다는 억울하다는 듯한 조소가 피어났다.

지금 이 순간이, 오랜만에 유치한 악몽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푹——!

그러나 그의 복부에 아킬레우스의 창이 처박혔고,

진한 고통이,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자각하게 했다.

- 주의! 당신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 젠장……."

어디에선가 힐이 쏟아져 내렸다.

아마도 이 시대의 빌런들의 지원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처는 그것만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어느새 이현욱의 손에는…… 웬 샷건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그건 또 뭐야?”

그 생각이 채 끊기기도 전에, 총구에 붉은색 마법진이 떠올랐다.

콰—앙——!

폭음…… 일순간,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콰—앙——!

재차 폭음, 삐—— 하는 이명이 울려왔다.

‘이거 위험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을 구르며 그 총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방금, 아킬레우스의 창에 꿰뚫리며 몸을 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일부 소진되었다.

그 틈을 파고드는 강력한 총탄들…… 이걸 계속 맞으면 죽고 만다고, 그는 직감했다.

콰—앙——!

또 한 방 허용했고, 자신이 몸이 걷어차인 깡통처럼 날아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허공에 뜬 상태에서도 감각을 집중해서 바람을 찢는 소리를 감지— 그쪽으로 모글레이를 휘둘렀다.

쩡——!

시야를 잃은 와중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글레이를 쳐낸 것이었다.

그러나 직후, 무언가—아마도 묠니르가 척추를 후려쳤다.

뻑——!

바닥에 처박힌 뒤 데굴데굴 굴렀다. 양 팔이 탈골되고 정강이가 직각으로 꺾였다.

‘좇 됐다.’

거듭된 충격에, 간신히 붙잡았던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몸을 짊어지더니 바닥을 박차고 비상하는 게 느껴졌다.

"아오, 정신 차려! 그냥 막 들이대는 걸 보아하니, 내가 맞긴 맞나 보네, 이 병신......."

이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즉, 윌리엄 버나드였다.

"하…… 존나 멋있게 나타나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그의 어깨너머로, 형인 해리 버나드가 한태산과 싸우다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빌런들이 행동을 개시하여 이현욱을 노리고 들자 이현욱 쪽에서도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플레이어 간의 난전이 벌어졌는데, 현재로서는 빌런 측이 밀리고 있는 듯했다.

“큭— 고맙다, 과거의 나…… 역시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는 건가?”

"지랄, 여기에서 나가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거지?”

그러나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는 대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미안하지만…… 여기에서 나갈 수 없을 거야, 너는……,"

"응? 나? 나만? 왜? 그거 영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다 좋은 말이야. 내가 네 몫까지 열심히 해서, 초월할 테니까……."

푹!

그 순간, 무언가가 과거의 윌리엄 버나드의 복부를 관통했다.

“컥— 도, 도대체 왜……."

모글레이, 그 자루를 쥔 건 미래의 윌리엄 버나드였다.

그의 눈에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초월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력이 빨려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 축하합니다! 타 차원의 ‘자신’을 흡수하여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50%)

"후…… 미안하지만, 과거의 나를 죽이는 게, 내 초월 퀘스트 중 하나여서 말이야.”

“컥— 커……."

"너무 서운해하지 마. 전부 다 무의미한 삶이야. 이 게임의 진실을 안다면 말이지……."

그런데 그때…….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 도래지’가 선포되었습니다!

난데없이, 모두의 눈앞에 그러한 시스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꾸득— 꾸득—

어느새 일대의 지면이 검은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그 기이한 장면을 모두가 목격했는지, 일순간 전투가 멈췄다.

이내 요란한 소음이 쥐죽은 듯이 가시고 기묘한 침묵만이 감돈다.

그 사이에서, 진창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만이 나직이 울리고 있었다.

"왔다……."

어디에선가 빌런 중 한 명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정된 대로 ‘저택 지하’라고 불리는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들조차 겁에 질린 듯했다.

꾸득— 꾸득—

그리고…… 그 진창에서 무언가 올라와서 윌리엄 버나드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응?"

그건, 손이었다.

"시발, 이게 뭐야!”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 게 자신의 몸에 들러붙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꾸득— 꾸득—

그 형태를 보건대 적어도 이현욱의 스킬은 아니었다.

치이이이——!

오히려 그 주변으로 다가오는 금속들이 전부 산화되고 있었다.

“큭, 이 힘은 설마……”

꾸득! 꾸득!

수십 개의 검은 손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온몸을 휘어 감았다.

‘움직일 수 없다.’

그때, 몇 미터 떨어진 진창 속에서 흑발의 여인이 기어 올라왔다.

츠츠츠츠——

갓 태어난 듯 점액질로 뒤덮인 새하얀 나신, 그 창백한 피부 위로 시퍼런 핏줄들이 돋아나서 꿈틀거린다. 두 눈은 루비처럼 붉었고, 이빨은 짐승처럼 날카로웠으며, 혀는 뱀처럼 길었다.

이 차가운 아름다움…… 그는 이 여자의 정체가 뭔지 알아차렸다.

"배, 밴시, 잠깐— 날 죽이지 마!”

그러자 여자의 눈동자가 빛났다.

"응? 뭐야…… 자기, 나를 알아?”

그 여자가 천천히 다가와서는 긴 혀를 내뻗어서 그의 목덜미를 훑었다.

"나를 딱 보면 모르겠어? 윌리엄 버나드야! 응?”

그가 사정하듯 말했지만, 여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미안하지만, 자기가 방금 진짜 윌리엄 버나드를 죽였잖아?”

밴시라고 불린 여자가 고개를 돌려서 바로 옆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모글레이에 관통된 뒤 바닥에 널브러진 과거의 윌리엄 버나드,

그의 시체는 검은 손에 의해서 진창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안 돼!"

그때, 어디에선가 해리 버나드의 절규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제 동생이 죽은 것을 이제야 확인한 듯했다.

"—밴시, 지금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하지만 밴시는 그 절규를 무시하고는, 미래의 윌리엄 버나드를 바라보았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미래에서 왔어! 그, 그러니까 나를 살려주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줄—웁!”

검은 손아귀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심하게 당하고 있던 거 알아? 완전 바보 등신처럼…… 풉!”

밴시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 주인께서는 자기를 죽여서 더욱 충직한 부하로 삼았으면 하는데, 어때? 멋지지 않아?”

그녀의 차가운 손이 다가와서 얼굴을 쓸어내린다.

‘아…….'

그가 아는 이 여자의 주인, 일명 ‘저택 지하의 아이’는 쉽게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이 여자도, 그 주인도 아닌, 체어맨과 이야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란 걸, 그는 직감했다.

‘씨발, 제일 먼저 초월 퀘스트로 입장했는데 이렇게 실패한다니…….'

어느새 온몸을 칭칭 감은 망자의 손들이 입안으로 긴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컥! 컥! 컥!”

한편, 이현욱 역시 그 기이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 죽음의 추종자 ‘밴시’ (LV:143)

언뜻 봐서는 플레이어처럼 보이는 저 여자는 시스템상 NPC, 그러니까 몬스터였다.

아마도 원래 플레이어였겠지만, 누군가의 권속이 되면서 ‘몬스터화’했을 것이었다.

'……일단, 메인 퀘스트를 위해서는 내가 차원 이동자를 죽여야 한다.’

이현욱은 밴시를 향해서 총공세를 퍼부었다.

웬만한 금속은 그 검은 진창 주변에 닿기만 해도 연기처럼 녹아버렸으나,

조금 더 두껍게 조형하면 어떻게든 버틴 뒤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콰—과—과—과—과——!

그러자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땅속으로 가라앉듯 사라져버렸다.

이현욱은 바로 그 빈틈을 노리고, 2발의 페일노트를 쏘아 보냈다.

푹! 푹!

이번에는 정확히, 윌리엄 버나드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2번 : 차원 이동자 살해>의 첫 번째 분기점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우선 됐다.’

그 직후, 금속 일부를 쇠사슬로 만들어서 모글레이에 묶은 뒤 잡아당겼다.

텅——!

그 거검이 매섭게 날아와, 그의 손아귀에 안착했다.

- 모글레이(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미래에 그가 썼었던 그 모글레이가 차원을 건너서 그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로써, 모글레이가 총 4개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새 다시 나타난 밴시가 이현욱을 올려다보더니 싱긋 웃고 있었다.

“아—주인님께서 찾는 좋은 식재료가 있다더니, 바로 자기구나?”

윌리엄 버나드의 피가 바닥을 타고 흘러서 그녀의 나신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것들이 뒤엉키며 핏빛의 비늘 갑옷으로 변했고, 그녀의 오른손에서부터 붉은색의 지팡이가 피어났다.

이어서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검은 진창 속에서 웬 스켈레톤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 죽음의 사제 (LV. 112)

총 6마리, 제주국제공항에서 싸웠던 악마의 군단 속 죽음의 사제와 같았다.

‘하지만 레벨이 훨씬 높다.’

그 뒤로도 진창 위로 검은 손들이 비죽비죽 올라온다.

꾸륵— 꾸륵—

두 번째로 등장한 트롤 스켈레톤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웬 항아리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저건…… CAR에서 발견한 죽음의 사원에서 봤던 심연의 호흡 단지잖아?’

직후, 그것들의 뚜껑이 일제히 열리며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푸쉬이이——

마치 바다 안개 밀려오듯, 검은 안개가 일대를 빠르게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뭐야!”

컥"—!”

그걸 호흡한 플레이어들이 ‘저주’에 빠지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수, 숨이…… 쉬어지지 않아!”

“헉— 나한테 정화 마법 좀 걸어줘!”

차원 이동자의 습격 직후 플레이어 대다수가 이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남아 있던 이들과 ROK AMT 병력만 해도 백여 명이었다.

"저, 저기 봐! 신단수 근처는 멀쩡해!”

"큭— 모두 정신 차리고 저쪽으로 가자!”

그들은 빨리 도망치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신단수의 그늘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였다.

끄에에에——!

그들을 향해서, 좀비 검사 한 마리가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어?”

촤—악——!

단 일격에 3명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헉! 조심—컥—"

이어서 2명의 머리가 더 잘려나갔다.

그들 모두 B등급 이상의 플레이어였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즉, 일개 좀비라고는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막을 테니까, 모두 신단수로 뛰어—!”

결국, 오경표가 좀비를 막아섰다.

이현욱은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오경표 씨, 안 됩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챙!

오경표의 창이 놈의 칼을 막아냈다.

그때, 좀비의 등—날개 뼈 부근을 뚫고, 2개의 뼈다귀 팔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팔은 각기 쿠크리(Kukri)를 쥐고 있었다.

그것들이, 오경표의 사각을 향해 휘둘러졌다.

촤—악——!

"큭?”

그 찰나의 순간에 목이 날아가는 건 면했지만, 오른쪽 손목이 절단됐다.

만약 한태산이 나무를 뽑아서 던지지 않았더라면, 뒤이어서 목이 날아갔을 것이었다.

"아니, 저거…… 그 사람 아니에요?”

그 좀비의 정체를, 몇몇은 알아보았다.

- 죽음의 축복을 받은 좀비 무사 (LV. 141)

그런 괴이한 이름의 좀비는 아직 썩다 말아서 얼굴 가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오키타 카이토.......'

이현욱에 의해서 붙잡혔고, 지금은 플레이어 감옥에 수감 되어 있어야 할 놈이다.

그런데 왜 저런 비루한 상태가 되어서 나타난 건지…….

아무래도 누군가 감옥에서 빼돌린 뒤,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 주체가 누구인지는 뻔하지…….'

이현욱은 적의를 담아서, 지상을 장악해나가고 있는 검은 ‘영역’을 바라보았다.

꾸륵— 꾸륵—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진창’이 마치 썰물처럼 몰려와서 일대를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했기에 세상이 일변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순간에 지옥도에 빠진 것처럼 기묘하고 불쾌한 광경이, 시야를 가득히 메웠다.

그리고 그 검은 풍경의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들이 포착되었다.

우어어어——

검은 진창 안에서부터 소환되는 스켈레톤들도 있었으나, 그건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이 근처에 죽어 있던 블랙 오크의 사체가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부는 좀비로, 일부는 스켈레톤이 되며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쥐고, 녹색 안광을 켰다.

검은 안개 안에서 수백…… 수천 개의 안광이 점등하며, 녹색의 은하수를 이룬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었다.

이현욱은 오랜만에,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일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네크로맨서…… 놈이 왔다.’

그래, 이 모든 건 죽음의 군단장 네크로맨서의 권능이었다.

‘미친…….'

이현욱은 새삼스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놈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잖아?’

설마 이현욱이 빌런들의 계획을 연달아 망쳐버린 게 원인일까?

아무래도 놈들이 네크로맨서라는 최종 병기를 키우는 작업에 속도를 붙인 듯했다.

‘젠장, 이렇게 되면…… 그냥 성녀를 데려올 걸 그랬나?’

설마 여기에서 네크로맨서를 마주하게 될 줄은, 그로서도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후회 따위는 남기지 않는다.’

전생의 후회를 뒤로하고 두 번째 삶을 치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 따위, 절대로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최근에 얻은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철컥—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르게틀람(전설)

- 효과

1) 고상한 자의 지휘 : 모든 무기, 모든 권속에 ‘3단계 신성’ 효과가 부여됩니다.

2) 치유 권능 : 상처 부위에 얹고 마나를 불어 넣을 시 ‘2단계 치유’ 효과를 발휘합니다.

3) 클리브 솔리스(조건 필요) : 현재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놈에게 대응하기 좋은 물건도 얻었으니…….'

이현욱은 그것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 아르게틀람의 스킬 ‘고상한 자의 지휘’가 발동합니다!

우우우우——

이 아이템은 모든 무기에 3단계의 ‘신성력’을 부여한다.

웬만한 플레이어는 많아 봤자 2개의 무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즉, 이 아이템의 실질적인 적용 범위는 2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현욱의 경우는 확연하게 달랐다.

‘나는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를 컨트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엄청난 숫자의 무기를 신성함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

"후......."

이현욱은 왠지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마침내 네크로맨서, 놈의 병력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최악의 위기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전생에는 죽음이라는 불길이 모든 걸 태우며 몸집을 불리는 것을, 끝내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거다.’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정진해왔는지도 올랐다.

덜그럭! 덜그럭!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정면으로, 수많은 언데드 군단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걸 내려다보는 이현욱의 등 뒤로, 수천 개의 신성 무기가 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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