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34화 (134/221)

134화.  < 차원 이동자, 메인 이벤트 - 2 >

===================================

"이야— 여기 무슨 큰일 났었나 본데? 사실상 전쟁터잖아? 이때 이런 이벤트가 있었나?”

블랙 게이트에서 나타난 거구의 남자가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서 무거운 침묵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

난데없이 열린 검은색의 게이트도 이상한데, 거기에서 나온 단 한 명의 플레이어라니.......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나만 이해가 안 돼?”

"나도 감이 전혀 안 오는데, 왠지 모르게 영 불안하다.”

"저 사람, 플레이어 맞긴 한 거지? 그리고 저거, 그 모글레이 아니야?”

이곳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장면은, 그들의 유구한 경험을 토대로도 좀처럼 해석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목격하는 미증유의 현상 앞에서, 그들은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건 단연 윌리엄 버나드 본인이었다.

그는 검은 구슬을 토해낸 후유증 때문이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그 검은 구슬에서 자신과 닮은 이가 걸어 나왔으니 말이다.

"너…… 누구냐?”

윌리엄 버나드가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씩 웃더니, 그를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거검—모글레이를 가볍게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쿵—

2t짜리 거검이 바닥에 내리박히며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그건 모, 모글레이…… 그게 왜……."

"야, 딱 보면 모르겠어? 이 잘생긴 얼굴 말이야.”

"어, 얼굴…… 시발, 대체 왜 나랑 똑같은 거지?"

그래, 두 사람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남자의 얼굴에 더 많은 흉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던 윌리엄 버나드는 고개를 돌려서 제 형을 찾았다.

"형, 나 꿈꾸는 거 아니지?”

그러자 그 남자도 함께 고개를 돌리더니, 이번에는 해리 버나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와…… 형 얼굴 진짜 오랜만에 본다. 하하—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정말로 윌리엄 버나드인 양 형이라고 부르더니 우수에 찬 표정이 되는 게 아닌가?

해리 버나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썹이 두 차례 꿈틀거렸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등 뒤에 검을 뽑아 들 듯이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설마, 형도 이 잘생긴 얼굴을 몰라보는 거야?”

"넌 도대체 뭐지? 설마 도플갱어인가?”

"으하하— 그래,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해!”

한편, 그의 입에서는 ‘늪지환각초’라는 마약성 소비 아이템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즉, 진짜 플레이어가 맞을지라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 건 분명했다.

그는 충혈된 눈을 빠르게 끔벅이더니, 고개를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치켜들며 히죽 웃었다.

"으흐흐......."

어딘가 묘한 웃음, 당장 터질 것 같은 폭탄 혹은 굶주린 맹수와 같은 위험함이 느껴졌다.

“……하긴 아직 한참 빌런 놀이랑 가디언 놀이할 시점이니까,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한가?”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빌런들은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온 세상이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음습한 비밀을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이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미래의 윌리엄 버나드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 놈의 거지 같은 비공정이 이렇게 많…… 응?”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섰다.

프리드웬, 그 앞에 서 있는 남자…… 바로 이현욱이었다.

"허…… 이건 또 뭐냐?”

그는 반가움인지 놀라움인지 혐오감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철대제……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스틸레인이 아니라 강철대제, 그건 전생의 별명이었다.

"와…… 이게 도대체 뭐지? 넌 원래 아직 자기 능력 성장 방법을 모르고 있어야 하잖아!”

"......."

"이상하다…… 평행우주라서 역사가 다를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다르다고?”

쩍—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땅에 내리박힌 모글레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턱을 긁적거리며 이현욱을 향해 절그럭— 절그럭—걸어왔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고, 저 재수 없는 무기 박스를 벌써 개발한 거냐? 내 기억상으로 앞으로 적어도 5년, 아니 6년 뒤여야 하는데…… 내가 다른 시간대로 온 건 아닐 테고……."

이 대목에서, 이현욱은 저놈이 자신의 회귀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전생에서 찾아온다길래 혹시나 자신을 잡으러 오는 킬러가 아닌가 했는데, 적어도 그건 아닌 듯했다.

"넌 누구지?”

이번에는 이현욱이 물었다.

사실 그로서도 여러모로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랜만에 추측조차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저 자식이, 전생에 자신을 죽였던 바로 그놈이라는 것…….

그 사실을 되새기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 일차원적인 본능을 차분하게 억눌렀다.

‘복수, 그것보다 중요한 건…… 대체 왜 차원 이동을 해왔는가, 그것이다.’

그게 이현욱이 회귀한 이유, 더 나아가서 이 게임의 정체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

이현욱은 침착하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면서도 전투를 준비했다.

8년 뒤의 놈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한태산보다도 강한 전사 플레이어였다.

즉, 방심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갈기갈기 찢겨 죽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이현욱이 죽은 뒤로, 놈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진짜 방심한 건 바로 저놈이다.’

저 여유…… 원래도 오만한 성격이지만, 지금은 유독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긴 나라도 8년 전의 세계로 간다면, 뭐든 손쉬워 보였을 거다.’

즉, 놈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게 만만해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8년 후의 나보다 한참 강하다.’

바로 그 아이러니함을 노려야 한다.

놈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를 테니…….

"넌 누구길래 나를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거지?”

이현욱은 모르는 척, 다시 한번 물었다.

"어, 음, 내가 뭐냐면……."

그러자 놈은 반쯤 풀린 눈을 끔벅이며 고민하더니, 품속에서 웬 물약을 꺼내어 삼켰다.

아마도 늪지환각초인 듯했다. 그 직후, 별안간 비릿한 미소를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크——그래, 정했다. 난 이제부터…… 미래에서 온 재앙이다.”

그 다소 과장된 대답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미래에서 왔다니, 그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꽤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그 미래에서 내가 널 죽인 사람이라면 믿겠냐? 으흐흐—”

"서울을 함락하고 목각 망치로 네 머리통을 깨는데 어찌나 느낌이 좋던지—!”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다음 순간에 AMT 생활관에서 눈을 떴고, 그게 지금의 삶이었다.

그때 놈이 뒤를 돌아보며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는데, 이현욱은 후긴을 통해서 엿들었다.

"아, 형! 내가 좋은 거 알려줄까? 저기 저 새끼가 나중에 꽤 큰 걸림돌이 되거든?”

"어이없겠지만, 형이 쟤한테 죽게 돼. 근데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죽여버릴 테니까……."

그렇게 말 한 뒤, 다시 한번 늪지환각초를 들이켰다.

“크— 내 말 알아듣겠어? 저 새끼, 가디언 최후의 무기가 되는 놈이니까, 지금 쳐야 해.”

"너는 도대체…… 정말로 네가 미래에서 온 윌이라는 거냐?”

"하, 그렇다니까? 형 그 멕시코 쌍년이랑 결국 잘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둘만이 아는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고 가자, 해리 버나드의 표정이 이채가 어렸다.

“하— 정말로 윌이 맞긴 한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형, 일단은 내가 여기에 계속 존재하려면, 어떤 퀘스트를 해야만 하거든?”

이현욱은 그 대목에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현욱이 저놈을 만난 게 ‘메인 퀘스트’ 때문인 것처럼, 저놈도 이곳에 온 이유가 어떤 퀘스트 때문이라는 뜻이었으니…….

"윌, 혹시 그 퀘스트가 뭔지, 말해줄 수 있나?”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난 일종의 재앙이야. 그러니까……."

미래의 윌리엄 버나드가 그렇게 말하며 모글레이를 들어 올렸다.

“……재앙답게, 이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해.”

우우우우——

그 순간, 일대의 마나가 놈의 모글레이 검 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

"지금 저거 뭐 하려는 거야?”

이현욱은 놈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아차렸다.

전생의 모글레이에는 바람의 정령의 힘인 ‘실프의 오브’가 적용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마나 폭검’과 ‘스페이스 커터’라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모두, 지금 당장 피해요.”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를 쥔 채 그렇게 말하며 몸을 띄웠다.

이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는 폭풍이 휩쓸릴 것이었다.

그때, 마나 메신저에서 강서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도대체 이거 무슨 일이에요? 우리도 그냥 나갈까요?

그녀를 비롯하여 서울에서 함께 온 플레이어들은 프리드웬 안에 타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우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로 한 것이었다.

"일단, 거기에서 주변의 다른 플레이어들을 감시해주세요.”

그 순간, 놈이 배트 스윙을 하듯 모글레이를 크게 휘둘렀고—

번쩍—

섬광— 그 거검이 어느새 오른쪽 어깨 뒤에서, 왼쪽 어깨 뒤로 가 있었다.

콰—과—과—과—광——!

직후, 흡사 제트 엔진 수십 개가 일제히 가동되는 것과 같은 폭음이 터지며 공기가 출렁거렸다. 모글레이가 다량의 마나를 빨아들여서 압축해 놓았다가 일제히 터뜨린 것이었다. 놈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땅이 부채끌 모양으로 헤집어지며 ‘마나 폭풍’이 불어 닥쳤다.

"으아아아——!”

그 폭풍의 영향권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속절없이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하지만 저건 일종의 ‘광역 군중 제어 스킬’일 뿐, 진짜 무기는 따로 있었다.

‘온다.’

저 공격에서 뒤이어서 발생한 보이지 마나 칼날 ‘스페이스 커터’가 날아든다.

그것이, 폭풍 속에서 균형을 잃고 유영하는 모든 것들을 양단해버렸다.

촤—자—자—자——!

테러,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무차별적인 습격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휩쓸렸다.

"미친— 가, 갑자기 뭐야!”

"젠장, 전투 준비해!”

일부 플레이어가 반사적으로 마법 공격을 날렸고,

십여 발의 마법 세례가 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쾅—쾅—쾅—쾅——!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은 웬 마법 방어막에 의해서 막히고 말았다.

그건 놈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 다른 누구의 지원이었다.

‘보나 마나 빌런 놈들이다.’

빌런들 역시 이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했겠지만, 뭐가 됐든 엄청난 기회라고 판단한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에서 이현욱을 노릴 준비를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역시 내 친구들, 눈치가 아주 빠르네? 하긴, 그러니까 결국 빌런이 이긴 거겠지?”

윌리엄 버나드는 그렇게 말하며 이현욱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걸 눈치채고 피하다니, 이 시대의 너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구나?”

"으흐흐—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너는 내 먹잇감일 뿐이야.”

쾅— 놈이 바닥을 박찬 뒤 이현욱을 향해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이제 점멸 쇄도를 쓸 거다.’

그건 일정 거리를 순간이동으로 주파하여 적에게 접근하는 격투가 계열의 이동 기술이었다.

이현욱은 전생에 놈과 수차례 싸웠기에 놈의 공격 패턴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번쩍—번쩍—번쩍—

‘뭐야?’

이현욱이 기억하기로는 1번밖에 쓸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런데 방금, 무려 3번이나 점멸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젠장, 그동안 꽤 성장한 모양이다!’

그렇게 고작 3m 앞까지 다가온 놈이 씩 웃는 게 보였다.

‘이건, 죽는다.’

어느새 머리 위로 모글레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웅——

2t짜리 칼날이 머리 위로 날아드는 순간, 이현욱은 고이고이 숨겨두었던 수를 꺼냈다.

이현욱의 왼손 팔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 문신—글레이프니르가 쏘아져 놈의 몸에 휘감겼다.

“억—!”

- 당신은 ‘굴레이프니르’에 속박되었습니다!

* 10분간 자력으로 해제할 수 없습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이 봉인됩니다.

이어서 운사암수를 뽑아서 놈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 찰나의 순간, 놈은 몸을 뒤틀어서 어깨—갑옷으로 칼날을 막아냈다.

이어서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이현욱을 향해 브라질리언 킥을 날렸다.

‘이건 그냥 막으면 안 된다.’

그 어떤 스킬도 담겨 있지 않지만, 극에 이른 전사 계열 플레이어의 발차기다. 함부로 막았다가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것이었다. 이현욱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이현욱의 머리 위로 온갖 금속 무기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쉬—쉬—쉬—쉬——!

그가 손짓하자 놈을 향해서 수백 개의 강철 무기들이 비처럼 쏘아졌다.

"큭! 이런 개 같은……."

글레이프니르에 의해 완전히 결박되었으니, 후속 공격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었다.

“윌—!"

그때, 해리 버나드의 외침과 함께, 놈이 차고 있던 반지가 빛을 발하자…….

- 글레이프니르가 제삼자에 의해서 해제되었습니다.

‘젠장, 염력 반지인가? 역시나 글레이프니르를 염두에 두고 있었군?’

글레이프니르는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지만, 타인의 접촉이 있으면 아주 쉽게 풀린다. 빌런 측은 이현욱이 그걸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만큼, 해제할 방법을 준비해둔 것이었다.

"젠장, 저 새끼가 이걸 왜 가지고 있는 건데—!”

지상에 착지한 놈이 글레이프니르를 벗어서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이 세계,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가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더니, 허공 아공간을 생성, 그 안에 손을 넣고 롱보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화살 하나를 꺼내어 시위에 걸었는데, 이번에도 아주 익숙한 아이템이었다.

한 번 겨눈 대상을 추적하여 피격하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 화살…… 페일노트였다.

‘내 유품을 저 자식이 다 가져갔군?'

기기기기——!

최소한 장인 등급의 롱보우가 최대 장력으로 당겨지더니, 페일노트를 뱉어냈다.

쉭——!

이현욱은 허공에서 몸을 틀었으나, 역시나 유도 미사일처럼 페일노트가 쫓아온다.

쩌저저저——

이현욱은 주변의 금속을 모조리 끌어와서 몸 주변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금속 구체가 몸 주변을 빽빽하게 감싸며 시야가 제로로 변했지만, 금속들을 감지하여 주변 상황을 파악해냈다.

쩍——!

페일노트가 금속 구체를 뚫고 들어왔으나, 이현욱은 몸 주변에 삼중의 철판을 생성했다.

텅! 텅! 텅!

페일노트는 2개 철판을 더 뚫은 뒤, 3번째 철판에 박히며 멈춰 섰다.

이현욱은 그걸 잡아챘다.

- 이미 ‘소유권자’가 있는 아이템입니다.

* 강제 획득을 위해서는 ‘5분간’ 몸에 지니십시오.

즉, 5분이 지나면 페일노트가 2개가 된다.

‘이거 이러면, 괜히 기대하게 되는데…….'

그때, 머리 위에서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금속 구체의 뒷부분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모글레이가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금속 구체를 양단해버렸다.

쾅——!

조금만 늦었더라면 깨진 달걀 안의 병아리가 될뻔한 것이었다.

쾅!

이어지는 발길질— 직접적인 타격은 피해냈으나 공기가 폭발, 이현욱의 복부에 부딪혔다.

뻑——!

“큭!"

이현욱은 순식간에 30m 밖으로 밀려났다.

그때 놈이 창 던지기를 하듯, 모글레이를 집어던졌다.

훙——!

그대로 꿰뚫리고 말 순간—

쾅——!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내리꽂히며 놈의 모글레이를 강타했다.

두 거대한 무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서 바닥에 내리박혔다.

그런데 그 두 개 모두…… 2t짜리 거검 모글레이었다.

그 순간, 의기양양하기만 했던 놈의 눈이 처음으로 커지며 그 안에 황당함이 담겼다.

"뭐야, 저 모글레이 서, 설마…… 네가 조종하는 거야?”

놈은 이제는 분명한 역정을 품은 채, 고개를 홱 돌려서 해리 버나드를 바라보았다.

"형!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뭐?”

"왜 형의 모글레이가 벌써 쟤한테 있는 건데! 응?”

그 물음에 해리 버나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그는, 애초에 모글레이를 소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 하는 건지, 그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모르겠다.”

"진짜 씨발, 이 세계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자신이 기억하는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실하게 느낀 것이었다.

"후…… 하지만 네가 모글레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8년 전에 불과……."

웅——웅——

이현욱의 등 뒤로, 또 다른 모글레이가 그것도 2자루나 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레플리카…… 그것도 두 개나 있어?”

이내 총 3자루의 모글레이가 수평으로 누우며 놈에게 겨누어졌고,

이현욱이 그를 내려다보며 지상을 향해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하늘에 일정한 간격으로 전개해 있는, 총 30대의 AD-2가 눈에 들어왔다.

우우우우——

그것들의 아공간에서부터, 수많은 강철 무기들이 쏟아져 내리며 하늘에 도열했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마치 블라인드를 친 듯 햇빛을 부분적으로 가려버렸다.

그 아래 서 있는 이들은, 자신의 강함과 무관하게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스스스스——

또한, 바닥 위로 온갖 금속 조각들이 흡사 벌레 떼처럼 기어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큰 전투가 벌어진바, 이현욱이 쓸 수 있는 금속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이 죄다 모여들어서 어느새 이 장소를 원형으로 둘러싼 상태였다.

"……설마, 지금까지 저걸 끌어모으고 있던 건가?”

그렇게 물은 건 해리 버나드였다. 그는 이현욱의 은밀한 의도를 깨달은 듯했다.

"이봐, 미래의 윌…… 너도 눈치챘겠지만, 사방이 놈의 무기로 가득하다.”

"내가 더 잘 알아! 나는 저 새끼로 여러 번 싸워봤어! 그래 봤자 8년 전……."

이번에도 그의 말문이 중간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두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이게 뭐야……."

그의 예리한 감각 속에, 주변에서 움직이는 금속의 무게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미래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속이 한 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부정하듯 고개를 내저었다.

"왜, 왜 이렇게 많은 거야? 8년 전인데…… 이건 말도 안 되잖아?”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글— 부글—

사방에서 모여든 엄청난 양의 금속들이 일제히 융화되며 쇳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그렇게 피어난 불꽃에 의해서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들었을 때, 이현욱의 발이 지상에 닿았다.

그가 윌리엄 버나드를 향해서,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 시작했고,

마치 용암을 몰고 가듯, 그의 양옆으로 쇳물이 넘실거리며 흘렀다.

‘역시…… 내 주변에 충분한 금속만 모인다면, 놈은 내 상대가 못 된다.’

이현욱이 윌리엄 버나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또 뭘 가지고 있지? 어디 다 꺼내 봐.”

“……뭐?”

"아이템, 괜찮은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는데, 그 미소 안에서 왠지 모를 탐욕이 느껴졌다.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네가 알던 세계와 다른 세계와 다르다.”

이현욱이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장면 바라보는 순간, 윌리엄 버나드는 오랜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허—”

그래, 미래의 이현욱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과 별개로 그는 단 한 번도 이현욱의 공세를 뚫어내지 못했었다.

아무리 파고들려고 해도, 거리를 벌리며 쉬지 않고 몰아치는 강철 무기들…….

그 앞에서 먼저 지치는 건 결국 그였다. 즉, 완벽한 상성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여기는 8년 전이 아니던가?

당연히, 자신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내가 너희보다 앞서 나간다.”

말도 안 되게도 이곳의 이현욱은, 8년 후의 이현욱보다 훨씬 더 성장한 상태였다.

콰—아—아—아——!

그때, 그의 양옆에서 흐르던 쇳물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로 뒤엉키더니, 이내 거대한 손의 형태로 변했다.

"네가 미래에서 온 재앙이라고 말했었지?”

강철로 만들어진 거인의 손이, 놈들의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혔다.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미래에서 온 선물 상자 같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