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33화 (133/221)

133화.  < 차원 이동자, 메인 퀘스트 - 1 >

===================================

전쟁 이벤트가 끝난 뒤, 강화도에 초월급 오브젝트로 추정되는 게 등장했다고 한다.

강화도는 블랙 오크 군단의 전초기지였던 만큼, 그곳에 메인 보상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오브젝트가…… 나무 형태라는 말씀입니까?”

이현욱은 프리드웬에 올라타며 이교준 팀장과 마나 메신저로 교신 중이었다.

그는 헬리콥터 안에 있는지, 소리를 지르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예, 그게 맞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신단수라는 이름입니다!

"신단수라면, 설마 단군 신화에 나오는 그…….”

-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자세한 건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혹시 전쟁 이벤트 보상으로 뭐 얻으신 건 없습니까? 4차 웨이브 때, 라퓨타의 마스터키를 얻은 것처럼요!

그 물음에 이현욱은 품속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고대 국가의 유물

- 효과 : 알 수 없음

“……그런 걸 얻긴 얻은 것 같네요.”

- 역시나 그렇군요.

이교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일명 팔주령, 청동 방울의 한 종류인 의기(儀器)였다.

이 물건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천부인(天符印) 중 하나인 듯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고대 국가는 고조선을 의미하는 걸까?

‘물론, 역사적 의미의 고조선은 당연히 아닐 것이었다.’

이 게임은 신화, 설화, 역사 등에서 모티브를 딴 몬스터와 아이템이 등장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모티브일 뿐, 그 실질적인 형태는 완전히 다르기 마련이다.

- 일단 지금 바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 모두의 눈앞에 신단수가 생성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서…… 막고 있기는 한데, 주변에 바글바글 모여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견물생심이라고, 초월급 오브젝트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국내외에서 몰려온 ‘지원 플레이어’들은 함께 전쟁을 치른 아군이었으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애초에 보상을 노리고 참전한 용병들이란 언제든지 도적이 될 수 있으니…….

‘그리고 실제로 도적이 놈들도 상당수 섞여 있기도 할 테니…….'

- 그리고 ‘가면’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전장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감시망이 허물어졌고요.

여기에서 ‘가면’이란, 정체를 숨기고 잠입한 테러리스트들, 즉 빌런을 뜻했다.

이현욱은 마나 메신저 교신을 종료한 뒤 강화도로 갈 준비를 했다.

"이 나라에도 신성력을 품은 오브젝트가 탄생한 거 맞죠?”

그렇게 말한 건 옆에 앉아 있던 성녀, 에밀리아 뮐러였다.

이현욱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느껴지긴 하네요.”

그녀는 신성 계열 최상위 플레이어이기에, 먼 거리의 강력한 신성력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래요? 나무 형태라고 하는데, 설마 세계수 정도입니까?”

이현욱이 기대를 품고 물었지만, 그녀는 고민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음, 아직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급이 좀 낮긴 해요.”

하긴, 차드 공화국에 탄생한 ‘세계수’는 북유럽 신화 속의 우주수 ‘위그드라실’이다.

보통, 아이템과 오브젝트의 등위는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의 영향력에 따라서 결정되는 편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신단수는 위그드라실 보다 격이 낮게 설정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세계수와 비슷한 게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이 될 거다.’

서울의 <라퓨타>, 강원도의 <불의 성역>, 강화도의 <신단수>까지…….

이 땅 곳곳이 특별한 힘으로 개조되었고, 전부 이현욱의 권한이었다.

또한, 앞으로 신성력이 담긴 무기를 제조하기에 용이해질 듯했다.

"저도 가서 자세히 살펴봐 줄까요? 가까이에서 보면 더 잘 느껴질 텐데요."

이현욱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 생각에는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일단 라퓨타에 계시죠.”

"응? 왜요? 나만큼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놈들이, 거기에 잔뜩 모여 있을 겁니다.”

이현욱은 누가 들을까, 작은 말로 말하면서도 빌런이라는 말은 삼갔다.

"제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제 저도 방법이 다 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부디 최선의 선택을 합시다.”

이현욱이 강경하게 말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가 누구 때문에 살아있는 건데…… 네, 말 잘 들을게요.”

얼마 전, 네크로맨서가 이미 활동에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이상, 빌런 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성녀를 제거하려고 할 터였다.

향후 죽음의 군단이 움직일 때, 그녀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테니…….

그렇기에 에밀리아 뮐러는 라퓨타에 대기하기로 했다.

한편, 이 현장에서 함께 싸운 이들 모두가 강화도로 함께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화도, 거기에 뭐가 나타났다면서요?”

"그렇다면 우리도 가도 되는 거겠지?”

"어, 그럼 저도 가볼래요! 이건 못 지나치죠.”

그들 역시 어떤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플레이어로서의 직감과 본능을 느낀 것이었다.

하긴, 이렇게 힘든 레이드를 치러냈는데 보상이 주어지는 자리에 빠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다.’

애초에 이 정도 전력이 한 자리에 있다면, 빌런 측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다시금 강화도로 향했다.

그 시간 동안, 이현욱은 한 가지 아이템을 자세히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파편(특수)

- 효과 : 알 수 없음

이 정도가 본디 공개된 정보인 듯했는데, 이현욱의 눈에는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보였다.

* 숨겨진 정보 : 차원의 파편을 모아서 ‘블랙 게이트’를 열 수 있다.

이는, 호루스의 눈을 삼킨 뒤 얻은 <인사이트 렌즈>를 통해서 숨겨진 정보를 본 것이었다.

‘차원의 파편이라…….'

어쨌든, 이거 하나만으로는 그 블랙 게이트란 걸 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러면 앞으로 고대 신을 몇 번 더 격파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 게임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뭐가 됐든, 언젠가 그 안을…… 더 나아가서 진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었다.

***

서울 서해안의 가장 큰 섬인 강화도, 그 전역이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현욱의 ‘발파 작전’으로 일어나 화염이 아직 죽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뒤에도 몇 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섬 전체가 숯덩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메케한 연기로 가득한 섬을, 플레이어들은 빠져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욱 깊숙이, 섬 안쪽 어딘가를 향해서 경쟁하듯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오—저기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강화도 남부의 평야, 한 저수지 인근이었다.

그 주변 역시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여 곳곳에 흉물스러운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그런데 그 한쪽 부근에 웬 이질적인 백색 광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와......."

그리고 그 광채 너머의 어떤 것을 목격한 순간, 플레이어들은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웅——

본디 논밭에 불과했던 곳에, 찬란하게 빛을 내는 5m짜리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얼핏 봐도 평범한 나무가 아닌 게, 뿌리에서부터 백색의 빛이 타고 올라오며 줄기를 거치게 눈으로 보였고, 그것이 모든 이파리로 뻗어 나가서 사방으로 신성한 일렁임을 뿜어냈다.

웅—— 웅——

그리고 더욱 가까이 접근하자, 그 찬란한 힘이 몸에 닿는 게 느껴졌다.

- 신목 ‘신단수’의 그늘 안에 입장하셨습니다.

* 모든 회복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모든 상태 이상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 모든 어둠 계열 주문이 약화합니다.

* 일대에 ‘마나 생태계’가 구축됩니다.

* 일대에 ‘성역’ 효과가 적용됩니다.

"와, 이거 진짜로 세계수랑 비슷하잖아?”

"그러게, 세계수 미니어처 같은 건가?”

물론 그 크기나 그 힘은 차드 공화국의 세계수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건 세계수가 워낙 사기적인 존재라서 그렇지, 이것도 가치를 책정할 수 없는 최고등급의 오브젝트였다.

그런데…….

“……이 이상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어! 거기 플레이어님, 더 다가오지 마십시오!”

ROK AMT 병력이 신단수 주변을 막고 플레이어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 우리는 구경도 하면 안 되냐? 왜 저렇게 과민 반응이야?”

"어이가 없어서…… 우리는 안 싸웠냐! 썅, 보상은 공평하게 나눠야 할 것 아니야!”

"우리 길드원이 3명이나 죽었는데, 이딴 식으로 찬밥 대우를 한다고?”

- 자, 진정하시고, 이미 소유권이 있는 아이템이고 그 소유권자가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 뜬 헬리콥터에서 확성기를 통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주인이 누군데 접근도 못 하게 하냐? 우리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좀 나눠 먹읍시다! 우리가 이 나라 구해준 거 아닙니까?”

플레이어계에서 아이템이나 오브젝트의 소유권은 보통 ‘시스템 판정’으로 정해진다.

쉽게 말해서, 기여도가 얼마인지에 따라서 시스템이 아이템을 소유권을 주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먼저 습득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단순무식한 방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저게 진짜로 소유권이 있는 아이템인지, 한 번 만져라도 보자는 거 아닙니까?”

즉, 소유권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대놓고 군침을 흘리는 하이에나들이 들끓기 마련이었다.

- 죄송합니다만, 소유권 강제 이전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접촉은 절대 안 됩니다!

"아니, 내가 저렇게 큰 오브젝트를 훔쳐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그냥 한 번 만져나 좀 봅시다! 무슨 퀘스트나 추가 보상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어느새 수백 명이 신단수 근처로 모여들어서 격한 혼란이 빚어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전투의 흥분을 씻어내지 않은 상태인 만큼, 당장이라도 큰일이 터질 것만 같이 위태로웠다.

한편, 그들 사이에는 ‘빌런’들도 섞여 있었다.

"부장님, 저것도 결국 그놈의 손아귀에 들어갔겠군요?”

“쯧, 그렇겠지…… 하필이면 신성한 나무라니, 영 좋지 않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측은 암흑 계열이 주류이니……."

이들은 <반고>길드원이라는 신분으로 위장한 ‘암성’ 조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이현욱이 블랙 오크의 보스 몬스터들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약 2시간 전, 눈앞에 전쟁 이벤트 공략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현욱에 의해서 전쟁 이벤트는 ‘공략’된 게 분명했다.

"이현욱…… 놈이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그렇게 작전이 완전히 실패했음에도, 그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다음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다음 작전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의 옆으로 거구의 남자 둘이 다가왔다.

“핏불 형제, 오랜만이군?”

그들은 핏불 형제라고 불리는 해리 버나드와 월리엄 버나드였다.

미국의 무소속 플레이어들로서, 최고의 탱커 용병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강력한 플레이어이기 이전에 사기적인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둘 다 2m가 넘는 거구인 데다가 육중한 철제 갑옷을 걸치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니 위압감이 상당했다.

"워…… 이 꼰대 같은 아저씨가 이번 작전 책임자였어?”

동생, 월리엄 버나드의 말에 암성의 저우웨이 부장이 피식 웃었다.

"꼬맹이, 그 입 좀 조심하거라…… 목표물 잡기 전에 너부터 잡는 수가 있다.”

"뭐? 으하하— 아저씨가 날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은 솔직히 아니지 않나?”

"지난번에 나한테 까불었다가 얼음벽에 갇혀서 낑낑거렸던 거 기억 안 나나?”

"그게 몇 년 전인데, 그걸 물고 늘어져? 역시 꼰대들, 과거의 영광에 빠져 사는구나?”

양측은 음습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였지만, 무조건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자, 둘 다 인사는 그쯤 하시고, 목소리 좀 낮춥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튀는 불똥을 중재하고 나선 건 해리 버나드였다.

그는 레드 버서커라는 별명과 달리 꽤 진중한 사내인 듯했다.

"그리고 저우웨이 부장, 우리 쪽에서 리스트 밖의 지원군이 올 예정입니다.”

해리 버나드의 말에 저우웨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거, 우리 어르신께 보고된 내용인가?”

"미안하지만, 우리 쪽 체어맨이 비밀리에 준비한 무기입니다.”

"이거야 원…… 이렇게 비협조적이어서야, 어떻게 같이 합을 맞추겠는가?”

체어맨과 어르신, 양 국가의 빌런 수장들의 비밀스러운 호칭이었다.

“……저택 지하실 문이 오늘, 개방될 예정입니다.”

"음? 저택 지하실이라면, 그 식인 플레이어를 말하는 건가?”

그 물음에, 해리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고 저우웨이가 혀를 쯧 찼다.

“하— 그 키도 다 안 자란 꼬맹이를 벌써 실전에 내보내도 되는 거야?”

"나이랑 덩치 따져서 줄 세웠으면, 제가 제일 앞일 겁니다. 그 꼬맹이…… 괴물입니다."

그때,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동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드디어 놈이 왔군……."

어느새 백색의 비공정이, 서쪽으로 가라앉는 태양 빛을 마주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봐, 왔다! 역시나 스틸레인이 돌아왔다!”

이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이러면 진짜로 스틸레인이 신단수의 소유주인 거야?”

"뭐, 사실상 이번 전쟁 이벤트 최대 공적자일 테니까……."

그가 구태여 이 섬에 다시 올 이유는 신단수 말고는 없었다.

우우우우——

프리드웬이 신단수 근처에 이르러서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 찬란한 비공정을 가까이에서 보자, 플레이어들은 절로 기가 죽었다.

"와, 개 멋있고 한편으로는 개 얄밉네…… 뭘 저렇게 많이 가지고 있냐?”

“라퓨타, 비공정, 온갖 마법공학 장비도 모자라서, 이제는 신목이냐?”

한편, 꽤 이름이 있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스틸레인 견제론이 솔솔 나오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세계수의 관리자 된 도널드 해리스가 얼마나 가파르게 성장했다던가?

그리하여 그 남자는 오늘날, 사실상 세계 최강자 혹은 이인자 정도로 평가되고 있었다.

그런데 초월급 오브젝트를 2개나 가지게 된다면, 그 잠재력은 측정 불가였다.

즉, 머지않아서 국제 사회를 쥐고 흔들만한 거물이 될 터,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갑자기 누가 미친 척하고 쟤 기습해서 죽이면, 완전 대박 아니겠냐?”

"으흐흐…… 그럼 나는 잽싸게 모글레이 들고 튀어야겠다!”

"야, 네가 그걸 들 수나 있을 것 같냐? 그 존나 센 샷건 챙기는 게 최고다.”

이렇듯, 헛된 망상을 품을 만큼, 이현욱이 지닌 아이템의 가치는 막대했다.

우우우우——

그런데 프리드웬 뒤로 십여 대의 비공정이 대형을 이룬 채 날아들었다.

그리고 저 먼 하늘의 가시권에 거대한 ‘워 박스’까지 떠 있었다.

사실상 보란 듯이 온갖 무장들을 촌동원해서 머리 위를 뒤덮은 것이었다.

"어......."

그 규모 큰 등장에, 모여서 항의하던 플레이어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지금, 저거 아무리 봐도 과시하는 거지?”

"와…… 건드려볼 테면 건드려봐라, 그런 건가?”

그것들의 그림자가 바닥을 훑으며 다가와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 드리웠다.

"……그런데 좀 무섭긴 하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머리 위로 강철비가 쏟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겁이 났다.

한편, 프리드웬의 선수 위에 후긴이 앉아 있었다.

이현욱은 그것의 눈을 빌려서,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훑었다.

역시나 몇몇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게, 빌런들이 상당수 침투해 있었다.

‘레드 버서커…….'

4차 웨이브 때 이현욱이 모글레이를 얻지 않았더라면 저 덩치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이현욱이 놈을 쓰러뜨린 뒤 빼앗는 게 전생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그 녀석의 동생인 월리엄 버나드까지 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이현욱의 머리를 목각 망치로 내리쳤던 빌런이었다.

즉, 이현욱을 살해하여 회귀하게 한 장본인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죽고 난 뒤에는 저놈이 내 모글레이를 가져갔겠지?’

이현욱이 쓰러져 있을 때, 모글레이를 흔들며 자기 형의 물건을 되찾아 왔다고 좋아했었다.

저 형제와는 여러모로 모글레이로 얽힌 악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 (!) 메인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뭐야 또?’

-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2번 : 차원 이동자 살해>의 첫 번째 분기점에 도달했습니다.

"응?"

- 주의! 전생의 악연—첫 번째 차원 이동자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를 처치하십시오!

전생의 악연이라면, 월리엄 버나드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현욱은 후긴을 비상시킨 뒤, 놈을 자세히 살폈다.

그 순간, 놈이 인상을 있는 힘껏 찌푸리더니 복부를 부여잡았다.

“컥——!”

그러고는 갑자기 피를 토해내는 게 아닌가?

"혀, 형……”

"어? 너 왜 그래?”

"혀, 혀, 컥……."

그 큰 몸뚱이를 돌돌 말며 고통 어린 구역질을 하다가 기어코 무언가를 토해냈다.

"커—어——!”

퍽—

그건 주먹만 한 흑색 구슬이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왜 내 몸속에……."

그 순간, 구슬이 하늘로 비상하더니 큰 폭발을 일으킨다.

쩌—엉——!

그 안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다음 순간 다시 빨려 들어가며 하나의 점으로 뭉친다.

"잠깐만, 저거 게이트 아니야?”

그 자리에서 차원의 균열, 즉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건 검은색의 게이트…… 즉, 블랙 게이트였다.

‘뭐야…….'

직후, 그 안에서부터 누군가 뛰어내렸다.

쿵——

"이야…… 내가 제일 먼저 선택받은 거야? 으흐흐......."

검은색 철제 갑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싱긋 웃었다.

검은 구슬을 토해낸 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월리엄 버나드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형, 저거…… 나 아니야?”

그렇다. 인상착의는 조금 달랐지만, 블랙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는 분명 월리엄 버나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현욱이 살았던 전생…… 미래의 월리엄 버나드일 것이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것을, 이현욱은 후긴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러면 체어맨이랑 네크로맨서보다 내가 먼저 ‘초월’할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그의 어깨에는…… 거검, 모글레이가 얹혀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