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24화 (124/221)

124화.  < 절대적인 화력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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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에 방위상께서 연락을 주셔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 일본 플레이어 랭킹 2위의 ‘허리케인’ 코도 코시로였다.

그는 지금 <에이엔>길드 본청의 대회의실에서 길드 간부들을 모아 놓고 앉아 있었다.

"곧 블랙 오크들이 한국을 침공할 것 같은데 파병을 가겠냐고 묻더라고요. 한국 쪽에서 먼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데…… 어쨌든 그 보상으로 얻어내겠다는 게 무려 ‘라퓨타’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코도 코지로, 회의장 안이 감탄사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헉—라퓨타!”

"그게 진짜입니까?”

지금 이 말은, 이번 기회에 라퓨타의 사용 권한을 얻어내겠다고, 일본 정부가 직접 주장했다는 뜻이다. 즉, 그 파병에 참여한다면 큰 떡이 떨어질 터였다. 그것도 아주 큰 떡이…….

심지어 라퓨타라면 현시점에서 세계수를 제외한다면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던가?

"—에? 그러면 우리도 라퓨타의 기능을 쓸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와……."

"아니, 근데 그게 가능한 말입니까? 그냥, 방위상의 허풍 아니고요?”

"맞아요! 한국 측이 라퓨타를 같이 쓰자고 흔쾌히 내놓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감탄하는 한편 의심하는 길드 간부들의 모습에, 코도 코시로는 싱긋 웃어 보였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라퓨타가 대수겠습니까? 다 팔아서 전쟁 대비해야겠죠.”

그러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긴—’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비단 라퓨타 이용권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무조건 큰 이득이 될 겁니까?”

“오— 그거 말고 또 뭐가 더 있는 겁니까?”

"아니,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수십 년 전이었죠. 그…… 한국 전쟁인가요? 어쨌든, 그때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할 수 있던 것처럼요. 이번에도 우리에게 괜찮은 기회가 온 겁니다.”

윙——

그때, 회의장 정면의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화면이 팟— 켜지고 위성 촬영 사진이 나왔다. 블랙 오크 병력집결지인 듯했는데…… 한자리에 모인 숫자가 무려 13,111마리로 추산됐다.

이번에는 또 다른 의미로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건 두려움이 섞인 한탄이었다. 에이엔 길드가 파병을 간다면 결국 저것들과 맞서야 한다는 뜻인 만큼 내심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 누가 이기든 간에 한국은 맥이 빠지고 블랙 오크 왕국도 큰 타격을 입겠죠.”

코도 코시로의 말에, 한 안경 쓴 남자가 거들고 나섰다.

"예 그렇게 될 겁니다. 한국이 4차 웨이브까지 막아냈고 이현욱이라는 신예가 등장했다고 해도, 블랙 오크와 전면전을 치른다면 필연적으로 국토 전반이 폐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쟁 양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한국은 무조건 몰락하고 말 거다.

또한, 가장 큰 위협인 블랙 오크 왕국도 한동안은 동면에 접어들 것이다.

즉, 종합적으로 보면……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쥘 기회가 도래한다.

"걔들, 최근에 운이 너무 좋더라니…… 분수에 안 맞는 운을 끌어다 썼나 봅니다. 하하—”

코도 코시로는 한국에 대한 악담 스스럼없이 늘어놓았다.

사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한 감정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니, 그 나라에 관심조차 없었지...….'

그러나 이현욱…… 그 남자를 만난 이후부터 사뭇 달라진 듯했다.

‘이현욱, 그 재수 없는 얼굴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는 지난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 때의 수모를 잊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그 수모를 몇 배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팔을 펼쳤다.

"여러분, 모든 ‘전쟁 이벤트’는 다수의 퀘스트를 동반합니다. 즉, 보상이 엄청나죠.”

코도 코시로는 서울 도심에서 마음껏 허리케인을 일으킬 생각에 벌써 신이 났다.

“—자! 이 거국적인 기회에 경험치랑 아이템 한바탕 크게 벌 준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블랙 오크 왕국의 한국 침공을 오히려 고대하는 이들이 세계 도처에 있었다.

그건,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는 한때 자동차 공업으로 발전했으나 자동차 공업이 몰락하자 함께 빛바래 무너졌던 도시였다. 그런데 근래 ‘아이템 군수기지’로서 다시 한번 번성하는 중이었다.

또한, 고든 프라이스가 운영하는 마법 모빌리티 기업 <블루트리에어>의 비공정 생산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기도 해서 디트로이트시의 미래는 한창 핑크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치안이 부실하기만 이 거친 동네를, 한 대의 리무진이 지나고 있었다.

"하…… 빨리 한국에 전쟁이 터졌으면 좋겠다.”

그곳의 뒷좌석에는 거구의 남자 둘이 타 있었다.

"이 도시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 영 심심하단 말이야? 너무 깨끗해져도 별로야.”

짧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거구가 푸념하자 옆자리의 턱수염 난 거구가 피식 웃었다.

"윌, 이 자식아! 그런 양아치 근성을 버려야지 더 크게 될 수 있다고, 내가 말했지?”

"아니 형은 이런 심심한 동네가 재밌어? 얼마 전까지 저 골목에 트롤이 걸어 다녔잖아!”

이들은 일명 ‘핏불 형제’라고 불리는, 미국 동부 최고의 탱커 플레이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형인 해리 버나드는 ‘레드 버서커’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저기 봐, 네가 술 먹고 트롤이랑 레슬링 하면서 반쯤 부쉈던 빌딩 철거하는 모양이다.”

"아, 내 추억이 또 하나 이렇게 사라지구나……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른 건지……."

그때, 차에 탑재된 스피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해리, 체어맨께서 일정을 확정하셨습니다. 앞으로 52시간 뒤에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쟁’이란, 블랙 오크 왕국의 한국 침공이었다.

그런데 다소 이상한 점이라면, 전쟁 시작 시각을 확신하듯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

"오, 고작 이틀 남았어? 몸이 뻐근했는데, 잘 됐군!”

"고마워 헤일리, 그럼 우리는 언제쯤 한국으로 가면 되는 거지?”

- 현재 계획대로라면 84시간 뒤, 19일 오전 8시에 오하이오주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서 우리 회사가 지원한 비공정 함대가 출발할 예정이니, 참고하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음, 그러면 한 삼일 정도는 시간이 있네? 그럼 그사이에 정비 좀—”

"그런데 헤일리, 체어맨이 새로운 아이템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거 어디에 있어?”

"야, 제발 신사답게 좀 굴지? 이런 비싼 차 타고 가면서 선물 상자 달라고 떼쓸 거야?”

"형, 내가 장담하는데 우리 핏줄에는 귀족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여 있을 거야.”

그때, 리무진의 뒷좌석 쪽이 철컥— 이며 열렸다. 차에 탑재된 비밀 금고였다.

- 그 슈트케이스 확인하세요. 이번 작전을 위한 체어맨의 선물입니다.

"오—!”

철컥—

윌리엄 버나드가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 든 아공간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불쑥 꺼냈는데, 그건 거대한 도끼였다.

아무리 리무진이라지만, 차 안에서 꺼내 드니 필연적으로 시트를 찌를 수밖에 없었다.

지익—

- 제발, 회사 자산을 아껴서 사용해주세요.

"미안해 헤일리, 그런데 영웅 등급의 도끼라니…… 꽤 쓸만하겠는데?”

그들은 이번 전쟁을 대비하여 윗선에서 내려준 선물을 받아보고는 싱글벙글 웃었다.

"형, 그 누구였더라, 그 한국의 골칫덩어리…… 스틸레인이던가?”

"그래, 그 자식한테 여럿 당했다고 하던데 우리도 곧 만나게 될 거다.”

"근데, 형은 걔가 가지고 있는 존나 큰 검이 가지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 말에 해리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아봤는데 모글레이였던가? 그 거검에 왠지 모르게 끌린다.”

"으흐흐— 형, 방금 그 멕시코 쌍년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던 거 알아?”

"이 자식이…… 그래, 솔직히 거의 비슷한 감정인 것 같긴 해.”

해리 버나드는 평소에도 사람 몸통만 한 대검을 주 무기로 쓰곤 했다.

그런데 뉴스에서 이현욱이 ‘모글레이’를 다루는 걸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오더 66의 순간이 오면 그 Big Dick이 형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해리 버나드는 모글레이를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오더 66이라니……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별명으로 이번 작전을 부르지 마. 누군가는 눈치챌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그 사람이 오비완 케노비가 되는 거지! 으흐흐— 그것도 꽤 재밌지 않을까?”

이렇듯 세상 곳곳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전쟁을, 각자 다른 속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지금 이 순간, 온 세상의 이목이 중국의 미디어 매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블랙 오크 왕국의 초청을 받아서 ‘병력집결지’를 생중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블랙 오크 왕국이 선전 목적으로 인간들의 미디어를 이용하는 중이었다.

- [속보] 블랙 오크 왕국 출병식 중국 공영 방송을 통해서 중계될 예정 (1보)

- 블랙 오크 왕국, 한국과의 전쟁 홍보를 위해서 중국의 공영 매체까지 이용, 그 저의는?

그건 인류로서는 꽤 충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야만적이라고 여겼던 몬스터가 정치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으니.......

어쨌든, 중국 측 미디어 관계자들이 블랙 오크 군단 속에 뒤섞여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몬스터에 관한 인류적인 반감으로 저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기회였을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블랙 오크 군단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인터넷 방송인, 류위안은 자신의 방송팀과 함께 한 빌딩의 옥상에 올라왔다.

한편, 그들의 좌우로 블랙 오크 전사들이 무기를 쥐고 서 있었는데, 안내 겸 감시였다.

그것들의 살벌한 눈빛이 이제는 익숙한지, 류위안은 능청스럽게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허…… 저거 보십시오. 진짜, 솔직히 지릴 것 같습니다.”

한때 드넓은 생태 공원이었으나 이제는 진창의 공터로 변하여 ‘병력집결지’라고 불리는 곳, 그 가장자리의 둔덕을 따라서 수천 개의 야만적인 깃발들이 내리박힌 채, 사납게 펄럭인다.

우어어어——!

그 아래에, 수만 마리의 살육 기계들이 무기를 흔들며 고함을 내지르고 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약 1만 5천여 마리가 모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1만 5천, 일반적인 군대로 따진다면 별 것 아닌 숫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블랙 오크 병사의 평균 레벨은 무려 53으로 추정된다.

즉, C등급 2~3티어의 플레이어로 구성된 사단급 전력이 모인 셈이었다.

이는, 그 어떤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는 압도적인 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을 한동안 포커싱한 뒤, 류위안은 카메라맨에게 위를 찍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내 천천히 상승하는 카메라 포커스, 조금 떨어진 곳, 폐허로 변한 빌딩 숲이 잡힌다.

"저기 보이십니까? 전에도 보여드렸듯이 와이번이 무슨 까마귀 떼처럼 날아다닙니다.”

그 회색빛의 마천루 라인에 줄지어 앉아 있는 수백 마리의 와이번…….

크에에---——크에에——

그건 흡사 담벼락에 앉은 까마귀 떼 같았다. 그 정도로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피다 보면…… 이내 그 실체를 ‘인지’해내고 본능적으로 간담이 서늘해진다.

"마치 호랑이 우리에 들어온 것 같은 이 위압감이, 카메라 너머로 전달될지 모르겠군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새삼스레 우리 중국의 선배 플레이어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괴물들과 3차례나 전쟁을, 그것도 공격하여 밀어붙이다니…… 비록 상하이 수복에 실패했지만 대단한 일입니다.”

사실은 중국이야말로 이 블랙 오크 왕국과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 그들에게는 묘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중국은 2차 웨이브에 이은 상하이 수복 전쟁의 여파로 크게 약화하고 말았다.

그건 최악의 공략 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만큼은 그 모든 전쟁을 실패가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여 치러낸 숭고한 싸움이라며, 공산당 주도하에 선전되고 있다.

심지어 블랙 오크들이 그때의 경험으로 중국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기에 중국 땅을 노리지 못하고 굳이 한국을 공격하는 거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져있다.

그때였다.

그어어어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블랙 오크들이 일제히 고성을 내지르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어, 들리십니까? 가, 갑자기 오크들이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던 카메라들이 일제히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저기 보십시오! 와이번 한 무리가 더 날아오고, 그 위에 블랙 오크들이 타 있습니다!”

북쪽 하늘, 그곳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무리 지어 날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와이번 한 마리가 병력집결지의 중심에 마련된 ‘연단’에 내려앉았다.

쿵——!

"저기에 타 있는 블랙 오크가 설마…… 국왕 ‘스토녹스’인 걸까요?”

지난 상하이 수복 전쟁 때, 위엄을 자랑했던 ‘보스 몬스터’ 등급의 오크들이 있었다.

국왕 스토녹스, 전사장 수막트, 주술사 디에블 등이 일명 ‘3대 블랙 오크’로 불렸다.

"아! 디에블입니다! 그의 주술로 만들어진 안개가 쑤저우시로 몰려와서 큰 피해를 줬죠!”

그 3대 블랙 오크 중 하나가 연단 위에 섰다.

이는 상당한 의미가 담긴 장면이었다.

"그가 연단에 섰습니다! 설마 전쟁의 시작을 알리려는 걸까요? 막, 영화 같은 걸 보면, 병력이 출정하기 전에 높은 사람이 나와서 사기를 북돋는 연설을 하곤 하지 않습니까?”

검은 피막을 뒤집어쓴 거구의 블랙 오크, 그의 목에는 해골로 꿴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소란을 피우던 블랙 오크 군단이 일제히 침묵했다.

“……자, 과연 무슨 말을 할지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연단 위, 디에블이 후드를 걷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주술 덕분인지, 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증폭된다.

"우리는— 바다 건너— 인간들의 작은 땅을— 집어삼킨다—”

그 직설적인 선언에 격렬한 함성이 터진다.

"우리는— 공중도시를 장악하고— 선조의 유물을 되찾는다—”

이번에는 블랙 와이번까지 일제히 날개를 펼치며 괴성을 내지른다.

"우리는—끝내— 이 세계를—지배한다—”

그게 끝이었다.

언뜻 들으면 별 내용이 없는 단순무식한 연설일 뿐이었다.

그어어어어——!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블랙 오크 군단의 함성 덕분에 실로 위압적인 한 장면이 완성된다.

이내, 류위안의 얼굴이 포커싱되었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긴장한 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 제가 그래도 중국 플레이어 랭킹 291위 아니겠습니까? 감히 한 말씀 드리는데……."

그때, 그의 등 뒤, 수백 마리의 와이번이 일제히 비상하며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한국인 여러분, 맞서 싸우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고 말 겁니다."

그가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이 병력이 한국 땅에 상륙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감상에 매몰된 듯, 호소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을 시청자 모두가 느꼈기에, 반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아닌, 한국인들이 류위안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저 대재앙이 사랑하는 모든 걸 휩쓸리라는 공포…… 한국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피이이이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

"......!"

이에 류위안이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하늘이 찢는 듯한 굉음은 블랙 오크 군단마저도 침묵시켜 버렸다.

이 자리의 모든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그 너머에부터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 빠르게 가까워진다.

——!

단 한줄기의 성광— 그것이 먹구름을 뚫고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심지어 디에블이 서 있는 곳, 거대한 연단 위로, 정확하게—

쩌—어—어—어—어——!

일점에 가해지는 압도적인 힘, 가장자리의 지면이 출렁이며 일어난다.

콰—아—아—아—아——!

흙의 파도, 그렇게 불릴만한 대재앙이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는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던 블랙 오크 군단을 그대로 휩쓸어 버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섬광이 내리박힌 곳, 지면 깊숙한 곳, 그곳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터진다.

쿠—구—구—구—구——!

그건 지진으로 승화하여 일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뿌리째 뒤흔든다.

“……어? 뭐, 뭐야!”

그 폭풍과 같은 충격파가 도달하는 순간, 류위안은 온몸에 마법 방어막을 덧씌웠다.

“컥!”

그런데도 몸이 붕 떠올라서 바닥을 한바탕 데굴데굴 구른 뒤 일어났다.

"젠장, 이게 가,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야……."

그는 삐——하는 이명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서 비틀거리는 카메라맨을 일으켜 세웠다.

"씨발, 정신 차려!”

시청자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방송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젠장— 아니야, 거기를 찍지 마!”

“네?”

"하늘, 하늘이야! 저기, 저기를 찍으란 말이야!”

그는 직감적으로 지금 이 순간 카메라에 담아야 할 장면을 찾아냈다.

그 공격이 비롯된 곳— 저 먹구름 낀 하늘 속에 무언가 있다.

"여, 여러분, 지금…… 하늘에 무언가 날아들었습니다!”

그의 멍한 눈이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속을 헤집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블랙 오크 군단을…… 선제공격한 겁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일격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어, 어쩌면 디에블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방금 그 정체불명의 일격에 적중한 뒤, 연단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웬 거대한 구덩이…… 운석공(陽石孔)뿐이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하지만 블랙 오크들은 노련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의 습격을 차마 예상하지는 못했더라도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헉—수십 마리의 주술사들이 대규모 방어 주술을 시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있던 주술사만 해도 수백 마리가 넘을 터,

그들의 일제히 손을 들어 올리며 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그러자 검은 연기가 흐물거리며 피어오르더니 이리저리 뒤엉키며 거대한 ‘돔’을 자아낸다.

쩌저저저저——!

"헉! 여러분, 저 정도로 거대한 방어 마법을 보신 적 있습니까?”

그 거대한 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병력집결지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흡사 돔구장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 아니, 그보다도 몇 배는 더 큰 규모였다.

그런데—

피이이이이——

그 날카로운 소리가 재차 울려 퍼진다.

그 재앙이 또 한 번 오는 것이다.

"헉! 그게 또 날아옵니다! 과, 과연 돔이 막아낼 수 있을지——”

류위안이 목청껏 외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역시나 묻히고 만다.

하지만 카메라가 잡아내는 장면만은 유효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된다.

처음에는 섬광인 줄 만한 알았던 그것이, 돔의 방어막에 닿는 순간 형체를 드러낸다.

그건…… 놀랍게도 검이었다.

찌지지지지지———

그 검이 돔을 강타— 돔의 표면을 쭉 늘리면서 안쪽으로 파고든다.

흡사 비닐 막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짓누르는 것 같은 장면이다.

즉, 어느 정도 임계점에 이르는 순간…… 손가락이 비닐 막을 뚫고 말 것이다.

쩌—엉——!

바로, 이렇게…….

“아—깨집니다!”

결국, 그 거대한 돔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어, 잠깐만요! 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블랙 오크 군단은……."

저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어어어——!

지상을 뒤흔드는 분노에 찬 함성 속에서 모든 카메라가 먹구름 낀 하늘을 포커싱했고,

이내 먹구름 속에서부터 무언가 가라앉듯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공정…… 프리드웬이었다.

이어서 그 주변부로 수십 개의 금속 상자가 먹구름을 헤치며 나타나 하늘에 수 놓였다.

우우우우——

그리고 그 수많은 전쟁 병기들 사이에, 단 한 인영이 고고히 떠 있다.

그의 얼굴을 줌인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자아낼 수 있는 단 한 명의 남자가 누구인지.......

"스틸 레인—!”

직후 그의 왼손이, 지상을 향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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