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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19화 (119/221)

119화.  < 전쟁 종결자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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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니까…… 우리가 보낸 24대의 인첸트 전차가 폭죽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거구의 흑인 남자가 그렇게 말하더니, 입에 시가를 문 채 낄낄 웃었다.

그는 은도즈 연맹의 이인자인 기갑 사령관으로 일명 ‘리옹 누아르’라고 불렸다.

“지금 그게, 너는 말이 돼는 보고라고 생각하고 내 앞에서 지껄이는 거냐?”

그의 공격적인 물음에, 문 앞에 서 있던 군복 차림의 남자가 차렷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저…… 사령관님, 남수단 국경지대로 갔던 제11 기갑부대 소속 생존자의 진술이었습니다."

"야, 9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 쓸모없는 새끼야!”

리옹 누아르가 시가 연기를 뿜으며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다.

"씨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와야 할 것 아니야?”

"아, 그게……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야! 그걸 모르겠으면 추정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응? 그게 보고 아니냐?”

"......."

"하, 이 땅이 왜 아직도 이 모양이냐면, 사고방식부터가 야만인인 너 같은 놈 때문이야. 전차가 갑자기 터졌다는 말은 13살짜리 내 조카도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이 병신아!”

이에 9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굴린 뒤, 리옹 누아르의 말처럼 추정이란 걸 시작했다.

"그, 생존자에 보고에 따르면 여, 염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염력? 오, 재밌군?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뭐야? 더 해 봐.”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전차의 포탄을 튕겨내고 무한궤도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 정보를 통해서 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뭔데?”

"그, 그러니까 어쩌면 ‘스틸레인’ 같은 능력으로 판단 됩니다. 어…… 예, 그렇습니다.”

즉, 금속 통제력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리옹 누아르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으하하하—! 지금, 스틸레인 이 나라에 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이야?”

스틸레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플레이어 이현욱의 별명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이현욱 외 금속 통제자의 존재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저 그 이름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식아, 당연한 소리를 해! 그런 거물이 왜 이 땅에 왜 있어! 뭐, 관광이라도 왔겠어?”

그런 남자가 먼 타국의 저항군을 지원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됐다.

"차라리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가 우리 부대 축구팀에 임대 오는 게 말이 되겠다.”

리옹 누아르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9대장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그의 키가 202cm인 데다가, 흑색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흡사 고릴라 앞에 선 것 같았다.

절그럭—

아니, 고릴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무려 71레벨의 바바리안 특성으로 맨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장면이 꽤 자주 연출되곤 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자 속, 9대장의 숨이 절로 가빠지는 건 일종의 조건 반사였다.

"어쨌든, 그쪽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고, 혹여 누구를 데려왔다고 해도 말이야……."

그의 두꺼운 손이 9대장의 머리에 툭— 닿았다.

"—!"

절로 바들바들 떨리는 몸…… 정말 다행히도, 그의 손이 천천히 어깨로 내려왔다.

“……우리를 지지하는 비밀 세력이 훨씬 크다는 걸 잊지 말고, 당당하게 밀어붙인다.”

"아, 무,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정체불명의 플레이어가 인첸트 전차 24대를 단숨에 터뜨렸다고 했지?”

리옹 누아르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

저 멀리, 초원 위에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인첸트 전차들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격납고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지금 이곳은 ‘중앙 격납고’라고 불리는 은도즈 연맹 최고의 군사 기지였다.

“9대장, 우리가 가진 인첸트 전차가 지금 총 몇 대나 있지?”

"예! 현재 기동 가능한 인첸트 전차는 총 269대입니다.”

"그 외 전력도 있잖아. 어디 한 번 쭉 읊어 봐.”

"예! 인첸트 전투 헬기가 21대, 인형 병기가 131기 있습니다!”

리옹 누아르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으흐흐…… 이 정도면 이 아프리카 땅에서는 유례없는 전력이란 말이야.”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뒤 통상 병기의 가치는 급락했다.

그건 전차와 같은, 비싸디비싼 기갑 병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 은도즈 연맹은 그것들을 싸게 매입하여 ‘인첸트’한 것이었다.

물론, 그건 인첸트리스 트윈스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늘이 도운 건지, 그 자매는 은도즈 연맹 최고 지도자의 조카로 태어났다.

"후— 9대장, 우리의 군세는 몰아치는 강물과 같다.”

리옹 누아르가 별안간 현학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반란군 새끼들이 어디에선가 굴착기 같은 걸 끌고 와서 강물을 막으려고 하는데…… 뭐, 인첸트 전차 24를 단숨에 터뜨렸다고? 그건 기껏해야 시냇물 같은 거고, 우리 본대는 무려 나일강이야! 아무리 성능 좋은 굴착기라도 나일강은 막을 수는 없지 않겠나?”

"예, 맞습니다!

“11기갑부대가 어떻게 당한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 번에 터졌다는 건 거짓이야.”

그는 그 보고를 믿지 않았다.

‘뭐? 인첸트 전차 24대를 손도 대지 않고 폭죽처럼 터뜨려? 웃기고 있군…….'

그건 유령을 봤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으레 심신미약자의 목격담은 괴담으로 변질된다.

“……그러니까 그 헛소문이 퍼져서 우리 군대의 마음이 흔들리는 일 없도록 한다.”

그는 창가를 등진 채, 뒷짐을 졌다.

그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내일, 전 병력이 나아가서 반란군 수뇌부를 박살 내 버린다.”

그렇게, 전쟁 종결을 천명하는 순간…….

쾅——!

그의 등 뒤에서 웬 폭음이 울리며 붉은빛이 번쩍였다.

“젠장, 뭐야!”

그가 고개를 돌리며 창밖을 살폈다.

쾅——!

또 한 번의 폭음이 울리며 건물이 뒤흔들렸다.

하지만 그 원흉이 제대로 보이지 않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블라인드를 잡아 뜯어버렸다.

바로 그 순간, 눈앞이, 중앙 격납고 일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쾅——!

"이, 이게 무슨……."

그제야 보였다.

수십 대의 인첸트 전차들이, 정말로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장면이.......

그리고 이번에는 24대로 끝나지 않을 듯싶었다.

등 뒤에서, 9대장이 작게 읊조렸다.

“……그가, 온 겁니다.”

***

이현욱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이후, 곧장 ‘선제공격’을 선언했다.

“……아까 듣기로는 은도즈 연맹의 최대 전력이 한곳에 모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을 들어보건대, 그 중앙 격납고만 박살 내면 은도즈 연맹이 무너지겠군요?”

그 목표물은 은도즈 연맹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곳인 ‘중앙 격납고’였다.

"그리고 그쪽에서 제 등장을 눈치채고 대비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게 유리합니다.”

첸나이에서 소피에게 말했던 것처럼, 적들의 핵심 전력을 요격하려는 것이었다.

그 과감한 결정을 반대하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24대의 인첸트 전차를 터뜨리는 장면을 목격한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마지막 희망이 다가왔다고 느꼈을 터,

이현욱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던 보위 베르트랑 역시 그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귀한 분이 저희를 도와주시러 온 것도 모르고 제가 무례를 범한 것 사과드립니다.”

이현욱의 등장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그의 표정은 당혹감을 넘어서 다소 멍한 상태였다.

어쨌든, 이현욱은 지금 <중앙 격납고>라고 불리는 군사 기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등장과 동시에 눈에 띄는 ‘인첸트 전차’를 깡그리 터뜨려버렸다.

후우우우......

녹색 초원 위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이현욱은 앞으로 나아갔다.

애—애—애—앵——!

이내 요란한 사이란 소리와 함께, 수천 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중앙 격납고가 바빠진다.

철제 펜스 안으로 빼곡하게 지어져 있는 격납고에서 또 다른 인첸트 전차가 출격하고, 그보다 더 안쪽의 간이 활주로에서 인첸트 전투 헬기가 떠오르는 것을, 후긴으로 감지했다.

‘이 자식들, 정말 온갖 걸 다 갖다 놨잖아?’

이제는 그 가치를 잃은 기갑 병기를 인첸트하는 것, 그건 꽤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어중간한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그것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현욱 앞에서 ‘격’이 낮은 금속 덩어리는 크기를 막론하고 종잇장이나 다름없다.

그는 과감하게 적진을 향해 걸어갔다.

- 칙— 이현욱 씨, 센티널 타워를 조심하세요! 곧 저격수의 사정권에 들어갈 거예요!

소피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나 메신저에서 흘러나왔다.

이 시설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25m짜리 망루, 그건 작전 투입 전에도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곳에는 무려 30명의 저격수 플레이어가 배치된 채, 주변을 항시 경계 중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속히 말하는 ‘벌집’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손 써뒀습니다.”

- 네? 어…… 여, 여기에서 볼 때는 저격수들이 당신을 조준하기 시작했어요!

"네, 알고 있어요.”

- 그러니까, 거기서 더 다가가면 안 된다는 말인데요?

"제가 먼저 타워를 저격해서, 무너뜨릴 겁니다.”

- ……타워를, 저격해요?

그때였다.

휘이이이——

하늘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리며 한 줄기의 섬광—모글레이가 내리꽂힌다.

퍼—어—억——!

직격— 20m짜리 타워가, 폭파 철거되듯 수직으로 무너져내린다.

콰드드드…….

앞서 듣기로는 저곳에는 꽤 단단한 ‘마법 방어막’이 처져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2t짜리 영웅 등급의 대검이 2km 상공에서 떨어지는 걸 견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격에, 중앙 격납고 최고의 방어 시설물이 희뿌연 모래 먼지로 변해버렸다.

"타워 저격, 성공했습니다.”

- 헉.......

소피 측에서도 그 장면을 목격했을 터, 마나 메신저로부터 탄식이 새어 나온다.

두두두두——

그때, 뿌옇게 피어오른 연기 뚫고 인첸트 전투 헬기 편대가 날아들었다.

‘총 21대, 세계 각지에서 열심히 끌어모았을 텐데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그것들은 상대하는 방법도 별다를 것 없었다.

깡! 깡! 깡! 깡!

이건 ‘프로펠러’가 직각으로 꺾이는 소리였다.

직후, 살충제를 맞은 벌들처럼, 균형을 잃고 지상으로 처박히는 인첸트 전투 헬기들.......

쾅— 쾅— 쾅— 쾅—

이곳저곳에서 추락에 이은 폭발이 연이어진다.

그 파편이 이현욱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중간에 멈춰 선 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현욱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 폭발 사이를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이내 막사에 가까워지자 사방에서 화살 세례가 날아들었거늘,

이현욱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오로지 직선으로 걷는다.

챙! 챙! 챙! 챙!

그의 허리춤에서부터 날아오른 '아다만트 스타’가 화살을 쳐냈다.

왱—왱—왱—왱——!

그것들은 이현욱의 몸 주변에서 요란하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모든 것을 요격한다.

‘역시 후긴이 있는 이상, 웬만한 저격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아다만트 스타는 후긴을 통해 이현욱의 직감과 연결되어 일종의 능동 요격 시스템이 된다.

이현욱은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타—다—다—다—다—당——!

그러자 이번에는 기관총 세례가 날아든다.

‘아무리 그래도 총알은 쳐내는 건 힘들긴 하지만…….'

하지만 인첸트가 된 총알이라고 해도 결국은 통상 병기라는 한계가 있다.

그것만으로는 이현욱의 ‘강체화’를 뚫을 수는 없었다.

팅—팅—팅—팅—

마치 장갑차를 때리듯이 허망하게 튕겨 나가는 총알들…… 적들은 혀를 내둘렀다.

"헉! 제, 젠장! 저 괴물은 도대체 뭐야!”

“미친, 뭘 어떻게 해야 해! 아무것도 안 통하잖아!”

그들이 보기에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미 기세가 꺾일 때로 꺾인 만큼, 보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현욱의 등 뒤, 배낭에서 더 많은 아다만트 스타가 날아오른다.

기갑 병기를 전부 처리했으니, 이제는 보병들을 정리할 차례였다.

"—컥!”

"으아아아!”

그의 감각은 후긴을 타고, 한참 떨어진 곳, 벽 뒤, 건물 안까지 닿았다.

그렇기에 어디에 은.엄폐하더라도 이현욱의 사정권 안이 있는 셈이었다.

곧, 중앙 격납고 전체가 절절한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젠장, 그냥 도망—컥!”

이렇게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기갑부대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 말도 안 돼……..

이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은도즈 연맹 최후의 병력이 등장했다.

절그럭— 절그럭—

그건 ‘인형술사’의 인형 병기들이었다.

‘즉, 인형술사의 분신이 근처에 있다는 뜻인데…… 저기 있군.’

이현욱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통짜 금속을 감지해냈다.

고개를 돌리자 한 격납고 위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금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안녕!”

자세히 살피니,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인형술사의 분신인 ‘마나 인형’이었다.

"너, 이현욱이지? 다 알아!”

"아…… 좀, 티 났나?”

이현욱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자 인형술사가 킥킥 웃는다.

“병신, 그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들키지 않길 바라고 있냐?"

소녀 형상의 인형이 담 위에서 폴짝 뛰어서 바닥에 내려선 뒤, 치맛자락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딴 마스크 하나 쓴다고, 얼굴이 가려질 것 같냐? 병신—”

상스럽게 말한 뒤,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는 게 퍽 이질적이다.

"그러면 너는 그런 분신 뒤에 숨어 있으면 네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 것 같아?”

“……뭐? 참나, 누가 들으면 네가 날 잘 아는 줄 알겠어?”

그 비꼬는 듯한 질문에, 이현욱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자 녀석의 눈동자 붉게 변한다.

"지랄…… 까불지 마, 병신아! 우리 엄마도 내 정체를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그 대목에서 이현욱은 피식 웃으며 회심의 한 마디를 날렸다.

“야, 같은 한국인끼리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맙시다.”

그 말에, 소녀 인형의 태엽이 고장 난 듯 멈춰 섰다.

"......뭐? 너, 너, 너 뭐냐? 날 진짜로 알아?”

이현욱은 이 녀석, 인형술사의 정체를 잘 안다.

"나이도 어린 게 말을 좀 험하게 하는 것 같은데, 부모님께 말씀드릴까?”

"그리고 사내놈이, 왜 하필 그런 디자인을 하고 다니는 거야? 친구들한테 말하면……."

“—야! 아무래도 너, 살려두면 안 될 것 같다.”

17살, 한국인, 남고생, 그게 저 녀석의 진짜 신분이었다.

녀석은 ‘마나 인형’을 통해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기괴한 취미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내가 네 정체만 아는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진짜 말 짜증나게 한다!”

이현욱은 어느새, 오른손에 묠니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묠니르의 힘에 이끌려서 북쪽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네 인형 병기의 약점이 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르르르——

"서, 설마 지금…… 번개를 떨어뜨리려는 거야?”

인형술사의 본체, 그러니까 ‘플레이어’는 지구 반대편인 한반도, 대전광역시에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건 인형술사의 ‘분신 제작’ 스킬 덕분이었다.

‘저 태엽 인형 안에 빙의해서 VR 게임을 하듯, 이 전쟁을 즐기고 있는 거다.’

그런데 저 소녀 인형은 아다만트로 만들어졌을 터, 웬만해서는 박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사기적인 원격 시스템에도 약점은 존재한다.’

그건, 로봇인 만큼 아주 강력한 전류에 감전될 경우 ‘연결’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웬만한 전류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이건 웬만한 전류가 아니다.’

그 낌새를 눈치챘는지 녀석의 양팔이 칼날로 변형하며 이현욱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안 돼! 이 미친놈아— 하지 마!”

하지만 이현욱의 손아귀에서 묠니르가 쏘아지며 녀석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뻑——!

“꺅!"

그 작은 인형이 공처럼 날아가 한 격납고의 벽에 처박혔다.

그래도 역시나 아다만트 소재다. 약간의 긁힘 말고는 상한 곳이 없었다.

“으으으, 저 새끼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그 외침에 리빙 아머와 형겊 전투 인형들이 이현욱을 향해 달려든다.

"—늦었어!”

이현욱이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가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꽈—르—르—르—르——!

어느새 머리 위를 가득 메운 먹구름이 창백하게 물들고,

쩌—저—저—저—정——!

소녀 인형을 향해, 수백 가닥의 낙뢰가 무자비하게 내리꽂힌다.

"꺄아아아——이, 이현욱——주, 죽여 버릴——”

그 아다만트 몸뚱이가 바닥에 눌린 채로 파르르 떨더니, 이내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그렇게 인형술사의 분신이 ‘연결 해제’되자 131기의 인형 병기가 함께 멈춰 섰다.

이로써 아주 깔끔하게, 은도즈 연맹의 마지막 전력까지 리타이어 시킨 것이었다.

이현욱은 주인을 잃은 리빙 아머 43대의 마스터 권한을 얻었다.

그리고 벼락 찜질을 당했지만, 크게 파손되지 않은 소녀 인형까지 확보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귀여운 금발 귀족 소녀 코스프레 1호 ★ (숙련)

- 효과 : 특정한 방법을 통하여 ‘정신 연결’이 가능하다.

1호에다가 별까지 붙어 있는 거로 볼 때, 아마도 그 녀석이 가장 아끼는 분신인 듯했다.

"음, 이거…… 탈로스한테 가져다주면 좋아하려나?”

그때— 바닥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

“어?”

이현욱은 본능적으로 금속 통제력을 발휘, 자신의 몸을 공중을 띄웠다.

수백 발의 낙뢰 ‘뇌신의 분노’에 의해서 짓이겨진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쿵——!

이내 지반이 폭삭 주저앉으며 희뿌연 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쿠구구구…….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싱크홀, 그 아래에서 어떤 비밀 장소가 드러났다.

‘지하 시설이다. 그런데 규모가 꽤 크다.’

이현욱 그곳으로 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내려갔다.

처음에는 그저 지하 피난 시설 같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내부 디자인을 보건대, 건축가가 현대 인류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천장을 받히고 있는 높은 석제 기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총 12개, 너비가 족히 10m는 될 정도로 두꺼웠다.

그리고 벽면에는 온갖 그림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으며, 저 멀리 제단이 보인다.

고오오오——

……뭐라고 해야 할까, 고대의 비밀 사원 같은 느낌을 풀풀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 주의! <플레이어 권역 : 죽음의 사원>에 입장하셨습니다.

* 이곳은 다른 플레이어의 권능으로 형성된 개인 영역입니다.

"......."

이 장소, 이현욱에게는 꽤 익숙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아다만트 스타들을 최고치로 회전시키며 몸 주변을 둘렀다.

옛 기억에 의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였다.

이곳에 발을 내디뎠다가 수많은 영웅이 죽어 나간,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건 죽음의 군단장, 네크로맨서의 스킬 중 하나다.’

최강의, 최악의 빌런…….

그놈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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