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16화 (116/221)

116화.  < 경매장, 아프리카 내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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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은 HPA 조직원들을 따라서 암시장의 골목을 빠르게 걷고 있었다.

- ……우측 골목, 이상 없다.

소피 그린의 마나 메신저에서 그녀의 동료인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한참 앞서 나가며 일종의 척후병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이 동네가 막되어 먹었다고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난 이상 난리가 날 거예요. 골목의 쓰레기통을 지배하는 길고양이들도,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발톱을 쓰거든요.”

소피 그린이 속삭이듯 말했다.

으레 암시장이란 무법천지로서 강력 범죄가 들끓는 곳이기에 살인이 벌어지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는 게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이곳 첸나이 암시장은 조금 달랐다.

이현욱은 암시장 곳곳에 경비병처럼 배치되어 있던 무장한 플레이어들을 기억했다.

'그들은 이곳을 지배하는 <인드라의 창>길드원이다. 일명 시장 관리자, 마켓 키퍼들…….'

단 하나의 길드가 패권을 쥐고 있는 만큼, 힘에 의한 질서가 유지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방금, 이현욱이 윌리엄 필을 비롯한 괴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죽였다.

즉, 시장 내에서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으니 이제 곧 ‘마켓 키퍼’들이 움직일 것이었다.

"심지어…… ‘은도즈 연맹’ 놈들도 길드 쪽과 유착이 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CAR의 군부인 ‘은도즈 연맹’은 현재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기에 일반적인 경로로는 무기를 수출입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불법적인 루트인 암시장에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할 터, 당연하게도 암시장 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낯선 목소리들이 이현욱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 ……거기서 죽은 애들이 그, 아프리카에서 온 무기상들이라는 거지?

- 뭐, 그렇다던데? 웬 리빙 아머를 잔뜩 사서 배에 싣고 있다던데, 갑자기 왜 다 뒤졌지?

- 시발, 싸우려면 자기들 땅에서 싸울 것이지, 우리까지 피곤하게 만드냐…….

이현욱은 하늘에 후긴을 띄운 채 주변에 있는 마나 메신저를 모조리 ‘도청’ 중이었고,

그중 하나의 마나 메신저에서 그러한 대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 대화 내용은, 마켓 키퍼가 분명하다.’

그는 발걸음을 늦추며 소피의 어깨를 잡았다.

"소피, 다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현욱은 통성명한 이후부터 그들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말에, 소피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저희 숙소 방향은—”

“—곧 우측으로 마켓 키퍼들이 진입할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앞서 나가며 주변을 감시하던 데이비드 역시 같은 말을 해왔다.

- 우측 골목, 마켓 키퍼 출현, 왼쪽으로 간다.

이에 소피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앞서 나가는 데이비드보다 먼저 알아챈 것이었으니…….

"어? 뭐야? 어떻게 먼저 안 거예요?”

"그거야…… 스킬이죠.”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는데, 소피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렇다면 혹시 그…… 잠재 아이템의 진위를 알아낸 것도 어떤 스킬 덕분인가요?”

그녀가 말하는 잠재 아이템은 ‘백색 연꽃 그림 조각 8번’으로, 이현욱이 그게 히든 스테이지의 열쇠가 부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 역시 어떤 스킬 덕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이현욱은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건 무언의 긍정이었다.

“와…… 정말 다양한 계통의 스킬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죠?”

플레이어 스킬 획득은 으레 하나의 ‘계통’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전사 계열 중에서도 신성력 특성을 가진 이들은 흔히 ‘성기사’라고 불리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은 대다수가 근접 전투, 방어, 신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즉, 일명 '테크 트리(Tech Tree)’라고 불리는 '계통도’를 따라서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성기사는 ‘정보 획득’과 관련된 스킬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이현욱처럼 ‘화력’에 집중되어있는 특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자는 그 점에서 의아함을 느끼는 거다.’

실제로 이현욱의 스킬 대다수는 그런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금속 아이템을 흡수하여 그 효과를 ‘전이’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진 금속 흡수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다.’

이현욱처럼 아이템, 몬스터, 플레이어의 능력을 흡수하여 스킬을 형성하는 것,

그런 성장 방법을 훗날 일명 ‘포식 성장 특전’이라고 부르게 된다.

레벨 외 성장 방법 중에서도 독보적인 성장 폭을 지닌, 최고의 특성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건…… 단연 네크로맨서였다.’

그놈은…… 플레이어를 ‘식인’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스킬을 얻는다.

그것도 80레벨 이상이거나 레벨 외 성장 특성인 플레이의 심장을 먹어야만 한다.

'……수많은 S등급 플레이어가 놈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그게 바로 네크로맨서가 지독하게 강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잠깐의 생각을 마친 이현욱이 입을 열었다.

"뭐…… 내 특성에 의한 스킬은 몇 개 없고, 대부분은 아이템 스킬입니다.”

지금은 포식 성장 특전이 알려지지 않은 시대이기에, 이현욱은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아…… 정말로 대단한 아이템을 잔뜩 가지고 계신 모양입니다.”

스킬이 붙은 아이템은 대다수가 ‘영웅’ 등급인 만큼, 그것도 참 대단한 일이었다.

“뭐, 그래서 그런 질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히든 스테이지를 노리고 있는 거죠.”

"하긴…… 그게 가장 쉽게 전력을 상승시키는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되게, 부지런하시군요? 아프리카까지 가서 아이템 ‘파밍’을 하실 계획을, 이렇게 단번에 마음먹으시다니……."

그 한마디로 이현욱이 왜 히든 스테이지 공략을 그토록 원하는지, 납득이 되었을 터였다.

잠시 후 그들은 얼마 후 한 낡은 호텔로 들어갔다.

3층의 311호, 소피가 그 낡은 방문을 3번씩 2차례 두드렸다.

철컥—

“음, 소피…… 뒤에 붙은 쥐새끼는 없겠지?”

살짝 열린 문틈으로 흑인 남자가 그렇게 물었다.

앞서 듣기로, 이 남자는 HPA 인도 서부 지부의 연락 요원이라고 했다.

"그래, 확실하게 확인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분이 그, 이현욱…… 맞네, 얼굴 딱 보니까 알겠다.”

그는 사전에 연락을 받았는지 이현욱을 알아보았고, 씩 웃어 보이며 악수를 청해왔다.

"정말 영광입니다. 얼마 전 선보이셨던 강철 함대, 정말 멋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 기가 막히는 걸 어디서 구한 건지 캐묻고 싶지만, 지금은 참겠습니다.”

그들은 숙소에 들어온 이후에도 한동안은 숨을 죽인 채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당장은 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뒤에야, 소피가 입을 열었다.

"이현욱 씨, 그…… <비슈누의 미궁>공략 권한 말입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심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고작 10%가 아니라, 100% 통째로 드릴 수도 있어요.”

이현욱은 이 제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건이 무엇인지도 이미 예상했다.

"음, 전권 이양이라…… 상당히 파격적인데, 당연히 공짜는 아니겠죠?"

"맞아요, 그걸 제공해드리는 대신에 우리를, 좀 크게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게 다소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소피는 이현욱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서, 저항군 편이 되어 싸워 달라? 그 말입니까?"

이현욱의 직설적으로 되물었고 소피는 굳은 얼굴로 이현욱을 마주 보았다.

"네, 정확히 그 말이에요. CAR의 폭군인 '은도즈 연맹’ 그 개새끼들을 박살 내주세요.”

어느새 이 방의 모두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이현욱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화력이라면, 아프리카의 플레이어 군부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면에서 그들에게는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단단한 동아줄처럼 보일 터였다.

이어서 소피가 다소 호소를 담은 말을 이어갔다.

“……저희의 힘, 그러니까 저항군과 HPA만으로는 은도즈 연맹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히든 스테이지 공략권을 팔아서 <올드 피스> 길드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거고요.”

"음…… 그런데 그런 거대 길드가 아니라, 저를 기용하려는 이유는 뭐죠?”

"하, 그게 그쪽 움직임이 영 수상쩍어서 말이죠. 처음에는 은도즈 연맹을 밀어내주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평화 유지를 한다고 좆 같은 딴소리를…… 그때 당신이 등장한 겁니다.”

말이란 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리고 ‘지원군’과 ‘평화 유지군’은 전혀 다르다.

즉, 어딘가 수상쩍은 올드 피스 길드보다 이현욱이라는 한 사람을 믿겠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들은 이현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저항군, 제가 돕죠.”

너무나 흔쾌한 수락은 예상 밖이었는지 HPA 조직원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저, 정말입니까?”

"하— 스틸레인이 우리 편이라니……."

"맙소사,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감탄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하겠습니다. 저는 전장에 오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

"네? 어…… 전쟁이란 게 빨리 끝날 수는 없잖아요?”

"제가 단기간 동안 적들의 핵심 전력을 요격하여 전쟁 불능으로 만들겠습니다.”

즉, 은도즈 연맹의 전력을 상실시키고 빠질 테니, 그 뒤는 저항군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그건 사실 저항군 측에서도 환영할만한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외부 세력을 끌어올 때 가장 걱정되는 건, 승리 후 내정 간섭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뭐가 됐든, 저항군이 이길 수 있도록만 전세를 바꿔주면 돼요.”

이현욱은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CAR에 도착한 뒤 이틀이면 된다.’

CAR 내전은 그저 거쳐 가는 단계일 뿐, 진짜 이벤트는 <비슈누의 미궁>이었다.

***

이현욱은 고진화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이 생겼으니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현욱의 결정이니 별말 없이 따랐다.

그리고 30분 후, 이현욱과 HPA 조직원들은 호텔을 나와서 암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아직 조심해야 해요. 인드라의 창 길드는 첸나이 전체에 세를 뻗고 있거든요."

그들은 미리 준비된 승합차를 타고 ‘안전 가옥’이 있는 부둣가로 이동했다.

그 길에, 소피가 CAR—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게임으로 변하기 이전부터 내전이 반복되었던 아프리카의 내륙국인 CAR,

그리고 지금, 그 나라의 패권을 쥔 건 플레이어 군부인 ‘은도즈 연맹’이었다.

"......그 새끼들은, 악마들이에요.”

소피는 은도즈 연맹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놈들은 자국민 플레이어들을 깡그리 소집하여 ‘던전 강철 채굴지’의 플레이어 광부로 강제 노역시켰으며 이에 반하는 이들은 손과 발을 자른 뒤 '마나 추출장’으로 보내버렸다.

그게 얼마나 잔혹한 일이냐면…….

‘마나 추출장, 플레이어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몸에서 마나를 뽑는다.’

그리고 마나가 자연 회복될 때마다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뽑아낸다.

비유하자면, 살아 있는 인간을 마나 발전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비인도적인 행태가 전 세계에 알려지며 세계 각국의 규탄이 이어졌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결국은 남의 일, 세상은 잠깐 분노한 뒤 금세 잊어버렸다.

“하……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죄다 자행되는, 실재하는 지옥이 방치되고 있어요.”

그래도 플레이어 인도주의 동맹만큼은 그러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은 ‘인권단체’이기에 전세를 뒤바꿀 정도의 무력을 지니진 못했고,

이렇게 지금처럼, 그저 외부에서 저항군을 지원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 그런데 웬만하면 결정적인 순간까지 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둣가의 한 창고 앞에 승합차가 멈추는 순간, 이현욱이 마스크를 쓰며 그렇게 말했다.

"어…… 그 말씀은, 우리 쪽에도 알리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네, 아무래도 정보가 새나갈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아……."

"소피,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적들은 저를 잡을 방법을 준비할 겁니다.”

이현욱이 지금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그건 빌런들에게 내가 라퓨타를 비웠다는 걸 알리는 셈이기도 하니까…….'

물론, 서울에서 무슨 일이 터진다면 프리드웬의 ‘긴급 복귀’를 쓰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저희가…… 윗선에 보고하긴 해야 해서요.”

그들의 원래 임무는 경매장에서 ‘백색 연꽃 그림 조각 8번’을 낙찰받는 것이었다.

그것만 확보되면 <올드 피스>길드와 계약이 이행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즉, 올드 피스 길드 대신 이현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윗선과의 상의가 필요했다.

이에 대해, 이현욱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소피, 일단은 그 아이템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고하세요.”

그녀는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다면 올드 피스 측과의 계약은 자동 파기되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겠지만……."

"그 뒤에, 제가 도착해서 저항군 지도부에 직접 밝히는 식으로 가겠습니다.”

그녀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이현욱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한 거물의 손을 빌리는데, 윗선에 욕먹을만한 짓 한 번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잠시 후, 이현욱의 뜻대로 소피가 윗선에 작전 실패 보고를 했다.

그런데…… 그 직후, 예상 밖의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하, 이거, 일이 조금 꼬이네요. 곧바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어요. 그 아이템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복귀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그래서 이 인근 작전을 지원하라네요.”

그건 곧 첸나이 항구를 떠날 은도즈 연맹의 ‘컨테이너선’을 해상에서 습격하는 작전이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건 윌리엄 텔이 등장했을 때 얼핏 들은바, 이현욱도 알고 있었다.

"젠장, 우리 셋이 그 임무에 무슨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거기로 보내는 거야?”

“야, 이게 무슨 뜻이겠냐? 중요한 임무에 실패했다니까 물 먹이는 거지, 뭐!”

상부의 좌천성 혹은 징벌성 임무 부여에 그들은 볼멘소리로 구시렁거렸다.

이 고결한 인권단체라도, 그 내부 사정은 일반 길드와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 이게…… 이현욱 씨, 괜찮으실까요? 어쩌다 보니 좀, 거쳐 가야 할 곳이 생겼네요.”

그들은 이현욱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현욱은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잖습니까?”

“네? 무슨 말이요?”

"그 골칫덩어리 배, 제가 처리해주겠다고요.”

그건, 종전에 암시장의 골목에서 윌리엄 텔 처리한 직후, 이현욱이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그들로서도 전혀 몰랐을 것이었다.

소피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은 뒤,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자, 그 선박 안에 가득 실려 있는 건, 일명 ‘인형술사’에게 보급할 ‘인형 병기’들이에요.”

"인형술사라…… 그 유명한 전쟁 용병이 CAR 내전에 관여하고 있는 겁니까?”

"네, 4개월 전에 은도즈 연맹 측에서 그를 고용했고, 그때부터 저항군이 연전연패 중이죠.”

현재 CAR 내전에서 은도즈 연맹 측이 압도적인 우세를 2가지 이유였다.

‘내가 알기로는 인첸트리스 트윈스와 인형술사, 그 두 가지 전력이다.’

그중에서 ‘인형술사’는 단 한 번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정체불명의 용병 플레이어로,

전장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자신의 분신 격인 ‘태엽 인형’을 보내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리빙 아머’나 ‘전투 밀랍 인형’ 같은 몬스터를 권속으로 삼아 일종의 인형 군단을 부린다.

"진짜 골치 아픈 플레이어예요. 본체는 전장에 없지만, 군대를 조종하여 몰아치니까요.”

지난 전투 때는 65기의 전투 밀랍 인형과 40기의 리빙 아머가 동원되어, 저항군의 화력을 강제로 돌파—단 하루 만에 저항군이 점거하고 있던 7개의 마을이 함락당했다고 했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만큼, 겁 없이 막무가내로 전진하여 제대로 된 ‘탱킹’을 한다. 그렇게 흔들어 놓은 뒤, 은도즈 연맹의 플레이어 부대가 후속 침투를 하는 건.......

“……그건 알고도 못 막아요. 절대적인 면에서 화력이 부족하거든요.”

그 광경을 본 적 있는 HPA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 안 그래도 그렇게 골치 아픈데, 오늘 첸나이에서 출발하는 거 컨테이너선에 잔뜩 실린 리빙 아머들이 CAR 도착한다면, 이제 정말…… 뒤집을 수 없는 열세가 될 거예요.”

이현욱의 기억 속에서도 ‘인형술사’의 전력은 꽤 대단한 편이었다.

물론, 네크로맨서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으며 강희설의 ‘마기계 병단’보다도 못했다.

그래도 1인 군단이라고 불리기에는 손색없는 전력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 식의 ‘권속’을 부리는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방법 중 가장 이상적인 건…….

‘……너무 간단하다. 권속을 늘리는 걸 차단하는 거다.’

인형술사는 본인이 제작할 수 있는 인형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리빙 아머 같은 ‘마스터 권한 확보’가 가능한 몬스터를 찾아야만 했다.

즉, 컨테이너선을 습격하여 전력 증강을 차단하는 게 정답이었다.

"저…… 그런데 이현욱 씨 뜻대로 정체가 드러나지 않길 바라신다면 이번 작전은 도움을 부탁드리기가 좀 어렵겠네요. 그 배를 공격 할 때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소피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말하기를, 그 컨테이너선은 경계가 철저하다고 했다. 즉, 해상에서 급습하더라도 저항이 클 테고, 그러는 사이에 이현욱의 존재가 탄로 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은밀하게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현욱 씨 특유의 금속 상자들, 그걸 보면 알아차릴 텐데요?”

제삼자가 보기에 이현욱의 화력은 대단했지만, 절대로 은밀하지는 않았다.

"저는, 밖에서부터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러니까, 안에서부터 놈들을 뒤흔들 겁니다.”

"설마, 그 배에 잠입하겠다는 말씀이에요?”

"아니, 그것도 아닙니다.”

계속되는 이현욱의 부정에 세 사람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 찼다.

"그 배에, 리빙 아머가 잔뜩 실려 있다는 게 확실합니까?”

"네? 아, 뭐, 인형술사가 구할 수 있는 ‘인형’에 가장 걸맞은 물건이니까요.”

이어지는 이현욱의 마지막 말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만약, 제가 그 컨테이너선을 함락한다면…… 제게 그 배에 실린 물건 중 일부를 주시죠.”

***

몇 시간 전, 윌리엄 텔 일행이 암시장에서 학살당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첸나이에 정박해 있던 은도즈 연맹의 컨테이너선 ‘블랙 팩토리’는 정상적으로 출항했다.

한시라도 빨리 CAR에 도착하여, 인형술사의 전력을 보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가 공해에 접어들 무렵, 그 항로를 5대의 고무보트가 막고 있었다.

“후…… 저기 블랙 팩토리가 보입니다. 근데 정말로 우리를 발견 못 할까요?”

"괜찮아, 우리한테는 은신 마법이 적용되어 있으니까 안 보일 거야.”

그들 역시 HPA의 조직원들로, 블랙 팩토리를 습격.장악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수평선 끝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컨테이너선의 모습을 쌍안경으로 살폈다.

"음…… 팀장님, 느낌이 안 좋습니다. 생각보다 방비가 훨씬 잘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한 중년 남자가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정말로, 언뜻 봐도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두터운 무장을 한 상태였다.

갑판 위에 나와 있는 경계병의 숫자만 해도 약 스무 명…….

심지어 지원 화기 형태의 아이템들도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저 선박에 잘못 다가갔다가는, 뼈도 못 추리고 잿더미가 될 것이었다.

"젠장, 첸나이에서 소동이 있었다며?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예, 아무래도 그게 원인일 것 같습니다. 이거, 어렵지 않을까요?”

상상 이상의 무장 상태다. 이곳에 있는 26명만으로는…… 뚫을 수 없을 듯했다.

그때, 그들의 마나 메신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칙— 아, 여기는 소피 그린이다.

"이봐, 우리 작전을 지원한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어?”

- 지금 근처에 와 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런데 첸나이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표적의 방비가 대폭 강화됐잖아!”

- 음…… 일단, 작전에 관해서 논하지? 우리가 먼저 치려고 하는데—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이봐 그린, 이 작전은 우리가 지휘하는 거 알지?”

- ……우리가 신호할 테니, 선박에 오를 준비하고 있어.

"제기랄,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작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 미안하지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그냥 보여주는 게 빠를 것 같아서 말이야.

"뭐?"

- 지금…… 갑판 쪽을 한 번 보겠어?

작전 팀장은 그녀의 말대로 쌍안경을 들어 올렸는데 …….

“……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갑판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컨테이너선 위에 탑재된 컨테이너들, 그 안에는 인형술사에 전해질 인형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의 문을 뜯고, 쇠사슬을 끊고, 무언가 걸어 나온다.

"저거, 리빙 아머들…… 아닙니까?”

"그런데 저거, 왜 지금 움직이고 있지?”

철제 갑옷 거인, 그것들의 몸뚱이 위에 새겨진 마법 회로들이 시퍼런 불빛을 자아낸다.

그리고 방심하고 있던 갑판병들을 쳐 죽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상 반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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