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새로운 사업, 병기창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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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쏘, 쏘겠습니다?”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건 박준모였다.
그는 지금 강원도 야지에 마련된 무기 실험장에 서 있었는데, 이현욱, 김세희, 강희설, 세 사람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쏴? 그거 근접 무기라고 하지 않았나?”
김세희가 팔짱을 낀 채 코웃음 쳤다.
"어…… 그러면 뽑겠습니다.”
파지지지——!
그 순간, 박준모가 쥐고 있던 웬 금속 막대에서 빛줄기—전류가 치솟더니 마치 <스타워즈>속 라이트 세이버처럼 정형을 이루었다.
즉, 전기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그건 강희설이 박준모를 위해서 특별 제작한 무기였다.
그녀가 뿌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그 아이템의 이름은 일단 ‘라이트닝 세이버’고요, 거기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출력을 올릴 수 있으니까 한 번 해보세요!”
"아, 네!”
"그리고 그 안에 장착된 ‘천철 발전기’의 효율이 상당해서 한 5분 정도 유지할 수 있어요! 저절로 전류가 생성돼서 딱 10분이면 완충돼요!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로 고속 충전 옵션이 붙었거든요!”
그녀의 말대로 마나를 불어 넣는 박준모, 그러자 더 많은 양의 전류가 뿜어져 나오며 더욱 길쭉한 ‘전류 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박준모는 요즘도 꾸준히 벼락을 맞으며 체내에 저장할 수 있는 전류의 양을 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그 용량이 충분치 않았다.
그렇기에 5분이나 유지되는 전류 방출 장치는 유용할 것이었다.
"음, 그리고 저번에 보니까 전기로 뭐 그물이나 채찍 같은 거로 만들어서 쓰시던데, 그것도 모양 변형이 쉽게 되니까 해보시고요!”
"아…… 그렇다면 저한테 딱 맞는 무기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에헴, 제가 다 여러분 전투 패턴 분석해서 설계한 무기랍니다.”
이어서, 박준모가 라이트닝 세이버의 모양을 조절하기 시작했는지 칼처럼 곤두서 있던 ‘칼날’ 부분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이어서 수십 개의 분절로 나뉘더니 이리저리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굿! 그걸 잘 이용하면 수십 명을 한 번에 공격하겠는데요?”
그런데 아직 그러한 형태를 통제하는 건 영 익숙하지 않은지, 스파크가 이리저리 튀기 시작했고 박준모는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어휴…… 박준모, 쫄지 좀 마! 아니, 어차피 너 거기에 스쳐도 감전도 안 되면서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벌벌 떠는 거냐?"
김세희가 혀를 끌끌 차며 한소리를 했다.
그녀는 박준모가 아직도 이등병 같다며 안타까워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은 몇 달이 지나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녀석의 원래 성격이 원체 소심한 편인 듯했다.
"아니, 쪼는 게 아니에요! 이, 이게 사람이 본능이라는 게……."
"아이고…… 그렇게 간이 작아서 앞으로 어떻게 할래?”
그러나 이현욱은 박준모가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저렇게 어설픈 모습을 보여줘도 이제는 알아서 잘 하고 있다.’
서울역 전투가 벌어진 지도 어느덧 11일 전이었다. 그리고 그날, 만약 그날 박준모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었다.
이현욱이 따로 지시하지 않았어도, 탈로스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가서 블랙 오크들을 감전시키며 1중대원들을 위기에서 구해냈었다.
즉, 저 녀석도 분명히 잘 성장해나가는 중이었다.
"자! 그러면 다음은 언니 차례에요.”
강희설이 웬 철제 박스를 하나 꺼내왔다.
"응? 내 것도 있었어?”
"그거야, 공평하게 세 명 다 있죠!”
김세희가 그 철제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건 로브였다.
“……어라, 옷이잖아?”
이에 강희설이 그 로브를 펼쳐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짠— 그리핀의 깃털과 미스릴로 짠 로브에다가 바람 속성 오브를 발랐어요. 그래서 바람을 맞을 때 마나를 부여하면 저절로 몸이 떠오르는데, 그리핀처럼 그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어요. 여기에 귀여운 그리핀 모양의 자수도 넣었는데, 어때요, 은근히 힙하죠?”
이현욱이 보기에 그건 그리핀이라기보다…… 병아리 같았다.
"와, 귀엽다! 희설이 너, 무기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뭐, 그냥 한 번 해봤는데 괜찮은 게 나왔네요. 이게 재능인가?”
그렇게 자화자찬한 뒤 와하하—! 하고 너무나 통쾌하게 웃는다.
김세희는 그 로브를 착용한 뒤, 하늬를 불러내 바람을 일으켰다.
훙——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와, 확실히 잘 떠오르네? 하늬, 힘 좀 더 써봐!”
그녀는 바람을 타고 돌진해서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이동했다.
저 아이템이라면, 그녀의 암살 능력이 배가될 수 있을 것이었다.
“자,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강희설이 눈을 빛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산 중턱, 그곳에 비공정 한 대가 착륙해 있었다.
그녀가 타고 온 그레이 드워프제 비공정이었다.
"그런데 저것 좀 꺼내주실래요? 저는 무거워서 못 들어요.”
이현욱은 왼손을 뻗어서 2m가 넘는 철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쿵——!
어찌나 무거운지 바닥에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먼지가 치솟는다.
"여러분, 모두 뒤로 최대한 물러나세요! 자 이거 끼시고요!”
강희설이 웬 보안경을 하나씩 내밀었다.
“……응? 이번에는 도대체 뭐길래 이런 것까지 해야 해?”
"아마도 좀 번쩍번쩍할 난리 날 거예요. 뭐가 튈 수도 있고요. 저도 솔직히 써보질 못해서 그냥 예상하는 건데, 엄청 기대되네요."
"와, 역시…… 우리 사장님 물건은 규모가 남다르구나?”
"아무래도 항상 급이 다른 값비싼 재료를 물어오시잖아요?”
이현욱은 철제 상자를 열었다.
철컥—
그 안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모글레이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현욱은 그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모글레이(영웅)
- 효과
1) 질량 해방(1~5):봉인된 ‘질량’를 해방하며, 사용자에게 ‘강골(强骨)’을 부여합니다.
2) 쇼크웨이브 :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킵니다. 이 파괴력은 1번 질량 해방과 비례합니다.
3) 헬리오스 열선 : 무기의 칼날 부분에 ‘태양의 힘’이 부여되어 30초간 ‘초고온’상태가 됩니다.
4) 플레어 윕 : 검신에서 ‘플라스마 채찍’ 6줄기를 방출하여 5초간 주변부를 무작위로 공격합니다.
'스킬 2개 추가…… 샐러맨더의 오브, 잘 적용됐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2499kg
그동안 금속 통제력을 대폭 늘려 놓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 모글레이의 질량이 <3단계>로 해방됩니다!
* 강골 수치가 상승합니다. (+ 30%)
'좋아, 마침내 전생과 같은 3단계에 이르렀다.’
즉, 이제 이 2m짜리 철검에 담긴 무게가 무려 2t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날을 가진 무기이거늘, 2t이라니…….
이제는 정말 차원이 다른 위력을 품고 있게 된 것이었다.
“……다들, 아무래도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있어야겠는데?”
이현욱은 일행을 조금 더 먼 곳에 엄폐하게 했다.
그리고 모글레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웅——
이렇게 보면 조금 큰 검 한 자루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중형 화물차 한 대를 띄우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헬리오스 열선—’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자, 검신이 담금질을 한 것처럼 달아오른다.
위—잉——!
이현욱은 그걸 움직여서 근처에 있는 바위에 살짝 가져다 댔다.
치이이이——!
힘을 거의 주지 않았음에도 바위가 흡사 찰흙처럼 잘린다. 심지어 검 주변의 공기 끌어 오르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에 이른다.
"아…… 그때 그 네임드 등급의 오브를 적용한 거군요?”
“네, 코도 코지로에게 얻었던 그거 맞아요.”
이현욱은 그걸 더 높이 올렸다.
그리고, 지상으로 추락시켰다.
쩌—엉——!
그저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반경 수 미터짜리 구덩이가 파였다.
‘그리고 이걸 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그건 흔히 말하는 ‘질량 병기’의 개념이었다.
실제로 전생에도 그런 식으로 블랙 드래곤을 즉사시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옵션이 더 좋아졌고 앞으로 좋아질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궤도에 올려서 떨어뜨릴 수 있다면…….'
그걸 완성한다면, 웬만한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보낼 수도 있다.
즉, 궤도 위에 초대형 저격 병기를 장착한 셈이 될 것이었다.
“자, 여기에다가 마지막으로…… 플레어 윕—”
스킬 시동 명령, 지면에 내리박힌 모글레이가 달아오르더니 마치 날개가 뻗어 나오듯 붉은빛의 열선들이 일어선다. 총 6개였다.
그리고…….
콰—과—과—과—과——!
그것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일대를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콰—과—과—과—과——!
"—헉!”
"뭐, 뭐야!”
얼마 전, 운석 충돌의 열기 때문에 단단하게 굳어 있던 지면이거늘 너무나 쉽게 깨지고, 튀어 오르며……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긴다.
정확히는, 초고온의 플라스마로 녹여서 끊어내 버리는 것이었다.
이내, 세상천지가 뿌연 흙먼지와 매케한 연기로 뒤덮였다.
후두두두……
5초 후, 그 한 바탕의 소란이 끝났다. 그러나 튀어 올랐던 돌덩이가 우박처럼 쏟아지는 터에 얼마간 머리를 가린 채 있어야만 했다.
"허— 미, 미쳤네……."
"와, 저걸 살아있는 거에다가 쓰면…… 너무 끔찍하겠는데요?”
이현욱의 생각도 비슷했다.
‘저걸 누군가에게 박아 넣고 시동한다고 생각하면…….'
그때 어디선가 낯선 외침이 들려왔다.
"거, 거기 괜찮으십니까? 방금 그 폭발, 무슨 일입니까?”
그러고 보니 이 강원도 산간 야지에 정부 측 요원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측량 작업 중이었는데, 병기창 건설의 기반 작업이었다.
"아, 별일 아닙니다. 무기 실험 좀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실험이 이곳에서 자주 벌어질 것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박철수에게 전화가 왔다.
- 지금 전체 수익률이 459% 정도 되는데, 매일 상승세야.
이현욱의 예상대로 ‘마법 모빌리티’ 분야의 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건 ‘강철 함대’의 출현이라는 빅이슈 이후, 앞으로 ‘아이템형 비공정’이 대량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현욱의 오더로 박철수가 미리 투자해둔 게 약 56억 원,
그게 불과 며칠 사이에 4.5배 이상 불어났다는 뜻이었다.
"형, 그거 빼고 아프리카 광산 개발 산업 쪽으로 알아 봐줄래?”
- 어? 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이번에도 말해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게 좀 은밀한 일이라서, 지금은 못 말해줄 것 같아.”
- 그래, 지금 이 주식 판도도 다 네가 만든 판이긴 하니까…….
박철수는 애써 수긍했다.
이현욱의 생각은 지금까지 전부 맞아떨어졌다.
사실상 예언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곽진화에게 전화가 왔다.
- 첸나이의 레드 우드 경매장 입장권 구해 놨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 이상한 아이템은 앞으로 사흘 뒤에 경매에 오를 예정이에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여권, 준비됐을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위장 신분 여권이었다.
- 네 그것도 준비됐어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네요.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저희가 대리 입찰해드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왜 굳이 직접 인도의 첸나이까지 가려는 건지 묻은 거였다.
“제가 꼭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 하나 있거든요.”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
사흘 뒤, 이현욱은 위장 신분으로 인도에 입국했다.
‘내 진짜 신분으로 국경을 드나들면 소문이 날 거다.’
암시장을 이용하는 불법적인 움직임에 ‘[속보] 이현욱 인도 입국 정황……'이런 기사를 줄줄이 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유명한 플레이들이 외국의 암시장에서 파파라치들에게 찍히며 구설에 오르곤 했다. 그건 영웅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불법적인 작업은 레드 홀 마을에서 처리해주었다. 역시 지하 경제와 커넥션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암시장이 바로 여기에요.”
이번 여행의 안내를 맡은 고진화가 앞서나가며 그렇게 말했다.
이현욱과 그녀는 얼굴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가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곳 첸나이 암시장은 사실 암(暗)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야시장 같은 느낌,
이곳저곳에서 요란한 음악과 함께 호객 행위가 이어졌다.
"저기, 오빠! 플레이어죠? 여기에서 쉬다 가요! 여기, 불의 정령사 언니들이 해주는 뜨끈한 마사지 한 번 받으면 피로 싹 풀려요!”
"자! 정령의 숲 환각초 있습니다. 최고의 쾌락을 만끽하세요!”
그리고 온갖 불법 아이템을 대놓고 장사하고 있었다.
"어때요, 여기는 좀 암시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죠?”
“아무래도 인도 정부에서 건들지를 못하고 있으니까요.”
인도의 남쪽을 통제하는 건 인도 연방 정부가 아니라 길드였다.
‘특히 <인드라의 창>길드의 세력이 엄청나다.’
그들은 세상이 게임으로 변한 초기, S등급 플레이어를 2명이 함께 결성한 조직으로, 그 어떤 길드보다 빠르게 세를 불려 나간 끝에 오늘날은 인도 정부도 좌시할 수밖에 없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첸나이 암시장은 그들의 비호를 받고 대놓고 성행하는 것이었다.
이현욱이 그걸 설명하자, 고진화가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내가 말해주려고 했는데, 역시 되게 잘 알고 있네요?”
"뭐…… 출장 오기 전에 공부 좀 했죠.”
“아하…… 근데 출장이 아니라 쇼핑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꼬인 암시장을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붉은 벽돌로 지어진 5층짜리 건물을 마주하게 됐다.
"자, 레드 우드 마켓, 여기가 그 경매장이에요.”
그 앞에 방패를 든 전사 계열 플레이어 6명이 우뚝 서 있었다. 무슨 왕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처럼, 철제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채였다.
그리고 건물 창문 곳곳에 사수 계열 플레이어들이 대기 중이었다.
‘심지어 마법 방어막을 건물 전체에 칭칭 둘러놨다.’
여기에는 이 암시장에서 보안이 가장 철저한 곳이었다.
"자, 1장뿐이라서 저는 못 들어가요. 제발 길 잃지 마시고요.”
고진화는 지갑에서 검은색의 ‘티켓’을 꺼내서 내밀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 물건은 아마도 4회 경매에 등장할 거예요.”
"지금이 2회니까, 시간이 한 2시간 남았을까요?”
“그렇죠. 그런데…… 그 가지고 싶다는 게 대체 뭐예요?”
그녀는 그 질문을 작게 속삭였다. 이현욱, 이 거물이 원하는 물건이 무엇이길래 여기까지 직접 행차한 것인지 궁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아이템은 대부분은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잠재 아이템이라서 사는 사람들도 도박 삼아서 하는 걸 텐데요."
잠재 아이템, 진짜 옵션이 숨겨진 아이템을 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숨겨져 있다.’ 첫 옵션보다 더 좋아질지언정,
투자한 금액보다 좋은 옵션이 나오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잠재 아이템 경매는 일종의 도박처럼 행해졌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랜덤 박스>같은 개념이다.’
또한, 잠재력 해방 방법이 꽁꽁 감추어져 있기에 낙찰받았다고 한들, 끝내 그 진짜 가치를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게 뭔지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이현욱은 싱긋 미소 짓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부디 조심하세요. 여기는 돈 몇 푼 뜯는 양아치들만 있는 게 아니고 길드 단위의 폭력 조직이 지배하는 곳이라서 시비 잘못 걸리면 골치 아파지는 걸 넘어서…… 심각한 유혈 사태가 나요.”
그녀는 이현욱이 누군가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장 신분 상황에서 사건이 커지는 건 절대 좋지 않았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드 우드 마켓>으로 들어갔다.
***
"—자, 신사 숙녀 여러분 <레드 우드 마켓>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준비된 마지막 시간, 4회차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오페라 극장을 연상게 하는 어두운 공간,
무대 위의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내 경매 대상 아이템이 하나씩 무대 위로 등장한다.
"이 아이템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발생한 A등급 게이트에서 파밍된 물건으로, 팔찌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세 정보는 스크린에 나온 대로 다소 불명확한 편입니다만……."
[아이템 정보]
- 이름 : 죽은 자의 녹슨 팔찌
- 효과 : 알 수 없음
"하지만 여러분, 무려 A등급 게이트이며 그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는 무려 ‘중급 리치’였습니다. 딱 봐도, 있어도 뭔가 있겠죠? 이건 대한민국의 랭킹 1위 중력 마법사 이성윤에 의해서 파밍……."
그러나 이현욱은 정작 그 경매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선, 그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이현욱이 노리는 물건을, 똑같이 노리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전혀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조용한 실내에서도 속삭임들이 있었는데, 이현욱은 곳곳에 있는 ‘마나 메신저’를 해킹해서 그 은밀한 대화를 하나씩 엿들었다.
- 씁, 저거 뭔가 느낌 오는데요? A등급 던전이면…….
- 야, 고위 던전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전부 다 대박은 아니다.
- 에이, 사장님, 이번에는 제 안목 믿어 보시죠. 느낌 옵니다.
- 하, 이 자식아…… 중력 마법사 이성윤, 그 잘난 인간이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 물건인데 우리가 무슨 수로 잠재력을 해방하겠냐?
'얘들은 뻔한 장물아비들이고…….'
- 칙— 3번 게이트 2명 입장한다.
- 1번 게이트 3명 퇴장 중, 2번 경매 낙찰자로 보인다.
‘이건 마켓 경비병들 목소리고…….'
그는 대상을 바꾸어 또 다른 마나 메신저에 접속했다.
가장 우측, 맨 뒷자리에 있는 3명의 남녀였다.
- ……그게 이 4회 차에 나오는 거 맞지?
이 대화는 영 수상쩍었다.
‘방금 그거, 무엇이 나올지 미리 알고 왔다는 말인데?’
즉, 장물아비나 도박꾼이 아닌 계획이 있는 자들일 가능성이 컸다.
이현욱은 지금 그런 이들을 찾고 있었다.
- 그래 ‘CAR’ 쪽에서 보내는 확실한 첩보야.
‘찾았다. <인도주의 플레이어 협회>아프리카 지부원들이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플레이어에 의한 폭력에 맞서는 조직으로, 특히 제삼 세계를 지배하는 ‘플레이어 군부’ 세력 해제를 주장하면서 무력 항쟁까지 서슴잖는 과격한 무장 단체이기도 했다.
- 그게 CAR의 <비슈누의 미궁>열쇠라는 거 확실하지?
- 그래, 퀘스트에서 주어진 나침반을 따라 왔으니까, 확실해.
여기에서 CAR은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을 뜻했다.
‘그리고 비슈누의 미궁은 무려 <수다르사나>가 나오는 곳이다.’
이현욱은 전생, 라퓨타 공략 전의 비극을 다시금 떠올렸다.
라퓨타에 장착되어 있던 초거대 병기 <수다르사나 캐논>,
그것의 일격으로 연합국의 수상 함대가 통째로 수장되었다.
‘그건 정말…… 최악의 한 장면이었다.’
의외로 그 기반이 되는 물건은 단 하나의 ‘화살’이었다.
그 화살이 나오는 곳은 <비슈누의 미궁>이고, 그곳에 입장할 수 있는 '열쇠’는 퍼즐 형식으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저들은 지금, 그 마지막 퍼즐에 도달한 상황이다.’
아마도 수년 동안,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욱은…… 전생의 기억으로 그 퍼즐의 위치를 쉽게 알아냈다.
즉, 저들이 오늘 여기에 나타나리라는 사실도 유추할 수 있었다.
- 음…… 순서가 몇 번째였지?
- 아마 메인 이벤트에서 2번째 전이었나, 그럴 거야.
- 그렇다면 경매 시작가가 한 10만 달러 정도 하려나?
- 그럴 거야. 하…… 500만 달러는 넘기면 안 되는데…….
- 에이, 절대로 그 정도는 안 갈 거다.
- 야, 너희 둘, 조용히 좀 해. 누가 듣겠다.
‘방금 500만 달러라고 했지?’
이현욱은 그들이 준비한 금액 이상을 준비해두었다.
즉, 안타깝게도 저들은 절대로 낙찰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일 테니, 나한테 따로 접근할 거다 ’
이현욱의 작업은 그때 시작이었다.
그들에게 접근해서 <비슈누 미궁>을 같이 공략한다.
그리고 ‘수사르사나’를 얻는다.
이현욱은 그 ‘퍼즐’이 등장하는 순서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 이번에 보실 물건은 캐나다 퀘벡에서 발생한 레드 게이트에서 파밍된 물건으로서, 특이하게도 허리띠 형태의 아이템입니다.”
그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나왔다.
‘아니, 저게 여기에서 왜 나와?’
[아이템 정보]
- 이름 : 북쪽 장사의 허리띠
- 효과 : 착용 시 근력이 2% 상승한다.
그건…… 토르의 허리띠 ‘메기긴요르드’였다.
즉, 세트 아이템을 완성할 기회가, 난데없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