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11화 (111/221)

111화.  < 제주도, 파에톤 레이드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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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의 거인 파에톤, 그 월드 보스 몬스터의 몸에서 ‘염화 폭풍’이 터져 나오기 직전, 강철 함대는 순식간에 고도를 높였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사방으로 뿜어져 오르는 열풍을 온전히 피해낼 수는 없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직격당하는 것보단 나았다.

“—전 함대, 충격에 대비한다!”

쿠—구—구—구—구——!

"윽!"

이내 제트 기류와 같은 열풍이 몰아치며 강철 함대를 수십 미터 밖으로 밀어 내버렸다. 그래도 그게 끝이었다. 큰 피해는 없었다.

"후…… 다행이다! 잘 버텨냈어!”

"일단 저 거인에게서 최대한 멀어져야 해!

이후 강철 함대는 파에톤을 경계하며 산개했다.

그것은 여전히 염화 폭풍을 방출하는 중이면서도, 고개를 들어 올려 붉은 눈동자로 강철 함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 시선 안에는 어떤 ‘격’이 담겨 있었기에 플레이어들은 절로 서늘함을 느꼈다.

“시발, 저 눈깔…… 무섭긴 하잖아……."

"그냥 쳐다보지 마. 보이지 않는 디버프가 담겨 있을 거야.”

고—오—오—오——

어느새 놈의 양손에, 붉은 일렁임이 모여들고 있었다.

조금 전, 불기둥을 쏘아 올렸을 때와 같은 전조였다.

“도 대표님! 그레이트 워터 볼, 또 쓸 수 있죠?”

-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

강서윤의 물음에 도희선이 대답했다.

그녀와 물의 마법사들이 있는 한, 화염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막기만 하는 건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이다음 단계의 염화 폭풍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

“……어, 저게 뭐야?”

그들의 시야에 또 다른 이상 현상에 눈에 띄었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검은 일렁임, 먹구름이었다.

우르르르——

그건…… 평범한 먹구름이 아니었다. 자연현상이라고 볼 수 없는 빠른 움직임, 그 안에서 전류 다발이 뒤엉키며 사납게 울부짖는다. 당장이라도 낙뢰로 변하여 지면을 짓이겨 버리겠다는 아우성이었다.

파지지지——!

"어? 갑자기 먹구름이 어디서 오는 거야?”

"그, 그것도 저렇게 빨리 다가온다니, 영 불안한데?”

그 이상 징후의 실체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강서윤이었다.

'저건…… 스킬이다.’

강서윤은 그 ‘스킬’을 진원지를 찾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시야가 자연스레 닿은 곳은, 역시나 이현욱이었다.

그는 한태산과 함께 지상에 있었고, 염화 폭풍은 견뎌내고 있었는데, 그의 손아귀에서 웬 전류가 흘러나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현욱,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야?’

그때였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뇌신의 분노’가 시작됩니다.

경고성의 시스템 메시지가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건 웬만큼 위험한 스킬의 아니고서야 출력되지 않는다.

"......광역 공격 스킬이잖아?”

일대를 초토화하는 위력의 스킬, 자칫 멋모르고 그 공세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근처에 있는 모든 이에게 경고성 메시지가 뿌려진다.

즉, 빨리 도망가라는 뜻이었다.

한편, 이현욱은 양손으로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쥐고 있었다.

파지지지——!

그곳에서부터 전류가 뿜어져 나오며 손을 타고 전신으로 번진다.

"큭!"

근육 경련, 몸 구석구석이 잘게 짓이겨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등장한 웬만한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그러하듯,

이 묠니르에도 사용에 있어서 ‘오버 핸디캡’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묠니르가 내뿜는 ‘전류’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감전에 대한 내성 2단계 (81%)

‘좋아, 아슬아슬하게 버틸 만하다.’

이현욱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지난 며칠간 전류를 품고 있는 마법 금속인 ‘천철(天鐵)’을 꾸준히 삼켜서 내성 등급을 올렸다.

그렇기에 버티고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묠니르를 하늘을 향해 천천히 들어 올렸다.

우르르르——!

그러자 마치 낚싯대를, 그것도 대어가 걸린 낚싯대를 움켜쥔 것처럼 어떤 당김이 느껴졌다. 달리 말하자면, 그걸 잡아당겨 뽑아낸다면 무언가 거대한 게 딸려 나올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당김은 묠니르와 저 먹구름의 마법적인 연결 때문이었다.

‘이걸 내리치면, 수십 개의 낙뢰가 뽑혀 나올 거다.’

이현욱은 고개를 들어 올려 파에톤을 바라보았다. 놈은 강철 함대를 요격하려는 듯 양쪽 손아귀에 화염을 응집시키는 중이었다.

‘지금이다.’

그는 바닥을 향해 내리치듯, 묠니르를 휘둘렀다.

꽈—르—르—르—르——!

세상을 채우는 번뜩거림과 공명, 먹구름이 색 반전되듯 새하얗게 물들고 수십 가닥의 낙뢰가 흡사 폭포처럼 쏟아져 와르르 내린다.

쩌—저—저—저—정——!

한라산, 정확히는 염화의 거인 파에톤의 머리 위로 떨어진 징벌— 숯덩이로 변했던 나무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시뻘겋게 달궈져 있던 지면이 쩍—하고 갈라지며 마그마가 혈흔처럼 터져 나왔다.

그어어어——

이어서, 그 거구가 괴성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고 앞으로 엎어졌다.

‘역시, 묠니르…… 진짜 어마어마하잖아?’

이현욱은 새삼스럽게 혀를 내둘렀다.

제우스의 번개에 준하는 토르의 번개다.

즉, 저놈에게는 천적 같은 위력이었다.

"너 이 자식......."

한태산조차도 그 광경에는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아까 그 쇳물 조종도 그렇고, 또 뭘 숨기고 있던 거냐?”

그는 이현욱을 사기꾼 보듯 쳐다보았다.

“한태산 씨, 지금 우리가 대화할 여유가 있습니까?”

"뭐? 나는 애초에 여유롭게 내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 제가 조금 일찍 가져온 것 같습니다.”

이현욱이 싱긋 웃자 한태산은 콧방귀를 뀌고 앞으로 나아갔다.

파지지지——

그 일대에 전류가 감돌고 있었지만, 한태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나갔다. 그는 조금 웃기게도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마다 신체가 강화되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수련한 결과 초인적인 육체를 얻었다.

"그래, 이제는 내 차례니까, 넌 빠져 있어도 돼.”

그가 땅을 박차며 오른손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지금부터 고깃덩어리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패주마!”

뻐—억——!

2m가 안 되는 인간이 20m 크기의 거인에게 어퍼컷을 날린다. 놈의 머리가 들리며 뒤로 젖혀졌고 심지어 무릎이 살짝 들리기까지 한다.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던 한태산은 자유낙하 하며 두 주먹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파에톤의 정수리를 향해 망치처럼 내리쳤다.

쩌—억——!

기어코 파에톤의 머리통이 바닥에 내리꽂히며 지진이 일었다.

쿵——!

그때, 마나 메신저로 강서윤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칙— 후방에서 몬스터들이 접근하고 있다!

끄에에에——

어느새 등 뒤로 움직이는 나무귀신 ‘절규하는 포풀러’가 접근하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가지와 뿌리를 뻗으며 오르막을 오른다.

그런데 비공정 한 대가 고도를 낮추며 그 안에서 몇 명이 내렸다. 안양 듀오를 비롯한 플레이어들, 그들이 몬스터들을 막아섰다.

- 여기는 우리가 막을 테니, 빨리 놈을 처리하세요!

이현욱은 다시 파에톤을 바라보며 묠니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뇌신의 분노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무려 12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묠니르가 쓸모없어지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묠니르(전설)

- 효과

1) 강철 벼락 : 투척 시 파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2) 리터닝 : 소유자가 복귀를 명령할 시 다시 돌아옵니다.

3) 뇌신의 분노 : 강력한 전류를 방출합니다.

첫 번째 스킬인 ‘강철 벼락’ 이것도 상당히 유효했다.

이현욱은 묠니르를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퉁——!

파공음, 손을 떠남과 동시에 가속하며 소닉붐이 일어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묠니르 역시 금속이다.

이현욱은 그 끝에 금속 통제력을 부여했다.

이에 몇십 배는 무거워진 채로, 쏘아진다.

스킬 이름처럼 벼락처럼 쏘아지는 강철이다.

뻐—억——!

한태산의 공세 속에서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던 파에톤, 놈의 왼쪽 무릎을 묠니르가 강타하자 균형을 잃고 도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리터닝’으로 돌아오며, 놈의 후두부를 한 대 더 친다.

"그래, 내가 때리기 좋게 그렇게 앉아 있어!”

뻑! 뻑! 뻑! 뻑!

그 뒤에 한태산의 연타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파에톤의 움직임 패턴을 파악한 듯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급소를 친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아무리 제대로 카운터를 맞았다고 해도 무려 월드 보스 몬스터다.

한 번 승기를 잡았다고 해서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몸이 시뻘건 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태산 씨! 조심하세요!”

"응? 혹시 날 견제하려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이현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거, 아무래도 한 번 데어봐야 할 듯싶은데?’

- 주의! 플레이어 여러분의 놀라운 성과로 인해 <추가 이벤트>가 부여됩니다.

“씨발, 이건 또 뭐야?”

- 주의! 염화의 거인 파에톤이 ‘플레어 쉴드’를 사용합니다!

직후, 놈의 몸에서 화염 다발이 일어나 채찍처럼 일대를 후려쳤다.

콰—가—가—가——!

그 채찍에 맞은 땅이, 뜨거운 칼로 치즈 자르듯 녹아 흐트러진다.

한태산은 곡예 하듯 피해냈지만, 결국 한 대를 허용하고 말았다.

쩍!

“컥!”

그건 초인인 한태산도 감당할 수 없는 열기였다. 그는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수차례 구른 뒤 일어섰는데, 몸에 불이 붙어 있었다.

"큭......."

그는 몸에 마나 실드를 둘러 일시적으로 산소를 차단했다.

그러자 불이 꺼졌지만,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말았다.

"이건 또 뭐야! 존나 뜨겁잖아! 큭—”

비공정 한 대가 급히 내려오더니, 그 안에서 프리스트가 내렸다.

"권왕, 어서 힐을 받으세요!”

그러는 사이, 화염 채찍들이 파에톤의 몸을 감싸며 회오리친다.

"미친, 저러면 다가갈 수가 없잖아? 또 타이밍을 기다려야 해?”

한태산이 혀를 찼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염화 폭풍 : 3단계>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 남은 시간 : 00:04:59

이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경고성 시스템 메시지…… ‘염화 폭풍 3단계’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겨우 5분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 앞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아니, 고작 5분? 썅,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이거 완전 말도 안 되는 밸런스잖아?

- ……추가 이벤트, 다들 예상하긴 했잖아요? 근데 좀 빡세네요.

마나 메신저에서 당황 어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저 새끼, 방어 스킬을 쓴 상태로 광역 스킬을 쓰겠다는 건가?”

한태산도 그 내용에 인상을 구겼다.

"예, 딱 봐도 그런 연계 스킬인 것 같습니다.”

“아노! 저 새끼, 덩치에 안 맞게 완전 찌질한 놈이었잖아!”

이러한 ‘추가 이벤트’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공략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질 때마다 시스템은 정해져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를 작동시켜서 플레이어들을 극한의 시련으로 몰아넣곤 한다.

즉, 예견한다고 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아니었다.

직후, 강철 함대에서부터 온갖 공격 스킬이 쏟아져 나오며 파에톤의 ‘플레어 쉴드’를 두드려댔으나…… 죄다 튕겨 나가 버렸다.

"하, 이러면…… 일단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태산을 치유하고 있던 프리스트가 걱정스레 말했다.

"......."

그 물음에 한태산은 평소처럼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무모해 보이는 태도는 사실 확신에서 나온다.

지금은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이현욱이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한태산 씨, 제가 놈을 타격할 테니까 준비하고 계시죠.”

"……뭐?”

계속되는 의외의 행동들, 이제는 한태산 역시 태클을 걸지 않았다.

"너 또…… 그게, 무슨 말이야?”

그저 이렇게 되물을 뿐이었다.

"제가 또 한 번, 놈의 염화 폭풍 시전을 저지할 겁니다.”

“……이 자식,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

“예, 맞습니다. 그때까지 다시 공격할 채비를 마치세요.”

"설마 아까 그 사기 같은 번개 공격, 또 가능한 거야?”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야! 저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진짜 죽는다, 너!”

그 말은 비공정에서 뛰어내리기 전에도 했으나, 이현욱은 버텼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저 ‘플레어 쉴드’는 한태산, 본인조차 견딜 수 없는 열기였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꿍꿍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현욱은 AD-1을 한 대 끌어와 그 안에서 2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이번에도…… 템빨이다.’

그건 ‘아킬레우스의 창’과 ‘아킬레우스의 방패’였다.

그걸 양손에 쥐는 순간—

- <아킬레우스의 무구 세트(2/4)> 효과가 발동합니다!

* 아킬레스건을 제외,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됩니다. (30초)

이현욱은 모든 강체화를 발뒤꿈치에 집중한 뒤,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모습이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

그렇게 제주도 공략이 절정에 도달한 그 시점…….

그 순간을 노리고 서울에서도 모종의 사건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우우우——!

서울 남산의 AMT 제3항마여단 1대대에서 긴급 출동 중이었다.

총 4대의 군용 트럭들, 1중대 병력이었다.

최선두의 K-153 기갑수색차량 조수석에 서은하 중위가 타 있었다.

“……아, 공략소대장이 전 병력에 전달한다.”

이 행렬의 최고 선임자는 1중대장 곽용준 대위였으나,

작전 지휘권은 공략소대장인 서은하 중위에게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통해 작전지 현장 사진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작전지는 서울역으로, 역사 근처 하수구에서 이상한 식물이 돋아났다는 정보다. 아마도 지하 시설물에 게이트가 발생한 듯 보이나, 현재 게이트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서울역을 봉쇄하고 지원이 있을 때까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한다.”

잠시 후, 서은하와 1중대 병력은 서울역 앞에 도착했다.

“아니…… 저게 뭡니까?”

공략소대의 저격수, 강익준 하사가 물었다.

"글쎄, 나도 처음 봐. 지옥 손아귀는 아닌데……."

신고 내용대로 서울역 주변에는 기이한 식물들이 자라나 있었다.

꾸득— 꾸득—

하수구를 비집고 솟아오른 두꺼운 보라색 넝쿨, 총 7줄기였는데, 그것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며 한대 뒤엉키고 있었다.

"—접근하지 마세요!”

서울역 경비대 소속 플레이어들이 현장을 통제 중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저 넝쿨이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칙—

"전 병력, 분대장 지시에 따라서 차단선을 설치한다!”

서은하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주변을 살폈다.

‘공격성이 없더라도 백 퍼센트 안전한 게이트는 없다.’

게이트 폐쇄 전까지는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서은하는 방심하지 않고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던 중,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저런 덩치들이 이렇게 흔했나?’

역 앞, 구경꾼들 사이에 유독 덩치 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있었다. 거의 2m에 달해 보였는데 어깨도 비정상적으로 넓었다.

"소대장님, 저 덩치들 뭐, 미식축구 선수들 같은 건 아니겠죠?”

강익준 하사 역시 그들을 포착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는 저격수인 만큼, 눈이 아주 좋고 판단력도 뛰어났다.

"그래, 나도 보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아니, 이상함을 넘어서 이거 영 불길한데요? 씁—”

“……당장 서울역 반경 1km 내에 모든 시민 전부 해산시킨다.”

그러나 그 불길함은 예상보다 이르게 현실이 되었다.

"어!”

그 거구들이 일제히 움직이더니 품속에 손을 넣었다.

"젠장, 소대장님—!”

"강 하사, 저 자식들 당장 막아!”

강익준은 그 즉시 허리춤에서 K5 권총을 뽑아 들며 달려 나갔다.

하지만 모여 있던 시민들 탓에 차마 사격할 수는 없었다.

"이런 젠장!”

그러는 사이, 거구들을 어딘가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곳은…… 기이한 넝쿨이 자라난 지점이었다.

"젠장! 거기, 조심해요!”

하지만 늦었다.

그 덩치들은 넝쿨을 지키고 있던 서울역 경비대를 덮쳤고, 경비대원들은 곰에게 짓눌린 것처럼 구겨지며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컥!”

“윽!”

일시에, 12명의 목덜미에 단검이 박혔다.

그런데 그다음에 벌어진 장면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거구들 12명이 자기 자신의 목덜미를 찌른 것이었다.

"뭐, 뭐야…… 집단 자살을 해?”

그것들을 쫓던 강익준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대장님, 저희가 저 넝쿨을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외친 건 1중대 5분대장 안민태 병장이었다.

"—아니야! 접근하지 마!”

그러나 서은하가 말리고 나섰다.

그녀의 눈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치이이이——

"저 피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저건 주술이야.”

그 피가 넝쿨에 흡수되고 있었다.

꾸—르—르—르——!

그러더니 자라나는 속도가 확연하게 증가했다.

마치 동화 <잭과 콩나무>속의 콩나무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꾸—르—르—르——!

하늘을 뚫을 듯 수직으로 치솟는다. 엄청난 생장 속도였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건…… 공중 도시 라퓨타였다.

"자, 잠깐만, 저거 설마……."

"……누군가 라퓨타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전 병력, 주변을 경계한다! 이건 게이트가 아니라 테러다!”

우우우우——!

하지만 이미 웬 트레일러 한 대가 이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어, 저거 뭐야!”

“야! 일단 막아!”

쿵! 쿵! 쿵! 쿵!

"어, 피해!”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들이받으며 달려오는 트레일러, 화염 마법 3방이 연달아 꽂히며 휘청거렸지만, 기어코 넝쿨 앞에 닿았다.

그리고 트레일러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

난폭한 괴성과 함께 고약한 누린내가 풍겨 왔다.

회색 털, 튀어나온 주둥이, 뾰족한 발톱…….

"저건…… 웨어 울프잖아? 전부, 접근하지 마!”

그건 플레이어가 ‘몬스터화’한 끔찍한 괴물들이었다. 적어도 C등급 1티어 이상의 수준으로, AMT 병사가 상대할 레벨이 아니었다.

“전부 내 뒤로 온다! 5분대장, 탱커들 데리고 내 옆을 와!”

그런데…….

"어, 저것들…… 그냥 갑니다.”

그것들은 자라나는 넝쿨에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타고 올라갔다.

"......."

AMT 병력은 닭 쪼던 개처럼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 넝쿨을 잘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였다.

파—지—지—지—지——!

머리 위, 넝쿨 끝자락, 라퓨타에서부터 시퍼런 불빛이 번뜩였다.

그건 전류 다발이었다.

그리고…….

깨—갱——!

웨어 울프들이 하나둘씩 허망하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

“……썅, 방금 그건 뭐야!”

라퓨타를 향해 자라난 넝쿨, 그곳에 매달린 웨어 울프가 소리쳤다.

플레이어였으나 모종의 방법으로 ‘몬스터화’ 한 웨어 울프들, 그들은 대부분 자의식을 상실한 상태였지만, 이처럼 몇몇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머지 웨어 울프를 ‘정신 조종'하고 있었다.

"씨발, 하필이면 그 전기 통제자 놈이 여기에 있는 거야!”

라퓨타에 침투하는 이 순간, 가장 껄끄러운 건 전기 마법이었다. 죽을 정도의 데미지는 결코 아니지만,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손발에 마비를 가져온다. 즉, 허무하게 추락해버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야! 정신 차려! 그래도 멈추지 말고 계속 올라가야 해!”

“그래, 어차피 라퓨타에 도착하면, 놈은 손쉬운 먹잇감이다.”

어쩌면 이현욱의 동료인 전류 통제자,

그 번거로운 놈을 처리할 기회일 수도 있었다.

파—자—자—자——!

"썅, 방금 4마리가 당했어!”

“……계속 간다!”

뒤이어 몇 발의 전류가 더 내리꽂혔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라퓨타의 ‘난간’ 부분에 도착했다.

"후!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빨리 그 아이템 꺼내!”

미리 준비한 어떤 아이템으로 라퓨타의 쉴드에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고 그 안으로 19마리의 웨어 울프가 일사불란하게 침투했다.

"좋아, 이제 양방향 포탈을 열어서 블랙 오크들을 소환한다.”

그게 기백준이 준비한 이 웨어 울프 특공대의 임무였다.

슁—!

그때, 무언가 날아들었다.

뻐—억——!

그 무언가에 의해, 웨어 울프 3마리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어?”

그런데 그 무언가의 정체는…….

“……노, 농구공?”

피 묻은 농구공 하나가 라퓨타의 ‘돔’에 부딪혀 떨어졌다.

텅—텅—텅—텅—

그리고 어디선가 또 다른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다가온다.

이어서…….

쿵—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발걸음이 소리가 동반되었다.

웨어 울프들은 그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_^) 라퓨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웬 청동 거인이 얼굴 위 스크린으로 이모티콘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4개의 팔을 꺼내어 반갑게 손은 흔들었는데…….

왜—애—애—앵——!

그 팔이 전기톱이라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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