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제주도, 파에톤 레이드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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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준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지금 보도되는 내용은 전부 다 ‘강철 함대’에 관한 것이었다.
"예, 봤습니다. 저것 역시 라퓨타의 힘이겠죠?"
이제는, 당황스럽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하......."
지금까지 수차례, 그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이현욱 그놈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황당한 반격을 꺼내 들고 와 일을 망치게 했다.
지금도 그랬다.
아니, 비공정 함대라니…….
“……설마 그런 게 등장해서 일을 망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국 랭커 다수를 제주 앞바다에 수몰할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부수적인 계략일 뿐이었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서울을 텅 비게 하는 것,
그리하여 ‘라퓨타’를 통째로 훔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설명하기를, 비록 ‘제주 앞바다 비공정 참사’를 만들지는 못했으나 제주도 안에 묶어둘 방법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게만 하면 작전은 성공이었다.
"예, 이쪽도 다 준비됐습니다.”
기백준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지하 시설, 그 넓은 공간에 인영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르르—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짐승 같은 짙은 누린내, 붉은 눈동자, 날카로운 손톱까지,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확연하게 풍기고 있었다.
"저희가 준비한 특공대는 아주 잘 교육된 야수들입니다. 하하…… 예, 그렇습니다. 그, 블랙 오크 애들도 기대해볼 만하겠네요.”
심지어 이번 작전에도 다수의 ‘블랙 오크’ 부대가 동원되었다.
최근 한국 정부 정보기관의 감시망이 두터워졌음에도,
어떻게든 그걸 뚫어내고 이 땅에 공작원들을 심어둔 것이었다.
"그럼…… 곧, 라퓨타를 통째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기백준은 자신의 마지막 작전에 모든 걸 쏟아붓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 지긋지긋한 땅을 완전히 떠나버릴 계획이었다.
훗날, 이 땅이 잿더미가 되어 자신이 군림하게 되는 날까지…….
***
제주국제공항 발 긴급 메시지가 강철 함대를 얼어붙게 했다.
그 갈라지는 무전 속에서는 다급한 절규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착륙하지 말라는 경고를 수차례 반복했다.
……왜?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영 좋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합니까?”
여상민이 고개를 돌려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내용의 진위를 파악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강철 함대는 이미 제주 연안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음…… 일단, 작전 속행합니다.”
그게 제주 작전 지휘관, 강서윤의 판단이었다.
-……괜찮을까요?
이에 다른 비공정의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다.
"지금 작전을 재고할 시간 없어요. 이렇게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황 활주로 말고 다른 착륙지를 찾기도 어렵고요.”
그녀의 뜻대로 강철 함대는 제주도를 삼키고 있는 희뿌연 연기 안으로 더욱 깊숙이 가라앉았다. 시계가 약 10m에 불과했다. 저 멀리 제주 공항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날린 건지, 여전히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이르는 순간—
"—어! 정지!”
전 함대가 황망히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헉! 저, 저게 뭐야……."
그들의 시선은 제주국제공항의 활주로를 향했다.
"......."
그 위를 가득 메운 움직임들.......
그건, 엄청난 숫자의 ‘스켈레톤’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녹슨 철갑옷을 뼈다귀들이 활주로 위에 빼곡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 숫자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족히 5~6천 마리는 될법했는데, 사이사이에 ‘트롤 스켈레톤’으로 보이는 거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부, 검은 로브를 입은 스켈레톤들이 눈에 띄었다.
총 15마리,
그것들의 몸 주변으로 녹색의 아우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죽음의 사제까지…… 상당히 까다로운 조합이다.’
저것들이 있는 이상 5~6천 마리의 스켈레톤은 무한히 재생된다.
즉, 저것들은 먼저 부숴야만 하는 극악의 공략 난이도였다.
'이 조합은…… 악마의 군단이군?’
지옥의 군주들과 ‘계약’하여 불러낸 죽음의 전쟁 병기들…….
그것들이 마치 기계 부품처럼 이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자…… 녹색의 안광들이 공황 활주로를 수놓는,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흡사, 지옥의 한 면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불길함이 셈 솟는다.
"......."
그걸 마주하며 플레이어들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 죽음을 다루는 마법이 배척받는 이유였다.
“……젠장, 저런 것들이 왜 하필 활주로에 모여 있는 거지?”
지금 당장 착륙은 고사하고 이 자리를 떠나야 할 듯했다.
그때, 이현욱의 눈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 태양신이 아들, 파에톤의 ‘원혼’을 정화하라…….
이 땅에 추락한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
그의 원혼이 ‘악마’와의 거래로 죽음의 군단을 일으켰다.
당신은 <헬리오스의 가호>를 품은 플레이어로서 증오로 재탄생한 파에톤을 저지할 의무와 자격이 있다.
* 보상 : 태양 마차의 코어(전설)
'내가 다른 운석 파편을 얻은 덕에 이런 퀘스트가 나온 거군?’
이현욱은 품속에서 작은 금속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헬리오스의 가호 (영웅)
- 효과
1) 화염 저항력 상승 (+100%)
2) [특수] 파에톤 공략 버프 : 파에톤의 권속을 사냥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화염 저항력 상승 (현재 0마리 : 0%)
‘그리고 퀘스트 보상인 태양 마차의 코어라면…….'
이현욱이 기억하는 ‘태양 마차의 코어’는 비공정 ‘헬리오스’의 엔진부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건 최고의 전투 비공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곳에 한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어! 저것들이 대공 병기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퀴가 달린 발리스타(ballista) 20대가 이쪽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도르래로 작동하는 저 거대한 석궁은 성벽을 때려 부수는 공성 병기였다. 그것에 장착된 화살의 길이만 해도 2m는 될법했다.
끼릭— 끼릭—
그것들이, 강철 함대를 향해 머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건 평범한 발리스타가 아니에요. 맞으면 안 돼요.”
강서윤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발리스타에 장착된 발사체 ‘철창’ 주변에 검은 문자들이 떠오른 채 회전하고 있었다. 죽음 마법이 인첸트된 것이었다.
그건 마나 역류 주문이라고, 어떤 마법사가 알려왔다.
즉, 마법 방어막을 쉽게 뚫을 수 있는 무기였다.
"저거, 금속인데 통제 가능해요?”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발리스타의 철창, 그건 분명 금속이었지만, 현재 이현욱의 금속 통제력에 ‘감지’ 되지 않고 있었다.
"저기, 죽음의 사제들이 내뿜은 아우라가 죽음의 군단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게 있는 이상 제가 통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것들만 죽이면 깡그리 터뜨려버릴 수 있는 거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전부 다 철모를 쓰고 있군요.”
강서윤이 등 뒤에 둘러멘 활을 끌어 내렸다.
"저건 내가 요격할 테니까, 전부 회피 기……”
하지만, 적의 공격이 빨랐다.
터—엉—! 터—엉—!
살벌한 소리, 도르래의 힘으로 당겨졌던 발리스타의 사위가 놓이며 공기가 떨렸다. 그와 함께 2m 크기의 철창이 사납게 날아들었다.
휘이이이——
공기를 찢기는 소리가 빠르게 접근한다.
쩍——! 쩍——!
가장 선두에 있던 비공정 한 대가 철창 3발을 내리 맞았다. 마법 방어막을 두르고 있었으나 비닐 막 뚫듯 허무하게 관통되었다.
- ……으아아! 여기는 강철3 추락한다!
비공정 ‘강철3’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 타 있는 건 안양 듀오인 듯했다.
안 돼!”
추락 궤도를 보건대 활주로 위에 내리박히고 말 상황이었다.
즉, 스켈레톤 군단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추락의 충격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들, 그다음이 문제였다.
"젠장, 저리 비켜!”
그때, 한태산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램프 도어 쪽으로 달려나갔다.
쿵—!
그의 도움닫기에 선체가 출렁거리더니,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뛰어내린 거예요?”
김세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창문을 내다보니 수백 미터 상공에서 한태산이 수직 낙하 중이었다. 그는 마치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듯 몸을 일자로 하여 초고속으로 추락, 지면에 닿기 직전 한 바퀴 회전하더니 정자세로 착지했다.
쿵!
덜그럭! 덜그럭!
어느새 사방에서, 스켈레톤 군단이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하, 더러운 언데드 새끼들…… 꼴통을 다 부숴주마—!”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장풍을 쏘듯 엄청난 풍압이 일어나며 다가오던 스켈레톤 한 무더기가 뒤로 나자빠졌다.
콰—아—아—!
그사이, 추락하는 '강철3’의 그림자가 그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이현욱은 강철3에 금속 통제력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1741kg
서울이 아니라서 반 토막 난 통제력이지만, 도움은 될 터, 그와 동시에 한태산이 숨을 들이쉬며 추락하는 비공정을 향해 손을 뻗었고,
터—엉——!
그가 내디디고 선 아스팔트가 쩍 하고 갈라지는 순간, 7m짜리 강철 덩어리가 허공에 멈춰섰다. 비공정을 맨몸으로 받아낸 것이었다.
"—큭!"
그런데, 아무리 그라고 할지라도 수십 톤의 비공정을 머리 위에 이고 버티는 건 버거운 일이었고, 쓰러뜨리듯 옆으로 내려놓았다.
쿵——!
그렇게 비공정은 큰 충격 없이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와, 진짜……."
가히 초인이라고 할만한 능력에 모두가 경도되었다.
"하지만…… 지면과의 충돌을 면했을 뿐입니다.”
이미 땅에 떨어진바, 스켈레톤 군단 사이에 고립된 셈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이내 사냥감을 포착한 것처럼, 그것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추락한 새를 향해 모여드는 개미 떼 같았다.
곧 비공정이 산산이 해체되고 말 것 같은, 불안한 장면이었다.
- 여기는 강철3, 구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그들을 구할 세고 뭐고, 함대 전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쉭—쉭—쉭—쉭—
어느새 6발의 철창이 강철 함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김세희가 바람을 일으켜서 날아드는 철창들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친, 너무 무거워요!”
약 1t짜리 아음속 발사체, 감당할 수 없는 운동 에너지였다.
쩍——!
왼쪽에 떠 있던 ‘강철6’이 관통을 당하고 말았다.
- 칙— 여기는 강철6, 적의 공격에 피격당했다! 전장 이탈하겠다!
정말 다행히도 추락할 정도의 피해는 아닌 듯했으나, 이렇게 한 발에 한 대씩 전장 이탈을 한다면 결국은 전멸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영 좋지 않은데요?”
이현욱 프리드웬의 화물칸에 탑재되어 있던 AD-1들, 그것들을 묶고 있는 철제 안전장치를 일제히 제거했다. 그리고 마나를 부여하여 '시동’한 뒤, 램프 도어 밖으로 하나씩 밀어냈다. 총 20개였다.
- 오? 드디어 강철비를 뿌리려는 거야?
한태산의 목소리가 프리드웬의 마나 메신저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그는 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저 많은 몬스터에게 포위당한 채로 전투를 지속하게 된다면 한계를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죽음의 사제가 20마리나 있다면, 더욱이 그럴 수밖에…….
쩌저저저——
한태산의 주먹질에 으스러졌던 스켈레톤들이 웬 보라색 일렁임에 휩싸이며 이끌리더니 마치 되감기를 하듯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원점이 되었다.
- 이런 씨발! 누가 내 주먹에 신성력 좀 발라주면 안 되냐?
- 지금 갑니다!
그의 말에 누군가 대답하며 강철7과 강철9가 고도를 낮췄다.
2대 모두 성기사와 프리스트들이 탄 비공정이었다.
그때, 그들을 향해 3발의 철창이 날아들었다.
- 젠장, 피해!
- 내가 간다!
한태산이 단숨에 십여 미터를 도약하며 철창 2개를 연달아 쳐냈다.
텅! 텅!
그리고 나머지 1발은 발로 걷어내려는데…… 빗나가고 말았다.
- 이런, 쌍!
그 한 발의 철창이 강철7을 꿰뚫으려는 순간—
쩌—엉——
웬 황금색 방어막이 현현하며 철창을 튕겨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대형 방어막,
그게 철창에 담긴 죽음 마법을 상쇄한 것이었다.
- 후! 나이스 타이밍!
‘하긴, 저기에 탄 프리스트가 몇 명인데…….'
최소 C등급 1티어 이상의 프리스트들이 무려 31명이었다. 그들이 합심한다면 죽음의 사제의 권능을 밀어낼 수 있었다.
이어서, 비공정 주변으로 황금색의 거대한 망치들이 떠올랐다.
일명 <천사의 망치> 프리스트 4명이 함께 시전하는 스킬이었다.
쾅—! 쾅—! 쾅—! 쾅—!
그 망치에 내리 찍혀 으스러진 스켈레톤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이어서 한태산의 몸에 백색 빛줄기—신성력 버프가 내리쬐었다.
- 그래, 이거야! 이대로 뚫고 저 죽음의 사제들 조지면 되는 거지?
그의 주먹에 백색의 ‘세인트 오러’가 감돌았다.
"—한태산, 내가 엄호한다!”
강서윤 역시 한태산의 힘을 믿고 그의 무식한 작전을 지지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웬 로프를 꺼내어 램프 도어의 난간에 걸더니 램프 도어 밖으로 거의 떨어질 듯 몸을 기울여 활을 쟀다.
이어서, 그녀의 등 뒤에서 반투명한 여우 꼬리가 피어났다.
쉭! 쉭! 쉭! 쉭!
그녀의 화살이 내리박힌 곳에서 백색의 여우 불이 흘러나오며 웬 회오리가 피어나더니 5m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갈기갈기 찢었다.
‘역시 강서윤이다.’
대한민국 플레이어 랭킹 4위, 일명 ‘폭시(爆失)’ 혹은 ‘폭시(Foxy)’로 불리는 강서윤, 그녀의 활은 일대다에 특화되어 있었다.
"이현욱 씨, 당신도 엄호 좀 같이해줘요!”
"네, 그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현욱은 20대의 AD-1을 조종하여 그것들의 머리 위에 늘어놓았다.
‘하지만…… 내 공격은 안 먹힐 거다.’
이현욱은 직감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터—더—더—더—덩——
예상대로 그의 강철비는 웬 검은색 돔에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무려 20마리의 죽음의 사제들이 집단 시전한 대규모 방어막이었다.
"아, 일단…… 알았어요.”
강서윤은 볼을 긁적이고는 다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역시, 강서윤처럼 특별한 아이템이 없으면 저걸 못 뚫는다.’
그녀의 화살이 저 돔을 무시할 수 있는 건, 그녀가 보유한 ‘여우 구슬’이라는 아이템의 옵션인 ‘마법 저항력 무시’ 덕분이었다.
이현욱의 페일노트와 같은 옵션이지만, 저건 ‘광범위’였다.
- 으하하! 뭐야? 네 필살기인 강철비가 안 먹히는 거냐, 설마?
한태산은 그렇게 웃으며 트롤 스켈레톤 한 마리의 머리통을 뽑더니 발리스타 한 대를 향해 내던졌고, 마치 볼링공처럼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들을 죄다 뭉개며 날아간 뒤 발리스타를 박살 내 버렸다.
- 크— 스트라이크!
이어서 트롤 스켈레톤의 정강이뼈를 양손으로 쥐고 휘둘렀다.
퍼—버—버—버—!
- 이거야 원, 역시 몰래 기여도 빼 먹는 거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한태산 저 녀석, 지난번에 1등을 빼앗긴 게 상당히 원통했는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심기를 긁어대는 말을 아주 열심히 해대고 있다.
‘하여튼 저 자식, 입은…….'
이현욱은 전생에도 저 시도 때도 없는 입방정에 시달렸었다.
그는 남모르게, 한태산을 향해 금속 통제력을 부여했다.
- 윽! 젠장, 머리가 또 왜 아프고 지랄이야…….
‘하지만 공격이 안 먹힌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순 없다.’
이현욱은 미리 준비해둔 한 가지 물건을 꺼냈다.
그건 ‘아이템’이 아니었다.
[오브젝트 정보]
- 이름 : 영원한 불의 탑(전설)
- 효과 : 해당 오브젝트 ‘설치’ 시 일정 반경(1km) 내에 아래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설치 대기 시간 : 10일)
1) 융해의 땅 : 영향권 내 금속의 녹는점이 대폭 감소합니다.
2) 마법 재련 : 영향권 내 융해된 금속에 ‘마나’가 부여됩니다.
강원도에 떨어진 운석에서 얻은 ‘영원한 불이 담긴 상자 (전설)’를 그레이 드워프들에게 부탁해서 오브젝트 형태로 개조했다.
이렇게 개조하면, 일대에 버프를 주는 ‘토템’ 형태가 된다.
‘전생에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물건, 어디 효과 좀 볼까?’
이현욱은 그걸 어디론가 날려버렸다.
그곳은 활주로 옆에 있는 거대한 건물, 격납고였다.
- 해당 지역에 <영원한 불의 탑>이 설치됩니다.
한편, 김세희는 활주로의 전투를 바라보며 감탄을 참지 못했다.
"와…… 이렇게 가까이에서 랭커들이 합을 맞추는 건 처음 보는데, 진짜 남다르긴 하네요. 뭐, 사장님은 좀 쉬셔도 되겠는데요?”
그녀의 말처럼, 어느새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 자 간다!
한태산이 길을 열고 뒤를 따라서 안양 듀오가 전진했다. 이혜민의 등 뒤에서 4개의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중기관총들이 나타났다.
- 내가 엄호 사격한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타—다—다—다—다——!
그들의 진격로를 따라서 수백 개의 스켈레톤이 뼛조각이 되었다.
이렇듯 아무리 악마의 군단이라고 해도, 한반도에서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강철 함대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 크! 역시, 권왕이다!
- 그래, 저게 바로 진짜 최상위 플레이어의 모습이었지?
- 요즘 떠오르는 신예들이 아무리 강해져도 쟨 못 따라잡겠네…….
여기저기에서 환호하는 무전이 들려왔다.
- 오늘은 권왕이 떠오르는 루키한테 한 수 가르쳐주는 날이네?
그 루키는 이현욱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저, 한태산 씨?”
그때, 이현욱이 한태산을 호출했다.
- 어, 왜? 할 말 있냐?
그런데 이현욱의 대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제 너무 깊숙이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 뭐? 이 새끼, 보는 눈이 영 없네? 내가 지금 위험해 보이냐?
"아니, 곧 위험해질 겁니다. 제가 광역 스킬을 쓸 거라서요.”
이에 여기저기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느끼기에도 이현욱이 영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 야, 방금 강철비 막히는 거 다 봤으니까, 조용히 빠져 있어.
그때였다.
꾸—구—구—구—구——
어디선가 격렬한 진동이 들렸다.
그건 어떤 물체가 뒤흔들릴 때 발생하는 진폭이라기보다…….
그래, 두꺼운 금속이 우그러질 때 나는 퍽 이질적인 소리였다.
꾸—구—구—구—구——
"……어, 불? 저기에 갑자기 왜 불이 나는 거죠?”
김세희의 의아한 목소리,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처럼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진원지는 격납고 쪽이었다.
부글— 부글—
격납고의 두꺼운 문이, 마치 치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태산 씨, 그리고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 아, 씨, 왜! 내가 네가 뿌리는 비라도 맞을까 봐?
"아니, 이번에는…… 파도에 휩쓸릴 겁니다.”
그 순간, 격납고의 문이 폭발하듯 무너져내렸다.
그 안에서부터 검은 연기기 치솟더니,
이내, 시뻘건 파도 터져 나왔다.
콰—드—드—드—드—!
수십 톤에 달하는 쇳물, 그것들이 이룬 시뻘건 파도였다.
- 응? 저게…… 뭐냐? 어디서 용암이라도 나오는 거야?
그래, 그건 용암에 비유될만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것들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엉겨 붙은 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몸을 일으킨다.
고—오—오—오—오——!
그것의 그림자가 활주로 위에 깔리고,
그것이 피워 내는 열기가 일대를 아지랑이로 물들였다.
- 이현욱, 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
이현욱은 저 격납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여객기 1대를 감지했고, 이미 몇 분 전부터 그걸 통째로 ‘금속 융해’하고 있었다.
‘토템, 영원한 불의 탑 덕분에 훨씬 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일반적인 여객기인 A380의 무게가 약 270만 톤이었다.
그걸 전부 녹이려면 수백 번의 스킬 사용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내 마나 총량이라면 가능하다.’
사기적인 마나 총량, 이현욱은 방금 그 모든 걸 쏟아부었다.
또한, 그것들은 토템 덕분에 ‘마법 금속’으로 재련된 상태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강철의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
그 움직임을 따라 활주로 그 아스팔트가 바글바글 끓어오른다.
“……자, 일일이 주먹질하시는 거 힘드시지 않습니까?”
-.......
"이제, 제가 한 번에 처리하죠. 저리 비켜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