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08화 (108/221)

108화.  < 축복과 재앙, 두 개의 운석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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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한반도는 저주받았다.

그런 이야기가 인터넷상에 돌고 있었다.

4차 웨이브, 그 최악의 이벤트를 공략한 이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불운함을 넘어서 재앙 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마 아바돈의 소환 의식, 연금술 공장의 악마 숭배 조직, 블랙 오크 왕국의 선전 포고…… 그리고 방금 2개의 운석이 충돌까지.......

이 땅은 분명히 저주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있었다.

"그래, 저주는 받았다! 하지만 구원자도 같이 내려왔다!”

그 저주와 함께 등장한 구원자의 이름은 바로…… 이현욱이었다.

그 모든 사건을 해결한 게 그였으니, 그렇게 여겨질 만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주도에서 또 한 번의 재앙이 시작되었고 이에 반사적으로 이현욱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이현욱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 기대에 부응하듯 ‘프리드웬’이 서울 하늘에 떠올랐다.

우우우우——

"저거…… 이현욱의 비공정, 그거 맞지?”

“……프리드웬 말하는 거야? 어? 맞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 저것들은 다 뭐야?”

그 뒤로, 12대의 비공정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우우우——

스틸 재질의 바디, 그 은백색의 동체가 햇빛을 반사하며 고고하게 빛났다. 그리고 큰 소음 없이 나지막한 진동만을 울리며 서울 하늘을 빠르게 종단하는 모습은 마치 고래 떼의 유영을 보는 듯했다.

그래 그건 분명 '함대’라고 불릴만한 장면이었다.

"와…… 나는 저, 저런 건 처음 본다.”

"그거야 당연하지. 저런 게 등장한 적이 없었잖아.”

프리드웬을 선두로 나아가는 총 13대의 비공정 함대의 기묘하고 웅장한 행진, 그걸 담은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서 퍼져 나갔다.

- [속보] 서울 중구, 소속 미상의 비공정 함대 등장 (1보)

- [속보] 서울 하늘에 등장한 13대의 비공정, 출처는 라퓨타?

기자들은 그 함대가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선배님, 방금 서울 AMT방공사령부에 연락해봤는데 허가된 비행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소속이 어디인지는 기밀이라고……."

"아니, 이 새끼들 제정신이야? 서울 하늘에 저런 걸 띄워놓고 국민이 불안해하는데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게 말이 돼?”

그것들이 라퓨타에서 나온 이상 정부 측과 관련이 있을 텐데, 관련 부서에 문의해도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아직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확실한 정보가 단 한 가지 존재했다.

“됐고, 야! 그러고 보니, 그 함대에 프리드웬이 있잖아?”

“아? 그러면 저 함대에 이현욱은 확실히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심지어 선두로 가고 있잖아? 이거 대박이다!”

결국, 그렇게 추론만으로 생성된 기사의 제목은…….

- 소속 미상의 비공정 함대, 이현욱이 이끄는 것으로 추정 (1보)

“……오, 역시 조회수가 아주 폭발하는데요?”

이처럼 기사 제목에 이현욱을 언급만 해도 자극적인 맛이 된다.

"좋아, 여기에다가 더 자극적인 키워드를 삽입하면 좋겠다.”

"예? 어떤 키워드를 넣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목을 확 끌어당길 만한 단 하나의 단어 말이야.”

이현욱이 함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예측이 나온 이후, 기자들은 온갖 추측을 쏟아냈고 일부는 멋대로 별명까지 붙이기 시작했다.

- 이현욱의 <강철 함대>제주도를 향한 출격인가?

***

- 수도권을 빠져나간 일명 ‘강철 함대’는 현재 충청남도 계룡시의 계룡대에서 이동을 멈췄으며 기함인 프리드웬이 착륙하여……

프리드웬 내부,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와, 강철 함대라니…… 혹시 마음에 들어요?”

김세희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강철 중대부터 시작해서 너무 일차원적인 작명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본다면 되게 별로인 작명인 건 맞았다.

'그래도 강철대제라고 불리는 것도 참았으니까…….'

아무래도 대중이 붙여주는 별명은 유치할 수밖에 없는 듯했다.

"김 팀장, 나중에 유명해지면 얼마나 멋진 별명 붙을지 봅시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유명해질 자신이 없어서요.”

그때,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우성문 실장과 강서윤 대표도 있었다. 그들이 이 함대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는 강서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그리고 이현욱을 향해, 인사 대신 난데없는 질문을 던져 왔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네? 뭐가……."

"뭐긴 이 모든 거죠! 갑자기 어디에서 나온 함대에요?”

그녀는 이현욱과 우성문을 흘겨보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래, 아주 둘이서만 짝짜꿍했다 이거죠? 그래도 나도 4차 웨이브 때 같이, 응? 그래도 나름대로 한 팀으로서 우애를 다졌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리고 이현욱 씨 당신은 우리 길드 서브잖아요?”

“하하…… 기밀 유지라는 게 의리를 지키기 힘들더라고요.”

이현욱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강서윤, 믿을 만한 인물이지만…… 가디언이다.’

그녀는 결국 가디언이었고 지금의 가디언은 안전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과 귀에 들어가는 건 빌런에게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고든 프라이스, 그놈을 제거할 때까지는 위험하다.’

그놈은 지금 가디언 내에서도 그 누구보다 신뢰받고 있을 때였다.

그 넘치는 돈으로 가디언의 임무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라퓨타에서 남몰래 이런 걸 만들고 있었다는 거네요?”

"하하— 네, 뭐……."

"뭐, 아무튼…… 잘된 일이긴 하네요. 아주 대단해요.”

그녀는 구시렁거리면서 프리드웬을 비롯한 함대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비공정 조종사들,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교육받은 거죠? 저걸 조종하는 게 비행기나 헬리콥터와 비슷하지는 않을 텐데요."

"뭐…… 다 열심히 연구한 결과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에서 ‘그레이 드워프’들의 존재를 밝히는 건 시기상조였다.

그렇기에 각 비공정의 조종실 입구를 단단히 막아둔 상태였다.

"흠, 어쨌든 이 비밀 병기들 덕분에 작전의 혈로가 트이긴 했는데, 그래도 <블루 트리>쪽 비공정도 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녀의 권유에도 우성문은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일단은 초반 작전은 우리의 힘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아니, 왜 그렇게 보수적이실까요? 그쪽에서 도와주겠는데요.”

"필요 이상의 힘을 구태여 외국에서 끌어오는 건 좋지 않죠.”

이현욱에게 이 운석 충돌 지점이 어떤 ‘유도 아이템’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들은바, 우성문은 이번 사건도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외부의 접근을 첨예하게 경계하는 중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그도 고든 프라이스의 호의를 받았을 것이었다.

그만큼, 고든 프라이스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명망은 두터웠다.

‘그래서 함부로 놈을 빌런이라고 밝힐 수가 없는 거다.’

고든 프라이스의 가장 큰 무기가 바로 그 거짓된 이미지였다.

"그럼,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남으로 출발하겠습니다.”

프리드웬의 조종을 맡은 여상민이 말했다.

비공정을 언뜻 보면 그 묵직한 모양새 때문에 그리 빠르지 않으리라고 여겨지는데, 공기역학상 비효율적인 구조인 건 분명했다.

그러나 드워프제 마나 엔진의 출력이 강력할뿐더러, 마나 실드를 유선형 모양으로 형성해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우우우우——

그리하여 함대는 시속 600km대를 유지하며 남쪽으로 나아갔다.

***

전라남도 해남시, 한 넓은 야지에 AMT 집결지가 형성되었다.

그곳이 바로 제주도 공략을 위한 베이스캠프였다.

“—빨리 움직여! 강철 함대가 지났다는 소식이다!”

지금, AMT 병사들이 비공정 착륙지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곳에 강철 함대가 도착했다.

"와......."

AMT 제7항마여단 병력은 그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북녘 하늘에서부터 고고하게 다가오는 13대의 마법 기체들…….

“저거 뭔가, 헬리콥터 편대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냐?”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왠지 모르게 훨씬 웅장합니다.”

그런 감정을 정의하자면 ‘신비함’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마주할 때 느끼는 거부감과 호기심이 혼재하는 오묘한 감정…….

"야! 넋 놓고 보지 말고 빨리 작업 마무리해!”

이어서 AMT의 광역마법통제관 8명이 모여서 ‘양방향 포탈’ 전개 준비를 시작했다. 곧 전국에서 플레이어들이 몰려올 예정이었다.

"거기 2조, 경상도 쪽 ‘링크 패턴’은 전달받았나?”

“예, 받았습니다!”

"그쪽에서는 12명만 나올 예정이니까, 너무 크게 만들지는 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내 다수의 양방향 포탈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한편, 이현욱은 프리드웬의 램프 도어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 작전에 동원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이번 공략 참여자 명단을 대략 들은 상태였지만, 혹시나 예상외의 인물, 그러니까 빌런이 끼어들지 않았을지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이내, 첫 번째 양방향 포탈이 열렸다.

“—안양발 양방향 포탈 전개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4명이 플레이어들이 걸어 나왔다.

“……아니 진짜로 그때 네가 방어 버프 안 걸어줬다니까?”

제일 앞에 선, 카이트 방패를 든 여자가 그렇게 짜증을 부렸다.

그러자 그 뒤, 안경 쓴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풉 하고 웃었다.

"에이, 내가 아마추어도 아니고…… 원준이가 제대로 봤다잖아.”

"그 오우거 망치를 내가 받아냈는데, 내가 제일 잘 알지!”

"응? 받긴 뭘 받아? 맞고 골프공처럼 튕겨 나간 거 아니었어?”

"하, 이 개새끼가 진짜…… 넌 앞으로 전담 엄호 없을 줄 알아!”

그 남녀는 플레이어 랭킹 18위와 19위의 일명 ‘안양 듀오’였다.

지난 4차 웨이브 때 강철 중대 외에 유일하게 침식 요인을 제거했던 이들로서, 마지막 전투 때 합류가 늦어서 끝내 만나지 못했었다.

‘19위 이혜민, 18위 강준성, 둘 다 마법사 플레이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혜민은 탱커 포지션, 강준성은 사수 포지션으로 둘 다 극단적인 ‘변주 무장’을 하고 듀오로 합을 맞추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둘 다 버프와 인첸트 마스터이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무기에 방어와 공격 옵션을 떡칠해서 효율을 낸다.’

자신이 가진 특성은 마법이지만 타고난 재능이 근접 전투와 사격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능력을 그쪽으로 개발한 성과였다.

이어서 경상도발 양방향 포탈이 열렸다.

그 안에서 총 21명의 플레이어가 걸어 나왔다.

‘낙동강의 마녀들이라고 불리는 <천수(天水)>길드군?’

도희선, 랭킹 22위로 수 속성 마법에 특화된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나머지 11명, 그녀의 제자들 역시 물 특화 마법사였다.

이번 작전의 보스 몬스터인 ‘염화의 거인 파에톤’의 속성이 불인 만큼, 그 반대 속성인 물을 다루는 마법사들을 대거 소집한 듯했다.

이어서 전국 곳곳에서 성기사와 프리스트들이 소집되었다.

"현재까지 동원된 성기사 21명, 프리스트 31명입니다!”

파에톤은 겉으로 볼 때는 화염 속성이었지만 그 근본은 ‘언데드’였다. 그걸 모르고 섣불리 공략에 들어갔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그런데 다행히도, 강서윤이 그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듯했다.

그렇게 정부 쪽 소집 요청에 응한 플레이어는 총 149명이었다.

애초에 B등급 이상 플레이어를 소집한 만큼 상당한 숫자였다.

여기에다가 전투 지원으로 AMT 병력 2개 여단이 동원된다.

"박 팀장님! 올 사람은 다 온 거예요?”

저 멀리에서 강서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그녀는 이번 작전에서 ‘제주 작전 현장 지휘관’을 맡았다.

"그게 아직, 서울에서 한 명이 미도착했습니다.”

“앵? 서울발 게이트는 아까 닫혔잖아요.”

"네, 그런데 그 사람이 좀 늦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누구…… 아 한태산이죠, 그거?”

그녀의 물음에 박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서울발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자식이 진짜!”

그곳에서 거구의 남자 한 명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권왕(奉王) 혹은 타호(情虎)라고 불리는 남자, 한태산이었다.

그는 긴 머리를 끈으로 묶고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오른쪽 어깨에 더플 백을 짊어진 채였다.

“—야!”

강서윤이 그를 향해 꽥하고 소리 질렀다.

"응?"

"지금 너 하나 때문에 마나를 얼마나 잡아먹어야 해! 양방향 포탈 여는 데 쓰이는 마나랑 인건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 줄 알아?”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한태산은 귀찮은 표정을 한껏 드러냈다.

"하…… 아줌마는 왜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소리부터 질러?”

"뭐? 아, 아줌……."

"아니 솔직히 나 정도 동원하려면 그 정도 마나 써도 되잖아?”

역시나 첫 마디부터 망나니 같은 발언이었다.

"솔직히 나 같은 S등급 플레이어를 용병으로 기용하려 그게 얼마인지 알아? 이럴 시간에 차드에서 용병 뛰면 내가 비공정을 산다!”

"이 자식이, 네가 그렇게 성장한 것도 나라 덕인 줄 알아야지!”

"아니, 내가 내 운으로 얻은 능력인데 나라가 무슨 상관이야?”

겉으로 볼 때는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 스타일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이 나라 최고 전력으로써, 필요한 순간이 잘 나서주는 편이었다.

'……다만, 짜증 날 정도로 투덜거린다는 게 문제다.’

이현욱도 한때, 한태산과 듀오 개념으로 합을 맞춘 적이 있었다.

전생, 서은하에 앞서서 한태산이 이현욱의 전담 탱커였다.

하지만…… 이현욱이 제대로 성장하기 전에 그가 죽고 말았다.

"오, 저게 그 강철 함대야? 이야……."

그때, 한태산이 흥미롭다는 듯 비공정들을 향해 다가왔다.

“음, 뭐야 가까이에서 보니까 툭 치면 박살 나게 생겼는데?”

그건…… 한태산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사실일지도 몰랐다.

"오…… 이건 좀 잘 빠진 게, 멀쩡해 보이는데?”

그런 평가를 받은 건 프리드웬이었다. 그는 프리드웬의 동체를 손바닥으로 텅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다가 이현욱을 발견했다.

"흠, 주인이 떡 하니 앉아계시니까 구경하기가 민망하잖아.”

“……한태산 씨, 오랜만입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서울의 잘난 놈, 이현욱…… 예전에 봤었지, 우리?”

"예, 예전에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때 됐었죠.”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됐지. 비키라는 내 말을 몇 번이나 무시해서 내가 서울의 구원자를 한 대 칠 뻔했다는 걸.”

그는 악담을 퍼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런 무례한 자식이 악수 청하는 경우는 하나다.’

이현욱은 장갑을 낀 손아귀에 모든 강체화를 집중했고, 한태산의 우악스러운 손이 마치 악어의 입처럼 덥석, 그의 손을 잡아챘다.

턱—쩍—

악수에서 쩍, 소리라니…….

"오, 너 힘이 생각보다 좋구나?”

이현욱의 악력이 생각보다 센지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한태산이 제대로 힘을 주었다면, 이현욱의 손이 으스러졌을지도 모른다. 이 괴물은 적어도 힘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을 골려주는 건, 내 주특기였다.’

이현욱은 씩 웃으며 금속 통제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윽!"

한태산이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씨, 갑자기 왜 머리가 아프고 지랄이야.”

그는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댔다.

‘한태산의 뼈는 금속이라서 내가 쥐고 흔들 수 있다.’

일명 ‘강철 골격’으로 한태산의 패시브 스킬 중 하나였다.

물론, 격(格)이 담긴 고유 신체였으니 일반 금속처럼 파쇄나 변형을 가할 수는 없고, 기껏해야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정도였다.

‘그건 아마도 플레이어 간 합을 위해서 허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한태산 본인이 눈치채고 거부하려고 한다면 손쉽게 제한할 수 있었는데…… 이 녀석은 전생에도 눈치 못 챘다.

그런 걸 볼 때, 의외로 둔한 면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 저번에 네가 내 1등 훔쳐갔지?”

이는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 때 이야기였다.

그때 이현욱이 ‘마나난 막 리르의 비밀 갑주’를 얻었다.

"그때,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니까 네가 쥐새끼처럼 그 보스 몬스터 심장에다가 뭔 침 같은 걸 쑤셔 박았던 게 떠오르지 뭐야?”

“하하— 역시 눈치채셨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꿈도 꾸지 마. 네가 강철비인지 뭔지 수천 발 쏟아부어서 기여도 쌓아대도 내 주먹 한 방이면 따라잡힐 거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런 어린애 같은 엄포를 두었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금속 통제력을 발휘했다.

"악! 아, 씨! 오늘 컨디션이 왜 이러지?”

그는 무어라고 더 말하려다가 까먹은 듯, 볼을 긁적이고 돌아섰다.

"......윽!"

***

그리고 다음 날, 동이 틈과 동시에 출격 준비가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13대의 비공정에 탑승했다.

- ……강철 함대, 이륙한다!

베이스캠프 사령부에서 출격 사인이 떨어졌다. 이렇다 할 ‘콜사인(call sign)’이 없던 만큼, 그 별명이 콜사인으로 채택되었다.

그렇게, 13대의 비공정들이 남해를 향해 비상했다.

점점 고도가 상승하자 남해의 다도해가 발아래 펼쳐졌다.

"아, 여기는 프리드웬, 작전 사령관이 전 함대에 알린다.”

이현욱의 옆자리, 강서윤이 마나 메신저를 잡았다.

"어제 브리핑했던 대로, 우리의 작전 목표는 아직 공략이 아니다. 우선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한 뒤 그 일대를 성소화(聖所化)하여 악령 계열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서 육지와 연결될 ‘거점’을 만든다.”

이번 공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략 지역이 섬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침투, 보급, 탈출이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섬 주민들을 탈출시킬 길조차 막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섬 주민을 내륙으로 대피시킬 수 있고, 앞으로 병력 및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게 1차 목표다.”

제주도에 고립된 민간인 숫자만 해도 70만 명이었다.

이들이 제주국제공항에 거점을 마련한 뒤 일대를 성소화하면,

골치 아픈 악령인 ‘레드 위습’의 접근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해상로 및 항공로가 다시 제 기능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회색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흠…… 원래, 여기에서부터 제주도가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주도의 하늘은 회색 연기로 둘러싸여 있기에, 위성으로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부터 웬 붉은 빛무리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전방, 약 10km 앞에 레드 위습 무리가 대거 접근해 옵니다!”

"후! 드디어 시작이군…… 전 함대에 공습경보를 울린다.”

강서윤이 이를 까득, 물며 둘러맨 활을 움켜쥐었다.

윙—! 윙—! 윙—! 윙—!

레드 위습(Red Wisp), 그것들은 무리 지어 날아다니다가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면 달라붙어서 초고열을 방출한다. 어제만 단 하루만 해도 그렇게 추락한 항공기와 침몰한 배가 수십 척에 이르렀다.

그것들이 지금,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내, 사방을 시뻘건 불빛들이 가득 메웠다.

"—충돌합니다!”

터—더—더—더—더—더——!

그것들이 마법 방어막에 출동하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꿀꺽—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사방이 붉은 빛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어?”

"와, 뭐야…… 진짜 비공정이란 게 대단하긴 하네?”

그 장면을 바라보며, 플레이어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수천 마리의 레드 위습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 어떤 피해도 없었다.

"그것도 그런데 이 비공정에 웬 신성력이 잔뜩 담겨 있다니까?”

신성력을 느낄 수 있는 프리스트 플레이어 한 명이 덧붙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이현욱이 미리 손 써서 신성력이 인첸트된 금속으로 동체를 수리하게 했다. 저 악령들은 두 번 다시 강철 함대를 쫓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저 안쪽에서 한태산의 콧방귀 소리가 들렸다.

"하, 저딴 담뱃불이 뭐가 무섭다고 난리야?”

그러더니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졸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진짜 밉상이긴 하다.’

그 자존심 센 한태산이 이현욱의 ‘전담 탱커’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이현욱은 이제 막 최고의 딜러로 부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저 녀석의 더러운 성질머리에 고생 좀 했었지…….'

어쨌든, 그렇게 레드 위습을 뚫어내자 제주 앞바다에 이르렀다.

이제 곧 제주 연안에 닿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 칙—

"어? 어디선가 마나교신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 치지지——

프리드웬에 탑재된 마나 메신저에서 거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 여기는 제주국제공항 쉘터입니다! 강철 함대 들리십니까?

이들의 목적지에서 날아온 무전……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여기는 강철 함대, 무슨 일인가?”

- 지금 당장 방향을 돌리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설명 바란다.”

- 절대로,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 치지지— 여기에, 갑자기— 엄청난— 치지지— …… 이곳에 착륙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리저리 끊어지는 무전 속에 담긴 건 분명한 경고 메시지였다.

“……응? 재송신 부탁한다!”

- 치지지——

"제주국제공항, 재송신 부탁한다! 제주국제공항, 응답하라!”

그 뒤로 몇 번이나 교신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제주국제공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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