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07화 (107/221)

107화.  < 축복과 재앙, 두 개의 운석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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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덩이가 내리박히며 지축이 뒤흔들렸다.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기도 잠시,

이내 온 세상이 백색으로 변했다.

시야가 완전히 멎은 것이었다.

그리고 귓속에서는 삐——하는 이명만이 울린다.

고—오—오—오—오——

정면, 산자락 너머에서 열풍과 모래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제 기능을 상실했던 시야가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어, 정말 우리는 아무 피해도 안 입었네요?”

운석 충돌 지점과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세 사람은 그 열 폭풍 속에서도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

이현욱이 말한 대로 어떤 절대적인 ‘보호’를 받은 것이었다.

"이 아이템의 기능 중 하나니까요.”

이현욱은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를 들어 보였다.

그것으로부터 노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긴, 그게 아니라면 완전 자살용 아이템이겠어요?”

이현욱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뗐다.

산자락을 넘어가자 나무가 뿌리째 뽑힌 광경이 펼쳐졌고, 그 너머의 땅은 완전히 까뒤집어진 채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직 일대가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치이이이……

더 가까이 다가가자, 열풍을 쐬고 푸석푸석해진 흙이 자글자글 끓는 게 느껴졌고 때때로 숯으로 변해버린 나무뿌리가 밟혔다.

그들은 운석 충돌의 중심부를 향해 조심스레 접근했다.

"그러니까 저기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거죠?”

“……큼, 당장은 폭탄이 있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김세희와 이정준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현욱의 머릿속에는 영 딴생각이 감돌고 있었다.

'……분명 뉴스에서 큰 파편은 제주도로 향했다고 했다.’

이제 곧 마나 산란이 가시고 전파가 복구될 거다. 그때 확실하게 확인해야겠지만, 이현욱은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어떻게든 이 나라를 먹으려고 안간힘이군?’

이현욱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빌런은 오래전부터 아시아 패권 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단추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장악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거듭해서 달려들고 있다.

'그렇게까지 하는 게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중국은 2차 웨이브를 통해서 장악했고 일본은 악마 숭배자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겠다, 동남아 몇 개국 더 집어삼키는 것보다 확실하게 마지막 ‘큰 축’을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퓨타가 가지고 싶겠지?’

즉, 놈들로서는 서울은 포기할 수 없는 키포인트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나도 집요하게 막는다.’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빌런들이 시야 밖에서 계략을 꾸미는 게 아니라 이현욱이 쌓은 ‘참호’를 향해 돌진해준다면야…… 그저, 기관총을 장전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포화(十字砲火)를 날리는 거다.

'또, 놈들은 내가 이걸 얻은 걸 모를 테니까…….'

아무리 온갖 음습한 정보를 알고 있는 빌런일 지라도, 모든 걸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특히나 이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는 전생에도 놈들의 탐지를 벗어나서 다른 이의 소유물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파에톤>공략에 유용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저기! 뭔가가 있어요!”

이정준이 외쳤다. 어느새 충돌 지점에 가까워졌다.

세 사람은 운석 크레이터의 내리막을 내려갔다.

"어, 뭐지? 저거 비석 아닌가요?”

그건 운석이라기보다는 직사각형의 비석 같았는데…… 약 1.5m 크기의 돌덩이 표면에 온갖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앞서서 이곳에 떨어진 운석이 ‘태양 마차의 파편’이라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신화적인 모티브이지 진짜 마차는 아니었다.

치이이이——!

그 비석의 주변 지면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큭, 죄송하지만 저는 더는 못 가겠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열기가 강해졌다. 이정준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김세희는 몸에 바람의 장막을 두르며 뒷걸음질 쳤다.

오직 이현욱만이 강체화를 두껍게 하여 그 열기를 막아냈다.

그는 왼손을 뻗어 비석의 표면에 얹었다.

- ‘알 수 없는 물체’를 개봉하시겠습니까?

"……두 분, 뒤로 물러서 계세요.”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왼손에 강체화를 집중했다.

그리고 비석 안에 마나를 불어 넣는 순간—

퍼—엉——!

폭음, 비석 주변의 바닥 부분이 꺼지며 화염이 치솟았다.

- 해당 지역이 <불의 성역>ㅣ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비석 반경 5km의 평균 기온이 8도 상승합니다.

* 비석 반경 10km 내에 ‘불 속성 생태계’가 조성됩니다.

* 모든 금속의 녹는점이 대폭 감소합니다. (-30%)

* 이곳에서 ‘담금질’할 시 강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30%)

*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금속은 ‘최상급’이 됩니다.

* 이곳에서 불 속성 인첸트 시 추가 효과가 부여됩니다.

‘이게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축복이다.’

사기적인 광역 지속 버프로 마법 철강 산업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을 터, 이는 한 국가를 먹여 살릴 만한 효과들이었다.

‘언젠가 여기로 라퓨타를 옮겨오면, 시너지가 꽤 좋겠군?’

이어서 푹 꺼졌던 바닥에서 온갖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붉은색의 구슬들로, 1~3등급의 상급 불의 오브였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는 수십 개의 오브를 돌멩이 쓸어내리듯 양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러자 그 안에 또 다른 아이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웬 팔찌 형태의 아이템이 하나 보였다.

- ‘헬리오스의 가호(영웅)’을 얻었습니다.

‘이게 바로 파에톤 공략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다.’

이 아이템은 염화의 거인이 내뿜는 화염 공격을 일정량 상쇄해주어 화산 폭발이나 다름없는 놈의 공세를 버티게 해준다.

그러나 이현욱은 그것마저 뒤로하고 가장 깊숙하게 박혀 있는 가장 큰 물건을 꺼냈다. 그건…… 웬 거대한 철제 상자였다.

‘그래, 이거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영원한 불이 담긴 상자 (전설)

- 효과 : 이 상자에 담긴 아이템에 ‘불’ 속성을 부여한다.

이걸로 용광로 형태의 ‘오브젝트’를 제조한다면, 그 흔한 던전 강을 ‘화염의 오브’로 바꿀 수 있는 설비로 변한다.

'전생의 베트남은 이걸 바탕으로 병기창을 설립했었지?’

그곳에서 만들어졌던 무기들은 상당한 수준의 화염 속성을 붙어 있는 데다가 일부는 ‘폭발’ 효과가 탑재되어 있었기에 이현욱은 그들에게서 ‘폭발 막대’를 수입하여 사용하곤 했다.

‘그건 사기였다. 정확히는 내가 사용했을 때 사기였다.’

이현욱이 조종하는 금속의 화력은 자체 스킬이 없는 한 사실상 ‘파쇄’가 최대치였고, 그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방어력이 좋은 적에게는 잘 안 통하니까…….'

그런데 폭발 효과가 인첸트되어 있는 금속의 경우 화염 폭발을 동반하는, 흡사 ‘미사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어…… 뭐가 그렇게 많아요?”

김세희가 멀찍이 선 채 물었다.

"그런데 일일이 확인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아까, 두 번째 운석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확인해야죠.”

"아! 그러고 보니 제주도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이현욱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이교준 팀장에게 연락해서 강원도의 운석에 관하여 설명했다. 그 역시 이현욱이 운석을 유도했다는 점에 의문을 표했으나 이번에도 라퓨타와 관련된 ‘전용 퀘스트’였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제주도에도 그 운석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 예, 맞습니다. 혹시 그 운석의 정체를 아십니까? 그 두 운석, 원래는 하나였으니 분명 연관성이 있을 텐데 말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이벤트일 겁니다.”

- 젠장, 일단 실장님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예,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박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지금 여유 자금으로 내가 말하는 주식 좀 사줄래?”

- 어, 응?

난데없는 주식 이야기에, 박철수가 의문스럽게 물었다.

이현욱은 4차 웨이브 보상금과 레드 플레이어 현상금 등, 이런저런 방법으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모아둔 상태였다.

그리고 미래 지식을 이용해서 그 돈을 열심히 굴리고 있기도 했는데, 그 모든 업무는 박철수가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마법 모빌리티’ 산업 쪽으로 그…… 미국의 <블루트리 에어>나 차드의 <골드 그리핀>같은 기업들 있잖아?”

마법 모빌리티, 말 그대로 마나를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운송 수단에 관한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공정이 대표적이었다.

아직은 이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성과를 낸 기업은 없었으나,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으며 가치 투자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 야! 그건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아니 현욱아, 그것보다 강원도에 떨어진 운석 말이야. 혹시 우리가 샀던 그 임야…….

"응, 맞아.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일단 그것부터 처리해줘.”

- 아니, 매번 나중에 말…….

"—형, 장 마감하기 전에 지금 바로 부탁해!”

그는 전화를 끊고 곧장 여상민에게 마나 메신저를 걸었다.

"지금 즉시 소일러에게 전해서 드워프 장인들 싹 소집해.”

- 네?

앞선 박철수처럼, 여상민 역시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저, 전부 다라면…… 한 백 오십 명은 될 텐데요?

"그래, 전부 다 필요한 작업이야.”

- 어 …… 무슨 일로 소집한다고 전할까요?

이현욱은 잠시 중을 들이다가, 짧게 대답했다.

“……전쟁 준비를 한다고 해.”

***

어느 어두운 지하 시설, 작은 불이 켜졌다.

그곳은 평범한 공간이 아니었다. 무려 지하 11층 깊이에 설치된 방공호로써 마법 방어막과 사일런스 마법이 처진 곳이었다.

그곳의 중심에 놓인 책상 앞,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정부에서 작정하고 물어뜯으니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는 <태산>길드의 마스터 기백준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법 회선을 통해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젠장! 그런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한계입니다! 이현욱을 건드릴 때마다 조금씩 우리가 말라 죽어 간단 말입니다!”

마치 벌집을 잘못 건드린 양, 아니, 가스 불을 잘못 다룬 것처럼 이현욱을 건드릴 때마다 거친 후폭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체 어디에서 구한 건지 태산 길드가 행했던 어두운 행적의 증거까지 들이밀며 기백준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3위 길드인 태산이 몰락하고 있었다.

“…… 그래서 체어맨께서는 제게 전하라는 게 뭡니까?”

그런 그에게 ‘체어맨’은 그저 대기하라고만 명했다. 그게 벌써 몇 달째로 토사구팽당하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예?”

그런데 방금, 오랜만에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아니, 지금 그러니까……."

그는 전화를 강하게 움켜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제주도에 재앙이 떨어지면 한반도의 전력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때 라퓨타를 노리란 말씀입니까?”

즉, 흔히 말하는 ‘빈집털이’였다.

“하하……."

기백준은 비참함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라퓨타를 치라니, 그거 진심이랍니까?”

그 말인즉슨 범죄자—레드 플레이어가 되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쓸모가 사라졌으니 일회용 카드로 쓰겠다는 거지?’

그러나 예전처럼 화가 끓어 오르지는 않았다.

그는 어차피 막다른 길에 몰린 상태였다.

"하…… 그 작전을 해결하면, 저 이 땅 떠나겠습니다. 씨발, 당연히 떠날 수밖에 없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는 이참에 대한민국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태산>이라는 그의 터전은 이미 말라 죽었으니 이 나라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귓속으로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흘러들어왔고,

기백준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아, 그게 정말입니까? 하하— 그런 방법이라면 확실히 이 나라의 상급 플레이어들을 깡그리, 사고사로 위장해서 처리할 수 있겠습니다. 제주 하늘의 참사라니, 재밌는 아이디어입니다.”

방금, 제주도에 대재앙이 떨어졌다.

이제 곧, 그곳으로 대규모 지원 병력이 파견될 텐데…….

그들은, 제주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수장될 예정이었다.

"좋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야.”

***

제주도 백록담에 정체불명의 운석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게 단순한 운석이 아니라는 것도 금방 밝혀졌다.

- ……여기는 제주도 백록담의 운석 충돌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헬리콥터 안입니다! 마치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회색 연기가 백록담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 방송국 헬리콥터가 제주 하늘을 날고 있었다.

- 그리고 백록담 안에 웬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습니다!

그건 운석 충돌의 흔적, 크레이터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꾸—드—드—드——!

약 20m 크기의 화염 거인이 치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 헉!

그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고,

카메라맨과 앵커의 거친 숨소리만이 오디오를 채웠다.

그 순간, 그것의 거대한 손이 헬리콥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 어! 으아아…… 거대 몬스터가, 이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닿지 않을 거리였다.

그때—

푸—화—아—아——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 긴 화염 기둥이 뿜어져 나왔고,

그 장면의 마지막으로 뉴스 화면은 다시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 아.......

이에 제주도 전역에 비상 대피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 나라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난에 대응하는 협의체, <국가게이트대응위원회>가 긴급 소집되었다.

이현욱 역시 그 회의에 원격으로 참관했다.

곧 이교준 팀장이 1차 브리핑을 시작했다.

"자, 모두 이걸 보시죠.”

그는 브리핑 시작과 동시에 웬 영상을 하나 띄었다.

"이건 운석 충돌로부터 약 30분이 지난 시점, 제주 해군기지로 복귀하는 AMT해상수색대 13팀에서 보내온 영상입니다.”

이내 흔들리는 화면 속으로 해안 절벽이 펼쳐졌다.

두두두두——

로터 소리, 아마도 군용 헬리콥터에서 찍은 영상인 듯했다.

- 소대장님, 한라산이 불타고 있습니다!

- 젠장, 운석에서 몬스터가 나오다니, 외계인은 아니겠지?

그런 대화 소리가 들리던 중,

그들을 향해 다량의 붉은 가루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탁— 타—닥— 탁— 탁—

그건, 얼핏 보면 그저 불똥처럼 보였는데…….

그런 게 제주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이거 뭐야! 피할 수 없는 거야?

- 너무 많…… 어! 기체에 부, 불이 붙었다!

치이이이——

그것들이 기체에 닿는 순간, 점화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삽시간에 손쓸 틈도 없이 불길이 번져나갔다.

- 젠장, 저건 그냥 불똥이 아니야! 모, 몬스터다!

그런 비명이 울리는 직후, 더 큰 폭음이 연달아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화면이 꺼졌다.

그들이 전멸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보신 그 불똥 같은 비행체는 악령의 일종인 ‘레드 위습’입니다. 아주 작은 크기이지만 한 마리가 숲을 태울 수 있을 정도인데, 섬 전체에 저런 것들이 수만 마리가 산재되어 있습니다. 즉,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한 접근이 어렵습니다.”

직후, 화면에 제주도의 위성 지도가 한 대 띄워졌다.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듯한 사진이었는데,

해안선을 따라서 붉은 점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저 점들이 전부 다 ‘레드 위습’입니다.”

이어서 설명하기를 ‘레드 위습’은 마나를 감지하면 무조건 달려드는 습성을 지닌 만큼 따돌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평범한 운송 수단으로는 제주도에 상륙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고, 마법 금속과 두른 채, 마법 방어막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마나 엔진’이 달린 비행 물체가 다수 필요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비공정’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 그…… 인페르노가 저 불꽃들을 통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것들이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그냥 밀어낼 수 있을 텐데요?

화상회의 참가자 중 누군가 인페르노를 언급했다. 확실히, 불의 통제자 인페르노라면 저런 것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교준 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예, 저희도 연락을 시도했으나…… 인페르노는 이틀 전에 김해에 발생한 레드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 게이트 규모를 볼 때…… 한 3일 정도 더 소요될 듯합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아우성이 쏟아졌다.

- 큼…… 그렇다면 역시 비공정이 답이겠네요. 한두 대로는 힘들겠지만, 이현욱의 <프리드웬>과 그것보다 조금 더 큰 신성기사단의 <오룡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도 동원해서…….

그 대목에서 이교준 팀장이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하필이면 AMT 신성기사단도 청주에 열린 초대형 ‘구울’ 던전 공략 작전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리고 거기도 레드 게이트라서…… 공략 완료까지 3일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이에 사방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타이밍이 다 있나?

-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인력이 죄다 부재중이라니.......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점은 저희도 의문입니다.”

그 의문스러운 우연을 오직 이현욱만이 필연으로 이해했다.

‘그것들 전부 다 빌런의 시선 돌리기 작전일 거다.’

어떤 게이트는 빌런들의 ‘유도’에 의해서 열리기도 한다. 아마도 4차 웨이브 때처럼, 주요 전력을 미리 빼돌린 것이었다.

"자, 하지만 그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간인들이 위험합니다. 공략은 둘째 치더라도 제주 주민들을 내륙으로 호송할 방법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 우리가 들어갈 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민간인들을 호송해요?

- 괜히 잘못 움직였다가는 그냥 다 죽는 겁니다, 이거…….

그때 화상회의 참여자 목록에 새로운 얼굴이 하나 떠올랐다.

- 아! 강서윤입 니다!

한국 플레이어 랭킹 4위의 등장이었다.

- 여러분, 정말 다행히도 방금 <블루트리>사에서 비공정을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 때마침 일본 오키나와 사태 사후 처리를 지원하려고 비공정 3대가 일본에 정박 중이었다고 하네요!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안도에 찬 탄식이 흘러나왔다.

- 후…… 역시 강 대표는 언제나 해결사야!

초거대 국제 기업인 <블루트리>에서는 오래전부터 ‘제조형 비공정’을 생산•운용해 온 마법 모빌리티 산업의 선두였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따지만 비공정이 아니다.’

그건 그저 마법 금속으로 만든 동체를 띄우기 위해서 비행석을 왕창 단 뒤, 그것에 공급할 마나는 마나 배터리로 충당한다.

그리고 추진하는 방법은 여전히 ‘제트 엔진’을 사용했다.

즉, 온갖 재료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이어붙인 물건이었다.

프리드웬이나 오룡거 같은 ‘아이템형 비공정’과 나란히 두고 비교하면 그 성능이나 에너지 효율 면에서 압도적인 열세였다.

‘단 1대의 유지 비용이 항공모함 3대와 준한다니…….'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라도 필요한 실정이었다. 그거라도 빌리지 않으면 다수의 플레이어 병력이 제주에 상륙할 수 없었다.

- 그쪽의 비공정이라면 130인승짜리 모델, 맞습니까?

- 오…… 그게 있다면 제주도 상륙이 가능하긴 하겠군요!

그러나 이현욱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간악한 놈들, 이번에도 이 쓰레기 같은 수를 쓰다니…….'

미국의 <블루 트리>는 고든 프라이스가 총수로 있는 기업이다.

즉, 이 비공정 지원에도 빌런의 계략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우리를 한 번에 수장시키려는 거다.’

아주 뻔한 수였고, 전생에도 그런 수를 몇 차례 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여러분, 우성문 실장입니다. 제가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에 모두가 침묵했다.

우성문, 그가 사실상 이 회의의 주체자였다.

그가 발언한다면, 꽤 중요한 안건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블루트리의 비공정을 빌리지 않을 겁니다.”

이 회의의 맥을 끊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 네? 그게 무슨 말씀입 니까?

- 그렇다면 다른 수가 있겠지요?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당황 어린 음성들,

이에 우성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는 화면 속, 이현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도 함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같은 시각, 라퓨타의 비공정 포트는 분주했다.

그들은 소일러를 비롯한 그레이 드워프 장인들이었다.

"아니, 12시간 만에 저걸 전부 정비하라는 게 말이 돼!”

"후…… 그래도 말이 되는 게, 어떻게든 끝내긴 했잖아!”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렸다.

“큭, 땀도 흘렸겠다, 맥주 한잔하고 싶은데 안 되겠지?”

“음…… 딱 한 모금씩 하면 괜찮지 않을……."

그때 누군가 꽥—하고 소리 질렀다.

"—네, 안 돼요!"

그건 여상민이었다.

그는 오더 타워에서부터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아저씨들, 지금 바로 출발할 준비 하세요!”

그와 동시에 오더 타워의 비공정 포트에서 무언가 치솟았다.

우우우우——

그건 이현욱의 프리드웬이었다.

"어이쿠! 우리도 늦으면 안 되잖아!”

“그래, 집주인한테 밉보이면 쓰나!”

그러자 드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상부 거주 지역의 비공정 포트에 늘어서 있는 12대의 비공정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얼마 전에 드워프들이 타고 왔던 누더기 같은 비공정이었으나, 이현욱의 요청으로 외관 수리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꽤 그럴듯한 은백색의 외양을 갖추었다.

"자! 모두 잘 들어! 당부들은 대로 안전하게 움직여—!”

소일러가 그렇게 외치며, 프리드웬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그 뒤로 총 12대의 드워프 비공정들이 줄을 이어 날아갔다.

그때, 이현욱의 목소리가 모든 비공정 안에서 흘러나왔다.

- 자, 이제 라퓨타의 돔 밖으로 나갈 겁니다.

"으하하— 좋아! 갑시다!”

-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안전 운행 부탁드립니다.

이내, 이현욱의 프리드웬이 투명 돔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를 이어서 드워프들의 비공정의 행렬이 이어졌다,

즉, 한 무더기의 비공정들이 서울 하늘에 등장한 것이었다.

우우우우——

그것들의 그림자가 서울역 인근을 뒤덮었고,

시민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봐!”

"헉! 저, 저게 뭐야?”

파란 하늘 속, 거대한 공중도시 안에서 등장한 은백색의 비행선이 일정한 대열을 이루며 서울 하늘을 관통해 지나간다.

그 장면은 <국가게이트대응위원회> 회의 화면에도 중계되었다.

- 아니, 저게 대체…….

- 설마 저건…….

좌중이 술렁이는 가운데, 우성문이 입을 열었다.

"이현욱의 프리드웬을 기함으로 하는, 비공정 함대입니다.”

이 세계에 ‘비공정 함대’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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