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축복과 재앙, 두 개의 운석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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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퓨타의 총괄 인공지능인 탈로스(Talos), 녀석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동 거인’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거인의 형태의 몸도 존재한다.’
이현욱은 전쟁에, 라퓨타에 침투했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 탈로스는 30m 크기의 오리할콘 거인의 모습으로,
무려 165레벨에 달하는 최상위 보스 몬스터였다.
'……그건 아마도 전설 등급의 오브젝트였지?’
그 몸뚱이 역시 라퓨타의 ‘잃어버린 보물’ 중 하나로써, 언젠가 그걸 되찾는 퀘스트가 발동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런데 지금…… 조금 다른 계획이 떠올랐다.
그건, 또 다른 거인을 바라보며 얻은 영감이었다.
쿵— 쿵— 쿵— 쿵—
노움의 기술로 만들어진 전쟁 기계인 ‘청동 파수꾼’
그것은 탈로스보다 한참 하위 호환의 AI가 탑재되어 있었다.
‘즉, 저걸 탈로스가 통제할 수 있을 거다.’
이현욱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을 바라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혹시나 놈을 자극하여 오른팔의 거포가 발사되기라도 한다면 이 주변 지역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려 그레이 드워프제 거포니까…….'
그것의 화력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가공할만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놈의 신경을 긁지 않게 조심스레 프리드웬을 소환했다.
웅—
그런데 프리드웬이 소환되자 등 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현욱 씨!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인명피해 우려가 있습니다! 주변에 대피 명령을 내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강정두 연구소 직원들을 보호하고 있던 비형랑팀의 비밀 요원 중 한 명이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싸우지 않을 겁니다.”
"……예?”
그는 말없이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프리드웬의 램프도어가 열리고 그 안에 장비된 견인 장치—아다만트 크레인에서 4개의 갈고리가 풀리며 날아들었다.
캉! 캉! 캉! 캉!
4개의 갈고리가 놈의 팔다리에 저절로 묶였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그건, 못 풀 거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갈고리 (숙련)
- 효과 : 넝쿨 끝의 ‘갈고리’를 어딘가에 걸고, 마나를 부여하면 신비로운 힘으로 아주 쉽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와이번 무리의 날개를 묶었던 갈고리들이었다.
놈은 온몸을 뒤틀어대며 갈고리를 역으로 잡아당겼다.
깅—깅—
그러나 프리드웬은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현욱이 마나를 부여하자 놈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이현욱은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띄워서 프리드웬의 램프 도어로 들어가는 동시에 ‘긴급 귀환’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저놈까지 끌고 갈 수 있다.’
- ‘라퓨타 : 오더 타워’로 긴급 귀환합니다!
웅——
일순간 주변의 풍경이 새파란 하늘로 바뀌었다.
이제는 익숙한 장면 전환이었다.
라퓨타, 오더 타워의 비공정 포트로 순간이동 한 것이었다.
쿵!
청동 파수꾼은 세계수의 갈고리에 뒤엉킨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비공정 포트 위에 끌리듯 처박혀버렸다.
캉! 카가가가——!
그와 동시에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거포를 들어 올린다.
치지지지——!
포구에서 들끓는 붉은 에너지 가닥들—
저거에 맞으면 프리드웬도 장담 못 한다.
"젠장— 탈로스!”
「예, 준비됐습니다!」
그때, 놈이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좋아, 탈로스가 저 괴물의 머리를 장악할 거다.’
그러나 그게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듯했다.
거포가, 임계점에 달한 것처럼 달아 올라 있었다.
'—쏘아진다!’
그 순간, 이현욱이 프리드웬을 발진시켰고 놈의 몸이 뒤흔들리며 포구의 방향이 바뀌었으나, 기어코 시뻘건 화염이 뿜어졌다.
콰—아—앙——!
"어!”
붉은 섬광이 저 아래, 상부 거주 지역 쪽으로 날아가 버렸고…… 드워프들이 만들고 있던 오브젝트들을 박살 내버렸다.
광——!
그게 무엇인지는 이현욱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높이가 5m에 달하는 걸 보면 꽤 규모 있는 오브젝트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정말 다행히도 아무도 그 포격에 휩쓸리지 않았으나…….
"어! 으아아! 안 돼—!”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저 멀리, 거주 지역에서 드워프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그들이 들고 있던 맥주캔을 내던지면서 황급히 달려왔다.
'뭐, 그래도 금방 고치겠지…….'
그런데…… 고치는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청동 파수꾼은 탈로스에 의해서 제압되었다.
괴물의 눈동자 같던 그 시퍼런 안광이, 다소 동글동글해졌다.
언뜻 봐도 공격 의사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스터, 파수꾼에 각인된 특유의 ‘무조건 공격 반응’을 제거했습니다. 이제 통제력으로 복속 가능한 상태일 겁니다.」
- ‘청동 파수꾼’의 ‘마스터 권한’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탈로스의 설명대로 <시그널 코어>의 ‘센츄리온 포스’가 기능하며 권속으로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4차 웨이브 때 리빙 아머를 복속시킨 이후로는 처음 쓰는 기능이었다.
"이게, 라퓨타 밖에 있더라도 다시 통제가 풀리진 않겠지?”
「예, 제 일부를 복제해서 설치해뒀으니 마스터의 명령을 따를 겁니다만, 복제본인 만큼 명령 수행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이현욱은 청동 파수꾼의 몸뚱이를 쭉 둘러보았다.
'일단 몸체는 푸른빛을 띠지만 진짜 청동은 아니고 아다만트와 미스릴 합금이다. 이걸 노움 청동이라고 했다지 아마?’
노움의 유적지에서 이걸 마주했을 때, 감히 박살 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단단함이 느껴졌었다.
‘제대로 된 탱커가 하나 생겼군.’
그리고 무려 ‘목왕팔준’을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그것의 첫 번째 효과인 절지, 그게 기능 중이었다.
1) 절지(絶地):강력한 마법 ‘출력’을 발휘하며, 이동수단에 연결될 경우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50%)
“어디, 한 번 뛰어 봐.”
이현욱이 이동을 명령하자, 4m에 855kg짜리 거구가 몸을 일으켜 150m에 이르는 비공정 포트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적어도 시속 90km는 될 법했다.
"거기에다가 거포는 나머지 하나의 아그니 크리스털을 바탕으로 만든 것 같은데, 적어도 블랙 라이노보다 강력하고......."
블랙 라이노처럼 연발로 때려 갈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짜 ‘포’다운 묵직한 화력이 담겨 있었다.
"좋아……."
이로써, 115레벨짜리 보스 몬스터 용병을 한 마리 얻었다.
"탈로스, 그리고 이거 접이식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첫 등장 했을 때, 공처럼 말려 있던 게 떠올랐다.
「예,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좋아, 잘 접어서 프리드웬에 탑재해둬.”
거대 로봇 한 대가 함재기에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그날로부터 며칠 뒤, 이현욱의 플레이어 랭킹이 발표되었다.
- 올해 3분기 랭킹 업데이트와 동시에 국내 랭킹 검색 사이트 마비, 이현욱 랭킹에 초유의 관심이 쏠리며 트래픽 폭증……
- 서울의 구원자 ‘F등급’ 이현욱의 첫 번째 랭킹은 17위!
- 역대급 신예 플레이어 이현욱의 첫 랭킹은 17위, 적절한가?
‘음, 17위라…….'
이현욱은 ‘플레이어 등급’과 더불어 ‘플레이어 랭킹’ 역시 신뢰하지 않았다. 그 두 가지 모두 인위적인 제도일 뿐이었다.
그리고 랭킹을 책정하는 방법도 참 모호했다. 플레이어의 지난 업적과 근 1년 공략 성과에 기반을 둔다고 하지만, 그 기준이 불명확하여, 이처럼 업데이트 때마다 의문이 끊이지 않곤 했다.
‘몇 위든 별로 상관없지만, 그래도 조금 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현욱뿐만이 아니었다.
- 이현욱 랭킹이 고작 17위? 플레이어 협회의 보수적인 잣대인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오른 불투명한 랭킹 책정 방식.......
이처럼,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그의 발아래에서 웬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그는 지금 프리드웬에 탄 채 하늘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 굉음의 정체는 김세희가 일으킨 회오리바람이었다.
"저건…… 이번에 60레벨에 오르면서 얻은 스킬인가?”
지금 여기는 강원도 한 산지에 열린 게이트 안, 던전이었다.
희망 길드의 2개의 공략팀, 이정준이 이끄는 1팀과 김세희가 이끄는 2팀이 합동 공략에 나섰고, 이현욱이 참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공략 막바지로, 오크 한 무리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의 머리 위로 회오리바람이 낙하했다.
그 사이에서, 하늬가 신나게 춤추고 있었고,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서 바람의 칼날들이 쏘아졌다.
콰—가—가—가—가——!
그것들이 바닥을 긋고, 나무를 베고, 살을 찢는다.
일순간에 대여섯 마리의 오크가 쓰러지는 게 눈에 띄었다.
물론, 며칠 전에 목격했던 코도 코지로의 권능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공격이었지만, 충분히 고무적인 성장세는 틀림없었다.
그녀는 최근에 등급 심사를 다시 치렀고, 그 결과 C등급 4티어에서 B등급 5티어로, 무려 4계단의 등급 상승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녀의 잠재력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음, 이제는 암살 능력도 키워줄 필요가 있겠어.’
전생, 그녀가 대단했던 이유는 ‘암살’ 능력 때문이었다.
‘바람의 정령술사인 동시에 암살의 귀재였지…….'
그녀는 바람과 함께 등장하여 폭풍처럼 적진을 뒤흔들고는 목표물을 갈가리 찢은 뒤, 다시금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적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워낙 어려운 상대만 만나왔기 때문에 그 특유의 근접전 실력이 발휘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수준에 맞은 곳에서 뛰게 되자 이처럼, 자신의 진짜 이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촤—아—아——!
그녀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오크 4마리의 목덜미를 그었다.
‘역시 빠르다.’
이현욱은 후긴의 눈을 빌려서 그녀의 움직임을 살폈다.
‘하지만 아직은 핵심이 부족하다.’
최고의 타이밍에 최적의 지점을 노리는 것,
즉 ‘암살’의 정확도가 완벽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암살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원래대로라면 <흑호>부대에서 암살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게 그녀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는 계기였을 터…….
‘그쪽과 교류할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의 성장세가 더 빠른 건 사실이었다.
잠시 후, 던전 공략이 마무리되었다.
이현욱은 게이트 출구에 프리드웬을 착륙시켰다.
"아니 김 팀장님,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성장하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건 희망 길드 공략 2팀장, 이정준이었다.
그는 4차 웨이브 때부터 강철 중대와 함께 움직이며 김세희의 실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기에 그녀의 성장세가 체감됐다.
"그러고 보니 박준모, 그 친구도 그렇고 둘 다 장난 아니네요. 무슨, 만날 때마다 한 거의 등급씩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명은 확실한 하나의 공집합을 가지고 있었다.
"뭐, 누구랑 오래 같이 다니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아, 역시 이현욱 사장님 최측근들이셔서 그런 거였군요.”
그건 바로 이현욱이었다.
그때, 그가 그들의 뒤에 나타났다.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이정준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후, 이번에는 저와 저희 팀이 딱히 한 게 없어서 부끄럽네요. 김 팀장의 2팀이 기여도 74%라니…… 분발하겠습니다."
"그것도 이 팀장님이 뒤에서 잘 서포트 해주신 덕이죠.”
김세희가 손사래를 하며 말했고,
이현욱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예, 저도 위에서 봤습니다. 두 팀, 합이 잘 맞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정준이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그들은 장비 정비를 마친 뒤,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은 웬일로 참관을 다 하셨어요?”
김세희가 문득 물었고 이정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현욱의 참관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 것이, 지금까지 수차례 공략이 있었지만, 몇 마디 조언과 몇 개의 아이템 지원을 끝으로, 알아서 잘 하라는 식이었다.
"음, 설마…… 우리를 감시하는 건 아니죠?”
"아, 근무 태만이 있는지 없는지 보러 오신 겁니까?”
두 사람은 이러쿵저러쿵하며 이현욱의 저의를 의심했다.
"뭐, 언제 해고 통보가 갈지 모르니까 항상 조심하세요.”
이현욱은 그렇게 농담을 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는 건 사실이었다.
‘곧 강원도에 <파에톤 운석>의 한 부분이 떨어진다.’
이현욱은 주머니 속의 한 아이템을 만지작거렸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
- 효과 :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다.
- 인사이트 렌즈를 통해 해당 아이템을 <감정>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고진화에게 이 아이템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5일 뒤, 그 물건이 싱가포르의 암시장 경매장에 상품으로 나올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이현욱은 고진화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매입해달라고, 재차 부탁했다.
‘그리고 정말로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역시 레드홀 마을의 정보·물자 수집 능력은 상당했다.
어쨌든, 이게 바로 그 운석을 ‘유도’하는 아이템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게 있는 위치에 그 운석이 떨어진다.
‘이렇게 중요한 게 암시장 경매에 나돌아다니다니…….'
그 이유는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와 같았다.
언뜻 봐서는 그 사용 용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얻은 사람이 그다지 눈치가 없던 모양이다.’
A등급의 분석가 플레이어에게 ‘감정’을 맡긴다면 숨은 가치를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처분했을 터—
‘전생에는 베트남의 한 부호가 이걸 샀다.’
그리하여 그 부호의 사유지에 그 운석이 떨어지는데…….
‘그건, 하늘에서 떨어진 보물 상자였다.’
실로 엄청난 가치의 아이템들이 담긴 보따리인 동시에, 그 일대의 환경을 변화시켜서 특별한 재료 아이템이 자라나게 한다.
‘그 덕분에 베트남의 경제력이 대폭 상승했다.’
이현욱은 그가 싱글벙글하며 했던 인터뷰가 기억이 났다.
자신이 암시장 경매장에서 천대받는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이 아이템을 보는 순간 어떤 운명이 느껴졌다나…… 그건 역사 상 최고의 행운이라는 등, 방송에서 한동안 난리였다.
그 운명 같은 기회를, 이현욱이 가로챈 것이었다.
"사실은, 이 근처에 땅을 매입했습니다.”
이현욱이 선언하듯 말했다.
"네? 땅이요?”
"오늘은 그걸 보러 온 겁니다. 다 같이 가시죠.”
"아, 개발 예정지? 뭐 좋은 소식이라도 접하신 거예요?”
"……투기 같은 거 아닙니다.”
……왜 땅을 산다고 하면 다들 투기부터 생각한단 말인가?
***
오늘날 세상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평화라는 건,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말했다.
이 게임에서 빌런 측이 유리한 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갈등이 있어야 게임이 굴러간다.
그렇기에, 빌런은 언제나 앞서 간다.
-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21일, 지구를 3100만km 차이로 빗겨 지나갈 예정이었던 혜성 킴-월터의 궤도가 크게 수정되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99%에 이른다고 미항공우주국이 긴급……
우주에서 다가오는 대재앙에, 세상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운석의 진짜 이름은 <파에톤>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의 서자로서, 아버지에게 태양 마차를 끌겠다고 요구했던 한 소년의 이름이었다.
녀석은 기어코 태양 마차를 끌고 나갔다가 대재앙을 초래한다. 조종 미숙으로 너무 낮게 비행한 탓에 지상을 불태운 것이었다.
결국, 제우스 신의 분노를 사서 벼락을 맞고 추락하는데…….
'저 운석이 바로,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벤트다.’
이현욱은 지금, 얼마 전에 매입한 강원도의 ‘임야’에 와 있었다. 정말로 사방천지 산밖에 보이지 않는 외딴곳이었다.
- 현재, 킴-월터가 지구에 충돌하기까지 14분 남았지만, 그 궤도가 계속 수정되면서 충돌 지역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 이거,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뭐야, 진짜로 운석이 떨어진다는 겁니까?”
그 전말을 모르는 김세희와 이정준은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에 이현욱은 슬슬 사실을 고백하기로 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여기로 저 운석이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이 넓은 임야를 매입한 거고요.”
그 말에 김세희와 이정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현욱은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를 꺼내 보였다.
그건 겉으로 볼 때는 작은 상자 형태의 기계장치였다.
"이게 바로 저 운석을 유도하는 아이템입니다.”
"어……."
"쉽게 말해서 이 운석 상황도 일종의 ‘이벤트’인 셈이죠.”
오케아노스(Ocean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의 이름으로, 밤이 올 때 태양 마차가 정박하는 '차고지’ 같은 개념이었다.
즉 이 ‘오케아노스 유도장치’는 앞으로 2개로 갈라질 파에톤의 운석 중에서 <태양 마차>에 해당하는 부분을 끌어당긴다.
"그, 근데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준비하신 거예요?”
“뭐…… 라퓨타와 관련된 퀘스트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만, 그들로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 역시 라퓨타는……."
"아니, 그런데 우리 여기에 서 있어도 되는 겁니까?”
이정준이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약에, 뉴스에서 경고하는 대로 그 재앙 같은 운석이 이곳에 떨어진다면.......
“……우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거 아닙니까?”
"이게 우리를 보호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현욱은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를 들어 보였다.
"아…… 그게 정말이겠죠?”
이정준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긴, 운석이 떨어질 자리에 서 있는 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 지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운석이 달 궤도 돌파 후 2갈래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어, 두 갈래라는 데요? 그럼 둘 다 여기에 떨어지나요?”
이현욱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제우스 신의 벼락이 파에톤이 끄는 태양 마차를 요격한다.
그때, 태양 마차는 산산이 부서지며 태양의 통제 권한은 다시금 헬리오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파에톤은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불에 그을린 채 ‘에리다노스 강’에 떨어진다.
즉 <오케아노스 유도 장치>로 떨어질 게 태양 마차라면, <에리다노스 유도 장치>로 떨어지는 또 다른 하나의 운석은.......
'……파에톤, 그 자체이다.’
염화의 거인 파에톤…… 그건, <월드 보스 몬스터>였다.
그것은 필리핀 제도에 추락하여 대재앙이 된다.
‘그것도 역시나…… 빌런의 계략이었다.’
<2차 웨이브>가 일어난 상하이,
<4차 웨이브>가 일어난 서울,
<파에톤의 추락>이 발생한 필리핀까지,
그렇게 막심한 혼란에 빠진 아시아권을 빌런이 장악한다.
그게 놈들이 계획한 아시아 장악 시나리오였을 것이었다.
‘그걸 알고 있지만, 내가 필리핀 쪽에 개입할 수는 없다.’
이현욱은 일단 그쪽 상황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에리다노스 유도 장치는 이미 빌런의 손아귀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최대한 힘을 쌓는 게 주요했다.
'이곳에 떨어질 운석은, 보물덩어리니까 당분간 안전하다.’
잠시 후,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구—우—우—우——!
천공을 울리는 진동, 두개골이 함께 울리며 머리가 멍해진다.
운석 ‘파에톤’이 궤도를 돌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2개로 나뉜 운석 킴-월터가 순식간에 궤도를 틀어서 한반도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 작은 파편의 충돌 예정지는 강원도 산간 지역이며, 큰 파편은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이 될 것으로 추정…… 치지지——
이현욱은 흠칫했다.
‘—응? 잠깐만, 방금 큰 파편이 어디에 떨어진다고 했지?’
그러나, 그 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운석의 접근으로 한반도 전역에 마나 산란이 발생, 통신 장애가 일어났을 터였다.
그러나 이현욱은 분명히 들었다.
큰 파편인 ‘염화의 거인 파에톤’이,
한반도, 제주도의 백록담에 떨어진다는 것을.......
'……이벤트의 발생 위치가 달라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축복과 재앙,
그 두 가지가 전부 다, 이 땅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