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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02화 (102/221)

102화.  <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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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경험치 뭐예요? 대박인데요?”

김세희는 62레벨짜리 몬스터 ‘엘드요툰의 화신’ 쓰러뜨린 뒤, 눈앞에 떠오르는 레벨 업 메시지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녀는 방금 막 50레벨에 도달했다. 전역했을 때가 34레벨이었던 걸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성장세가 아닐 수 없었다.

"김 팀장님, 경험치가 그렇게 잘 들어옵니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박준모가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도 모르겠구나 이 짜릿한 맛을?”

그건 레벨 외 성장 특성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였다.

"저는…… 그, 벼락 맞는 맛만 압니다.”

"음, 그건 다른 의미로 짜릿하긴 하겠는데?”

박준모는 다소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쩔 받는 건가 싶다. 우리 이 사장님께서 쓸어버리는 걸 뒤에서 건드리기만 해도 경험치가 들어오잖아?”

쩔, 그런 속어가 아직도 종종 쓰이곤 했다.

그 말에,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그래서 데려온 거예요. 제대로 쩔해주려고요.”

"그러게요. 제가 큰 그림을 몰라봤네요, 또……."

사실,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에 간다고 하니 너무 위험한 곳만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은근히 투덜거렸던 그녀였다.

물론, 이곳이 위험천만 한 곳인 건 사실이었다.

‘나도 공략법을 모르고 들어왔으면 당했을 거다.’

쿵— 쿵—

"어, 아직 몇 마리 더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아직 긴장 풀 때가 아니네요.”

5분 뒤, 총 16마리, 그것들이 도로변에 엎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한 건물로 피신한 뒤, 두꺼운 방한복을 벗어 던지고 온갖 빙결 마법으로 주변을 둘렀다.

하지만…….

"큭, 이, 이제는 마나가 부족해요.”

아무래도 빙결 마법으로 주변 온도를 식히는 건 일시적인 대처일 뿐, 이 펄펄 끓는 공기를 전부 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로지 냉기에만 대비했기에, 열기에는 무방비 상태였다.

“컥, 숨 막혀…… 탈진이 점점 심해진다.”

"저는 버, 벌써 2단계에요. 큭—”

그나마 프리스트 계열의 ‘보호’ 마법이 효과를 봤지만…….

"저, 저도 보호 마법 좀 부탁해요.”

"아…… 죄송해요. 지금은 쿨타임이라서요.”

이렇듯,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이 ‘지옥 폭염’은 단순히 온도만 높은 게 아니었다. 시스템적으로 온갖 ‘디버프’가 부여되니 견디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김세희는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에 반에 여기 세 사람은, 평소와 다른 없는 컨디션이었다.

그 이유는…….

- ‘황혼 클로버의 효능’이 적용 중입니다. (00:13:11)

이현욱이 준비한 어떤 아이템 덕분이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상황도 예상하신 건가요?”

김세희의 물음에 이현욱이 고개를 저었다.

"음, 예상이 아니라 대비한 거겠죠?”

"와, 정말 가끔은 신기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니까요?”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때, 나가노 타이가 다가왔다.

그녀는 땀에 흠뻑 절은 채 비틀거렸다.

이현욱이 그녀를 부축했다.

"이게 어, 어떻게 된 거죠? 당신들은, 대체 어떻게……."

이현욱은 그녀에게 작은 물약 병을 내밀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황혼 클로버의 정수 (소)

- 효과 : 복용 시 30분간 열에 의한 상태 이상에 면역이 발생합니다. (단, 화염 공격에는 30%의 감쇄 효과만을 가집니다.)

이 역시도 에밀리아 뮐러가 공수해준 특별한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세계수가 아니었으나, 세계수 주변에서 자라나는 진귀한 마법 약초 ‘황혼 클로버’를 다려서 만든 물약이었다.

이는 어디에서 구했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귀한 아이템이었는데, 차드 공화국에서 수출을 통제하는 품목 중 하나였다.

"아…… 이거라면 분명, 이 지독한 열기를 막아주겠네요.”

"예, 하지만 많지는 않아서 모두가 쓸 순 없습니다.”

그녀는 그 물약을 마셨고 점차 상태가 나아졌다.

"저, 이현욱 씨,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황을 예상했냐고 묻는 거죠?”

방금 김세희가 물은 것과 같은 맥락의 질문이 들어왔다.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두 번이나 말씀드렸다시피 대비가 철저한 편입니다.”

그 말에, 그녀는 이현욱으로 받은 물약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걸 평소에 대비 차원에서 들고 다닌다니, 말이 되나?

"그냥 대비라고 하기에는 마치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입장 전에 이 방한복도 안 입겠다고 하시고......."

그녀는 뭔가 합리적인 의심을 시작했다.

이에 이현욱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냥…… 짐작했습니다. 물론 냉기와 정반대되는 열기를 예측한 건 아닙니다. S등급 플레이어들도 초반에 당할 정도였다면, 입장과 동시에 뭔가 일어나겠거니 해서, 두꺼운 방한복을 지양했던 겁니다. 아무래도 움직임에 방해가 되니까요.”

"아……."

"제 첫 던전 공략 때도, 게이트를 넘어가자마자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받아내야만 했거든요. 다 경험인 거죠.”

역시나 이번에도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그, 그런 의견이라면, 저희한테 제시라도 해주셨으면……."

"글쎄요. 제 말을 들어줄 분위기였던가요?”

"......."

"죄송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힘은 안 빼는 편이라서요.”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래, 그녀 스스로가 생각해도…… 여기 들어오기 직전의 상황은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

그녀가 말을 잃은 사이에, 이현욱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엘드요툰 화신’의 시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어? 지금 뭐하시는……."

그는 과감하게, 그 뜨거운 흉부를 가르고 무언가를 뽑아냈다.

- '이글거리는 심장’을 얻었습니다.

이 거인의 심장은 웬 붉은 보석 형태였다.

치이이이——!

그리고 그건, 엄청난 고온이었다. 강체화가 아니었더라면, 황혼 클로버의 축복을 복용했더라도 화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이거, 꽤 괜찮은 재료 아이템인데?’

샷건, 블랙라이노에 탑재된 ‘아그니 크리스털’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열 출력을 가진 듯하니 쓸모가 있을 것이었다.

‘이건 폭발하는 기능이 있으니까 금속으로 덧씌워서 안정제를 첨가한다면…… 일종의 유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전속 대장장이들이 워낙 대단한 물건들을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이런 재료 아이템을 보면 활용 방법부터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연금술이 발전하면, 이걸 복제할 수도 있겠지?’

더 나아가서 앞으로 투자할 연금술의 활용 방안까지 고민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가노 타이가 참다못해 물었다.

"저기, 지금 그걸…… 왜 모으죠?”

"음, 이건 재료 아이템이에요. 파밍이죠.”

이현욱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아이템은 열기를 품고 있잖아요. 몸에 지니고 있으면 오히려 디버프가 악화할 거예요.”

"네, 그렇겠죠.”

"네? 어, 그, 그리고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어요!”

서걱—서걱—

"아니,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그걸 왜 모으시는 거죠?”

이현욱이 심장을 하나 더 뽑아 들며 고개를 들었다.

"그거야…… 대비죠. 이걸로 네 번째 말씀드리네요.”

"아니, 그걸로 대비라니, 도대체 무슨 대비를……."

이내 그녀는 계속 따져 묻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다.’

그렇기에 그녀는 의아함과 자존심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리 한일 양국이 감정의 골이 깊다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의지하지 못하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이현욱은 전사 계열 플레이어들에게만 ‘황혼 클로버의 정수’를 나누어주었고 그들이 나머지를 부축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프리드웬’을 소환하여 이용할까 했지만, 하늘을 수놓으며 지나가는 웬 벌레 떼를 본 순간 그 생각을 접었다.

왜—애—애—앵——

저것들은 그냥 벌레 떼가 아니었다. 꽁무니에서 뜨거운 플라스마를 분출하여 닿는 모든 것들을 녹여버리는 지옥 생명체였다.

‘그리고 빌런들도 있는데, 함부로 태우는 건 좋지 않다.’

저벅— 저벅—

이내 오키나와 우라소에시(市)로 접어들었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과 땅에서 피어오르는 회색의 열기…… 그 적막의 도심은 마치 끓고 있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우리 목적지는 원래 '우라소에 제2 쉘터’입니다.”

도심의 입구에서 구조대장, 나가노 타이가 그렇게 말했다.

작전 투입 전, 1차 구조대의 탈출자 시즈오카 코가에게 설명을 듣기로는, 1차 구조대원들이 바로 그 쉘터로 피신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믿을 수 없어요.”

그러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이 상황을 보세요. 그 남자의 설명과 정반대죠. 우리는 그 남자 말만 믿고 냉기를 대비했고…… 전멸할 뻔했어요.”

"......."

"그리고 ‘로키의 장난’ 그게 뭔지 생각을 해봤어요. 로키는 트릭스터이고 변신술의 대가이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하군요. 도플갱어, 종종 등장하는 현상이죠.”

하지만 사실은 그럴듯한 게 아니라 정답이었다.

1차 구조대 중에서 유일하게 탈출하여, 울며불며 돔 내부 상황을 증언했던 시즈오코 코가는 실제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진짜 시즈오코 코가는 안에서 죽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시즈오카는 ‘도플갱어’였다.

이곳에서 죽은 자를 ‘도플갱어’가 모방한다. 그것은 죽은 자의 생전의 기억을 흡수, 그걸 이용해서 플레이어를 기만한다.

하지만 아이템을 착용하지도 스킬을 쓰지도 못하는 빈 깡통인 만큼, 노련한 플레이어들이라면 그것의 존재를 금방 눈치챈다.

'그러나 잠깐 속이는 것만으로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바로 이 2차 구조대처럼 말이다.

아마도 2차 구조대가 입장함과 동시에, 그것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 터, 밖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이렇듯, 시스템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련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쉘터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현욱의 말에 나가노 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다른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쉘터라면 지옥 폭음을 어느 정도 상쇄해줄 터,

디버프에 걸린 구조대원들이 체력을 회복할만한 곳이었다.

쿵— 쿵—

그때, 지축이 뒤흔들렸다.

"아, 젠장—”

나가노 타이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빼 들었다.

도심 곳곳에 엘드요툰의 화신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그것들은 가로등이나 가로수를 뽑아 든 채, 골목에서 기어 나왔다.

"제가 처리할 테니, 모두 뒤로 물러나 계세요.”

"후, 아까 한국팀이 고생하셨으니 저도 도울게요.”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현욱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가노, 아닙니다. 빙결 마법을 아껴두세요.”

이현욱의 머리 위에 떠 있던 1대의 AD-1가 움직였다.

그곳의 하단부 아공간에서 무언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웅——

거검 모글레이, 그것이 이현욱의 앞으로 내려왔다.

그가 왼손을 가볍게 뻗자, 모글레이가 지면을 쓸고 지나가듯 날아가 그 흑색의 거인들의 발목을 거칠게 치고 지나갔다.

퍼—버—버—버—버——!

그 일격에 엘드요툰 호신 7마리가, 일제히 고꾸라졌다.

"—갑니다!”

그 뒤로 박준모가 달려갔다.

파지지지——!

거미줄 같은 전류가 바닥을 타고 나아가 그것들을 짓이겼다. 본디 엄청난 회복 속도를 통해서 발목을 재생하며 일어나야 할 놈들이지만 감전됨으로써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그 뒤, 이어서 김세희의 바람의 검들이 쏘아져 그것들의 눈을 찔렀다.

그어어어——!

그 연계 공격에 놈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자, 한 대씩 쳤어요! 마무리해요!”

그때, 선회하여 다시 돌아오는 모굴레이—

퍼—버—버—버—버——!

이번에는 다리가 아니라 머리를 노린 공격, 그 절단면—목구멍에서 시뻘건 용암이 꿀렁꿀렁 터져 나와 아스팔트를 녹였다.

치—이—이—이——!

그 모습에 나가노 타이는 새삼스레 혀를 내둘렀다.

‘뭐야, 한 번에 죽일 수 있었는데…… 경험치를 나눈 거야?’

즉, 생존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냥이었다.

‘이현욱…… 실제로 보니까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이 압도되는 기분…… 어떤 현상을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현욱이 이번 작전에 참여를 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를 두고 동료와 함께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참나, 이현욱 저 사람, 영웅 행세에 미친 것 같지 않냐?”

"그러게? 신나서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영상으로는 대단해도 막상 실제로 보면 별거 없을걸? S등급이 안에 갇혔는데, 자기가 뭐라고 영웅처럼 등장해?”

"쯧쯧, 하여튼 저 나라 애들은 자기 과장이 심한 것 같아.”

……그녀는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래 나는, 그냥 멋도 모르고 무시하고 싶었던 거야…….'

이현욱은 이번에도 그것들의 심장을 적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다른 플레이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 저걸 왜 자꾸 모으는 겁니까?”

"그러게요. 큭, 빨리 쉘터로 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가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저기 보십시오!”

저 멀리에서 거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영이 나타났다.

“……어? 거기, 누구십니까?”

"설마, 2차 구조대입니까?”

1차 구조대원 생존자, 가토 신이치와 조우했다.

***

1차 구조대는 현재 한 쉘터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공략을 포기한 건 아니었고 매시간 교대로 ‘수색대’를 내보내서 공략 방법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의 판단처럼, 이 맵 어딘가에 해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토 신이치 역시 그 수색 임무를 띠고 쉘터 밖으로 나왔다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서 일행과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

그는 물을 들이켜더니 불안한 듯 주변을 살폈다.

"이, 이 근처에 엘드요툰의 화신들이 유독 많습니다.”

"아, 괜찮아요. 방금 저 남자가 다 처리했어요.”

그는 나가노 타이가 가리킨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검은색의 금속 박스가 떠 있었다.

"아?”

그는 그 아이템이 상징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저 사람, 설마 이현욱입니까?”

"네, 맞아요.”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저희 모두 저 사람 덕분에 살아남았네요.”

그때, 이현욱이 다가왔다.

“……가토 씨라고 했죠?”

"예, 이현욱 씨,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자, 이걸 드십시오.”

이현욱이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그……."

"예, 지옥 폭염을 견디게 해줄 겁니다.”

그건 ‘황혼 클로버의 축복 물약’이었다.

"이게 몇 개 없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주셔도 될지……."

"그거야, 가토 씨가 저희를 인도해주셔야 하니까요.”

일행은 그렇게 가토 신이치의 인도를 받아 쉘터로 향했다.

"그런데 가토, 혹시 시즈오카 코가는……."

나가노 타이가 그 ‘탈출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가 정말로 1차 구조대가 밖으로 보낸 메신저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이 나왔다.

"그 친구는…… 입장과 동시에 죽었습니다.”

"네? 그가 죽은 걸, 확실히 보셨나요?”

"예, 그 친구 시체가 쉘터에 있어요. 왜 그러시죠?”

그 말에, 그녀가 이현욱을 돌아보았다.

"여, 역시……."

시즈오카 코가가 가짜였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응? 나가노, 왜 그러십니까?”

"아, 가토, 그러니까요……."

그녀는 그 남자가 홀로 돔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이 ‘냉기’로 덮여 있다고 했다고 증언했다는 걸 설명했다.

그러자 가토 신이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아,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도, 도플갱어요?”

"네, 로키의 장난이라는 게 그걸 뜻하는 걸까요?”

"그게 진짜라면 정말 고약한 함정이네요. 미친……."

북유럽 신화의 신 ‘로키’는 변신술을 이용해서 다른 이들을 골탕 먹이는 걸 즐겼다고 했다. 입장 시 보였던 <로키의 장난>이라는 필드명도 그렇고 지금 이 상황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실제로 로키가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함정들이 연달아서 나타나는데,

다른 이의 모습을 빼앗는 도플갱어가 대표적이었다.

"와…… 진짜, 무슨 이딴 상황이 다 있는 거지?”

가토 신이치가 역정을 내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도플갱어에 의해서 농락당했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렇듯, 레이드란 때로 퍼즐을 마주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다분히 악의적인 난이도의 함정을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우리 세계를 잠식해버린 이 게임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

한편, 이현욱은 <아이언 이글>길드원들을 틈틈이 살폈다.

“으.......”

"젠장, 텍사스 바비큐가 된 기분이야.”

아무리 빌런이라고 해도, 이 안 환경까지 알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놈들도 똑같이 고생하고 똑같이 죽을뻔했다.

이현욱은 놈들이 그렇게 빌빌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은근슬쩍 놈들의 가방 안에 ‘플라이 아이’를 심어두었다

그때, 갈림길이 하나 나왔다.

"그런데 이쪽 방향 쉘터가 더 가깝고 크지 않나요? 도로를 따라서 직선으로 1km만 가면 2등급 쉘터가 있다고 나오네요?”

나가노 타이가 지도를 살피며 그렇게 물었다.

“……아, 그쪽 쉘터는 당했습니다.”

"네? 그렇다면 피난민들은 어, 어떻게 된 건데요?”

"그거야…… 씁, 어서 가죠.”

가토 신이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오른쪽으로 걸었다.

그때, 이현욱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가토, 좀 덥지 않습니까?”

“……예?”

이에 가토 신이치가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물약이 더 필요하신지 여쭤봤습니다. 쉘터까지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길잡이인 가토 씨 상태가 중요하니까요."

"아, 감사합니다만, 아까 주신 물약의 효과 아직 10분 정도 남았습니다. 그건 아껴뒀다가 나중에 쓰는 게 좋겠네요.”

그는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그거요?”

이현욱의 발이, 천천히 멈춰 섰다.

"그거, 그냥…… 물이었는데요.”

그 한 마디에, 모두가 멈춰섰다.

“……물이라니요?”

나가노 타이가 물었다.

"제가 드린 병에 담긴 건, 물약이 아니었습니다.”

"저, 정말로 그걸 줬다면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플레이어가 아닌 존재라면, 감별을 못하죠.”

NPC나 몬스터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지 못한다. 그건, 물약의 성분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가토, 당신은 맹물을 먹고도 이 지옥 폭염을 견디는군요?”

가토 신이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느새 이현욱의 등 뒤로, 비공정이 나타나 있었다.

우우우우——!

그리고 그곳에서 30대의 AD-1이 쏟아져 나오며 산개— 일대의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기 시작했고,

그것들의 그림자가 이현욱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이현욱이 가토 신이치를 바라보며 짧게 물었다.

"......신체 강탈자, 네가 보스 몬스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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