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97화 (97/221)

97화.  < 전쟁 공포, 전쟁 준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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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움의 유적지를 살펴보다 보면, 그 비밀스러운 고대 종족 역시 도박이란 것을 즐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제작한 물건 중 적지 않은 요소가 즉 ‘무작위성’을 띄고 있는 것이었다.

가령, 라퓨타 창고에 쌓여 있는 ‘식량-랜덤 박스’나 몇몇 샤워실의 ‘랜덤 수온 수도꼭지’처럼,

확률에 따라서 ‘대박’과 ‘쪽박’을 오고 가는 희열을 맛볼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 <노움의 아공간 자판기>가 그 대표 격인 물건이다.’

그것에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라는 이 코인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외부 차원의 아공간에 들어있는 수많은 ‘재료 아이템’ 중 하나가 무작위로 떨어진다.

‘그런데, 아무리 기술자 종족이라도 그렇지 보상이 재료 아이템인 가차를 국민 게임처럼 즐겼다니…… 진짜 변태 같은 놈들이야.’

그러나 사실은…… 그 변태 같은 노움의 취향을 그 누구보다 진득하게 즐겼던 자는 이현욱 본인이었다. 그는 웬만한 대장장이나 연금 술사보다 많은 ‘뽑기’를 시도했다.

도박을 좋아하지는 않다만, 아무리 돈이 많더라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진귀하디 진귀한 금속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창구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빰빠라—빰— 빰— 빰——!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뭐야, 처음부터 팡파르라니…….'

이내 덜그럭— 소리와 함께 하단 상품 배출구에 무언가 떨어졌다. 그건…… 웬 동그란 캡슐로 포장된 상품이었다.

이현욱은 그걸 돌려서 열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드워프들은 그 내용물의 정체를 보고는 기겁을 하며 방방 뛰었다.

“헉— 그, 그것은—!”

“마, 마, 맙소사…… 별의 심장이잖아!”

-‘마그네타 크러스트 피스’를 획득했습니다.

별이 다 타고 남으며 탄생하는 중성자별, 그중에도 가장 강력한 존재가 바로 ‘마그네타(Magnetar)’였는데, 이 아이템은 그런 천문 현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했다. 물론, 실질적인 ‘속성’은 확연히 다를 것이었다.

웅——!

중성자별인 마그네타였다면 강력한 ‘자기장’을 채찍처럼 내뿜으며 일대의 모든 걸 원자 단위로 분해했을 테지만, 이것은 농도 짙은 ‘마나’를 미친 듯이 방출하고 있었다.

이현욱은 그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며, 새삼스레 경탄했다.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마나다.’

뭐, 엄밀히 따진다면, 엄청난 양의 마나가 강력하게 응축된 상태로서, 그것들이 전부 방출한 뒤 소멸할 유한한 존재였다.

그러나, 태양 역시 언젠가 꺼지고 말겠지만, 한낱 인간의 시점으로 본다면 사실상 ‘무한한 에너지’이지 않던가? 이는 그것과 같은 개념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4차 웨이브 때 내가 삼켰던 <드워프제 그레이트 마운틴 엔진>의 코어에도 이것이 소량 들어가 있을 거다.’

즉, 이 작은 원석 하나만으로도 그런 무지막지한 엔진을 족히 대여섯 개는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별의 심장’이라는 별명다운 물건이었다.

"그, 그거! 그, 자네가 쓸 일이 영 없을 것 같은데……."

어느새 주변에 몰려든 드워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주인의 식탁 앞을 기웃거리는 강아지 무리 같았다.

"아니요, 제가 먹을…… 아니, 사용할 겁니다.”

그러자 드워프들은 아주 대놓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자네를 무시하는 거 아니지만 그 진귀한 재료는 진짜배기 전문가가 다뤄야만 해! 그게 바로 우리가 아니겠는가?”

"그래, 우리한테 맡기면 아주 근사한 물건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어때, 우리를 믿어보시는 게? 응?”

"아, 아니면 그냥 우리한테 팔게나! 지금은 가진 게 없지만, 내가 평생을 일해서라도 그 값을 치루를 테니……."

이현욱은 그 짧고 굵은 손아귀들을 피해서 ‘마그네타 크러스트 피스’를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미안하지만, 절대 안 됩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에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여타의 금속이었다면 이들의 호감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 투자할 법도 했지만, 이건 절대로 줄 수 없었다. 이현욱이 그것을 주머니에 넣자 드워프들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감돌았다.

"자,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아직 코인이 많습니다. 앞으로 괜찮은 게 좀 나온다면 여러분께 믿고 맡겨보겠습니다."

이현욱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자 그 안에서 140개의 코인이 짤랑— 소리를 냈다.

그러자 드워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그래! 처음부터 초대박이었으니 아주 흥미진진하군!”

이어서 몇 번의 뽑기를 더 했지만, 팡파르는 울리지 않았다.

‘뭐, 이것들도 충분히 진귀한 것들이긴 한데…….'

이게 참, 사람이 간사하게도 이제는 미스릴, 아다만트, 오리할콘, 천철 등의 전설의 금속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나 값진 걸 얻어버렸으니, 도박하는 맛도 좀 떨어졌다.

이현욱은 코인이 100개 남은 시점에 뽑기를 중단했다.

"어떻게, 이거라도 받으시겠습니까?”

이현욱은 아다만트 7덩이를 드워프들에게 내주었다.

"오! 그게 정말인가? 아다만트도 상당히 비싼 놈이지 않나?”

"그 비싼 걸 더욱 가치 있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으하하! 맞지, 좋아!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이처럼 이들은, 광물 자체에 대한 소유욕보다는 그걸 다룬다는 점에 쾌락을 느끼는 듯했다.

즉, 아무리 부려먹더라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을 터였다.

'좋아, 앞으로 잘 부려먹으려면 이렇게, 틈틈이 기분 좋게 해줘야지…….'

한편, 이교준 팀장을 비롯한 <신도시계획부서>의 직원들은 드워프들을 인솔하여 거주 지역인 ‘상부 도심’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주상복합 형태의 빌딩이 잔뜩 늘어서 있었는데, 사전 조사에 따르면 무려 1,456세대가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에, 첫 번째 입주민들이 들어온 것이었다.

"그럼, 저희가 이 드워프들 좀 면담하고 신상 정보를 파악한 뒤에 성향과 능력에 따라서 역할 분담을 해보겠습니다.”

이교준 팀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예, 죄송하지만, 그건 알아서 처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기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다수의 ‘직원’들이 필요한 것이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기반이 확립되었다.

즉, 그가 없더라도 직원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라퓨타라는 이 거대 시설을 굴려 나갈 것이었다.

직후, 이현욱은 오더 타워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마그네타 크러스트 피스>를 삼켰다.

꿀꺽—

- 금속 흡수까지 (알 수 없는 시간) 남았습니다.

‘역시…… 이걸 소화하려면 꽤 오래 쉬어야겠는데…….'

그러나 아직 처리할 일이 하나 있었다.

"탈로스, 내 말 듣고 있나?”

- 예, 마스터! 필요하신 게 있습니까?

이내 귓속으로 탈로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이처럼 라퓨타 안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AI, 탈로스를 불러낼 수 있었다.

"그, 혹시 다른 종족의 아이템들이 보관된 곳이 있나?”

며칠 전, 블랙 오크 왕국이 한국에 선전포고하며 그 이유로 설명하기로, 자신들의 ‘선조’의 유물이 라퓨타 안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되찾기 위해서 한국을 침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런 게 진짜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라퓨타는 너무나 넓었기에, 아직도 미지투성이였다.

「아…… 아마도 <전쟁사 전시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거기가 어디지?”

「예, 하부 연구 지역 B43 층입니다.」

이현욱은 탈로스의 인도를 받아서 그곳까지 내려갔다.

아직 라퓨타의 대다수 층이 미개방 상태로서, 방치되고 있었다. 그건 B43층도 마찬가지였다. 인적이 전혀 없는 건 당연하거니와 마치 버려진 우주선에 탄 것처럼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다.

이내, B43층의 중심부에서 박물관 같은 공간을 마주했다.

이현욱이 입장하자, 천장의 크리스털 타일이 빛을 발했다.

웅——

그렇게 밝혀진 공간은 순백색에다가 꽤 널찍했다.

"음…… 탈로스, 여기가 그 박물관 맞나?”

「예, 그렇습니다! 노움는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그때마다 획득한 전리품들이 바로 이곳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탈한 물건들을 모셔뒀단 말이지?”

「하하— 꼭 그런 건 아니고 조공 받은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박물관이라기보다 전시관에 가까웠다. 몇 개의 아이템을 투명 유리 안에 걸려 있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박물관이라면 으레 관련 정보를 전달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여기…… 죄다 상당한 수준의 물건이다.’

이 공간 전체가 최소 영웅 등급의 아이템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이현욱이 본 것도 섞여 있었다.

'잠깐만, 이건…… <블러디드던>이잖아?”

그건, 검붉은 빛깔이 감도는 롱보우였다.

「아!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다크 엘프라고 불리는 종족의 성물로서, 다크 엘프의 대장군이 저걸 쏘아서 초대형 비공정인 <게이트센티널>을 추락시킨 바 있었다.

즉, 전술 병기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활이라는 뜻이었다.

‘이게 원래 여기에 있던 거였어?’

3차 웨이브 지역의 지배자 다크 엘프…… 아마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종족일 터였다.

오늘날, 베를린의 침식 지역은 그저 식인 생물로 뒤덮인 녹색 지옥으로만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지하에서 다크 엘프의 군세가 확장되고 있었고, 그 사실은 독일의 일부 기득권층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그래, 빌런들이 이걸 다크 엘프 종족에게 넘긴 거였군?’

전생에는 그놈들이 라퓨타를 소유했으니, 이것들을 가지고 그런 몬스터 세력들과 모종의 거래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거래의 결과로써, 중립을 유지하던 다크 엘프들이 빌런 측의 편에 서서 유럽 정벌전에 나서게 된 듯했다.

‘즉 그런 기회가, 어느 정도는 나한테 왔다는 거다.’

이현욱은 다음으로 거대한 도끼 한 자루와 마주했다.

어찌나 큰지, 그 총 길이가 족히 5m는 될 법했다.

'……이거다.’

블랙 오크 선조의 유산, 그게 이걸 뜻하는 게 분명했다.

이현욱은, 투명한 유리막에 손을 얹었다.

- 해당 아이템은 현재 ‘봉인’상태입니다.

* 봉인 해제를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음…… 탈로스, 이거 지금은 못 꺼내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게 워낙 귀중한 아이템이다 보니 이 공간을 설계한 노움이 상당히 복잡한 방식의 잠금장치를 걸었습니다.」

“……그게 뭔데?”

「아이템마다 해당하는 종족의 ‘지도자’의 몸속에서 얻을 수 있는 ‘영혼석’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그 열쇠입니다. 그런데 노움들이 과거에 쟁취했었던 영혼석들은, 앞서 말씀드렸듯 라퓨타가 정체불명의 적에게 공격받으며 5계파가 탈출할 때 전부 유실되었습니다.」

"진짜, 개판이군……."

「……큼, 다만, 종족별로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될 때마다, 지도자의 몸속에 영혼석이 생기니까, 다시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설명에, 이현욱은 실소를 머금었다.

‘……좀,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잖아?’

그러니까 이 강력한 아이템들을 꺼내기 위해서는 웨이브 이후 등장하는 각 종족의 수장—보스 몬스터를 공략하여 ‘영혼석’을 강탈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면 전생의 빌런처럼, 이걸 넘겨주는 대신 대가를 받을 수 있고…… 그 둘 중에 하나의 노선을 타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뭐, 이건 나중에 생각해야겠군.”

그 종족들과도 머지않은 미래에 마주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때, 이것들이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것이었다.

***

이현욱은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휴식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체내 용광로를 최대치로 가동—흡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꼬박 이틀이 지났는데도 흡수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치 몸이 고아지고 있는 것만 같은 고통만이 거듭되었다.

- 금속 흡수까지 (알 수 없는 시간) 남았습니다.

하긴…… <드워프제 그레이트마운틴 엔진>을 흡수할 때도 몇 날 며칠이 걸렸는데, 이건 그것의 몇 배에 달하는 놈이었다.

‘……한 일주일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이 시기를 지나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온다.

‘조금만 더 버틴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러 가지 소식이 들어왔다.

일단 블랙 오크 왕국은 여전히 특이 동향이 없었다. 군사 위성으로 24시간 감시 중이었는데, 병력의 이동은 식별되지 않았다.

그리고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홍도>길드는 끈질기게 한국 정부를 압박해대는 중이었다.

- 中 홍도 측, 한국은 라퓨타를 불법 점거 중이다.

- 성나서 들끓는 중국 여론 “라퓨타는 애초에 중국의 것!”

그러나 우성문 등 정부의 결정권자들은 이미 ‘병신에게 먹이 금지’를 고수하기로 마음먹은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필연적으로, 한국 정부 측이 떳떳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쏟아졌는데…….

얼마 뒤, 라는 마크가 붙은 대형 수송기 몇 대가 라퓨타의 돔—결계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의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는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간접적인 증명한 셈이었다.

‘그래, 시끄럽게 맞받는 것보다 조용히 증명하는 게 좋다.’

그러자 국제 여론은 급반전되었다.

- 한국 정부의 조용한 증명…… 중국 길드의 사기극인가?

- 이제 ‘홍도’가 증명해야 할 차례, 세계의 이목 집중!

그렇지 않아도 국제 사회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중국인 만큼, 이번에도 억지 주장을 펼친 것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이교준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 ……홍도 길드 측이, 또 알 수 없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못 근심이 묻어났다.

"예?”

- 그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은 <고대 유산의 보조키>라고 아주 구체적인 아이템명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라퓨타의 ‘종사자’가 되라는 퀘스트를 받았다면서, 자신들이 라퓨타 활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만나달라고 합니다.

그 대목에서는, 이현욱 역시 무시로 일관할 수가 없었다. ‘고대 유산의—’ 이렇게 시작하는 아이템 이름을 언급했다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를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보조키, 그 지점에서 이현욱은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 아무래도, 놈들을 한국으로 불러야겠는데…….'

그는 체내 용광로를 껐다.

***

그로부터 36시간 뒤,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중국 <홍도>길드의 플레이어들 셋이 포토라인에 섰다.

지난 며칠간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주장하던 이들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한국 정부의 초청이었다.

그 점에 관해서 세상은 다시금, 라퓨타의 관리 권한이 없는 한국 정부가 홍도 길드와 협상을 시도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초청은 그런 취지의 만남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고, 홍도 길드는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한국에 오신 건 이유는 라퓨타와 관련되어 있을 텐데요! 지금도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주장하시나요?”

그리고 그런 기자의 질문에도—

“……오늘이 지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저 모호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은 준비된 차에 탄 뒤,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다.

"후, 정신없군…… 이봐, 암살단은 도착했나?”

그렇게 묻는 이는 홍도의 부마스터 사오준이었다. 그는 중국 플레이어 랭킹 21위의 암살자 플레이어로서, 그가 바로 ‘라퓨타 관리자 권한’이 담긴 열쇠의 보유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 이 땅의 남부에 ‘소환’을 대기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는 거구는…… 인간이 아니었다.

"역시, 우리 삼촌을 암살한 놈들답게 아주 철두철미해?”

샤오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괜스레 긴장감을 느꼈다.

“……인간, 시끄럽다.”

그 거구는 놀랍게도, 인간으로 둔갑한 블랙 오크 주술사였다.

‘아니, 이 자식들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뭐 이렇게 살벌해?’

샤오준은 상당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건 이 블랙 오크 주술사가 속한 부대가 <피 도끼>라는 악명 높은 ‘척살대’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그 괴물들이 한 번 노린 목표물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우리 삼촌도 이 자식 손에 죽었겠지…….'

한때 중국 플레이어 랭킹 4위였던 그의 삼촌, S등급의 정령술사 덩차오 역시 <피 도끼>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안심됐다.

오늘 이 작전, 억지로라도, 성공할 것이었다.

"어, 뭐…… 어쨌든, 내가 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까, 진짜 관리자를 식별할 수 있을 거야. 그다음에 내가 악수하는 척하다가 ‘밧줄'로 놈을 포박하면 놈은 아무것도 못 할 테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목의 밧줄 모양 문신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눈앞에 아이템 정보가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글레이프니르

- 효과 : 마나를 불어 넣을 시 특정 대상을 포박합니다. (포박된 대상은 10분간 자력으로 밧줄을 풀 수 없습니다.)

그건 블랙 오크의 주술로, 아이템을 몸에 문신으로 새긴 것이었는데,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는 스킬이기에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 이후에 행동하는 거 알지? 괜히 급하게 먼저 움직였다가 놈들이 눈치채게 하지 말고, 내 신호를 기다리려야 해.”

샤오준의 거듭된 말에도, 블랙 오크는 대답이 없었다.

"……음, 그래, 우리 합이 잘 맞아, 그렇지?”

이렇듯 이들은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놓고는, 대놓고 암살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는 외교적으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샤오준은 그딴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빌런’이기 때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라가 뒤집히고 전생이 터지든 간에 오로지 라퓨타의 마스터키만 얻는 게 유일무이한 목표였다.

어느새 그들이 탄 차가 서울 도심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그들의 차를 따라서, 웬 까마귀가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윙—

그것은, 평범한 까마귀가 아니었다.

"이것들 봐라……."

이현욱은 ‘후긴’의 눈으로 홍도 길드의 차를 쫓았다.

그리고 그의 ‘인사이트 렌즈’에 무언가 식별되었다.

그 대상은 뒷좌석에 타 있는 거구의 남자였다.

그의 머리 위, 한 줄의 텍스트가 떠올라 있었다.

- 블랙 오크 주술사 (LV. 71)

‘하? 폴리모프라니…….'

외양을 바꾸는 기술인 폴리모프(Polymorph), 그건 엄청난 고난도 마법으로, 드래곤 정도는 되어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그래, 오크 국왕 스노톡스의 힘이군?’

그 유명한 보스 몬스터는 최고의 주술사였다.

'그 고고한 오크들의 왕이 직접 나선 일이란 말이지?’

하지만 ‘호루스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직후, 이현욱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성녀 에밀리아 뮐러와 1대1로 연결된 마나 메신저였다.

***

잠시 후, 서울 한 호텔의 비즈니스 룸,

홍도 길드원들은 그곳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정부 측에서 말하기를, 라퓨타의 관리자는 민간 길드 소속으로, 회담 장소를 정부 시설물이 아닌 호텔로 정했다고 했다.

“……흠, 약속 시각보다 벌써 10분이나 지났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 자식들, 예의가 영 없습니다.”

"후…… 괜찮아, 어차피 다…… 재밌게 될 거잖아?”

홍도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저들끼리 마주 보고 낄낄 웃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아— 이제 들어오시는군?”

그리고 그들이 예상한 인물이, 바로 그곳에서 나타났다. 역시나!’

그는 다름 아닌 서울의 구원자, 이현욱이었다.

그러자 샤오준의 안쪽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가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라퓨타의 ‘마스터’와 조우했습니다!

그는 암성으로부터 이 ‘보조키’를 건네받는 순간 어떤 퀘스트를 받았기에 이렇게 라퓨타의 마스터를 식별할 수 있었다.

‘역시나 놈이 라퓨타의 관리자였다.’

이는 사실, 빌런 측에서도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너무나 많은 실패가 거듭되었기에, 이번에는 모든 걸 하나하나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가장 큰 걸림돌을 지운다!’

샤오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거, 정말 유명한 분 아니십니까?”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 손목에 마나를 불어 넣을 준비를 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모든 아이템은 아공간 보관함에 반납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 ‘문신’ 만큼은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오크 주술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이현욱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악수’의 순간을 기다렸다.

“하하—저는 이미 딱 알아봤습니다. 제 눈앞에 라퓨타의 마스터에게 허락을 받으면, 종사자가 될 수 있다고 떴거든요.”

"......."

"아, 제가 너무 멋대로 떠들었나요? 그러고 보니 기분이 나쁘실 만도 하죠. 먼저, 앞서서 소란을 일으킨 점 사과드립니다."

샤오준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이현욱에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현욱이 내민 건, 손이 아니었다.

철컥—

그건, 샷건이었다.

콰—앙——!

……글레이프니르, 그것을 꺼낼 틈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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