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 전쟁 공포, 전쟁 준비 - 1 >
=============================
"쟤들, 원래, 막 선전포고도 하고 그러는 애들이에요?”
희망 길드 사무실, 김세희가 뉴스 속보를 보며 물었다.
"어, 음……."
그녀와 눈이 마주친 박철수는 이번 이슈에 대해 잘 모르겠는지 머리를 긁적였고 소파에 앉아 있던 이현욱이 대신 대답했다.
"적어도 지난 전쟁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죠.”
"지난 전쟁이라면…… 아, 상하이 수복 전쟁인가, 그거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중국이 총력을 동원해서 블랙 오크 왕국과 전쟁을 벌였죠. 그 시기를 총 4번의 큰 전쟁으로 구분하는데, 양측 모두 선전포고 같은 건 하지 않았고 죄다 통보 없는 기습이었죠.”
애초에 그게 당연했다. 인간 역시 몬스터를 공격할 때 선전포고 따위 하지 않는다. 즉, 서로 간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건 당연하고 ‘인도적인’으로 대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음…… 그런데, 이번에는 왜 선전포고를 했을까요?”
……글쎄, 이현욱 역시 그 지점을 고심하고 있었다.
한편, TV 뉴스 속, 앵커와 전문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현재, 블랙 오크 왕국의 군사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며 공략 난이도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상당한 수준이라고 하는데 만약 우리나라를 침략한다면, 막을 수 있는 겁니까?
- 그게, 아마도 전 AMT 병력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민간 길드 병력까지 총동원되어야지 겨우 막을 수 있는 수준일 겁니다.
- 그렇다는 건, 우리가 아는 몬스터와의 싸움이라고 볼 수는 없고 정말로 국가 간의 총력전 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 예, 이미 중국이 지난 상하이 수복 ‘전쟁’에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실패가 아니라 패배라고 보는 견해가 많죠. 그리고 그때부터 이미 대규모 전쟁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예견되었는데요. 그 표적이 씁, 이상하게도 우리가 된 상황입니다.
- 그런데 그 선전포고 이유가 ‘라퓨타’라는 거죠?
- 그렇습니다. 오크 측에서는 라퓨타 안에 블랙 오크 ‘선조’의 물건이 들어있다는데, 그게 뭔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정부는 라퓨타에 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으니…….
‘음, 블랙 오크 선조의 무기라…….'
그 지점에서 이현욱은, 탈로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이야기가 괜히 나오지는 않을 터, 뭔가 있을 것이었다.
- 그런데 2차 웨이브 이전의 중국은 현재보다 훨씬 강력했죠?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5배 정도의 군사력이었다고 하던데…….
- 예, 아무래도 인구가 많다 보니 플레이어가 많았지만, 2차 웨이브와 상하이 수복 전쟁 때, 그 전력을 상당수 잃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겠군요. 흠…… 혹시 블랙 오크 왕국과 외교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을까요? 가령, 그쪽에서 원하는 그 선조의 유물이라는 아이템을…….
이처럼, 그다지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 증시가 하루 아침에 대폭락했으며 외국인들의 탈출이 이어졌다.
'……그래, 놈들은 1차 목표는 공포감을 조장하려는 거다.’
이 난데없는 선전포고 안에 담긴 저의 중 하나는 그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생에서도 몇 차례에 있었는데, 빌런 세력이 블랙 오크 왕국을 이용해서 동아시아에 전운을 일으키곤 했었다.
‘마치, 북한이 툭하면 미사일을 쏘았던 것과 같다.’
그렇게 공포감을 조장하면, 필연적으로 경제 침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서 혼란과 내분이 발생하니, 빌런, 그놈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용이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소기의 목적’이 뭔지가 중요했다.
‘분명, 무슨 짓거리를 벌이려는 건데……."
그런데 그날저녁, 우성문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예상은 했다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 중국 쪽에서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꽤 유명한 랭커입니다.
얼마 전부터 중국 내에서 떠돌던 ‘중국 라퓨타 열쇠 보유설’ 그게 진짜라고, 중국 내 한 세력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 그 중국 길드는 <홍도(紅道)>라는 곳인데, 40분 전, 우리 측에 연락을 해와서 자신들이 라퓨타의 관리자니까 라퓨타 접근 권한을 넘기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러면 블랙 오크가 한반도를 침공했을 때 아주 쉽게 막아낼 수 있을 거라면서요.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퍼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지겠습니다. 우리는 라퓨타에 관해서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국민은 정말로 중국 쪽에 그런 권한이 있는 게 아닐지 걱정하게 될 수밖에 없어서, 불안감이 더 커지겠네요.”
그건 뻔했다. 중국 내에서는 라퓨타의 진정한 주인은 중국이며 한국에 요구해서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난다면, 그에 맞대응하여 한국 여론은 정부가 진실을 공개하기를 종용할 터—
- 예, 그렇게 흘러가겠죠.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중국 쪽에서는 혹시 한국 쪽에도 또 다른 라퓨타 관리자가 있다면 만나서 논의해 보자는, 다소 황당한 요구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응? 이건 무슨 소리야?’
그 지점에서, 이현욱은 놈들의 목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역시 놈들이 노리는 건 <라퓨타 관리자 권한> 강탈이군?’
이처럼, 라퓨타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상황을 조성하여 압박하는 건, 암살할 대상을 특정해내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현욱은 그 시나리오에 응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쪽 말이 진짜일 리는 없으니 다른 목적이 있을 겁니다.”
- 그렇죠. 속내가 뻔히 보이는 짓에 휘둘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 병신에게는 먹이 금지라는 말이 있다. 저렇게 노이즈를 일으키는 황당한 정치 공작에는 반응하지 않는 게 답이었다.
‘괜히 저 미끼를 물어서 세상의 이목을 모으면 복잡해진다.’
이어서 우성문이 말하기를, 군사 위성으로 상하이 부근을 감시 중인데, 아직은 블랙 오크 주 병력의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역시, 선전포고는 뻔한 공포 조장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정부 측에서는 혹시 모를 침투에 대비하면서도, 이 사건이 다른 목적을 가진 ‘쇼’라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블랙 오크의 침략이 거짓인 건 아니다.’
실제로 몇 년 뒤, 블랙 오크 군단이 한반도를 침략한다.
하늘과 해상을 수놓은 누더기 함대가 서해안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여 점령한 뒤, 침식을 일으키는 ‘토템’을 설치했고, 결국, 제주도가 블랙 오크의 식민지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시기가 앞당겨질 거다.’
이현욱이 빌런들의 계략을 죄다 격파한 만큼, 놈들은 블랙 오크라는 카드를 조금 이른 시간에 꺼내 들 가능성이 컸다.
‘그것들을 상대할 방법은 역시…… 막강한 화력이다.’
그 무엇도 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할 저지력이자, 다시는 야욕을 품을 수 없게 정신 차리게 할만한 파괴력이 필요했다.
가령, 상륙하기 전에 함대를 날려버릴 거포(巨砲)라든지…….
그때, 라퓨타에 대기 중이었던 여상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 저기…… 이 드워프 아저씨가 고향 사람들하고 교신에 성공했다고 하네요. 슬슬 이주 받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막강한 거포를 만들어 줄 기술자들이, 곧 도착한다.
***
[히든 퀘스트]
- 차원 여행자와의 조우 - 3
당신은 그레이 마운틴 드워프의 이주지를 지명했습니다.
그들은 8일 뒤에 ‘균열’을 통해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세요.
* 퀘스트 보상 : 성과에 따라서 차등 지급됩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8일째 되는 날이었다.
곧 저 하늘에 포탈이 열리고, 드워프 종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와이번도 같이 떨어질 거다.’
그렇기에 라퓨타는 지금 ‘공성전’ 대비가 한창이었다.
"자, 3팀, B43 외부 난간으로 이동한다!”
"여기, 중앙 주변으로 빙결 마법사들 집합한다!”
얼마 전, 특수비밀경찰국 안에 ‘신도시계획부서’라는 새로운 부서가 신설되었고 그들이 주축으로 하여, 아바돈 소환 저지 때 함께 했었던 비밀 부서인 <비형랑>팀이 지원을 나와 있었다.
그렇게 동원된 플레이어는 총 백여 명이었다.
"저기, 8번 타워에도 마법 포탑 설치해!”
그들은 와이번이라는 강력한 비행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 라퓨타 곳곳에 대공 화기 형태의 아이템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웨이브 당시 청룡산의 철갑독충을 깡그리 쓸어버렸던, 무려 ‘장인’ 등급의 무기인 <뇌선의 철퇴>도 있었다.
‘하지만 와이번에게 전격 공격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이현욱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와이번은 고공을 비행하는 종족으로 벼락을 맞을 가능성이 큰 만큼, 신체 구조가 벼락을 흘려보내는 형태로 만들어진 건 물론이거니와 전기에 대한 내성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와이번을 제압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현욱은, 그 해답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상민, 차드 공화국에서 온 상자들, 전부 가져와.”
"아, 여기에다가 설치하시려고요?”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저 멀리, 오더 타워 안에서 또 다른 여상민이 뛰어나와서 비공정 포트의 프리드웬에 타더니, 이쪽으로 몰고 왔다.
우우우우——
"음, 어떻게, 이쪽에 착륙시킬까요?”
"아니, 착륙하지 말고 조금만 좌측으로 옮기기만 해.”
그러자 음성 인식을 한 것처럼, 프리드웬이 곧장 움직였다.
‘역시, 여상민을 이용하면 업무 처리에 딜레이가 없다.’
이처럼, 여상민의 존재는 작업 효율을 대폭 상승시켜준다.
‘그나저나 곧 저 녀석의 능력 성장 방법을 알려줘야겠군.’
여상민 역시 특정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분신’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레벨 외 성장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템이 원체 희귀했지만,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철컥—
이현욱은 프리드웬에서 웬 철제 상자를 4개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웬 나무 넝쿨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 결코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우와……."
그건 무려…… 이번에도…… 또 세계수의 넝쿨이었다.
‘하여튼, 세계수는 진짜 사기야.’
괜히 차드 공화국이 세계수 하나로 먹고사는 게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라퓨타 역시 잘만 키우면 그에 못지않겠지?’
이 공중 도시 라퓨타도 ‘초월급 오브젝트’인 만큼, 발전시켜 나갈수록 엄청난 혜택이 쏟아져 나올 터— 오늘 이곳에 입주할 그레이마운틴 드워프 부족이 그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었다.
"저기, 그런데 어떻게 이 귀한 물건들을 구하신 거죠? 이런 건 암시장에서조차 잘 유통되지 않는 것 같던데……."
이는 당연하게도 에밀리아 뮐러가 공수해서 보내준 것이었으며, 그 뒤에 강정두 공방에서 특수한 목적으로 가공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제조 아이템은…….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갈고리 (숙련)
- 효과 : 넝쿨 끝의 ‘갈고리’를 어딘가에 걸고, 마나를 부여하면 신비로운 힘으로 아주 쉽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와이번을 상대할 회심의 ‘무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좋아! 차원의 문을 열 준비가 다 끝났다네!”
라퓨타 ‘상부 도심’의 중앙 광장에서 소일러가 소리쳤다.
그의 뒤에는 그가 타고 왔던 고물 비공정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의 범퍼 부분에 웬 뾰족한 기계 장치가 달려 있었다.
소일러의 말대로라면 저게 바로 차원의 문을 여는 장치였다.
"어떻게,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될까?”
소일러의 물음에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준비되었으니까, 가족들을 초대하죠.”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이교준 팀장이 마나 메신저를 통해 라퓨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병력에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으하하!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올 줄이야—!”
소일러는 환호를 하며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장치의 뾰족한 부분에서 웬 광선이 뿜어져 나가더니 약 100m 상공에 도달하여 공처럼 뭉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지점의 공간이 마치 얇은 비닐 막처럼 자글자글 구겨진다.
고—오—오—오——!
그렇게, 라퓨타의 상공에 보라색의 게이트가 열렸다.
꿀걱—
등 뒤,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비형랑 팀의 대원들은 하나같이 노련한 엘리트들이 건만, 이번에는 긴장한 티가 났다.
하긴…… 무려 ‘와이번’의 등장이 예고되었다. 그게 어떤 생명체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각 개체가 85레벨 이상이며 무리 지어 다니는 아주 까다로운 포식자들…… 그것들이 한 번 등장하면, 토벌까지 족히 한 달이 넘게 걸리며 그 일대에 비행 금지 명령이 내려지곤 했다.
"후…… 제발, 별일 없이 끝나라……."
만약, 여기에서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저 아래, 서울에 재앙을 흩뿌리는 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그들이 두려운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때, 보라색 게이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온다!”
훙—!
첫 번째로 등장한 건 회갈색의 고물 비공정이었는데, 소일러가 타고 온 것보다 족히 서른 배는 커 보이는 엄청난 크기였다.
덜덜덜덜—
“으하하! 나왔다! 저게 우리의 모선 <그레이슬러그>다!”
그 뒤를 이어서 각양각색의 비공정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그런데 운전을 잘 하는 건 아닌지, 마치 범퍼카처럼 저들끼리 허공에서 퍽퍽 부딪치는 게 아닌가?
"으하하! 하여튼, 신이 나서 덤벙거리는—!”
하지만 소일러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쩌면…… 꽤 자주 있는 일인 듯했다.
‘이것들,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자 맞나 싶군…….'
이내, 총 12대의 비공정이 하늘에 늘어섰고, 그중에서 가장 뒤늦게 나온 비공정의 뚜껑이 열리며 누군가 머리를 내밀었다.
"소일러— 다 나왔으니까, 당장 문 닫아!”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하지만—
께—에—에—에——!
'그래, 저번처럼 한발 늦을 줄 알았다.’
이것도 일종의 이벤트로서, 전투는 필연이었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와이번 5마리가 줄지어 빠져나왔다.
"어이쿠! 이번에도 늦고 말았네, 이런—!”
그렇게, 회색 몸뚱이에 익장만 30m가 넘을 법한 괴수들이 라퓨타의 하늘에서 날개를 펼쳤다. 그것들은 게이트를 통과하며 난데없이 바뀐 풍경이 익숙하지 않은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 그레이 와이번 (LV. 89)
그리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카악—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 이현욱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동그랗게 말려 있던 ‘세계수의 갈고리’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끄트머리의 갈고리 부분이 ‘금속’이었기에 이현욱이 조종할 수 있었다.
쉭—! 쉭—!쉭—!쉭—!
그리고 순식간에, 와이번들의 날개를 휘감기 시작했다.
무려 세계수의 힘— 그것들의 날개가 접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껙—!
그리고 마나를 부여하여 잡아당기자, 마치 낚싯줄에 걸린 거대한 물고기처럼 잠깐 버티는 듯했으나 이내 딸려오기 시작했다.
‘와이번은 강력한 몬스터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다면—’
쿵——!
그 거대한 괴물들이 허무하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지금이다! 모든 공격을 쏟아붓는다!”
그것들의 최대 장점인 기동력이 상실된다.
즉,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김 팀장, 빨리 쳐요! 이거 다 경험치예요!”
“……어, 아! 알았어요!”
이현욱의 말에 김세희가 수십 개의 바람 칼날을 소환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상황, 다시 오지 않을 레벨 업 기회였다.
***
잠시 후, 라퓨타 곳곳에 고물 같은 비공정이 착륙했다.
"와! 소일러 여기가 정말로 우리의 새 터전인가?”
"그래! 내가 잘 찾았지 않았나?”
"맙소사, 잘 찾은 게 아니라 여, 여기는 노움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인 라퓨타지 않은가!"
“으하하! 그래, 맞아! 우리는 복 받은 걸세!”
수백 명의 그레이마운틴 드워프 부족들은 감탄을 마지 못했다. 이곳에 처음 왔던 소일러처럼 아주 신이 나서 방방 뛰어댔다.
약 1시간 뒤, 드워프들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뛰어난 기술자 종족답게 온갖 기이한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현욱은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고물처럼 녹 쓸어 있는 드워프의 장비 속에서 홀로 아주 찬란한 빛을 유지하고 있는 단 한 개의 금속 장비가 하나 보였다.
그건, 언뜻 봐도 노움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이현욱이 그 앞에 다가가자, 소일러가 다가오며 미소지었다.
"으흐흐— 자네 이게 뭔지 궁금한가?”
"예, 무슨 슬롯머신처럼 생겼군요.”
정말로, 동전 투입구와 레버가 있는 영락없는 슬롯머신이었다.
"이건, 우리 종족이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물건으로, 우리에게는 재산이자! 오락이자! 밥줄이기도 한 대단한 물건일세!”
이현욱은 그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웬 비닐봉지를 바닥에 턱—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웬 금속 덩어리가 잔뜩 들어있었다.
짤랑— 짤랑—
그리고 그 내용물이 드러나는 순간—
“헉—!”
그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의 눈이 일제히 돌아갔다.
"아, 아, 아니…… 그건—!”
그건 다름 아닌 ‘지하 왕국의 고대 주화’였다.
"마, 말도 안 돼! 고대 주화가 저렇게 많다니!”
이현욱은 고준철에게 부탁해서, 이걸 깡그리 모아달라고 했다. 이제 슬슬 그 가치가 드러날 때가 되었지만, 아직은 사용처가 불분명한 ‘잡템’으로만 여겨지기에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게 총 141개였다.
"이게, 이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조건, 맞습니까?”
이에 소일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노움의 아공간 재료 자판기>를 가동할 수 있는 코인인데, 자네, 그 귀한 걸 어떻게 그리도 많이 구했나?”
이 슬롯머신 형태의 아이템은 훗날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장장이 길드가 필수로 보유해야만 할, 사기적인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이걸 돌리면 무작위로 재료 아이템이 나온다.
‘그리고 극악의 확률로, 말도 안 되는 게 나오기도 한다.’
아다만트나 오리할콘,
그토록 값비싼 전설의 금속들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쩔겅—
그가 첫 번째 코인을 넣었다.
그러자 <노움의 아공간 재료 자판기>가 빛을 내었다.
“후— 그래, 자네라면 분명 행운이 따를 거야!”
절그럭!
이현욱이 레버를 돌리자, 슬롯머신이 차르르 돌아갔다.
그리고, 그게 멈추는 순간,
빰— 빠라— 빰— 빰— 빰—!
다소 유치하지만 경쾌한 팡파르가 울렸다.
“—미친!”
옆에서 구경하던 드워프들의 과격 욕설과 함께…….
그리고 이현욱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